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amGrant의 책.
UnLearning에 대한 내용인 것 같음.
Contents
프롤로그
정신적인 강인함을 갖추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 사람들은 보통 지능을 떠올린다. 똑똑할수록 복잡한 문제를 그만큼 잘 풀 수 있고 같은 문제라도 더 빨리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지능은 생각하고 학습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납게 요동치는 격변의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지능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일련의 인지 기술들이 있다. 다시 생각하기와, 자기가 알고 있던 것들을 잊어버릴 수 있는 기술과 관련된 능력이다.
우리는 한번 결정한 답을 다시 생각하는 것만 망설이는게 아니라 다시 생각하는 것 자체를 망설인다. 실험을 하나 보자. 수백명의 대학생들에게 무작위로 최초 직감의 오류라는 개념을 가르쳤다. 이어서 그 학생들에게 마음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가르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충고했다. 이렇게 한 다음에 두 차례 시험을 치게 했지만, 한번 결정한 답을 고치려 하지 않는 성향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지적 게으름 때문이다. 몇몇 심리학자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정신적 구두쇠(mental miser)라고 지적한다. 새로운걸 붙잡고 어렵게 쩔쩔매기보다는 기존의 의견이나 생각에 안주하는 손쉬운 쪽을 자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려는 의지를 가로막는 한층 깊은 차원의 저항이 사람의 심리에 존재한다. 자신을 믿지 못하고 의심할 때 세상은 한층 더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은 자기가 알던 사실들이 이미 바뀌어버렸을지도 모름을, 즉 과거에 옳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지도 모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깊이 신봉하는 어떤 것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의심할 때는 자기의 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다.
'다시 생각하기'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진행되는 투쟁은 아니다. 대상이 물건일 때 사람들은 열정을 다해서 업데이트를 한다. 예를 들어서 입던 옷이 유행에 맞지 않을 때는 옷을 새로 장만하고 주방 구조나 설비가 유행에 뒤쳐지면 새로 단장한다. 그러나 대상이 지식이나 견해일 때는 기존의 것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집착하고 얼어붙기(seizing and freezing)'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의심할 때의 불편함보다는 확신할 때의 편안함을 더 좋아한다.
나는 최근에 유명한 개구리 이야기를 주제로 연구를 해봤는데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그 개구리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개구리는 심하게 화상을 입는데, 이때 개구리는 냄비에서 탈출할 수도 있고 탈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천천히 데워지는 냄비 쪽이 개구리에게는 실제로 더 유리하다. 자기가 놓여 있는 물이 너무 뜨거워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개구리는 냄비 밖으로 튀어나왔다.
자기가 놓인 상황을 재평가하지 못하는 것은 개구리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다. 우리는 개구리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그 이야기의 진실성을 굳이 의심하려 들지 않는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사람들은 보통 자동적인 반응, 즉 익히 학습된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오랜 진화 과정의 적응에 따른 결과이다. 사람은 같은 조건에 놓이면 같은 반응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 그러나 도지가 맨굴치 산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두개의 반응을 재빠르게 억누르고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시 생각하기의 가치를 살펴본다. 소방대장 와그너 도지의 목숨을 구한 것과 같은 정신적인 유연성(mental flexibility)을 다루는 책이다. 또한 이 책은 도지가 실패했던 부분, 즉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사고의 유연성 및 기민성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사고의 유연성 및 기민성을 촉발하는 방법도 다룬다.
내가 이 책에서 설정한 목표는 다시 생각하기가 일어나는 방식을 탐구하는 것이다. 나는 가장 매력적인 증거를 찾아냈으며 세계에서 가장 숙련된 다시 생각하기 기술 보유자들을 찾아냈다. 독자들은 이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알게 될 것이다. 과거에 전향적인 생각을 하던 기업가가 왜 덫에 걸리고 말았는지, 오랜 기간에 걸쳐 공직에 도전했던 후보자가 왜 가면증후군(impostor syndrome, 자기 업적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목하는 심리적 현상)을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보게 되었는지,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가 어떻게 해서 자기가 틀렸을 때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는지, 세계 최고의 예측가들이 자기 견해를 어떻게 업데이트하는지, 그리고 오스카상을 받은 영화 제작자가 어떻게 생산적인 싸움들 벌여 나가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이 책의 2부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다시 생각하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살펴본다. 여기에서 독자들은 국제토론 챔피언이 토론에서 어떻게 이기는지, 혹인 연주자가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어떻게 설득해서 증오를 내려놓게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독자들은 한 의사의 특별한 경청이 어떻게 해서 백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는지, 어떻게 해서 한 국회의원이 우간다의 반군 지도자가 평화회담에 나서도록 설득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독자들 가운데 양키스 팬이 있다면 내가 과연 이들을 설득해서 레드삭스를 응원하게 만들 수 있을지 시험해볼 것이다.
