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사람을 알아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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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에서 우리는 재질마다 이로움과 해로움이 한 몸에 붙어 다닌다는 것을 보았다. 강직한 사람은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고, 유순한 사람은 다투지 않는 대신 결단이 무디다. 그런데 이 양날의 성질을 겪는 것은 정작 그 재질을 가진 당사자만이 아니다. 그 사람을 평가하고, 추천하고, 자리에 앉히는 또 다른 누군가가 늘 곁에 있다. 그리고 그 평가자 역시 자기만의 재질을 갖고 있어서, 자기 재질이 드리우는 그늘을 피해 갈 수 없다.
2장에서 우리는 사람의 성격을 열두 가지로 나누고, 각 유형이 저마다의 강점 뒤편에 눈먼 자리를 감추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 굳센 사람은 융통성이 없어 보이고, 부드러운 사람은 줏대가 없어 보이는 식으로. 이번 장은 그 치우침이 '평가받는 자리'뿐 아니라 '평가하는 자리'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사람을 보는 눈 자체가 이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면, 그 눈으로 아무리 남을 오래 들여다본들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나는 사람을 잘 본다는 착각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치고 스스로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믿지 않는 이는 드물다. 지위가 높든 낮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자신감의 정체를 들여다보면 묘한 사실이 드러난다. 그가 "이 사람은 내가 안다"고 느끼는 순간은 대개 상대가 자기와 닮았을 때다. 청렴과 절개를 높이 사는 사람은 청렴하고 절개 있는 이를 보면 단박에 알아본다. 반대로 자기와 다른 기준으로 사람을 살피는 이를 보면, 그가 아무리 신중하고 오래 지켜본 끝에 내린 판단이라도 "저 사람은 사람 볼 줄 모른다"고 치부해버린다. 유소는 이 어긋남의 이유를 이렇게 짚는다.
夫人初甚難知,貌厚情深,難得知也。而士無眾寡,皆自以為知人。 故以己觀人,則以為可知也。 사람이란 애초에 알아보기 몹시 어렵다. 겉모습은 두텁고 속마음은 깊어서 좀처럼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벼슬자리에 있는 이들은 지위가 높든 낮든 모두 스스로 사람을 잘 안다고 여긴다. 자기 잣대로 남을 잴 때는 얼마든지 알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핵심은 "자기 잣대로"라는 말에 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대개 자[尺]로 길이를 재는 일과 같다. 그런데 그 자 자체가 이미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면, 같은 대상을 재도 사람마다 다른 눈금이 나온다. 청절을 귀하게 여기는 자로는 청절한 사람만 정확히 잡히고, 책략을 귀하게 여기는 자로는 책략에 능한 사람만 정확히 잡힌다. 문제는 이 사실을 아무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 내 자로 잰 눈금은 언제나 "정확해 보이기" 때문이다.
여덟 개의 잣대, 여덟 개의 맹점
유소는 앞서 3장(유업)에서 이야기한 인재 유형 가운데 여덟 가지를 골라, 각각이 사람을 잴 때 쓰는 잣대와 그 잣대가 만드는 사각지대를 나란히 보여준다.
