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저. 책의 해석은 저자/역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기 때문에, 이 저자가 믿을만한 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내용을 파악해보자.

들어가는 말. 리더의 입장에서 사람을 알아보는 책, '논어'

『논어』는 사람 보는 책이다. 그렇다고 관상(觀相) 보는 법을 일러주는 책은 아니다. 한마디로 말과 행동, 즉 언행(言行)을 살펴 그 사람의 깊은 속을 들여다 보려는 것이 『논어』식의 사람 보는 법이다. 그것이 옛사람들이 즐겨 썼던 지인지감(知人之鑑), 즉 사람을 알아보는 거울이라는 것이고 또 『논어』에 관한 한 한・중・일 최고의 주석서 중 하나인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를 쓴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말로는 관인지법(觀人之法), 즉 사람을 살펴보는 방법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제쳐두고 많은 사람들은 맨 앞에 나오는 학이시습(學而時習)은 들어봤어도 『논어』라는 책이 어떤 구절로 끝나는지를 잘 모르는 듯하다. 사실 그 끝 구절이야말로 『논어』가 어떤 책인지를 설명해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요왈 3)

이 구절은 그냥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논어』라는 책의 최종 결론이라는 점에서 그 뜻을 명확히 해야 한다. 말을 안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하는 말만 듣고서도 정확히 그 속내를 읽어낸다는 뜻이다. 그래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짧은 구절이지만 그 안에 함축된 의미는 『논어』 전체를 통해 쉽게 풀어낼 수 있다. 사실 행동으로 드러나고 나면 그 사람을 아는 것은 쉽다. 대신 행동으로 드러나기 전, 그 사람이 하는 말만 가지고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짧은 몇 마디 말만으로도 그 사람의 사람됨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 살아가는 것이 한결 쉬울 것이다.

중용(中庸)은 명사가 아니라 적중하여[中중] 유지한다[庸용=常상]는 두 개의 동사다. 사안의 본질에 적중해 그것을 오래 품고 가는 능력이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에는 부중(不中)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 또한 법률 적용이나 어떤 문제의 해결책 등이 사안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리나 사안에 적중하지 못했다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논어』 이해는 여전히 선비의 정신 수련 방법 정도에 머물고 있다. 지도자가 사람 보는 법을 배워 훌륭한 사람들과 더불어 멋진 일을 해내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실 지금처럼 선비의 심신수양서 정도로 『논어』라는 책을 곡해시킨 장본인은 주자(朱子)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이다. 송나라 유학자들이 중심이 된 이들은 원래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논어』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이라는 사서(四書)의 체계를 만든 장본인들이다. 그전에는 이런 체계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런 체계에 들어가는 순간 제왕학(帝王學)이나 리더십 이론으로서의 『논어』의 면모는 다 사라지고 그 책은 한갓 마음 다스리는 법 정도를 알려주는 책으로 전락해버린다.

사서(四書)라고 하는 성리학의 굴레를 벗겨낼 때 『논어』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목소리로 그 안에 담겨 있던 내면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것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을 위한 지인지감의 지혜다.

『논어』를 둘러싼 주자학과 반(反)주자학의 대립을 모르는 독자라면 이게 무슨 소린가 할지 몰라서 간단한 예 한 가지를 들겠다. 『조선왕조실록』 중에서 『숙종실록』 숙종 1년(1675년) 1월 18일의 기록이다.

임금이 주강(晝講-경연의 일종)에 나아갔다. 윤휴(尹鑴)1)도 입시(入侍)했다. 윤휴가 말했다.
“『논어』의 주(註)는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동지사(同知事) 김석주(金錫胄)2)가 말했다.
“『논어』의 주는 버릴 수 없습니다.”

윤휴가 말했다.
“(임금의 공부는) 과거(科擧)를 보는 선비가 공부하는 것과 다르니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경연) 검토관(檢討官) 이하진(李夏鎭)이 말했다.
“윤휴의 말이 매우 옳습니다.”

1장. 다스리는 자, 언제나 살피고 주의하라

리더가 혹(惑)하면 망한다

나라가 망하는 이유나 원인은 수없이 많다. ... 결국 나라가 망하는 것은 실은 내환, 그중에서도 내분(內分)이 결정적이다.

