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막. 무와 제물론

7막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장례지냈다. 남곽자기가 책상에 기대어 앉아 하늘의 퉁소 소리를 듣다가 내뱉은 그 한마디, 오상아(吾喪我) — 내가 나를 잃어버렸다는 그 선언은, 몸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었다. 굳어버린 '나', 이름과 평판과 어제의 판단으로 빚어진 '나'를 내려놓으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자아를 장례지낸 사람은 그 다음 무엇을 하며 사는가. 세계는 여전히 거기 있다. 밥을 먹어야 하고, 말을 해야 하고, 순간마다 판단을 내려야 한다. 오상아는 도피가 아니라 다시 세계와 만나기 위한 준비였다. 장자 철학의 마지막 막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 자아를 비운 사람은 세계를 어떻게 다루는가. 그리고 그 다룸의 끝에서, 그는 결국 무엇에 가닿는가. 답은 미리 말해둘 만하다. 있는 것 같지 않은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리, 무(無)다.

세계를 다루는 자, 세계에 파묻히는 자

인간은 세계의 일부로 조용히 묻혀 있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가 삶의 질을 가른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소리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소리를 압도적으로 부리는 사람이고, 좋은 연주자는 악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악기를 지배하는 사람이다. 생활도 마찬가지다. 생활 속에 푹 파묻혀 하루하루에 떠밀리는 것과, 생활을 한 걸음 떨어져서 손에 쥐고 다루는 것은 전혀 다른 삶이다.

이 거리 두기는 등산에 비유할 만하다. 암벽에 몸을 찰싹 붙이면 오히려 미끄러진다. 발을 딛고 무게 중심을 살짝 뒤로 빼야 마찰력이 살아나고, 그래야 바위를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감성과 감각으로 세계에 밀착하는 것은 이 밀착과 같다. 편안해 보이지만 사고를 마비시킨다. 반대로 지적인 거리를 두는 것은 세계를 객관화하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세계를 더 안전하고 확실하게 다룰 힘을 준다.

우금치, 죽창과 기관총 사이

이 '다루는 능력'의 문제를 가장 참혹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근대 한국사에 있다. 1894년 음력 11월, 공주 우금치. 동학농민군 약 2만 명이 이곳에서 조선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 병력 약 2천 명과 맞붙었다. 병력 수로는 열 배 가까이 앞섰지만, 무기의 격차는 그 숫자를 아무 의미 없게 만들었다. 농민군의 손에 들린 것은 농기구와 죽창이었고, 조일연합군은 크루프 야포와 개틀링 기관총, 스나이더 소총과 무라타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결과는 학살에 가까웠다. 최소 1만 5천여 명의 동학농민군이 그 고개에서 목숨을 잃은 반면, 조일연합군의 전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기록된다. 이 패배를 고비로 동학농민운동의 동력은 급속히 무너져 내렸다.

이 사건을 여기 불러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우금치에서 스러진 것은 통계가 아니라 자기 삶의 존엄을 지키려던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죽음을 어떤 철학적 예시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이 비극이 뼈아프게 증언하는 사실 하나는 남는다. 감성적 정당성이나 도덕적 우월함은 그 자체로 세계를 다루는 능력을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것. 옳다는 확신과 그 확신을 실현할 힘은 다른 층위의 문제다. 학문과 지식, 곧 세계를 해석하고 설명하고 조직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정당함은, 냉혹한 힘 앞에서 무력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지하자원 하나 변변히 없는 땅에서 교육에 사활을 걸어 온 것도, 결국 물건을 갖는 것보다 세계를 설명하고 다루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길러내는 쪽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이 뼈아픈 교훈의 다른 얼굴이다.

