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 (스테파노 자마니/루이지노 브루니)
- Highlight on Page 11 | Loc. 160-68 | Added on Thursday, July 07, 2016, 06:42 PM
이 책의 주된 이론적 과제는, 세계화된 ‘제대로 된decent’사회 및 경제에 공헌하려면 ‘계약의 원칙’이 상호성의 원칙과 기본적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되찾아야만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의 역사적 재구성(2장~5장)과 이론적 논증(6장~9장)의 목표는, 시장이 상호성의 형태로서 기능하려 할 때만이 ‘시민적’이자 문명화civilization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실은 4장에서도 살펴보겠지만 나폴리의 경제학자 안토니오 제노베시Antonio Genovesi의 주된 메시지이기도 하다. 문화의 지평, 상호성의 원칙에서 밀려난 사회는 미래에 대해 무능하며, 행복을 향한 구성원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 행복, 더 정확히는 ‘공공 행복’은 상호성, 신뢰, 무상성無償性, 관계성과 함께 이 책에서 다룰 열쇳말 중 하나다.
- Highlight on Page 21 | Loc. 317-19 | Added on Tuesday, July 12, 2016, 04:47 PM
통화에 적용되는 가장 오래된 경제 법칙 중 하나인 그레셤Gresham의 법칙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라고 말한다. 이 법칙은 매우 방대한 범위에서 작동한다.
- Highlight on Page 21 | Loc. 320-21 | Added on Tuesday, July 12, 2016, 04:48 PM
장기적으로 나쁜 동기가 좋은 동기를 몰아낸다.
- Highlight on Page 21 | Loc. 322-24 | Added on Tuesday, July 12, 2016, 04:48 PM
똑같은 논리가 시장에도 적용된다. 시장이 오로지 자기 이익[사리] 추구와 도구적 합리성의 장이 된다면, 시장은 그 확대로 인해 다름 아닌 자기 존재의 전제 조건인 신뢰와 협동의 정신을 궁극적으로 훼손하게 될 것이다.
- Highlight on Page 22 | Loc. 326-36 | Added on Tuesday, July 12, 2016, 04:48 PM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지닌 지적 매력이 바로 이 점이다. 대인 관계의 대부분을 하나의 특정한 형태, 바로 계약으로 환원하기 때문에, 시장을 통해 어떤 특정한 공동선이나 가치 판단을 ‘알지 못한 채로’ 개인들의 선호를 한데 모으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신중히 생각해보면 이 주장에는 상당한 약점이 있다. 분배와 조정의 문제에서 서로 상충하는 관계들, 그리고 사회적 관습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보라. 이 모든 종류의 관계를 계약이라는 우산 아래 끌어넣겠다는 주장은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미묘한 도덕의 문제를 건드리기까지 한다. 계약 당사자 간의 합의가 공정함, 심지어 선함의 근본 기준이 된다면 자신을 위해 합당한 계약을 맺을 위치에 있지 못한 이들, 나아가 계약을 맺을 능력이 아예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랜트George Grant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사람을 하나의 개인으로 만드는 것이 계약을 셈해보고 받아들이는 능력이라는 뜻인가? 인간이 오로지 셈할 줄 아는 능력에 따라서 권리를 부여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3
- Highlight on Page 23 | Loc. 339-44 | Added on Tuesday, July 12, 2016, 04:49 PM
많은 학자가 어떤 사회 체제든 조화롭게 발전하고 미래를 설계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조정 원칙을 갖춰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1) 등가교환(다시 말해 계약), (2) 부 또는 소득의 재분배, (3) 상호성에 입각한 증여(의무munus로서의 증여와는 반대되는 의미의)가 그것이다. 이 세 원칙은 서로 구분되지만 독립적이지는 않다. 이 ‘삼발이’구조가 유지되면 사회는 조화롭게 발전한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 세 가지 원칙 각각을 통해 이루려는 구체적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된다.
- Highlight on Page 23 | Loc. 345-48 | Added on Tuesday, July 12, 2016, 04:50 PM
먼저 등가교환의 목적은 파레토 효율이다.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 그에 맞는 동등한 가치를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모든 거래가 조정될 때, 그 경제는 왈라스Marie Esprit Léon Walras의 이론 체계와 같은 일련의 견고한 조건 아래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 Highlight on Page 24 | Loc. 356-62 | Added on Tuesday, July 12, 2016, 04:50 PM
재분배의 원칙은 어떨까? 이 원칙은 공정성 확립을 목표로 한다. 경제 체제는 수익 창출에 효율적인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바람직한 경제 체제는 수익을 창출하는 데 기여한 자들에게 공정하게 수익을 재분배할 방법 또한 찾아야 한다. 도덕적 차원에서라면 상당히 이해하기 쉽고, 또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익의 재분배는 비단 도덕적 이유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이유로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상당수의 사람이 구매력이 없어 시장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시장 체제는 장기적으로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물적·인적 자원을 충분히 갖추고도 공정성의 원칙을 적절하게 적용할 줄 몰라 처참하게 퇴행한 국가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 Highlight on Page 24 | Loc. 363-73 | Added on Tuesday, July 12, 2016, 04:51 PM
마지막으로 상호성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 살펴보자. 일단 사회적 결합을 굳건히 하는 것이 목적이다. 로크John Locke의 표현을 빌리면, ‘사회의 결속’은 일반화된 신뢰이며 그것 없이는 시장도 사회도 존재할 수 없다. 또 다른 목적은 적극적 의미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회적 주체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가능성, 그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와 같은 의미의 행복을 추구할 가능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소극적 의미의 자유는 단순히 억압이나 구속이 없는 상태, 즉 어떤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반면 적극적 의미의 자유는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자아실현의 자유를 말한다. 행복에는 이런 적극적 의미의 자유가 필요하다. 효율성과 공정성은 통합했지만(이 두 가지만 통합했어도 꽤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상호성을 통합해내지 못했다면 여전히 살기 좋은 사회가 아니다. 상호성이야말로 ‘형제애fraternity’가 일어나도록 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형제애라는 말은 1789년 프랑스혁명의 구호로 쓰인 이래 폐기되고 말았다.
- Highlight on Page 25 | Loc. 379-81 | Added on Tuesday, July 12, 2016, 05:15 PM
형제애는 개인적 관점을 전제하는 반면 연대는 비개인적 관점과 부합한다. 연대는 추상적 집단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도 연대할 수 있지만, 형제애는 상호성을 갖춘 특별한 관계에서 생겨난다. 형제들도 연대할 수 있지만, 연대한다고 해서 형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 Highlight on Page 25 | Loc. 384-85 | Added on Tuesday, July 12, 2016, 05:15 PM
형제 관계에 있다는 것, 즉 형제애는 동등한 자들 사이의 다양성을 강조한다. 반면 연대는 다른 사람들 사이의 동일성을 강조한다.
- Highlight on Page 26 | Loc. 385-405 | Added on Tuesday, July 12, 2016, 05:15 PM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점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 세 가지 원칙을 동시에 모두 결합한 사회 질서를 아직 탄생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제껏 한 번에 두 가지 원칙만이 실현되어왔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지난 역사를 들춰보면서 상호성의 원칙이 밀려나거나 무시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보자. 이러한 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던 복지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시기 복지 시스템의 축은 이른바 자애로운 국가benevolent state로, 시장이 효율적으로 부를 생산하면 이를 국가가 공정한 기준에 따라 재분배한다. 이와 같은 시스템에서 제3부문은 세 번째에나 올 뿐 아니라 국가에 의존하는 부속 기관이 되고 만다. 다른 한편으로 재분배의 원칙이 배제되거나 상당히 제한적으로 작동한 사례로, 오늘날 북미에서 유행하는 일종의 박애적 자본주의philantropic capitalism를 들 수 있다. 여기서 시장은 박애적 자본주의 체제의 원동력이며,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한 환경에서 시장은 가능한 한 최대의 부를 생산하고, 그런 다음 부자들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자선단체와 재단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박애를 베푼다.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 모델에서는 시장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연민이라는 도덕적 감정과 연결된다. 그에 따라 시민사회 조직은 비영리 조직 외의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 온정적 보수주의라는 표현이 미국적 토양에서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비영리 조직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부정적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일할 뿐, 부정적 효과가 일어난 원인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의 호의는 상호성이라는 뿌리 깊은 본성을 잃고 자선이나 기부로 탈바꿈해버린다. 마지막으로 등가교환 원칙을 배제하거나 평가절하함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집단주의와 공동체주의가 과거에서 현재까지 탄생했다. 이 경우 계약의 원칙이 무용지물 취급을 받으면서 어마어마한 비효율성의 비용과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발생한다. 이 세 가지 조정 원칙이 같은 사회 체제 안에서 공존하도록 하는 것이 시민경제가 안고 있는 도전이다.
