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l +All:read NassimTaleb의 책. Incerto(불확실성) series 3부작 중 한 권이다. (Antifragile, FooledByRandomness, TheBlackSwan) <> = 서문 = === 안티프래질 === 세상에는 충격으로부터 혜택을 보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가변성, 무작위성, 무질서,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번창하고 성장하며, 모험과 리스크,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충격을 가하면 부서진다는 의미인 프래질에 정확하게 반대가 되는 단어는 없다. 이제부터 이런 단어를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고 부르자. 안티프래질은 회복력 혹은 강건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회복력이 있는 물체는 충격에 저항하면서 원상태로 돌아온다. 반면, 안티프래질한 대상은 충격을 가하면 더 좋아진다. 안티프래질은 프래질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해준다. 질병을 없애지 않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없듯이, 또는 손실을 먼저 줄이지 않고서 부를 증진시킬 수 없듯이, 프래질을 줄이지 않고서 안티프래질해질 수는 없다.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프래질을 줄이거나 안티프래질을 활용해 프래질에서 안티프래질로 가기 위한 원칙을 제안한다. 그리고 간단한 비대칭성 테스트를 통해서 안티프래질과 프래질을 탐지할 수 있다. 무작위적인 사건이나 충격에서 손실보다 이익이 더 크면 안티프래질하고, 그 반대는 프래질한 것이다. 안티프래질이 살아남은 모든 자연적 시스템 혹은 복잡계의 특징이라면, 이런 시스템에서 가변성, 무작위성, 스트레스를 제거하면 시스템에 피해를 줄 것이다. 시스템은 약해지거나 소멸하거나 붕괴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무작위성과 가변성을 억누르면서 경제, 건강, 정치, 교육 등 거의 모든 것을 프래질하게 만들어왔다. 침대에서 한 달을 보내면 근육이 약해지듯이, 스트레스를 제거하면 복잡계는 약화되거나 소멸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근대의 구조화된 세계는 하향식 정책을 비롯한 각종 장치들을 통해 우리에게 피해를 입혀왔다(이 책에서 나는 이런 현상에 ‘소비에트-하버드 환상Soviet-Harvard delusions’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치 안티프래질한 시스템에 모욕을 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런 현상은 근대가 낳은 비극이다. 마치 자녀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부모처럼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다 가장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하향식인 모든 것은 대상을 프래질하게 만들고 안티프래질과 성장을 가로막는 반면, 상향식은 적당한 스트레스와 무질서가 존재한다면 대상을 번창하게 만든다. 발견의 과정(또는 혁신이나 기술의 진보) 그 자체는 정규 교육보다는 안티프래질한 팅커링(276쪽 참조), 공격적인 리스크 감수에 더 많이 의존한다. 우리 사회를 프래질하게 만들고 커다란 위기를 일으키며 승부의 책임 SkinInTheGame (워렌 버핏이 말한 내부자가 자신의 돈으로 회사 주식을 사는 것으로, 자신의 돈이 걸려 있으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 옮긴이)을 지지 않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익을 취하면서 안티프래질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상 어떤 순간에도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사람들, 즉 개인적으로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커다란 권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 이제 중요한 윤리 원칙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프래질하게 만드는 대가로 자신이 안티프래질해져서는 안 된다. === 블랙 스완에 대한 해독제 === 블랙 스완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대형 사건으로서 예측이 불가능한 데다 불규칙적으로 일어난다.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블랙 스완 현상으로 경악과 피해를 동시에 경험하는 예측 전문가들을 칠면조라고 부른다. 나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이해를 미세 조정하고, 이를 통해 블랙 스완 현상을 찾아내지 못하고, 혹은 이에 따르는 충격을 측정하지도 못하는 모델, 이론, 학설을 이끌어내지만, 결국 대부분의 역사는 블랙 스완 현상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복잡계는 탐지하기 어려운 상호 의존성과 비선형 반응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비선형은 당신이 약 복용량을 두 배로 늘리거나 공장 종업원 수를 두 배로 늘리면 처음 얻었던 효과의 두 배를 얻지 못하고 훨씬 더 많거나 혹은 훨씬 더 적은 효과를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라델피아에서 2주를 보낸다고 해서 1주를 보내는 것에 비해 두 배의 즐거움을 얻지는 못한다. 이것은 내 경험이다. 이런 반응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의 모양을 띤다. 이런 환경에서는 인과관계에 관한 단순한 연상이 오류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한 가지 부분만 보아서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어렵다. 인위적인 복잡계에서는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거나, 심지어 통제하기 힘든 연쇄 반응의 고리가 폭포수처럼 이어질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러다 결국 대형 사건이 터지게 된다. 따라서 기술적 지식이 늘어나고 있는 근대 사회에서는 역설적으로 이런 변화가 예측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제 인위적인 것들이 늘어나면서 조상들의 자연스러운 모델로부터 멀어지고, 모든 것이 복잡하게 만들어지면서 강건함을 잃고 블랙 스완의 역할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더구나 우리는 이 책에서 네오매니어라고 부르는 새로운 질병의 희생자가 되었다. 이 질병은 우리에게 블랙 스완에 취약한 시스템(우리는 이것을 기술 진보라고 부른다)을 만들도록 한다. 대자연이 (자신의 안티프래질 덕분에)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에 관한 한 가장 뛰어난 전문가이며, 블랙 스완 현상에 대해서는 최선의 관리자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다. 대자연은 수십 억 년 동안 추대위원회의 지명을 받은 아이비리그 출신의 이사들로부터 지배와 통제를 받지 않고도 지금까지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안티프래질은 단지 블랙 스완에 대한 해독제뿐만이 아니다. 