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의 강의 중에서...
산업혁명 당시,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은 정작 산업혁명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했다.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 변화가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만큼 큰 가름이 될 것이라는 것까지는 인식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 때 그 변화, 무언가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사람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에서는 C.H.생시몽, C.푸리에, 그리고 영국에서는 RobertOwen이 있다.
그들은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사람이 생산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상품화되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고, 능동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산업사회가 중요한 가치를 유지하면서 발전해나가는 것을 모색했다. 이것이 초기의 '사회주의'이다.
이에 반해 공산주의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자본의 질서를 재편하려는 움직임, 그래서 나아가서는 사적 소유 자체를 철폐하는데까지 도달하려는 운동이었다. 이렇듯 (초기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이후에 맑스주의가 사회주의의 의제들을 일부 흡수하면서 아예 사회주의라는 말의 주요한 의미가 변화된다.
또한 초기에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별개의 것이었다. RobertOwen도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하려는 시도가 생겨난다.
RobertOwen에 대해 찾아보다보니, ErichFromm이 '책/건전한 사회(The Sane Society)'에서 오언주의와 맥락을 같이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 문제에 관한 프롬의 입장과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낸 저서는 《자유에서의 도피》와 《자기 지향적 인간(Man for Himself)》(1947), 그리고 《건전한 사회(The Sane Society)》(1955) 등이다. 《자유에서의 도피》 이후 프롬의 기본적 입장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회를 ‘건전한 사회’로 보고 그 기준에서 과거·현재의 사회 상황과 사회 운동을 비판함과 동시에 ‘건전한 사회’ 실현의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이 경우 단순한 문명 비평이 아닌 이른바 ‘사회적 성격론’을 전개함으로써 프로이트, 마르크스, 베버를 매개로 하여 대담한 학문적 입장을 취한다. 즉 인간의 욕구나 성격 형성에 미치는 사회적·역사적 요인을 중시하여, 역사를 움직이는 힘으로 경제력과 이데올로기 이외에 심리적인 사회적 성격을 든다. 《자유에서의 도피》에서는 이론적 전개와 나치즘 분석에의 응용이 훌륭히 전개되어 있고, 《자기 지향적 인간》에서는 17~19세기, 19~20세기 사회적 성격의 유형을 분석하고 《건전한 사회》에서는 20세기 사회적 성격의 병리적 측면(획일화와 로봇화)을 분석함과 동시에 현존의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자기 자신의 이상 사회를 제안하고 있다. 프롬은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소외’ 현상을 강조하고 이 인간 소외의 병적 상태를 해소하여 인간을 위한 참된 인간 생활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사유 재산 제도의 폐기에 중점을 두는 데는 반대한다. 그는 자기의 이상 사회를 《자유에서의 도피》에서는 ‘민주 사회주의’라고 하였고(그 명칭엔 구애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건전한 사회》에서는 오웬주의나 생디칼리슴(노동조합주의)의 정신에 기초한 사회주의, 즉 ‘협동적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프롬의 사회 개혁 이론은 후기 마르크스 이론이나 볼셰비즘과 구별되는 초기 마르크스의 이상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신(新)마르크스주의 학파의 범주에 넣는 학자들도 있다. 신마르크스주의 학파에서 마르쿠제를, 현체제 타파를 제1이념으로 하는 유토피아적 혁명론자요 과격한 좌파라고 한다면, 프롬은 현체제의 조화 속에서 사회 개혁을 수행하려는 온건한 우파라고 하겠다. 전자는 혁명에 대한 장래의 청사진을 문제삼지 않았으나, 후자는 개혁을 통한 사회주의의 종류를 분명히 했다. 비록 이런 차이는 있으나 양자가 다같이 교조적(敎條的) 마르크스주의를 반대하는 데서는 같은 입장에 서 있다 하겠다.
흥미로운 연결고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