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대참사 (DanielLyons)
1. 해변에 좌초된 백인 남자
2. 오리가 꽥꽥 울면
3. 내가 '허브스팟'에 입사한 이유
4. 스타트업 사이비 종교
5. 그냥 좀 알아듣게 말하면 안돼?
코드는 조직의 요구사항이 개인의 요구사항에 우선한다는 일종의 기업 유토피아를 묘사하고 있었다(“팀 〉 개인”이라고 적시한 슬라이드도 있었다). ‘일이 곧 삶’이기 때문에 일과 사생활의 균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 성명서를 작성하면서 다미시는 매우 흥미로운 실험을 한 셈이다. 대개 유기적으로 진화하기 마련인 기업문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다음 조직에 적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코드의 부재에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모종의 공감대를 암시했다. 사실은 다미시 ‘자신’이 사랑하는 회사를 만들고 직원들도 자신처럼 회사를 사랑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기대했던 것이다.
다미시는 자신이 일종의 신세대 경영에 대한 구루로 인식되기를 바랐다. 기업 경영의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 말이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입사한 뒤 몇 달간 내가 지켜본 바로는 다미시는 엔지니어링 부서를 직접 운영하지도 않았고 허브스팟 내에서 딱히 정해진 업무를 맡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중요한 투자자였을 뿐이다. 허브스팟 창업 당시 50만 달러를 종자돈으로 투자했고 회사 지분의 9퍼센트 정도를 보유했다. 개인으로서는 최대주주였다. 다미시보다 많은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허브스팟의 벤처캐피털 투자사들뿐이었다. 다미시가 기업문화 연구를 위해 허브스팟을 자신의 실험실로 사용하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분위기였다.
6. 교주님의 끝내주는 곰 인형
7. 보다 더 멍청한 블로그를 만들자
8. 멍청이 폭증 현상
하비는 내게 저널리즘 업계를 떠나 허브스팟에 입사하도록 권유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이따금 연락하면서 내 근황을 묻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하비에게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내가 느낀 좌절감은 단지 ‘겁 없는 금요일’ 같은 미치광이 짓거리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든 상황이 절망적이었다.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만 누구의 의사결정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도대체 누가 책임자인가?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고 동시에 모두의 책임이기도 했다. 어느 날에는 대기업 고객에 집중하는 것이 회사 방침이라는 지침이 전 직원들에게 하달되었다. 그 결정은 확정적이며 결코 변경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주 뒤, 회사 방침은 소기업에 대한 판매 증진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나는 걱정스럽다네.” 내가 하비에게 말했다. “이 회사는 통제력을 상실한 것 같단 말일세.”
하비는 허브스팟에 대해 내가 하는 말을 듣고는 지극히 정상적인 회사라고 했다. “스타트업에는 아주 큰 비밀이 있는데, 그게 뭔지 알고 있나?” 하비가 한 말이다. “아주 큰 비밀이란 누구도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알지 못한다는 거야. 경영에 대해서라면 완전 아마추어에 불과해. 그때그때 아귀를 맞춰나갈 뿐이지.”
IT 스타트업들이 연륜과 경험이 풍부한 인재 영입에 노력을 쏟아붓지만, 그렇게 합류한 사람들이 결국엔 오래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는 사례는 차고도 넘쳤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업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퇴사 이유가 되기도 했다. 사진 공유 애플리케이션인 스냅쳇Snapchat을 설립한 25세의 에반 스피겔Evan Spiegel은 10억 달러의 벤처캐피털을 유치하는 데 성공한 직후, 실제로 사업을 운영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할 필요성을 깨달았다. 어쩌면 투자자들이 그렇게 하도록 조언한 것일 수도 있었다. 〈비즈니스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따르면, 스피겔은 페이스북과 구글로부터 숙달된 인재들을 영입했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고위 임원 8명이 회사를 떠났으며 그중 몇 명은 채 6개월도 버티지 못했다.
9. 돌이킬 수 없는 실수
10. 보일러룸에서 살아남기
11. 빌어먹을 핼러윈 파티
“제가 조언을 하나 드리죠.” 토마스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나에게 마케팅 전문가가 되려는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어떻게든 허브스팟에 남아 있으라고 제안했다. “인류학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그가 말했다. “이제껏 접해본 적 없는 생소한 문화권에 들어가 그들의 의례를 연구하는 인류학자 말입니다. 나중에 그에 대해 글을 써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꽤 흥미로울 것 같은데요.”
