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즐거움'
Finding Flow by MihalyCsikszentmihalyi
1. 일상의 구조
나는 이 책에서 현대 심리학이 알아낸 성과와 내가 연구한 내용에 바탕을 두면서도, 선인들이 후세에 남긴 뜻 깊은 지혜를 고루 동원하여 바람직한 삶의 길을 찾아나설 작정이다.
"바람직한 삶은 어떤 것인가?" 나는 다시 한번 겸허하게 묻고 싶다. 그러나 예언자나 신비주의자처럼 말할 생각은 없다.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평범한 사건들, 즉 일상 생활에 초점을 맞추면서 구체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예를 들기 위해 애쓰고 싶다.
여러 해 전에 견학하던 기관차 공장에서 대부분의 용접공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애정이 없었고, 시계만 보면서 빨리 퇴근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조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그 공장 안에 있는 기계 설비의 구조를 모두 독학을 꿰뚫어, 못고치는 기계가 없었다. 집에서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집 부근에도 멋진 분수를 만들었다.
무엇이 평범한 한 사람의 인생을 이토록 값지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그 답을 알아내고 싶었다.
이 책에는 중요한 전제가 세 가지 깔려 있다.
- 중요한 진리는 이미 오래 전에 뛰어난 예언자, 시인, 철학자가 말했고 그것은 지금도 우리네 인생의 지침으로서 요긴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선각자들이 깨달은 진리는 옛날 식으로 표현되었으므로 후대의 시각으로 그 안에 깃든 의미를 늘 재음미하고 재해석해야 생명력이 사라지지 않는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의 성전에는 선인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사유의 결실이 풍부하게 담겨 있으므로, 이를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과거의 글은 절대 불변의 영원한 진리를 담고 있다고 맹신하는 자세에도 문제는 있다.
- 지금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가 주로 과학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좋든 싫든 간에 현재로서는 과학이 현실을 담아내는 가장 신뢰할만한 거울이다. 과학을 무시하려는 발상은 위험천만하다.
- '삶'의 뜻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선인들의 지혜에 귀기울이는 한편 그 지혜를 과학이 꾸준히 축적해 온 앎과 접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희망은 과거에서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재에서 솟아오르는 것도 아니다. 또 가상의 미래로 뛰어본들 우리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과거의 사실과 미래의 가능성을 현재의 시점에서 이해하려고 꾸준히 노력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길을 깨달을 수 있다.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 그리고 이것보다 한층 절박하게 다가오는 질문, 다시 말해서 어떻게 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답하기 위하여, 나는 지난 30년 동안 주로 심리학, 사회학 같은 사회과학을 수단으로 삼아 체계적 현상학을 발전시키는데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만사가 인간 공통의 조건, 사회적-문화적 범주라든가 우연성에 의해 결정된다면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성찰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리라. 다행히도 개인이 주도적으로 선택하여 현실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운명의 굴레를 박차고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진 이들이다.
삶은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해서 경험이다. 그런데 경험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시간은 아주 귀중한 자산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경험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할당하고 투자할 것인가를 지혜롭게 결정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하루에 우리가 보통 하는 일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 가장 중요하고 비중이 큰 일은 생존과 안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하여 하는 활동이다. 오늘날 이것은 '돈벌이'와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니는데, 그것은 돈이 웬만한 물건은 모두 구입할 수 있는 교환의 매개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 생산 활동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야 하지만, 육체와 육체의 부속물을 잘 간수하는데도 우리는 엄청난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하루의 1/4라는 시간을 우리는 이런저런 유지 활동에 투입한다. 식사, 휴식, 세면으로 몸을 돌보고 청소, 요리, 장보기와 각종 집안일로 생활의 여건을 유지한다.
- 생산과 유지 활동에 들어가고 남은 시간이 자유 시간, 곧 여가 시간인데, 사람들은 여기에 전체 시간의 1/4을 쏟는다.
생산, 유지, 여가라는 세 가지 주요 기능이 우리의 정력을 빨아들인다. 그러므로 삶의 성격은 우리가 직업적으로 하는 일에,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애쓰는 노력에, 그리고 남는 시간에 벌이는 활동에 좌우된다고 보아도 무리는 아니다. 삶은 이러한 기본 좌표 안에서 펼쳐지며, 우리가 보낸 하루하루를 모두 더하였을 때 그것이 형체 없는 안개로 사라지느냐 아니면 예술 작품에 버금가는 모습으로 형상화되느냐는 바로 우리가 어떤 일을 선택하고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 장과 다음 장에서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시간을 사용하는지, 혼자소 보내는 시간과 여럿이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자기가 하는 일에 어떤 느낌을 갖는지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다음에 이어지는 장들에서 나는 ESM(경험추출법: Experience Sampling Method)으로 확보한 자료와 여타 설문조사에서 얻은 자료를 두루 활용할 것이다.
2. 경험의 내용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는 우리가 하는 일과도 관계가 있지만, 그보다는 자기가 하는 일을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경험의 내용과 더 관계가 깊다.
