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신에서 인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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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버스와 미국의 버스
몽골 초원을 달리던 버스가 길 한복판에서 멈춰 선다. 기사는 당황하지 않는다. 공구 상자를 뒤적일 필요도 없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철사와 나뭇조각, 손에 잡히는 아무것으로나 그는 버스를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놀라운 임기응변이다. 그런데 이 기사는 평생 이 임기응변만 반복한다. 버스는 계속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고장 나고, 그는 계속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견뎌낸다.
미국의 버스 기사는 다르다. 정확히 맞는 공구가 없으면 그는 아예 손을 대지 못한다. 무능해 보인다. 그런데 바로 그 "못 견디는 성질" 때문에, 그는 그 상황에 꼭 맞는 정교한 도구를 발명해내고야 만다.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태도가 새로운 도구를,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낸다.
같은 고장 앞에서 한 사람은 견디는 능력을 발휘하고, 한 사람은 문제를 발견한다. 문명은 견디는 자리가 아니라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이건 문제다"라고 선언하는 자리에서 태어난다. 스티브 잡스가 어느 날 모두가 당연하게 손에 들고 다니던 휴대전화와 MP3 플레이어를 보며 "왜 이걸 따로 들고 다니지?"라고 물었던 것도 같은 종류의 사건이다.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던 자리에서 혼자 불편함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문명이 진화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금 삼천 년 전, 은나라와 주나라의 교체라는 낡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야 하는가. 그 대답은 이렇다 —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어떤 것, 예컨대 "내 삶의 길은 내가 만든다"는 생각조차도, 한때는 아무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하늘이 모든 것을 결정하던 시절, 인간은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그 그림자가 스스로 주어가 되기까지, 인류는 지금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만큼 크고 오랜 혼란을 통과해야 했다. 장자를 이해하려면, 장자가 태어나기 이전에 무너진 것이 무엇이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감각을 이기는 것이 지적인 것이다
지구는 평평해 보인다.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도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감각이다. 지구가 둥글고 스스로 돈다는 것은 감각을 배반하는 지적 활동의 결과다. 15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사유, 17세기 망원경이라는 도구는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질서를 붙잡아냈다. 지적이라는 것은 감각과 본능을 없애버리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이겨내고 확장하는 일이다. 배고픈 사람이 먹을 것을 양보하는 순간, 그는 본능을 이기고 더 인간다운 자리로 넘어간다. 그것이 지적 활동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 "이겨냄"이 집단적으로, 극적으로 일어난 순간이 있다.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6세기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말한 사건이 그렇다. 중요한 것은 '물'이라는 답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신탁이나 믿음에 기대지 않고, 오직 자기 생각만으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다는 그 형식이다. 세계를 해석하는 주도권이 신에게서 인간으로 넘어온 사건. 동양에서는 이 사건이 훨씬 더디게, 그러나 훨씬 더 큰 사회적 격변을 동반하며 일어났다. 그 격변의 이름이 은주 교체이고, 그 격변의 끝에서 태어난 것이 도(道)라는 개념이다.
불에서 시작된 생각
인간이 불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음식을 익혀 먹게 되었고, 턱뼈는 얇아지고 이빨은 작아졌다. 씹는 데 쓰던 에너지가 남았고, 그 에너지는 뇌로 갔다. 구강 구조가 바뀌면서 정교한 발음, 정교한 언어가 가능해졌다. 언어를 갖게 된 인간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베끼는 대신,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는 일을 시작한다. 동굴 벽의 들소를 세밀하게 그리던 손이, 점점 선 몇 개로 압축된 기하학적 도형을 그리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그림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사물에서 본질을 뽑아내고 나머지를 버리는 능력, 곧 추상화와 분류(classification)의 능력이 여기서 시작된다.
인간은 이 분류하는 능력으로 자기 자신도 분류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와 같은 부류인가? 동양 사회가 찾아낸 첫 번째 대답은 혈연이었다. 같은 피를 나눈 자들이 하나의 무리를 이룬다. 그런데 혈연만으로는 부족했다. 왜 하필 이 혈통이 다스려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혈연을 넘어서는 더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근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인간은 신을 발명했다.
상제, 하늘의 코드
기원전 1600년 무렵 세워진 은나라는 인간과 세계를 설명하는 데 단 하나의 코드를 썼다. 上帝, 상제다. 오늘날 발굴된 은허의 갑골문 수만 점 가운데 대부분은 전쟁의 승패, 농사의 풍흉, 왕의 사소한 거동에 이르기까지 신에게 묻는 내용이다. 거북의 배딱지나 짐승의 어깨뼈에 홈을 파고 불로 지져서, 갈라지는 균열의 모양으로 신의 뜻을 읽어냈다. 국가의 중대사부터 왕의 하루 일과까지, 모든 판단의 최종 근거는 상제였다.