궤적을 읽는 눈, 인문(人文)

세계를 잘 다루는 사람은 눈앞의 낱낱을 나열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이를 관통하는 규칙과 패턴을 읽어내는 사람이다. 야구 타자는 공 자체나 투수의 손끝을 보는 게 아니라 공이 그리는 궤적을 본다. 자동차 디자인이 각진 선에서 유려한 곡선으로 넘어간 것도 단순히 공기저항 계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시대 인간의 욕망이 이동해 간 보이지 않는 무늬를 디자이너들이 먼저 읽어냈기 때문이다.

이 무늬를 읽는 힘,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그 현상이 남긴 흔적과 궤적을 읽어내는 힘을 옛사람들은 인문(人文)이라 불렀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뜻이다. 역사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궤적을 읽는 학문이고, 문학은 그 궤적을 수사와 이야기로 승화시켜 보여주는 학문이며, 철학은 가장 높은 자리에서 세계 전체를 해석하고 다루는 추상의 체계다. 이 추상이 가장 높은 데까지 올라간 자리에서, 비로소 도(道)라는 개념이 출현한다.

기(氣)의 바다 위에 놓인 지도리, 도(道)

장자에게 천하를 관통하는 것은 단 하나, 기(氣)다. 기가 모이면 삶이고 기가 흩어지면 죽음이다. 산과 바위, 사람과 짐승,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기가 잠시 이룬 매듭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는 무엇인가. 도는 이 기의 운행을 지배하는 근본 원리이며, 동시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인식의 단계다. 도는 초월적인 저 너머의 것이 아니다. 《장자》 지북유(知北遊) 편에는 이런 문답이 나온다.

東郭子問於莊子曰:"所謂道,惡乎在?" 莊子曰:"無所不在。"
……曰:"在螻蟻。" 曰:"何其下邪?" 曰:"在稊稗。" 曰:"何其愈下邪?" 曰:"在瓦甓。" 曰:"何其愈甚邪?" 曰:"在屎溺。"
(동곽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이른바 도라는 것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장자가 답했다. "없는 곳이 없다." ……"땅강아지와 개미에게 있다." "어찌 그리 낮은 곳에?" "돌피와 피에 있다." "어찌 갈수록 더 낮아집니까?" "기와와 벽돌에 있다." "어찌 갈수록 더 심해집니까?" "똥과 오줌에도 있다.")

가장 비천하다고 여겨지는 자리까지 도가 있다는 이 대답은, 도가 현상 저 너머에 초연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상 그 안에 이미 스며들어 있다는 선언이다. 다만 도는 눈으로 볼 수도, 귀로 들을 수도 없다. 오직 가만히 생각하는 고도의 사유를 통해서만 접촉할 수 있다. 《제물론》은 이 인식이 도달할 수 있는 단계를 이렇게 정리한다.

古之人,其知有所至矣。惡乎至?有以爲未始有物者,至矣,盡矣,不可以加矣。其次以爲有物矣而未始有封也,其次以爲有封焉而未始有是非也。是非之彰也,道之所以虧也。
(옛사람의 앎에는 이르는 단계가 있었다. 어디까지 이르렀는가. 애초에 사물이란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경지, 이것이 지극하고 다한 것이어서 더 보탤 것이 없다. 그다음은 사물이 있다고는 여기되 아직 경계를 나누지 않은 경지요, 그다음은 경계는 나누되 아직 옳고 그름을 나누지 않은 경지다. 옳고 그름이 뚜렷해지는 순간, 도는 그만큼 이지러진다.)

사물이 아예 없다고 보는 무(無)의 자리, 사물은 있으나 구별을 두지 않는 자리, 구별은 하되 시비는 따지지 않는 자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비를 다투며 도가 부서지는 자리. 이 네 단계는 인간이 세계를 얼마나 성기게, 혹은 얼마나 촘촘히 갈라놓고 사는지를 보여주는 지도다. 시비를 다투는 삶에 익숙한 우리에게, 장자는 그 반대편 끝, 사물조차 아직 나뉘지 않은 자리를 가리켜 보인다.