- Highlight on Page 32 | Loc. 487-97 | Added on Monday, October 03, 2016, 07:29 PM
시민사회의 역사적 경험과 그 문화적·이론적 가능성은 전형적인 서구 문명의 산물이다. 시민사회는 그리스의 폴리스polis와 로마 공화국의 키비타스civitas에 경험적 뿌리를 두고 있으며, 개념적인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폴리테이아politeia나 키케로Marcus Cicero의 시민적 덕성에 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면, 정치사회와는 논리적으로 구분되는 것으로서의 시민사회 개념은 기독교에서 촉발된 문화적 프로세스의 결과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다중성의 영역에 있는 시민사회는 일자성一者性을 좇는 고대 문화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는 신을 결합체, 즉 ‘복수성을 지닌 자아plurality-in-self’, ‘하나이자 삼위일체인 자’로 드러내면서 절대성이라는 전대미문의 개념을 도입했고, 그를 통해 시민적인 것의 가능성을 발명한 셈이다. 실제로 고대에는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서구에서 시민사회는 끊임없이 위협받으며 수 세기가 걸려서야 번성하게 되었고, 비서구 문화권에서는 갖은 고난 끝에 지난 몇십 년 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 Highlight on Page 34 | Loc. 509-22 | Added on Monday, October 03, 2016, 07:30 PM
특히 시민경제의 전통을 살펴보려면 수도원 제도가 맡았던 필수적 역할을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한다. 서로마 제국이 몰락한 후 수도원 제도는 동유럽과 서유럽 모두에서 벌어진 거대한 영적 운동을 대표했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의 시대 동안 여전히 문명과 도덕의 기초에 존재했던 그리스 로마 문명이 퇴색하고 대량 이주가 벌어지던 고난의 시기에 수도원 제도는 시민성civility의 길잡이 등대가 되어주었다. 수도원 문화는 최초의 경제와 상업 용어 사전이 형성된 요람이었는데, 이 최초의 사전 자체가 중세 초기 유럽의 상황을 알려주는 자료다. 당시 수도원은 적절한 회계와 경영이 필요한 최초의 복합적 경제 구조였다. 베네딕트 수도회의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규칙은 단순히 개인의 영적 수련 방식 이상을 의미했다. 이후 베네딕트 수도회의 문화는 수 세기에 걸쳐 경제와 노동 면에서 바람직하고 신실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베네딕트 수도회뿐 아니라 수도원 문화 일반은 경제생활과 부에 대한 교부敎父들의 성찰과 함께(혹은 바로 그에 뒤따라) 발전해나갔다. 2세기부터 8세기까지 교부들은 재화와의 관계를 기독교 윤리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재화와 부는 그 자체로 비난받을 만한 것은 아니었으나 나쁘게 쓰일 경우, 특히 탐욕스럽게 쓰일 경우에는 죄악시되었다. 대부貸付에는 특별한 주의가 기울여졌는데, 이 점은 뒤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다.
- Highlight on Page 35 | Loc. 532-37 | Added on Monday, October 03, 2016, 07:32 PM
당시의 문화적 흐름 속에서 수도원의 경험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일찍이 막스 베버Max Weber가 강조했듯이, 수도사의 생활 방식은 모든 세부 사항까지 오로지 구원을 위해 조직되고 살펴졌다. 그 같은 생활 방식은 ‘합리성’의 형식을 대표했고, 서구 경제학과 문화의 핵심에 있는 도구적 합리성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물론 중세 수도사들의 의미와 역할은 11세기 전후에도 시들지 않았다. 세상의 타협이나 악에서 동떨어진 행복의 섬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지, 수도사들이 지향한 ‘이상적인 도시’와 수도원의 벽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인간들의 도시’간에는 일찌감치 교류가 이루어졌다.
- Highlight on Page 42 | Loc. 635-45 | Added on Monday, October 03, 2016, 07:50 PM
실제로 13세기 말 무렵 프란체스코 운동에서 가치, 이자, 거래와 할인 같은 경제적 개념 체계를 세운 학자들(올리비(1248~1293), 둔스 스코투스(1266~1308))이 등장했다. 이 개념 체계는 신학 체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들이 관찰한 바대로의 경제적 현실에서 파생한 것이었다. 프란체스코주의는 최초로 실제 경제를 성찰하려고 시도했다. 교리의 차원에서 프란체스코 학파는 이자를 금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러한 금지가 상업 및 금융에 미치는 영향까지 연구했다. 이런 입장은 여러 어려움을 낳았는데, 특히 도미니크회와의 갈등이 그중 하나였다. 고리대금업을 둘러싼 대대적 논의는 소유와 무소유의 의미, 그에 따른 중세 청빈 문화의 의미에 대한 숙고에서 비롯되었다. 핵심이 된 몬테 디 피에타Monti di Pietá는 바로 프란체스코 운동, 특히 새로 설립된 프란체스코회 탁발수도회의 성찰과 봉사 활동에서 출발했다. 몬테 디 피에타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몇 세기 후 자리 잡은 최초의 시민경제 기관의 핵심 성격을 몬테 디 피에타가 구현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탄생에서 시민경제 전통의 전형적 표시인 상호성의 원칙이 뚜렷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 Highlight on Page 43 | Loc. 653-62 | Added on Monday, October 03, 2016, 07:51 PM
몬테 디 피에타는 경제적 목적보다는 주로 연대의 목적 아래 탄생했다. 당시 공정한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없었던 많은 빈곤 가정은 어쩔 수 없이 고리대금업자(기독교인 또는 유대인)를 찾았고, 곧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존재하는 실제적 측면에 깊은 주의를 기울였던 프란체스코회는 가난을 ‘치유하고’ 고리대금을 타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몬테 디 피에타를 장려하기 시작했다.●● 아스콜리 피체노Ascoli Piceno 시市 은행의 설립 헌장(1458)에서는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의 저작이나 유엔개발계획UNDP 문서에 나올 법한 구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스콜리 피체노 은행은 ‘아스콜리 및 기타 지역의 가난한 주민들, 특히 수치스러운 지경의 사람들,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구걸을 해야 할 처지에 빠진 이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해주고자 설립되었다’라고 적혀 있다.8
- Highlight on Page 45 | Loc. 675-78 | Added on Monday, October 03, 2016, 07:52 PM
유럽, 특히 제노바와 베니스를 비롯한 상업적 특성이 강한 도시들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은행이 존재했으며, 몬테가 등장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성장해나갔다. 은행과 몬테가 상대하는 대상이 달랐던 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 은행은 상인을 대상으로 생산을 위한 대출을 했고, 몬테는 가족이나 ‘위급한 상황’의 빈곤층을 대상으로 삼았다.
- Highlight on Page 55 | Loc. 843-45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1:23 PM
수 세기에 걸쳐 다듬어진 ‘상호성으로서의 지원’이라는 문화가 보존되었다면, 현재 복지국가의 위기를 불러온 ‘일방적 지원(assistentialistic) 문화’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 Highlight on Page 58 | Loc. 875-85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1:34 PM
학자들은 대개 인본주의, 특히 시민 인본주의를 전환기적 현상으로 바라봐왔다. 물론 시민 인본주의가 특별한 것이었음을 인정한다고 해도, 서구 문화에는 그리스에서 시작해 기독교 출현의 충격과 중세를 거쳐 마침내 토스카나에서 근대의 전야에 접어들어 최초의 통합을 맞이하기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문화적 흐름이 있었다는 점을 짚어두고자 한다. 주류 사상사는 이 문화적 흐름의 연속성을 무시함으로써 전통적으로 ‘시민’인본주의와 ‘비시민적’ 중세 시대를 대비해왔다. 이런 과도한 단순화 탓에 근대 경제와 시민적 범주들의 진짜 계보학에 대한 시선을 놓치고 만다. 고대 문화가 절정에 이르고, 한참 뒤에 시민 인본주의 안에서 꽃을 피우면서 경제적·시민적 의미론의 씨앗이 뿌려졌고 토양이 성숙했다. 하지만 몬테 디 피에타와 프란체스코 운동은 인본주의를 다루는 역사 기록에서 찾을 수 없다. 아마도 중세 기독교적 현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시민 인본주의가 그 진정한 기원과 다시 연결되어야 하며, 이 수 세기 전의 오랜 과정 안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 Highlight on Page 60 | Loc. 907-13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1:36 PM
고로 고대 그리스 여명의 빛에서 출발해서 인본주의 시대로 이어지는 서구 문명의 궤적에는 구분되는 두 개의 정신이 함께해 왔다. 하나는 활동적이고 시민적인 아리스토텔레스-키케로적 정신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주의적이고 반성적인 신플라톤주의-에피쿠로스적 정신이다.●● 이 둘은 근대 사회과학의 두 가지 다른 전통을 낳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번 장과 이어지는 장들에서 더 논의할 것이다. 개인주의적 정신은 17세기와 18세기에 쾌락주의와 감각주의로 발전했고, 시민적 정신은 허치슨Francis Hutcheson과 제노베시를 대표로 하는 전통으로 발전해나갔다.