안티프래질을 이해하면 역사, 기술, 지식과 그 밖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는 블랙 스완 현상의 역할을 인정하는 데 지적인 두려움을 덜 느끼게 된다. 대자연이 안전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대자연은 파기하고 대체하고 선별하고 개조하는 데 적극적이다. 무작위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강건하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길게 보면 무자비한 시간 앞에서는 가장 강건한 것이라도 모두 부서지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40억 년 동안 자신의 모습을 유지해왔다. 단언컨대, 그것은 강건함만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것도 시스템을 무너뜨리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강건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완벽하게 강건한 것을 얻기란 불가능하므로 무작위적인 사건, 예상하지 못한 충격, 스트레스, 가변성으로부터 고통받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활용해 시스템이 스스로 끊임없이 재생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복잡계는 사람들의 믿음과 달리 복잡한 시스템, 규정, 정책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할수록 더 좋다. 복잡한 상태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의 사슬이 계속 증가하도록 만든다. 불투명성 덕분에 개입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고, 이런 결과에 대한 변명과 함께 2차적인 효과를 수정하기 위한 또 다른 개입을 낳는다. 결국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면서 이전의 반응보다 더 나쁜 반응을 일으킨다. 단순한 것은 더 많은 효력을 갖는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하고, 명백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을 두려움 없이 다루도록 하며, 훨씬 더 바람직하게는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나서서 우리의 무지를 똑바로 바라보게 해줄 몇 안 되는 방법, 원칙, 금지 명령을 제시할 것이다. === 이 책의 내용 === 언젠가 나는 기술적으로 정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프래질은 가변성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변성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무작위성, 불확실성, 무질서, 오차, 스트레스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가변성을 좋아하지 않는 것들은 스트레스, 피해, 혼란, 무질서, 불확실성, 시간,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와 같이 프래질에 대한 명시적인 정의에서 안티프래질의 개념이 나온다. 안티프래질은 가변성을 좋아한다. 시간도 좋아한다. 그리고 비선형성과 끈끈한 관계를 갖는다. 비선형적인 반응을 보이는 모든 것들은 무작위성의 원인에 대해 프래질하거나 안티프래질하다. 내가 쓰는 글은 특정 주제를 대상으로 시작과 끝 그리고 유효 기간을 지닌 고립적인 에세이가 아니다. 오히려 중심이 되는 생각에서 나오면서 서로 중복되지 않는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인세르토Incerto(불확실성, 리스크 등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 옮긴이)라고 불리는 나의 전집은 주로 불확실성, 무작위성, 확률, 무질서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또는 우리가 보지 못한 요소와 특징을 지닌 세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즉 불투명성을 지닌 상황에서의 의사결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전집은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철학적·기술적 내용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 3부작은 어떤 책(예를 들어 『안티프래질Antifragile』)의 임의의 장과 또 다른 책(예를 들어 『행운에 속지 마라Fooled by Randomness』)의 임의의 장 사이의 거리는 두꺼운 책 한 권의 장 사이의 거리와 비슷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런 원칙은 이 전집이 혼란 상태에 빠져들지 않으면서 과학, 철학, 경영학, 심리학, 문학, 자서전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 수 있도록 해준다. 따라서 『안티프래질』과 『블랙 스완The Black Swan』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이 『블랙 스완』보다 늦게 발간되면서 『블랙 스완』에 나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규정된 결론으로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이 책이 주가 되고 『블랙 스완』은 일종의 보조 도서로서 이론을 다루는 부록이 될 것이다. 왜 그럴까? 『블랙 스완』과 이전에 발간된 『행운에 속지 마라』는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상황을 납득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쓴 책이기 때문이다. 반면 이 책은 블랙 스완 현상이 사회와 역사를 지배한다(그리고 사후적 합리화 때문에 사람들이 스스로 블랙 스완 현상을 예상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는 사실과, 그 결과로서 비선형성이 특히 심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필요가 없다는 입장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당장 실천적인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된다. 이 책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 서문의 부록에서는 트라이애드Triad를 표로 보여준다. 프래질 스펙트럼을 따라 세상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지도가 될 것이다. * 1권 <안티프래질: 개론>에서는 새로운 특징을 제시하고 전형적인 안티프래질 시스템으로서 진화와 유기체에 관해서 설명한다. 또한 집단의 안티프래질과 개인의 프래질 간의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살펴본다. * 2권 <근대는 안티프래질을 거부한다>에서는 시스템(특히 정치 시스템)에 내재된 가변성을 억누르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살펴본다. 또한 국민국가라고 불리는 새로운 장치를 설명하고, 당신을 도와주려다 극심한 피해를 안기는 어설픈 개입주의자가 일으키는 손실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 3권 <예측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에서는 뚱보 토니가 등장해 프래질에 대한 자신만의 직관적인 탐지 방법을 소개하고, 로마 시대의 철학자이자 행동가인 세네카의 저작에 기반을 두고 사물의 비대칭성에 관해서 설명한다. * 4권 <옵션의 특징, 기술, 안티프래질적 특성을 지닌 지능>에서는 세상의 신비한 특징을 설명한다. 