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숴(李碩)의 저작.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고고학 발견 성과를 토대로 역경을 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
이 책은 하은주 시대의 은나라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 성과를 토대로 당시의 시대상을 설명하는 책이다. 은나라는 은 지역의 나라라는 뜻으로, 지역 관점에서 부르는 명칭이고, 그 나라의 부족 이름이 상족이었기 때문에, 상나라라고도 한다. 상업 할 때의 그 상이다.
이 책에 의하면, 상나라에서는 인신공양 제사가 성행했었다고 한다. 왕궁에서뿐만이 아니라 귀족들, 그리고 평민들에 이르기까지 깊숙히 인신공양 제사가 성행해있었고, 제사가 끝난 후에는 인육을 먹는 풍습이 만연했었다.
상나라(=은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의 문왕(이름은 희창)은, 상나라에 노예를 잡아다 바치던 부족의 일원이었다. 어느날 상나라의 주왕이, 희창의 첫째 아들인 백읍고를 산 채로 솥에 삶아서 죽이고, 그 고기를 문왕에게 먹게 하는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을 계기로 상나라를 멸망시킬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그가 상나라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으니, 제사와 점괘를 통해서 귀신의 뜻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자신의 거사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몰래 trial & error를 거쳐서 점치는 방법을 연구한다. 그것을 기록한 책이 역경이다.
문왕은 상나라 정벌을 준비하던 도중 사망하고, 그 둘째 아들인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상나라의 인신공양 풍습을 폐지할 뿐더러 그 흔적을 역사 속에서 완전히 없애버렸다. 그때, 셋째 아들 (무왕의 동생)인 주공도 큰 조력자로 역할을 하고, 무왕 사후 조카(무왕의 아들) 성왕의 섭정을 맡는다. 성왕이 성인이 되자 자발적으로 섭정 자리를 내놓고 자신은 신하의 자리로 물러난다.
이보다 조금 더 후대에, 공자가 등장해서 예와 악을 세우는 일을 하는데, 그 배경에 이러한 야만의 시대가 있었다. (저자인 리숴의 다른 저작으로, "인간 공자, 난세를 살다"라는 책이 있다. 원래는 공자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그 일부 쳅터를 상세하게 쓴 내용이 이 상나라 정벌이라고 저자 서문에 쓰여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논어, 대학 등 공자의 사상이 고리타분하고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인신공양 제사와 인육섭취(?)가 만연해있었던 선대의, 그리고 그 잔재가 남아있던 당대에,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여는데 공헌한, 시대를 변혁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