- Highlight on Page 73 | Loc. 1120-45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2:33 PM
근대 들어 인간의 사회성은 여러 방향에서 공격을 받았다. 이제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사는 것은 타고난 사회성 때문이 아니라 공포와 필요 때문인 것이 되었다. 공동생활은 불가피한 현실, 인간이 처한 조건 탓에 일어난 현상으로 여겨졌다. 공동생활은 자연스러운 성향이라기보다는 불가피한 짐이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고, 도덕과 공동생활만이 인간에게 사회적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상호성은 인간의 타고난 본질에서 제외되었고, 새로운 인류학은 인간을 자기 이익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존재로 그렸다. 고로 타인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한계로 작용한다. 인간에 대한 근대적 관점을 가장 훌륭하게 나타낸 것이 칸트Immanuel Kant의 ‘비사회적 사회성’이라는 표현이다. 근대는 공동생활의 취약성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공동생활의 취약성을 직감으로 명료하게 알아차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를 벗어나 우정과 상호성 없이 산다면 ‘유복한 삶’은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행복에 구조적 약점이 있음을 인정했다. 행복에는 타인의 반응이 필요하고, 타인의 반응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은 자유로이 반응하므로 필연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호성이 있을 때 타인의 반응은 완전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시민 전통은 완전히 인간적인 삶을 향한 가능성을 단념하기보다는 이 같은 취약성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근대성은 개인주의의 길을 따라 플라톤적 정신을 발전시켰다. 신플라톤주의는 폴리스 안에서의 행복이 갖는 취약성을 거부하고, 타인에게서 벗어나 혼자만의 행복을 숙고하도록 권했다. 근대성 프로젝트는 상호성 및 그로 인한 취약성을 제외하고 공동생활을 구성하려는 시도였다. 정치와 시장은 ‘취약한’상호성의 위험에서 사회를 구하기 위한 주된 도구가 되었다. 고로 군주와 근대의 사업가는 상호 간의 증여에 더 이상 기대지 않고, 그 덕에 무상성의 부담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근대성은 코뮤니타스(communitas, 공동체)의 위험성을 알아차리고, 이뮤니타스(immunitas, 공동체의 의무 면제)로 응답했다. 근대의 의무 면제 프로젝트는 이전 시대 사람들이 감당해야 했던 의무, 즉 단체적 책임, 교회의 속박, 무료 봉사 등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공동생활과 관계된 동일 법률에 대해서도 시행되었다. 모든 서비스에 구체적인 가격을 매기는 근대의 개인에게, 선물에 대한 감사의 표시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니다.23 이 같은 근대성의 사회적 프로젝트는 인간 사회에서 상호성을 몰아내려는 시도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겠다. 우리는 이를 ‘시민의 밤notte del civile’이라 부른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이 어두운 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Highlight on Page 83 | Loc. 1269-99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4:14 PM
따라서 홉스의 이론은 인간은 필연적으로 오로지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인 ‘심리적 이기주의psychological egoism’를 기초로 하고, ‘권위주의적 개인주의authoritarian individualism’의 형태로 끝을 맺는다.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최고의 이익이라고 간주되는 것만을 추구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욕망, 자신의 개인적 소망을 가능한 한 많이 충족하려는 욕망에 따라서만 행동한다. 우리에겐 무한한 요구가 있으며, 자기 자신만을 진심으로 염려한다. 이것이 《리바이어던》에서 도출되는 기초적 인류학이다. 이런 미시적 전제에서 사회계약이라는 홉스의 거시적 이론이 등장한다. 홉스에 따르면, 정치적 의무가 정당화되는 것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만 합리적이라는 사실에 따른 결과다. 인간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시민사회에 사는 특권을 누리는 대가로 주권자, 즉 리바이어던에게 복종하기로 선택한다. 시민사회에 사는 것이 인간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홉스에게 최고선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행복이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와는 스펙트럼상 반대쪽 끝에서 홉스는 본능적으로 사회적이며 시민적인 사람들 간의 역학 관계에서 시민사회가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고, 그 자리를 인공적 계약에 따라 탄생해 비인격적 리바이어던의 힘으로 유지될 때만 존재할 수 있는 국가로 채웠다. 하지만 홉스의 이론적 체계를 정확히 평가하려면 그의 기획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 동등하고 자유로운 인간 간의 인공적 계약이라는 개념, 즉 ‘사회적 계약’은 자연스럽지만 불평등한 전통 사회를 폐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만들어졌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사회를 구성하는 정상적 방식은 개인들이 ‘자연스러운 집합’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마을을 이루고, 도시를 이루고, 마침내 사회적 계약이 있건 없건 시민사회를 이루는 것이었다. 이런 고전적 관점 아래의 청사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Politika)》에서 아래와 같이 그려진다. 여러 가족이 단합해서 그 결합체가 일상적 필요 이상의 것을 목표로 하면서, 마을이 최초의 사회로서 형성된다. 그리고 마을의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는 ‘같은 젖’으로 자랐다고들 하는 자녀와 손주 들로 구성된 대가족이 이룬 군집으로 보인다. … 여러 마을이 하나의 완전한 공동체로 결합할 때 국가가 등장한다. 이때의 공동체는 자급자족에 완전히, 또는 거의 도달할 만큼 규모가 크다. 국가는 단순한 생존을 위해 생겨났지만 유복한 삶을 위해 존속한다. 따라서 초기 사회의 형태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국가도 자연스럽다. 국가는 초기 사회의 최종 목표이며, 무엇의 본성이란 그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 체계 전체는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인 동물이다’라는 가설에 기대고 있다. 보비오Norberto Bobbio가 주장하듯이 ‘이런 식으로 국가의 기원을 생각하는 것이 수 세기에 걸쳐 그토록 오래 지속되고, 영속적이며 견고하고 생명력이 있었다니 놀랍다’.26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회관은 다양한 형태로 스콜라주의의 자연법 이론 및 시민 인본주의에 스며들었다. 근대에는 보뎅Bodin과 알투시우스Althusius와 같은 철학자가 이런 사상의 대표 주자였다.
- Highlight on Page 86 | Loc. 1305-9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4:15 PM
스콜라 철학과 예수회에 감화를 받은 16세기 살라망카(Salamanca) 학파는 인간의 본능적 사회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인간은 결코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본질적인 것이다.” 프란시스코 디 비토리아(Francisco di Vitoria); “사람이 야생동물처럼 방랑하던 시기… 그런 시기가 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벨라르민(Bellarmine), 스키너(Skinner)(1978), 2권 157쪽에서 인용
- Highlight on Page 86 | Loc. 1314-27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4:17 PM
이런 맥락에서 홉스의 이론은 사회 이전에 ‘버섯처럼’ 태어난 개인들 간의 인공적 계약을 제안함으로써 본성상 사회적이진 않더라도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들로 구성된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착상의 대가로 시민 인본주의, 그리고 시민 인류학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했다. ‘인간의 윤리학’을 ‘개인의 윤리학’으로 교체한 것이다.28 정리하면 홉스는 의심할 바 없이 종교 전쟁에 내재한 모순, 국민국가 탄생의 격렬한 진통에서 영향을 받았다. 인간의 사교성에 대한 고전적 관점, 그로티우스Grotius가 말한 인간의 사교적 욕망appetitus societatis이라는 이론은 비시민성의 시나리오 안에서 붕괴해버렸다. 비시민성의 시나리오는 홉스가 가정한 비시민적 개인과 더 잘 들어맞았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ia)을 피하고, 평화를 지키며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홉스의 해결책은 대인 관계를 ‘틀 짓고’ ‘한정하며’, 인간 상호 간의 문제에 대한 중재를 리바이어던-국가에 맡기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권력을 위해 시민적인 것을 희생했듯이, 홉스는 정치를 위해 시민적인 것을 희생했다. 다시 말해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자유를 위한 대가로 시민들의 형제애를 희생할 용의가 있었던 듯하다. 반면 홉스는 권위주의적 통치자 아래서 국민이 평등과 안전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포기한다.
- Highlight on Page 88 | Loc. 1341-46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4:20 PM
나는 사변적 상상imagination보다는 사물에 [실체적 영향을 미치는] 실효적 진실effectual truth을 추구하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가의 문제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의 문제는 너무도 다르다. 그렇기에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의 문제에 매달려 무엇이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가의 문제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자신을 지키기보다는 파멸로 이끌리기 쉽다.29
- Highlight on Page 92 | Loc. 1407-13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4:34 PM
따라서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근대 경제과학에서 중요한 두 학파의 선구자인 스미스와 제노베시가 ‘경제학에 대한 논고에 앞서 도덕 철학과 인류학에 대한 저술을 먼저 내놓았음’은 우연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근대 경제과학은 최초의 근대적 정치·개인주의 이론이 퍼뜨린 지독한 비판을 넘어, 한 가지 특정한 유형의 대인 관계로서 고안된 시장 관계가 시민적일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윤리학의 기초를 닦는 시도를 통해 탄생했다. 우리는 제노베시와 스미스가 각기 다른 내용의 새로운 윤리학을 내놓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윤리학이 필요했다는 점에서는 둘이 똑같았다.
- Highlight on Page 91 | Loc. 1385-91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4:34 PM
근대 경제과학의 창시자들은 이들 개인주의적 사상가들의 냉정한 분석에 매혹되었다. 하지만 극심한 비관주의, 인류에 대한 인색한 판단, 시민 덕성에 대한 불신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제노베시부터 애덤 스미스Adam Smith에 이르기까지 최초의 경제학자들을 가장 매혹했던 것은 정치과학의 창시자들이 사회를 묘사하면서 보여준 현실주의였다. 사회과학자들은 ‘이상적인’인간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 마키아벨리 또는 맨더빌의 표현에 따르면, 인간이 ‘실제 어떠한지’를 묘사하고 예측해야 한다. 이런 ‘비시민적’ 사상가들은 근대 사회 속의 현실적 역학 관계를 일부 포착했고, 이런 현실적 접근 덕에 새로운 시장경제를 연구한 최초의 근대 학자들에게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다.
- Highlight on Page 99 | Loc. 1509-12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5:13 PM
공공 행복이라는 주제는 프랑스혁명 이전인 18세기 중반, 유럽에 이미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보았듯 이탈리아 인본주의자들은 ‘의도적 행동의 의도치 않은 결과’라는 문제를 이미 논의하고 있었다. 이 문제는 이후 시민경제 전통의 가장 심오한 사안이 된다.
- Highlight on Page 102 | Loc. 1551-58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5:36 PM
‘공공’이라는 수식어는 ‘행복’ 만큼이나 중요하다. 공공 행복의 전통에서 보면 행복은 사회 속의 삶 밖에 있을 수 없으며, 공익을 좇는 애정 없이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다른 이들 없이 홀로, 심지어는 다른 이들과 척을 지며 ‘부유’한 것은 확실히 가능하지만, 행복하려면 두 사람 이상이 함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공공의, 관계 속의 행복이라는 개념, 나아가 공공 행복과 시민 덕성의 연결은 행복에 대한 이탈리아식 접근의 중요한 특성이자 특별한 요소다. 이는 제노베시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쾌락주의와 감각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고 인본주의 전통에 충분히 뿌리내리지 않았던 학자 다수, 예를 들어 모페르튀Pierre-Louis Moreau de Maupertius와 벤담Jeremy Bentham, 어떤 면에서는 애덤 스미스까지에게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독특한 것으로 여겨진다.
