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막. 평면에서 입체로

공자는 인(仁)을 말했고, 노자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을 말했다. 한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를 물었고, 한 사람은 있음과 없음이 서로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지(去彼取此)를 가리켰다. 둘 다 깊었다. 하지만 둘 다 대답하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었다.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늙는다는 것은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더 크게 — 이 세계라는 것은 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변하는가.

공자에게도 노자에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인이든 도든,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지, 인간과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움직이는가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 그래서 이 두 철학은, 최진석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평면적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고 개별자가 태어나지도 늙지도 않는, 정지된 평면 위의 그림 같은 것이다.

이 평면에 처음으로 두께를 만들어낸 사람이 장자다. 그리고 그 두께를 가능하게 한 도구가 하나 있었다. 氣.

평면이라는 것의 정체

공자와 노자를 다시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두 사람 모두 인간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개별 인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규범이지, 이 특정한 한 사람이 어떤 몸을 가지고 태어나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여기 서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도 역시 마찬가지다. 유무상생은 있음과 없음이 서로를 낳는다는 우주적 원리이지, 그 원리 안에서 이 사람저 사람이 어떻게 구별되고 각자 다른 속도로 늙어가는가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개별자를 구별하려면 반드시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운동, 그리고 시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같은 사람이면서도 다른 상태로 놓을 수 있는 축이 있어야 하고, 나와 너를 구별해줄 어떤 범주가 있어야 한다. 노자와 공자의 언어 안에는 그 범주가 없다. 氣라는 글자 자체는 두 사람의 시대에도 존재했다 — 밥 짓는 김, 숨소리, 기세 같은 뜻으로. 하지만 그것은 아직 철학적 범주가 아니었다. 세계를 설명하는 도구로 격상되지 못한, 그저 일상어였다.

이 일상어가 철학의 중심 개념으로 올라서는 순간, 세계는 평면에서 입체로 바뀐다. 사람이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 만물이 모였다 흩어지는 것 — 이 모든 동적인 사건들을 설명할 언어가 비로소 생긴 것이다.

무엇이 바뀌었는가 — 철기, 잉여, 그리고 사적 소유

사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氣라는 개념이 철학의 무대 위로 올라오던 그 시기, 중국 사회의 밑바닥에서는 훨씬 더 물질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철제 농기구의 보급과 우경(牛耕)의 확산으로 생산력이 크게 늘어난다. 예전에는 왕이 토지와 생산물을 독점하고 나누어주는 구조였다 — 모든 것이 위에서 아래로 분배되는 시스템. 그런데 생산력이 늘면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 생겨난다. 잉여. 나눠주고 남는 몫이 개인의 손에 남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잉여가 쌓이면서, 처음에는 그저 남는 것이었던 재화가 점차 내 것이라는 관념으로 굳어진다. 사적 소유권이라는, 이전에는 없던 권리 개념이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다. 소유의 방식이 달라지면 계급의 속성이 달라진다. 계급이 달라지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 욕망의 형태가 달라진다. 그리고 욕망이 달라지면 그것을 담아낼 정치 제도 역시 낡은 틀로는 버틸 수 없게 된다.

전국시대는 바로 이런 압력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던 시기다. 기득권을 쥔 낡은 질서와, 새로 생겨난 부와 욕망을 대변하려는 세력이 충돌한다. 이 충돌 속에서 세상을 다시 설명할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氣는 바로 이 요구에 응답하며 등장한 개념이었다 — 세계가 고정된 신분과 위계로 짜인 평면이 아니라, 끊임없이 모이고 흩어지고 뒤바뀌는 입체적인 운동장이라는 것을 설명해줄 언어로서.

직하학궁, 사상이 끓던 용광로

이 새로운 언어가 다듬어진 구체적인 장소가 있다. 제(齊)나라의 수도 임치(臨淄), 성문 중 하나인 직문(稷門) 밖에 세워진 학술 기관 — 직하학궁(稷下學宮)이다.