그런데 내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다양한 진단이 있겠지만 결국은 리더의 리더십 붕괴 혹은 무능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가 없다.

공자가 말한 혹 혹은 불혹의 의미를 알고서 이야기를 진행하자. 『논어』 안연(顔淵) 편에서 제자 자장(子張)이 혹(惑)이 무슨 뜻인지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자기가 사랑한다고 해서 (이미) 죽은 것도 살기를 바라고 자기가 미워한다고 해서 (버젓이) 살아 있는 것도 죽기를 바라는 것이 혹(惑)이다.”(안연 10)

이 말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사람의 소관이지만 죽고 사는 것은 사람의 소관이 아닌데 그 경계를 헷갈리는 것이 바로 혹(惑)이라는 뜻이다. 앞서 공자가 자로에게 했던 말과 그대로 통한다. 인간사(人間事)는 인간사의 범위를 넘어서서 해결을 시도하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같은 안연 편에서 이번에는 번지(樊遲)8)라는 제자가 혹(惑)이 무슨 뜻인지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하루아침의 분노로 자신을 망각해 그 (재앙이) 부모에게까지 미치게 하는 것이 혹(惑) 아니겠는가?”(안연 21)

유학자 범조우(范祖禹)는 이렇게 풀이했다. “사물에 감정적 영향을 받아 동요되기 쉬운 것으로 분노만 한 것이 없으니, 자신을 잊어서 그 부모에게까지 화가 미치게 함은 미혹됨이 심한 것이다. 미혹됨이 심한 것은 반드시 세미(細微)한 데서 일어나니, 이것을 조기에 분별한다면 크게 미혹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논어』의 여러 곳에서 공자는 “지자(知者)는 불혹(不惑)한다”고 말한다. 이때 지자는 그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보다는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 혹은 인간사의 사리(事理)를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결국 40세에 불혹이라고 했으니 사람을 볼 줄 알고 사리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매한 자가 불혹할 수도 있으나 권력에 도취되면 아무리 뛰어난 자도 교만으로 인해 혹하기 마련이다.

달콤한 말 앞에서는 누구나 흔들린다

등통이나 이연년은 나라를 망치게 한 경우는 아니지만 명군이나 성군도 아첨에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임금도 사람인지라 신하의 능력보다는 자신의 사사로운 호불호(好不好)에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례를 소개한 사마천은 “심하구나! 사랑과 미움이 때에 따라 바뀌는 것이”라고 탄식했던 것이다.

언제나 교언영색(巧言令色), 아첨은 멀리하고 직언(直言)에만 귀 기울일 것 같은 세종도 어쩔 수 없이 사람이었다. 아첨에 늘 넘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이나 가족의 문제 앞에서는 세종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위인(偉人)’ 세종대왕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례는 계속된다.

간사한 자를 알아보는 능력을 갖춰라

『논어』 안연 편에서 제자 자장이 소문이 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뛰어난 지도자라면 바로 이런 소문만 요란한 자를 미리 살펴서 알아내야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지인지감(知人之鑑) 능력의 네 단계에 대해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면서 아는 자는 최고요, 배워서 아는 자는 다음이요, 겪고 나서야 그것을 배우는 자는 그다음이요, 겪고 나서도 배우려 하지 않으면 사람으로서 최하가 된다.”(계씨 9)

지도자에게는 뛰어난 이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보는 것[賢賢현현]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간사한 자가 간사하다는 것을 알아보는 것[奸奸간간]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뛰어난 이를 몰라본다고 해서 나라나 조직이 당장 망하지는 않지만 간사한 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가까이 할 경우 당장 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간신은 어떻게 식별해낼 것인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간신은 따로 있는가? 제왕학의 교과서인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쓴 진덕수(眞德秀)는 간신은 따로 있다기보다는 임금이 그렇게 만드는 측면이 많다고 보았다. 그는 한나라 제위를 찬탈한 왕망(王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초창기에 어찌 반드시 곧장 그의 마음속에 나라를 찬탈하려는 뜻이 있었겠습니까? 서리를 밟았을 때 (추위가 찾아오리라는 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그것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얼음이 된다고 했습니다.”

