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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5~

최진석 교수의 장자 철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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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2강

3강

기준

  • 기하학적 도형
  • 혈연
  • 상제 - 인간
  • 천 - 덕
  • 도 - 덕

하늘의 명령을 인간이 받아서 살던 시대 - 은나라.

그러한 은나라를, 주나라가 멸망시켜버렸다. 하늘의 통치를 받던 은나라인데, 왜 망했지? 주나라가 만든 논리는, 은나라에, 덕이 없어져서 하늘의 뜻이 주나라로 옮겨왔다는 것. 그래서, 인간이 하기 나름에 따라서 하늘의 뜻이 움직이게 되었다.

철기 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점

하늘이 내리는 명령을 받아서 살던 인간이, 하늘의 위치를 '도'로 대치하면서, 인간이, 인간을 벗어난 능력에 의존함이 없이, 인간만의 능력으로, 인간이 가야 할 길(道)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이 가야 할 길 道와, 인간이 가져야 할 소양 德, 이렇게 두 가지가 그 시대의 범주(category)가 되었다.

철학의 범주

  • 헤겔: 이성
  • 포이에르 바하: 물질
  • 프로이드: 욕망
  • 데카르트: 물질 & 정신

  • 플라톤: 이데아
  • 주역: 음 & 양

  • 노자 시대: 도 & 덕

그래서 도와 덕에 대해 논한 책이라고 해서 도덕경인 것. 우리 시대의 도덕(윤리 등)과는 관련이 없음.

점점 인간의 지위와 책임감이 상승해가는 과정.

4강

00:00~03:45

천명을 극복하고 도가 출현했다. 역사의 책임이 신에서 인간으로 옮겨왔다.

무엇이 천명을 극복하고 도의 시대를 열게 했는가? 철기.

우리의 정신은, 물질적 토대가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 좋은 나라를 만드는데 중요한건 경제적 토대와 상공업 발전. 물질 문명에 대한 발전을 소홀히 하면, 사회와 인간이 진화하는데 불균형하게 된다.

산업에 철기가 투입되면서, 계급, 정치, 세계관을 흔들어놨기 때문에 가능한 것.

03:45~07:57

  • 하:
  • 은: BC 1600~
  • 주: BC 1046~

지금부터 3천년 전 얘기를 하고 있는 것.

  • 은: 갑골문이 중요하다. 갑골문의 내용은 대부분, '신에게 질문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신이 결정하는 시대였다는 것.
  • 주: 덕이라는 개념이 생김. 덕이 사라지면 신의 뜻이 떠나고, 덕을 지키면 신의 뜻이 임한다는 개념.

殷나라는, 인간과 세계를 설명할 때, 하나의 코드를 사용하는데, 그게 上帝. 인간은 그림자 존재였다.

周나라는, 그 上帝가 天으로 바뀌고, 그 天 밑에 德이 생겼다. 인간과 세계를 설명하는 코드가 두 개로 늘어난 것.

07:57~16:57

주나라는 두 시기로 나뉜다.

  • 西周
  • 東周

중국은 서북쪽 이민족들이 문제였다. 중국의 각 나라의 건국 초기에는 힘이 융성하여 이민족을 몰아내고 서쪽 장안에 수도를 정한다. 그러나 건국 중기 지나서 몰락할 때가 되면, 국력이 쇠하여 이민족의 침략을 방어하기 어렵게 되고, 그러면 수도를 동쪽으로 옮겨 낙양으로 천도하곤 하다. 한나라도 서한, 동한. 진나라도 서진, 동진이 있다.

서주 때는 나라가 잘 나갈 때. 질서가 유지되고 산업이 번창하고. 계급이 안정되고 뒤틀림이 없이 잘 나갈 때.

동주 때는, 그게 흔들렸다. 동주가 두 부분으로 나뉜다. 동주 앞부분을 춘추 시대, 뒷부분을 전국 시대라고 한다. 각 시대를 기록한 역사책이 춘추라는 책, 뒷부분을 기록한 책이 전국이라는 책. 그래서 동주 시대를 합쳐서 춘추 전국 시대라고 한다.

학자들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하고 큰 혼란을 이 때 경험했다고 한다.

춘추 말~전국 초 시기가 철기가 등장. 이 시기가 공자와 노자가 활약한 시대. 철학이 생겨난 시대.

도는, 주나라 시대에서도 동주 시대. 춘추 말~전국 초 시대에 출현한다.

이 시대의 철학자. 노자, 공자, 묵자. 초기의 세 철학자들이다.