전제(田齊) 환공 전오(田午)가 창건하고, 뒤를 이은 위왕과 특히 선왕(宣王) 대에 크게 융성했다. 사기의 기록을 따르면 전성기에는 수백 명에서 천여 명에 이르는 학자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곳의 원칙은 단순하지만 파격적이었다. 국가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고, 배우고자 하는 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며, 학자들에게는 관직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논쟁할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 국가가 학문 자체를 국가적 기능으로 여기고 후원한, 사실상 세계사에서 가장 이른 형태의 국립 아카데미 중 하나였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유가, 도가, 묵가, 법가, 음양가, 종횡가 — 전국시대를 수놓은 거의 모든 학파의 대표자들이 이 한 공간에 모여 서로의 논리를 겨루고 빌리고 뒤섞었다. 특히 노자 사상을 중심축으로 삼아 여러 학문을 융합한 흐름이 여기서 형성되는데, 이것이 훗날 황로학(黃老學)이라 불리는 사조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자리에 순자(荀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순자는 열다섯 살 무렵부터 직하학궁에서 수학했고, 훗날 이 학궁의 좨주(祭酒) — 오늘로 치면 총장 격 — 를 세 차례나 연임했다. 좨주는 본래 나이와 학덕이 가장 높은 사람에게 먼저 술을 따르게 하던 의례에서 온 말로, 그가 이 자리를 세 번이나 맡았다는 것은 그가 이 사상의 용광로에서 얼마나 깊이 담금질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흔히 유가와 법가는 가깝고 도가는 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계보는 다르게 흐른다. 노자 → 직하학궁(황로학) → 순자 → 한비자·이사로 이어지는 법가. 한비자와 이사 모두 순자의 문하에서 나왔고, 순자는 직하학궁에서 노자 사상의 깊은 영향 아래 있었다. 법가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무위(無爲)가 통치술의 언어로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가의 무위가 직하학궁을 거치며 통치 기술로 번역되어 법가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氣라는 개념 역시 이런 융합의 용광로 속에서 다듬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흔히 관자(管子)에 실린 「심술(心術)」 상·하, 「백심(白心)」, 「내업(內業)」 네 편이 이 시기 직하학궁에서 활동한 도가 계열 학자들의 저작으로 추정되며, 훗날 장자와 순자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정(精)·기(氣)·신(神) 담론의 초기 형태를 담고 있다는 논의가 학계에 있다. 이 네 편의 정확한 저자와 성립 시기는 여전히 논쟁 중인 사안이라, 단정적으로 서술하기보다는 하나의 유력한 가설로만 남겨둔다.

기, 세계를 입체로 만들다

같은 글자라도 누가, 어떤 무게로 쓰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공자와 노자의 시대에도 정(情), 기(氣), 신(神) 같은 글자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기세가 등등하다, 숨이 가쁘다, 식욕이 동한다 같은 일상적인 맥락에서만 쓰였다. 철학의 핵심 범주로 쓰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맹자와 순자, 그리고 장자에 이르러 사정이 달라진다. 심(心)과 기(氣)가 인식과 운동을 설명하는 정식 철학 범주로 격상된다. 맹자는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이라는 네 가지 마음의 실마리(사단四端)를 통해, 인간이 스스로 도덕을 완성해갈 내적 근거를 마련한다. 이것은 심(心)이라는 범주를 통해 인간의 도덕적 자기 수양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장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기(氣) 하나로 우주 전체를 설명하는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자리에 선다. 하늘과 땅, 인간과 만물이 모두 하나의 기가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지북유(知北遊)」편의 다음 구절은 이 생각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人之生,氣之聚也,聚則爲生,散則爲死。
若死生爲徒,吾又何患!
故萬物一也……故曰:通天下一氣耳。
(사람의 삶이란 기가 모인 것이다. 모이면 삶이 되고 흩어지면 죽음이 된다.
죽음과 삶이 한 무리라면, 내 또 무엇을 근심하리오!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다…… 그래서 말한다, 천하를 통틀어 하나의 기일 뿐이라고.)

이 문장 하나로 장자는 공자와 노자가 손대지 못했던 질문에 답한다.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 기가 모여서. 사람은 왜 늙고 죽는가 — 모였던 기가 흩어지므로. 그렇다면 삶과 죽음은 서로 다른 두 사건이 아니라, 같은 기가 다른 상태로 있는 것일 뿐이다. 두려워할 일이 아니게 된다.

이 지점에서 氣 개념이 갖는 철학적 가치가 분명해진다. 도(道)가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보편적 원리, 말하자면 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이었다면, 氣는 그 보편성 아래에서 개별적인 존재 하나하나가 어떻게 구성되고 움직이고 변화하는지를 설명하는 언어다. 도만으로는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왜 다르게 늙어가는지 말할 수 없다. 氣가 있어야, 개별자의 생성과 운동과 변화와 수양이라는 것이 비로소 이론적으로 성립한다. 평면에 시간과 운동이라는 두 축이 꽂히면서, 세계는 입체가 된다.

장자 이후, 2천 년의 파노라마

장자가 세워놓은 이 입체적 세계관은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뒤로 거의 이천 년에 걸쳐 형태를 바꿔가며 중국 사상사의 굵은 줄기 하나를 이루게 된다.