12. 직원은 대체 가능 부속품
기술보다는 비즈니스 모델
새로운 직장에서 깨달은 또 다른 한 가지는, 이 업계가 여전히 “기술산업”으로 회자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더는 기술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훌륭한 기술로는 대가를 기대할 수 없어. 더는 그럴 일은 없다는 말이지.”
1980년대부터 줄곧 기술 업계에 몸담아 온 친구가 한 말이다. 한때 투자은행가로 일한 바 있는 그 친구는 지금은 스타트업들에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관건은 사업 모델이야. 단기간에 규모를 키울 수 있는 회사라면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지. 얼마나 빨리 몸집을 키울 수 있는가의 문제일 뿐이야. 이익 창출은 제쳐놓고 무조건 덩치를 키워야 하는 거지.”
바로 허브스팟이 추구하던 바였다. 허브스팟이 보유한 기술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매출 성장세를 보라!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엄청난 자금을 허브스팟에 쏟아붓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허브스팟이 결국 IPO를 성공시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허브스팟이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을 채용하는 이유 또한 그것이었다. 투자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즐겁게 직장생활 하며 세상을 바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 무리의 젊은 직원들이었다. 그런 게 이른바 되는 장사였다.
청년 고용
청년 고용의 또 다른 이유는 저임금 노동력이기 때문이었다. 허브스팟은 적자운영 상태였지만 노동집약 업무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수백 명의 청년을 가능한 한 최저임금을 주며 영업과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가? 방법은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을 고용하고 직장을 재미있는 곳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무제한 제공하는 공짜 맥주와 테이블 풋볼이면 족할 터였다. 업무 공간을 유치원과 프랫하우스를 섞어놓는 식으로 꾸며놓고 이따금 대대적인 파티를 열어주면 된다. 그렇게 하면 대학 졸업생들을 줄 서게 만드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고작 최저 임금에, 지속적이고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면서도 거미원숭이 우리 안에서 피땀 흘려 일할 사회초년생들은 넘쳐날 것이었다. 그들을 동굴 같은 커다란 공간에 어깨가 서로 닿을 정도로 최대한 다닥다닥 앉혀놓으면 비용을 더욱 줄일 수 있었다. 업무 공간을 그렇게 구성해 비용을 절감하려 한다는 내용은 그들에게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 그저 그들 세대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일하도록 해주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하면 될 뿐이었다.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를 깔아놓고 그 위에 그들의 일이 매우 의미 있는 무엇이라고 믿게 만들 만한 신화를 창조해놓으면 금상첨화였다. 밀레니얼 세대는 돈보다는 사명감에 더 크게 동기를 부여받는 성향이라고 추정되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사명을 제공하면 되는 것이었다.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 보다 거시적 차원으로 본다면 기업과 사회 사이에 존재했던 사회적 합의 파열이 가장 큰 변화였다. 한때,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만 하더라도 기업은 근로자들을 보살피고 사회의 훌륭한 기업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사회적 합의는 내팽개쳐진 상태다. 작금의 ‘21세기형 직장’에서 고용주는 피고용인들에게 충성심을 요구할지언정, 그에 대한 보답으로 피고용인들에게 어떤 충정忠情도 갖지 않는다. 평생 지속될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기는커녕 직원들을 일회용 부품으로 간주한다. 기업에 끼워놓고 1~2년 동안 사용하다가 교체해버리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이런 모델에서는 근로자는 단기 계약기간 동안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리랜서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평생 수십 개의 일자리를 거칠 수도 있는 것이다.
가족이 아니라 팀
“회사는 가족이 아니다.” 링크트인의 공동창업자로서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리드 호프먼Reid Hoffman 회장이 저서 《얼라이언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 관리법The Alliance: Managing Talent in the Networked Age》에서 한 말이다. 호프먼은 근로자는 직장을 일종의 ‘복무기간’의 관점에서 봐야 하며 장기간 체류할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관점에서 일자리는 하나의 거래일 뿐이다. 근로자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며 그러한 호혜적인 거래 관계가 끝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라 팀입니다.”
넷플릭스는 프로 스포츠 팀과 마찬가지로 기업 또한 “모든 포지션에 스타플레이어”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가족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한 해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챙길 수 있고 30~40세에 은퇴해야 하는 프로 운동선수라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겠지만, 일반 사원들에게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다소 무자비한 처사이지 않은가. 그 결과, 〈포천Fortune〉, 〈뉴리퍼블릭The New Republic〉, 〈블룸버그Bloomberg〉, 〈뉴욕매거진New York Magazine〉 등 무수한 매체에서 쏟아낸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실리콘밸리는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살아가는 곳으로 변모했다. 언제든 더 나은, 더 저렴한 노동력이 나타나는 즉시 회사에서 가차 없이 직원을 잘라버리는 곳이 되었다는 얘기다.
