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직위가 높은 사람이 무언가 큰 문제를 일으키고 책임지지 않고 도망가는 경우는 일본 조직, 특히 정치 세계에서 비일비재하다. 가령 원전사고, 연금문제, 공적연금이 대량으로 주입된 은행,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 준비 중 생긴 불상사 등을 말할 수 있겠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되고, 만약 누군가가 책임을 진데도 도마뱀 꼬리 자르듯 말단이 뒤집어쓰는 형국일 뿐이다. 이런 점도 과거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으로 됐어’, ‘어쩔 수 없지’라는 가치관 수준이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각인의 일익을 담당해온 것이 바로 중국 고전 『논어』다.
『논어』의 조직관은 큰 장점이 있는 한편 씻을 수 없는 단점을 품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고대와 현대는 놀랍도록 겹쳐진다.
중국 고대에 『논어』 사상으로 꾸려진 조직의 문제는 사실 공자와 동시대에 이미 발견되어 시대가 흐르면서 비판하고 개혁하려는 시도가 서서히 이루어졌다. 이에 결정적인 해결책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한비자』다. 『한비자』의 조직 개혁 의도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 무림사회와 같은 조직을 성과를 내는 야무진 조직으로 바꾼다.
한비는 다수의 강적이 외부에 북적이는 가혹한 상태에서 확실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단단한 조직을 만들려고 했다.
현대의 성과주의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 사고방식이 『한비자』를 관통하고 있다. 성과주의는 『논어』의 가치관을 배경으로 하는 일본식 경영 시스템의 불리함을 불식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일본식 경영 시스템에 대항하는 성과주의를 도입하는 현대의 흐름은 『논어』에서 『한비자』로 조직관이 변천하는 고대 중국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의미로 고대 역사적인 경위와 전개는 분명 현대인에게 시사와 교훈을 전해준다.
한비는 한나라가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 여러 차례 서면으로 한나라 왕에게 간언했다. 하지만 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 한비는 나라를 다스릴 때 발생하는 문제의 원인으로 다음을 꼽았다.
- 법제를 명확히 하지 않는다.
- 권력으로 신하를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 부국강병에 힘쓰고 인재를 모아 현자를 등용하려 하지 않는다.
- 겉을 꾸미고 나라를 좀먹는 인물을 진정으로 공적이 있는 사람의 위에 세운다.
1장. 사람은 성장도 하고 타락도 한다
『논어』와 『한비자』, 물과 기름같이 다른 조직관
공자는 애초에 무엇을 목표로 했나
가족을 확대하면 나라가 된다
모두가 우러러보아야 군자
『논어』에는 ‘군자’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이상적인 정치가’를 의미한다. 군자와 반대되는 존재가 ‘소인’이다. 공자는 군자와 소인을 대비해 제자들에게 ‘자네들은 부디 군자가 되게나’ 하고 질타와 격려를 했던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우러러보고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 조직의 우위에 서면 아래에 있는 모두가 그 리더를 동경하고 신뢰해 조직이 가지런하고 질서 있게 돌아갈 것이다. 이것이 공자의 이상인 ‘천체(天體)와 같은 조직’이다.
- 정치의 근본은 덕에 있다. 덕이란 비유하자면 북극성과 같은 것으로, 의젓하게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기만 해도 다른 별은 모두 그 주위를 가지런하고 질서 있게 돈다.
여기서 말하는 덕이란 ‘덕을 몸에 익힌 훌륭한 정치가’를 가리킨다. ‘덕’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이 몸에 익혀야 할 행동규범이다. 덕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각자의 위치에 필요한 대로 몸에 익힌다. 이것은 동시에 품성과 품격을 갈고닦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치세의 주요점에 ‘덕’이 있다는 의미로 이러한 통치방법을 ‘덕치’라고 한다.
최고의 덕, ‘인’ - 널리 사랑하는 것
‘관대한 정치’의 어려움
공자와 동시대에 자산이라는 유명한 정치가가 있었다.
이와 같이 칭송하고 있지만, 사실 자산은 공자와는 생각이 다른 정치가다. 우선 기원전 436년에 중국 첫 성문법인 ‘형서’를 발포했다. 안타깝게도 내용은 오늘날에 전해지지 않지만, 이전까지 귀족들이 이야기하거나 암묵적인 양해에 따라 형벌을 내렸던 것을 공표한 법에 근거해 내리는 것으로 바꾸었다고 알려져 있다.
공자가 조직의 본보기로 삼은 ‘좋은 가정’을 생각하면 숙향이 비판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원활한 가정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한 규칙으로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일은 없다. 무언가 문제가 있어도 서로 신뢰관계를 기본으로 대화로 해결해나간다.
만약 꼼짝달싹 못하게 규칙을 만들면 가정은 어떻게 될까. 대화나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옅어지고 ‘규칙만 지키면 되잖아’, ‘타인에게 폐를 끼치겠지만 규칙에 어긋나지 않으니 해버려’와 같은 풍조를 야기하게 된다. 그러면 서로의 신뢰관계가 붕괴되고 원활했을 가정의 기반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
어쩌면 자산의 속마음은 ‘원활한 가정이라면 그것으로 좋을지도 모르지만, 이쪽은 이른바 뿔뿔이 흩어져서 원활하지 않은 가정이다. 확실하게 규칙을 정해두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가 아닐까.
자산은 기원전 522년에 병에 걸려 병석에 누웠다. 그리고 심복인 자대숙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내 뒤를 이어 국정을 맡을 만한 인물은 자네밖에 없네. 참고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게. 나는 정치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네. 하나는 관대한 정치, 또 다른 하나는 엄격한 정치라네. 관대한 정치로 백성을 복종시키는 것은 유덕자가 아니면 어렵지. 그래서 일반적으로 엄격한 정치를 취하기 쉬워.
둘을 비유한다면 불과 물과 같네. 불의 성질은 엄격하고 겉보기에 무섭기 때문에 사람은 두려워서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아. 그래서 오히려 불 때문에 죽는 사람은 적지. 그런데 물은 성질이 약해서 사람들은 물을 두려워하지 않아. 그래서 오히려 물로 죽는 사람이 많네. 관대한 정치는 물과 같아서 얼핏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상당히 어렵다네.”
자산의 말에 있는 ‘관대한 정치’의 어려움이야말로 공자의 이상인 ‘덕치’가 가진 문제를 그대로 관통하는 것이다.
현대 대기업에 계승된 ‘덕치’의 문제점
자산이 말한 ‘관대한 정치’의 문제는 우선 다음과 같다.
- 관대한 정치로 백성을 복종시키는 것은 대단한 유덕자가 아니면 어렵다.
여기에 숨은 뜻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 덕이 높은 인물은 흔하지 않다.
- 덕을 지닌 인물조차 변절해버리는 일이 있다.
그다음으로 말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 물의 성질은 약해서 사람들은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물로 죽는 사람이 많다.
이는 다음과 같이 바꿔 말할 수 있다.
- 상하가 덕과 신뢰로만 연결되어 있어서 현장의 폭주를 멈출 방법이 없다.