즉 인간의 지능이 아니라 사물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비대칭성과 옵션의 특징이 어떻게 우리를 여기까지 이르도록 했는지를 설명한다. 이는 소비에트-하버드식 방법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토니가 소크라테스와 논쟁을 벌이면서 우리가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살펴본다. * 5권 <비선형성>에서는 철학자의 돌과 그 반대에 관해서 설명한다. 즉 납을 어떻게 금으로 바꾸는가, 그리고 금을 어떻게 납으로 바꾸는가를 설명한다. 5권의 두 장은 기술적인 문제를 다룬다(이 책에서 배관 공사에 해당한다). 여기에서는 프래질을 비선형성 혹은 더욱 구체적으로는 볼록성 효과를 지닌 함수 형태로 나타내고, 볼록성을 지닌 전략을 가지고 이익을 얻어내는 과정을 설명한다. * 6권 <비아 네가티바>에서는 추가가 아니라 제거하는 (즉 개입하지 않고 누락시키는) 전략에 담긴 지혜와 효력을 설명한다. 여기서는 볼록성 효과의 개념을 적용한다. 물론 첫 번째 적용 분야는 의학이다. 나는 오로지 인식론적, 리스크 관리론적 접근방식에서 의학을 바라볼 것이다. 그럼 의학이 이전과 다르게 보일 것이다. * 7권 <프래질과 안티프래질의 윤리>에서 어떤 당사자는 이익을 보고 다른 당사자는 피해를 입게 되는 방식으로 프래질이 이전되는 현상을 윤리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승부의 책임 부재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살펴본다. *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그래프, 주, 기술적인 내용을 다루는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3단계로 서술되었다. * 첫 번째 단계에서는 비유와 예시를 통해 문학적이고 철학적으로 서술한다. 5권(특히 볼록성 개념을 다루는 철학자의 돌)을 제외하고는 기술적인 설명을 최소화한다. 이런 개념에 대해 잘 아는 독자들은 다른 권에 이와 관련된 아이디어가 잘 스며들어 있으므로 5권을 생략하고 그냥 넘어가도 된다. * 두 번째 단계인 부록에서는 그래프와 더욱 기술적인 설명을 한다. 그러나 기술적인 내용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 세 번째 단계는 기술적 논문과 주를 통해 더욱 정교하게 뒷받침하는 백업 자료다(나의 비유와 예시를 증명해야 할 대상으로 오해하지는 말아 달라. 개인적 에세이는 과학 문헌이 아니다. 과학 문헌은 그냥 과학 문헌일 뿐이다). 이 모든 백업 자료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얻을 수 있다. = 01권 안티프래질: 개론 = 1장과 2장은 안티프래질을 소개하고 그 예를 설명한다. 3장은 고양이와 세탁기의 예를 들어 유기적인 부분과 기계적인 부분의 차이를 설명한다. 4장은 어떤 안티프래질이 다른 대상의 프래질에서 나타나는 과정과, 실패가 어떤 것에는 도움이 되고 다른 것에는 그렇지 못한 이유를 살펴본다. 이런 내용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진화와 연관된다. == 1장 다모클레스와 히드라 == === 삶의 절반에는 명칭이 없다 === 지금 당신은 시베리아에 사는 사촌에게 샴페인 잔 세트를 선물로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있다고 하자. 운송 도중에 샴페인 잔이 파손될 수도 있기 때문에, ‘부서지기 쉬움fragile’, ‘깨지기 쉬움’, ‘취급 주의’라고 우편물 박스에 붉은 글씨로 적어두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서지기 쉬움’의 반대말은 정확하게 무엇일까? 정확하게 말해서, ‘부서지기 쉬움’이라고 적혀 있는 우편물의 반대말은 ‘부주의하게 취급하세요.’라고 적혀 있는 우편물이다. 그 내용물은 깨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질수록 더욱 단단해진다. 부서지기 쉬운 것은 최선의 경우에 손상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강건한 것은 최선의 경우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도 손상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서지기 쉬운 것의 반대말은 최악의 경우에도 손상되지 않으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 된다. === 내 목을 베어주세요 === 그리스인들이 재생시킨 고대 유대인과 이집트인들의 전설에는 화려한 색을 지닌 불사조가 등장한다. 파괴되는 순간마다 자신의 유해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새다. 불사조는 항상 처음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불사조는 내가 자란 레바논 베이루트Beirut의 상징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50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베리투스Berytus(베이루트의 옛날 명칭)는 그 동안 일곱 번이나 파괴되었고, 일곱 번이나 재건되었다. 이 이야기는 나 자신이 여덟 번째 에피소드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실감나게 들린다. 내가 어렸을 때 베이루 그리스 신화에는 레르나Lerna 호수에 사는 뱀처럼 생긴 생명체, 히드라가 등장한다. 히드라는 머리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데, 머리 하나를 자를 때마다 두 개가 다시 생긴다. 따라서 히드라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기를 원한다. 결국 히드라는 안티프래질을 상징하는 셈이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정교하게 변해간다. 그리고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붕괴에 더욱 취약해진다. 이렇듯이 정교하게 변해가는 세상은 블랙 스완에 프래질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 성공이 주는 피해를 예방하려면,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 높은 수준의 강건함, 나아가 높은 수준의 안티프래질을 갖추면 된다. 우리는 불사조, 더 나아가 히드라가 되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모클레스의 칼끝이 우리를 향해 다가올 것이다. === 원시 단계의 안티프래질 ===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소아시아 지역의 폰투스 왕 미트리다테스 6세Mithridates VI는 부왕의 암살 이후 숨어 지내면서, 독살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독극물의 복용량을 더욱 늘려서 나중에는 치사량에 가까운 양을 섭취하려고 했다. 그는 그 과정을 복잡한 종교의식으로까지 발전시켰다. 그러나 독극물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면서, 음독 자살하려던 미트리다테스 6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결국 그는 동맹국의 장수에게 자신의 목을 쳐달라고 부탁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 독성 물질을 소량으로 투약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물질이 조금 더 들어오더라도 내독성이 생기는데, 이 방법을 미트리다티제이션Mithridatization이라고 부르자. 백신 접종이나 알레르기 약에 많이 사용되는 방법이다. 