먼저 전국시대 중엽, 장자 자신의 시대. 그는 기 철학을 통해 우주의 구성과 변화, 그리고 인간의 생로병사를 하나의 틀 안에서 설명하는 종합적인 체계를 세운다.

그 다음은 동진(東晉) 시대, 곽상(郭象, 252?~312)의 『장자주(莊子注)』. 곽상은 왕필(王弼)과 더불어 위진 현학(玄學)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왕필이 노자를 하나의 근본(無)이 만 가지를 다스린다는 일원적 구도로 풀었다면, 곽상은 장자를 전혀 다르게 읽는다. 그는 세상 만물이 어떤 하나의 근원이나 조물주에 기대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스스로 생겨나고(自生) 스스로 이루어지며(自造) 스스로 그러하게(自然) 홀로 변화한다(獨化)고 본다. 이것이 독화론(獨化論)이다. 나와 남이 서로 기대는 관계 속에 있으면서도(相因), 궁극적으로는 그 어느 것도 다른 무언가에 종속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사유는, 개별자 하나하나를 온전히 독립된 존재로 세운다는 점에서 장자의 개별성 논리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성취로 평가받는다. 중국 고유 사상이 이룬 정점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을 더 흘려 당나라 초, 성현영(成玄英)이 등장한다. 그는 곽상의 『장자주』 위에 다시 소(疏) — 주석에 대한 주석 — 를 얹어 『남화진경주소(南華眞經注疏)』를 완성한다. 이 작업이 특별한 것은, 그가 도교의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당시 중국에 들어와 정교한 논리 체계를 완성해가던 불교, 특히 삼론종의 쌍견(雙遣)·사구부정(四句否定) 같은 사유 방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는 데 있다. 동진의 손등(孫登)이 노자 주석에서 처음 썼다고 전해지는 중현(重玄) — 유(有)에도 걸리지 않고 무(無)에도 걸리지 않으며, 그 걸리지 않음마저 다시 걸리지 않는다는, 부정을 거듭해 부정 자체에서도 벗어나는 사유 — 이 성현영에 이르러 하나의 학파, 중현학(重玄學)으로 완성된다. 도교가 불교의 정교한 논리 체계를 자기 것으로 소화해낸 사건이며, 이로써 중국 철학은 한 번 더 도약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송나라. 주돈이, 정호·정이 형제, 주희로 이어지는 신유학(성리학) — 흔히 송명이학(宋明理學)이라 부르는 이 흐름은 표면적으로는 공자와 맹자의 적통을 잇는다고 자처하지만, 그 뼈대를 이루는 형이상학적 구조는 위진남북조와 당나라를 거치며 정교해진 불교와 도교의 사유를 대폭 흡수한 결과다. 유교는 오랫동안 관료 시스템과 예제(禮制)를 지탱하는 데는 강했지만, 우주와 인간 본성의 근원을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깊이는 상대적으로 얕았다. 주희가 정립한 성즉리(性卽理)를 비롯해 성(性)·리(理)·기(氣)로 세계와 인간을 층층이 설명하는 이 구조는, 도교가 중현학을 거치며 다듬어온 형이상학적 틀을 유학의 언어로 옮겨 얹은 것에 가깝다. 이 점은 학계에서도 여러 각도로 논의되어 온 사안으로, 세부적인 사상적 전이 경로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남아 있지만, 큰 흐름으로서 도교·불교의 형이상학이 신유학 성립의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은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이해다.

이렇게 보면 장자라는 한 사람의 사유가 걸어온 길이 새삼 아득하게 느껴진다. 전국시대의 어느 이름 없는 관리에서 시작해, 위진의 현학자를 거치고, 당나라의 도교 논사를 거치고, 끝내 송나라 유학자들의 손을 빌려 유교 자체의 뼈대를 다시 짜는 데까지 이어진 것이다. 氣라는 낱말 하나가 이만한 거리를 이동했다.

다음 막으로

이제 세계는 평면이 아니다. 사람은 기가 모였다 흩어지는 존재이고, 만물은 저마다 홀로 변화하며, 삶과 죽음은 서로 다른 두 사건이 아니라 같은 흐름의 다른 국면이다. 그런데 이렇게 입체적으로 뒤바뀐 세계를, 장자는 대체 어떤 말로 풀어냈을까. 개념과 논증으로 촘촘히 쌓아올린 체계였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무엇이었을까. 다음 막에서 이 질문을 따라가 본다.


관련 강의: 5강(뒷부분)~6강 — 원 강의 재생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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