- Highlight on Page 105 | Loc. 1602-4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5:38 PM
제노베시식의 시민경제는 경제학과 사회에 대한 시민적 전통을 가장 잘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제노베시의 사상을 소개하는 데 이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할 것이다.
- Highlight on Page 107 | Loc. 1633-37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5:40 PM
최초의 도시/시민 인본주의자들처럼 제노베시도 시민 생활이 최대의 행복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라고 보았다. 그러려면 훌륭하고 공정한 법과 그 안에서 자유로이 사교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민 정치체가 자리 잡아야 했다. “친교가 불편함을 일으킬 수 있을지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기도 한다. 친교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알 수 없는 커다란 기쁨의 원천이다.”2
- Highlight on Page 108 | Loc. 1656-59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5:42 PM
제노베시는 상업의 과실 중 하나는 “거래하는 국가들에 평화를 선사하는 것이다. … 전쟁과 상업은 운동과 정지처럼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다”라고 썼다.4 이는 계몽주의자들 사이의 보편적 생각을 표현한 것이었다.
- Highlight on Page 113 | Loc. 1730-39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5:49 PM
비코는 마키아벨리나 맨더빌과는 달리, 신의 섭리가 운명도 행운도 아니라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신의 섭리는 시민적 역학 관계의 메커니즘을 통해 잔혹성이 군대와 무력으로, 탐욕이 상업과 풍요로, 야망이 정치와 좋은 통치 기술로 바뀌도록 세상을 설계해왔다. 이로써 사람들이 지닌 ‘있는 그대로’의 다양한 정념이 모여 의도치 않게 ‘시민 행복’에 기여하게 된다. 이런 구도는 행복과 시민경제의 결합을 적절하게 요약해 보여준다. 하지만 비코는 바로 뒤이어 ‘목적들의 자연발생’의 또 다른 차원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인간에게는 비록 미약할지라도 정념을 덕으로 바꾸려는 자유의지가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신의 섭리, 초자연적인 신의 은혜가 따른다.”(같은 책) 다시 말해 비코는 반사회적 정념을 시민 행복으로 바꾸는 의도 없는, 즉 객관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동시에 훌륭한 시민사회에서 덕성이 가지는 본질적 역할을 간과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시민 인본주의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 Highlight on Page 114 | Loc. 1746-48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5:53 PM
시민 생활 안에서는 제도와 법, 교육 덕택에 사적 이익이 신의 섭리의 손에 이끌려 공동선, 즉 시민 행복을 향할 수 있다. 개인의 편익은 오로지 시민사회 안에서만(사적이고도 공적인) 행복이 된다.
- Highlight on Page 117 | Loc. 1790-1801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5:58 PM
결론적으로 공동선은 대체로 시민 덕성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가에 달렸다. 그 덕성이란 공공의 이익을 분별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이런 시민 덕성의 개념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정보를 주는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동기를 부여하는 측면이다. 고로 제도의 구체적 역할은 교육과 노동을 통해 시민 덕성이 최대한 확산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제노베시나 필란지에리를 비롯해 베리와 18세기 시민경제 전통 전체가 이런 흐름 아래 움직였다. 18세기 말에 들어서며 시민 덕성의 역할을 개념화하는 이런 방식은 눈에 띄게 달라진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은, 특정한 상황 아래서라면 하나의 공동선을 향해 뜻을 전혀 모으지 않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교류에서 공동선이 생겨날 수 있다는 의미로 자유로이 해석되었다. 이즈음에는 제도란 시민 개인에게는 없는 유덕한 동기를 보완하는 데 필요한 것이었다. 제도는 덕성을 효율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매디슨James Madison은 〈연방주의자 논고(Federalist Paper)〉 72호에서 ‘인류의 충직성을 보장하는 최선의 방법은 사적 이익이 의무와 부합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 Highlight on Page 118 | Loc. 1803-13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6:00 PM
공공 신뢰는 경제 발전의 근본적인 전제 조건으로도 여겨진다. 이 말은 나폴리에서 각별한 방식으로 특히 강조되었는데, 필란지에리가 다음과 같이 쓸 정도였다. “신뢰는 상업의 영혼이며, … 신뢰가 없으면, 상업의 구조를 이루는 모든 부분이 스스로 무너져 내린다.”16 한편 제노베시는 저작들에서 개인적 신뢰와 공공 신뢰를 확실히 구분한다. 개인적 신뢰는 ‘명성’과 같은(제노베시는 ‘명예’라고 표현했다) 개인적 재화로,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소비될’수 있다. 하지만 공공 신뢰는 개인적 ‘명성’의 총합이 아니라 공동선을 향한 순수한 사랑, 도구적이지 않은 사랑이 필요하다. 여기서 공공 신뢰는 현대 사회 이론이 ‘사회적 자본’이라 부르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인류 발전과 경제 개발이 이루어지고 그 수준이 지속되도록 해주는 조건인 신뢰와 시민 덕성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비안키니가 강조한 것처럼 공공 신뢰는 수단일 뿐 아니라 ‘국부國富의 일부’이기도 하다.17
- Highlight on Page 119 | Loc. 1820-26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6:02 PM
이탈리아 시민경제 학파의 전통 전반이 그랬듯이, 제노베시는 훌륭하고 공정한 법제, 공평한 법 집행, 정치인의 정직성과 진실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관련해서 그는 정치인은 ‘공공 행복을 사랑하는 완전무결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19 하지만 동시에 공공 신의는 정부의 행위에서 출발하는 프로세스가 낳는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보다는 주로 시민사회 안에서 개발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공공 신의는 하달식 프로세스가 아니라 상향식 프로세스를 통해 생겨난다.●●
- Highlight on Page 120 | Loc. 1834-43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6:03 PM
사실 제노베시는 나폴리 왕국의 저개발 상태가 공공 신의가 없는 탓이라고 보았다. 개인적 신뢰와 명예는 충분했지만 공공 신뢰, 일반화된 신뢰는 없었다. 몇 년 후 필란지에리는 다시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한 나라의 주된 자원은 ‘정부에 대한 신뢰, 재판부에 대한 신뢰, 다른 시민에 대한 신뢰’라고 강조한다.20 이렇듯 우리는 ‘공공 신의’가 시민경제 전통에서도 경제 발전의 첫 번째 자원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시장의 확장이 사람들의 시민적 삶을 증진한다는 게 옳다면, 공공 신의를 함양하지 않고는 시장이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게 더욱 시급하다. 공공 신의가 없으면 경제는 활기를 잃는다. 제노베시는 ‘빠르고도 광범위한 경제 순환을 위해 공공 신의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다’21라고 말한 뒤, 주석에서 ‘신의라는 이 단어는 묶고 잇는 끈을 의미한다. 고로 공공 신의란 함께 가는 삶 안에서 연합하는 가족들 간의 매듭이다’라고 설명했다.
- Highlight on Page 121 | Loc. 1846-50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6:04 PM
1754년 나폴리 대학의 첫 번째 경제학 강의(또한 세계 최초이기도 했다)의 제목은 ‘상업과 공학’이었는데, 이는 시민경제의 또 다른 전형적 요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제노베시 사상의 중심에 절대적으로 자리 잡은 말이기도 하다. 과학과 기술, 공학은 학문이나 성찰의 형태가 아니라 시민화의 수단으로서 연구되었다. 사람들의 웰빙을 증진하는 수단이었던 셈이다.
- Highlight on Page 121 | Loc. 1855-60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6:04 PM
사람들을 시민화하려는 열정 때문에 제노베시는 학계에 이탈리아어를 도입했고, 형이상학과 논리학 논고를 라틴어 대신 이탈리아어로 저술한 최초의 학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다른 학문에는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경제학 및 과학 연구를 대중에게 확산하는 것 역시 시민화의 수단이라 여겼고, ‘그대들도 알다시피 이탈리아에는 인간사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를 대체로 혼란스럽게 하고 억압하는 법률, 교회법, 논리학 교수들로 가득 찬 대학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라고 쓰기도 했다.22
- Highlight on Page 122 | Loc. 1871-77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6:31 PM
나폴리 학파의 시민경제 이론은 사회성 개념에 기대어 있는데, 사회성은 다시 상호성을 바탕으로 한다. 상호성은 시민경제의 인류학적·사회적 청사진에서 열쇳말인데, 이 청사진에서 사회는 ‘사람의 시민적 본성’에서 직접 파생된 것으로 여겨진다.25 제노베시에게는 사회성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인간 존재에게 본질적인 것은 ‘상호적 지원’, 바로 상호성이었다. 그에게 타인과의 관계의 주된 성격은 개인적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제노베시는 시장조차 상호 원조와 지원이 이루어지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여겼다. 시민적 삶의 다른 모든 측면이 덕성에 기초하고 있듯이, 시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 Highlight on Page 124 | Loc. 1889-94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6:33 PM
인본주의는 사회성의 현상적·역사적 요소들을 밝혀냈지만, 인간 관계성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그리 심오하지 못했다. 대인 관계를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로 인정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 사회 이론에 기댈 가능성이 크다. 마키아벨리와 홉스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들은 개인들이 계약을 통해서 또는 다른 방식을 통해서 관계를 맺을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고 보았고, 겁에 질리고 반사회적이며 이기적인 개인들의 역학 관계가 낳은 결과가 공동생활이라고 설명했다. 바로 이런 식으로 정치가 시민성의 잔해 위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 Highlight on Page 125 | Loc. 1910-15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6:35 PM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애自己愛와 이타애利他愛가 어느 정도 함께 존재한다. 인간 행위의 역학은 이 두 가지 사랑의 힘 사이에 있는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당시 뉴턴 역학이 미친 영향 아래, 제노베시도 사람 안에 작용하는 두 가지 구분되는 원리를 ‘집중하는 힘’과 ‘확산하는 힘’이라 불렀다. “이 두 가지 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로 인해 생겨난다는 주장은 틀렸다. … 우리 내면에 있는 이 두 힘은 원초적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27
- Highlight on Page 125 | Loc. 1917-20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6:39 PM
제노베시에게 확산하는 힘은 단순한 선의善意, 즉 오늘날의 ‘이타주의’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대인 관계와 관련된 것으로, 기본 요소는 공감하는 능력이다. 제노베시와 스코틀랜드 학파에게 공감하는 능력은 선천적인 덕성, 즉 인간 본성에 내재한 특성으로서 크건 작건 모든 사회에서 벌어지는 인간 행위 대부분을 설명해준다.
