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영재와 웅재
Contents
앞 장에서 우리는 사람을 살필 때 저지르기 쉬운 착각들 — 겉모습에 속고, 평판에 휘둘리고, 자기와 비슷한 부류만 알아보는 좁은 눈 — 을 하나씩 짚어보았다. 그런데 사람을 가늠하는 잣대 가운데 가장 흔히 쓰이면서도 가장 헐겁게 쓰이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영웅(英雄)"이다. 유소는 이 장에서 이 익숙한 두 글자를 칼로 가르듯 쪼갠다. 영(英)과 웅(雄)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풀의 정수, 짐승의 우두머리
유소는 비유에서 시작한다. 풀 가운데 가장 빼어난 이삭을 영(英)이라 부르고, 뭇 짐승 가운데 무리를 압도하는 우두머리를 웅(雄)이라 부른다. 식물과 짐승의 세계에도 이렇게 유독 두드러지는 존재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 그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문재(文才)가 남달리 뛰어난 이에게는 "영"이라는 이름을, 무재(武才)가 남달리 뛰어난 이에게는 "웅"이라는 이름을 붙여왔다는 것이다.
夫草之精秀者爲英, 獸之特群者爲雄. 故人之文武茂異, 取名於此. 是故聰明秀出謂之英, 膽力過人謂之雄, 此其大體之別名也.
풀어보면 이렇다. 귀와 눈이 남달리 밝아 사리를 꿰뚫어 보는 총명(聰明)이 우뚝한 사람을 영재(英才)라 부르고, 배짱과 결단력이 남을 압도하는 사람을 웅재(雄才)라 부른다. 총명이 영의 알맹이라면, 담력은 웅의 알맹이다.
여기서 유소는 곧바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영과 웅은 뿌리부터 다른 두 자질이지만, 어느 한쪽만으로는 결코 완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에게는 총명함이 있지만 담력을 보태야 비로소 그 지혜가 실제로 펼쳐질 수 있고("成章"), 웅에게는 담력이 있지만 지력을 보태야 비로소 그 힘이 굳건하게 설 수 있다("成剛"). 마치 어금니와 수염이 서로를 돋보이게 하듯, 영과 웅도 서로의 부족한 반쪽을 채워야 온전해진다.
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가
유소는 이 상호 의존을 훨씬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귀 밝고 눈 밝은 지혜는 영재의 몫이지만, 웅재의 담력을 얻지 못하면 그 지혜는 말로만 그칠 뿐 실행으로 옮겨지지 못한다. 반대로 담력은 웅재의 몫이지만, 영재의 지혜를 얻지 못하면 그 용기는 애초에 일을 제대로 세우지도 못한다.
그래서 영재는 밝은 귀로 일의 실마리를 잡아 시작을 도모하고, 밝은 눈으로 일이 돌아가는 기틀을 짚어내지만, 정작 그 일을 밀어붙이는 데는 웅재의 담력을 기다려야 한다. 웅재는 담력으로 사람들을 복속시키고 용맹으로 난관을 뚫지만, 그 힘을 마땅한 자리에 쓰는 지혜는 영재를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완성해준 다음이라야 각자 제 장점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夫聰明者英之分也, 不得雄之膽則說不行; 膽力者雄之分也, 不得英之智則事不立. 故英以其聰謀始, 以其明見機, 待雄之膽行之; 雄以其力服衆, 以其勇排難, 待英之智成之. 然後乃能各濟其所長也.
이 원리를 유소는 몇 단계로 세분해서 보여준다. 총명하여 일을 도모할 줄은 알지만 눈이 밝지 못해 기틀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그저 앉아서 말만 하는("坐論") 데 그치고, 실제 일에 부딪혀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도모할 줄도 알고 기틀도 볼 줄 알지만 용맹이 없는 사람은 평상시의 일이야 그럭저럭 따라가지만, 급변하는 사태 앞에서는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힘은 남보다 뛰어나지만 용맹이 없는 사람은 그저 "힘센 사람"일 뿐, 성벽을 가장 먼저 오르는 선봉장은 될 수 없다. 힘도 있고 용맹도 있어 일을 밀어붙일 수는 있지만 지혜가 모자란 사람은 선봉장은 될 수 있어도 전군을 지휘하는 장수의 그릇은 못 된다.
