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저.
인간학이자 정치학, 윤리학이자 인간경영학, 그리고 조직심리학이자 인생의 네비게이션, '논어' 다시 읽기
들어가는 말: 왜 '논어'인가?
『논어』와 나
그런데 주희가 주를 단 『논어집주』를 반복해서 읽을수록 의문점은 늘어만 갔다. 간혹 ‘언어학자’ 주희의 통찰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의 안내만으로 『논어』를 읽어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당시로서는 그 밖의 다른 출구가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시간 날 때마다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 지루한 작업이 계속됐다. 그 후로 최근까지 100번 이상 읽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以論解論(이론해론)’, 즉 『논어』로 『논어』를 풀어내보자는 발상이었다. 부분과 전체는 순환관계를 형성하므로 부분은 전체를 통해 해석하고, 전체는 부분에 대한 해석의 총합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은 필자가 대학에서 전공했던 해석학 이론의 기본원칙이다. 다만 이런 원칙이 과연 『논어』에도 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논어』의 편찬자가 그런 해석이 가능하도록 책을 편집 구성했는지가 관건이었다.
방침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는 것이었다. ‘500개 가까운 장(章)들이 느슨하게나마 서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논어』는 느슨한 게 아니라 아주 교묘하면서도 치밀하게 얼개가 짜인 하나의 완벽한 체계를 가진 책이었다. 잠언집도 아니고 잡록(雜錄)도 아니었다. 20개의 편(篇)과 498개의 장(章)이 말 그대로 거미줄처럼 복합적인 상호연계를 이루며 하나의 훌륭한 중첩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둘째는 『논어』에서 의미가 모호한 단어나 문장, 장(章)들을 『논어』에서 규명해 보자는 것이다. 결국 미시적으로는 文(문)이니 約(약)이니 惑(혹)이니 明(명)이니 하는 단어에서 시작해 문장이나 장(章)도 상호점검을 통해 『논어』에서의 의미를 추출해 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비교적 순수한 『논어』의 맥락을 복원해 낼 수 있었다. 이때 ‘순수한’이란 의미는 해석자의 주관이 가능한 한 배제되었다는 뜻이다. 그 작업은 곧 『논어』의 편찬자가 했던 작업을 역으로 추적해 올라가는 일종의 추체험(追體驗)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서해석학에 비유하자면, 예수님의 말씀 자체보다는 『요한복음』의 편찬자인 요한의 편찬의도를 추적하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었다고 보면 된다.
以論解論(이론해론)의 길
이제 이 책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이 책은 以論解論의 방법을 채택했다. 그것은 『논어』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은 공자의 사상 전체를 읽는 것과는 다르다. 단편 단편을 떼내어 읽으면 공자가 더 크게 들어오겠지만 우리처럼 『논어』를 거대한 체계의 하나로 읽을 경우에는 공자의 발언 못지않게 『논어』의 편찬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요한복음』의 편찬자 요한을 강조했던 것과 같은 논점이다.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오히려 크게 중요하지 않다. 『논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책을 편집한 그 편찬자의 의도가 중요할 뿐이다.
끝으로 이 책을 읽어가는 법에 대해 간략한 지침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논어』에 관심이 있고 한두 번이라도 『논어』를 읽어본 사람들을 독자로 상정했다. 이런 독자들이라면 먼저 한문(漢文) 원문을 개략적으로나마 살펴본 다음, 본문의 번역과 비교해서 보고, 풀이를 읽어보면 된다. 그리고 풀이를 읽고 난 후에는 본문 번역이라도 다시 한 번 읽고 나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주기를 바란다. 물론 원문을 다시 정독하면 더욱 좋다.
그러나 『논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맨 앞에 나오는 한문 원문은 피해가도 된다. 장마다 원문 뒤에 있는 번역문을 먼저 본 다음 풀이를 읽고 맨 마지막에 한문 원문을 하나씩 뜯어보는 것도 나름대로 훌륭한 독법(讀法)이 될 수 있다.
