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 Highlight on Page 24 | Loc. 362-65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12:20 PM
이런 개인주의는 누군가에게는 ‘종북 좌빨’보다 더 불온한 것일 게다. 이 사회를 지배해온 것은 그 무엇보다 집단주의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의 청년기에, 독재에 대항한다는 학생운동 세력 역시 ‘의장님을 목숨으로 보위하자’는 수준의 전체주의적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투사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후배들에게 직장에의 헌신을 강요하는 꼰대로 변신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 Highlight on Page 25 | Loc. 373-79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12:20 PM
타인과의 비교에 대한 집착이 무한경쟁을 낳는다. 잘나가는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비로소 안도하지만, 그다음부터는 탈락의 공포에 시달린다. 결국 자존감 결핍으로 인한 집단 의존증은 집단의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이기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고도성장기의 신화가 끝난 저성장시대, 강자와 약자의 격차는 넘을 수 없게 크고, 약자는 위는 넘볼 수 없으니 어떻게든 무리를 지어 더 약한 자와 구분하려든다. 가진 것은 이 나라 국적뿐인 이들이 이주민들을 멸시하고, 성기 하나가 마지막 자존심인 남성들이 여성을 증오한다.
- Highlight on Page 25 | Loc. 379-81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12:20 PM
반면 합리적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와 공존한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톨레랑스, 즉 차이에 대한 용인, 소수자 보호, 다양성의 존중은 보다 많은 개인들이 주눅들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 Highlight on Page 31 | Loc. 463-71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12:26 PM
이 영화에 대한 감상글을 몇 가지 검색해보니 젊은 관객들이 이런 식으로 영화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꽤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노력은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맹목적인 노력만이 가치의 척도는 아니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성찰이 먼저 필요하고,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분노도 필요하다. 가장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건 ‘노력해야 성공한다’를 넘어서 ‘성공한 이들은 다 처절하게 노력했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만큼 노력하여 성공한 이들이니까 괴팍하고 못되게 굴 만하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등으로 끊임없이 가지를 치는 스톡홀름증후군이다. 스티브 잡스가 매혹적이라 하여 그의 괴팍함과 못된 점조차 찬양할 필요는 없다. 훌륭한 점과 비판받아야 할 점은 냉정하게 분리해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대체로 성공에는 재능과 노력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사회에는 그저 우연히 부모 잘 만나서 과분한 기회를 누리며 사는 이들도 많다.
- Highlight on Page 34 | Loc. 520-31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12:30 PM
최신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행복을 쉽게 설명한 전문가의 책이 있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이다. 그는 미국에서 오래 연구한 심리학자로, 인간이 느끼는 행복에 관하여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인용되는 연구자의 한 사람이다. 서교수에 따르면, 행복감이란 결국 뇌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뇌가 특정한 종류의 경험들에 대해 기쁨, 즐거움, 설렘 등의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실증적 연구 결과,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었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끼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었던 것이다. 돈은 어느 정도의 문화적 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그룹의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사회성이 높은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인간에게도 생존과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명령이 핵심 과제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인간에게 생존과 번식에 가장 필수적인 자원은 동료 인간들이었다. 그러니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활동, 즉 동료 및 이성과 어울리는 활동을 할 때 뇌에서 쾌감이라는 보상을 주어 이를 촉진시키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 Highlight on Page 35 | Loc. 532-40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12:31 PM
서교수가 이야기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행복의 메커니즘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것이다. 이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옛말의 지혜와 같은 이야기다. 아무리 대단한 성취나 환희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건 심오한 인생철학의 문제이기 이전에 생물체의 기본 메커니즘인 적응adaptation 때문이다. 한 번 맛있는 먹이를 먹었다고 영원히 동굴에 누워 그 즐거움만 만끽하다가는 굶어죽는다. 다시 사냥을 나가도록 등을 떠밀려면 지나간 쾌감은 잊고 새로운 쾌감을 좇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백억 원의 복권 당첨자 집단에 대한 추적연구 결과 불과 일 년 뒤에 이들의 행복감은 주변 이웃 수준으로 복귀했다. 이런 메커니즘 때문에 행복 전략에 있어 큰 것 한 방보다 다양하고 자잘한 즐거움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 심리학의 연구성과다.
- Highlight on Page 36 | Loc. 541-47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12:31 PM
미국의 한 기업 CEO 댄 프라이스는 직원들의 최저연봉을 7만 불로 올리기 위해 자기 연봉을 90퍼센트 자진삭감해서 화제가 되었다. 단순한 자선 행위가 아니다. 그는 앞에서 언급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 결과인 연봉 상승에 따라 대체적으로 행복도도 상승하지만 문화적 생활이 가능한 수준인 7만 5000불이 넘어서면 행복에 영향이 없고 오히려 물질주의 성향 증가로 행복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통계를 본 후, 행복도 최적화 전략을 스스로 실험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연봉은 자진삭감했지만 직원들뿐 아니라 이 소식을 접한 숱한 사람들의 지지와 인정을 받게 되어 행복 대차대조표상으로는 이득일 것이 분명하다.