즉 맨 처음[始시]에 임금이 그 의도를 알아차렸다면 왕망은 더 이상 야망을 키워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진덕수의 진단이다.

이 책에서 진덕수는 찬탈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권력의 칼자루를 임금으로부터 빼앗아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문제를 훨씬 심도 있게 다룬다. 찬탈은 불과 50쪽에 불과하지만 ‘간사한 자가 주군을 옭아매는 실상’에 대해서는 일곱 가지 유형으로 나눠 무려 250쪽에 걸쳐 파고든다. 그만큼 간사한 자들이 임금을 옭아매는 기술은 다양하고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1 유형
주군의 속마음을 미리 읽어내 주군의 마음이 음란한 즐거움에 가 있음을 확인한 다음 그쪽으로 몰아간 후에 권력의 칼자루를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진나라 2세 황제와 조고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제2 유형
소인이 군자들을 해코지하려 할 때는 반드시 유력자와 굳게 결탁해 당을 만들어 도움을 받은 이후에 군자로 하여금 설 자리를 없게 만드는 것이다.
제3 유형
맨 처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상황은 훨씬 위험한 지경에 빠진다. 간사한 자들이 요행히 임금의 측근이 되면 임금의 마음속을 파고드는 꾀가 날로 교묘해지고 서로 기대어 밀어주는 무리[依憑의빙之지黨당]가 날로 번성해 안팎의 큰 권세가 이미 그들의 손에서 나오게 된다. ... 그래서 원제의 경우 석현의 간사스러움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결국 제거하지 못한 것은 제거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제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4 유형
원제처럼 용렬하고 어두운 임금일 때는 어진 이를 노골적으로 밀쳐내는데 이를 현제(顯擠)라고 한다. 반면에 뛰어나고 밝은 임금일 때는 암암리에 제거하는데 이를 음배(陰排)라고 한다. ... 유방이나 무제 모두 뛰어난 임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천거하여 높이는 듯하지만 사실상 은밀하게 밀쳐내는 술책을 알아차리지 못해 뛰어난 신하들을 잃은 경우라 하겠다. 이런 술책을 양예음제(陽譽陰擠)라 한다.
제5 유형
충언의 거스름과 아첨의 고분고분함이 인지상정임을 알고서 이를 악용하는 경우다. 따라서 임금 된 자가 이 점을 충분히 알고서 작은 말과 행동 하나에도 그 같은 움직임을 미리 막을 때라야 온갖 꾀를 써서 남의 마음을 알아내려는 간사함은 그 뜻을 얻지 못할 것이고 끊임없이 임금의 작은 것까지도 찾아 살피려는 계략은 시행될 수 없다. 이미 보았듯이 간사한 자들이 임금을 호리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가지, 즉 무조건 윗사람의 뜻에 맞추는 봉영(逢迎)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제6 유형
진덕수는 “간신이 나라를 좌지우지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언로를 막아서 임금을 저 위에 외로이 혼자 있게 만들고 또 맹인처럼 밖을 볼 수 없게 만든 다음에야 그 뜻한 바를 마구 펼쳐냈다”고 말한다. 당나라를 대표하는 간신 이임보(李林甫)21)의 술책이 그런 경우다.
제7 유형
신하를 누르고 싶어 하는 임금의 마음을 교묘하게 활용하는 중상모략이야말로 간신술의 최고라 하겠다.

이방원(李芳遠)의 리더십의 바탕으로 타고난 자질과 더불어 진덕수의 『대학연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태종 3년(1403년) 5월 21일 태종은 옥새와 각종 제사 기기들을 관장하던 상서사에 명하여 『대학연의』의 서문과 신하들이 그 책의 내용에 관해 쓴 글을 정리해 병풍을 만들게 했다. 교훈적이거나 중요한 구절들을 늘 가까이 두고자 함이었다.

태종이 주로 『대학연의』에서 배웠던 바는 바람직한 군신(君臣) 관계에 집중해 있다. 오늘날 용어로 말하면 리더십 문제다.