건너가기, 그리고 무한 소급

5막에서 이미 만난 개념 하나가 여기서 다시 고개를 든다. 건너가기. 지혜란 어떤 고정된 정답에 안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생각을 스스로 부정하고 끊임없이 미지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행위 그 자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장자는 이 건너가기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새로운 각도 하나를 더 보탠다. 무한 소급이다.

有始也者,有未始有始也者,有未始有夫未始有始也者。有有也者,有無也者,有未始有無也者,有未始有夫未始有無也者。
(시작이라는 것이 있다. 아직 시작이 있지 않았던 때가 있다. 아직 시작이 있지 않았던 그때조차 아직 있지 않았던 때가 있다. 있음이라는 것이 있다. 없음이라는 것이 있다. 아직 없음이 있지 않았던 때가 있다. 아직 없음이 있지 않았던 그때조차 아직 있지 않았던 때가 있다.)

말장난처럼 들리는 이 문장이 노리는 것은 우주의 첫 순간을 정말로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시작의 시작의 시작을 캐물으며 한 걸음씩 물러설 때마다, 묻는 자의 시야는 그만큼 넓어진다. 장자는 답을 주려는 게 아니라 질문하는 힘 자체를 무한히 밀어 올리려는 것이다. 지금 가진 지식이 진리가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한 번 더 물러서는 용기, 근사지실(近死之心) —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굳어버린 마음을 버리는 용기. 그렇게 경험하지 못한 곳으로 향하는 탐험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기 영토를 넓히고 주체적인 인격으로 거듭난다. 건너가기가 5막에서는 앎과 덕과 함량의 문제였다면, 여기서는 그 건너감이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즉 무한 소급이라는 형식 자체가 곧 자유라는 사실로 완성된다.

무(無), 없이도 작용하는 것

2막에서 노자는 유와 무가 서로를 낳는다고 말했다. 유무상생(有無相生). 있음과 없음은 대립하는 두 세계가 아니라 서로를 되비추며 함께 태어나는 한 쌍이라는 뜻이었다. 장자는 이 유무상생의 통찰을 물려받되,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노자가 유와 무를 하나의 꼬임으로 묶어냈다면, 장자는 그 무를 독립된 사유의 영역으로 심화시켜, 무 그 자체를 인간이 도달해야 할 인식의 최고 단계로 끌어올린다.

중국 철학사에서 유가와 도가가 갈라지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초기 유가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인문의 세계, 곧 구체적인 통치술과 효도 같은 실천 규범에 집중했다. 도가는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무의 영역을 정면으로 다뤘다. 이 격차가 좁혀지는 데는 천 년 넘는 시간이 걸린다. 당나라 말과 송나라에 이르러 주자 등이 신유학(성리학)을 세우면서, 유가도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받아들여서야 비로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정식으로 끌어안게 된다. 도가가 무를 통해 동아시아인의 사유 수준을 얼마나 앞서 밀어 올렸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무는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음(Nothing)'이 아니다. '아직 있지 않은 것',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에 가깝다. 수학의 0이 좋은 본보기다. 7세기 인도의 수학자 브라마굽타가 체계화한 이 숫자는 그 자체로는 빈칸을 가리킬 뿐이지만, 자릿수라는 개념을 낳아 인류의 계산 능력을 무한히 확장시켰다. 0은 같은 수끼리 뺄 때 얻어지는 수이면서, 동시에 곱셈과 나눗셈 속에서 실질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기하학의 점도 마찬가지다. 유클리드는 점을 "부분이 없는 것"이라 정의했다. 현실에 점을 찍으면 반드시 면적과 두께가 생기니, 순수한 의미의 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점이 없이는 선도, 원도, 면적도 성립할 수 없다. 점은 최소한의 흔적으로만 존재하면서 기하학이라는 체계 전체를 떠받친다. 무도 이와 같다. 형체는 없지만, 그것이 없이는 있음의 세계 전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추상과 은유, 인간을 밀어 올리는 두 팔