- Highlight on Page 36 | Loc. 547-56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12:32 PM
과학이 알려준 행복은 결국 가족, 연인, 친구, 동료 등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핵심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수직적 가치관과 경쟁 역시 출세, 권력, 돈, 학벌, 지위재의 과시를 통해 타인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본성의 발현일 것이다. 문제는 본말이 전도되어 매개체인 돈, 지위 등 자체에 집착하게 된다는 점이다. 돈을 벌든 높은 자리에 오르든 박사가 되든 그걸 같이 기뻐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해 있을 때 뇌의 행복 중추에 불이 번쩍번쩍 들어오는 것이지 모두가 슬슬 피하고 흉을 보는데 혼자 방에 돈다발 쌓아놓거나 임명장 걸어놓고 쳐다본다고 행복감이 넘쳐날 리 없다. 아, 물론 과학은 통계이자 경향성일 뿐이고 진화의 세계에는 항상 돌연변이가 존재하므로 무인도에서 혼자 돈다발만 만져도 흥분돼 미치겠는 예외적 종자들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평생 돈, 지위, 성취만 좇다가 중년이 되어 가족도 부하직원들도 자기를 슬슬 피하기만 하고 편하게 불러낼 친구도 없어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례를 훨씬 자주 본다.
- Highlight on Page 37 | Loc. 556-62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12:32 PM
사회 구성원 모두가 획일화된 목표를 놓고 피 튀기는 경쟁을 하는 건 필연적으로 행복의 승자독식을 낳을 뿐이다. 어차피 경쟁할 수밖에 없다면 전장을 무수히 쪼개어 승자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낫다. 예전 국민학교 졸업식에서는 전교 일등만 몇 번씩 단상에 올라가 온갖 상을 독식했지만, 요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는 책읽기상, 친구돕기상, 달리기상, 오만 이름의 상장을 모두에게 인심 좋게 나눠준다. 어느 쪽이 더 다수가 행복한 졸업식일까. 어차피 전교 일등 하는 아이는 상장 몇 개 덜 받아도 이후 인생에서 좋은 일이 있을 기회가 많으니 혼자 상장을 독점 못한다고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학교가 관심 가져야 할 것은 여러 아이들이 골고루 상장 받을 거리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 Highlight on Page 39 | Loc. 586-89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12:34 PM
인간 행복의 원천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인데 집단주의 문화가 왜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지에 대해 서교수는 이렇게 답한다. 원래 행복의 원천이어야 할 인간관계가 집단주의사회에서는 그 관계의 속성 때문에 오히려 불행의 원천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 Highlight on Page 56 | Loc. 845-52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12:49 PM
창 시절 한국사와 중국사를 공부할 때 참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한 왕조가 건설되어 발전하는 시기와 쇠락하여 망해가는 시기의 특징이 몇 천 년에 걸쳐 놀라울 만큼 비슷하게 반복된다는 것이다. 발전기의 특징은 균등 분배를 지향하는 토지개혁, 귀족의 세 부담 증가, 국가 직영 최고교육기관 확대 및 공정한 과거제도를 통한 신진 엘리트의 등용에 있다. 패망기의 특징은 소수 귀족의 토지 사유화 증가로 인한 대농장화, 백성의 각종 세 부담 증가, 귀족 자제 중심의 사학 증가, 고위 관리 자제를 특채하는 문음, 음서 제도 확대를 통한 지배계급의 세습 구조 공고화, 과거제의 붕괴 등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병리 현상이 계속되면, 결국 사회적 불만이 극에 달해 민란이 일어난다.
- Highlight on Page 61 | Loc. 925-28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04:56 PM
그리스적 전인교육은 노예제의 기반 위에 귀족들에게 적용되었던 혜택이다. 음악, 미술, 체육에 웅변, 논술, 뛰어난 외국어 능력 등 중산층 이상 가정의 뒷받침 없이는 개인의 노력으로 경쟁하기 힘든 분야의 능력을 자꾸 대입제도에 도입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벌써 신분 이동이 어려운 쇠퇴기의 사회가 되어가는 징표 아닐까 싶어 두렵다.