이상적인 상태인 서로가 성장하는 조직에서 다음 문제도 드러나기 시작한다.
- 자신을 키워주는 선배와 상사의 허물이나 문제점을 책망하거나 시정할 수 없다.
사실 이러한 ‘덕치’의 문제점은 자세히 살펴보면 이 밖에도 더 있지만 다음 장에서 차차 소개하겠다. 어떻든 이러한 문제의 원흉이 ‘덕치’인 것은 분명하다.
- 덕을 몸에 익힐 수 있느냐, 몸에 익힌 덕을 유지하느냐는 개인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이때 필수인 개인 의사가 흔들리면 근본도 흔들리고 만다.
- 상사와 부하의 관계가 ‘덕과 신뢰’라는 유대로만 연결되어서 무슨 일이 있으면 통제할 수 없다. 아래의 폭주를 예로 들었지만, 위의 폭주도 멈추기 힘든 건 마찬가지다.
- 선배나 신세진 사람에게는 특히 거스르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한비로 대표되는 법가사상이다.
2장. 한비자는 성악설이 아니다?
군주의 총애가 꼭 조직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나 프로 스포츠 팀과 같은 조직을 만든다
한비가 살던 당시 한나라는 ‘전국 칠웅’의 하나로 꼽는 나라였다. 하지만 국토는 좁고 인구도 많지 않았다. 국력으로는 확실히 7국 중 최하위였다.
게다가 서쪽에는 강국 진(秦)나라가 인접해 있었다. 진나라는 매사 한나라를 공격하며 영토를 잠식해 왔다. 그런데도 한나라는 능력이 없거나 사익을 쫓는 중신들만 지위를 차지하고 재능 있는 인간은 쫓겨나고 있으니 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의 생존이라는 목적을 내걸고 나라 전체가 그곳으로 방향성을 잡은 단단한 국가 체제를 만든다.’
이것이 한비가 그린 청사진이었다. 이는 현대로 말하면 사실 국가라기보다는 회사 조직에 가까운 면이 있다.
그런데 기업은 하나의 목적으로 어떤 일을 오롯이 갈고닦는 행위가 가능하다. 이는 스포츠 팀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이익을 내고 흑자를 좇으며 경영이념에 충실하다.
이와 관련해 일본 법학 대가인 다나카 고타로가 단적으로 한 말이 있다.
- 주식회사야말로 이런저런 의미로 순수 법가사상 형태에 소속된 것이기 때문이다.
- - 다나카 고타로, 『법률가의 법실증주의(法家の法実証主義)』
즉, 한비는 합목적적이라 할 수 없는 ‘국가’를 기업이나 프로 스포츠 팀과 같이 합목적적인 조직으로 변혁시키고자 했다. 바로 이 사실이 현대와 한비의 시대가 겹친다고 보는 기저다.
인간은 일단 신뢰해야 마땅하다 - 공자의 인간관
사람의 본성은 ‘약함’에 있다
가혹한 시대 상황이 사람을 이기적으로 만든다
애초에 사랑과 배려는 믿을 수 있는가
사람을 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풀리지 않는다
애정이라고 해봤자 거기에는 타산이 포함된 경우가 종종 있다. ‘경제적인 조건만 내세우는 결혼’, ‘노후에 돌봐주길 기대하며 아들 부부를 원조하는 시부모’ 등이 단적인 예다. 이러한 타산 정도에 응해 ‘~을 해주었으므로 ~의 보답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쉬운 성향이 이를 더 부추긴다. 즉, 서로 똑같이 도와주어도 서로 ‘내가 더 많이 도와줬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되면 애정은 부조화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현대에도 기업에서 부모 자식이나 친족 간에 혈육 싸움이 일어나는데, 사랑이 깊은 만큼 미움도 커져서 싸움을 멈출 수 없게 된다.
애정이 있기 때문에 인생이 즐겁고 풍족해지는 면은 분명 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좋은 면을 능숙히 다루어 나가자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애정은 그 에너지가 강해서 일단 뒤틀리면 대세에 휩쓸려 불행해질지도 모른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애정이 없어도 원활히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한비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애정 없이도 원활하게 돌아가는 시스템도 있지 않느냐는 게 한비의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고용관계란 서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해 맺었기 때문에 오히려 잘 돌아가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를 본보기로 삼으면 좋지 않을까.
사람이나 조직의 사고방식으로는 너무 살벌하다고 생각할 테지만, 한비는 단순히 좋은 가정이나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이러한 논진을 펼친 것이 아니다. 그의 목표는 난세 중에 살아남는 국가, 소모전이 오가는 중에 살아남는 단단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비는 ‘사람은 신용할 수 없다’라는 가혹한 조건 속에서, 하나가 되어 성과를 높이는 조직을 어떻게 구상했을까. 다음 장에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칼럼 1 한비의 선구자들
3장. 단단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법'
책임 없는 자들의 말참견
한비는 ‘사람은 신용할 수 없다’라는 가혹한 전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원활한 조직을 만든다는 난제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해답의 원천을 선인들의 지혜에서 구했다. 한비의 선도자들에 대해서는 <칼럼 1>에서 자세히 소개했는데, 그중에서 주요한 축이 되는 사람이 다음 세 명이다.
- 상앙 - 법(법/상벌규정)
- 신도 - 세(권력)
- 신불해 - 술(가신의 조종술)
이러한 선인들의 사상을 집대성해 전국시대 후반에 두드러진 것이 한비의 사상이었다.
첫째로 법을 보자. 단순하게는 룰이나 규칙을 말하며 조직을 확실히 하나로 만들어서 성과를 올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생각해볼 만한 지적이 『한비자』에 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논의는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 것입니까?” 대답해 말했다. “군주가 사물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자 질문한 자가 또다시 물었다. “군주가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면 어째서 논의가 생겨납니까?” 대답해 말했다. “사물을 내다보는 군주가 있는 나라에서는, 군주의 명령이야말로 가장 권위가 있으며, 법이 최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군주의 명령에 필적할 만큼 권위 있는 말은 달리 없고, 법에 필적할 만큼 최적인 행동 지표도 달리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발언이나 행동에서 법이나 명령에서 벗어난 것이 있으면 반드시 금지된다.
얼핏 여기까지 읽으면 ‘한비가 바라는 조직은 독재자의 상명하달만 허용하고 어떠한 이견도 듣지 않는 것인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한비의 의도는 전혀 다르다. 다음을 읽어보자.
한 사람의 힘으로는 대세의 힘에 대적할 수 없고, 한 사람의 지력으로는 모든 사물을 전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군주는 혼자만의 힘으로 무엇을 이루려 하지 말고, 한 나라 전체의 힘을 써야 한다. 자신의 지력만 써서는 머릿수가 많은 상대에게 지고 만다. 아무리 통찰이 들어맞았다고 해도 한 사람만으로는 피로하고 고달프며, 들어맞지 않는다면 나쁜 결과를 혼자서 받아들이게 된다. 하급 군주는 자신의 능력을 쥐어짜고, 중급 군주는 사람들의 체력을 다 사용하며, 상급 군주는 사람들의 지력을 다 사용한다. 그러므로 중대한 국면에서는 사람들의 지력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을 듣고 나서 한데 모은다. 사전에 생각을 들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의견을 뒤집는 사람이 나온다. 나중에 올바른 의견 쪽으로 앞 말을 뒤집으면, 그 사람이 우둔한 자인지 지혜로운 자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본래, 권한이란 책임이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조직에는 뜻밖의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예외를 계속 허용하면 조직의 지휘계통이나 방향성이 흐트러져서 아랫사람은 어디를 바라보고 일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조직의 혼란을 일으키는 원흉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다룬 『논어』식 가치관에도 있다.
