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dhilMullainathan, EldarSharfir, Scarcity: Why having too little means so much.
결핍의 경제학: 왜 부족할수록 마음은 더 끌리는가.
서문
그렇잖아도 시간이 부족한데, 부족하다고 한탄하는데 시간을 낭비해야 하다니! 엘다는 이 역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는 계획을 묘사하는 센딜은 역설을 부분적으로밖에 알아채지 못했다.
센딜은 우선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생각이다. 예전에 이미 했던 약속들은 지켜져야 했으므로 새로운 약속을 아예 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제안이나 요구는 거부할 참이다. 또 기존의 프로젝트들을 꼼꼼하게 챙겨서 서둘러 끝내고 더는 지연시키지 않으리라. 그러면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은 통제가 가능한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고, 마침내 이런 긴축과 내핍이 결실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새로운 프로젝트들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었다. 물론 그때는 예전과는 다르게 정말 신중하게 일을 처리할 참이고 무슨 일이든 간에 꼼꼼하게 따져본 뒤에야 수락하리라.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센딜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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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대로 그 장은 '놓쳐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좋았고' 우리는 그 작업을 하겠다고 수락했다. 그리고 그 수락은 일찍이 예상했던 것처럼 실수였다. 우리는 그 원고를 급하게 써야만 했을 뿐만 아니라 마감기한도 어겼다.
숀과 센딜 두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두 사람 다 결핍 효과 (effect of scarcity)를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결핍(scarcity)을 어떤 것이든 간에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적게 가지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센딜은 곤경에 처해서 어쩔 줄 몰랐다. 해야 할 일을 모두 다 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한편 숀은 지불해야 할 청구서는 많았지만 그 많은 돈을 모두 내기에는 가진 돈이 형편없이 적어서 쪼들린다고 느꼈다. 이런 공통점으로 두 사람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까? 과연 결핍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비슷한 행동을 하도록 이끌었다고 볼 수 있을까?
비만 문제 역시 결핍에서 비롯된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본인이 익숙하던 식사량보다 적은 양을 섭취해야 한다. 즉 칼로리라는 예산을 긴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결핍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결핍은 우리의 정신을 사로잡는다. 배고픈 사람들이 오로지 음식만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는 어떤 종류의 결핍을 경험하든 간에 그때마다 그 결핍에 매몰되고 만다. 아울러 정신은 충족되지 않은 필요성을 자동적으로 또 강력하게 지향한다. 배고픈 사람에게 그 필요성은 허기를 달래줄 음식이고, 바쁜 사람에게 그 필요성은 빨리 끝낼 필요가 있는 어떤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돈에 쪼들리는 사람에게 그 필요성은 이번 달치 방세일 수 있고, 외로운 사람에게 그 필요성은 마음을 함께 나눌 동반자이다. 결핍은 어떤 것을 매우 적게 소유할 때의 불쾌함만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초래한다. 결핍은 사람의 사고방식을 바꾸어놓는다. 결핍은 사람의 정신에 스스로를 무겁게 짐 지운다.
결핍학의 편익은 무엇인가?
당신이 직장에서 일을 하는 시간은 동일하게 주어졌지만, 그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은 언제나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넘쳐난다. 하지만 한 경우에는 결핍, 즉 시간의 유한성을 예리하게 인식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설령 그런 결핍을 느낀다 해도 그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실체일 뿐이다. 결핍감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실체와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어떤 일을 완수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나 돈이 필요할까?' 혹은 '저것을 구매하는 행위는 얼마나 중요할까?' 등과 같이 문제가 되는 어떤 것을 인지하는 우리의 주관적인 인식(subjective perception) 역시 결핍감을 초래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느끼는 이런 욕망들은 개인이 속한 문화와 성장과정, 그리고 심지어 유전적 특질에 의해서 형성된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 논의의 대부분을 제외하는 대신 개인의 선호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결핍의 논리와 결과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다시 말하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지나치게 적게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 사람의 정신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또 그렇게 일어난 일이 그 사람의 선택과 행동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결핍은 어떤 정신적 경향(mindset)이기도 하다. 결핍이 주의력을 사로잡으면 우리의 사고방식도 바뀐다.
우리는 정신능력(mental capacity)을 직접 측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신능력을 '대역폭(bandwidth)'이라고 부른다. 즉,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을 내리는 데 영향을 주는 핵심적인 자원인 유동성지능(fluid intelligence)을 측정할 수도 있다. 또 사람이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데 영향을 주는 핵심적인 자원인 실행제어 기능(executive control function)을 측정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결핍이 어떤 사람의 대역폭에 속하는 이 모든 요소들의 용량을 축소한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통찰력이 부족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생각을 하지 않고 또 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미치는 효과는 자못 심대하다.
우리가 내린 결론으로는, 온갖 형태의 결핍은 정신능력의 축소라는 동일한 어떤 현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대역폭(정신능력)은 행동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것이 좁아지면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초래된다.
이 과정 속에서 결핍이 영속화된다는 것이다. 센딜과 숀이 덫에 걸려서 혹은 늪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결핍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덫을 만든다.
