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머컬처란 무엇인가?
이 책에는 퍼머컬처와 생태디자인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이 두 가지 분야는 이 책의 기초가 되는 개념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퍼머컬쳐라는 말이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서 설명을 좀 하려고 한다.
퍼머컬처는 일련의 원칙과 실행 방법을 이용해 지속가능한 인간 거주지를 디자인한다. 퍼머컬쳐란 '영속적인 문화(permanent culture)'와 '영속적인 농업(permanent agriculture)'의 축약어로, 두 명의 호주인이 제창한 개념이다. 그중 한 명인 빌 몰리슨은 혁신적이로 비범한 인물로, 한때는 삼림 감독관이었으며, 교사, 덫사냥꾼, 박물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이 분야에 있어서 백과사전적 경전이나 다름없는 치밀한 책 "퍼머컬처: 디자이너의 매뉴얼(permaculture: A Designer's manual)"의 저자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빌의 수많은 제자들 중 첫 번째 제자인 데이비드 홈그렌으로, 퍼머컬처의 시야를 눈부시게 확장시켰다.
몰리슨은 1959년에 호주 테즈메이니아 우림지대에서 유대동물들이 풀을 뜯어먹는 모습을 관찰하다가 퍼머컬처에 대한 발상을 처음으로 떠올렸다고 한다. 이곳의 생태계가 생기 있고 풍요로우미 상호 밀접하게 연결된 데 감탄해 영감을 받은 몰리슨은 일기에 "나는 이곳의 생태계처럼 기능하는 시스템을 우리가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적었다. 1970년대에 몰리슨과 홈그렌은 자연와 토착문화에서 관잘한 것을 토대로, 그 시스템을 그토록 풍요롭고 지속가능하게 만든 원리를 규명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이런 원리를 생태적으로 건강하고 생간적인 경관을 디자인하는데 적용하기를 바랐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30억년 이상 생명체가 번성해왔고 토착민들이 수천 년 동안 환경과 비교적 조화롭게 살아온 것을 보면, 생명체와 토착문화는 지속가능성의 비결을 어느 정도 차악한게 틀림없다고 찬단했다. 두 사람은 함께 데이비드의 학부 논문을 고치고 보강해서, 획기적인 책 "퍼머컬쳐 1 (Permaculture One)"을 내놓았다.
당시 퍼머컬쳐는 자연을 모델로 삼으면서 인간 또한 포함된 경관을 디자인하려는 수단으로 시작했다. 일단 퍼머컬쳐의 정의를 설명하고 나면, 이 책은 경관디자인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할 것이다. 일단 퍼머컬처의 정의를 설명하고 나면, 이 책은 경관디자인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몰리슨과 홈그렌,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은 사람들은 재빨리 깨달았다. 설령 우리가 자연을 모방한 농장이나 정원, 경관을 창조하는 법을 배운다고 할지라도, 사회 자체가 지속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리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토지를 이용해보았자 지구상에 인류가 존속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지고 삶의 질이 점점 저하되는 현상을 막지는 못할 것임을. 그러나 퍼머컬쳐의 여러 원칙은 자연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 시발점인 농업을 훤씬 넘어선 엄청난 범위에 적용될 수 있다. 퍼머컬쳐는 건물과 에너지 시스템, 하수처리 시스템, 마을 디자인 뿐 아니라, 학교 커리큘럼, 사업, 공동체, 의사결정 과정과 같은 무형의 구조를 디자인하는 데도 사용되고 있다.
퍼머컬쳐는 어떻게 이런 일을 할까? 퍼머컬쳐 실천가들은 유기체나 건물, 그리고 우리가 '보이지 않는 구조'라고 부르는 무형의 것을 가지고 디자인을 하지만, 대상 자체보다는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주의 깊게 다지안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바로 그 상호 연결 관계가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전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관계들은 서로 떨어진 요소를 모아서, 잘 기능하는 시스템으로 바꾼다. 그 시스템은 뒷마당이 될 수도 있고, 공동체가 될 수도 있고, 생태계가 될 수도 있다.