솔선수범과 공정함
실제로 이러한 개인적인 관계가 윤활유가 되어 일본식 경영 시스템이 원활히 운영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한비가 직면했던 시대처럼 그것이 사익을 위해서만 남용되면 조직의 방향성을 어지럽히고 성과를 저해하는 요인밖에 되지 않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법의 공평한 적용이다. 사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지시 체계나 규칙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문제라면, 우선 법으로 전원 평등하게 틀에 맞추어 사람들의 행동을 억제해야 한다.
아무리 규칙을 만든다 해도 사장이나 중역에게 예외가 적용된다면 아랫사람도 지킬 마음이 없어진다. 법이나 규칙을 철저히 하는 데는 윗사람의 솔선수범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울요자(尉繚子)』라는 병법서에는 정말로 법이나 규칙을 조직 전체가 철저히 지켰다면 다음의 수준까지 행하라고 실려 있다.
- 본보기로 죽인다면 가능한 한 지위가 높은 자가 좋다. 또한 상을 준다면 가능한 한 지위가 낮은 자가 좋다.
상벌규정으로서의 ‘법’
1장에서도 서술한 것처럼 사람은 이해로 움직인다는 것이 한비의 기본적인 전제다.
게다가 한비는 사람을 움직이고자 할 때 명예가 물질적인 이익보다 더 쉽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명예에는 지위도 포함된다. 이른바 무형의 이익이다.
- 성인의 치도를 행하는 자가 사용하는 셋, 첫째는 이(利, 이익)라 하고, 둘째는 위(威, 위세)라 하며, 셋째는 명(名, 명분)이라 한다. ‘이’란 백성을 얻기 위한 것이고, ‘위’란 명령을 이루기 위한 것이며, ‘명’이란 군주와 신하가 함께 따라야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아니라면 다른 것이 있다 해도 긴급하지 않다.
한비의 의도를 회사로 말하면 적자로 얼룩져 도산 직전에 이른 회사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이라고 칭해도 지금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법의 의미와는 상당히 다르다.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이 되기 위한 상벌규정이나 사규사칙’이라고 비유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다나카 고타로가 말한 것처럼 “주식회사야말로 이런저런 의미로 순수 법가사상 형태다”라는 것이다.
이 상벌규정의 원칙이 바로 유명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이다.
- 현명한 군주가 신하를 통제할 수 있는 근거는 두 개의 칼자루뿐이다. 두 개의 칼자루란 형(形)과 덕(德)이다. 죽이고 도륙하는 것을 형이라 하고, 치하해 상을 내리는 것을 덕이라 한다. 신하된 자는 처벌을 두려워하고 치하와 상을 이롭게 여긴다. 고로 군주가 직접 형벌을 사용하면 군신은 그 권위를 두려워해 이익으로 돌아설 것이다.
비행기 조종사가 조종간으로 기체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것처럼 군주도 ‘리(利)=상·명예’와 ‘해(害)=엄벌·불명예’라는 두 가지 조종간으로 능숙히 부하를 조종하고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상과 벌은 그 역할에 조금 차이가 있다.
- 신용할 수 없는 인간을 붙들어 능숙히 조직을 하나로 모으는 ‘벌’
- 조직에서 성과를 끌어내는 ‘상’
궤도에서 일탈하는 사람들
가치관 수준 차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오히려 ‘조직 전체의 이익’을 위해 성실히 행동하는 사람이 세간에서는 바보 취급당한다고 한비는 한탄해 마지않았다.
- 윗사람에게 충실하고 선량하며 배신하지 않는 사람을 세간에서는 ‘소심자’라고 한다. 법을 확실히 지키고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을 세간에서는 ‘어리석은 자’라고 한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죄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세간에서는 ‘패기 없는 자’라고 한다. 말이나 행동이 절도를 지키는 사람을 세간에서는 ‘못나고 어리석은 바보’라고 한다. 공적으로 인정받은 학문에만 힘쓰고 직위나 윗사람의 가르침에 따르는 사람을 ‘소견이 좁은 어용학자*’라고 한다.
사람들은 상보다도 명예를 중시한다는 한비의 말대로라면 그 상태에서 조직의 방향성 따위는 정해질 리 없다. ‘무엇을 영예로 할지’에 대한 가치관이 여럿인데다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치관 수준에서 서로 상용되지 못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방출시켜버리라는 것이 한비의 해결책이었다.
- 상을 내리고 칭찬해도 힘쓰지 않고, 벌을 내리고 비난을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넷을 가해도 변하지 않으면 제거한다. 옛말에 ‘정치를 행함은 마치 머리를 감는 것과 같다. 머리카락을 잃어버려도 반드시 행한다’라고 했다. 머리 자르는 비용이 아까워서 머리 잘랐을 때의 이점을 잊으면 권*을 모르는 사람이다. 부스럼을 없애려면 아프고 약을 먹으면 쓰다. 고통 때문에 부스럼을 없애지 않고 약을 먹지 않으면 몸은 살지 못하고 병은 낫지 않는다.
이는 현대로 말하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다. 전후 고도의 성장기에 책이 잘 팔려서 호황을 누리는 출판사가 있다. 이 출판사 내에는 “진짜 좋은 책은 잘 팔리지 않는다. 사실 팔리는 책을 만드는 것이 부끄럽다” 하고 말하고 다니는 유명 편집자가 있다. 호황을 누리던 출판시장이 쇠락해 출판사가 도산 위기에 빠졌다. 그럼에도 ‘팔리는 책 따위를 만드는 것은 바보 같다’라며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어쩔 수 없으니 팔리는 책을 내자. 오히려 베스트셀러를 내면 보너스가 생기니 기쁘고, 책이 안 팔리면 기분이 좋지 않아.’ 이러한 태도의 편집자만 필요하다는 것이 한비의 입장이다. 이와 같이 ‘상’과 ‘엄벌’로 부하를 움직여서 더욱 성과를 높이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한비는 선진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했다.
