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opherAlexander 의 대표 저작 중 하나.


14장에서 저자와 지타가 대화를 나누면서 여관에 대한 패턴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건축물이 건축주 - 그곳에서 살 사람들의 의견과 니즈를 반영하고, 그들이 설계와 시공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그들이 집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소프트웨어 디자인 패턴은, 일종의 시공 기법인 것 아닌가? 패턴언어는, 그 물리적 공간의 특성이 거주민에게 영향을 주는건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UI가 더 소프트웨어의 패턴언어로서 더 적절한 것 아닐까? 옵저버 패턴을 쓰던, 팩토리 패턴을 쓰던, 유저에게 무슨 영향을 미칠까?

패턴언어가 선택되고 적용되는 과정을 유저와 함께 해야 한다.

무위로, 자연스레, 그 특성이 몸에 체득되면, 의도적인 계획을 따르지 않더라도 점진적 설계 과정에서 자연스레 그 특성이 발현될 것.

국내에 나온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관련 논문을 보는데, 다들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다. 건축물 몇개 선정해서, 패턴언어 250여개 중에 몇개나 구현되어 있나 그런거 퍼센티지나 구하고. 이거 많이 구현한다고 좋은게 아닌데. 목적에 맞게 스토리를 구성하고, 그 패턴들 중에서 몇 개들을 선택해서 시퀀스를 구성하고 하는게 핵심인데.

전에 NTIS에서 온톨로지 브라우저 만들 때, 디자이너분과 옆에 나란히 앉아서 큰 틀에서부터 세부적으로 분화하며 즉석에서 디자인 결정들을 잡아간 적이 있는데, 그 때 느낌이 흡사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했던 것 같다.

완전히 동작하지 않는, 부분부분을 하나씩 덧붙여가는게 아니라, 전체를 엉성히 그리고, 점점 분화하면서 세분화해간다는 얘기가, 내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해보였다.

내가 요즘 느꼈던 저항감이, 죽은 패턴, 죽은 공간에 대한 느낌에서 비롯된 반발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옭죄고, 억지스러운 규칙들이 적용되는게, 본능적 반발감을 불러일으킨게 아닐까?

'22장 건물군 설계하기'에서 나온, 병원 건축 설계 일화도 인상적이었다. 실제 유저와 대화하면서 설계를 진행하는 과정은 꽤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어느 부분이었던가, '그냥 논의를 하자고 하면 잘 안된다. 그러나 사람들 안에 같은 패턴 언어가 구축되어 있다면, 그 패턴 언어를 기반으로 하여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냥 막무가내로 '대화로 풀면 된다'라고 해서 잘 안되는 경우에 대한 좋은 설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계도를 그리지 않고, 대지 위에서 직접 상상하면서, 그 패턴과 설계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느껴가면서 설계를 진행한다는 것도 매우 인상깊었다. 그리고, '진짜 이게 가능해?'라는 생각이 곧이어 들었다.

심지어 시공 - 건축되는 과정 - 도 점진적으로 하면서 현장의 감각을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 그렇지 않으면 다시 생명을 잃게 된다고 -, 그 부분은 선뜻 동의가 안된다. 정말 가능할까? 나무 쐐기로 영역표시 하고, 기둥 세우고, 얇은 나무판으로 면을 만들고 콘크리트 부어서 층을 만들고. 이걸 할 수 있다고? 그리고, 저렇게 시공하는 업자가 있을까?


지난주에 문득 ChristopherAlexander의 The Timeless Way of Building (번역서: 영원의 건축)을 사서 읽었는데, 꽤 감명깊어서, OO님에게도 읽어보시길 권해보고 싶어요.

책 내용이 좀 선문답 같은 (심지어 포맷도 도덕경 스타일로 쓰여진…) 형태라서, 좀 뜬구름 잡는 느낌이 처음에는 드는데, 조금씩 알렉산더가 말하고자 하는게 뭔지 반복적으로 계속 들으면서, 조금씩 어렴풋하게 형태를 갖춰가는 과정이 신기했어요.

애자일에서 말하는, 고객 참여, 점진적인 설계(piecemeal growth) 등도 나와있고요. 당장은 손에 잡히지 않아도 무언가 저런게 있구나… 하는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소프트웨어 설계에 영향을 주었고, 특히 디자인 패턴이라는게 탄생하도록 영감을 주었다는게 이런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한 지금의 디자인 패턴, 아키텍처 패턴이, 알렉산더의 패턴 언어를 충분히 구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히려 디자인 패턴보다는, 애자일 철학의 원형을 보여주는 내용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이 책이 배경 철학에 대한 책이라면, 실제 알렉산더가 일했던 모습을 스케치한 내용들을 좀 읽어보고 싶은데, 국내에는 책이 (원서조차도) 없네요.