유형 |
사람 보는 잣대 |
또렷이 보이는 것 |
흐릿해지는 것 |
청절지인(淸節之人) |
바름과 곧음(正直) |
한결같은 성품과 행실 |
법가·술수의 임기응변 |
법제지인(法制之人) |
분수(分數), 즉 법도 |
반듯하고 곧은 역량 |
상황 따라 바뀌는 술수 |
술모지인(術謀之人) |
사려와 책략(思謨) |
기이할 만큼 뛰어난 책략 |
법을 착실히 지키는 선량함 |
기능지인(器能之人) |
말솜씨와 조정력(辨護) |
방략을 세우는 규모 |
제도를 세우는 근원 |
지의지인(智意之人) |
속내를 읽어내는 힘(原意) |
임기응변의 감춰진 꾀 |
한결같은 법과 교화 |
기량지인(伎倆之人) |
공로를 세우는 힘(邀功) |
적극적으로 나아가 세우는 공 |
도리와 다움으로 이루는 교화 |
장부지인(臧否之人) |
몰래 살피는 눈(伺察) |
꾸짖고 일깨우는 밝음 |
큰 그릇의 너그러움 |
언어지인(言語之人) |
분석하고 쪼개는 말(辨析) |
재빠른 임기응변 |
속에 담아두고 드러내지 않는 아름다움 |
여덟 줄 모두 같은 문장 구조를 반복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것을 잣대로 삼기에 이것은 잘 보이고, 저것은 놓친다." 어느 유형도 예외가 없다. 법제지인은 법도를 잣대로 삼기 때문에 방정한 사람을 알아보지만,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하는 술수는 못마땅하게 여긴다. 술모지인은 반대로 기발한 책략가는 한눈에 알아보면서, 융통성 없이 법만 지키는 사람은 답답하다고 느낀다. 어느 쪽도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자기 잣대 바깥에 있는 미덕을 미덕으로 읽어내지 못할 뿐이다.
가상의 사례 — 면접관의 눈
다음은 이해를 돕기 위해 지어낸 가상의 이야기다. 어느 회사의 채용 면접에 원칙과 매뉴얼을 중시하는 팀장과, 순발력 있게 판을 짜는 것을 좋아하는 팀장이 나란히 앉았다고 해보자. 지원자 갑은 규정을 꼼꼼히 따지고 예외를 두지 않으려는 사람이고, 지원자 을은 상황마다 다른 해법을 즉흥적으로 제시하는 사람이다. 원칙을 중시하는 면접관은 갑에게서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고 을에게서는 "규칙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순발력을 중시하는 면접관은 정반대로 느낀다. 두 사람 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잣대로 정직하게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두 면접관이 서로의 평가를 두고 "저 사람은 사람 볼 줄 모른다"고 여긴다면, 그것이 바로 접식 편이 말하는 어긋남이다.
겸재와 편재를 가르는 말버릇
그렇다면 대화를 나눠보면 상대가 이 잣대의 함정에 갇혀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여러 잣대를 두루 쓸 줄 아는 사람인지 알아낼 방법이 있을까. 유소는 뜻밖에도 아주 실용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말버릇을 보라는 것이다.
其為人也,務以流數,杼人之所長,而為之名目,如是兼也; 如陳以美,欲人稱之,不欲知人之所有,如是者偏也。 그 사람됨이, 여러 부류에 따라 남의 장점을 풀어내어 거기에 걸맞은 이름을 붙여줄 줄 안다면 이는 겸재(兼才)다. 반대로 자기 좋은 점만 늘어놓아 남이 칭찬해주기를 바라면서 정작 남이 가진 것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이는 편재(偏才)다.
겸재(兼才)는 여러 재질을 아울러 가진 사람이다. 두 가지 유형의 장점을 겸하면 두 유형을 다 알아보고, 세 가지를 겸하면 세 유형을 다 알아본다. 극단에는 여덟 유형 모두를 아울러 통달한 사람이 있는데, 유소는 이런 사람을 나라의 동량, 곧 국체(國體)와 나란히 놓는다. 그가 남과 이야기할 때는 상대의 유형에 맞춰 정확한 이름을 붙여 칭찬한다 — 책략가에게는 "그 계책이 참으로 기이하다" 하고, 법을 지키는 이에게는 "그 한결같음이 참으로 미덥다" 한다. 반면 편재(偏材)는 대화가 결국 자기 자랑으로 흘러가고, 남이 자신을 알아주는지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러니 상대가 정말 자기 장점을 정확히 짚어 이름 붙여주는 사람인지, 아니면 자기 이야기만 하다 끝나는 사람인지를 보면, 그가 겸재인지 편재인지가 드러난다.