4장. 2천년 이상이나 앞선 '법'의 노하우
‘형명참동’은 지금의 ‘목표관리제도’
- 군주가 바야흐로 간사한 행위를 금하고자 한다면 형명을 합치하면 된다. 신하된 자는 의견을 말하고 군주는 그 말을 받아들여 오로지 그에 따라 일을 맡긴다. 공적이 그 일에 들어맞고 일이 그 말과 들어맞으면 상을 주고, 공적이 그 일에 들어맞지 않으면 벌한다. 그러므로 신하의 과장된 말에 비해 공적이 적은 자는 벌한다. 공적이 적어서 벌하는 게 아니다. 공적이 명목과 들어맞지 않아서 벌하는 것이다. 신하의 축소된 말에 비해 공적이 큰 자 역시 벌한다. 큰 공적이 기쁘지 않은 게 아니다. 행위와 명목이 들어맞지 않아서 생긴 손해가 공적보다 크기 때문에 벌하는 것이다. - 『한비자』 「이병편」
경영학의 신적인 존재인 피터 드러커가 20세기에 고안한 ‘목표관리제도’의 모형이 2천년 이상 전에 주창된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목표관리제도’는 ‘성과주의적 인사제도’와 함께 1990년대 일본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 일부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둘은 애초부터 세트로 고안된 것이 아니다.
가령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조직이나 부하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강제로 주입시켰다고 하자. 유감스럽게도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모두에게 벌이 내려졌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위에서 멋대로 밀어붙인 목표 때문에 이런 심한 꼴에 처하다니…. 저 권력자는 인정 못해. 끌어내리겠어.’
만약 현대에서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보통은 이직률이 높아질 것이다. 하극상이나 내란이 당연한 고대라면 원망을 산 권력자에 반란을 일으키거나 암살을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형명참동’이라는 방식을 취한다면, 다음과 같은 논리를 세울 수 있다.
“그 목표는 나 스스로 정한 것이잖아. 그것을 달성하지 못한 것은 내 책임이니 누구도 원망할 수 없지.”
그러면 목표를 이루지 못한 자에게 벌을 내려도 권력자에게 원망이 집중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한비가 이상으로 삼는 군주는 이런 식으로 시스템의 그늘에 능숙하게 숨어서 가신을 조종할 수 있는 인물이다.
‘성장 가능성’과 ‘결과’ 중 무엇을 신용할 수 있는가
한비가 이처럼 시대를 앞선 시스템을 그리고 깨달은 것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언급했던 가치관 문제였다. 한마디로 한비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신용할 수 있는 것은 결과뿐이다.”
그런데 공자는 ‘사람의 성장 가능성’을 우선 신용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은 교육에 따라 선량해지거나 악해진다. 즉,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고 공자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논리적인 귀결로 다음과 같은 신념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대로 성장이 이루어진다면 결과도 따라온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가치관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논어』의 영향을 받은 일본 기업의 대다수는 전후 이래, ‘경험한 햇수에 따라서 사람은 성장할 것이다’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장기간 연공서열제 임금체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햇수에 따라 모두가 훌륭한 인재로 성장했을까?
햇수에 따라 모두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볼 만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특히 안일함에 젖어 있던 기업에는 ‘일은 못하지만 연차가 쌓여 고액을 받는 사원’이 상당수 있었다.
결국 사람은 상황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하는 한비에게 확실한 것은 결과밖에 없었다. ‘하면 할 수 있다’라고 말한 사람의 능력이나 ‘이렇게 될 거야’라는 머릿속 이치도 최종적으로는 결과로 검증해 보여주지 않으면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완전한 결과주의의 다정함
한비는 이른바 ‘완전한 결과주의 조직’을 목표로 했다.
실제로 고금의 역사를 보면, 결과만이 평가기준인 조직을 제대로 만들어 난세 속에서 탁월한 힘을 발휘한 사례가 셀 수 없이 많다. 그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비의 사상을 도입해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다.
『삼국지』에도 알맞은 사례가 있다. 당시 세력이 가장 큰 이가 조조였는데, 220년에 ‘구현령’이라는 포고를 내렸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예부터 새로 일으킨 군주든 다시 일으킨 군주든, 모두 마땅히 인재의 보좌를 받아 천하를 다스렸다. 인재는 이쪽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다. 구하지 못했다면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않은 작금만큼 인재가 필요한 때는 없다. 오늘날에도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고물이 얽힌 웨이수이 강(渭水)에서 낚시를 했던 강태공 같은 인물도 있을 것이다. 형수와 밀통하거나 뇌물을 받으면서 위무지에게 재능을 인정받은 진평 같은 인물도 있을 것이 틀림없다. 제군이여, 모쪼록 짐을 위해 파묻힌 인재를 추천해주길 바란다. 재능만 있으면 그것으로 좋다. 그러한 자라면 당장이라도 등용할 것이다.
이를 조조의 ‘유재주의(唯才主義)’라고 한다. 도덕적인지 아닌지는 관계없이 이 난세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결과를 내는 자가 필요하고 그러한 자가 온다면 써주겠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러한 철저한 결과주의는 사실 사람에게 다정한 면도 있다. 왜냐하면 출신, 인종, 성별 등 능력 외의 요소로 차별받았던 인재를 건져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세계에 유재주의의 상징적인 사례가 있다. 다음 발언을 보자.
- 나는 이 팀의 감독이다. 나의 관심사는 단 하나, 승리뿐이다. 나는 승리에 도움이 되는 사내라면 아무리 성가신 자라도 뛰게 할 것이고, 그 사내를 위해 다른 선수 자리를 비울 것이다. 가령 그 자가 내 동생이어도, 해고해버리고 사내의 자리를 확보할 생각이다. - 레오 듀로서, 『레오 듀로서 자전(レオ·ドローチャー自伝)』
물론 결과주의는 결과를 내지 않는 인간에게는 전혀 다정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법’을 정착시키기 위한 술책 ① - 규격 외의 상
한비가 법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회사에 빗대어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한비는 전란이라는 시대 상황이 가속화되어 적에게 격렬하게 침식당하는데도 불구하고 내부 권력 투쟁 등으로 스스로 무너지는 조직에 속해 있었다. 한비는 내부에서부터 다시 일어서기 위해 세 가지 방침을 세웠는데, 이를 회사라고 생각하면 다음과 같다.
- 이익을 내는 방향으로 조직의 궤도를 맞춘다.
- 통치기구 내의 명령계통을 일체화한다.
- 이상의 방침을 따르지 않는 사원은 해고한다.
방침을 지키기 위해 상벌규정이나 사규·사칙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했다. 이는 매우 합리적인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윗사람이 아무리 ‘법’을 정했다고 해도 아랫사람이 그것을 순순히 따를지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상앙은 자신이 고안한 법을 진나라 사람들에게 침투시켜 정착시키고자 사전에 다음과 같은 묘수를 내놓았다.
우선 삼장*에 달하는 나무를 남문에 심고 그것을 북문으로 옮기면 대금을 준다고 포고를 냈다. 처음에는 모두 의심했지만, 나무를 옮긴 자가 한 명 나타났다. 그러자 상앙은 약속한 대금을 지불했다. 이렇게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낸 뒤, 유명한 변법을 실시했다. 즉, ‘일단 약속한 것은 상식을 벗어났더라도 반드시 이행한다’라는 신뢰를 아랫사람에게 심어준 다음에 법의 정착을 꾀했던 것이다.
