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아홉 가지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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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지』열두 편의 첫 장은 방법론이다. 유소는 곧바로 인재를 나누고 등급을 매기는 대신, 먼저 한 가지 질문에 답하고 넘어가려 한다. 애초에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대체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구징(九徵) — 아홉 가지 징후 — 은 이 질문에 대한 유소의 답이다. 이 장이 다지고 가는 토대 위에 나머지 열한 편이 세워지므로, 여기서 다소 천천히 걸어도 좋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
유소는 이렇게 문을 연다. 사람의 참모습은 정(情)과 본성(性)에서 흘러나온다.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나오는 바탕이고, 정은 그 바탕이 세상과 부대끼며 물들고 다듬어진 결과다. 그러니 사람을 제대로 보려는 자는 마땅히 그 뿌리, 곧 본성과 바탕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문제는 이 이치가 너무 미묘하고 그윽해서, 형체도 색깔도 없는 것을 오직 눈 밝은 자만이 알아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유소는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이를 성인(聖人)이라 부른다. 평범한 사람은 아예 보지 못하는 것을, 성인은 훤히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성인이 아닌 우리는 손을 놓아야 하는가. 유소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쪽이다. 사람에게 몸이 있는 한, 그 몸에는 반드시 안의 것이 겉으로 새어 나온 흔적이 남는다는 것이 이 장 전체를 떠받치는 전제다. 혈기를 지닌 존재는 누구나 원기(元氣)를 바탕 삼아 몸을 이루고, 음양의 기운을 받아 본성을 세우며, 오행(五行)을 몸에 아로새겨 형체를 드러낸다. 뼈는 굳세고 근육은 부드러운 것도 우연이 아니라 쇠와 나무의 기운을 각각 나누어 받은 결과라는 것이다. 형체와 바탕이 있는 이상, 거기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그 사람의 실상에 가닿을 수 있다 — 이것이 구징이라는 관찰법의 전체 논리다. 안이 움직이면 밖이 반드시 따라 움직인다. 사람을 살피는 일이란 결국 이 겉과 속의 대응 관계를 읽어내는 기술이다.
치우치지 않은 바탕이 먼저다
아홉 가지 항목으로 들어가기 전에, 유소는 관찰의 순서부터 짚는다. 사람의 바탕과 그릇[質量]은 무엇보다 중화(中和) —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고르게 조화를 이룬 상태 — 를 귀하게 여긴다. 그는 이를 맛에 비유한다. 바탕이 희어야 온갖 색을 받아들일 수 있고, 혀가 담백해야 비로소 갖은 맛의 조화를 알아챌 수 있다. 쓴맛에 절어 있는 혀는 단맛을 모르고, 신맛에 절어 있는 혀는 짠맛을 모른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바탕이 평담(平淡) — 무슨 색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무미(無味)한 상태 — 할 때라야 비로소 다섯 가지 재질을 두루 조화시켜 상황에 맞게 부릴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을 살피는 자는 먼저 그가 평담한지부터 살피고, 그다음에야 그가 귀 밝고 눈 밝은지[聰明]를 따져야 한다고 유소는 못박는다. 준마가 제아무리 빨리 달려도 기운과 본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결국 수레를 부수고 만다는 것이다. 재능보다 바탕의 조화가 먼저라는 이 순서는, 뒤에 나올 편재(偏材)와 겸덕(兼德)의 구분을 미리 예고해두는 것이기도 하다.