40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20~25개의 직장을 거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어느 누구도 이 같은 현상이 근로자에게 유익할 수 있다고 쉽사리 말하지 못할 것이다. 젊을 때는 경험 삼아 이런저런 일을 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면 누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시기에 도달한다는 말이다. 호프먼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직장을 찾는 일로 인생의 절반을 보내야 한다. 면접을 보고, 직업 훈련을 이수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롭게 건강보험에 가입하고(그나마 건강보험이 제공되는 경우에 말이다), 세금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퇴직연금 계좌를 옮기는 일 따위로 세월을 허비하게 된다는 얘기다. 사내 어디 어디에 테이블 풋볼이 놓여 있는지 채 다 알기도 전에 새로운 직장을 찾아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유독 견디기 힘든 직장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 아마존Amazon은 호프먼의 단기 “복무기간” 철학에 더하여 잔인한 꼼수까지 부렸다. 급여 비교 웹사이트인 패이스케일PayScale의 2013년 데이터에 따르면, 아마존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1년에 불과했다. 아마존은 자사 근로자에게 4년에 걸쳐 분할 지급되는 제한적인 스톡옵션을 제공한다. 그러나 대다수 기술기업들이 4년에 걸쳐 매해 균등한 비율로 옵션을 제공하는 데 반해, 아마존에서는 제공 비율을 조정해 3년 후와 4년 뒤 큰 몫이 몰리도록 했다. 1년만 근무하고 회사를 떠나는 사람에게는 약속된 스톡옵션의 고작 5퍼센트만 주어지는 것이다.
이익 없는 고속 성장의 수혜자, 그리고 피해자
기업 창업자이자 벤처캐피털리스트인 리드 호프먼이 “회사는 가족이 아니다”라는 접근방식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고속성장-적자경영-기업공개라는 경영 방식의 최대 수혜자 중 한 사람이었다. 호프먼의 첫 번째 성공작인 “페이팔PayPal” 역시 적자 상태에서 IPO를 단행했다. 2002년 호프먼은 링크트인의 공동창업자가 되었다. 그 뒤 13년 동안 링크트인은 고작 3년만 이익을 창출했을 뿐 나머지 10년은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들어 그 손실액 규모는 엄청나게 불어났다. 링크트인은 2015년에는 1월부터 9월까지만 따져도 1억 5,0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호프먼 개인의 순자산은 거의 50억 달러에 육박했다. 온라인 소매기업 아마존은 21년간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주목할 만한 수준의 이익을 창출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의 자산 규모는 600억 달러에 이른다.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닷컴의 경우,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합산 순손실액이 7억 5,000만 달러에 이르렀지만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의 자산은 무려 40억 달러가 되었다.
누군가는 손해를 떠안아야 했다. 2015년 여름, 나는 패트와 사담을 나눈 적이 있다. 패트는 실리콘밸리에서 연쇄 창업가로 이름이 알려진, 비공개 기업 CEO이자 엔젤투자자였다. 대화 주제는 천정부지로 높아지던 비공개 기업의 가치평가액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실리콘밸리는 이른바 유니콘 기업(시장가치 1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받는 비공개 기업)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심지어 수백억 달러 가치가 있다고 추정되는 비공개 기업들도 있었다. 〈포천〉은 당시 145개의 유니콘 기업들이 있으며 불과 7개월 전과 비교했을 때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라고 보도했다.
“결국 누가 피해를 입게 될지 뻔히 보이죠, 그렇지 않아요?” 패트가 말했다.
“글쎄,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아닐까요?” 내가 되물었다.
“아뇨! 투자자들은 끄떡없어요.”
패트의 설명은 이랬다. 터무니없는 가치평가액에 기초해 후기 스타트업, 즉 기업공개를 목전에 둔 스타트업에 투자되는 자본은 일명 ‘래칫rachet’이라는 일종의 보증을 제공받는다. 래칫은 만약 기업이 개인 투자자들이 기준으로 삼은 가치평가액보다 낮게 공개되는 경우, 그들의 투자 원금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주식을 추가 제공한다는 약속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투자자가 최소 20퍼센트에 달하는 투자수익을 보장받기도 한다. 시장이 붕괴되는 종말론적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 한 결코 투자자가 손해 볼 일이 없는 구조다. 그들에게는 전혀 리스크가 따르지 않는 셈이다.