3부에서는 평생 학습의 커뮤니티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주제를 탐구한다. 까다로운 대화를 전문으로 다루는 한 연구소는 낙태나 기후변화처럼 양극단의 논리가 치열하게 다투는 쟁점들을 놓고 대화할 때 의사소통을 한층 원활하게 하는 방법에 희망의 빛을 뿌려준다. 교육 현장에서는 교사가 교실을 마치 박물관처럼 대함으로써, 목수가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그리고 구닥다리 교과서를 재사용함으로써 아이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터에서는 항공우주 분야 최초의 히스패닉계 여성의 사례를 들으서 학습을 중시하는 문화를 어떳게 구축할지 알아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고로 잘 세웠다고 생각하는 계획을 다시 검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본다.
이 책의 메시지는 이제 더는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이나 의견은 버리자는 것과 일관성보다는 유연성에 자아감의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다시 생각하기 기술을 터득한다면 당산은 분명 직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인생에서 행복을 누릴 보다 유리한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다시 생각하기는 오래된 문제에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새로운 문제이 오래된 해결책을 다시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다시 생각하기는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후회를 보다 적게 하는 지름길이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도구들 가운데 어떤 것, 그리고 자기 정체성의 가장 소중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을 버릴 시점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지혜이다.
1부. 개인 차원의 다시 생각하기 - 자기 견해 업데이트하기
1장. 우리 마음 속의 전도사, 검사, 정치인, 그리고 과학자
마이크는 회사의 공동창업자이자 사장으로서, 또한 공동CEO로서 블랙베리의 기술 및 제품과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있었다. 비록 그의 생각이 스마트폰 혁명을 촉발한 불씨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그의 화사는 다시 생각하기에 서툴렀기 때문에 산소 부족 상태가 되었고, 결국 그의 발명품의 불꽃은 사그라들고 말았다. 도대페 그는 어디에서부터 잘못했을까?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가진 지식과 전문성에 긍지를 느끼며 자신의 믿음과 의견을 고수하는데 자부심을 가진다. 자기 생각에 확신을 가질 때 보상을 받는 안정된 세상에서라면 이런 접근이 일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은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라는데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생각하는데 보내는 시간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다시 생각하기에 써야한다.
다시 생각하기는 인련의 기술인 동시에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적인 도구들을 이미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저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가끔 창고에서 꺼내 녹과 먼지를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
최초의 직감이 아닌 두 번째 생각
사람들은 보통 누군가에게 다시 생각하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제3자의 입장에 섰을 때는 금방 알아본다. 자신이 받아든 어떤 의학적 진단을 놓고 다른 의사의 의견을 구할 때는 늘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심을 품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기 자신의 지식과 의견을 놓고서는 태도가 달라진다. 흔히 옳다는 사실보다 옳다고 느끼는 편을 선호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누구를 채용할 것인가에서부터 시작해서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직접 많은 진단을 내린다. 그러므로 어떤 것에든 자기 자신의 두 번째 의견을 만드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20년 전에 심리학자이자 나의 동료였던 필립 테틀록 PhilipTetlock은 특이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할 때 흔히 전혀 다른 직업인 세 사람의 사고방식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이었다. 그 세 사람은 전도사, 검사, 정치인이다. 우리는 이 각각의 직업 모드에서 특정한 정체성을 취하며, 각 모드에서는 다른 모드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도구를 사용한다. 우리는 자신이 성스럽게 여기는 믿음이 위험해질 때 자기의 이상을 보호하고 드높이기 위해 전도사가 되어 설교를 한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어야 할 때는 재빠르게 정치인으로 변신해서 지역구민의 지지를 받으려고 대국민연설이나 인론플레이, 혹은 로비를 하는 등의 정치 공작을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자기가 옳다고 설교하고 상대방이 틀렸다고 조목조목 따지며 다른 사람의 지지를 얻으려고 정치 공작을 하는 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자기 의견이 과연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름 옳은지 다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린스펀과 그의 누이가 버니 매도프에 투자하겠다고 선택했을 때, 그들이 여러 개의 정신적 도구 가운데 단 하나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전도사와 검사와 정치인이라는 세 개의 모드가 하나로 결합해서 두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한 것이다. 그린스편의 누이가 그에게 자기와 자기 친구들이 거둔 투자수익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그 펀드의 장점을 주제로 설교를 했다. 그리고 그녀가 내보였던 확신은 그린스펀으로 하며금 푸자를 말리던 자신의 친구에게 '조건반사적인 냉소주의'의 혐의를 씌우면서 그를 조목조목 비판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린스펀은 자기의 욕망이 "투자하자"는 쪽으로 손을 들게 할 때는 정치인이 되었다.
누구나 이런 덫에 걸릴 수 있다. 그린스펀은 자기가 더 잘 알고 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자기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워낙 잘 속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빚어졀다고 말한다. 그 펀드에 투자하겠다고 결정할 무렵에 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남에게 잘 속는 이유를 주제로 한 책을 거의 다 쓴 상태였다. 그는 당시를 돌아보면서 다른 종류의 도구들을 가지고서 그 결정에 접근했어야 한다고 후회한다. 예를 들어서 그 펀드가 내는 수익을 곧이곧대로 믿기보다는 그 펀드의 전략을 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도 있었다. 신뢰할 수 있는 여러 참고 자료를 통해 보다 많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한꺼번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보다는 적은 돈으로 조금 더 긴 기간에 걸쳐 투자하는 식으로 실험해볼 수도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과학자의 방식으로 들어가는 것, 즉 과학자가 되는 것이다.