- Highlight on Page 128 | Loc. 1963-65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7:26 PM
자신의 행복은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하는 것’에서 생겨난다는 말에 역설이 있다. 두드러지게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동시에 그보다 더 토마스 아퀴나스와 궤를 같이하는 이야기다.
- Highlight on Page 131 | Loc. 2000-2009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7:29 PM
이로써 ‘제노베시의 역설’이 개인적 서신에 담긴 그만의 동떨어진 주장이 아니라, 새로운 계몽주의적 정서를 그리스-기독교적 축에 접목하려던 근대화의 조류 아래 자리한 보편적 정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고전주의 및 기독교 전통에서 행복은 본질상 역설적이다. 행복은 구조적으로 관계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유복한 삶’을 살 수 없다. 유복한 삶에는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행복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행복을 실현하려면 인간에게는 상호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상호성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상호성이 가능하려면 돌아오는 것이 없을지도 모르는 호의를 일단 베풀어야만 한다. 플라톤 및 다른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은 보장이 없다는 점 때문에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는 호의에 심각한 위험이 있다고 보았지만,38 그런 호의 없이는 순수한 상호성이 생길 수 없으며, 순수한 상호성 없이는 공동생활이 번성할 수도 없다.
- Highlight on Page 133 | Loc. 2028-31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7:31 PM
베리에게 특히 중요했던 두 가지 시민적 주제는 공공 행복에서 공정한 법률의 역할과, 재화의 가치를 창출하는 데 인간의 창의성과 지성이 지닌 중요성이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베리는 ‘시민의 자유와 공공 행복을 보장하는’ 훌륭한 시민적 법률이 없다면 공공 행복을 달성할 수 없다고 보았다.45
- Highlight on Page 134 | Loc. 2048-54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7:32 PM
훌륭한 정부의 제1목표는 경제 성장이 아니라 인민의 시민화다. 시민성의 향상보다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면 사회적 실패를 낳는다. 그런 이유로 로마뇨시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덜 성장하더라도 모두 함께 성장하는 것이, 훌륭한 법률과 시민 덕성, 공공 신뢰가 늘어난 경제적 유익의 영향을 지탱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이 낫다. 올바르게 세워진 시민사회는 부유해지려는 개인의 끝없는 욕망을 모두 사그라뜨리는 대신 끊임없이 잘 다스린다. 한편으로는 개인의 끝없는 이기심과 방종을 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참여와 평등을 보는 방식이다.46
- Highlight on Page 138 | Loc. 2105-26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7:36 PM
애덤 스미스가 시장을 시민적이고 인간적인 발전을 위한 장소로 보았다는 것은 흔히 알려진 사실이다. 시장에서 사람들은 동등한 이들 간의 수평적 관계 아래 서로 거래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스미스뿐만 아니라 허치슨이나 퍼거슨 같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거장들은 시장이 자유롭고 사심 없는 인간관계를 경험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을 마련해준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런 인간관계에서 진정한 우정이 생겨나 꽃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시장은 우방-적, 또는 주인-신하 관계라는 봉건적 논리를 초월할 수 있게 해준다. 시장사회는 평등의 전제 조건을 마련한다. 평등 없이 진정한 우정은 불가능하다.1 고로 스미스에게 ‘동료 시민들의 선의’에 기대는 것은 우정의 표현, 심지어는 형제애의 표현이 아니라 불공평하고 봉건적인 관계의 표현이었다. 대조적으로 상업사회는 평등을 바탕으로 자유로이 우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준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구체적 의미의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근대적 인본주의와 시장사회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 점이야말로 《도덕감정론》에서 《국부론》에 이르는 애덤 스미스의 지적 프로젝트 전체를 관통하는 요소다. 애덤 스미스가 시장과 사회성을 바라보는 관점의 뿌리에는 관계성에 기초한 인류학이 있다. 그 인류학이 시장사회 전체가 돌아가게 하는 무대를 제공한다. 그 시작은 《도덕감정론》의 첫마디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이 천성으로 인하여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 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2 두각을 나타내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픈 욕망이 개인의 행동을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것이 《도덕감정론》의 기초에 있는 생각이다. 스미스는 다른 많은 고전주의 학자와 마찬가지로,● 부의 획득이 두각을 나타내고 존경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본다. 그리고 우리의 행복은 주로 두각을 나타내 사람들의 존경을 얻는 데 달렸다.
- Highlight on Page 139 | Loc. 2130-38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7:37 PM
스미스의 사상 체계에서 관계성에 기초한 또 다른 기초적 요소는 바로 공감sympathy이다. 그의 사상에서 공감은 결정적 역할을 한다. 다른 학자들이 강조했듯이, 스미스에게 공감은 순수하고도 단순한 이타주의와는 다르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이분법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스미스의 사상 체계가 가진 특이성을 이해할 수 없다. 스미스가 사용하는 인류학적 범주에서 ‘공감’은 인간 행위에 대한 도덕적, 규범적 평가가 아니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을 사실상 관계적인 실체로 기술한다. 따라서 스미스에게 공감은 이타주의보다 훨씬 폭넓은 개념이다. 동정과 연민은 다른 이의 슬픔에 대한 동감同感을 가리키는 데 적합한 단어다. 공감은 원래는 이와 같은 뜻이었으나 지금은 모든 종류의 정념에 대한 동감을 가리키는 것으로 쓰여도 크게 틀리지 않다.
- Highlight on Page 141 | Loc. 2149-86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8:12 PM
>애덤 스미스는 제노베시가 시민경제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간 심리가 대인 관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예민하게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대인 관계가 그 자체로 중요하다는, 즉 본질적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훨씬 강했다. 앞 장에서 보았듯이, 제노베시에게 사회가 주는 주된 이점은 상호적 관계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노베시는 상호 원조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며, 그 덕에 관계성과 사회성에 바탕을 둔 상호작용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제 이탈리아의 경제학이 스미스의 《국부론》과, 나아가 데이비드 흄David Hume의 《인성론(Treatise of Human Natures)》과 어떻게 다른지 명백히 드러난다. 제노베시는 인간 존재의 특이성이 ‘상호 원조’에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상호 원조가 이성적인 이기심의 부산물일 뿐이라는 흄의 설명은 제노베시의 접근과는 이질적이다. 스미스 역시 마찬가지다. 스미스는 경제를 관장하는 인간만의 특성은 교환하고 교역하고 거래하려는 경향이라고 생각했다. 좀 더 신랄하게 말하면, 흄과 스미스는 경제적 관계를 순수한(도구적이지 않은) 사회성의 영역에서 실질적으로 떼어내 버렸다. 스미스(그리고 흄)는 경제적 관계를 관장하는 데 도덕 감정의 역할을 경시하고, 경제적 신뢰를 이기심의 현명한 발현이 낳은 결과로 설명하는 쪽을 선호했다. 우정과 사랑, 선의와 같은 개인의 덕성을 한편에, 정의와 같은 공공 덕성과 시장을 다른 한편에 놓고 나눔으로써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을 펼치기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렇게 보면 아마도 ‘공공 행복’에 시민 덕성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제노베시는 이런 생각에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제노베시는 이런 생각을 내놓은 사람으로 맨더빌을 언급한다.4 서로 관점은 다르지만 스미스와 제노베시는 모두 신뢰를 근대적 현상으로 보았다. 스미스는 신뢰가 상업사회의 산물이라고 보았고, 제노베시는 자신이 사는 사회에 상업의 전제 조건인 신뢰가 자리 잡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두 이론 모두 신뢰가 상호 이익을 위해 협동하는 사람들이 이룬 연대의 네트워크 안에서 퍼져나간다고 생각할 근거를 제공한다. 하지만 시장과 사회에 대한 이 두 가지 이론에는 시민사회와 다른 시장만의 본성을 바라보는, 급진적이고도 의미 있는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두 이론 모두 시장과 사회 간의 갈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은 훌륭한 사회를 육성하고, 시민사회는 시장의 확산을 돕는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시장 거래에서 드러나는 관계성은 삶의 다른 영역, 예를 들어 가족이나 친구 관계, 시민 봉사 등에서 보이는 것과 다른 본성을 띤다고 생각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사회나 공동체가 지속하려면 희생과 사랑, 애착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장은 ‘다른 끈으로’, ‘선의 없는 협동’으로 결속된다. 스미스는 초기 저작인 《도덕감정론》에서 공로와 정의, 선행에 대해 말하면서 ‘사회는 그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에 대한 사랑 또는 애정이 없더라도, 마치 서로 다른 상인들 사이에서와 같이, 사회의 효용에 대한 감각만으로도 존립할 수 있다’5 라고 썼다. ‘상인’을 언급한 것을 보면 사회의 설립과 지속 가능성을 논하는 맥락에서 사회가 시장과 병립하는 것으로 보았던 게 분명하다. 스미스는 (가장 첫 부분에 썼듯이) 인간이 ‘사회 속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협동의 이 같은 ‘중립적’ 형태는 오직 시장사회에서만 가능하며, 스미스에게는 역사의 진일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부와 공공 행복의 증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장에도 결속의 끈이 필요하지만, ‘비非시장’ 영역의 것과는 본성이 다른, ‘약한’ 종류의 끈만이 필요하다. 시장의 이런 속성은 우정과 대조를 이룬다. “인간은 인생 전체에 걸쳐 몇몇 사람과의 우정을 얻는 데 그칠 뿐이지만, 그럼에도 문명civilized사회 안에서 인간은 언제나 거대한 대중의 협동과 지원이 필요하다.”6
- Highlight on Page 144 | Loc. 2203-20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8:25 PM
여기서 뚜렷이 볼 수 있듯이, 스미스는 이타적 사랑의 충동이 존재하며 심지어 의미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시민사회의 형성은 인간 선의를 기초로 설명하는 입장이 우리에게 믿으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정교한 위업이다. 사람이 오로지 자신의 유익만을 좇은 결과로 생겨났다고 말할 수 없는 위업인 것이다. 실제로 ‘필요한 지원이 사랑과 감사, 우정, 존경에서 상호적으로 주어지는 곳에서 사회는 번성하며 행복해진다’. 하지만 ‘어떤 상호적 사랑이나 애정 없이도’ 사회는 존속할 수 있다.9 고로 스미스가 보기에 시민사회는 사랑이 부족하거나 숨어 있다 하더라도 이론적으로 가능할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여전히 가능하다. 따라서 우정은 시장 관계의 정상적 기초일 수는 없다. 선의와 공감은 인간의 근본적 속성이다. 인간은 본디 사회적이며, 생존하려면 협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 자체에는 선의와 공감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선의와 공감 없이 더 잘 작동한다. 그래서 스미스는 ‘약한’ 종류의 끈을 높이 산다. 시장은 사람들이 수직적이고 불평등한 의존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시장 앞에서나 뒤에서나 ‘진정한’ 사회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한다. 시장 안에서 관계는 동등한 이들 사이의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인간의 사회적 성향은 오직 희미한 형태로만 드러난다. (시장에 필요한) 정의는 우정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것이다. 스미스가 그린 시장은 ‘도덕적으로 자유로운 구역’이다. 시장에서 경제적 주체는 자기 이익을 좇으며, 그를 위해 경제적 관계들을 수단으로 취급한다. 이로 인한 총체적 효과는 경제 주체 개개의 의도와는 달리 신의 섭리에 따라 모든 이의 이익에 부합한다.