창업자들 또한 자기 몫을 빼내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루폰은 IPO에 앞선 마지막 벤처 자본 유치 라운드에서 11억 달러를 끌어들였다. 그러나 그 투자금의 비교적 미미한 부분만이 회사를 위해 사용되었을 뿐, 대부분(9억 4,600만 달러)은 지분을 벤처캐피털 투자자들에게 매도한 내부자들 주머니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창업자들은 안전한 겁니다. 자기들이 소유한 개인 지분을 투자유치 기간 중에 높은 가액으로 매도하니까요.” 패트의 말이다. “그들은 IPO를 기다리며 앉아 있지 않고 그 전에 이미 자기 몫을 챙겨놓는다는 말입니다. 결국 손해 보는 사람은 누구겠어요?”
나는 그래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맙소사, 바보가 따로 없군요. 바로 근로자들이라고요!”
패트의 설명은 이렇게 이어졌다. 근로자는 급여의 일부로 스톡옵션을 받는다. 자사주의 권리행사 가격은 지분 부여 당시 기업가치평가액에 근거하여 결정된다. 후반기에 입사한 근로자에게는 권리행사 가격이 높은 지분이 제공될 것이다. 만약 공개 당시 가치평가액이 그보다 낮아지면, 다시 말해 일명 “크램다운cramdown” 상황에 직면하면 근로자의 옵션은 손실 상태가 된다.
패트는 그런 상황이 대다수 유니콘 기업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후기 투자자들이 정상적이지 않은 가치평가액을 기준으로 투자하면 할수록 크램다운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근로자들만 엿 먹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거죠.” 패트의 결론이다.
스타트업의 IPO로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떼돈을 벌고 창업자들은 수백만 달러를 챙긴다. 그러나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미미하거나 아예 없다. 2015년 12월 〈블룸버그〉에 실린 관련 기사의 제목은 이러했다.
“엄청난 규모의 IPO, 스타트업 근로자들에게 돌아간 것은 보잘것없는 배당금.”
회사가 상장됐는데도 자신은 백만장자가 되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기술기업 근로자들은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스톡옵션을 일종의 보너스(뜻밖의 횡재)로 보느냐 아니면 급여의 일부로 간주하느냐에 따라 또 달라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타트업 근로자들이 스톡옵션을 받기 위해 급여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스톡옵션을 급여의 일부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들 중 일부는 자신에게 지급된 것이 실제로 돈의 가치가 없는 한낱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냉소주의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당사자의 잘못이다.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리스크를 스스로 감수했고 기대했던 결과에 이르지 못한 것일 뿐이니 할 말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 리스크가 적절히 공유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상층부의 소수가 자신들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조작된 게임에서 돈을 챙기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게다가 벤처캐피털리스트들과 창업자들은 이런 사실을 결코 모르지 않으며 개의치도 않는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을 엿 먹일 수 있을까 궁리하고 앉아 있는 창업자는 물론 없겠지요.” 패트의 말이다. “그렇지만 주변 친구도 다, 다른 CEO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자연히 그 길을 따르게 되는 겁니다.”
“그 사람들 일말의 죄책감 같은 건 없을까요?” 내가 물었다. “회사에 나가면 직원들을 마주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패트는 깊게 숨을 들이 쉬었다.
“난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잔뼈가 굵었어요. 내가 아는 한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이 하는 일에 죄책감 따위를 느끼지는 않아요. 그 사람들을 오랜 시간 관찰한 바에 따르면, 다들 스스로 도덕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해요. 고결한 진실성을 가지고 경영에 임하고 있다고 꽉 믿고 있다는 얘기지요. 자신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바로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틀린 말도 아니다. 적어도 그들 자신을 위해서는 그럴 것이니 말이다.
13. 코미디 무대에 선 CEO
14. 이번 보스는 괜찮을지도?
15. 스타트업의 시끄러운 노땅
16. 엉뚱한 사과
17. 물고 뜯는 블랙코미디
18. 모래 위에 세운 스타트업
19. 헐리우드에선 노땅도 괜찮아
20. 나만 좋으면 그만
21. 회사는 언제든 당신을 자를 수 있어요
22. 치사한 괴롭힘
23. 그래봤자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
24. 'HEART'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25. 졸업 (당)하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