과학자의 고글
직업이 과학자인 사람에게 다시 생각하기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과학자는 자기가 이해하는 범위의 한계를 끊임없이 인식해야 하는 대가로 보수를 지급받는다. 또한 과학자라면 자기가 아는 것을 당연히 의심해야 하고,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에 호기심을 가져야 하며, 새로운 데이터를 확보할 때마다 그것을 근거로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견해를 계속 수정,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직업 차원의 일이 아니다. 마음가짐의 틀이 중요하다. 즉 설교하고 범죄 사실을 따지고 정치공작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의 문제이다. 진실을 찾으려 할 때 우리는 과학자가 된다. 실험을 해서 가설을 시험하고 지식을 발견한다. ... 가설들은 과학 실험실에서만큼이나 우리 일상에 널려 일다. 실험은 우리의 일상적인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의문을 떠올린다. 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과학자처럼 생각하도록 훈련시킬 수 없을까?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들이 보다 더 똑똑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
최근에 유럽의 연구자 네 명이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섰다. 기술, 소매유통, 가구, 식품, 보건, 레저, 기계 등의 분야를 망라해서 100명이 넘는 이탈리아 신생기업 창업자를 대상으로 대담한 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이 창업자들 대부분은 어떻게든 수익을 창출해야만 했는데, 이런 상황은 그들에게 과학적 사고를 가르치는 것이 이들 기업의 경영 실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사하는 데는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이 두 집단을 대상으로 한 훈련은 기본적으로 동일했지만 딱 하나 다른 점이 있었다. 과학적 사고 집단에는 과학자의 고글로 자기 회사를 바라보도록 끊임없이 권장하는 것이었다.1 과학적 사고의 관점에서 전략은 하나의 이론이고, 고객과의 면담은 여러 가설을 개발하는데 도움이 되며, MVP와 시제품은 그 가설들을 시험하는 실험이 된다. 이럴 때 기업가의 과제는 결과를 엄정하게 측정하고 가설이 맞는지, 혹은 틀리는지를 토대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해, 통제집단에 속했던 기업가의 회사들은 평균 300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익을 기록한 반면, 과학적 사고 집단에 속했던 기업가의 회사들은 평균 12,000달러가 넘는 수익을 기록했다. 후자는 두 배가 넘는 속도로 매출을 창출했으며, 고객들도 더 빠르고 쉽게 끌어들였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통제집단에 속한 기업가들은 자신이 애초에 설정했던 전략과 제품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다. 자신이 과거에 내렸던 결정의 장점을 설교하고, 대안이 될 수도 있는 선택의 약점을 따지며, 자신이 기존에 설정한 방향에 손을 들어주는 조언자들에게 박수를 쳐주면서 정치 공작을 하기란 너무도 쉬웠다. 반면에 과학자처럼 생각하라고 배운 기업가들은 세 번 이상 결정을 바꾸었다. 자신이 세웠던 가설이 잘못되었음을 확인할 때는 그 순간이 기존의 사업 모델을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임을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이 결과와 관련된 놀라운 사실은, 우리는 보통 위대한 기업가와 지도자가 강인한 사고방식과 분명한 시각을 가졌다는 사실을 들어서 그들을 찬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단호하고도 확고한 신념의 화신이며 모범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드러난 증거로 보자면 그렇지 않다. 기업의 이사들을 놓고 토너먼트로 경쟁을 시켜보면 실제로 최고의 전략가는 단호하고 확고한 사람이 아니라 느리고 확신이 없는 사람이다. 그들은 조심스러운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을 바꿀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충분히 뜸을 들이고 시간을 들인다. 나는 단호함이라는 덕성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바꿀 권리를 예약해두고 있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 실패한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자기 마음을 바꿀 동기가 부족한 사람은 다시 생각할 많은 경우를 놓쳐버리고 만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고정관념에 빠져들 가능성이 더 높다. 대상의 패턴을 보다 빠르게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 진행되었던 여러 실험을 통해서 드러난 사실인데,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기 믿음을 수정, 보완하는데 그만큼 더 애를 먹는다.
양적인 분석을 잘하는 사람은 결과를 해석할 때 한층 더 정확하다. 단 그 결과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믿음과 일치할 때만 그렇다. 그러나 만일 그 선험적인 패턴이 본인이 가진 이념과 다를 경우에는 수학 실력이 더는 도움이 되지 않고 장애물로 작용한다.
심리학에서 이런 패턴을 추동하는 편향이 적어도 두 개는 있다. 하나는 자신이 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만 바라보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보는 소망 편향(desirability bias)이다. 이 두 개의 편향은 사람들의 지능 활용을 가로막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능을 일그러뜨려 진리에 저항하게 만드는 무기로 만든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보다 더 깊이 설교할 이유와, 자기가 맡은 소송에서 보다 더 열정적으로 따질 이유, 그리고 자신이 소속된 정당의 정치적 공세에 힘을 보탤 이유를 찾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자기 생각에 젖어 있어 결과론적인 오류를 깨닫지 못한다.