이런 논지를 가지고 있으면, 가난한 사람들이 왜 계속 가난하고, 바쁜 사람은 왜 계속 바쁘며, 외로운 사람은 왜 계속 외롭고,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왜 그렇게 자주 실패를 하는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이 책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다. 결핍은 사람의 주의력을 사로잡으며 결핍이 제공하는 편익, 즉 절박한 필요성을 좀 더 잘 제어한다는 것은 협소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가 치러야 할 결핍의 대가는 매우 크다. 당연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다른 일들을 무시하게 되고, 일상생활을 할 때도 훨씬 효율적이지 못한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결핍이 우리의 행동을 규정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어떤 놀라운 결과들을 알려준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인 결핍을 어떻게 제어해야 할지 알려주는 한 줄기 새로운 빛이 될 것이다.
당신을 초대한다
제 1부. 결핍이 우리를 사로잡는 순간
1장. 몰입하거나 무시하거나 - 집중과 터널링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기량을 연마해 온 요리사였지만 사실 이 요리사의 대표적인 요리는 두 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의 극심한 압박 속에서 탄생했던 것이다.
물론 그녀의 튀김 두부 요리는 무에서 창조된게 아니었다. 이런 종류의 창의성 폭발은 여러 달 혹은 여러 해 동안 각고의 노력과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간제한이라는 압박이 정신을 집중하게 만들었고, 이전의 노력들을 당장 급한 어떤 결과물로 압축해내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결핍을 이야기할 때면 어떤 비참한 결과를 연상한다. 아만다 코엔의 경험은 결핍의 또 다른 측면을 입증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측면으로서, 결핍이 우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사실 사람들은 어떤 요소들이 부족할 때, 그리고 무언가에 제한을 받는다고 느낄 때 멋진 성과를 거두며 성공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아만다 코엔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자기가 준비했던 비장의 아이디어들을 모두 동원해서 단 하나의 위대한 요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 이론으로 보자면, 결핍이 정신을 사로잡을 때 결핍은 우리가 가진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주의력을 집중시킨다. 이 말은 결핍이 비록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긴 하지만 어떤 이득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장에서는 우선 이런 이득을 먼저 설명한 다음에 우리가 그 이득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결핍이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실패로 끝나고 마는지 살펴볼 참이다.
너무 늦었다 싶을 때 가장 잘 작동한다
몇몇 사람들은 회의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하지만 조직행동 분야의 선도적인 연구자인 코니 저시크(Connie Gersick)는 이런 회의를 연구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이런 회의들은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어떤 한 가지 점에서는 동일했다. 하나같이 모두 집중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고, 추상적이고 겉도는 이야기만 나오며, 대화는 툭하면 엉뚱한 곁가지로 치닫기 일쑤였다. 요지는 단순한데도 복잡한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정리되고, 의견은 분분하고 합의되는 내용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으며, 쓸데없이 세부적인 사항들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그런데 회의가 중간쯤 진행된 시점에서 반전이 시작된다. 저시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간 궤도 수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회의를 진행하는 집단은 시간이 점점 흘러가고 있으며 상황이 점점 심각해짐을 깨닫는다.
이 사람들은 합의된 의견을 이끌어내고, 꼭 필요한 세부적인 사항들에 집중하며, 쓸데없는 잔가지들을 쳐내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회의 시간의 후반이 되어서야 거의 언제나 구체적인 성과를 낳는다.
중간 궤도 수정은 결핍이 정신을 사로잡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면 사람들은 집중을 한다.
여러 심리학자들이 좀 더 통제된 실험을 통해서 마감시한이 보장해 주는 이득을 연구해왔다.
마감시한은 생산성을 높이는데 그치지 않는다.
심리학자 제이미 커츠(Jaime Kurtz)는 대학교 4학년 학생이 이 마감시한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관찰하고 연구했다. ... 커츠는 이 학생들 절반에게 대학생활이 여섯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식으로 마감시한을 제시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여섯 달씩이나 남았다는 식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결핍성 인식상의 이런 차이가 학생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관리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도록 만들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낀 학생들은 대학생활의 모든 활동에 열심히 참가하며 하루하루를 좀 더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들은 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보고했다. 아마도 대학교가 제공하는 것을 많이 즐겼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 결핍의 충격은 완전히 다른 분야들에서도 관찰된다.
대규모로 진행된 여러 마케팅 실험에서 어떤 고객은 마감시한이 명시된 쿠폰을 받았고, 어떤 고객은 마감시한이 없는 쿠폰을 받았다. 그런데 마감시간이 없는 쿠폰은 시간제한이 없는데도 덜 사용되었다. 시간 결핍을 느끼지 못함으로 집중적인 관심을 덜 받고 심지어 잊히기까지 한 것이다.
또 다른 분야에서 조직 관련 연구자들이 영업직 사원들은 전체 매출 주기의 마지막 몇 주, 혹은 마지막 며칠 동안에 가장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가 진행한 어떤 연구에서도 데이터 입력 근로자들이 급료 지급일이 다가올수록 더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굶주림 연구에서 배고픔이 배고픈 사람의 정신의 맨 꼭대기에 음식을 올려놓았던 것처럼 마감시한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과제를 정신의 맨 꼭대기에 올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