철학이 하는 일은 결국 신비의 영역을 인간 사유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일이다. 무라는 관념의 등장은, 인간이 감각으로 확인 가능한 세계에 만족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을 꿈꾸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망원경이 발명되면서 인간의 시야가 눈의 한계를 넘어 확장되고 그것이 과학의 시대를 열었듯이, 무를 사유하는 능력은 인간이라는 종의 영토를 통째로 넓힌다. 계획과 꿈은 이 지점에서 갈라진다. 계획은 합리적 견적이 나오는, 보이는 세계의 일이다. 꿈은 다르다. 꿈에는 불가능의 냄새가 배어 있고, 그 불가능을 향해 나아가려는 열망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세계로 향하는 통로다.

이 통로를 여는 데 인간에게 주어진 장치가 둘 있다. 하나는 추상 능력이다.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본질을 뽑아내어 시선의 높이를 끌어올리는 힘이다. 다른 하나는 은유 능력이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두 대상 사이에서 아무도 보지 못한 동질성을 찾아내어 잇는 힘이다. 추상이 여럿에서 하나를 뽑아내는 상승의 운동이라면, 은유는 서로 다른 둘을 하나로 겹쳐 놓는 발견의 운동이다. 이 두 장치가 있었기에 인간은 눈앞의 사물에 붙박이지 않고, 그 사물이 가리키는 보이지 않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제물론, 모든 것을 하나의 자리에

이 모든 개념 — 상대주의, 오상아, 기, 도, 무 — 이 하나의 텍스트 안에서 만나는 자리가 있다. 《장자》 내편 가운데서도 가장 난해하기로 이름난 편, 제물론(齊物論)이다. 제(齊)한다는 것은 가지런히 하다, 같게 하다, 하나로 만든다는 뜻이다. 제물론은 그러니까 만물을 가지런히 하는 논의, 사물들 사이에 인간이 그어놓은 위계와 경계를 걷어내는 사유다.

인간이 시비를 다투는 것은 저것(彼)과 이것(是)을 갈라놓고 한쪽 편에 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것과 이것은 애초에 서로를 비추어야만 성립하는 상대적인 짝일 뿐, 어느 쪽도 절대적인 근거를 갖지 못한다. 《제물론》은 이 상대성의 한복판에 스스로 서는 자리를 도추(道樞)라 부른다.

彼是莫得其偶,謂之道樞。
(저것과 이것이 그 짝을 얻지 못하는 것, 이를 일러 도의 지도리라 한다.)

지도리는 문짝을 여닫는 회전축이다. 문 안쪽에도 바깥쪽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안과 밖을 모두 열고 닫을 수 있게 하는 중심이다. 도추에 선 사람은 저것 편에도 이것 편에도 서지 않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저것과 이것을 모두 끌어안는다. 시비의 다툼에서 완전히 물러난 이 자리에서, 장자는 마침내 이렇게 말한다.

天地與我竝生,而萬物與我爲一。
(하늘과 땅이 나와 더불어 생겨나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된다.)

오상아에서 장례지운 '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렇게 천지만물과 나란히 생겨나는 더 큰 '나'로 되살아난다. 상대주의는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시비의 경계 자체를 넘어서서 만물을 가지런히 바라보는 방법론이었던 셈이다. 기가 만물을 잇고, 도가 그 기의 운행을 다스리며, 무가 그 도의 바탕이 되고, 오상아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눈을 열어준다 — 제물론은 이 낱낱의 개념들을 하나의 문장, 하나의 호흡 속에 겹쳐 놓은 최종 정리인 셈이다.

지인(至人)의 길: 소유가 아니라 경험

그렇다면 이런 경지에 이른 인간을 장자는 무엇이라 부르는가. 소요유(逍遙遊) 편은 이렇게 답한다.

故曰:至人無己,神人無功,聖人無名。
(그러므로 이르노니, 지인은 자기가 없고, 신인은 공적이 없고, 성인은 명예가 없다.)