귀 밝고 눈 밝음, 즉 총명(聰明)은 음양의 정수가 사람 안에서 맑게 조화를 이룬 결과라고 유소는 말한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흥미로운 관찰을 하나 덧붙인다. 안으로 슬기롭고[中叡] 밖으로 눈이 밝은[外明] 이 두 가지를 온전히 겸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성인뿐이며, 보통 사람은 대개 둘 중 하나로 기운다는 것이다. 세상 물정에 훤하고 일 처리가 빠른 사람[明白之士]은 움직임의 기틀에는 통달해도 그윽한 이치에는 어둡기 쉽고, 반대로 사려 깊고 신중한 사람[玄慮之人]은 고요히 이치를 파고드는 데는 능하지만 재빨리 움직여야 할 때 곤란을 겪는다. 유소는 이를 불빛과 물의 비유로 마무리한다. 불과 해는 바깥을 환히 비추지만 제 안은 비추지 못하고, 쇠와 물은 사물을 속까지 비춰내지만 스스로 빛나지는 못한다. 이는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애초에 양(陽)의 움직임과 음(陰)의 고요함이 서로 다른 결을 타고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유능한 임금이라면 일 처리가 빠른 자에게는 실무를 맡기고, 사려 깊은 자에게는 근본을 헤아리는 일을 맡겨야 한다 — 이 대목은 뒤에 나올 3장(유업)에서 인재를 자리에 배치하는 논리로 그대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오늘날이라면, 위기 상황에서 즉각 지시를 쏟아내며 조직을 움직이는 실행형 리더와, 회의에서는 말수가 적지만 몇 달 뒤를 내다보고 조용히 판을 짜는 전략형 리더를 떠올려볼 수 있다. 둘 다 유능하지만, 서로의 자리를 맞바꾸면 대개는 탈이 난다. 유소가 말하려는 것은 바로 이런 어긋남이다.
몸은 오행에서, 자질은 오상에서
유소는 이제 사람의 몸 그 자체로 눈을 돌린다. 사람의 재질을 제대로 헤아리려면 다섯 가지 사물[五物] — 뼈·근육·기운·살·피 — 을 살펴야 하는데, 이 다섯은 각각 오행(五行)의 상징이다. 나무는 뼈, 쇠는 근육, 불은 기운, 흙은 살, 물은 피에 대응한다. 다섯 가지 본성은 저마다 내려받은 바가 다르므로, 한 가지가 유독 두드러지면 그만큼 한쪽으로 쏠린 성향이 생겨난다고 유소는 지적한다. 이 대목에서 그는 다섯 가지 신체적 자질과, 그 자질이 극에 달했을 때 갖게 되는 다움[德]을 하나하나 짝지어 보여준다.
오행 |
신체(오물) |
자질이 극에 달한 모습 |
그 다움[德] |
목(木) |
뼈[骨] |
꼿꼿하면서도 부드러움[植而柔] |
홍의(弘毅) — 어짊[仁]의 바탕 |
금(金) |
근육[筋] |
강하면서도 정밀함[勁而精] |
용감(勇敢) — 마땅함[義]이 터지는 곳 |
화(火) |
기운[氣] |
맑으면서도 또랑또랑함[淸而朗] |
문리(文理) — 예(禮)의 근본 |
토(土) |
살[肌·體] |
반듯하면서도 꽉 참[端而實] |
정고(貞固) — 믿음[信]의 터 |
수(水) |
안색[色] |
평온하면서도 쫙 펴짐[平而暢] |
통미(通微) — 지혜[智]의 원천 |
각 항목에 유소가 붙인 비유가 뜻깊다. 나무는 그늘을 드리워 만물을 품으니 어짊의 바탕이 되고, 쇠는 무엇이든 끊고 잘라내니 마땅함이 터지는 자리가 되며, 불은 환히 비춰 살피니 일을 다스리는 근본이 되고, 흙은 만물을 낳아 기르니 믿음의 터가 되며, 물은 흘러 막힌 곳을 뚫고 구석구석 스며드니 앎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이 다섯 바탕은 잠깐 스쳐 가는 기분이 아니라 오래가는 항구한 성품[恒性]이기에, 유소는 이를 통틀어 오상(五常) —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 이라 부른다.