이전에 비해 조금 더 강건해지기는 했지만, 아직은 안티프래질이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안티프래질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우리는 독성 물질을 투약하지 않으면 취약해질 것이고, 강건해지려면 독성 물질을 소량으로 투약해야 한다는 암시를 얻었다. 이제 소량의 독성 물질이 우리 몸을 한층 더 강건하게 해주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약리학자들은 소량의 독성 물질이 실제로 인체에 유익한 약물로 작용하는 현상을 호르메시스hormesis라고 말한다. 즉 인체에 해롭기는 하지만 소량이라면, 과잉반응을 촉진하면서 대체로 유익하게 작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해로운 물질로부터 얻는 혜택’의 관점이 아니라 ‘해로움 혹은 약효는 복용량에 달려 있다.’는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지금 과학자들은 복용량과 반응 간의 비선형성에 흥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스트레스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만들지는 않으며, 명백하게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영역 독립은 영역 의존성을 의미한다 === 어떤 사람은 특정 영역(예를 들어 의학)을 잘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영역(예를 들어 사회와 경제 현상)을 잘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혹은 교실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잘 이해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구조는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익숙한 상황을 벗어나면 다른 상황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도처에 너무나 명백하게 존재하는 안티프래질을 인식하지 못한다. 성공, 경제성장, 혁신이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과잉보상overcompensation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사고방식은 인식하면서 말이다. 또한 우리는 다른 곳에서 작용하는 이런 과잉보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그리고 영역 의존성은 많은 연구자들이 불확실성, 불완전한 이해, 무질서, 가변성이 무질서과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려운 원인이기도 하다). 개념 전달의 어려움은 인간이 가져야 하는 지적 장애요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장애요인을 극복하고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때 지혜와 합리성을 얻을 수 있다. == 2장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과잉보상(overcompensation)과 과잉반응(overreaction) == 언젠가 영국 정부에서 정책 자문가로 일하는 데이비드 핼펀David Halpern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나 자신의 영역 의존성이 갑자기 떠올랐다. 내가 안티프래질에 관해 말을 꺼내자, 그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ost traumatic stress syndrome의 반대 개념인 외상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이는 시련을 겪으면서 더욱 성장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관한 끔찍한 이야기는 많이 듣지만, 지식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전문 용어인 외상후 성장에 관해서는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러나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인들은 외상후 성장에 해당되는 현상을 이해하고 있다. 학자들은 무작위성에서 비롯되는 긍정적인 반응(안티프래질)보다는 부정적인 반응(프래질)에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심리학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는 “곤경은 천재를 일깨워준다.”고 했다. 이 문장을 달리 표현하자면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는 의미다. 곤경에 과잉반응해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이 바로 혁신이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 메시지는 보기보다 아주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다양한 수준의 혁신과 진보에 관한 현대적인 방법이나 생각과는 상충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혁신이 정부의 자금 지원과 계획을 통하거나 혹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유명 교수(그는 무엇인가를 혁신시켜주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의 강의를 듣는 데서, 또는 컨설턴트(그 역시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혁신시켜주는 사람이 아니다)를 고용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이다. 산업혁명에서부터 실리콘 밸리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교육받지 않은 기술자와 기업가들이 기술 진보를 위해 엄청나게 공헌했던 사실을 상기해보면 내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눈에 보이는 상반되는 증거와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쉽게 얻을 수 있는 지혜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생각을 수용하기보다 편안하고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혁신을 추구하려고 한다. 로마의 위대한 정치가 카토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어떤 형태가 되었든 편안함을 쇠퇴로 가는 지름길로 생각한다.1 카토는 의지가 약해질 것을 우려해 너무 쉽게 얻을 수 있는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두려워하는 연약함은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사회 전체를 병들게 할 수 있다). 항공기의 자동화가 조종사들에게 지나칠 정도로(심지어 위험할 정도로)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여 그들의 도전정신을 희석시킨다는 최근 입증된 결과를 듣는다면, 카토는 아마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도전정신이 부족한 미숙한 조종사가 따분한 상태에서 항공기를 조종한다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 경마에서 이기려면 === 경주마는 자기보다 열등한 경주마와 경쟁하면 지고, 자기보다 더 우수한 경주마와 경쟁하면 이긴다는 말이 있다. 