그동안 축적된 연구는 일견 수긍이 가면서도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온갖 문제와 비극에 부딪히면서도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기보다는 행복한 것으로 묘사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수긍이 가면서도 놀라운 연구 결과가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물질적 풍요와 행복의 상관 관계다.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고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지만 예외도 있다. 놀라운 것은 한 나라 안에서 개인의 경제력과 삶에서 느끼는 만족감 사이에는 아주 미미한 상관 관계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이다. 미국의 억만장자는 평균 소득을 가진 사람보다 아주 조금 더 행복할 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빈곤의 문턱을 일단 넘어서면 재산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행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특성도 개인의 행복 체감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행복이 우리가 따져볼만한 가치가 있는 감정의 전부는 아니다. 하루하루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싶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행복은 출발점으로서는 오히려 바람직하지 못하다. ... 행복을 얼마나 느끼느냐는 주어진 상황보다는 개인의 성향에 좌우된다.
감정은 의식 안의 상태를 말한다. 슬픔, 두려움, 떨림, 지루함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은 마음속에 '심리적 엔트로피'를 조성한다. 무질서도를 뜻하는 엔트로피 상태에 빠지면 우리는 바깥일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내부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데 온통 신경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 과단성, 민첩성 같은 바람직한 감정은 '심리적 반엔트로피'의 상태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거나 추스르는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으므로 아무 걸림돌 없이 정력을 우리가 선택한 과제로 온전히 투입할 수 있다.
우리는 주어진 과제에 관심을 쏟는 것을 지향점 또는 목표를 설정했다고 표현한다. 목표를 얼마나 끈질기고 일관되게 추구하느냐는 동기 부여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의도, 목표, 동기 부여는 심리적 반엔트로피를 조성한다. 정신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고 작업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면서 의식 안에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질서가 없으면 정신적 과정은 두서가 없어지고 감정의 질은 급격히 저하된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자발적일 때 가장 만족스러워하지만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일 역시 크게 불만스러워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많이 있다. 심리적 엔트로피는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하는 일에서 가장 높이 나타났다. 결국 내적 동기 부여(이것을 하고 싶다)든 외적 동기 부여(이것을 해야 한다)든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집중을 해야 할 어떤 목표도 갖지 못하고 마지못해 일을 하는 상태보다는 삶의 질을 끌어올려 준다.
의도의 경우는 정력이 단기간에 투입되는 반면, 목표는 좀 더 장기적으로 투입된다. 일관된 목표의 추구 없이 일관된 자아를 만들어 나가기는 어렵다.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정력을 제대로 투입해야 한 사람의 경험에 질서가 생긴다. 예측이 가능한 행동, 감정, 선택에서 드러나는 이 질서는 시간이 흐르면 개성 있는 '자아'로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의도와 목표를 두고 사람들이 흔히 품는 오해가 있다. 가령 힌두교나 불교처럼 갈래가 다양한 동양의 종교들은 행복에 으려려면 욕망을 버리라고 가르치는데 이것을 모든 욕망을 포기하여 더 이상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해야만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은 적잖은 수의 유럽과 미국 청년들이 철저히 자동적이며 우연히 이루어지는 행위만이 삶의 깨달음으로 이어진다는 믿음 아래 일체의 목표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보기에 동양의 종교가 가르치는 내용은 목표를 덮어놓고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 저절로 생겨나는 의도는 신뢰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하고자 할 따름이다. ... 관성은 무시 못하는 것이어서 우리가 가진 목표의 대부분은 유전과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불교가 우리에게 억눌러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그런 목표다. 하지만 그러려면 어마어마한 의지가 필요하다. 타성에 젖은 목표를 근절한다는 역설적 목표는 한 사람이 자신의 정신력을 24시간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이루기 벅찬 과업이다. 요가 수행자나 승려는 타성에 젖은 목표가 의식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막느라 전력 투구하는 사람들이므로 다른 일을 할 수 있을만한 여력이 거의 없다. 동양 종교에서 말하는 수행은 서구인이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과는 정반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신의 작용을 깊이 있게 파고들려면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집중하지 못하면 의식은 혼돈에 빠진다. 마음은 평상시에는 정보의 무질서 상태에 놓여 있다. 생각은 논리적 인과 관계에 따라서 가지런히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두서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얽혀 있다. 집중하는 요령을 터득하지 못하면, 다시 말해서 노력을 한곳으로 모으지 못하면 사고는 아무런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지리멸렬해진다.