- Highlight on Page 148 | Loc. 2262-65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8:30 PM
로크와 애덤 스미스까지는 시민사회라는 말이 정치사회와 동의어였다. 헤겔은 이 단어를 도구적 경제 관계의 영역으로 축소해버렸다. 시민성 및 상호성의 원칙과의 고리가 끊어진 경제학은 거리낌 없이 ‘비시민적’인 것으로 규정되고, 정치(국가)에 공동선에 대한 책임이 지워졌다. 헤겔
- Highlight on Page 149 | Loc. 2277-84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8:32 PM
시민경제로부터의 이탈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논의는 벤담의 공리주의다. 공리주의에서 행복은 쾌락이 되고, ‘공공 행복’은 개인적 쾌락의 총합이 되었다. 이렇게 관점이 전환되면서 행복에 대한 고전적 시각과의 접점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행복이 쾌락으로 축소된 것은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An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1789)의 서두에서 바로 드러난다. 벤담은 이 책에서 “자연은 인류를 두 주권자의 통치 아래 두었는데, 하나는 고통이요 다른 하나는 쾌락이다”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벤담의 행복은 정확히 ‘심리학적 쾌락주의’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여기서 인간은 ‘쾌락 추구자’로 전락하며, 행복은 본디 개인주의적인 구성물이 된다.13
- Highlight on Page 152 | Loc. 2325-44 | Added on Saturday, December 31, 2016, 09:58 PM
벤담이 행복과 효용을 동일시함으로써 신고전파 경제학은 공공 행복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개인의 효용과 선호의 탐색으로 더 달음질쳐갔다. 애로우Kenneth Arrow와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사회후생함수’에서 사회 후생은 개인 후생의 집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점점 더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개인 후생은 다시 개인적 선호의 표현으로 여겨진다. 영국에서는 경제학자 제본스William Jevons와 에지워스Francis Edgeworth(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에지워스는 제본스와 방식이 다르긴 했다)가 벤담의 공리주의를 대체로 단순화한 형태에 경제학 전통을 접목했다. 이탈리아에서는 판탈레오니가 똑같이 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그런 작업이 이루어졌다. 제본스는 경제학을 ‘효용의 과학’이라고 정의하면서,18 자신이 벤담에게 빚을 졌다고 명확히 밝혔다. 행복은 경제학의 새로운 목표인 ‘효용’과 완전히 동일시되면서 ‘주류’에 편입되었다. 제본스에게 쾌락은 ‘종류가 아니라 정도’에 있어서만 다양하다.19 경제학은 ‘가장 낮은’ 쾌락을 다룬다. 경제적 영역의 쾌락은 윤리적 쾌락이나 상위의 쾌락을 위해 거부될 수 있음에도, 제본스의 윤리 규칙은 벤담의 규칙과 같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쾌락의 총합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제본스는 《정치경제학 이론(Theory of Political Economy)》에서, ‘뒤따르는 이론은 전적으로 쾌락과 고통의 계산을 바탕으로 하며, 경제학의 목적은 가장 적은 고통으로 쾌락을 얻어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이다’라고 썼다.20 공리주의가 진전을 이룬 후(그 진전의 결과는 오늘날까지도 경제과학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행복에 대한 고대의 관점은 경제과학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오늘날에 와서야 행복은 아마르티아 센의 공리주의에 대한 급진적 비판, 그리고 특유의 ‘역량capability’에 대한 접근법 덕에 경제학 담론으로 의미 있는 복귀를 이루었다.
- Highlight on Page 160 | Loc. 2443-51 | Added on Sunday, January 01, 2017, 12:13 AM
위의 두 구절이 윅스티드의 방법론적 기획을 잘 요약해준다. 경제학이 이타주의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삼았다는 비판에서 구하기 위해 치른 대가는 개인화된, 얼굴과 얼굴을 맞댄 경제적 관계를 배제해버리는 것이었다. 현대 경제학과 인본주의적·시민적 연구 사이의 인식론적 단절은 세기가 바뀌면서 확고히 완결되었다. 시민경제의 기본 원칙인 상호성은 경제 이론의 영역에서 완전히 추방되어버렸다. 현대 경제학 이론은 신고전파 경제학 창시자들의 방법론적 기획을 이어나갔다. 예를 들어 경제학에서 널리 쓰이는 게리 베커Gary Becker와 시카고학파의 방법론은 정치부터 종교, 가족까지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의도적 활동에 도구적 합리성을 적용해 인간 행동을 분석할 수 있다는 가정을 기초로 삼는다.
- Highlight on Page 174 | Loc. 2667-73 | Added on Sunday, January 01, 2017, 01:02 AM
이제껏 살펴보았듯이 시민경제의 개념적 토대는 정교한 가치 판단들을 내포한 특별한 인류학을 가정했다. 그러나 경제과학에 극적인 영향을 끼친 19세기 후반의 실증주의가 그 가정들을 폐기 처분했다면, 비엔나 학파(1920년대)의 신실증주의는 그 가정들을 더욱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제학이 실증적이고자 하는 과학으로 인식되려면 모든 윤리학의 족쇄와 인류학적 형이상학의 연막에서 벗어나야 했다. 라이오넬 로빈스Lionel Robbins와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은 이러한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경제가 ‘실증적 과학’으로 자리 잡도록 체계화 작업에 착수한 최초의 학자에 속한다.2
- Highlight on Page 176 | Loc. 2692-2707 | Added on Sunday, January 01, 2017, 01:04 AM
시장에 대한 시민적 관점의 점진적 쇠퇴를 불러온 두 번째 이유는 새로운 사회 질서 모델의 등장이다. 새로운 모델은 바로 산업 문명의 모델로, 2장에서 설명한 도시 문명의 모델과는 사뭇 다르다. 공장 시스템이 출현하면서 서구 사회 전반에 새로운 생활 양식이 자리 잡았다. 이는 생산과 소비의 개념적, 그리고 실질적 분리에 기초한 것이었다. 인간 노동자, 즉 생산력의 담지자는 인간 소비자, 즉 욕구의 담지자에게서 분리된다. 노동과 소비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보완적인 두 가지 원칙에 따라 도출된다. 노동은 긴축의 원칙(공장 규율 및 소외)에서 나오고, 소비는 해방 또는 에너지 재생(여가)의 원칙에서 나온다. 이런 구분은 산업사회가 재화를 생산하는 사회라는 전제 위에서 정당화되고 이론화되었다. 기계가 우위를 차지하고, 인간의 삶은 기계적 리듬을 따르게 되었다. 기계적 에너지가 근육의 힘이 있던 자리를 꿰차고, 대량 생산을 통해 생산성을 엄청나게 향상시켰다. 기계와 기계적 에너지의 도입은 생산 능력을 기초 요소로 쪼개고, 산업사회 이전의 장인을 기술자와 반半전문semi-specialized 노동자로 대체함으로써 노동의 본질을 변화시켰다. 이런 조정과 조직화의 신세계에서 사람은 ‘물건’처럼 취급되었다. 물건이 사람보다 조종하기 쉽다는 이유에서였다. 조직화 과정은 사람의 요구 조건이 아니라 역할의 요구 조건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사람과 그 사람의 역할은 구분되어야 했다. 기술의 척도는 효율이었다. 삶의 방식은 이제 극대화와 최적화를 열쇳말로 삼게 된 경제학을 따라 정해졌다.6
- Highlight on Page 177 | Loc. 2714-18 | Added on Sunday, January 01, 2017, 01:05 AM
여기서 짚어둘 것이 하나 있다. 분업이 낳은 이런 결과는 생산 프로세스가 자본주의적 소유 방식에 따라 통제되는가, 중앙 계획 방식에 따라 통제되는가에 따라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주의 국가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할 수도, 부르주아 계급을 없앨 수도, 심지어 만인의 평등을 위한 조건을 실현할 수도 있지만, 노동자가 기계화된 생산에 자리 잡은 쇳덩이의 법칙에 종속되는 것만은 막을 수 없다.