스트레스 요인이 없을 때(즉 호르메시스의 반대로서 도전정신이 결여된 상태일 때) 나타나는 보상 부족undercompensation은 가장 뛰어난 경주마에게 최선의 결과를 주지 못한다. 이런 과잉보상의 메커니즘은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곳에서 발생하곤 한다. 장거리 여행 이후에 피로를 느낀다면, 휴식을 취하기보다 헬스 센터로 간다. 또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사무실에서 가장 (혹은 두 번째로) 바쁜 사람에게 주는 것도 널리 알려진 방법이다. 시간이 남아돌면 게을러지고 동기를 잃게 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바쁠수록 다른 일도 더욱 능동적으로 처리한다. 과잉보상은 바로 이런 경우에 발생한다. 우리가 소음이 약간 있을 때 더 잘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과잉보상의 메커니즘 때문이다. 마치 소음에 대항해 집중력을 연마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있더라도 우리는 휴식을 취하는 동안 소음을 걸러내고 신호를 분간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과잉보상의 메커니즘에 따라 행동할 뿐만 아니라 소음이 필요할 때도 있다. 나는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카페에서 일을 한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듣거나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청할 때를 생각해보라. 또 깊이 잠들 수 있도록 백색 잡음white noise†을 일으키는 전기 장치도 있다. 이처럼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작은 요인들은 호르메시스적 반응hormetic response과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에서만 효과가 있다. 런던에서 ‘외상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런 안티프래질의 특징을 갖는 호르메시스적 반응은 일종의 여분redundancy에 불과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대자연에 관한 모든 생각이 내 마음속에서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여분에 관한 생각이었다. 자연은 스스로 알아서 초과 보험에 가입하려고 한다. 자연이 위험을 관리하는 주요 방식은 바로 여분을 갖는 것이다. 우리는 두 개의 신장을 가지고 있다. 회계 직원을 둘 때도 마찬가지다. 또 많은 경우 여분의 부품, 여분의 용량을 가지고 있다(폐, 신경계, 동맥 혈관 등을 생각해보라). 반면 우리 인간은 아낌없이 쓰면서 여분을 비축해두지 않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여분은 반드시 겁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당히 공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창고에 여분의 비료를 쌓아두었다고 하자. 만약 중국이 비료 공급을 중단해 비료가 부족해지면, 그 여분을 팔아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또 여분의 석유를 비축해두면 공급이 부족해질 때 팔아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같은 논리가 과잉보상에도 적용된다. 과잉보상은 일종의 여분이다. 히드라가 추가적으로 얻는 머리는 인간이 갖는 여분의 신장과 다르지 않다. 또 추가적인 스트레스 요인을 견뎌내는 능력 향상과도 다르지 않다. 당신이 15밀리그램의 독성 물질을 소화했다면 당신의 몸은 20밀리그램 이상도 소화해낼 수 있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 과잉보상은 항상 과도한 형태로 나타난다. 더욱 나쁜 결과에 대비하고 더욱 큰 위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여분의 능력과 힘을 키우도록 한다. 물론 편의주의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런 여분의 능력과 힘은 그 자체로 유용하다. 여분은 편의주의적이며, 여분의 능력과 힘은 위험이 없는 경우에도 커다란 이익을 줄 수 있다. ... 여분은 보험이라기보다 투자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가 비효율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때로는 상당히 효율적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주라. 나의 지적 라이벌(개인적으로는 친구이다)이자 리스크 애널리스트 아론 브라운Aaron Brown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 적이 있는데, 이는 다윈주의자들이 깊이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적응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상당히 부정확하고 애매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단순한 적응을 뛰어넘는 개념인 안티프래질이 혼란을 명료하게 해줄 수 있다. 적응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고유의 환경이 갖는 역사에 정확하게 맞추는 것일까, 아니면 강력한 스트레스 요인을 지닌 환경을 추정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안티프래질의 개념은 간과한 채, 첫 번째 종류의 적응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선택에 관한 표준 모델을 수량적으로 표현하자면,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과잉보상을 의미한다. 외상후 성장의 안티프래질적 반응을 연구하던 심리학자들조차 적응의 개념을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회복력’으로 이해하고 만다. === 소요, 사랑의 안티프래질과 그 밖의 스트레스가 주는 생각지 못한 혜택 === 영역 의존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과잉보상 현상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혁명은 압제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시위대를 향해 총을 발사하더라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려온다. 아일랜드 혁명가의 가사는 이런 현상을 잘 요약해준다. 바리케이드가 높을수록 우리는 더 강해질 것이다. 어느 순간, 분노에 찬 군중들은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영웅적인 행동에 감동을 받아 순교자가 되기를 갈망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정치운동이나 반란은 높은 수준의 안티프래질을 갖는다. 따라서 헤라클레스가 히드라를 물리친 것과 마찬가지로 반란 세력을 교묘히 다루면서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더욱 기민한 책략을 모색하지 않고서, 무턱대고 힘으로 진압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안티프래질이 스트레스 요인과 손상에 과잉반응해 과잉보상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안티프래질의 성격을 가장 강하게 가진 것 중 하나가 바로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랑(또는 증오)이다. 