‘법’을 정착시키기 위한 술책 ② - 정을 버린 엄벌
형벌은 형벌이 없기를 기약하는 것이다
무거운 형벌을 부과하는 이유에 대해 『한비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거운 형벌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서 마련된 것이 아니다. 현명한 군주의 법이 악인을 재판하는 것은 악인 본인을 재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악을 범한 인간을 재판하는 것은 이미 죽어버린 인간을 재판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적을 처벌하는 것도 도적 본인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훔쳐버린 인간을 처벌하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이 있다. “하나의 간악한 짓을 무겁게 벌하면 나라 안의 악을 뿌리 뽑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정치다. 무거운 벌을 받는 것은 도적이지만 그것이 본때가 되어 양민들은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 하고 두려워한다.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는 공자처럼 교육을 중시하는 방법이 있다. 만약 죄를 범했다 해도 교육으로 갱생시킬 수 있다면 죄를 범한 인간이 줄어들어 종국에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사람은 성장 가능한 생물이니 말이다.
그러나 한비는 사람을 신뢰하고 애정으로 대하는 방식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어머니가 두텁게 사랑하는 집에 그릇된 자식이 많은 것은 사랑으로 추진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애정이 박하고 매질로 가르치지만 선한 자식이 많은 것은 엄격함으로 추진하기 때문이다. - 『한비자』 「육반편」
형벌에 대한 두 사고방식은 현대까지도 여전히 서로 대립하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방법인지는 한비의 생각처럼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다만 역사적으로 보면 한비의 엄형중벌 사상이 ‘법가’의 가장 큰 약점을 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와 ‘법’에 접근하기
“이 세상에서 가장 비정한 벌을 부과하는 법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비정’이라는 점에 중점을 둔다면, 그것은 ‘자연·물리 법칙’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정황을 참작할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가령 높은 곳에서 발을 잘못 디디면 반드시 추락하고, 섭씨 60도의 물에서 잠들면 큰일이 난다. 여기에는 일절 예외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연이나 세상은 본래 그러한 것이라고 여기고 행동한다. 높은 곳에서는 추락에 주의하고, 불이나 열탕에 데지 않게 조심한다.
군주가 정한 법도 이러한 ‘자연·물리 법칙’과 똑같은 존재가 되면, 그것이야말로 이상적이지 않겠느냐는 것이 한비의 생각이다. 그리고 중국 고대에는 이러한 ‘자연·물리 법칙’을 중심으로 세상이나 인간을 고찰한 사상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노자』나 『장자』라는 고전으로 대표되는 노장사상이다. 노장사상의 핵심을 ‘도(道)’라고 한다.
세상과 자연은 ‘도’만 좇고 인간의 사정 따윈 염두에 두지 않고 움직인다. 그 성질을 사회의 ‘법’으로 바꿔버리면 그것은 극히 안정적으로 예외 없이 작동한다. 그렇게 되면 ‘형은 형이 없기를 기약하는 것이다’라는 이상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무의식에 지배당하는 세상
5장. '권력'은 호랑이의 발톱
권력에는 원천이 있다
권력, 권세, 권위
권력 투쟁의 탄생
우선 상대의 마음에 드는 것을 목표로 하라
직접적인 권력 탈취법
파생 권력이란
‘살짝 ~한 것뿐이야’가 부하의 큰 권력으로
6장. 어둠 속에 숨어서 가신을 조종하는 '술'
군주는 좋고 싫음을 겉으로 드러내면 안 된다
정보의 대조
상대를 뒤흔들어본다
권력 원천의 문제
권력 관계의 진위와 그 활용
일본 조직의 권력 vs 미국 조직의 권력
마지막으로 ‘권력’이라는 시점에서 본 일본 조직의 문제와 현대 조직이 안고 있는 난제에 대해 다루어보겠다. 우선 일본과 미국의 인사권 차이에 대해 생각해볼 점이 있다.
즉, 일본에서는 이른바 ‘인사권’을 인사부가 쥐고 있는 반면 미국에서는 소속 부서의 상사가 쥐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일본 기업의 상사는 부하를 조사하고 심사하는 권한은 있어도 가장 강력한 권력인 ‘인사권’이라는 권력 원천이 없는 상태로 부하를 관리해야 하는 존재다. 한비의 말로 바꾸면, 한쪽 팔밖에 쓰지 못하는 상태로 관리하는 것이다.
- 인사권: 출세시켜준다, 좌천·해고시킨다
미국은 시스템상 상사가 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만큼 지독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연히 그때에는 제동장치가 작동하게 된다.
‘힘희롱’을 하다가 재판에 휘말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윗사람의 지독한 권력 행사에 제한이 걸리는 것이다.
권력이 상쇄되어가는 시대에
기업변혁이나 리더십 연구로 명성이 높은 존 코터가 다음과 같은 고무적인 말을 한 적이 있다.
- 고도의 다양성과 상호의존적인 상황에서는 조정 가능한 ‘전문가’를 누구로 할지에 대해 관계자가 합의에 다다르는 일은 좀처럼 없을 것이다. - 존 코터, 『파워와 영향력(Power and Influence)』
이를 알기 쉽게 말하면, 현대 조직은 옛날에 비해서 역할이 매우 복잡해지고 전문성도 높아졌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각자 전문적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무언가를 완수하는 데 여러 전문가의 협력이 필수다.
칼럼 2 전후 일본 기업은 왜 『논어』적이 되었나
7장. 개혁자는 어느 시대나 수지가 안 맞다
‘법치’, 누구도 기뻐하지 않는 개혁
군주의 마음속을 한번 파고들어 가보자. ‘법치’에 따른 개혁은 군주에게 있어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지금까지는 신뢰하는 중신들에게 성가신 일들을 맡겨서 편안했는데 ‘법치’ 따위를 받아들이면 ‘술’을 사용해서 부하를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친밀한 중신들조차 결과가 나쁘면 자르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법치’란 그것으로써 나라나 조직 전체의 힘을 높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의 기득권익, 인간관계, 편안함을 감소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장해를 극복하는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현장에 대한 군주의 강렬한 위기감’이다.
설득은 어렵다 ① - 상대의 심중을 알다
설득은 어렵다 ② - 용의 목 부근에 난 ‘역린’
서툰 진심이 낫다
법술사의 비참한 최후
8장. 믿어도 믿지 않아도 벽에 부딪힌다
진귀한 보물이 될지어다
‘법’은 있어도 ‘술’이 없는 나라
결정하지 못한 황태자
‘법치’의 구조적인 문제점
진나라의 기둥을 흔들던 또 하나의 문제점이 ‘리(利) 원천의 조달’ 문제였다. 이는 애초에 ‘법치’ 이론 자체가 품고 있던 구조적인 결함인데, 한비가 생각하는 ‘법’은 다음 요소로 성립된다.