내가 애호하는 편향은 '나는 편향되지 않았다'는 편향이다.2 이 경우에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한층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이 편향의 덫에 더 잘 빠져든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한계를 바라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생각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다시 생각하기에 서툴 수 있다.
사람이 과학자 모르에 들어가 있을 때는 자기 생각이 화석화된 이데올로기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정답이나 해법을 미리 정해두고 시작하지 않고 수수께끼나 의문을 풀어나가면서 정답이나 해법에 한 걸음씩 접근한다. 직관을 가지고 설교하지 않고 증거를 찾아서 증거를 들고 가르친다. 다른 사람이 하는 주장에 건전한 의심을 품는데 그치지 않고 자기의 주장을 제시함으로써 반박한다.
과학자처럼 생각하는 데는 열린 마음으로 대응하는 것 말고도 다른 조건이 포함된다. 그것은 바로 활발하게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기가 반드시 옳아야만 하는 이유들이 아니라) 자기가 틀렸을 수도 있는 여러 이유를 찾는 것이 포함된다. 또 자기가 배운 것을 근거로 해서 자기의 생각을 새롭게 고치는 것도 포함된다.
이런 일들은 과학자 모드 이외에 다른 모드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자기 마음을 바꾸는 것이 전도사 모드에서는 도덕적인 허약함을 드러내는 표시이지만 과학자 모드에서는 지적으로 성실하다는 표시이다.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설득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검사 모드에서는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지만 과학자 모드에서는 진리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것이다. 당근과 채찍이 번갈아 주어질 때 정치인 모드에서는 손바닥 뒤집듯 쉽게 의견을 바꾸게 되지만 과학자 모드에서는 한층 예리한 논리와 한층 강력한 데이터를 추종하게 된다.
내가 가진 믿음들 가운데 하나는, 사람은 모든 환경에서 열린 마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설교하는게 맞거나 잘못된 사실을 조목조목 따지며 비판하는게 맞거나 정치 공작을 하는게 맞을 수 있다. 그렇긴 하지만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에, 보다 많은 시간에 보다 많이 마음을 엶으로써 이득을 얻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과학자 모드로 들어가야만 사고의 민첩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MihalyCsikszentmihalyi는 물리학자 LinusPauling이나 바이러스 연구자 JonasSalk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을 연구하면서, 이런 사람들이 다른 동료들과 구별돠는 차이점은 인지의 유연성, 즉 "상황이 요구하는데 따라서 하나의 극단에서 또 다른 극단으로" 기꺼이 의견을 바꿀 수 있는 태도라고 결론을 내렸다.3
위대한 대통령을 구별하는 요소는 바로 지적 호기심과 개방성이었다. 그들은 폭넓은 주제로 독서를 했으며, 내치와 외교에 버금갈 정도로 생물학, 철학, 건축학, 그리고 음악 분야의 발전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했다. 그들은 새로운 견해에 귀를 기울였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낡은 견해를 새롭게 고치는 데 관심을 쏟았다. 그들은 자기가 펼치던 정책들을 획득해야 하는 점수가 아니라 진행해야 할 일종의 실험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직업 정치인이었지만 자기에게 닥친 문제들을 과학자 같은 태도와 접근법으로 풀곤 했다.
자신의 믿음을 끊임없이 버려라
다시 생각하기의 과정을 연구하면서 나는 이것이 흔히 특정한 사이클(주기)을 통해서 전개됨을 알았다. 다시 생각하기는 맨 먼저 지적인 겸손함에서부터, 즉 자기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누구나 자기가 알지 못하는 분야의 길고 긴 항목을 적어나갈 수 있다.
과학적 사고는 자부심보다는 겸손함을, 확신보다는 의심을, 종결에 따른 신경 끊음보다는 호기심을 소중하게 여긴다. 우리가 과학자 모드에서 벗어날 때 다시 생각하기 사이클은 무너지고, 과도한 확신 사이클이 작동한다. 만일 우리가 설교를 한다면 우리는 자기가 가진 지식 안에 존재하는 어떤 간극을 바라보지 못한 채 자기는 이미 진리를 발견했다고 믿을 것이다. 자부심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을 낳는데, 확신은 우리를 검사로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데만 온통 초점을 맞출 뿐 자기의 마음은 바위처럼 단단하게 닫아버린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확증 편향과 소망 편향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래서 정치인이 되어 자기 지역구민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것들은 무시하거나 차버린다. 우리는 치장을 하고 가장을 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진리가 어느 구석에 처박히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자기 의견이 옳음을 확인받고 나면 우리는 한층 더 오만해진다. 그러다가 결국 우리는 뚱뚱한 고양이 증후군(the fat-cat syndrome, 성공한 사람이 성공에 취해서 비효율성을 묵살하여 결국 기회를 놓쳐버리는 현상)에 사로잡히고 만다. 엄격한 규율로 스스로를 압박하면서 자기 믿음을 검증하는 대신에 그때까지 만들어진 명예에 취한다는 뜻이다.