편재의 특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남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남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도 못한다. 법도를 말하면 "너무 각박한 것 아닌가" 의심하고, 책략을 말하면 "속임수 아닌가" 의심한다. 그래서 유소는 편재인 사람이 남의 말을 오해하는 전형적인 패턴을 나란히 늘어놓는다.
- 곧게 할 말을 다 하면 — 잘난 척한다고 여긴다
-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 — 아는 게 없다고 여긴다
- 확신에 차 목소리를 높이면 — 오만하다고 여긴다
- 겸손하게 말을 아끼면 — 천박하다고 여긴다
- 한 가지만 깊이 말하면 — 시야가 좁다고 여긴다
- 여러 가지를 두루 말하면 — 산만하다고 여긴다
무슨 말을 해도 결국 트집이 잡힌다. 전국시대의 변론가 소진(蘇秦)이 조나라의 권신 이태(李兌)를 찾아가 유세했을 때의 일화가 자주 이 대목의 예로 인용된다. 소진의 계책이 너무 크고 심오해 이태가 처음에는 귀를 막고 들으려조차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깊은 이치일수록 얕은 잣대를 가진 사람에게는 의심만 키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편재인 사람은 결국 자기와 잣대가 같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만 마음을 열고, 그런 사람만 골라 서로 추어올리는 사이가 된다. 유유상종은 이렇게 완성된다.
사흘의 대화
그렇다면 겸재를 가려내려면 얼마나 오래 지켜봐야 할까. 유소는 뜻밖에도 구체적인 시간을 제시한다.
國體之人兼有三材,故談不三日不足以盡之。 一以論道德,二以論法制,三以論策術,然後乃能竭其所長而擧之不疑。 나라의 동량이 될 만한 사람은 세 가지 재질을 겸하고 있어서, 사흘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그 사람됨을 다 알기 어렵다. 하루는 도리와 다움을 논하고, 하루는 법과 제도를 논하고, 하루는 책략과 술수를 논한 뒤라야 비로소 그의 장점을 남김없이 알아내어 의심 없이 추천할 수 있다.
이 대목에는 오래된 고사가 겹쳐 있다.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다섯 장의 염소 가죽을 주고 노예의 몸에서 백리해(百里奚)를 데려와 사흘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나라의 정사를 통째로 맡겼다는 이야기다. 작고 외진 나라였던 진이 훗날 패권을 다툴 힘을 갖게 된 밑바탕에 이 사흘의 대화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 가지 주제로는 그 사람이 정말 여러 재질을 겸했는지, 아니면 한 재질에만 능해 보이도록 말을 잘 꾸민 것인지 가릴 수 없다. 도덕을 논해 한 자락, 법제를 논해 한 자락, 책략을 논해 한 자락 — 이렇게 여러 잣대를 번갈아 들이대야 비로소 상대가 정말 여러 잣대에 다 들어맞는 사람인지 드러난다는 것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자리에 있다면
접식 편이 결국 하려는 말은 이것이다. 사람을 잘 보고 못 보고는 상대의 문제이기 전에 나의 문제다. 내가 어떤 잣대를 들고 있는지 모른 채 사람을 평가하면, 나는 늘 나와 닮은 사람만 알아보고 나머지는 오해하거나 과소평가하게 된다. 그리고 이 오해는 좀처럼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다. 내 잣대로 잰 결과는 언제나 "확신"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평가하고 추천하고 자리에 앉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잣대로 이 사람을 재고 있는가. 이 판단이 정말 저 사람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저 사람이 나와 얼마나 닮았는가에 대한 것인가. 이 질문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편재에서 겸재로 한 걸음 다가서는 첫걸음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치우침을 넘어서서, 여덟 가지 잣대를 두루 갖추고도 그 위에 우뚝 선 인재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일까. 다음 장은 그 답을 찾아 지혜(英)와 담력(雄)이 만나는 자리로 넘어간다.
원 편명: 접식 제7(接識第七) — 참고: 이한우, 『이한우의 인물지』(21세기북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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