사랑은 지리적 거리나 신분처럼 둘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에 과잉반응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안티프래질적 열정에 빠져든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문학 작품은 수없이 많다. 정보는 안티프래질적 특성을 지닌다. 정보는 알리려고 할 때보다 덮으려 할수록 널리 전파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방어하려 할수록 오히려 명예를 실추시킨다. 교활한 베네치아인들은 비밀인 것처럼 위장하면서 그 정보를 널리 전파하려고 했다. 소문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보라. 누군가에게 비밀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 이야기를 해보라. 비밀이라고 하면 더욱 널리 전파된다. 볼테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들끓는 비난을 잠재울 수는 없다. 이런 비난이 당신을 해롭게 한다면,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이 상책이다. 평판을 관리하는 것보다 직업을 바꾸는 편이 더 쉽다. 어떤 직업은 나쁜 평판에 상당히 취약하다. 지금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이런 평판을 통제하기가 불가능하다. 이런 직업은 가질 만한 가치가 없다. 평판을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식으로 평판을 통제할 수는 없다. 대신 평판에 대한 노출에 신경을 써라. 가령, 나쁜 평판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거나 정보의 안티프래질적 특성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작가는 안티프래질적 특성이 있는 곳에 있다. 그러나 가장 현대적인 직업은 대체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운가, 다시 말해 강건한가를 확인하려면 이처럼 간단한 경험의 법칙을 활용하라. 몇 안 되는 예외를 제외하고 자유로운 복장을 하는 사람들은 평판에 대해 강건하거나 심지어 안티프래질적 특성을 갖는다. 면도를 깔끔하게 하고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사람은 자신에 관한 정보에 취약하다. 결국, 우리에게 혜택을 가장 많이 준 사람은 조언해주고 도와주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해치려고 했던(그러나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상당히 착잡하게 한다. == 3장 고양이와 세탁기 == 다음과 같이 대담한 추론을 해보자. 모든 생명체는 어느 정도 안티프래질적 특성을 지닌다(그 역은 아니다). 이 말은 마치 생명의 신비는 안티프래질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자연은 변화의 요인과 범위에 따라 안티프래질적 특성과 프래질적 특성을 동시에 지닌다. 인간의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정 정도 강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시적으로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골밀도가 더 높아지는데, 1892년 논문에서 이런 현상을 제시했던 독일 외과 의사의 이름을 따서 이를 볼프의 법칙Wolff’s Law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접시, 자동차와 같은 무생물에게는 이런 현상이 적용되지 않는다(무생물은 강건할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안티프래질적 특성을 가질 수 없다). 무생물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로 현상을 겪거나 쪼개진다. 지금 설명한 차이점을 가지고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표시할 수 있다. 인공물이 인체의 조직으로 사용되려면 안티프래질적 특징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은 생물과 합성 물질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현저한 차이다. 집, 조리 기구, 컴퓨터 책상은 결국 마모되고, 스스로 수선되지도 않는다. 이렇게 유기적인 부분과 기계적인 부분으로 양분하면 두 가지 현상이 갖는 차이점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사회 활동, 경제 활동, 시장, 문화 활동은 분명히 인위적인 것이지만 스스로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시스템의 구조가 외부로부터의 압력과 관련 없이 스스로 혁신적인 방법으로 조직을 꾸려나가는 것을 말한다 - 옮긴이)의 단계에 도달한다. 이런 것들은 생물은 아니지만 복제하고 증식한다는 점에서 생물을 닮았다(예를 들어 각종 소문, 사상, 기술, 비즈니스 등을 생각해보라). 이들은 세탁기보다 고양이에 더 가깝지만, 세탁기로 잘못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생물, 무생물의 차원을 뛰어넘는 구분을 해야 한다. 더 효과적인 구분은 복잡계complex system와 단순계noncomplex system로 나누는 것이다. 단순한 반응을 보이는 인위적·기계적·공학적 장치는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상호의존성이 없기 때문에 복잡계가 아니다. 전등 스위치를 누르면 정확한 반응을 얻을 수 있다. 러시아에서도 애매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복잡계에서는 상호의존성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생태학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어떤 동물을 제거하면 먹이사슬이 파괴된다. 그 동물의 포식자는 굶게 되고 먹이는 엄청나게 확산되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킨다. 가나안인, 페니키아인, 로마인, 마운트 레바논 주민은 사자를 제거할 수 있다. 그러면 나무 뿌리를 먹고사는 염소의 개체수가 늘어나서 산악 지역의 삼림이 파괴되고 예상치 못했던 사태가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뉴욕에 있는 은행을 폐쇄하면, 아이슬란드에서부터 몽골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복잡한 세상에서는 ‘원인Cause’이라는 단어의 개념 자체가 수수께끼다. 포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거나 실제로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이는 내가 무엇인가에 대한 원인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신문을 무시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 스트레스는 정보다 === 상호 작용하는 요소들을 지닌 복잡계의 가장 중요한 점은 스트레스를 통해서 (혹은 스트레스 덕분에) 각 요소들 간에 정보를 전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몸은 환경에 관한 정보를 논리적 장치, 지능, 추리력, 계산 능력이 아니라 호르몬 혹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다른 물질을 매개로 하는 스트레스를 통해 얻는다.