어느 쪽이건 한 장이 끝날 때마다 번역문의 뜻을 충분히 음미한 다음 그 다음 장으로 넘어가줄 것을 부탁한다. 문장에서 문장으로, 장에서 장으로 넘어감[移行]에 『논어』의 중요한 내용들이 대부분 숨어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왜 『논어』인가?
1편 學而(학이)
1
공자는 말했다. “(문을) 배워서 그것을 늘 쉬지 않고 (몸에) 익히면 진실로 기쁘지 않겠는가? 뜻이 같은 벗이 있어 먼 곳에 갔다가 돌아오면 진실로 즐겁지 않겠는가? (이런 자신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속으로 서운해 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진실로 군자가 아니겠는가?”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면서 『논어』라는 거대한 산악(山岳)을 오르는 길에 들어서보자.
“공자(孔子)가 일생 동안 말한 것들이 무수할 텐데 『논어』의 편찬자는 왜 하필이면 이 세 구절을 산악의 초입에 해당하는 책 첫머리에 둔 것일까?”
당연히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런저런 해석을 참고하기에 앞서 ‘學而(학이)’ 편에 한정해서 ‘學’이라는 글자가 어떤 경우에 사용되는지 그 용례부터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공자는 ‘學而 6’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린 사람들은 집에 들어오면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공순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에는 믿음이 담겨야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가까이 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몸소 익혀 행하면서도 남은 힘이 있거든 그때 가서 문(文)을 배우도록 하라[學].”
문의 정확한 의미는 바로 다음 장에 나온다.
이어지는 ‘學而 7’에서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이렇게 말한다.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기를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꿔서 하고, 부모 섬기기를 기꺼이 온 힘을 다하며, 임금 섬기기를 기꺼이 온몸을 다 바쳐 하고, 벗과 사귀기를 일단 말을 하면 반드시 책임을 져 믿음을 주는 식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비록 배우지 않았더라도[未學] 나는 반드시 그 사람이 배웠다고 말할 것이다.”
여기서 學은 명확히 사람됨을 배운다는 뜻이다.
이어 ‘學而 8’에서 공자는 배움과 관련된 내용은 아니지만 배움의 조건과 관련해 이런 발언을 한다.
“군자가 되려는 사람이 진중하지 못하면 위엄을 갖출 수 없고, (문을) 배우면 고집불통[固]에 빠지지 않는다.”
결국 이 셋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사람됨의 기본[質]이 되지 않고서 문(文)을 배워봤자 문을 배우지 않고서도 사람 노릇 제대로 하는 사람만 못하며, 문을 배우면 고집불통에 빠지지 않는다’다. 공자는 고집불통에 빠져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 인간을 가장 부정적으로 보았다.
문제는 익히기[習]란 단번에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반면 배우기는 단번에 될 수 있다. 그래서 익히기는 늘 쉬지 않고 반복해서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時習(시습)의 時(시)는 흔히 번역하듯이 ‘때때로’로 풀이하면 본질을 놓친다. ‘시간이 날 때마다’, ‘늘 쉬지 않고 반복해서’가 바로 時다.
독자들은 이미 파악했겠지만, ‘學而 8’과 ‘學而 14’는 같은 내용을 하나는 소극적(negative) 방식으로, 다른 하나는 적극적(positive)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결국 둘 다 君子를 학문수련과 인격수양이 하나로 통합된 인간형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學而 1’의 세 문장은 상호연결되는 고리로 얽혀 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學(과 習), 朋, (知와) 君子의 고리이며 부차적으로는 說(열), 樂(낙), 君子도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다. 이 점에 주목했던 이는 정이천이다. “즐거움[樂]은 기쁨[說]에서 생겨난 것으로 그 뒤에 얻는 것이고, 즐거움이 없으면 군자라고 말하기에 부족하다.” 즉 (애쓰는 법을) 배우고 항시 익히는 것의 기쁨을 안 뒤에라야 자신과 비슷한 식견을 갖춘 벗을 통한 새로운 지식과의 만남이 즐거운 것이고, 이런 기쁨과 즐거움을 아는 자라야 남이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를 떠나 자기혁신[日新又日新]을 계속해 갈 수 있는 君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논어』의 맨 마지막 문장, 즉 ‘堯曰(요왈) 3’의 끝 문장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不知言(부지언)이면 無以知人也(무이지인야)다.’ 그 사람의 말을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논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知人[사람을 아는 것]의 문제 하나로 관철되고 있다.