결국은 임금의 마음이다. 아첨은 아첨꾼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이 빌미를 제공하는 데서 시작한다. 조선의 태종 이상으로 아첨을 잘 끊어낸 중국의 임금은 당 태종이다. 진덕수는 『대학연의』에서 “간사스러운 아첨배들이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을 두려워한 인물로는 당 태종만 한 황제가 없었습니다. 당 태종은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봉덕이(封德彛),23) 우문사급(宇文士及),24) 권만기(權萬紀)25)의 무리들이 다 끝내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었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당 태종처럼 임금 스스로 마음을 바로 하는 것[正心정심]만이 아첨의 싹을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주공은 자신의 아들 백금(伯禽)30)에게 봉국인 노(魯)나라로 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했는데 이때 아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논어』 미자(微子) 편에 실려 있다. 이 말은 훗날 두고두고 임금들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의 모범으로 자리 잡았다.

“참된 군주는 그 친척을 버리지 않으며, 대신으로 하여금 써주지 않는 것을 원망하지 않게 하며, 선대왕의 옛 신하들이 큰 문제[大故대고]가 없는 한 버리지 않으며, 아랫사람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미자 10)

그중에서도 ‘아랫사람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갖춰져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無求무구備비於어一人일인]’는 말은 관(寬)의 본래적인 의미다. 즉 신하 한 사람에게 하나의 재능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발휘하게 해주고 나머지 다른 허물은 품어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너그러운 지도자인 것이다. 관(寬)의 반대는 인(吝)이다. 말 그대로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갖춰져 있기를 요구하는 것[求구備비於어一人일인]’이다. 게으르고 째째한 마음가짐이라 하겠다.

『논어』를 지금보다 훨씬 깊게 그리고 제왕학의 관점에서 이해했던 한(漢)나라 때는 관(寬)이라는 말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반고의 『한서』 ‘오행지(五行志)’에 나오는 한 대목을 보자.

“생각과 마음[思心사심]이 너그럽지 못한 것[不睿불예]을 일러 빼어나지 못하다[不聖불성]고 한다”고 할 때의 생각과 마음이란 마음에 사려 깊음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예(睿)는 너그러움[寬관]이다. 공자는 『논어』 팔일 편에서 말하기를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너그럽지 못하면[不寬불관] 내가 무엇으로써 그 사람을 살필 수 있으리오!”라고 했다. 이는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너그럽고 넓게[寬大관대] 신하를 품어 감싸주지[包容포용] 못하면 빼어난 자리[聖位성위=君位군위]에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즉 임금의 임금다움[德덕]이 바로 너그러움[寬관]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빼어남[聖성]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윗사람을 볼 때 마치 자식이 효도하는지 여부를 통해 그 자식 됨을 판단하듯 너그러움을 실마리로 해서 임금다움을 살펴보는 것이다.

『논어』 안연 편에서 제나라 경공과 공자는 이렇게 말을 주고받는다.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하는 법[政정]에 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경공은 이렇게 말한다. “좋은 말이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면 제아무리 곡식이 많이 있다 한들 내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는가?”(안연 11)

자식의 자식다움[子子자자]이 효(孝), 부모의 부모다움[父父부부]이 자(慈), 신하의 신하다움[臣臣신신]이 충(忠)이나 경(敬), 임금의 임금다움[君君군군]이 바로 관(寬)이다. 자식이면서 효가 없으면 자식이 아니듯이 임금이면서 관이 없으면 그것은 임금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인지감의 차원에서 주공을 짚어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그의 인재 사랑[賢賢현현]이다. 그냥 저기에 인재가 있구나 하고 알아보는데 그치는 것은 지인지감이 아니다. 열렬함이 동반돼야 한다.

'미루어 헤아림'은 곧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이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하나만 아는 사람은 미루어 헤아리는[推추] 능력이 제로(0)다. 조금만 주의해서 읽어보면 『논어』에는 바로 이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을 깨우치고 길러주려는 사례들이 수없이 많다.

인자, 지자, 용자(勇者) 모두 군자이기는 하지만 일정한 서열이 있는데 인자, 지자, 용자 순이며 안회는 인자, 자공은 지자, 자로는 용자의 전형적 인물로 『논어』에 등장한다.