서주 시대에는 안정된 프레임이 있었다. 계급, 정치구조, 가치관이 큰 뒤틀림 없이 유지되었다.

  • 군자 - 소인: 계급 구도
  • 천자 - 제후: 정치 구조
  • 천 - 인: 가치관

동주 시대로 진입하면서, 철기가 산업에 투입되면서, 이 구도가 흔들리고 약해졌다. 소인이 강해지고 군자는 약해지고, 제후가 강해지고, 인간이 강해지고.

이제는, 인간이 인간을 초월한 힘에 의하지 않고, 인간만의 힘(생각)으로, 인간이 가야할 길(道)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16:57~26:13

이 때 매우 예민한 두 사람이 나타난다. 보통 사람들은, 글공부를 하더라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서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는 것보다, 시대가 아파하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런 사람들을 철학자라고 한다.

노자, 공자, 묵자.

이 중, 노자와 공자를 살펴보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노자를 이해할 수 있어야 장자를 이해할 수 있다.

공자와 노자는 어떤 뜻을 펼치려고 했는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려고 하며, 어떤 세상을 꿈꿨는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공자를 앞에 쓰고 노자를 뒤에 쓰는데, 노자를 앞에 쓰고 공자를 뒤에 써야 한다. 노자가 20세인가 더 나이가 많다. 그리고 특성도, 노자 철학이 더 오래 되었고, 공자 철학이 신흥 학문에 가깝다. 노자 사상은 하나라 문명을 계승하고 있고, 공자 철학은 은나라 문명을 계승하고 있다.

여기서는, 익숙한 공자 사상부터 살펴보자.

아래의 내용들은 모두 틀린 말이다.

  • 공자는 인간의 길을 가고 vs 노자는 자연의 길을 갔다.
  • 공자는 교육을 찬성하고 vs 노자는 교육을 반대했다.
  • 공자는 문명을 긍정하고 vs 노자는 문명을 반대했다
  • 공자는 입세적(세상으로 들어온)이고 vs 노자는 탈세적(세상을 벗어난)이다

한국 사람들도, 중국 사람들도, 이걸 많이 틀린다.

공자나 노자 모두, 신이 정해준 길이 아닌, 인간이 만든 길을 가겠다고 한 사람들이다. 천명을 극복하고 도를 건립하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다만, 공자는, 인간의 길을 만드는데, 인간의 내면성(인간의 본성)에서부터 출발해서 만들고, 노자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보고, 그것(자연의 운행 원칙)을 본떠서 만들려고 했다.

노자나 공자 모두, 교육을 강조한 사람이다. 다만 어떤 교육을 하느냐가 달랐을 뿐. 노자나 공자 모두 문명을 건설하려는 사람이었다. 공자는 이런 식의 문명을, 노자는 저런 식의 문명을 건설하려 했다. 공자나 노자는 모두 현실에 개입한 사람이었다. 공자는 이런 식으로, 노자는 저런 식으로 개입했을 뿐이다.

26:13~46:55

공자는, 도를 건립하려 했는데, 인간의 내면성, 본성, 본질에 기반을 두려 했다.

논어라는 책에서 에셋스만 끄집어 낸다면? 뭐가 남을까? '인간이 인간인 이유가 인간에게 있다.'

ex. 팔만대장경의 에셋스는?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저것이 사라지니 이것도 사라진다'

그 이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가 신에게(하늘에게) 있다'.

공자의 그 주장은, 당시 관점으로 보면 굉장히 급진적이고 과격한 것이다.

그, '인간이 인간인 이유가 인간에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仁이다. 그러나 이 仁은, 어질다는 뜻이 아니다. 이 글자를 우리가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철학하지 않고 수입했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善이라는 말도, '착하다'라는 뜻이 아니다. 도덕경 안에 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가장 착한 것은 물과 같다'? '가장 탁월한 것은 물과 같다'는 것이다. 축구 선수가 뛰어난 플레이를 펼친 것. 그것도 아주 善하다라고 한다. 아주 탁월하다는 것. 고기가 아주 맛있다. 이 고기가 아주 善하다고 한다. 훌륭하다, 탁월하다, 착하다는 뜻이 있다.

다시 돌아와서, 그러면 仁이란 무슨 의미인가? '씨앗'이라는 뜻이다. 살구 씨앗을, 행인(杏仁)이라고 한다. 인간의 씨앗.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고 인간으로 사는 씨앗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 신이 준 것인가 vs 인간에게 원래 있는 것인가? 인간에게 원래 있다는 것이다.

仁은 인간의 본질이다. 본질이라는 개념은 무엇인가?