2
유자가 말했다. “그 사람됨이 효도하고 공경하면서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물다. (또)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없다.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서야 도가 생겨난다. 효(효도)와 제(공경)라는 것은 인을 행하는 근본이라 할 만하다!”
學而 1’은 사람을 아는 혹은 알아주는 문제[知人]로 끝을 맺었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고서 ‘學而 2’에 들어온 셈이다.
유자(有子)는 공자의 제자로 이름은 유약(有若)이다. 여러모로 공자를 닮았다는 평을 들었고 윤리와 질서를 중시하며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정치가의 임무로 여겼다고 한다. 자(子)를 붙인 것으로 보아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도 특히 존경을 받았던 인물들 중의 한 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논어』를 보다 정밀하게 읽기 위해서는 특히 여기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기본적인 특성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공자는 제자들이 똑같은 질문을 해도 묻는 제자들에 따라 답을 달리 할 만큼 각각의 처지와 사람됨을 중요하게 여겼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맞춤형 답변’을 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學而 2’에서처럼 공자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말한 것을 그대로 실은 경우에는 십중팔구 바로 앞에 나온 공자의 발언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단서를 던져주는 해설적 성격의 글이라고 보면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유자가 말한 첫 대목 ‘其爲人也孝弟(기위인야효제)요 而好犯上者(이호범상자) 鮮矣(선의)니 不好犯上(불호범상)이요 而好作亂者(이호작란자) 未之有也(미지유야)다’는 사람을 판별하는 방법[知人之鑑]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곧 그[其] 사람의 사람됨[爲人]을 안다는 뜻이다. 유자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은 뒤에서부터 다시 읽어보면 그 말하자고 하는 바가 훨씬 분명해진다. 국가의 최고지도자는 사람을 쓰면서 누가 배신을 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인지를 알고자 온갖 노력을 다한다. 제대로 사람을 쓰려면[用人] 그 사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선은 그 사람이 해당조직이나 분야에서 윗사람을 함부로 범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윗사람을 함부로 범할지 아닐지는 결국 그가 일상생활에서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형이나 주변의 가까운 연장자들에게 공손한지를 눈여겨볼 때 어느 정도 미리 알 수 있다. 이제 知人(지인)은 제대로 된 사람[仁人]을 분별해 내는 문제로 심화된다.
3
공자는 말했다. “말을 아주 정교하게 남이 듣기 좋도록 하고, 얼굴빛도 곱게 하는 사람들 중에 (정말로) 어진 사람은 드물다.”
仁(인)에 관한 언급은 ‘里仁’ 편에 좀 더 자주 나온다. ‘里仁 2’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질지 못한 사람은 (인이나 예를 통해 자신을) 다잡는 데 오랫동안 처해 있을 수 없고, 좋은 것을 즐기는 데에도 오랫동안 처해 있을 수 없다. 어진 자[仁者]는 어짊[仁]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자[知者]는 어짊을 이롭게 여긴다.”
공자나 유학의 텍스트에서 知者(지자, 智者라고 쓰기도 함)는 仁者(인자)보다 한 수 아래다. ‘知者가 仁을 이롭게 여긴다[利仁]’는 것은 인이 어떠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것을 편한 마음으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반면에 ‘仁을 편안하게 여긴다[安仁]’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仁을 체득하여 실행하는 경지이다.
‘里仁 3’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제대로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제대로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
여기서 키워드는 ‘제대로[能]’이다. 사사로이 누구를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할 수 있는 것인데, 여기서 제대로 좋아하고 제대로 미워할 줄 알아야 어진 사람이라고 한 것은 어진 이의 공정(公正)에 바탕을 둔 마음씨를 겨냥한 것이다. 여기서 어진 이는 공정한 이다. 따라서 ‘學而 3’과 ‘里仁 3’을 합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진정으로 교언영색하는 사람 중에서 어진 이와 그렇지 못한 이를 분별할 수 있다.’