그렇다면 진짜 영재, 진짜 웅재란 무엇인가. 유소는 여기서 두 이름을 부른다.
必聰能謀始, 明能見機, 膽能決之, 然後可以爲英, 張良是也. 氣力過人, 勇能行之, 智足斷事, 乃可以爲雄, 韓信是也.
귀 밝음으로 일을 도모하고, 눈 밝음으로 기틀을 살피고, 거기에 결단할 담력까지 갖춘 다음이라야 비로소 "영"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 — 장량(張良)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고 힘이 남보다 뛰어나고, 그 힘을 용맹으로 실행에 옮기며, 지혜로 사태를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웅"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 — 한신(韓信)이 바로 그 사람이다.
장량과 한신, 두 개의 다른 별
장량은 원래 한(韓)나라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진시황에게 나라가 망하자 그는 자객을 사서 박랑사(博浪沙)에서 진시황의 수레를 습격했으나 빗나갔고, 이후 이름을 숨기고 숨어 지내다 하비(下邳)의 다리 위에서 노인 황석공(黃石公)을 만나 병법서를 전수받았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는 유방의 곁에서 야전을 지휘하거나 몸소 칼을 든 적이 거의 없다. 대신 유방이 홍문의 연회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도록 판을 짜고, 한중으로 좌천된 유방에게 잔도(棧道)를 불태워 항우를 안심시키라 조언하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형세를 읽어 유방의 다음 수를 정해주었다. 유방 스스로 "군막 안에서 계책을 세워 천 리 밖의 승부를 가르는 데는 내가 장량만 못하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이것이 바로 유소가 말하는 영 — 총명으로 시작을 도모하고, 눈 밝음으로 기미를 읽고, 담력으로 결단하는 자질이다. 장량은 전장에서 창을 휘두르지 않고도 전쟁의 방향을 바꾸었다.
반면 한신은 정반대의 궤적을 그린다. 젊은 시절 회음(淮陰)의 저잣거리에서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갔다는 치욕스러운 일화로 이름이 남을 만큼, 처음에는 누구도 그의 그릇을 알아보지 못했다. 항우 밑에서도, 유방 밑에서도 하찮은 자리를 전전하다가 소하(蕭何)가 달아나는 그를 밤중에 쫓아가 붙잡고서야("蕭何月下追韓信") 비로소 대장군에 올랐다. 이후 그가 보여준 것은 순수한 군사적 천재성이었다. 배수진(背水陣)을 쳐서 조나라 대군을 격파하고, 위나라와 대(代)나라를 잇달아 무너뜨리고, 끝내 해하(垓下)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계책으로 항우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 그다. 유방 자신도 "백만 대군을 이끌고 싸워 반드시 이기는 데는 내가 한신만 못하다"고 말했다. 힘과 용맹과 사태를 판단하는 실전 감각이 하나로 뭉친 이 사람이야말로 유소가 말하는 웅이다.
유소는 이렇게 정리한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질과 성분의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그중 더 두드러진 쪽을 따라 이름을 붙일 뿐이라고. 장량은 영특한 지혜가 남달리 많았고, 한신은 웅재의 담력과 힘이 남달리 두드러졌다. 하지만 둘 다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치우친 재질이기에, 그 자리는 결국 "남의 신하 노릇"에 맞는 그릇이다. 영재는 가까이서 적을 제압하는 재상의 자리에 어울리고, 웅재는 멀리 위엄을 떨치는 장수의 자리에 어울린다는 것이다.
한 사람 안에 영과 웅이 함께 있을 때
그렇다면 신하가 아니라 천하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유소의 답은 명확하다. 한 사람의 몸 안에 영과 웅이 함께 갖추어져 있어야, 비로소 오래도록 세상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能長世"). 그 예로 그는 두 사람을 나란히 세운다 — 한고조 유방과, 그의 숙적 항우.
若一人之身兼有英雄, 則能長世, 高祖項羽是也.