되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몇 군데 있는데, 계속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다가, 실제 사례를 얘기하는 두 부분이 있어요. 첫번째 부분은 친구에게서 새로운 패턴을 추출해내는 장면을 스케치(14장. 지타와의 대화)했는데, 그 부분도 인상적이었고요. 더 인상적이었던건, 실제 이런 철학을 기반으로 클라이언트와 설계를 진행하는 내용(22장. 건물군 설계하기)이었어요.

병원 - 클리닉 - 을 설계하는 건이었는데, 병원장과 의사들과 직접 미팅하면서, 패턴들을 소개하고, 그 병원에 맞는 패턴들도 몇 가지 더 고안해내면서, 이를테면 유저들과 직접 설계를 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전문가가 '자, 이제 이것에 기반해서 나머지는 제가 채워오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아요. 그리고, 실제로 대지에 나가서 말뚝을 박고 실을 묶으면서, 현장의 느낌이 설계 과정에서 생각했던 것과 부합하는지 맞추고요. 그 과정에서, 설계를 종이에 그리지 말라고 해요. (물론, 모든걸 다 기억할 순 없을테니, 기록은 했겠지만, 평면도를 그린다거나 하는 등의, 종이로 설계를 하지 않는다는 뜻 같아요.). 그리고, 시공도 그와 같은 과정으로 해야 한다고 말해요. 업자에게 맡기는게 아니라. 이 사례 - 클리닉 - 에서는, 이후 세부 설계를 설계사에게 맡겼더니, 공간이 죽었다고 얘기해요. 그게 자기 실수였다고. 끝까지 직접 했어야 하는데.

그 설계를 했던 일주일간, 병원장과 의사들이 엄청나게 설레였던 시간이었다고 해요. 그리고 병원장은, 그 때 말하길, 자기가 이렇게 설레였던 경험은 5년만에 처음이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와, 이런게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정보를 많이 구할 수 없고, 웹상의 단편적인 정보들만 좀 구할 수 있는데, 실제 그의 건축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웹문서가 몇개 있네요.

이런 과정을 보면, 소프트웨어에서 알렉산더의 철학을 아직 모두 흡수하지는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장별 요약

영원의 방식

한 건물이나 마을의 생명력은 영원의 방식을 얼마나 충실히 따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1. 이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우리 자신으로부터 질서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이것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억누르지만 않는다면.

특성

영원의 방식을 찾으려면 먼저 무명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2. 인간의 삶과 정신, 한 마을과 건물 그리고 자연 상태의 중심에는 어떤 특성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특성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3.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특성을 추구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탐색이며 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 순간과 상황을 탐색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진실하게 살아있는 순간이다.

4. 건물과 마을에 내재된 이 특성을 정의하려면 먼저 모든 장소는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패턴에 따라 고유한 성격이 형성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이런 사건 패턴들은 공간상 항상 기하학적 패턴과 맞물려 있게 마련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사실 각각의 건물과 마을은 궁극적으로 공간상의 이러한 기하학적 패턴을 통해 만들어진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들이 건물과 마을을 구성하는 원자와 분자이다.

6. 건물과 도시를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패턴은 살아 있을 수도, 죽어 있을 수도 있다. 패턴들이 활기차게 살아 있다면 우리 내면의 긴장이 누그러져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패턴들이 죽어 있다면 우리는 내면의 충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7. 하나의 방, 하나의 건물, 하나의 도시에 살아 있는 패턴이 많이 있을수록 그곳은 완전한 장소가 되어 활력이 더 넘치고, 더 빛나고, 자기 보존 능력이 더 견고해진다. 이것이 무명의 그 특성이다.

8. 그리고 건축물이 이런 활기를 띠게 되었을 때, 그것은 자연의 일부가 된다. 건물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만물은 사라진다는 사실에도 바다의 물결이나 풀잎처럼 끊임없는 반복과 변주의 작용을 받으며 창조된다. 이것이 바로 특성 그 자체다.

관문

무명의 특성에 도달하려면 그 관문 역할을 할 살아 있는 패턴 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9. 건물과 도시에 내재하는 무명의 특성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인 활동에 의하 간접적으로 천천히 생성되는 것이다. 마치 꽃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씨앗에서 서서히 생성되는 것처럼.

10. 사람들은 내가 패턴 언어라고 부르는 언어를 이용해서 자신이 살 집의 형태를 구상할 수 있고, 또한 수백 년 동안 그렇게 해왔다. 패턴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새롭고도 개성 있는 건물을 무한히 만들어낼 능력을 준다. 이것은 마치 일상적인 언어가 사람들에게 무한한 문장을 만들어낼 능력을 주는 것과 같다.