- 명군은 두 가지 조종간으로 신하를 통제한다. 두 가지 조종간은 ‘형’과 ‘덕’이다. ‘형’과 ‘덕’이란 무엇인가. 살육(殺戮)을 형이라 하고, 상(賞)을 덕이라 한다. 부하는 형을 두려워하고 상을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수뇌가 형과 상이라는 두 가지 권한을 쥐고 있으면, 공포에 질리게 하거나 포섭해서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 - 『한비자』 「이병편」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상’의 방법이다. 당시 최대의 상은 토지였다. 진나라가 한창 중국을 통일할 때에는 적국의 좋은 토지를 강탈할 수 있어서 ‘상’의 원천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통일을 이루고 난 이후에는 새로 영토를 획득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벌’과 달리 ‘상’은 그 원천이 언젠가 바닥날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한비자』 안에도 이 점에 대한 우려가 실려 있다.
노(魯)나라 사람이 짐승을 몰기 위해 적택이라는 사냥터에 불을 질렀다. 그런데 때마침 북풍이 일어 불이 남쪽으로 번졌고, 노나라의 애공은 위험을 감지하고 사람들을 동원해 불길을 잡기 위해 직접 앞장서 지휘를 하려 했다. 그런데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모두 사냥에 정신이 팔려 불길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중니(仲尼, 공자)를 불러 선후책을 물었다. 중니는 이렇게 답했다. “사냥을 하는 것은 재미있으면서도 그것으로 벌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불길을 잡는 것은 고달프면서도 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불을 끄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애공이 “그렇군요” 하고 말하자 중니는 말했다. “사태는 긴급합니다. 상을 줄 여유는 없고 불길을 잡는 전원에게 상을 주면 나라 전체 영지를 주어도 부족합니다. 이때 벌을 사용해보세요.” 애공이 또다시 “그렇군요” 하고 말하자 중니는 명령을 내렸다. “불길을 잡지 않는 자는 적을 앞에 두고 도망간 죄와 동등하게 간주한다. 사냥을 그만두지 않는 자는 금지한 땅을 침입한 죄와 동등하게 간주한다.” 명령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도 전에 불길이 잡혔다.
여기서 포인트는 “불길을 잡는 전원에게 상을 주면 나라 전체 영지를 주어도 부족합니다”라는 부분이다. ‘상의 원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신상필벌’이란 ‘상’과 ‘벌’이 모두 갖추어져 있어야 처음으로 효과가 나타난다. 그런데 ‘상’이 동이 나고 ‘벌’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현대로 말하면 아무리 업적을 쌓아도 상여도 없고 지위도 바뀌지 않으면서, 조금이라도 실패하면 징계나 해고를 해버리는 회사라고 할 수 있다. 누구도 그런 회사에 소속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성장할 수 있으니 하면 이룰 수 있다
1997년, 후지쓰가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일반적이었던 인사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이를 일본에서는 ‘성과주의’라고 부른다. ‘성과주의’가 미국의 표준은 아니며 여러 인사 형태의 하나에 불과했지만, 당시 미국의 전형으로 도입되어 추종하는 기업이 상당했다. 그리고 선두로 도입했던 후지쓰에서 문제가 다수 발발했다.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원리는 지극히 『한비자』에 가깝다.
- 성과에 부응하는 급여 - 신상필벌
- 목표관리제도 - 형명참동
그러나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도입은 결과적으로 대실패로 끝났다. 인사부문에 적을 둔 조 시게유키가 2004년에 『내부에서 본 후지쓰 ‘성과주의’의 붕괴(内側から見た富士通「成果主義」の崩壊)』라는 고발서를 출간했고, 같은 해 다카하시 노부오가 쓴 『허망한 성과주의(虚妄の成果主義)』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성과주의 인사제도 방식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본래 ‘성과주의’를 도입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인건비 삭감’이었는데 바로 여기서 문제가 기인했다.
그전까지 일본 기업의 대다수는 <칼럼 2>에서 언급한 것처럼 『논어』식 가치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사람은 교육으로 좋아지거나 나빠지거나 한다. 즉, 교육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제대로 성장이 이루어지면 결과도 따라온다.”
사람은 ‘성장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일본 기업에서는 이를 그대로 인사평가에 적용했다. 본래 능력이 있고 경험을 쌓아 착실히 노력하면 그것에 부응해 ‘능력(여기서는 잠재적인 것도 포함)’은 반드시 익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내포한다.
- 능력이 향상하면 승격한다. 승격하면 임금이 오른다. 게다가 직능자격의 정수를 결정하는 것은 그 원칙으로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임금은 연차대로 오르고, 동시에 직원의 평균연령이 오르면 임금총액도 오르게 된다. 이것이 직능자격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다. - 나카무라 게이스케, 『성과주의의 진실(成果主義の真実)』
일반적으로 조직은 위로 가면 갈수록 자리가 줄어든다. 그러나 ‘능력’이 오른 이상 그에 걸맞은 처우를 해야 한다. 여기서 오는 모순을 해소하고자 ‘대외용 관리직’이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담당 부장’, ‘부장 대리’, ‘부장 보좌’ 등 부하 없는 간부들이 늘어났다.
사실 『논어』에서는 전원이 모두 똑같이 위로 간다는 정황은 가정하지 않았다.
- 똑같은 식물이라도 싹이 돋고서도 꽃이 피지 않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꽃이 피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식물도 있다. - 『논어』 「자한편」
물론 식물은 인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재능이 있든, 능력이나 경험을 쌓았든 보금자리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일본 기업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능숙히 설정하지 못했다.
- 능력주의란 근본적으로는 ‘동료 사이에는 가능한 한 차를 두지 않는다’라는 사고방식이 있어서, 본래 경쟁사회여야 할 기업을 느긋한 평등사회로 만들어버렸다. 처음에는 과장담당 자리로 대응이 끝났지만, 머지않아 부장담당 자리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돌을 던지면 부장을 맞힐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온 회사가 있었는데, 일본 기업은 많든 적든 그러한 경향이 있었다. - 야나시타 고이치, 『이기는 기업의 성과주의(ここが違う!「勝ち組企業」の成果主義)』
인건비 삭감과 성과주의의 모순
『한비자』식 관리는 원리적으로 말하면 성과에 걸맞는 ‘상’을 부여하는 제도다. 바꿔 말하면 전원이 성과를 달성하면 모두 그에 걸맞은 ‘상’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 당초 ‘성과주의’를 도입한 대개의 기업에는 인건비 총액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성과주의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인건비를 조정하기 위해 ‘상대평가’를 했는데, 다시 말하자면 5단계 평가라고 할 때 각각의 정원 안에 사원을 무리하게 배당하는 형태였다.
이렇게 되면 전원이 똑같이 목표를 달성해도 ‘전원 B평가’, ‘어떤 사람은 A평가이고 어떤 사람은 B평가’인 경우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조정에 강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논어』식의 장유유서 가치관이다. 다음은 후지쓰 사정조정 회의의 한 장면이다.
연공서열대로 상사인 부장부터 순서대로 발표를 시작했다. 각 부장은 자신 휘하의 부서 평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자신의 부서가 얼마나 중책을 담당했는지, 부하들이 얼마나 연일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 계속 발언했다. 그리고 발언하는 부장이 점점 서열이 낮아지자 다른 부장들에게서 평가에 대한 지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마지막에 발언한 신임 부장은 여러 선배가 실로 10명의 부하 성적을 끌어내리는데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나조차도 놀랐다. - 조 시게유키, 『내부에서 본 후지쓰 ‘성과주의’의 붕괴(内側から見た富士通「成果主義」の崩壊)』
한비자』식 제도로 말해보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목표 달성 정도만큼 늘어나는 상의 밑천’이 존재하고, 그것이 본인이 납득할 수 있는 ‘평가’대로 ‘분배’되어야 한다. 이때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일정 한계보다 내려가게 되면 유지는 어렵다.