이 시대의 인간은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신의 뜻을 받아 적는 존재였다. 상제가 곧 하늘이고 명령이었으며, 인간에게는 그것을 묻고 따르는 일만 남아 있었다.
은나라는 왜 망했는가
여기서 최진석 교수가 묻는 질문이 있다. 은나라는 하늘의 통치를 받던 나라다. 상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나라, 그렇다면 그 나라는 마땅히 영원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은나라를, 주나라가 멸망시켜버렸다. 신이 세운 나라가 무너진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모순이다. 상제가 다스리는 나라가 망했다면, 상제가 틀렸거나, 상제의 뜻이 바뀌었거나, 둘 중 하나를 설명해야 한다.
주나라가 찾아낸 답은 이랬다. 은나라에 덕(德)이 사라졌기 때문에 하늘의 뜻이 주나라로 옮겨왔다는 것. 《상서》 채중지명(蔡仲之命) 편에는 이 논리를 압축한 문장이 전한다.
皇天無親,惟德是輔。民心無常,惟惠之懷。 (하늘은 편애하지 않으니 오직 덕 있는 자를 돕는다. 백성의 마음은 일정하지 않으니 오직 은혜로운 자를 그리워한다.)
이 한 문장이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하늘은 더 이상 무조건적으로 한쪽 편만 드는 존재가 아니다. 하늘은 공정하다. 다만 그 공정함이 작동하는 조건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덕의 유무다. 덕이 있으면 하늘의 뜻이 임하고, 덕이 사라지면 하늘의 뜻도 떠난다. 하늘의 뜻이 인간 하기 나름에 따라 움직이게 된 것이다.
덕이라는 발명, 예라는 절차
이것이 왜 혁명적인 사건인가. 은나라에서는 세계를 설명하는 코드가 상제 하나였다. 주나라에 와서 그 코드가 둘로 늘어난다. 上帝가 天으로 바뀌고, 그 天 아래 德이라는 새로운 항목이 생겼다. 신은 여전히 저 위에 있지만, 이제 신과 인간 사이에는 인간의 몫으로 채워야 할 자리가 생긴 것이다. 신을 움직이는 힘의 일부가 인간에게 넘어왔다. 인간의 지위가, 인간의 책임이 한 단계 상승한 순간이다.
그렇다면 이 덕은 어떻게 갖추는가. 그 답이 禮, 예다. 예는 신과 소통할 수 있을 만큼 정갈한 마음을 준비하기 위한 정밀한 절차였다. 제사를 지내는 순서, 몸가짐, 마음가짐 하나하나가 인간 내면의 덕을 빚어내는 도구였다. 후대에 예가 형식적 규범, 사회 질서의 문법으로 확장되지만, 그 뿌리에는 이렇게 신을 감동시키기 위한 인간의 정성이 놓여 있었다.
이 시대의 철학적 범주는 그래서 道와 德, 두 기둥이었다. 철학에서 범주란 집을 떠받치는 기둥과 같아서, 그것을 빼면 그 체계 전체가 무너진다. 헤겔에게는 이성이, 포이어바흐에게는 물질이, 프로이트에게는 욕망이, 데카르트에게는 물질과 정신이, 플라톤에게는 이데아가 그런 기둥이었다. 《주역》은 음과 양이라는 두 기둥으로 세계를 설명했다. 그리고 노자의 시대는 도와 덕, 이 두 글자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다. 그래서 그의 책 이름이 《도덕경》이다. 오늘 우리가 쓰는 "도덕"이라는 말, 곧 윤리나 규범을 가리키는 그 단어와는 관련이 없다. 여기서 도와 덕은 세계를 지탱하는 철학적 범주의 이름이었다.
철기, 세상의 뼈대를 바꾸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시점에, 신의 자리에 이런 균열이 생겼을까. 사상은 허공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은 물질적 토대에 크게 좌우된다.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는 경제적 기반과 상공업의 발전이 결정적이며, 물질 문명을 소홀히 하면 인간과 사회의 진화는 균형을 잃는다. 이 시기 물질 문명의 이름은 철기였다. 철이 산업에 투입되면서 계급과 정치 구조, 그리고 세계관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대를 짚어보면 이렇다. 하나라 다음이 은나라(기원전 1600년 무렵 건국), 그다음이 주나라(기원전 1046년 무렵 건국)다. 지금으로부터 삼천 년 전의 이야기다. 은나라를 대표하는 유물이 갑골문이라면, 주나라를 대표하는 개념은 방금 살펴본 덕이다.