지인(至人)은 자기라는 관념조차 지워버린 사람이다. 신인(神人)은 자신이 이룬 공적에 매이지 않는 사람이고, 성인(聖人)은 세상의 평판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셋은 사실 한 사람의 세 얼굴이다. 무기(無己), 무공(無功), 무명(無名) — 모두 '무'가 인간에게 내려와 완성하는 삶의 형태들이다.

그런데 이 경지는 지식을 많이 쌓는다고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최진석 교수는 강연에서 자신의 책과 강의를 모두 섭렵했다는 어느 열성 독자와 KTX에서 마주친 일화를 들려준다. 그는 장자와 노자를 줄줄 외웠지만, 정작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지 못했다. 지식을 '소유'했을 뿐 '경험'하지는 못한 것이다. 소유적 삶은 지식을 장식이나 권위의 도구로 삼으며 과거의 신념 안에 그대로 갇혀 있는 삶이다. 경험적 삶은 다르다. 지식을 통해 실제로 감동하고, 그 감동이 사소한 습관과 일상의 결을 바꾸어놓는 삶이다.

지인의 길은 그러니까 거창한 데 있지 않다. 과거에 습득한 외부의 신념을 맹목적으로 붙들고 있는 대신,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신념을 스스로 새로 생산하고 필요하면 과거의 것을 미련 없이 폐기하는 것. 위대한 이론에 매몰되는 대신, 일상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구체적인 매너와 기술을 익히는 것. 공부의 목적을 관념의 증거로 삼지 않고 삶의 실제 변화로 삼는 것. 자신을 흔들어 깨우고 다른 곳으로 건너가게 하는 감동이 없는 공부는, 인간을 오히려 교활하고 오만하게 만들 뿐이다. 참된 인간은 지식을 쌓아둔 창고가 아니라, 지금도 부단히 무언가를 겪고 건너가는 중인 사람이다.

결어: 여덟 개의 막을 건너온 자리에서

돌이켜보면 이 여정은 하나의 물음을 계속 다른 얼굴로 되물어온 과정이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리던 명령이 저물고 그 빈자리에 인간 스스로 길을 새겨 넣던 순간에서 시작해, 그 길 위에서 공자는 인(仁)과 예(禮)로 인간 사이의 결을 다듬으려 했고 노자는 유무상생과 거피취차로 대립 너머의 자리를 가리켰다. 기(氣)라는 개념이 세계를 평면에서 입체로 바꾸어 놓았을 때 비로소 장자가 등장했고, 그는 개념 대신 이야기를 택해 곤이 대붕이 되어 비상하는 소요유를 그렸으며, 머무는 대신 건너가라고 했고, 함량과 덕을 쌓으라 했고, 마침내 명예도 이름도 자기 자신마저 장례지우는 오상아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 그 장례를 치른 자리에서 그는 세계를 다루는 지적인 힘을 되찾고, 기와 도가 흐르는 이 세계의 결을 읽어내고, 있는 것 같지 않지만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무에 가닿아, 마침내 저것과 이것의 경계가 무너진 도추 위에 선다. 여덟 개의 막을 건너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니 이 여정의 끝에서 장자가 남기는 것은 결론이 아니라 하나의 자세다. 어떤 지식도, 어떤 깨달음도 소유물로 붙잡아두는 순간 굳어버리고 만다. 지인은 도달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건너가고 있는 사람이며, 그 건너감을 멈추지 않는 한 그는 계속해서 자유롭다. 신의 명령에서 시작해 도(道)를 거쳐 무(無)에 이른 이 긴 이야기가 가리키는 자리도 결국 여기다 — 멈추어 선 자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 자리로 건너가고 있는 그 걸음 자체.


관련 강의: 18강~19강 — 원 강의 재생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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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의 장자 철학/다시 쓴 장자/8막 무와 제물론 (last edited 2026-07-21 23:27:07 by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