확신은 자기 스스로를 자기가 직접 만든 감옥에 가둬버릴 수 있다. 해결책은 자기 생각의 속도를 줄이는게 아니라 다시 생각하기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바로 이 해결책이 파산의 문턱까지 갔던 애플을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기업으로 만들었다.
아이폰이 태어난 수 있었던 것은 그가(SteveJobs) 가졌던 확신과 선명한 전망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는 휴대전화라는 범주를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직원들은 휴대전화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애플을 되살린 것은 잡스의 마음을 돌리게 만든 직원들의 능력이었다. 비록 잡스는 '다르게 생각하기'의 방법을 알고 있긴 했지만 다시 생각하기의 많은 부분을 실행한 것은 그의 팀이었다.
그들은 힘을 모아서 잡스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잡스 자신이 무언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이므로 자신이 확신하는 것들을 제발 좀 의심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즐겨 사용할 스마트폰을 만들거나 통신사들을 애플이 하자는 방식대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변화에 저항할 때는 현재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여러 전망은 연속성에 대한 전망까지 아우를 때 한층 더 매력적이다. 전략이야 달라지며 진화할지 몰라도 정체성은 계속 이어진다.
잡스와 가깝게 지냈던 엔지니어들은 이것이 잡스를 설득하는 가장 좋은 길임을 알았다. 그들은 잡스에게 자기들은 애플을 전화기 회사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애플은 여전히 컴퓨터 회사로 남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만 기존 제품들을 여전히 안고 가면서 전화기를 추가할 뿐이라고 했다. 애플은 이미 2만 개의 노래를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는데, 노래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주머니에 집어넣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기술을 놓고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기들의 DNA를 유지해야 했다. 여섯 달에 걸친 토론 끝에 비로소 잡스는 그들의 노력을 격려할 정도로 그 분야에 충분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아이팟에 호출 기능을 덧붙여야 할지, 아니면 맥킨토시를 전화기 기능도 하는 미니 태블릿으로 전환할지 시험하는 실험을 하기 위해 두 개의 팀이 출범해서 경주를 벌였다. 그리고 아이폰 출시 4년 뒤에 애플 수익의 절반이 아이폰에서 나왔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에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 이것이 지식이 몰고 오는 저주이다. 좋은 판단은 자기 마음을 여는 기술과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에 달려 있다. 스마트폰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확신한다. 다시 생각하기는 점점 더 중요한 습관이 되고 있다. 물론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재빠르게 다시 생각하겠다.
2장. 안락의자 쿼터백과 가면을 쓴 사기꾼 - 확신의 최적점 찾기
세네카는 시력을 잃었으면서도 방이 너무 깜깜하다고 투덜대는 여성의 이야기를 남겼다. 일반적인 인지 능력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자기 신체에 분명히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증상을 의학계에서는 '안톤증후군(Anton's syndrome)'이라고 부른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뇌의 후두엽 손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조차도 안톤증후군의 또 다른 버전에 우리는 취약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지식과 의견 안에 맹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실과 관련해서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동시에 있다. 나쁜 소식은 이 맹점 때문에 우리는 자기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전혀 바라보지 못할 수도 있고, 또 그 바람에 자기 판단에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서는 다시 생각하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좋은 소식은 올바른 확신을 가지기만 하면 자신을 보다 분명하게 바라보고, 또 자기 견해를 수정,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라. 운전을 처음 배울 때 우리는 시야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말과 함께 거울과 센서를 조정해서 이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인생에서로 마찬가지다. 마음가짐(사고방식)에는 거울이나 센서 따위가 없으므로 자기의 인지적 맹점을 인식하고 자기 생각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두 개의 증후군
이론적으로 확신과 역량은 손을 잡고 나란히 간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둘은 자주 서로를 배척한다. 이런 현상은 어떤 사람이 가진 리더십 역량을 놓고 본인이 평가하는 내용과 동료나 상사, 혹은 부하가 평가하는 내용이 다른 경우에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모두 합해서 수십만 명의 사례를 담은 95건의 연구논문에 대한 메타분석에서 확인하기로는, 여성은 자신의 리더십 역량을 과소평가하고 남성은 과대평가하는데, 이런 패턴은 전형적이다.
당신은 아마도 프로 미식축구의 감독보다도 자기가 아는게 더 많다고 확신하는 열혈 스포츠팬을 만나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사로잡혀 있는 마음가짐의 상태가 바로 확신이 역량을 훨씬 초과하는 안락의자 쿼터백증후군(armchair quarterback syndrome)이다.