본질이란, 어떤 것을,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것이게 하는 성질이다.

본질(essence)은 아래 두 가지 특성을 가진다.

  • 배타성: '다른 것이 아니게 하는 성질'
  • 동일성: '바로 그것이게 하는 성질'

다른 어떤 동물에게는 조금이라도 있어서는 안된다. 인간에게만 있는 것, 인간이게 하는 성질이기 때문에.

공자의 관점에서는, 이런 인간이게 하는 성질을, 키워야 한다. 논어의 모든 내용은, 어떻게 하면 仁을 보존하고 인을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한 내용.

공자는, 나라와 나라 사이, 음악과 음악들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구분을 해야 한다고 할까 하지 말라고 할까? 구분을 긍정할까 반대할까? 긍정할 수밖에 없다. 공자는 구분을 긍정할 수밖에 없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공자의 모든 생각과 사유 방식과 철학이 태동하는 가장 근본적인 개념은 仁이다. 인간의 존재 근거. 인간의 본질. 본질이라는 개념에는, 본질을 인정하면 따라올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성질이 있다. 배타성과 동일성. 따라서, 구분을 긍정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유학 시스템 안에서는 구분을 한다. 촌수를 구분하고. 친하고 안친하고를 따지고. 왜? 공자 사상의 모든 것은, 仁을 보존하고 확대하는데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仁은 도덕적 자각 능력과 연관된다.

공자는, 음악은, 어떤 음악이든지 좋다고 말할까, 들을 음악과 안들을 음악이 있다고 할까? 구분을 강조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공자는, 이단을 부정할까 수용할까? 이단을 배척한다. 왜? 공자는, 기본적 사유 구조가,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름을, 개념적 활동을 긍정할까 부정할까? 긍정한다. 개념을 분명히 하자고 주장한다. 언어 활동에 긍정적이다. 이런 내용이 모두 논어에 나와있다.

46:55~62:25

그러면, 이 仁은 어떻게 생겼는가?

仁은 어디에서 가장 仁같이 발견되는가? 부모와 자식 간에. 공자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혈연적 유대감에서 출발한다.

親親仁也. 혈연적으로 가까운 사람을 더 가깝게 생각하는 그 마음. 이것이 仁에 가까운 마음이다.

혈연적 유대감을 기본으로 한 원초적 정서, 정감을 지키는 것. 이것이 인간이 도덕적으로 성장해나가는 길이라고 공자는 본 것이다.

이러한 혈연적 유대감을 기본으로, 먼 촌수에 대해 대하는 것과 가까운 촌수에 대해 대하는 것을 다르게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야 仁을 키워가는 것이라고 본 것.

그 仁은, 키워져야 하는 대상이다. 가장 높은 단계로 키워지는 상태가 있을텐데, 이것을 禮라고 한다.

禮라는 것은, 仁이라는 인간의 본질이 확대되어 가장 높은 단계까지 확대된 것이다.

"禮에 맞지 않으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움직이지도 말라."

공자는 보편적 이념을 긍정하는가 부정하는가? 보편적 이념은, 누구나 지켜야 하고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념이다. 공자는 보편적 이념을 긍정한다.

禮라는 것은 나만 지키면 되는 것인가? 누구나 지켜야 하는 것이다. 仁은 나한테만 있는가? 누구에게나 있다.

공자는, 나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특성을 단련하고 단련해서 (학습),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인 이념의 틀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구도를, 주자는, 공자 사상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 극기복례. 나의 개별성(仁)이 확대되어서, 禮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부단한 훈련 과정을 겪어야 한다. 논어 첫줄에서 그것을 學習이라고 한다. 아직 도덕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내가, 부단히 노력해서, 계속 상승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을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한다. 무게중심이 己보다는 禮에 있다. 己는 보편적인 禮로 진입해야 하는 존재이다. 도달해야 할 이상은 禮. 여기에 있는 것은 己.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 나는 여기서 지금 누려야 할 존재가 아니라, 단련시켜서 저곳으로 가야 하는 존재이다. 유학은 이곳을 꿈꾸는게 아니라, 저곳을 꿈꾸는 것이다. 무게중심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있다. 유학 시스템에서는, 가치론적으로, 내가 중요한가 우리가 중요한가? '우리'가 중요하다.

그러니까 유학 사상은 가족 중심 사상, 집단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이 궁극적인 이유는? 인간이 仁이라는 본질을 가진 존재라고 가정한 것에서.

62:25~

최진석의 장자 철학 (last edited 2021-05-12 04:02:38 by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