여기서 짚어둘 대목이 있다. 유소는 곧이어 오상을 다시 다섯 가지 다움[五德]으로 풀어 보이는데, 이번에는 각 다움이 지나치거나 모자랄 때 어떻게 어긋나는지를 짝으로 보여준다. 온화하면서 곧고 순하면서 과단성 있는 것은 나무의 다움이니, 온화하기만 하고 곧지 못하면 나약해지고 순하기만 하고 굳세지 못하면 비굴해진다. 굳세면서 독실하고 도량이 넓으면서 과단성 있는 것은 쇠의 다움이니, 굳세기만 하고 속이 차지 않으면 잔인해지고 넓기만 하고 결단이 없으면 이지러진다. 삼가면서 공손하고 다스리면서 삼가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은 물의 다움이니, 삼가기만 하고 공손하지 못하면 도리에서 벗어나고 다스리기만 하고 삼가지 않으면 어지러워진다. 너그러우면서 엄정하고 부드러우면서 꼿꼿한 것은 흙의 다움이니, 너그럽기만 하고 엄정하지 못하면 업신여김을 당하고 부드럽기만 하고 꼿꼿함이 없으면 흩어진다. 털털하면서 사방으로 열려 있고 밝으면서 경계심을 놓지 않는 것은 불의 다움이니, 열려 있기만 하고 막힘이 없지 않으면 정체되고 밝기만 하고 경계를 풀어버리면 가려진다. (다만 이 두 번째 목록에서는 물[水]과 흙[土]에 배당된 다움의 성격이 앞의 표와 자리를 바꾼 것처럼 읽히는 대목이 있어, 옛 주석가 유병(劉昞)의 시대부터 이미 이 부분을 놓고 이견이 있었다. 유소 스스로도 사람의 자질이 딱 떨어지게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어긋남을 통해 보여주는 셈이다.)
이 이중의 설명이 말하려는 바는 결국 하나다. 좋은 자질도 짝을 잃으면 병통이 된다는 것. 곧음은 부드러움과 짝지어야 곧음으로 남고, 굳셈은 속을 채워야 굳셈으로 남는다. 『논어』에서 증자(曾子)가 "선비는 도량이 넓고 과단성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이 바로 이 홍의(弘毅)를 가리킨다. 어짊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죽을 때까지 가야 하는 길이니, 넓은 도량과 꺾이지 않는 결기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홉 개의 창, 아홉 개의 징후
이제 유소는 지금까지 다져온 토대 위에서, 이 장의 이름이기도 한 아홉 가지 징후를 하나씩 세운다. 그는 먼저 원리를 밝힌다. 만물은 생겨나면 형체를 갖고, 형체에는 반드시 정신[神精]이 깃든다. 뛰어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다 같이 기질과 음양을 받았지만, 다만 앎에 정밀함과 거칢의 차이가 있고 형체에 얕고 깊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정신의 빛깔을 살피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견주어 보면, 저잣거리의 하인이나 목동에 이르기까지 누구든 짐작으로나마 알아낼 수 있다고 유소는 말한다. 정신을 알아낼 수 있다면 이치를 끝까지 캐고 본성을 남김없이 드러낼 수 있으니[窮理盡性], 이것이 바로 사람 보는 일의 궁극이다.
그렇다면 그 본성이 남김없이 드러난 자리, 곧 아홉 가지 바탕의 징후란 무엇인가. 유소는 다음과 같이 하나씩 짚어나간다.
징후 |
무엇을 재는가 |
원문 대응 |
신(神) — 정신·의지 |
공평한가 치우쳤는가 |
平陂之質在於神 |
정(精) — 정기·안목 |
밝은가 어두운가 |
明暗之實在於精 |
근(筋) — 근육·기세 |
용감한가 비겁한가 |
勇怯之勢在於筋 |
골(骨) — 골격·기틀 |
강한가 약한가 |
彊弱之植在於骨 |
기(氣) — 기운·결단 |
조급한가 차분한가 |
躁靜之決在於氣 |
색(色) — 안색·감정 |
슬픈가 기쁜가 |
慘懌之情在於色 |
의(儀) — 몸가짐 |
흐트러졌는가 단정한가 |
衰正之形在於儀 |
용(容) — 행동거지 |
태도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
態度之動在於容 |
언(言) — 말투 |
느긋한가 급한가 |
緩急之狀在於言 |
한 줄로 늘어놓으면 딱딱한 목록처럼 보이지만, 유소가 실제로 풀어놓은 설명은 안에서 밖으로 켜켜이 번져나가는 순서를 이룬다. 가장 안쪽에 있는 신(神)은 그 사람의 됨됨이 전체를 주관하는 자리다. 정신이 평정하면 바탕도 평정하고, 정신이 한쪽으로 기울면 바탕도 함께 기운다. 정(精)은 그 실질의 뿌리로, 정기가 맑으면 사람됨이 환히 밝고 정기가 흐리면 어둡다. 근(筋)과 골(骨)은 각각 기세의 쓰임과 기틀의 바탕이 되어, 근육이 강하면 기세가 용감해지고 뼈가 굳세면 기틀이 강해진다. 기(氣)는 결단이 서는 자리이므로, 기운이 왕성하면 조급하게 결단하고 차분하면 여유롭게 결단한다. 색(色)은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는 창이어서, 근심하는 낯빛은 슬픔에서 비롯되고 기뻐하는 낯빛은 기쁨에서 비롯된다. 의(儀)는 형체가 겉으로 표시된 것이라 몸가짐이 흐트러지면 속이 위태롭다는 뜻이고 단정하면 속이 엄숙하다는 뜻이다. 용(容)은 움직임의 신호와 같아서 움직임이 흐트러지면 자태도 산만해지고 움직임이 단정하면 자태에도 절도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언(言)은 마음의 상태 그 자체이니, 마음이 넉넉하게 남을 품으면 말이 느긋해지고 마음이 좁으면 말이 급해진다.