현대 기업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평가’ 부분일 것이다. 이익 기여도가 곧바로 숫자로 나타나는 조직이라면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여도를 알 수 없는 간접부문이나 결과가 한참 후에야 나오는 장기 프로젝트 등을 행하는 회사에서는 애초에 성과주의 방식으로 원활히 운영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회사란 경영진에 가까운 인사나 경영전략 등의 부서에 권력이 집중되기 쉽다. 9장에서 권력에 대해 주로 다루겠지만, 인사나 경영전략 등의 부서는 그 힘을 사용해 평가할 때 처신을 잘한다. 게다가 같은 부서라면 상사가 부하의 성과를 낮추어 그 정도만큼 자신을 높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다음은 또다시 후지쓰의 예시이지만 이와 비슷한 일은 다른 회사에서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
신입을 상대평가했을 때 회사 전체에서 유일하게 ‘열외 없이 전원 A평가’를 주며 규칙을 위반하는 부서가 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바로 본사의 인사부(인사근로부)다. 그들에게 있어 절대로 공개하고 싶지 않은 상황은 부하와 실질적으로 같은 목표를 세웠는데, 부하가 B평가(미달성)이고 자신이 A평가(달성)인 경우다. 나는 실제로 이러한 경우를 몇 번이나 보았다. - 조 시게유키, 『내부에서 본 후지쓰 ‘성과주의’의 붕괴』
실은 이러한 문제도 본래 회사가 성장하고 있다면 해소하기 쉽다. ‘상의 원천’이 광대해서 구성원이 어느 정도 만족할 만큼의 ‘상’을 벌어 분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큰 파이’가 조직 문제 대부분을 풀어주는 것이다.
고갈된 ‘상’을 보완하는 것
한왕조도 이와 비슷한 수순을 따랐다. 7대째인 무제 시대가 되자 인구도 늘어나고 흉노족과의 전쟁이 계속되어서 ‘상’의 원천이 고갈되어 문제로 불거졌다. 이대로는 진왕조의 전철을 밟게 될 게 뻔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유교였다. ‘상’으로 사람을 꾀는 것이 어려워진 이상 다음과 같은 가치관을 강하게 밀어붙여 상황을 구제하려고 했다.
“리(利)로 움직이는 인간은 부끄럽다. 반대로 높은 지(志)를 지닌 채 자신을 성장시켜 나라를 위해 애쓰는 것이 사람으로서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다.”
한마디로 사람은 훌륭히 살아야만 가치가 있다는 사상을 스며들게 하려 했던 것이다. 이는 『논어』에 있는 다음 구절에 단적으로 드러난다.
-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리에 밝다. - 『논어』 「리인편」
선제의 황태자인 원제는 온순한 성격으로 유교를 좋아했다. 원제로서는 아버지인 선제의 방식은 법치 관료만 많고, 법으로 아랫사람을 지배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술자리를 빌려서 황태자는 조심스럽게 선제에게 아뢰었다. “폐하는 형벌에 심히 의지하고 계시지 않으신지요. 부디 유생을 좀 더 등용해주십시오.” 선제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우리 한 왕가에는 걸맞은 제도가 있다. 그것이 패도와 왕도의 병용이다. 어떻게 덕치만으로 주대(周代) 정치의 시늉을 할까 보냐. 대개 유생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예전이 좋았지, 지금은 틀렸어’라는 말뿐이고 사람의 가치판단을 흐리게 하고 긴요한 점을 알지 못하게 만든다. 어찌 맡길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한 왕가를 혼란에 빠트리는 자는 황태자다.” - 『한서』 「원제기」
‘법치’와 ‘덕치’의 어느 한쪽이 아니라 ‘패왕의 길’, 즉 패도(법치)와 왕도(덕치)의 병용이야말로 체제운영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패왕의 길이란
패왕의 길을 위한 첫째 방법은 온정, 엄격함, 말을 통한 당근과 채찍으로 전체의 균형을 잡아 통제하는 것이다. 회사로 말하면 『논어』를 몸에 익힌 자비로운 상사와 『한비자』의 화신 같은 비정한 부관으로 콤비를 이루어 능숙히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둘을 한 사람이 겸비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제갈공명은 드라마 등에서는 온정과 배려가 있는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 가르침은 엄격하고 명백하고, 상벌은 반드시 참되고, 악은 남김없이 응징하고, 선은 남김없이 치하한다. - 『삼국지』 「촉서」
그렇다고 해서 그가 엄격함 쪽으로만 기운 것은 아니었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 나라 안의 모두가 두려워하며 이를 사랑한다. - 『삼국지』 「촉서」
제갈공명은 틀림없이 ‘법치’와 ‘덕치’를 겸비한 위인이다. 이는 사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란 한쪽 유형으로 치우치기 쉽다. 그러므로 성공한 위인 중에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뛰어난 보좌를 옆에 두는 이가 적지 않다.
‘상’의 원천이라는 관점에서 패왕의 길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동이 나버린 토지 등의 물리적인 ‘상’ 대신에 『논어』가 말하는 정신적인 ‘상’으로 채우는 것이다.
회사로 예를 들면,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갖는 ‘일의 보람’을 생각하면 알기 쉽다. 사내 출세에는 연이 없지만 ‘당신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당신 덕분에 무사히 넘겼습니다’ 같은 평가나 감사가 무엇보다도 스스로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논어』의 가치관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경영인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와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 적이 있다.
“사원이 갖는 일의 보람이란 고객에게 감사인사를 받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물론 『논어』식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은 ‘배려’, ‘온화’라는 인정미를 더하는 면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정신적인 ‘상’을 채우는 것이 그 도입의 핵심 목적이다.
서양에도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고대 로마제국은 이탈리아 반도 통일부터 제국 동서 분열까지 660년 이상이나 달하는 번영을 자랑했다. 그 번영의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동나기 어려운 영역의 권리’라는 요소다.
오늘날은 투표하는 것도, 좋아하는 곳에 살 수 있는 것도, 결혼상대를 고르는 것도, 여행하는 것도 모두 자유이지만, 고대는 결코 그러하지 못했다. 이러한 권리는 지위나 신분이 높으면 주어졌고, 낮으면 전혀 주어지지 않든지 그 일부만 주어졌다. 전자가 로마 시민이고 후자가 노예라고 생각하면 알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권리의 격차는 각 도시에도 존재했다. 다시 말하면 당시에는 ‘자유=권리’라고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권리는 로마제국에 공적을 쌓으면 손에 넣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즉, 추상적인 ‘권리’를 ‘상’의 하나로 설치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그 자원은 동나기 어렵고 로마 시민은 오랜 기간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믿지 않는 제도, 믿는 운용
패왕의 길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논어』식 조직이면서 『한비자』식 요소를 넣어 절충해 문제의 싹을 뽑아버리는 것이다.