4
증자는 말했다. “나는 매일 세 가지로 내 자신을 살핀다.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함에 최선의 마음을 다하지 못한 것은 없는가? 벗과 사귐에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은 없는가?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은 아닌가?”
이 또한 행실이 뛰어났던 제자 증자(曾子)의 말로 앞서 유자(有子)의 언급이 해설이었던 것처럼 ‘學而 1’에 대한 부연설명이다.
그의 사상은 ‘증자(曾子)’ 18편(篇) 가운데 10편이 『대대례기(大戴禮記)』에 남아 전하는데, 효(孝)와 신(信)을 도덕행위의 근본으로 삼았다. 또 『대학(大學)』을 편찬하였다. 그는 공자의 도(道)를 계승하였으며, 그의 가르침은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를 거쳐 맹자(孟子)에게 전해져 유교사상사(儒敎思想史)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자사는 『중용(中庸)』을 썼다.
‘學而 1’ 풀이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증자가 매일 자신의 몸을 되살피는 이 세 가지 항목은 ‘學而 1’의 순서를 그대로 뒤집어놓은 것이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는 남[人]을 위하여[爲] 일을 도모하되 조금의 사심도 없이 진심[忠]을 다하였는가를 먼저 살핀다. 이어 뜻이 같은 벗[朋友]들과 더불어[與] 사귀는 데 믿음[信]을 잃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가, 그리고 ‘傳不習(전불습)’, 즉 學而時習(학이시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를 점검한다는 것이다.
그는 남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忠] 되물었고, 뜻이 같은 벗들에게 믿음[信]을 주지 못한 점은 없었는지 되살폈고, 스승 공자로부터 전수받은[傳] 文과 行을 제대로 익혀 내 몸에 배게 했는지[本立]를 되짚었기 때문이다. 증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거의 완벽하게 지키려고 했던 제자였다.
현학(顯學)의 유혹에 쉽게 굴복했던 다른 제자들과 달리 증자는 이처럼 스승 공자를 모범으로 삼아 오로지 자신의 내면을 닦는 데 전념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많은 존경을 받았고 동양오성에 당당히 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일단 증자의 이 같은 자기성찰 삼계명으로 집약됨으로써 ‘學而 1’의 세 가지 명제에 대한 논의는 한 단계 심화된다. 이런 심화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그만큼 ‘學而 1’의 세 가지 명제는 『논어』 전체를 하나로 꿰뚫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
공자는 말했다. “(제후의 나라인) 천승지국을 다스릴 때라도 매사에 임할 때 공경하는 마음으로 일관함으로써 백성들의 믿음을 얻어내고, 재물을 쓸 때는 절도에 맞게 하여 사치를 멀리함으로써 백성들을 사랑해야 하며, (어쩔 수 없이) 백성들을 (공역 등에) 부려야 할 경우에는 때에 맞춰 (농사일을 하지 않는 농한기 때 시키도록) 해야 한다.”
學而 1’은 인간됨[爲人]의 요체를 이야기했고 2, 3, 4는 모두 그에 대한 보충설명이었다. 그리고 이 장 ‘學而 5’는 곧장 다스림[治人]의 요체를 제시한다. 위인(爲人-修己)과 치인(治人)은 『논어』의 양대 축이다.
‘敬事而信’을 하나로 엮어서 본다면 매사에 신중과 최선을 다함으로써 백성들에게 믿음을 준다는 것이다. 이어 ‘節用而愛人’은 나라의 재물을 사용함에 절도 있게 아껴 씀으로써 백성들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使民以時’는 불가피하게 백성들을 공사 등에 부려야 할 경우에는 때에 맞춰[以時], 즉 농사일을 하지 않는 농한기 때 시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道와 導(도)의 차이는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끈다[導]라는 강제적이고 타율적인 개념이 아니라 백성에게 스스로 믿음과 사랑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끄는 導보다는 길을 낸다는 道를 선택한 것은 적절했다.
6
공자는 말했다. “어린 사람들은 집에 들어오면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공순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에는 믿음이 담겨야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가까이 (하는 것을 배우려) 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몸소 익혀 행하면서도 남은 힘이 있거든 그때 가서 문(文)을 배우도록 하라.”