안락의자 쿼터백증후군의 반대편에는 역량이 확신을 초월하는 가면증후군이 있다. 아무리 봐도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성공을 거둔 사람이 있다. 당신 눈에 이렇게 보이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라.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똑똑하거나 창의적인지, 혹은 매력적인지 정말 까맣게 모른다. 그리고 당신이 아무리 그렇다고 설득하려 들어도 이들은 자신의 견해를 다시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오만함의 무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이다. 얼마나 거슬리고 짜증나는지 이것을 주제로 책 한권도 금방 써버릴 수 있다. 일련의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위에 열거한 것들과 비슷한 다양한 주제를 놓고 자기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평가하게 하고, 이어서 실제로 그런지 어떤지 문제를 내서 시험을 봤다. 그런데 결과는 지식이 많다고 응답한 사람일수록 자기를 과대평가했고, 따라서 학습과 보완에 그만큼 관심을 덜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혹시 당신은 역사와 과학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적게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래도 당신은 더닝이 했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더닝-크루거 클럽의 첫 번째 규칙은 자기가 더닌-크루가 클럽의 회원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어리석음이라는 산 정상에서의 표준
안락의자 쿼터백증후군이 문제인 이유는 다시 생각하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것에 대해서 잘 안다고 확신한다면 자기 지식에 묻어 있을 수도 있는 오류나 빈틈을 굳이 찾으려고 애쓸 이유가 없다. 그러니 새로운 지식을 찾을 필요도, 기존의 지식을 바로잡을 필요도 없다. 어떤 연구에서는 정서지능 테스트에서 최하점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데서만 그치는게 아니라, 자기가 받은 점수가 부정확하거나 적절하지 않다고 여길 가능성 역시 가장 높았으며, 따라서 자기를 개선하는데 무언가를 투자할 가능성은 가장 낮았다.
이렇게 되고 마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부서지기 쉬운 우리의 자아 때문이다.
자기 능력에 대한 정확한 추정을 가로막는 힘 가운데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는게 있다. 그것은 메타인지, 즉 자기가 하는 생각에 대해서 생각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부족하면 자기가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다.
사람이 과도한 확신으로 무장하게 되는 시점은 초심자에서 아마추어로 나아갈 때이다. 그러므로 얄팍한 지식은 때로 위험하다. 우리는 인생의 너무도 많은 영역에서 자기 의견에 의심을 품거나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발견할 정도로 충분히 많은 전문성을 가지지 못한다. 우리는 해당 주제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고 이런저런 재단을 할 때 자신감을 느낄 정도의 지식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자기가 어리석음의 산 정상에 서 있음을 깨닫지 못한 채, 거기에서 내려와 다른 쪽으로 갈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채 말이다.
병원의 환자 사망률이 가장 높은 때는 1년 중에서도 새로운 레지던트들이 부임해서 진료를 보기 시작하는 6월이다.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신참 의사들의 능력 부족이 위험한게 아니라,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그들의 마음가짐(사고방식)이 위험하다.
초심자에서 아마추어로 나아갈 때 다시 생각하기 사이클이 깨질 수 있다. 사람은 경험이 쌓이면서 겸손함을 잃는다. 빠르게 발전하는 자기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며, 이 자부심은 자신이 이제는 달인이 되었다는 잘못된 인식을 촉진한다. 이렇게 해서 확신 사이클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다. 흠결투성이 가정(가설)들로 가득 찬 초심자의 거품이라는 덫에 갇히고 마는 것이라. 이 덫에 걸리고 나면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블로거 TimUrba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만함은 무지에 확신을 합한 것이다. 겸손함이 인생의 경험을 흡수해서 이것을 지식과 지혜로 바꾸어놓는다면, 오만함은 인생의 경험을 튕겨내는 고무 방패이다."
골디락스가 잘못된 이유
사람들은 흔히 겸손함을 잘못 이해한다. 겸손함은 확신을 적게 하는 것, 즉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겸손함(humility)'의 라틴어 어원 가운데 하나는 '땅에서부터'이다. 한마디로 말해 겸손함은 얼마든지 오류를 저지르고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땅에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는 것이다.
확신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많이 믿느냐 하는 문제이다. 확신은 자기 방법론을 얼마나 신봉하느냐 하는 것과 구분된다는 사실은 증거가 말해준다. 미래에 어떤 목표를 달성할 능력이 자기에게 있음을 확신하면서도 현재 자기가 올바른 도구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는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확신의 최적점이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확신에 찬 겸손함, 다시 말해서 자기가 올바른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 문제를 올바르게 설정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자기 능력을 믿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자기가 가진 낡은 지식을 다시 살펴보겠다는 의심을 품으며, 새로운 통찰을 찾아 나서겠다는 충분한 확신을 갖는다.
의류업체 스팽스의 공동창업자 사라 블레이클리 SaraBlakely가 발 없는 팬티스타킹을 처음 떠올렸을 때 그녀는 그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실현할 자기 능력을 믿었지만, 자기가 당시에 가지고 있던 도구들을 전적으로 의심했다. 낮에는 팩스기 방문 판매를 해야 했기에 그녀는 자신이 패션이나 소매유통업, 혹은 제조업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녀는 시제품을 재단할 때 일주일 내내 양말 공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도움을 청했다. 특허 수수료를 마련할 여유가 없어서 특허 관련 책을 읽고 특허출원 서류를 직접 작성했다. 그녀가 품었던 의심은 그녀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자기 앞에 놓인 온갖 과제를 거뜬히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확신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지식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학습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확신에 찬 겸손함은 학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무조건 확신하지 않고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일 때 발생하는 편익을 다룬 짧은 글을 읽은 학생들이 자기 약점 분야에서 추가로 도움을 구하러 나설 확률은 65퍼센트에서 85퍼센트로 뛰어오른다는 것을 한 실험이 확인했다. 또한 그 학생들은 자기가 몰랐던 사실을 배우기 위해 정치적 반대 진영의 견해를 탐구할 가능성도 더 높았다.