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사람의 뼈는 중력이 가해지면 가령, 이삿짐 센터에서 잠깐 일을 하면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무중력 상태의 우주 정거장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거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자전거를 오래 타면, 뼈는 더 약해진다. 또한 실수와 그에 상응하는 결과는 정보가 된다. 어린 아이들은 논리적 사고 능력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이 유일한 위험 관리 정보다. 실제로 정보를 빼고는 복잡계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주변에는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 매개체가 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인과관계의 불투명성causal opacity’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분석 수단과 표준적인 논리가 들어맞지 않는 상황에서 원인으로부터 결과에 이르는 화살을 관찰하기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건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낮다면, 그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 바로 인과관계의 불투명성이다. 뿐만 아니라, 비선형성 때문에 우리는 보통의 시스템에서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가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인과관계의 불투명성을 지닌 시스템이다). 안티프래질적 특징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스트레스의 빈도가 어느 정도 중요하다. 인간은 만성보다 급성 스트레스에 더 잘 대처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급성의 경우 회복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이때 스트레스 요인이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키보드에서 뱀이 나오거나 흡혈귀가 내 방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란 뒤에 마음의 안정을 찾을 때까지 충분한 시간 동안 바로크 음악과 함께 카밀레 차를 마시는 것은 건강에 좋다. 실제로 신경생물학자들은 첫 번째 형태의 스트레스는 건강을 위해 필요하지만, 두 번째 형태는 해롭다고 말한다. 회복되지 않은 낮은 단계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해로운가를 알기 위해서 중국에서 벌어지는 물고문을 생각해보자. 머리 위의 같은 곳에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고문 받은 사람이 회복할 수 없도록 만든다. 사회과학자들은 상반되는 힘(예를 들어, 수요와 공급) 간의 조화를 나타내기 위해서 ‘균형equilibrium’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추의 움직임에서 보듯이 어느 한쪽 방향에서 작용하는 작은 흔들림은 안정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는 반대 방향에서 작용하는 힘에 의해 상쇄된다. 간단히 말해서, 균형은 경제의 목표라 할 수 있다. 사회과학자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목표는 죽음이 될 수 있다. 복잡계 이론가인 스튜어트 카우프만Stuart Kaufman은 표 2에 나오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세계를 구분하기 위해 균형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사용한다. 기계적 형태 혹은 단순계에서 균형은 관성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유기적 형태 혹은 복잡계에서 균형은 죽음과 함께 발생한다. 카우프만이 제시하는 예를 살펴보자. 욕조 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났고 이후에도 계속된다고 하자. 이런 상황은 영원히 균형에 도달할 수 없다. 유기체와 동적 시스템dynamic system은 이런 상태로 존재한다.2 유기체와 동적 시스템의 경우, 정상 상태는 일정 정도의 가변성, 무작위성, 정보의 지속적인 교환, 스트레스를 요구한다. 이것은 가변성을 잃어버리면 곧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다. === 아이들에게 죄를 범하다 === 우리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사회와 미래에도 해악을 끼치고 있다. 아이들의 삶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줄이려는 시도는 아이들을 이른바 ‘문화적으로 세계화된 위대한 사회’에 가두고 다양성과 차이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스트레스의 또 다른 특징은 언어의 습득에서도 나타난다. 나는 교과서를 통해 문법을 시작하고 3개월에 2번씩 시험을 보고 정해진 원칙에 따라 단어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자신의 모국어를 배웠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야 할 때(특히 열대 지방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통증이 찾아왔을 때처럼 신체적 문제가 생겨 절실하게 도움을 청할 때) 언어를 가장 잘 익힌다. 공부벌레가 되지 않고도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다. 바로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대화를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성공, 부, 기술은 이런 방식의 습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인간을 매뉴얼에 따라 간단한 기계적 반응을 보이는 세탁기처럼 취급하는 현대 생활의 한 측면을 나타내기 위해서 내가 만들어낸 용어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사물로부터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을 체계적으로 제거해 아주 작은 부분까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모든 것들이 편안함, 편리함, 효율성을 위해서 진행된다. 여행가와 모험가(혹은 산책가flâneur)와의 관계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과 인생의 관계와 같다.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은 여행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배우가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만들어버린다. 이처럼 목적을 지향하는 태도가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실존적 자아를 병들게 한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를 무작위성의 실존적 측면으로 이끄는가? 우리가 세탁기 혹은 뻐꾸기 시계가 아니라면(그러니까, 살아 있다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무엇인가가 어느 정도의 무작위성과 무질서를 원할 것이다. 날마다 벌어지는 일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내 삶은 죽도록 지겨울 것이다. 