앞의 ‘學而 5’가 군주(君主)가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도리에 관한 실마리를 논했다면, 여기서는 장차 군자(君子)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기본 도리의 실마리를 던진다. 어찌 보면 ‘學而’ 5와 6은 서로 짝을 이뤄 공자가 그리는 바람직한 나라의 상하 모습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 ‘學而 5’는 그런 나라의 임금[君主]의 모습을, ‘學而 6’은 그런 나라의 모범적인 관리와 백성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먼저 말해 두자면 그런 점에서 ‘學而 5’에서는 (敬) 信 (節) 愛 時 세(다섯) 가지가 핵심 개념이었다면, 여기서는 孝(효) 弟(제) 謹(근) 信(신) 愛(애) 親仁(친인) 行(행) 學(학) 여덟 가지가 핵심이다.
공자가 볼 때 도리에 맞는 행실의 핵심은 첫째, 집 안에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윗사람[長者]에게 공순(恭順, 弟)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행동을 할 때는 삼가야 하고 말에는 믿음이 담겨야 한다. 셋째,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그 중에서도 특히) 어진 이를 가까이 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몸에 익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을 만큼 되었을 때 비로소 文(문)을 배우도록 하라는 것이다.
7
자하는 말했다.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기를 여색(女色)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꿔서 하고, 부모 섬기기를 기꺼이 온 힘을 다하며, 임금 섬기기를 기꺼이 온몸을 다 바쳐 하고, 벗과 사귀기를 일단 말을 하면 반드시 책임을 져 믿음을 주는 식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비록 배우지 않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 사람이 (이미 문을) 배웠다고 말할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의 이 말 또한 기본적으로는 ‘學而 6’의 공자 발언에 대한 부연설명이다. 자하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복상(卜商)이며 공자의 10대 제자인 공문십철(孔門十哲)에 드는 공자의 대표적 제자 중 한 명이다. 증자가 내면의 성실을 강조한 반면 자하는 겉으로 드러나는 예(禮)의 격식을 중히 여겼다는 평을 듣는다.
‘學而 6’은 사람됨의 기본, 즉 質(질)을 이야기했고 ‘學而 7’은 기본에 더해지는 성심성의, 즉 애씀으로서의 文(문)을 이야기하고 있다. 갈수록 중요성을 더해갈 文質(문질)의 문제를 『논어』의 편찬자는 이처럼 책의 전반부에 은근하게 배치해 놓았다.
8
공자는 말했다. “군자가 되려는 사람이 진중하지 못하면 위엄을 갖출 수 없고, 배우면 고집불통에 빠지지 않는다. (늘 진중하면서 배우려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남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는 벗하지 말며, (자신에게)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려해서는 안 된다.”
다시 공자의 발언으로 돌아간다. 내용으로 보자면 이 글은 ‘學而’ 5와 6의 중간에 들어갈 수 있다. ‘學而 5’는 군주를, ‘學而 6’은 배우는 자를 이야기했는데, 여기에서의 君子(군자)는 어찌 보면 군주와 배우는 자 사이에 있는 지식층이나 중간지배층이다. 공자는 그 중간지배층인 君子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 지침을 준다.