언뜻 의아할 수 있다. 항우는 흔히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는다(力拔山兮氣蓋世)"는 이미지로만 기억되는 인물 아닌가. 그러나 유소는 항우 역시 영과 웅을 겸비했던 인물로 본다. 실제로 항우는 거록(鉅鹿) 전투에서 장하(漳河)를 건넌 뒤 타고 온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밥 짓는 솥까지 부수어("破釜沈舟"), 병사들에게 사흘치 식량만 남긴 채 돌아갈 길을 스스로 끊어버렸다. 이 도박에 가까운 결단으로 진나라의 주력군을 궤멸시킨 것은 담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형세를 꿰뚫어 본 눈 밝음이 함께 작동한 결과였다. 유소가 "눈 밝음이 능히 어떤 변화에도 능수능란하게 대처했다"고 인정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영의 성분이 웅의 성분보다 많은 것은 상관없지만, 영의 성분이 지나치게 적어서는 안 된다고 유소는 못박는다. 영이 모자라면 지혜로운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기 때문이다. 항우에게는 범증(范增)이라는, 그 스스로 "아부(亞父)"라 부르며 존중했던 단 한 명의 뛰어난 책사가 있었다. 그러나 항우는 기이하고 낯선 계책을 받아들이는 데 서툴렀다. 유방의 책사 진평(陳平)이 황금을 풀어 초나라 진영에 헛소문을 흘리는 반간계(反間計)를 쓰자, 항우는 사신을 박대하고 범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범증은 실권을 빼앗기고 울분 속에 항우 곁을 떠났고, 그 길에 등창이 도져 숨을 거두었다. 범증 하나조차 제대로 품지 못한 그 틈으로, 진평을 비롯한 인재들이 줄줄이 초나라를 등지고 유방에게로 넘어갔다.
유방은 정반대였다. 그는 영의 성분이 넉넉했기에 수많은 웅재들이 그에게 복종했고, 그렇게 웅재들이 모여들자 영재들 또한 그를 찾아왔다. 한신도, 진평도, 그리고 애초부터 곁을 지킨 장량도 모두 유방 아래 모였다. 웅재와 영재를 함께 부릴 수 있었던 이 한 가지 조건으로, 유방은 진나라를 삼키고 초나라를 무너뜨려 마침내 천하를 손에 넣었다.
項羽氣力蓋世, 明能合變, 而不能聽采奇異, 有一范增不用, 是以陳平之徒皆亡歸高祖. 英分多, 故群雄服之, 英才歸之, 兩得其用. 故能呑秦破楚, 宅有天下.
영과 웅, 어느 하나만으로는
이 대비에서 유소는 하나의 원칙을 끌어낸다. 영과 웅, 그 성분의 많고 적음이야말로 스스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관건이라는 것이다. 영만 있고 웅이 없으면 웅재들이 복종하지 않고, 웅만 있고 영이 없으면 지혜로운 이들이 찾아오지 않는다. 웅은 웅을 끌어들일 뿐 영을 얻지 못하고 — 코뿔소와 호랑이가 저희끼리만 무리를 이루듯 — 영은 영을 끌어들일 뿐 웅을 얻지 못한다 — 난새와 봉황이 저희끼리만 가까이하듯. 그러므로 한 사람의 몸에 영과 웅을 함께 갖춘 자만이 영재도 부리고 웅재도 부릴 수 있고, 그 둘을 함께 부릴 수 있어야 비로소 대업을 이룰 수 있다.
然則英雄多少, 能自勝之數也. 徒英而不雄, 則雄材不服也; 徒雄而不英, 則智者不歸往也. 故雄能得雄, 不能得英; 英能得英, 不能得雄. 故一人之身兼有英雄, 乃能役英與雄. 能役英與雄, 故能成大業也.
장량과 한신은 각자의 영역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정점에 섰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리는 끝내 "남의 신하"였다. 반면 항우와 유방은 둘 다 영웅 — 영과 웅을 함께 지닌 자 — 이었지만, 그 배합의 비율이 운명을 갈랐다. 유소가 사람을 볼 때 "영웅"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경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총명함과 담대함은 서로 다른 재질이며, 그 둘이 어떤 비율로 한 사람 안에 섞여 있는지를 읽어내는 것 — 그것이 곧 사람을 알아보는 일의 핵심에 놓여 있다.
원 편명: 영웅 제8(英雄第八) — 참고: 이한우, 『이한우의 인물지』(21세기북스, 2023)
개요로 돌아가기 | 이전: 7장. 사람을 알아보는 법 | 다음: 9장. 사람을 살피는 여덟 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