학이(學而) 편에는 미루어 헤아림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화가 실려 있다. 역시 자공과 공자의 대화다.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지만 비굴하게 아첨[諂첨]을 하지 않는 것(사람)과 부유하지만 교만[驕교]하지 않는 것(사람)은 어떠합니까?”

공자는 말했다. “그것도 좋다. 허나 가난하지만 즐거이 살 줄 아는 것(사람)과 부유하지만 예를 좋아하는 것(사람)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자공은 말했다. “『시경』에 ‘잘라내고 쪼고 갈고 다듬듯’이라 하였으니 바로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려는 바입니다.”

공자는 말했다. “사(賜)야!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이미 지나간 것을 일깨워주자 앞으로 올 것도 아는구나!”(학이 15)

술이(述而) 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네 귀퉁이가 있는 물건을 갖고서 한 귀퉁이를 들어 보여주었을 때 나머지 세 귀퉁이를 미루어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다시 반복해서 가르쳐주지 않았다.”(술이 8)

공자는 예를 모르는 사람[不知禮者부지례자]은 비명횡사한다고 했다. 정확히 그대로다. 당시 생전의 이이와 가까웠던 영의정 노수신(盧守愼)조차 선조에게 “이이는 자신에게 아첨하는 것을 기뻐했던 사람입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이의 사람보는 눈[知人之鑑지인지감]은 결코 높게 평가될 수 없는 것이다.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이 모자랐던 것이다. 이제 선조가 정여립에 관해 두 번째로 말한 내용, 즉 “정여립에 관해서는 내가 누차 만나서 그 사람됨을 살펴보니, 기질이 매우 강한 자인 듯하나 실로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논어』의 태백 편과 비교해보자.

공자는 말했다. “거만한 데다가 곧지도 못하고, 어리석은 데다가 공손하지도 못하고, 무능한 데다가 신실함도 없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 수가 없다.”(태백 16)

2장. 인재를 보는 눈을 밝히다

왜 지금 '지인지감'인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자신의 대표작 『로마인 이야기』에서 “어느 시대건 인재가 없었던 적은 없다. 인재를 알아보는 지도자가 없었을 뿐”이라고 했다. 이 말은 국내 독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남겼다. 이는 어쩌면 그만큼 인재를 알아보는 눈, 즉 지인지감을 갖추기가 쉽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 하겠다.

숙종이 당쟁을 완화할 목적으로 신하들에게 “널리 인재를 구하도록 하라”고 하면 당쟁에 물든 신하들은 늘 “지금은 인재가 부족한 때라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이때 숙종은 “우리 태조께서는 망해가던 고려에서 인재를 찾아내 새 나라 조선을 세우셨다.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찾아내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극적인 대비를 통해 사안의 핵심을 적출해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숙종의 이 말은 그저 식견 있는 선비나 학자의 말이 아니라 몸소 임금의 자리에 있었던 장본인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귀담아들을 만하다. 특히 역사에서 나라를 세우거나 건국(建國) 초기 나라를 반석 위에 올린 임금들의 인재 보는 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 것이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당 태종 하면 지금도 우리는 『정관정요(貞觀政要)』를 떠올리게 된다. 당나라 사관 오긍(吳兢)42)이 정리한 이 책은 태종이 신하들의 간언(諫言)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면서 정치를 펼쳐갔는지를 보여주는 책으로 흔히 말하는 경청(傾聽)의 리더십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당 태종과 관련해 특기할 만한 점 하나는 그가 사람을 알아보는 법을 아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것이다.

요즘도 종종 사람을 판단할 때 쓰이는 신언서판(身言書判), 이것이 바로 당 태종의 작품이다. 신언서판이란 당나라 때 관리를 뽑으면서 사용한 사람을 보는 네 가지 기준을 말한다. 통상 몸가짐, 언변, 필적, 판단력이라 옮기는데 실은 그렇게 간단히 옮길 일이 아니다. 우선 정확히 이 말이 어디에 어떻게 실려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신당서』 권(卷) 45 지(志) 제35 선거지(選擧志) 하(下)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무릇 사람을 고르는 법[擇人之法택인지법]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몸[身신]인데 그 얼굴과 몸매가 듬직하고 위풍당당해야 한다[體貌체모豐偉풍위]. 둘째는 말[言언]인데 그 말하는 바가 조리가 있고 반듯해야 한다[言辭언사辯正변정]. 셋째는 글[書서]인데 글씨가 해서처럼 또박또박 정확하면서 아름다워야 한다[楷法해법遒美주미]. 넷째는 판단력[判판]인데 사안의 이치에 대한 판단력이 우수하고 뛰어나야 한다.