공자는 重과 學(학)을 풀어서 설명한다. 먼저 진중함에 대한 풀이다. 공자는 진중함을 갖추려면 자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忠] 남들에게 믿음[信]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忠孝弟信(충효제신) 모두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태도이다. 이것이 진중함이다. 이어 널리 사람을 사귀더라도 자기보다 못한 자[不如己者]는 벗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허물[過]이 있으면[則] 그것을 바로잡는 것[改]을 꺼려서는 안 된다[勿憚]고 강조한다. 남보다는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해결의 단서를 찾으라고 권하는 것이다. 이것은 學則不固에 대한 풀이다. 이 때의 學도 당연히 ‘文을 배우다’는 뜻이다. 學文, 즉 애쓰는 법을 배운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學而 8’은 5와 6 사이에 있으면서 6과 7에 대한 보충설명임과 동시에 다시 ‘學而 1’로 우리를 돌아가게 만든다. 대단히 중요한 연결고리라는 뜻이다. ‘學而 4’에서 증자의 말이 우리를 ‘學而 1’로 돌아가게 한 적이 있으니 우리는 두 번째로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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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 1 |
學而 4 |
學而 8 |
文, 行 |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 傳不習乎 |
: 過則勿憚改 |
信 |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
: 與朋友交而不信乎 |
: 無友不如己者 |
忠 |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
: 爲人謀而不忠乎 |
: 主忠信 |
‘學而 1’과 ‘學而 4’와 ‘學而 8’은 어느 한쪽이 어느 한쪽을 보충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읽으면 그 뜻은 더 풍부해진다. 이런 가르침은 ‘述而 24’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공자는 네 가지를 가르쳤으니 문(文) 행(行) 충(忠) 신(信) 넷이다.
文과 行은 學而時習, 信은 有朋~, 忠은 人不知~에 각기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즉 ‘學而’ 1, 4, 8은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는 핵심적인 교육내용이었던 것이다. 이를 앞에서 본 文質(문질)로 정리하면 文과 行은 文, 忠과 信은 質이다. 여기에서 行이 質이 아니고 文인 이유는 그것이 禮(예)를 행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文은 애쓰는 것이다. 禮가 바로 애를 쓰는 것 아닌가?
9
증자는 말했다. “부모님의 상을 삼가서 치르고, 먼 조상까지도 잊지 않고 추모하면 백성의 백성다움도 두터워질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증자의 이 발언을 ‘學而 8’과 어떻게 연결 지을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앞의 것이 공자의 언급이었기 때문에 제자인 증자의 이 언급은 일단 그에 대한 해설일 가능성이 높다. 굳이 연결 짓자면 결국은 ‘主忠信(주충신)’, 즉 ‘사람을 대하거나 어떤 일을 함에 최선을 다하고[忠] 믿음을 줄 수 있게 하라’의 가장 생생한 사례로 보면 될 듯하다.
그리고 이 장은 사람을 보는 知人(지인)의 문제 차원에서도 접근이 가능하다. 부모의 상을 충심(忠心)으로 치르고 먼 조상들까지 잊지 않고 충심으로 추모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신실(信實)할 가능성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學而 11’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10
자금이 자공에게 물었다. “공자께서는 찾아간 나라에 이르셔서 반드시 그 정사(政事)를 들으시니 그분이 (정치에 관심이 많아) 그렇게 하려고 구해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제후가 먼저 공자에게 청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자공은 이렇게 답했다. “공자께서는 온화하고 반듯하고 공손하고 검소하고 겸손한 성품과 태도를 통해 그것, 즉 정치참여의 기회나 지위를 얻은 것이니 설사 그것을 그분이 먼저 구해서 얻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구하는 것과는 아마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네.”
자금과 자공의 이 문답은 공자의 말[語]에 대한 해석이라기보다는 가끔 에피소드처럼 등장하는 공자의 생생한 면모에 대한 보고 내지 목격담이라고 보는 게 좋을 듯하다. 그런 점에서는 이 장은 이와 비슷한 내용들을 한꺼번에 모아 놓은 ‘子張(자장)’ 편 후반부에 놓아도 될 듯하다. 텍스트(공자)와 해석(제자)의 관계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는 구절인 것이다.
그런데 왜 『논어』의 편찬자는 이 에피소드를 이처럼 비중이 큰 머리말 부분에 배치한 것일까? 이 장이 修己(수기)와 治人(치인)을 연결해 주는 고리역할을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學而’ 편에서 사람됨[修己]과 관련된 부분과 다스림[治人]과 관련된 부분을 각기 다뤄왔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자 특유의 사상이며 유가의 핵심이다. 바로 이 장이 그 연결고리를 담고 있는 에피소드라고 보았기 때문에 공자 사후의 에피소드임에도 불구하고 편찬자는 여기에 배치했다고 봐야 한다. 실은 ‘學而 9’도 수기와 치인의 연결이었다는 점에서 이 장은 ‘學而 9’에 대한 보충으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문답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문면에 드러난 그대로이다. 정치에 참여하거나 제후의 자문에 응하더라도 공자의 그것은 권력욕이나 출세를 위한 일반 사람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공자와 일반 사람들이 다른 근본이유는 공자의 경우 溫·良·恭·儉·讓(온·양·공·검·양)의 다섯 가지 덕목[五德]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 오덕(五德)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 오덕은 적어도 유학자로서 정치에 관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확대해서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군자나 선비[士](가 되려는 사람)도 오덕을 갖추려 노력해야 한다.
