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l +All:read GeorgeLakoff, ElisabethWehling,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인지과학이 밝힌 진보–보수 프레임의 실체》(Your Brain’s Politics: How The Science of Mind Explains The Political Divide) <> == 추천사 - 정치적 가치와 사고의 개념적 본질을 향한 레이코프와 웨흘링의 또 다른 발자취 == 이 책은 저자들이 정치적 삶을 개념화하는 은유와 의미 틀, 프레임 구성에 대한 심리적 실재를 일관성 있게 증명하고 주장하며, 변화무쌍한 정치 현실에 내재하는 본질은 변함없이 그러한 인지 기제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여정의 초입에 해당한다.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는 인지의미론의 주요 논제인 개념적 은유와 의미 틀에 대한 개론부터 시작하여, 이러한 인지 기제를 바탕으로 하는 개념화 과정이 경제와 철학, 신학, 정치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고, 또 끼쳐왔는지를 부담 없이 이야기한다. 은유적 사고가 문학 비평에서 말하는 은유와 어떻게 다른지의 논제에서 시작하여, 정치와 국가에 대한 다른 견해, 진보와 보수를 개념화하는 데 필수적인 우리의 경험은 무엇인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용어 기저에 어떠한 개념화 과정이 숨어 있는지, 이러한 개념화 과정이 우리의 뇌 구조와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지, 중도파라고 불리는 정치적 중도 세력은 어떠한 범주화가 필요한 것인지, 사실은 프레임 구성과 별개로 진술할 수 있는지, 신은 존재하는지, 같은 현상을 두고도 다르게 해석하는 문제적 개념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깨어 있는 저널리즘이란 무엇인지의 논제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후에 나온 책들보다 훨씬 더 편하게 그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마음의 울림을 준다. = 1부. 나의 정치적 성향은 어디에서 왔을까? = == 1장. 나는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은유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뇌 == 우리는 세계에 대해 주로 은유의 측면에서 사유합니다. 은유는 정치적 담화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어디에나 있죠. 은유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언어와 추론을 구조화합니다.2 그래요, 은유는 개인의 정치적 의사 결정은 물론 국가 전체의 정치적 의사 결정을 완전히 통제합니다.3 은유에 의존하지 않고 추론할 수 있는 정치적 쟁점은 하나도 없죠.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세계를 대부분 은유적으로 이해합니다. 인간의 사고에 대한 가장 중요한 가정 네 가지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1. 첫째, 사람들은 자신의 사고가 의식적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이 가정은 잘못되었어요. 대부분의 사고, 추정컨대 98퍼센트는 완전히 무의식적입니다.4 2. 둘째,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합리성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신체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이 믿음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추론은 물리적 과정으로서, 우리의 신체와 뇌의 물리적 실재에 의존합니다.5 3. 셋째, 많은 사람들은 추론이 보편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사유한다는 의미예요. 이 역시 참이 아닙니다. 사람들 모두가 하나의 보편적인 추론 방식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죠. 사람들은 세계에 대해 서로 다르게 사유합니다. 저마다의 문화적 경험과 개인적 경험을 통해 마음속에서 변별적인 구조를 습득해왔기 때문입니다.6 4. 넷째, 사람들은 인간이 축자적(逐字的)으로—세계 내에 존재하는 그대로—사물을 이해할 수 있으며, 사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니에요,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은유를 통해 사유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거의 의식조차 못 하죠. 예컨대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은유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쉽게 추론하거나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은유가 어떻게 정치적 사고와 정치적 행위를 정의하는지, 어떻게 실제로 국가 간 전쟁을 초래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 인지의 기본적인 기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일상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글쎄요, 대개는 은유를 통해서 이해합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엄청난 수의 이른바 ‘일차적 은유’를 자동적으로 습득합니다. 그중 어떤 은유도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말이에요. [많음은 위] 은유를 예로 들어볼까요. 이 은유는 세계 어느 문화에서든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가가 올랐다거나 내렸다고 말합니다. 주식이 천정부지로 솟거나 바닥을 친다고 표현하죠. 이 은유에 근거할 때, 많음은 공간상 더 위쪽으로 해석되고 적음은 공간상 더 아래쪽으로 해석됩니다. 이와 대칭되는 정반대의 사상(寫像)은 없습니다. 많음을 아래로 해석하는 은유는 없다는 뜻입니다. 왜 우리는 양을 수직성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은유를 사용할까요? 이 질문의 답은 우리의 일상 경험에 있습니다. 유리잔을 물로 채울 때, 물을 더 많이 부을수록 수면이 올라갑니다. 책상에 한 더미의 책을 쌓을 때, 더 많은 책을 쌓으면 그 더미는 더 높이 올라가고요. 우리는 모두 양이 수직성과 상관관계를 지니는 이러한 경험을 공유합니다. 사실 양과 수직성은 뇌의 서로 다른 부분에서 처리합니다. 수직성은 세계 내 물리적 방위(方位)와 관련이 있는 지역에서, 양은 수와 물질을 다루는 지역에서 처리하죠. 이 두 지역은 심지어 뇌에서 바로 옆에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두 지역 사이에서 신경이 연결됩니다. 우리의 사고 역량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고 있습니다. 제기해야 할 타당한 질문은 “우리는 얼마나 많이 생각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생각할 것인가?”입니다. 태어날 때 우리에게는 단지 어마어마한 무작위의 신경 연결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이러한 신경 연결로 가득 차 있죠. 하지만 우리가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이 연결의 절반은 상실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계 내에서 겪는 경험은 우리가 어떤 연결을 계속 간직하게 되는가를 결정합니다. 특히 태어난 후 5년 동안 겪는 경험을 통해 규칙적으로 활성화되는 신경 연결은 뇌에서 강화됩니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활성화되지 않는 신경 연결은 사라지게 되죠. 바로 그러한 신경 연결을 강화할 체험적 토대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험은 우리의 추론 방식을 구조화합니다. 어떤 시냅스를 더 자주 사용할수록 연결은 ‘더 강하게’ 되고, 연결된 뉴런은 더 쉽게 활성화됩니다. 조금 전에 우리가 논의했던 수직성과 양의 경우처럼 뇌의 두 지역이 동시에 활성화될 때, 이 두 지역은 강한 시냅스 연결을 확대합니다. 그리고 이 두 지역을 연결하는 신경 경로상의 분산 활성화를 통해 신경 회로가 형성되죠. 이 회로가 바로 은유입니다. 인지과학에서는 이 기제를 ‘헵의 학습’*이라고 부릅니다.10 체험적 상관관계가 강한 신경적·인지적 연결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 2장. 자라면서 나의 정치적 성향이 결정된다고? - 성장 과정에서의 경험과 정치의 상관관계 == == 3장. 우리 집의 중심은 과연 누구였을까? - 아버지만 존재하는 세계와 부모가 함께하는 세계 == == 4장. 왜 나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갈등할까? - 가정에서는 자애롭고 직장에서는 엄격한 사람들 == = 2부. 현실에서 정치적 가치들은 어떻게 드러날까? = == 5장. 보수의 이야기가 더 끌리는 이유는? - 정치적 선택을 활성화하는 말들 == == 6장. 보수의 말 vs. 진보의 말 - 정치적 프레임을 만드는 전략 == == 7장. 보수적인 신 vs. 진보적인 신 - 종교 안에도 보수와 진보는 존재한다 == == 8장. 정치는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다 - 원하는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 == == 9장. 프레임 만들기 - '객관적인' 저널리즘에서 '깨어있는' 저널리즘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