주나라는 다시 두 시기로 나뉜다. 서주와 동주다. 중국 왕조는 대개 서북쪽 이민족의 위협에 시달렸다. 건국 초기 힘이 왕성할 때는 서쪽 장안 지역에 수도를 두고 이민족을 밀어냈지만, 국력이 쇠하면 방어가 어려워져 수도를 동쪽으로 옮기곤 했다. 한나라의 서한과 동한, 진(晉)나라의 서진과 동진이 같은 패턴이다. 주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서쪽 이민족 견융(犬戎)의 침입으로 기원전 771년 무렵 수도 호경이 위협받자, 이듬해인 기원전 770년경 동쪽 낙읍(낙양)으로 천도한다. 이 천도를 기점으로 그 이전을 서주, 이후를 동주라 부른다.
서주 시대는 나라가 잘 나가던 때다. 질서가 유지되고 산업이 번창하며, 계급이 안정되어 뒤틀림이 없었다. 이 안정을 떠받치던 것이 세 겹의 이분 구도였다.
- 군자(君子) — 소인(小人): 계급의 구도
- 천자(天子) — 제후(諸侯): 정치의 구도
- 天 — 人: 가치관의 구도
각 구도의 앞자리가 뒷자리를 다스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동주로 접어들면서 이 구도가 흔들린다. 철기가 산업에 투입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무렵, 춘추 말에서 전국 초에 걸친 시기다. 철제 농기구는 땅을 더 깊이 갈아엎을 수 있게 했고, 개간을 쉽게 만들었으며, 토지의 생산력을 크게 끌어올렸다. 공동으로 경작하고 그 수확을 나누던 정전제(井田制)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조세는 점차 현물이나 정해진 액수를 걷는 방식으로 바뀌어갔다. 그러자 예전에는 땅에 매여 있던 사람들이 토지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이 자유가 상업과 공업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소인이 강해지고 군자는 약해졌다. 제후가 강해지고 천자는 약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 강해지고 하늘의 권위는 약해졌다. 원래 땅을 점령하고 세금을 걷던 지배자를 가리키던 "군자"라는 말이, 점차 스스로를 수양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옮겨간 것도 이 흔들림의 흔적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 "차이를 인정하며 조화를 이룬다"는 이 말도, 실은 상승하려는 소인을 억누르고 각자의 신분을 지키려던 군자 쪽의 논리가 배어 있는 표현이었다.
인간이 겪은 가장 큰 혼란
동주는 다시 앞뒤로 나뉜다. 앞부분을 기록한 역사책이 《춘추》이고, 뒷부분을 기록한 역사책이 《전국책》이다. 그래서 이 시대 전체를 춘추전국시대라 부른다. 여러 학자들은 인류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하고 큰 혼란을 인간이 이 시기에 겪었다고 말한다. 서주를 지탱하던 세 겹의 구도, 군자-소인, 천자-제후, 天-人이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어느 것 하나 안정된 것이 없었다.
이 혼란 한복판에서, "인간은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예민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노자, 공자, 묵자. 초기의 철학자들이다. 이들은 더 이상 상제나 천명에 기대어 답을 구하지 않았다. 하늘에게 물어서 얻는 답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생각으로 만들어내는 답을 찾기 시작했다.
도(道), 인간이 만든 길
하늘이 내리는 명령을 받아 살던 인간이, 이제 그 하늘의 자리에 道를 놓기 시작한다. 인간을 벗어난 어떤 능력에도 기대지 않고, 오직 인간만의 능력으로,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철학은 두 개의 기둥을 세운다. 인간이 가야 할 길, 道. 그리고 그 길을 걷기 위해 인간이 갖추어야 할 소양, 德. 앞서 살펴본 주나라의 덕 개념이 여기서 다시 등장해, 이번에는 신을 향한 정성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완성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를 넓혀간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불을 다루며 뇌가 커지고, 도형을 그리며 추상하는 법을 배우고, 혈연으로 무리를 나누고, 상제를 세워 그 무리에 궁극의 근거를 부여하고, 덕을 발견해 신을 움직일 여지를 인간 쪽으로 가져오고, 마침내 철기라는 물질의 힘이 낡은 신분 구도를 깨뜨리자 그 빈자리에 인간 스스로 道라는 이름의 길을 그려 넣는다. 자의식의 좌표가 한 단계씩, 그러나 쉼 없이 상승해온 과정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신이 사라진 자리에 인간이 떠맡아야 했던 책임의 이름이라는 사실이다. 신이 물러난 자리는 편안한 빈터가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도 대신 답해주지 않는, 감당해야 할 공백이다. 노자와 공자, 그리고 조금 뒤늦게 등장하는 장자는 모두 이 공백 앞에 선 사람들이었다.
이제 노자와 공자, 두 사람이 이 공백 앞에서 각자 어떤 길을 그렸는지 살펴볼 차례다.
관련 강의: 1강~4강 (앞부분) — 원 강의 재생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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