11. 이런 패턴 언어들은 마을이나 농촌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건축 행위는 모종의 패턴 언어가 총괄하며, 세상의 패턴들이 그 자리에 존재하는 이유는 오로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이 그것들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12. 그뿐이 아니다. 패턴 언어는 도시와 건물의 형태 뿐 아니라 그 특성에도 영향을 준다.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엄한 종교 건축물의 생명력과 아름다움까지도 그것을 지은 사람들이 사용한 언어에서 나온다.

13. 하지만 오늘날 언어는 소멸했다. 아무도 언어를 사용하지 않기에, 그것들을 심오하게 해주던 방식도 무너져버렸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 살아 있는 건물을 짓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14. 공동으로 사용하는 언어, 살아 있는 언어를 다시 얻으려면 먼저 깊이 있는 패턴, 생명을 만들어내는 패턴들을 발견해야 한다.

15. 그렇다면 우리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이러한 패턴들을 경험을 바탕으로 시험하면서 점차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패턴들이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감지함으로써 그 패턴이 우리 주변 환경을 살아 있게 만드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아주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다.

16. 살아 있는 패턴을 발견하는 법을 알아냈다면, 그 다음에는 건축 작업에 필요한 언어를 직접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언어의 구조는 개별 패턴들을 서로 연결한 망으로 창조된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패턴들이 어느 정도의 완전함을 만드는가에 따라 이 언어에 생명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17. 그리하여 서로 다른 건물을 위해 만든 각각의 언어들을 이용하여 우리는 마침내 그보다 훨씬 큰 구조물, 끊임없이 진화하는 구조들의 구조, 즉 도시의 공용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이 관문이다.

방식

일단 우리가 관문을 지었다면, 우리는 그곳을 통과하여 시간을 초월한 건축법을 행할 수 있다.

18. 이제 우리는 수천 가지의 창조적 활동을 통해 풍부하고 복잡한 도시의 질서가 실현되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일단 공동의 패턴 언어를 확립했다면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활동을 통해 도로와 건물들을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언어는 씨앗과 같이 유전적인 시스템이어서 우리가 하는 수백만의 작은 활동들에 전체를 구성하는 힘을 부여한다.

19. 이 과정에서 각각의 건축 행위는 공간이 분화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미리 만들어진 부속품들을 조합하여 완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배아의 발달처럼 전체가 부분들보다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에 분할을 통해 부분들을 생성시키는 일종의 심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20. 설계는 한 번에 패턴 하나씩 단계별로 진행된다. 각 단계는 하나의 패턴에만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결과물의 생명력은 각 단계에서 어느 정도의 생명력이 부여되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21. 개별 패턴들을 순서대로 구현해가면서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자연의 특성을 지닌 완전한 건물이 문장처럼 쉽게 구체화될 것이다.

22. 마찬가지로 한 집단을 이루는 사람들은 공동의 패턴 언어를 따름으로써 마치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더 큰 공공건물들을 생각해낼 수 있다.

23. 일단 이런 방식으로 건물을 생각해냈다면, 그 건물은 땅에 간단한 표시만 해가면서 곧바로 지을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공동의 언어를 사용하되 그림은 그리지 않고 직접 지을 수 있는 것이다.

24. 그 다음에는 이전에 지은 결과물을 보수하거나 확장하기 위해 몇 가지 건축 작업을 하게 되는데, 그 결과 단 한 번의 건축 행위로는 이룰 수 없는 더 크고 더 복잡한 전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25. 마침내 공동의 언어라는 틀 안에서 수백만 번의 개별 건축 작업이 협력하여 살아 있는 마을을 만들어낸다. 통솔하는 사람은 없지만 뜻밖에도 온전하게 살아 있는 마을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에서 유가 생겨나듯 무명의 특성이 서서히 떠오르는 과정이다.

26. 그리고 완전함이 부상하면서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변치 않을 특성, 영원한 건축법에 이름을 부여하는 그 특성이 나타날 것이다. 이 특성은 형태학상의 구체적인 특성이며, 정확하고 정교해서 살아 있는 건물이나 도시에는 언제나 이 특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무명의 특성이 물리적인 형태로 건물들에 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원한 방식의 핵심

하지만 시간을 초월한 그 방식은 완결되지 않고 무명의 그 특성을 완벽하게 실현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 관문을 떠날 때에야 가능하다.

27. 사실, 이 영원한 특성은 결국 패턴 언어와 아무 관련이 없다. 언어, 그리고 언어에서 비롯된 방식들은 처음부터 우리 안에 있는 근원적인 질서를 이끌어낼 뿐이다. 언어와 방식은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그리고 훗날 우리가 거듭 발견하게 될 것을 상기시킬 뿐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머릿속의 관념과 의견을 버리고 우리 내면에서 떠오르는 것을 정확히 실행에 옮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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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TheTimelessWayOfBuilding (last edited 2021-06-29 01:14:20 by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