- Highlight on Page 179 | Loc. 2731-37 | Added on Sunday, January 01, 2017, 01:06 AM
포드주의가 가져온 노동의 구조적·조직적 변화는 그에 못지않게 큰 소비 영역에서의 변화와 함께 나타났다. 조립 라인의 성공이 동반자로 맞은 것은 마찬가지로 성공을 누리던, 준비를 마친 과도한 소비주의였다. 그 결과 근대의 전형적 특징이 되어버린 노동과 소비의 이분화가 탄생했다. 이 안에서 노동의 주체는 소외되고 노동은 무의미해진다. 보상은 물질적 풍요뿐이다. 여행과 같은 특정한 소비 분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좋은 예다. 여행은 작업의 과학적 조직화가 낳은 단조로움에서 벗어남을 상징한다. 여행자는 근대의 가장 모호한 아이콘이 되었다. 여행자의 ‘시간이 할당된 도망’은 공장과의 엄정한 조율에 따른다. 공장이 문을 닫는 휴가 기간에 맞춰 모두 여행을 떠난다.
- Highlight on Page 180 | Loc. 2751-66 | Added on Sunday, January 01, 2017, 01:08 PM
그러므로 거의 모든 경제적 거래에는 일정 형태의 통치governance가 필요하게 된다. 기존의 규범 틀 안에서 ‘문화와 경쟁’이 통치의 필요에 부응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유명한 표현을 빌리면, 이 둘이 ‘시장을 결정짓는 두 중개 기구’다.9 물론 이 ‘두 중개 기구’가 구체적으로 얼마큼씩 비중을 차지하는가는 역사의 단계에 따라 달라진다. 말하자면 전통 사회에서는 문화가 더 강한 중개 기구인 반면 발전된 사회에서는 경쟁의 힘이 우세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쟁의 힘이 사회 관습과 규범을 바탕으로 한 경제 활동의 영역을 점점 침식해 들어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보면 결국에는 경제 관계가 거의 전적으로 경쟁의 힘에 의해 규제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문화적 진화 과정의 한 단계인 근대화가 경제 관계에 비이여주의를 무참히‘강요’해서 경제 관계를 익명의, 도구적이며 비인간적인 것으로 변모시킨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전망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이런 변모가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경쟁’은 결코 문화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등가교환의 원칙만을 따르는 규제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제 활동이 언제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근대화된 사회에서조차 사회 규범과 관습이 규제하는 경제 관계의 영역이 항상 존재할 것이다. 이런 영역이란 가족, 시민사회의 다양한 결사체, 비영리단체들이 자리 잡은 영역이다. 하지만 이 영역은 부차적인 영역, 양적 비중이 미미한 영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영역은, 특히 이 영역의 논리는 어떤 경우에도 경쟁의 영토를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 Highlight on Page 181 | Loc. 2766-70 | Added on Sunday, January 01, 2017, 01:09 PM
사회 현실을 이런 식으로 서술하는 것은 두 가지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우선 학문에서의 분업에 대해 이야기하면, 경제학과 사회학의 분리가 점점 더 뚜렷해졌다. 경제학은 경제적 인간homo oeconomicus이라는 패러다임을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 근거로 삼는, 엄격히 경제적인 영역만을 다루는 과학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사회학은 사회적 인간homo sociologicus 패러다임 아래 사회적 영역에만 한정된 과학이 되었다.
- Highlight on Page 188 | Loc. 2875-87 | Added on Sunday, January 01, 2017, 04:19 PM
미국의 비영리부문은 재단을 기초적인 조직 형태로 삼은 반면, 유럽의 제3부문은 결사체 모델에 무게가 쏠렸다. 우리의 논의와 관련해서 봤을 때 이 두 가지 형태의 가장 의미 있는 차이를 꼽자면, 공동의 협정에 기반을 두는 조직(즉 결사체)은 공동의 프로젝트에 뜻을 모으는 다수의 자유 의지를 언제나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결사체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이상적 긴장감의 산물, 혹은 공동 활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낳은 결과다. 이렇게 공동 활동의 의미를 인식한다는 것은 구성원들이 무엇을 공유하는지 규정하는 것을 내포한다. 그 과정에서 공유하는 이상에 규칙과 똑같은 가치가 주어진다. 반면 앵글로색슨 모델인 재단에서는 설립자가 잘 정의된 목적에 따라 자산을 운용한다. 이 목적들은 재단 헌장에 결합되어 있어 결국 재단 운영진의 활동을 구속한다. 재단은 언제나 일방적 행위를 가리키는 자선을 상정하며, 자선가는 수혜자에게서 상호적 행위를 일으키는 것을 전혀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결사체는 상호성을 기초로 활동하며, 본성상 다면적 관계를 이룬다. 결사체는 행위와 소통을 일치시키는 데 성공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결사체의 존재 이유는 공통의 경험을 창출해내는 역량과 결부된다. 그리고 공통의 경험은 공통의 언어가 탄생하는 공통의 배경에서 결사체의 운영 방식이 생겨날 때 생성된다.
- Highlight on Page 190 | Loc. 2899-2908 | Added on Sunday, January 01, 2017, 04:21 PM
웨이스브로드Burton Weisbrod가 1975년 발표한 논고는 비영리 조직non-profit organization, NPO 연구의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웨이스브로드에게 NPO는 국가가 공급하지 못하는 공공재public goods에 대한 수요를 채우고자 생겨난 조직이다.19 실제로 다수결의 법칙이 적용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는 중간층 유권자median voter를 만족시킬 수밖에 없고, 따라서 공공재를 시민들이 바라는 것보다 적게 공급하게 된다. 여기에서 정부가 채우지 못한 시민들의 요구에 대응하는 것이 NPO다. 자신의 선호에 따라 공공재를 더 많이 소비하려는 사람 모두가 NPO에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사유재산을 창출하지만 긍정적인 외부 효과가 강한 상업적 비영리 활동뿐만 아니라, 순수한 지출 조직인 ‘비영리 기부 단체’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NPO는 특정한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 즉 정부가 공공재를 적절히 공급하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다.
- Highlight on Page 202 | Loc. 3091-3105 | Added on Sunday, January 01, 2017, 06:22 PM
그 전에 시민경제가 위축되면서 목적ends과 성과outcome가 같은 것이라는 보편적 믿음이 퍼졌으며, 그 결과 효율성efficiency에 대한 판단과 효과성effectiveness에 대한 판단이 내용상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한 한 가지 예로, 아픈 사람이 치료를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병원이 취한 행위의 결과는 치료의 성과로 드러날 것이고, 의료 전문가가 정해놓은 기술적 기준에 따라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위의 목적은 어떤 경우에는 이익 달성일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집단의 효용일 수도 있다. 자, 효과성은 행위와 의도한 목적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인 반면, 효율성은 행위와 성과 사이의 관계가 지닌 속성이다. 따라서 행위의 성과와 목적을 혼동한다면, 효율성과 효과성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져버린다. 그 결과 다양한 조직 형태에 대한 평가가 효율성(효과성과 혼동된)만을 기초로 삼는다면, NPO는 꼭 닮은 자본주의 조직에 언제나 밀리고 만다. 게다가 성과의 가치는 목적을 평가하는 것과 똑같은 기준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사람들에겐 성과에 대한 선호뿐 아니라, 행위를 일으킨 목적에 대한 선호 또한 있다는 사실은 흔히 간과된다. 따라서 공식적 경제 이론에 깔린 ‘재화는 재화다(goods are goods)’라는 식의 가정은 적절치 않다. 실제로 소비자(혹은 사용자)는 행위에 깔린 목적도 알고 싶어 한다. 예를 들어 소비자는 원하는 재화가 누구에게서 왔는지,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또한 알고 싶어 한다.