유소는 뒤이어 신(神)과 정(精)에 관해서는 조금 더 파고든다. 낯빛이 겉모습에 드러난 것을 신(神)의 징표라 부르는데, 이 징표가 겉모습에 나타나면 본마음은 결국 눈빛에 실려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짊은 눈의 정기이니 성실하면 시선이 단정하고, 용감함은 담력의 정기이니 굳세면 눈빛이 빛난다. 다만 유소는 여기서 중요한 단서를 하나 단다. 어짊과 용감함처럼 한 가지만 유독 두드러진 사람은 그 재주 하나로는 위엄이 서지만, 정작 일을 끝까지 정밀하게 완수해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능히 용감하기만 하고 겁낼 줄 모르면, 반드시 뒤늦은 후회가 뒤따른다. 이 대목은 뒤에 나올 편재(偏材)의 한계를 미리 보여주는 복선이기도 하다.
『맹자』「이루상」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을 살피는 데 눈동자만 한 것이 없다. 눈동자는 그 사람의 나쁜 점을 숨기지 못한다. 마음이 바르면 눈동자가 맑고,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눈동자가 흐리다." 유소가 신(神)과 정(精)을 유독 자세히 다룬 것은 이 오래된 통찰과 궤를 같이한다. 아홉 가지 징후 가운데서도 가장 안쪽에 있는 두 가지, 곧 신과 정이야말로 겉으로 흘러나오는 나머지 일곱 가지 징후를 총괄하는 뿌리라는 뜻이다.
오늘날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면접장에서 말은 유창하고 옷차림도 흠잡을 데 없지만, 정작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는 순간 눈빛이 흔들리고 시선이 갈피를 잃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언(言)과 의(儀)는 잘 다듬어졌지만 신(神)이 흔들리는 경우다. 유소의 논리를 따르면 이런 사람은 겉의 아홉 가지 징후가 서로 어긋나 있는 셈이며, 뿌리인 신이 흔들리면 나머지 여덟 가지도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한다.
겸덕, 편재, 의사, 간잡 — 네 갈래의 사람
아홉 가지 징후를 다 세운 다음, 유소는 이 장의 결론에 해당하는 등급을 매긴다. 기준은 단순하다. 아홉 가지 징후가 얼마나 고르게, 그리고 얼마나 순수하게 갖춰져 있느냐다.
바탕이 담백하고 안으로 슬기로우며 밖으로 명랑하고, 근육은 강하고 뼈는 단단하며, 목소리는 맑고 낯빛은 밝으며, 몸가짐은 단정하고 용모는 곧은 사람 — 아홉 가지 징후가 하나도 빠짐없이, 그것도 순정하게 갖춰진 사람을 유소는 겸덕(兼德)이라 부른다. 순수한 다움[純粹之德]을 지닌 이 경지는 지극한 다움을 갖춘 대인(大人)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다다를 수 없다고 유소는 잘라 말한다. 『주역』 건괘 「문언전」에서 공자가 건(乾)의 강건함과 바름을 두고 "아무것도 섞이지 않았다[純粹精]"고 찬탄한 것과 같은 자리다. 유소가 다른 곳에서는 이 경지를 겸재(兼才) — 여러 재주를 두루 겸했다 — 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는 편의상 이 두 표현을 겸덕(겸재)으로 함께 묶어 부르기로 한다. 겸덕에 이른 사람이 곧 유소가 말하는 성인이며, 뒤에 이어질 여러 장에서 이 사람은 어떤 재주에도 치우치지 않기에 오히려 모든 재주를 알아보고 부릴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
아홉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거나 모자라면 그 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친 재주[偏至之才]가 된다. 목소리는 맑고 낯빛은 밝은데 바탕이 담백하지 못한 사람, 근육은 강하고 뼈는 단단한데 몸가짐에 위엄이나 곧음이 없는 사람이 그런 예다. 유소는 이런 사람들을 다시 세 갈래로 나눈다.