확신에 찬 겸손함은 다시 생각하기로 들어가는 마음의 문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다시 생각하기의 질을 높여준다.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자기 믿음을 기꺼이 수정하겠다는 태도를 가진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서 성적이 좋다. ...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이해한 수준을 검증하려고 끊임없이 문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신감(확신)을 가질 때 이들은 증거가 얼마나 강력한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자기와 반대되는 의견들을 읽고 이해하는데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쓴다. 미국과 중국을 대상으로 리더십 효과를 다룬 엄정한 연구논문들이 내린 결론에 따르면, 가장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팀은 확신에 차 있거나 겸손한 지도자가 이끄는 팀이 아니었고, 가장 효과적인 지도자들은 자신감과 겸손함 두 측면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그들은 자기 능력에 믿음을 가졌지만, 또한 자신의 약점도 예리하게 인식했다. 그들은 위대함의 한계를 밀어 올리며 한층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려면 우선 자기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런 뒤에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의심이 인겨다주는 이득
- 가면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가져다주는 첫 번째 이득은 더 열심히 노력하도록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이다. 어떤 경주를 시작할지 만지를 놓고 결정해야 할 때는 이런 느낌이 아무래도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일단 출발선에 서고 난 다음에는 최종 결승전 참가자 명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결승선까지 최선을 다해 달리겠다는 마음을 강화한다.
- 두번째 이득은 더 똑똑해지도록 노력하는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이다. 자기가 결국에는 이길 것임을 믿지 않을 때는 자기 전략을 다시 생각한다고 해서 잃는건 아무것도 없다. 밑져야 본전이기 때문이다. 모든 초심자가 더닝-크루거 효과의 희생자가 되지 않음을 명심해라. 가면을 쓰고 있다는 느낌은 우리에게 초심자의 마음가짐을 부여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당연한 진실로 여기는 여러 가정을 의심하게 만든다.
- 세번째 이득은 가면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 우리는 한층 훌륭한 학습자가 된다는 점이다. 자기가 가진 지식과 기술을 의심함으로써 우리는 겸손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어떤 것이든 배우려고 나선다.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맨쿠소와 그녀의 동료들이 썼듯이 "학습은 자기가 배울게 있음을 깨닫는 겸손함이 전제된다."
비범한 겸손함
"나는 가면증후군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나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배웠거든요. 아닌게 아니라 자기의심을 통해서 나는 잘 성장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질문을 하게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불확실성은 우리가 더닝-크루거 효과에 빠져들지 않도록 막아준다.
"나는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이런 가면증후군은 언제나 나를 조심하게 만들어서 나를 성장시킵니다. 변화를 꾀하는 사람이라면 가면증후군이 반드시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가면은 '여기에서는 이렇게 하는게 옳아'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게 맞는 길이야'라는 말도 절대로 하지 않죠. 나는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욕망이 워낙 강렬했기에 어떻게 하면 예전과 다르게 할 수 있을지 모든 사람에게 물으며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할라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과학자에 가깝다. 비록 그녀는 자신이 가진 도구들을 의심했지만 학습자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졌다. 그녀는 지식을 구하려면 전문가들에게 배우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지만 창의성과 지혜는 어디에서든 얻을 수 있음을 잘 알았다.
위대한 사상가는 의심이 가면을 쓴 사기꾼이라고 해서 이 의심을 떨쳐내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맹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 맹점을 개선해야 함을 잘 알기에 자신이 품는 의심을 소중하게 여긴다. 또 자기가 알고 있는 많은 지식을 뽐내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가 모르는 지식이 많다는 사실에 경탄한다. 그들은 각각의 모든 해답은 새롭게 던진 질문에서부터 나타나며 지식을 구하는 탐구는 결코 끝나는 법이 없음을 잘 안다. 평생 배우고 익히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음을 잘 안다는 점이다.
오만함은 자기 약점을 바라보지 못하게 눈을 가린다. 겸손함은 반사용 렌즈라서 자기 약점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확신에 찬 겸손함은 교정용 렌즈라서 그 약점을 극복하게 돕는다.