제도도 운용도 ‘일단 사람을 믿는다’라는 가치관으로는 여차할 때 문제나 화근을 뿌리 뽑지 못한다. 운용 쪽은 ‘일단 사람을 믿는다’이지만, 제도는 ‘사람은 나쁜 짓을 할지도 모른다’라는 형태로 설계해 무슨 일이 있으면 성악설로 만든 제도를 내세워 문제나 화근을 뿌리 뽑는 것이다.
나는 『논어』식 요인으로 쇠락한 대기업을 훌륭히 재건한 여러 경영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내가 하지 않으면 이후가 없다’라는 각오로 최악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행동했다. 흥미로운 점은 의젓하고 인상이 온후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위기에 강한 유형은 위기에 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두려움으로 통솔하는 독불장군 유형이나 강해 보이는 인상의 카리스마 유형은 오히려 중간에 무너지기 쉽다. 핵심은 위기에 강한 유형의 인재를 능숙히 찾아내어 책임자로 세우는 것이다.
또한 성공한 경영자 중에는 ‘이 사람은 이중인격인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이면성(裏面性)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있다. 이 책의 관점으로 말하면 『논어』와 『한비자』의 양쪽을 겸비했기 때문에 이중인격이라고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에 조직을 능숙히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정이 있고 인망이 두터워도 문제나 화근이 남아 있으면 사람이 바뀐 것처럼 처단한다. 이러한 이면성이 있어야만 조직을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중인격’은 조금 이미지가 나쁠지도 모르지만 앞에서 언급한 제갈공명은 틀림없이 이중인격 유형이었을 것이다.
광대한 파이와 이중인격
마지막으로 각각의 요소를 정리해 주의사항을 적어보겠다. 우선 『한비자』식 조직을 구축·유지하고 싶으면 ‘목표를 달성한 정도만큼 늘어나는 상을 줄 수 있는 밑천’이 기본적으로 필요해진다. 이는 매우 큰 파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워지고 ‘상’의 원천이 한계에 다다를 경우, 『논어』식 내지는 로마식으로 정신적·추상적인 ‘상’을 적당히 대주어 유지가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참고로 금전 등 물리적인 ‘상’으로 사람을 꾀하고자 할 때 만약 파이가 반영구적으로 계속 늘어나 리(利)의 원천이 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원리상 언제까지나 통하는 방법일 것이다.
사실 이러한 가치관이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은 내부에 여러 조직 형태가 있는데, 대략적인 경향부터 말하면 다음과 같이 매우 『한비자』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미국 기업문화는 개인 책임과 권한을 명확하게 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일에 대해서도 각 종업원의 직무는 사전에 ‘직무기술서’라는 명확한 문장으로 적혀 있다. 이 점은 일본 기업과 크게 다르다.
- 나카모토 지, 『미국 경영 파워 시스템 56(「アメリカ経営」56のパワーシステム)』
미국 기업은 일본 기업과는 달리 업무의 양과 질을 평가하는 기준이 명확하고 일본 기업에 존재하는 협조성, 일일 달성 노력, 충성심, 정의고과 같은 평가요소 등이 없다.
- 사쿠모토 도모카즈, 『능력주의 관리의 국제 비교(能力主義管理の国際比較)』
명문화된 규칙이나 계약의 개념이 행동형태의 기초를 이루는 미국 종업원은 직무규정 매뉴얼을 상시 손에 들고 있고 필요할 때마다 참고한다. 그러나 미국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의 경우 미국인 종업원이 항상 자유롭게 참고할 수 있는 영문 직무규정 매뉴얼 등이 정비되어 있는 곳은 오히려 드물다고 한다.
- 아보 데쓰오, 『일본적 경영·생산 시스템과 미국(日本的経営·生産システムとアメリカ)』
게다가 인종의 전시장이라 불릴 만큼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금전처럼 가장 알기 쉬운 가치관이 중시되는 점도 『한비자』와 상당히 닮았다. 그러나 이 형태를 유지하는 데는 엄청나게 큰 파이가 필수다.
그러므로 미국은 나라든 조직이든 매우 큰 파이를 지향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혹은 혁신의 힘으로 그것을 계속 실현해왔다. 국내에 파이가 없어지면 해외로, 그것이 어렵다면 군사, 우주, 금융, 사이버, 농업, 유전자공학, 인공두뇌 등의 분야로 파이를 넓히고자 했다. 이것이 반영구적으로 계속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것이 미국이라는 나라나 조직의 구조에서 오는 필연적인 행동인 것은 분명하다.
계속해서 『논어』식 조직을 구축·유지하고 싶다면 토대가 되는 제도를 설계할 때 성악설에 기본을 두어 문제나 화근을 뿌리 뽑아야 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한 인물을 상위에 두거나 ‘이중인격’적인 인물이 평소부터 문제의 싹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칼럼 3 중국적 정치체제와 ‘법가’
9장. 쓸 만한 권력을 익히는 법
일본 장수기업의 원천
회사의 방침이나 이념의 자리매김
사장과 실권자, 각각의 권력 행사
‘스케줄 투쟁’ 그리고 ‘정신론’
윗사람의 권력 활용법
정보 격차를 만들지 않기 위해
우선 정보 격차로 대항해온다면 ‘달리 대체가 없다’라고 말하는 존재부터 끌어내리는 방법이 있다. 즉, ‘나밖에 모르고, 나밖에 할 수 없고, 나밖에 모을 수 없다’라며 그것을 권력의 원천으로 삼는다면 ‘다른 사람도 알고 있고, 할 수 있고, 모을 수 있다’라는 상황을 만들어 그 권력의 원천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권력욕이 강한 유형을 애초부터 권력을 휘두르는 위치에 두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정보 격차가 있으면 당연히 그것을 가능한 한 메울 필요가 있다. 사장이란 애초에 권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능숙히 사용해 정보를 모으는 것은 본래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맹점은 ‘본래 있었는지 생각지 못한 정보’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존재조차 모르니 말이다. 이는 『한비자』의 다음 가르침과 같이 정보원을 다수 두는 것으로 보완할 수 있다.
참고로 아랫사람이 정보를 전해주지 않는 이유 중에는 ‘윗사람이 나쁜 정보를 듣기 싫어하니까’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발언이나 행동을 철저하게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나쁜 정보를 바라고 그것을 들어도 화내지 않으며 싫은 티도 내지 않는다.”
권력 지지기반 이론
인간이란 파벌 만들기를 좋아하는 면이 있다.
다만 파벌이란 것도 덕이 높은 상사가 있어서 그를 따르는 직원들이 모인 것뿐이라면 실질적인 손해는 없다.
물러서기를 좋아하는 자를 기용해야 한다
- 사람을 기용할 때는 물러남을 좋아하는 자를 기용해야 한다. - 『송명신언행록』 「장영」
외부 권력을 빌리는 법
아랫사람이 권력에 대항하는 방법
의존하게 되는 권력
자유를 손에 넣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