- Highlight on Page 210 | Loc. 3219-30 | Added on Sunday, January 01, 2017, 07:16 PM
결론을 맺자면, 사적 재화의 생산과 소비의 문제를 설명하는 데 공리주의적 틀이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관계재를 다루는 경우 전통적 경제 모델의 우아한 단순성은 마법처럼 사라져버린다. 중요한 사실은 서구 사회에서 사적 재화라는 경제적 범주(그 소비가 다른 이에게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는 재화)는 서서히 지반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때보다 중요성이 커지는 재화의 범주는(상대적 의미에서) 공공재와 관계재다.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가 점점 익명성에 젖어들수록 개인이 사회적 인정을 받고자 자신의 정체성을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적어지기 때문이다. 고로 재화가 우리가 누구인지 타인에게 소통하기 위한 주된 수단이 되고 말았다. 내 이웃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인정받으려는 마음에 새 스포츠카를 집 앞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웃과 소통한다. 이 때문에 현대 사회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익명성, 사적인 것으로의 회귀 현상은 사적 재화의 소비를 늘리는 대신 사적 재화를 공공재로 변모시킨다. 이것이 현대 사회의 전형적 모습이다. 관계재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공공’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짚어두자. 관계재란 둘 이상의 사람 사이에서만 소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 Highlight on Page 211 | Loc. 3235-52 | Added on Sunday, January 01, 2017, 07:20 PM
종종 간과되곤 하는데, 경제학의 초창기 역사는 행복이라는 범주를 중심에 둔 것이 특징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경제학은 본질적으로 행복의 과학으로 여겨졌고, ‘행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경제학의 주된 기능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흄이 자신의 책 《인성론》에서 아래와 같이 쓴 바는 특히 의미심장하다. 게리 베커, 로버트 루카스 등 인간에 대한 공리주의적 접근을 주도한 경제학자 다수가 시카고 대학 교수진이었던 탓에 붙인 이름이다. 맥패든은 완벽한 도구적 합리성에 부합하는 소비자를 가정하고, 그에게 ‘시카고 맨’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논의를 전개한다. 완전한 고독은 아마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일 것이다. 무리와 떨어져 즐긴다면 모든 쾌락은 약해지고, 모든 고통은 더 잔혹하고 더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자부심, 야망, 탐욕, 호기심, 원한, 욕정 등 어떤 정념이든 영혼, 즉 정념을 움직이는 원칙은 모두 공감이다. 정념에 힘이 있다면 전적으로 다른 이의 사고나 정서로부터 온다. 자연의 힘과 요소들 모두가 한 사람을 섬기고 그에 복종하고자 협력하게 하라: 태양이 그 명령에 따라 뜨고 지도록 하라. 바다와 강이 그를 기쁘게 하고자 넘실거리며, 대지는 그에게 유용하고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즉시 선사한다. 그럼에도 그는 적어도 행복을 나누고 존경과 우정을 선사할 다른 한 명의 사람이 있기 전에는 여전히 비참할 것이다.38 행복을 완전히 누리려면 누군가와 나누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효용이 극대화할 때 벌어지는 일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앞서 보았듯이 19세기 말 한계효용론 혁명 탓에 효용의 범주는 행복을 경제 담론에서 완전히 밀어냈다. 이 모든 것을 따져보면 경제학이 ‘우울한 과학’으로 자리 잡은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이 문제는 마지막 장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 Highlight on Page 213 | Loc. 3255-70 | Added on Sunday, January 01, 2017, 07:22 PM
오늘날 복지국가의 위기는 복지국가의 특정 형태, 즉 국가통제주의 모델의 위기다. 애초에 복지국가를 가능케 한 가치의 위기도 아니요, 사회국가의 쟁취가 산업 문명화civilization의 맥락에서 이룩한 민주적·시민적 진보를 가장 높은 형태로 구현해낸 것에 속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통제주의 모델의 위기는 그 뿌리가 본성상 재정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통제주의 모델이 자유와 평등을 조화롭게 구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의 표현처럼 이른바 ‘제2의 근대성second modernity’아래 사는 선진 사회 시민들은 더 이상 평등의 확대를 자유의 축소와 맞바꾸려 하지 않는다. 평등 추구가 시민 자유의 지평 확대와 충돌하면 결국 효율성이 대가를 치른다. 여기에서 재정 위기가 시작된다. 요점은 필수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고, 다양한 유형의 가치재를 온정주의적 방식으로는 시민들에게 배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온정주의적 방식은 수혜자의 기호나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마갤릿Avishai Margalit이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공정한 사회 구현을 목표로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품위 있는 사회’, 시민들이 지닌 적극적 의미의 자유를 부인하면서 너그러운 혜택을 베풂으로써 사회 구성원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다. 오늘날의 여건에서 볼 때 가장 파괴적인 모욕이자 고로 사회적 배제인 형태는 경제적 소외다.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존재라는 느낌은 착취당하는 느낌보다 더 나쁘다. 착취당한다고 인식하면 거의 언제나 어떤 종류의 반응을 일으키고 따라서 상황이 변화한다. 그러나 불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은 체념과 심각한 상실을 가져온다.
- Highlight on Page 228 | Loc. 3494-3527 | Added on Saturday, January 21, 2017, 10:46 AM
그러면 등가교환의 원칙(영리 기업 활동의 통상적 기초)과 우리가 여기서 ‘상호성의 원칙’이라고 부르는 것(NPO 운영 양식의 통상적 기초)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무엇일까? 콤Serge-Christophe Kolm의 접근법에 따르면, 상호성은 대체로 평등한 조건에 놓인 사람들 간의 상호 독립적이지만 서로 연결된, 일련의 양방향성 양도들이다.8 여기서 독립적이라 함은 각각의 양도가 자체로 자발적(따라서 자유롭다)이라는 뜻으로서, 행위 주체의 동기에 영향력을 끼치는 외적 의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갚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 없이 양도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여기서의 논리는 계약처럼 조건적이지도, 그렇다고 자선처럼 순수하게 무조건적이지도 않다. 내가 상대에게 베푸는 친절은 상대가 행동을 취하도록 하는 전제 조건이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내 목적은 달성되지 않는다. 카예는 상호성의 이런 첫 번째 특성을 ‘무조건적 조건부unconditional-conditionality’라고 불렀다.9 우리가 보기에 이 특성이 계약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관계와 상호성을 구분한다(계약 역시 상호성의 원시적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heon Ethics)》에 묘사된 우정에 대한 고전적 이론과 같은 맥락에서 보면, 상호성은 단일 행위에 대해서는 조건부가 아니지만 관계 자체에 대한 일반적 경향에 대해서는 조건부다. 상호성을 따르는 관계에서 상대의 반응(또는 무반응)은 계약에서처럼 그 자체로 중요하지는 않지만 경향을 나타내는 신호로서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만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만나지 못하면 관계를 끊는다. 수차례의 거절은 상대의 경향이 달라졌다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등가교환에서 양도는 행위 주체 간 상호 의존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외적 권위가 계약상의 의무를 강제하고자 언제나 개입할 수 있다. 상호성 아래서는 비슷한 일이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등가교환과 상호적 관계 모두 관료-행정적 유형이나 순수하게 경제적 유형의 지배에 기초한 관계와 대척점에 있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한 방향으로 양도가 이루어지면 반대 방향으로의 양도가 의무적인 등가교환보다 상호적 관계가 훨씬 자유롭다. 상호성의 또 다른 특성은 양도의 양방향성으로, 이것이 상호성을 순수한 이타성과 구분해준다. 순수한 이타성은 일방향으로만 이루어지는 양도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상호성과 순수한 이타성 모두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행위를 기초로 한다. 무조건적 조건부와 양도의 양방향성에 덧붙여 조건부 상호성의 세 번째 특성은 사역성(使役性, transitivity)이다. 사역성이란 상대의 반응(보답의 행위)이 애초에 그 반응을 유도한 사람에게로 반드시 되돌아갈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상호적 행위는 제3자에게 향할 수도 있다. A는 B가 A의 행위에 직접 반응할 때뿐 아니라 B가 C를 향해 보답을 보낼 때도 상호성을 경험한다. 이 점이 상호성을 서로 얽힌 이기주의와 다른 것으로 만들며, 상호성에 개방성을 부여한다.10 이 같은 특성은 ‘일반화된 상호성’이라고도 불리며, 자발적 헌혈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상호성의 구조는 통상 삼각 구도를 취하며, 따라서 개방적인 것이 바로 시민경제의 전형적 역학 원리다. 차이점을 구체화하면 시민 결사체나 사회적협동조합을 동호회와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된다. 동호회에서는 콤이 이야기한 앞서의 두 가지 특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 Highlight on Page 233 | Loc. 3568-75 | Added on Monday, January 23, 2017, 06:02 PM
따라서 상호성의 원칙과 등가교환의 원칙 중 한 가지만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시의적절하지도, 이치에 맞지도 않다. 인간다운 경제에는 두 원칙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선 장들에서 보았듯이, 많은 학자가 시장이 이익의 원칙만으로는 스스로 그리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내다보았다. 모든 종류의 거래를 등가교환의 문화 위에 성공적으로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면 순진한 일이다. 등가교환의 문화가 지배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개인의 책임은 계약으로 합의한 것과 같아질 것이다. 결국 모두가 ‘계약상’에 있는 것만을 행할 것이고, 이는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등가교환의 문화는 상호성의 문화와 결합되지 않는다면 진보의 가능성 자체를 위협한다.
- Highlight on Page 235 | Loc. 3589-97 | Added on Monday, January 23, 2017, 06:05 PM
타인을 인정하는 것은 타인의 존재할 권리만이 아니라 타인이 존재할 필요를 내포한다. 그래야만 그와의 관계 안에 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을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인정하면서 동시에 내 자아실현이라는 목적의 도구로서도 인정하는 것, 이를 통해 두 가지 차원이 통합된다. 인정을 상호 이기주의의 교묘한 형태로 해석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정에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상성이 필요하다. 철학자 토도로프Tzvetan Todorov가 말한 바처럼 “내가 누군가에게 나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할 때, 그는 동시에 나에게 자신을 인정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상호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 둘 중 하나는 인정을 포기해서 나머지 한 사람이 인정을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15 이것이 헤겔 등의 근대 철학과, 아들러Alfred Adler와 일부 정통 프로이트 학파 등의 개인주의 심리학에서 인정에 대한 욕구가 상대에 대한 권력 및 지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