감정의 흐름을 거슬러야 할 경우엔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수학을 싫어하는 학생은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교과서에 실린 정보를 흡수하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강한 자극(시험에 붙어야 한다든가 하는)이 필요하다. 정신적 과업이 어려울수록 집중하기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그러나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그 일을 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을 때는 객관적 어려움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별다른 갈등 없이 마음을 집중할 수 있다.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집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성숙한 지능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재능의 개발에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집중력이야말로 모든 사고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하루하루의 삶이 그런 모순으로 차있다. 가슴, 의지, 정신이 일치할 때의 뿌듯함을 우리는 좀처럼 맛보기 어렵다. 감정, 목표, 사고가 일치하지 않고 의식 안에서 격투를 벌이며, 우리는 그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는지 생각해보자. 가령 스키를 타고 산비탈을 질주할 때 우리는 몸의 움직임, 스키의 위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공기, 눈 덮인 나무에 주의를 집중한다. 갈등이나 모순을 의식할 짬이 없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았다간 눈 속에 고꾸라진다. 그러니 누가 딴 생각을 하겠는가? 활강이 너무도 완벽하여 우리는 그것이 한없이 계속되기를 바라고 순간의 경험에 완전히 몰입한다.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이 순간을 나는 '몰입 경험'이라고 부르고 싶다. '몰입'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것은 운동 선수가 말하는 '몰아 일체의 상태', 신비주의자가 말하는 '무아경', 화가와 음악가가 말하는 미적 황홀경에 다름아니다. 운동선수, 신비주의자, 예술가는 각각 다른 활동을 하면서 몰입 상태에 도달하지만, 그들이 그 순간의 경험을 묘사하는 방식은 놀라우리만큼 비슷하다.
우리는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일련의 명확한 목표가 앞에 있을 때 몰입할 가능성이 높다. 체스, 테니스, 포커 같은 게임을 할 때 몰입하기 쉬운 이유는 목표와 규칙이 명확히 설정되어 있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선수는 모든 것이 흑백으로 선명하게 표현된 소우주 안에 있다. 종교 의식에 참여하거나 산을 오르거나 수술을 할 때도 명확한 목표가 주어진다. 몰입을 유발하는 활동을 '몰입 활동'이라고 하자. 일상 생활과는 달리 몰입 활동은 명확하고 모순되지 않은 목표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해준다.
몰입 활동의 또 하나 특징은 되먹임, 곧 피드백의 효과가 빨리 나타난다는 것이다. 몰입 활동은 작업이 얼마나 순조롭게 이루어지는지를 말해준다. 우리는 체스를 두면서 말 하나를 움직일 때마다 형세가 유리해졌는지 불리해졌는지를 안다. 등반가는 걸음을 한 보 내디딜 때마다 자기가 부른 노래가 악보와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알 수 있다.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우리는 단서가 주어지지 않으면 지금 하는 일이 잘 되는지 못 되는지 한참을 모르고 지낼 때가 많지만 몰입 상태에서는 대체로 그걸 알 수 있다.
몰입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데 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행동력과 기회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바람직한 경험을 하게 된다.
- 과제가 너무 힘겨우면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에 젖다가 제 풀에 포기하고 만다.
- 과제와 실력의 수준이 둘 다 낮으면 아무리 경험을 해도 미적지근할 뿐이다.
- 그러나 힘겨운 과제가 수준 높은 실력과 결합하면 일상 생활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심도 있는 참여와 몰입이 이루어진다.
등반가라면 산에 오르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짜내야 할 때, 성악가라면 산에 오르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짜내야 할 때, 바로 그런 경험을 한다. 보통 사람은 하루가 불안과 권태로 가득하지만 몰입 경험은 이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강렬한 삶을 선사한다.
목표가 명확하고 활동 결과가 바로 나타나며 과제와 실력이 균형을 이루면 사람은 정신을 체계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몰입은 정신력을 모조리 요구하므로 몰입 상태에 빠진 사람은 완전히 몰두한다. 잡념이나 불필요한 감정이 끼여들 여지는 티끌만큼도 없다. 자의식은 사라지지만 자신감은 평소보다 커진다. 시간 감각에도 변화가 온다. 한 시간이 일분처럼 금방 흘러간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여한 없이 쓸 때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 있건 일 자체에서 가치를 발견한다. 삶은 스스로를 정당화하게 된다. 체력과 정신력이 조화롭게 집중될 때 삶은 마침내 제 스스로 힘을 얻는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다. 몰입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행복을 느끼려면 내면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정작 눈 앞의 일을 소홀히 다루기 때문이다. 암벽을 타는 산악인이 고난도의 동작을 하면서 짬을 내어 행복감에 젖는다면 추락할지도 모른다. 까다로운 수술을 하는 외과의나 작품을 연주하는 음악가는 행복을 느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일이 마무리된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을 돌아볼 만한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되돌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물론 몰입하지 않고도 행복을 맛볼 수는 있다. 고단한 몸을 눕혔을 때의 편안함과 따사로운 햇살은 행복을 불러 일으킨다. 모두 소중한 감정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런 유형의 행복감은 형편이 않좋아지면 눈 녹듯 사라지기에 외부 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키고 성숙시킨다.
그림 1에서 우리는 왜 몰입이 개인을 성숙시키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 어떤 사람이 그림에서 '각성' 상태에 있다고 가정하자. 각성은 별로 나쁜 상태는 아니다. 각성 상태에 놓인 사람은 정신을 상당히 집중하고 능동적이며 대상에 밀착되어 있다. 문제는 그 정도가 높지 않아 몰입에서 맛볼 수 있는 즐
3. 일과 감정
4. 일의 역설
5. 여가는 기회이며 동시에 함정
6. 인간 관계와 삶의 질
7. 삶의 패턴을 바꾼다
8. 자기목적성을 가진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