이런 지침을 만든 것은 사람 보는 데 누구보다 뛰어났다는 평을 받는 당 태종인데 그는 특히 셋째 해법주미(楷法遒美)를 자신의 통치 철학으로까지 끌어올렸다. 해법주미란, 글씨체가 또박또박한 해서의 글꼴이어야 하며 붓을 부리는 데 있어서는 굳센 힘과 아름다움이 조화되어 우러나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요즘이야 모두 컴퓨터 자판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이를 실행에 옮기기에는 난점이 있다. 그러나 언(言)에 적용됐던 조리 있고 반듯함으로 그 글도 깊이 들여다본다면 얼마든지 사람을 알아보는 훌륭한 실마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신언서판에 이어지는 뒷부분을 조금 더 살펴보자.

이 네 가지가 다 갖춰지고 나면 일단 잠정적으로 합격시킨 다음 우선적으로 다움과 행실[德行덕행]을 살피고 이어 다움이 재능과 균형을 이루는지[德덕均균以이才재]를 보며 끝으로 재능이 수고로움(혹은 실행)과 연결되는지[才재均균以이勞로]를 점검한다. 이 세 가지를 통과하면 남겨두고 통과하지 못하면 탈락시킨다.

일단 신언서판이라는 외형적인 점검이 끝나고 나면 덕행, 재능, 실천력을 상호 연결해서 깊이 살펴봄으로써 사람을 뽑는[選擧선거] 기본적인 절차는 마무리된다. 사람의 안과 밖[內外내외]을 빈틈없이 살피는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덕행, 재능, 실천력 중에서 덕행이 가장 우선시된다는 점이다.

인재 찾기와 그 어려움

사람 보는 데 뛰어난 사람들도 쉽게 범하는 잘못이 있다. 조금 뒤에 살펴보겠지만 공자는 사람을 보는 3단계를 제시했는데 첫째는 그 사람의 행동[所以소이]을 보고 둘째는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까닭[所由소유]을 살펴야 하며 끝으로 그 사람이 진정 우러나는 마음[所安소안]에서 한 것인지 주변 사람들의 좋은 평판을 얻으려고 의식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를 잘 가려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사람을 보는 일은 거의 끝난다는 게 공자의 사람 보는 방법이다. 그런데 사람 보는 데 뛰어난 사람들이 쉽게 범하는 잘못은 너무 들여다보려는 때문인지 몰라도 소안(所安)을 보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들어가보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의심하는 차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당 태종의 의심에 간사한 자들이 불을 지르자 아무런 틈도 없을 것 같았던 태종과 위징 사이도 이처럼 갈라진 것이다. 임금이 의심을 품는 순간 아첨꾼들은 달려든다. 태봉을 세워 고려 건국의 기초를 닦은 궁예(弓裔)나 각종 개혁 조치를 통해 고려를 반석에 올렸던 광종(光宗)44)이 그런 경우다.

이상의 내용을 한마디로 총괄하는 것이 중국의 오래된 고사성어, ‘사람이 의심스럽거든 결코 쓰지 말고 일단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疑의人인莫用막용 用용人인勿疑물의]’일 것이다.

핵심은 마음을 꿰뚫는 것이다

보고, 관찰하고, 분별하라

3장. 천하의 흥망을 가르다

대업을 이룬 자와 패망한 자

떠돌이 청년이 천하를 제패하기까지

세심한 시선과 한결같은 믿음을 바탕으로

배움의 자세를 기억하라

뜻을 같이하는 벗을 구하라

4장. 섬기는 자의 옳은 자세

사안에 적중하여 오래 유지하라

공로를 떠벌려 자랑하지 말라

영광의 무게만큼 커지는 위험을 생각하라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나오는 말. 우리 조상들은 네 글자로 사람을 보았다

책/논어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last edited 2024-10-29 06:22:47 by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