- Highlight on Page 63 | Loc. 962-71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05:01 PM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지고 빈곤이 대물림되는 사회는 역사가 증명하듯 근본적 기반이 흔들린다. 모든 곳에 희망이 있어야 사회가 유지된다. 이를 위해서는 형식적 평등을 넘어 실질적 평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이 대학 입시에서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적극적 평등 실현 조치Affirmative Action’를 실시하듯 지역 균형 전형, 기회 균등 전형과 같은 조치의 중요성은 우리 사회에서도 점점 더 커질 것 같다. 현재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의에 관한 원칙인 존 롤스의 『정의론』은 사회의 최소 수혜자를 배려하기 위한 불평등은 정의에 부합한다고 하여 실질적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자칫 좋은 의도로 최악의 결과만 낳을 수 있다. 지금 입시제도가 이렇게 복잡해진 것도 알고 보면 그런 결과가 층층이 쌓여서인지 모르겠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 Highlight on Page 64 | Loc. 982-86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05:02 PM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다. 소수의 공부 잘하는 아이뿐 아니라 다수의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 사실 더 중요하다. 또한 사회에는 공부 잘하는 것 외에 다양한 재능이 필요하다. 대학 입시를 봉건시대의 과거제도처럼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은 자칫 엘리트주의로 흐를 수 있다. 공공의식이 부족한 엘리트는 사회에 오히려 더 큰 해악만 끼칠 수 있다는 것 역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 Highlight on Page 69 | Loc. 1050-58 | Added on Tuesday, January 31, 2017, 05:09 PM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냉철하게 파헤치는 측면에서는 탁월했다. 아름다운 말로 포장된 인간사회 구조의 곳곳에 탐욕과 이기심, 지배와 피지배 구조가 있다는 걸 일깨워주었다. 의문점은 그렇게 냉철하고 날카롭고 실증적이던 비판의식이 대안 제시 단계에서는 갑자기 종교 수준의 낙관주의로 돌변한다는 점이었다. 인간이 그렇게 역사 내내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웠다면 어떻게 갑자기 노동계급에 대한 헌신과 희생정신에 불타는 전사로 돌변하며, 당(즉 지배 엘리트)은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은 채 인민을 위해 헌신하고, 사람들은 사유재산과 이윤 동기 없이도 모두를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말인가. 그게 근본적으로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지 과학적인 설명이 너무나 부족했다. 자본주의의 허위의식에서 깨어나 사회주의적 인간형으로 거듭나면 된다는 식인데 이건 종교일 뿐이다. 개미 연구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평이 정확하다. “이론은 훌륭한데 종種이 틀렸다.”
- Highlight on Page 105 | Loc. 1597-1608 | Added on Wednesday, February 01, 2017, 11:58 AM
좋은 단편을 찾아 읽는 것은 쇠약해진 ‘문학 근육’ 단련에 좋은 듯하다. 문학적 감수성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법관에게는 더더욱 필요하다. 심리학이든 다른 어떤 학문이든 결국 인간의 여러 특성 중 범주화할 수 있는 보편성을 추출해서 보여준다. 문학은 그보다 훨씬 풍부하게 인간의 개별성, 예외성, 비합리성을 체험하게 해준다. 후자에 대한 이해 내지 상상력 없이 이루어지는 재판은 침대 길이에 맞춰 인간의 신체를 절단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전락할 수 있다. 문학은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숨기고 싶은 속내 깊숙한 곳을 파헤쳐 보여주곤 한다. 문학이 보여주는 인간 세상의 민낯은 전형적이지 않다. 작가들은 뻔하고 예측가능한 것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충동적이고, 불가해하고, 모순 덩어리인 인간 마음의 꿈틀거림을 묘사하는 것에 몰두한다. 그리고 그 관찰의 주된 재료는 작가 자신의 내면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마음을 스쳐갔던 온갖 미묘한 감정과 충동들. 질투, 선망, 욕정, 열등감, 우월감, 증오, 살의…… 자신을 주어로 하여 털어놓기는 어려운 날것의 내면적 충동들을 재료로 상상력을 가미하고 증폭, 변형하여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창조해낸다.
- Highlight on Page 105 | Loc. 1608-17 | Added on Wednesday, February 01, 2017, 11:58 AM
인간 행위를 기술하는 방식에는 문학 이외에 육하원칙이 지배하는 신문기사가 있다. 두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인간이 저지르는 사건은 결국 인간 내면의 작용인데, 기자들은 주로 외형적 행위와 그 결과에만 치중하고 내면의 동기는 돈, 욕정, 복수심 등으로 간명하게 유형화하곤 한다. 사람들은 복잡한 사건을 쉽게 이해하길 원하고,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놈인지 누구에게 분노하면 되는지 결론부터 알려주기를 성마르게 재촉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분노는 즉각적이고 선명한 정의를 요구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법관으로 일해온 경험에 비춰보면 실제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상당수는 인과관계도, 동기도, 선악 구분도 명확하지 않다. 신문기사처럼 몇 문장으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참으로 많다. 그래서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냉정한 ‘팩트’ 집합으로 보이는 신문기사보다 주관적인 내면고백 덩어리로 보이는 문학이 실제 인간이 저지르는 일들을 더 잘 설명해줄 때가 많다. 작가는 최소한 자기 자신이라는 한 인간의 심층적인 내면세계를 관찰해서 쓰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작가일 경우의 이야기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