이야기가 다소 이론적으로 들린다면, 퍼머컬쳐에 대한 좀 더 실제적인 정의가 여기 있다. 유기농법, 재활용, 자연건축, 재생 가능한 에너지,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 과정, 사회정의 구현과 같은 실천이 지속가능성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라면, 퍼머컬쳐는 그런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고 조직하는 일을 도와주는 도구상자다. 퍼머컬쳐는 학문의 한 분야가 아니라 서로 다른 학문 분야와 전략, 기술을 연계하는 디자인 접근 방식이다. 또한 자연과 마찬가지로 손에 닿는 모든 것의 최대 장점을 혼합하여 이용한다. 이런 식의 접근법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퍼머컬쳐를 단순히 여러 가지 기술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브나선'이나 '열쇠구멍 모양 두둑'처럼 퍼머컬쳐의 원리를 아름답게 보여준다는 이유로 자주 쓰이는 특별한 방법도 있지만, 퍼머컬쳐에서만 쓰이는 기술은 거의 없다. 퍼머컬쳐인(permaculturist)들은 광범위한 분야의 학문으로부터 기술을 빌려온다. 퍼머컬쳐 원리를 얼마나 잘 적용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기술을 선택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방법이 '퍼머컬쳐에서 하는 식'이라서 선택하는게 아니란 얘기다.
우리의 문화는 관계보다는 사물에 집중하기 때문에, '소재' 대신에 연관성을 강조하는 퍼머컬쳐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퍼머컬쳐에 갓 입문한 어떤 사람들은 "퍼머컬쳐에는 유기농법(또는 태양에너지, 또는 자연건축)이 포함된다"고 말하는 바람에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실천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퍼머컬쳐는 그런 분야들을 흡수하거나 퍼머컬쳐의 일부분으로(즉, 더 작은 것으로) 폄하하기보다, 이런 중요한 아이디어들을 어디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를 보여준다. 퍼머컬쳐는 '연결하는 과학'인 셈이다.
퍼머컬쳐의 목표는 생태적으로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인간 공동체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퍼머컬쳐는 지구 돌보기, 사람 돌보기, 그리고 이러한 돌보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잉여의 재투자라는 윤리규범을 지침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윤리로부터 비롯된 디자인 지침과 원칙은 장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아래의 목록은 내가 염두에 두는 퍼머컬쳐의 원칙인데, 몰리슨과 홈그렌, 그리고 그들과 책을 함께 쓴 사람들의 저작을 참고해 수집한 것이다.
퍼머컬쳐의 원칙
A. 생태디자인의 핵심 원칙
- 관찰한다
- 시간만 낭비하면서 사려 없이 행동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세심하게 관찰한다. 사계절에 걸쳐 하나의 장소와 그 장소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관찰한다. 특정한 장소, 고객, 문화를 고려하여 디자인한다.
- 연결한다
- 요소들 간의 상대적인 위치를 이용한다. 즉, 모든 디자인 요소가 유용하고 시간이 절약되는 방식으로 연결되도록 배치한다. 요소가 몇 개 있느냐가 아니라, 요소들 간의 연결이 얼마나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이 건강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만들어낸다.
- 에너지와 물질을 붙잡아 저장한다
- 유용한 흐름을 확인하고, 모으고, 유지한다. 모든 순환은 산출의 기회다. 경사, 하중, 온도 등의 변화는 모두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자원을 재투자하면 더 많은 자원을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 각각의 요소는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 디자인의 요소를 선택하고 배치할 때, 각 요소가 가능한 한 많은 기능을 수행하게끔 신경을 쓴다. 다양한 구성 요소를 유익하게 연결하면 전체가 안정적으로 형성된다. 공간과 시간이라는 관점 둘 다에 유의하여 여러 요소를 적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