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4 (Thu)
운. 선택의 감각.
일을 하거나, 또는 인생을 살 때, "와, 그때 이걸 해놓길 잘했네", "와, 그때 그거 사놓길 잘했다"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의 선택이나 행동이 지금의 나를 도와주는 경험.
그리고, 일반화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묘하게 악재가 겹치는 사람도 있고, 묘하게 호재가 겹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더 절대다수는 악재와 호재와 그저그런게 섞여있는 경우가 더 많을거다.
묘하게 호재가 겹치는 사람들에게는 뭐가 있는걸까?
개발을 놓고 보면, 딱히 고민 없이 이렇게 만들어뒀는데 나중에 "와, 이렇게 만들어놓길 잘했네. 이게 이렇게 쓰이네." 하는 경우들이 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다고 치부할 수 있겠다. 하지만 뭔가 있을거라고 본다.
이를테면, 개발에서도 OCP, 즉 확장에는 열려있되 변경에는 닫혀있는게 좋다는 원칙이 있다. 예를 들자면 정보보호 필터링 기능을 만들 때, 미들웨어처럼 처리하도록 만들어둔다면, 나중에 다른 기능, 예컨대 로깅 기능을 달 때도 기존의 코드를 수정할 필요 없이 (변경에 닫혀있는), 새 미들웨어 정의해서 달아주면 기능이 확장된다. 이벤트 리스너 같은것도 비슷한거고.
사실 두세시간 시간 내서 리스너 패턴, 옵저버 패턴 같은거 익히고 구현해볼 수 있다. 어렵지 않다. 그리고 내가 하는 업무에서, 이왕 구현하는거 그렇게 OCP에 따라서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거기에 좀 부가시간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놓는 경우에, 나중에 다른 기능의 확장이 필요할 때 신기함을 느끼는거다. (와, 그때 이렇게 해놓길 잘했네. 이게 이렇게 쓰이네.).
어떤 점에서는 make things right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반면에 방망이만 깎고 있으면 안된다. 아까 ㅇㅇ님과 이야기하다가, 내 느낌적인 느낌으로, 원래 작업의 분량이나 시간에 비해서, 이런 make things right 때문에 발생하는 추가 노력이, 20% 수준이면 그냥 고민없이 하는 것 같다. 70%가 넘어가면 나중에 하는 것 같고. 30%쯤 넘어가면 좀 고민.
이렇게 평소에 묻어놓은 것들이 나중에 여기 저기 이일 저일 이때 저때에서 복리효과로 돌아온다.
이런 효과를 내는 요소들이 많이 있을거다. 어떤게 이런 복리효과를 내는건지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감각이 중요하다. 그리고 효과 있는 것들을 몸에 담아야 한다. 안목과 감각은 사실 경험과 검증에서 온다. 되돌아보기. 또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도 있고. 책이나 역사에도 그런게 담겨있다. 미리 가늠해보고, 실제 겪어보고, 예상과 같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닌지 평가해서 검증해보고, 효과 있는건 남기고. 그렇게 검증과 평가를 하면서, 이게 도움이 되는 녀석인지, 느낌이 오는 녀석인지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감각이 길러진다.
존 크럼볼츠가 Good Luck이라는 책을 썼었다. 아마 그도 "운"으로 치부되는 좋은 전략과 습관들에 대해 정리해놓지 않았을까 싶다. 언제 한번 훑어봐야지.
코칭에서 코치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실제 행동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피코치가 생각만 하지 말고 실제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오늘은 어떤 주제로 코칭을 할까요?'라는 주제 정하는데 정말 공을 많이 들인다. 목표를 예리하게 깎는다고 표현한다. 펑퍼짐하게 세운 목표는 마지막 행동계획도 펑퍼짐하다. 구체적이고 예리하게 정리한 목표는 마지막 행동계획도 예리하고 실천가능하다.
헌데 마지막 행동계획까지 나왔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계획과 실행의 사이에는 또 큰 강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 코치가 쓰면 좋을 트릭 중 하나는, 행동계획도 예리하게 깎고, 첫번째 계단을 최대한 낮게 만드는 것이다.
살을 빼야겠다. 헬스클럽에 등록해야겠다. 여기까지 세우고 코칭 세션이 끝난다면, 실행에 옮기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럴때 코치는 어떻게 해야할까?
어느 헬스클럽에 가면 좋을지, 어떤 혜택이 있는지 등을 검색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결국 지쳐서 등록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한 대비로, '일단 아무데나 등록한다. 대신에 한달만. 가장 저렴한 곳이어서 고민의 부담이 없다던지. 아니면 좀 비싸더라도 집 가까운 곳에 한다던지. 실천에 허들이 없는 방법으로. 등록해놓고 안가도 된다. 일단 한번이라도 가보자.' 같은게 가능하다. 실천의 방향으로 한 발짝 움직이게 된다.
헬스 등록을 하기 위해서, '다음주 중에 가서 등록하겠다'라는 계획은 실패할 공산이 크다. 그럼 '오늘 안에 실천할 수 있는건 뭔가?', '이 세션이 끝나자마자 할 수 있는건 뭔가?' 같은 질문을 해본다. '에이, 오늘 등록을 어떻게 해요.' 그렇다. 하지만 오늘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언제 등록하러 갈지 생각해보고 캘린더나 수첩에 적어놓는 것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나 가족에게, '다음주에 헬스 등록하려고'라고 공약하는 것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다.
변화의 첫 단초를 예리하게 설계하고,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게 하는걸 도와주다보면, 작은 실천의 달인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