한 가지 재주만 유독 뛰어난 사람은 편재(偏材)라 부른다. 온갖 장인이 저마다 다른 손재주로 이름을 얻듯, 편재는 그 하나의 재주로 이름을 얻는다. 어짊만 있고 마땅함이 없거나, 마땅함만 있고 어짊이 없는 사람은 둘을 아울러 구제하지 못하고 한 가지 행실만 지킬 뿐이니, 그래서 대아(大雅)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유소는 말한다. (참고로 유소는 겸덕에서 한 단계, 편재에서 한 단계 위에 있는 중간 지대도 언급한다. 여러 다움을 두루 갖췄으되 성인에는 살짝 못 미치는 사람을 덕행(德行) 혹은 대아라 부르는데, 도리를 다 잃지 않으면서도 이따금 완벽하지 못한 방식으로 일을 이뤄내는 사람이다. 겸덕과 편재 사이에 이런 눈금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은, 유소가 사람을 이분법으로 가르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홉 가지 징후 가운데 단 하나만 겉으로 그럴듯하게 갖추고 나머지는 텅 빈 사람을 유소는 의사(依似)라 부른다. 다움을 어지럽히는 부류[亂德之類]라는 것이다. 순전히 남을 헐뜯기만 하는 것이 곧음처럼 보이지만 곧음이 아니고, 순전히 허풍만 떠는 것이 두루 통함처럼 보이지만 통함이 아니라고 유소는 꼬집는다. 겉모습만 베껴 그럴듯하게 흉내 내는 자,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실력 없이 자신감만 넘치는 이가 이 부류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재주는 그런대로 갖췄지만 다른 한 가지가 그것을 허무는 사람을 간잡(間雜)이라 부른다. 유소는 이들을 오래가는 마음이 없는 사람[無恒之人]이라 규정한다. 선함과 악함이 뒤섞여 마음에 정해진 방향이 없으니, 어느 순간의 모습만 보고서는 이 사람의 실상을 짚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논어』 「술이」편에서 공자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면, 차라리 항심(恒心)을 지닌 사람이라도 만나고 싶다"고 한 탄식이 정확히 이 자리를 가리킨다. 없으면서 있는 척하고, 비었으면서 가득한 척하는 사람에게는 항심이 없다고 공자는 잘라 말했다. 유소는 의사와 간잡 두 부류를 묶어 사람 가운데서도 말류(末流)라 부르며, 그 아래로 갈수록 갈래가 무수히 많아 일일이 다 논할 수 없다며 이 장을 접는다.
이렇게 겸덕(겸재) — 편재 — 의사 — 간잡으로 이어지는 네 갈래는 단순한 등급표가 아니다. 겸덕은 아홉 가지 징후가 모두 갖춰지고 서로 조화를 이룬 사람이고, 편재는 그 가운데 하나가 유독 도드라진 사람이며, 의사는 그 하나마저 실은 껍데기뿐인 사람이고, 간잡은 아예 어느 하나로도 붙잡히지 않는 사람이다. 안에서 밖으로 새어 나오는 아홉 개의 창 — 신·정·근·골·기·색·의·용·언 — 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면, 이 네 갈래 중 어디에 서 있는 사람인지도 함께 드러난다는 것이 구징 편의 마지막 전언이다. 그리고 이 전언은 곧바로 다음 장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겸덕에 이르지 못한, 저마다 한쪽으로 치우친 수많은 사람들은 대체 몇 가지 방식으로 치우쳐 있는가.
원 편명: 구징 제1(九徵第一) — 참고: 이한우, 『이한우의 인물지』(21세기북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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