3장. 틀렸을 때 느끼는 기쁨 - 자기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지 않을 때의 희열
당신의 생각을 감시하는 독재자
사회학자 머리 데이비스 MurrayDavis는 고전이 된 한 논문에서 어떤 생각들이 살아남은 것은 그 생각들이 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흥미롭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4 어떤 생각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그 생각이 우리가 허술하게 가지고 있는 의견을 반박하기 때문이다. 달은 지구의 마그마 비에서 나온 증기 속에서 처음 생성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 어떤 생각이나 가정이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지 않았고 우리가 그것에 의문을 품을 때, 우리는 흔히 흥분을 느낀다. 감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은 놀람("진짜야?")에서 시작해서 호기심("더 얘기해줘!")으로 이어지고 다시 희열("우아!")로 이어진다. SF작가 아이작 아시모프 IssacAsimov가 했다는 말을 빌려서 표현하면, 위대한 발견들은 흔히 '유레카!'가 아니라 '그것 참 재밌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믿음이 의심받을 때 사람들은 마음을 열기보다는 닫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마치 우리의 머릿속에 작을 독재자가 들어앉아 있어서, 실제 사실과 관련된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속에 흐르는 것을 차단하는 것 같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전제군주 자아(TotalitarianEgo)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하는 일은 위협적인 정보를 차단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의 정체성이나 지성을 공격할 때, 이 내면의 독재자가 얼마나 쓸모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제군주 자아는 마치 우리 정신의 경호원처럼 개입하여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거짓말을 제공함으로써 자아의 이미지를 보호한다. 저 사람들이 샘이 나서 그러는거야, 너는 정말정말정말 말도 안되게 잘생겼어, 너는 다음번 애완 자갈을 발명하기 직전이야.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RichardFeynman이 말했듯이 "자신을 속여서는 안된다. 그런데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다."
또한 우리의 내면 독재자는 우리가 깊이 신봉하는 의견이 위협받을 때는 책임지고 전면에 나서길 좋아한다.
내면의 독재자는 과도한 확신 사이클을 활성화함으로써 통제의 영향력을 이어나간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우리의 잘못된 의견은 필터버블 안에 갇힌 채로 보호된다. 이 필터버블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의 확신을 지지하는 정보만 접하기 때문에 자기 의견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 다음에 우리의 믿음은 반향실 안에 밀봉되는데, 이 반향실 안에서 우리는 자기가 가진 믿음에 힘을 보태주고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이 하는 말만 듣는다. 이렇게 해서 지나친 자기 확신의 성채가 단단하게 완성된다. 그런데 이 성채가 비록 난공불락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성채를 깨부수겠다고 작정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집단은 지금도 점점 커지고 있다.
애착과 관련된 몇 가지 쟁점
만일 당신이라면 당신을 깜짝 놀라게 하는 어떤 논문을 접할 때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많은 사람은 방어적으로 나서면서 그 논문의 실험 설계 방식이나 통계 분석에서 오류를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카너먼은 반대였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활짝 웃으면서 "정말 멋지군요! 내가 틀렸어!"라고 말했다.
나중에 카너먼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나는 그가 보인 반응에 대해 물었다.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눈을 연신 깜박거리던 그의 모습이 나에게는 '자기가 틀렸음을 확인할 때 느끼는 기쁨'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는 85년 인생을 살면서 누가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긴 했지만, 아무튼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아서 진정으로 기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이제는 예전보다 덜 틀리게 되었음을, 즉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하나 더 알았음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카너먼은 설교를 하거나 조목조목 따져서 비판을 하거나 정치 활동을 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는 오로지 진리를 찾는 데만 매진하는 과학자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그런 태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가진 믿음들이 자기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지 못하도독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미쳐버릴 정도로 금방금방 내 마음을 바꿔버립니다. 내가 가진 생각에 애착을 가지는 것은 그저 일시적일 뿐입니다. 내가 가진 생각이라고 해서 그 생각을 무조건 사랑하는 일은 없거든요."
애착(attachment). 바로 이것이 자기 의견이 핵심을 비껴갔을 때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막고, 더 나아가 그 의견을 다시 생각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자기가 틀렸을 때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려면 분리(detachment)가 필요하다. 두 가지 종류의 분리가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하나는 자신의 현재에서 자신의 과거를 분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의견에서 자기 정체성을 분리하는 것이다.
4장. 어느 멋진 파이트클럽 - 건설적인 갈등의 심리학
2부. 개인과 개인 사이의 다시 생각하기 - 상대방의 마음 열기
5장. 적과 함께 춤을 - 논쟁에서 이기고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법
6장. 다이아몬드에 묻은 나쁜 피 - 고정관념을 흔들어서 편견을 줄이다
7장. 백신을 속삭이는 사람과 부드러운 태도의 심문자 - 올바른 경청이 상대방을 변화시킨다
3부. 집단 차원의 다시 생각하기 - 평생 학습 공동체 만들기
8장. 격양된 대화 - 평행선을 달리는 토론을 하나로 녹이다
9장. 교과서 다시 쓰기 - 자신의 지식을 의심하게 가르치다
10장. 그것은 우리가 늘 해오던 방식이 아니다 - 직장에 학습 문화를 구축하다
4부. 결론
11장. 터널시야 탈출하기 - 최상이라 생각했던 직업 경력 및 인생의 여러 계획을 다시 살피다
Arnaldo Camuffo et al. "A Scientific Approach to Entrepreneurial Decision Making: Evidence from a Randomized Control Trial", Management Science 66 (2020): 564-86 (1)
Emily Pronin, Daniel Y. Lin, and lee Ross, "The Bias Blind Spot: Perceptions of Bias in Self versus Other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8 (2002): 369-81 (2)
Creativity: Flow and the Psychology of Discovery and Invention (3)
Murray S. Davis, "That's Interesting!: Toward a Phenomenology of Sociology and a Sociology of Phenomenology", Philosophy of Social Science 1 (1971): 309-4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