자공이 물었다.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스승님께서는 그것을 궤 속에 넣어 가죽으로 싸서 고이 보관하시겠습니까? 좋은 값을 구하여 그것을 파시겠습니까?” 공자는 말했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그러나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修己(수기)하되 治人(치인)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또 기회가 왔을 때는 治人의 과제를 피해서도 안 된다. 다만 나라에 도가 없을 때는 나아가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공자의 나아가고 물러나는 진퇴(進退)의 도리이다.
11
공자는 말했다. “(어떤 사람을 관찰할 때에는) 그의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아버지를 향한) 그 아들의 뜻을 살피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경우에는 그가 하는 행동을 주의 깊게 지켜보아 삼 년이 지나도록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보여준 도리를 조금도 잊지 않고 따른다면 그것은 효라고 이를 만하다.”
여기서 공자는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로서 孝를 꼽고서 그것을 살피는 일반적인 방법 한 가지를 제시한 것이다. 즉 공자는 여기에서 그냥 효도하라는 도덕적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제대로 효도를 다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공자가 생각한 孝는 무엇인가? 물론 이에 대해 공자는 늘 그렇듯이 직접적인 정의(定義)를 내리지는 않는다. 다만 孝를 행하는 사람들의 사례와 不孝(불효)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孝의 실체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접근해 갈 뿐이다.
공자에게 있어서 자식이 부모에 대해 가져야 할 예(禮) 중에서 대표인 孝란, 유자가 말한 대로,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어진[仁] 사람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지표다.
일단 충분하지는 않지만 孝에 관해 공자가 하고 싶은 말을 개략적으로나마 살필 수 있었다. 결국 공자는 최선을 다할 것[至誠=文]을 강조한다. 文(문)을 우리는 ‘애쓰다’로 풀었다. ‘애쓰다’의 사전적 의미는 ‘몸과 마음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이다. 공자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자가 어찌 군주나 친구, 심지어 자식에게 최선을 다할 것인가라고 따져 묻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효자(孝子)가 되라는 말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을 판별함에 그 사람이 孝를 어느 정도까지 행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나머지 인간됨(예를 아는 인간인지의 여부 혹은 어진 사람인지의 여부)은 절로 알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알아보는 문제[知人]의 어려움을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12
유자가 말했다. “예(禮)의 쓰임(用)은 화기(和氣)를 귀하게 여긴다. (요순과 같은) 옛 임금들의 도리도 바로 이런 예의 화기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니 상하가 통용되어 행해졌다. (그러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화기만을 알아서 조화나 화합에만 힘쓰고 예(의 체)로써 그것을 절제하지 않는다면 예를 제대로 행할 수 없다.”
- 앞에서 공자가 孝(효)를 이야기했으므로 여기서 제자 유자(有子)가 말하는 禮(예)는 그에 관한 풀이로 볼 수 있다. ‘學而’ 11과 12도 광의로 보면 텍스트(공자의 말)와 주석(제자의 말)의 관계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마도 『논어』의 편찬자는 공자가 말한 孝 다음에 제자의 언급 중 딱 떨어지는 풀이를 찾으려 했으나 마땅치 않아 그에 가장 가까운 언급으로 유자의 이 말을 골랐는지도 모른다.
13
유자가 말했다. “개인적 차원의 약속이 (공적인 차원의) 의리(義理)에 가까울 경우 약속했을 때의 말은 지켜질 수 있다. 공손한 태도가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당할 일은 멀어진다. 그리하여 그 주변의 친지를 잃지 않는다면 진정 그 사람을 종주(宗主)로 삼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