더구나 이런 무작위성은 충실한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엄청난 부자라도 극심한 갈증 뒤에 마시는 물보다 더 가치 있는 액체는 살 수 없다. 어떤 물건도 전철에서 잃어버렸다 되찾은 지갑이나 노트북보다 더 큰 감흥을 주지 않는다. 인생을 일종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금방 싫증이 난다. 인생은 소금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변화의 가능성(따라서 무작위성)을 지닌 환경은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과 달리 우리에게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가하지 않는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울퉁불퉁한 길을 걷다 보면, 걸음걸이는 항상 변하게 된다. 하지만 무작위성이 없는 헬스 센터의 운동 기구는 정반대다. 같은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만든다. == 4장 나를 희생시키는 것이 다른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 === 계층별 안티프래질 === 이번 장에서는 실패, 진화, 안티프래질의 관계를 살펴보겠다. 주로 다른 사람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누군가의 안티프래질은 반드시 타인의 프래질에 대한 대가로 나타난다. 시스템에서 어떤 단위(프래질한 단위 혹은 사람)의 희생은 반드시 다른 단위(혹은 전체)의 혜택을 위해서 필요하다. 지금 막 시작하는 기업의 프래질은 경제 전체의 안티프래질을 위해 필요하다. 이런 사실은 무엇보다도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도록 한다. 개별 기업가들의 프래질과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높은 실패율을 생각해보라. 따라서 안티프래질은 계층과 계급을 통해 좀 더 복잡해지고 흥미로워진다. 자연의 유기체는 유일한 최종 단위가 아니라 여러 개의 하위 단위로 구성되며, 그 자체가 더 큰 집단의 하위 단위가 될 수도 있다. 이런 하위 단위는 서로 경쟁할 수도 있다. 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개별 레스토랑들은 프래질하다. 서로 경쟁해야 하지만, 그 지역의 레스토랑 집단은 이런 이유 때문에 안티프래질하다. 레스토랑들이 개별적으로 강건하게 유지된다면, 레스토랑 산업 전체는 침체되거나 약화될 것이고 구내 식당보다 나은 음식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구소련 체제에서 배급되는 음식을 생각해보라). 더구나 경제위기로 정부가 구제금융이라도 실시하게 된다면, 레스토랑 산업 전체가 수요 부족으로 허덕일 것이다. 결국 품질, 안정, 신뢰는 레스토랑 자체의 프래질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시스템 내부의 일부 구성 요소는 시스템 전체를 안티프래질하게 만들기 위해 프래질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유기체 자체는 프래질하지만, 유전자 내의 암호화된 정보는 안티프래질하다. 이 사실은 진화론의 배후에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또 기업가와 개별 과학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더구나 우리는 앞에서 ‘희생’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슬프지만, 실패로부터 나오는 혜택은 다른 사람과 집단에게 넘어간다. 마치 개인은 자신이 아니라 더 큰 이익을 위해 실패하기로 미리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런 계층화와 프래질의 이전을 고려하지 않고 실패를 논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를 자연과 비슷한 복잡계로 바라본다면, 역사도 하나의 왕국이 지구를 영원히 지배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바빌로니아에서부터 이집트, 페르시아, 로마, 현대의 미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통치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입증해줄 역사학자를 양성하려 애를 쓰더라도 말이다. 무작위성과 예측불가능성에 내재된 시스템은 인구와 인종을 계속 변화시키면서 각 세대마다 스스로를 재창조하기 위해 강건함을 넘어서는 메커니즘을 구축한다. 블랙 스완 관리 기본 원칙은 스피노자나 동양 종교에서 나타나는 범신론 혹은 크리시푸스Chrisippus나 에픽테토스Epictetus의 스토아 철학에서처럼 자연 그 자체를 불멸의 유기체로 간주하지만 않는다면, 자연(그리고 자연과 같은 시스템)은 불멸의 유기체 내에서의 다양성이 아니라 유기체 간의 다양성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문명사학자를 만나면, 이 이야기를 전해주길 바란다. 진화가 무작위성과 가변성으로부터 혜택을 얻는 방법을 살펴보자(물론 얼마간의 혜택이다). 시스템 내에서, 멸종을 불러오는 극단적인 충격이 아닌 어느 정도의 잡음과 동요가 빈번할수록 적자생존과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의 효과는 다음 세대의 특징을 규정짓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한다. 어떤 유기체가 10개의 자손을 번식한다고 하자. 환경이 완벽하게 안정적이라면 10개 모두 번식할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이 불안정하여 10개의 자손 중 5개를 밀어낸다면(대체로 약한 자손을 밀어낸다), 결국 더 나은 자손들만 번식하고 생존에 적합한 유전자가 남게 된다. 마찬가지로 유전자 코드의 잘못된 복제로 간헐적이고 무작위적이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돌연변이 덕분에 자손들 간 다양성이 존재한다면, 가장 좋은 자손이 번식하게 되어 종 전체의 생존 적합성이 향상된다. 따라서 진화는 돌연변이의 무작위성과 환경의 무작위성으로부터 혜택을 얻는다. 이 두 가지 작용은 살아남은 다음 세대의 특징을 비슷한 방식으로 변화시킨다.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해 종 전체가 사라지더라도 대단한 일은 아니다. 이것은 게임의 한 부분일 뿐이다. 살아남은 가장 적합한 종들이 멸종된 공룡의 자리를 계승했듯이, 이것 역시 진화다. 진화는 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이 주는 서비스에 관한 이야기다. 따라서 호르메시스는 개별 유기체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직접적인 손상으로부터 혜택을 받는 상황에 해당되지만, 진화는 손상이 개별 유기체를 사라지게 하고 혜택이 다른 유기체(살아남은 유기체와 미래의 세대)에게 이전되는 때 나타난다. 진화의 경우, 계급적으로 우월한 유기체가 손상으로부터 혜택을 받는다. 외부에서 보면 호르메시스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 보면 승자와 패자가 있다. === 실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제 누군가의 실패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혜택이 되는지 살펴보자. 우리는 프래질, 실패, 안티프래질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만들 수 있다. 당신이 프래질하면, 정밀하게 계획된 프로세스에서 최대한 이탈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탈은 도움이 되기보다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프래질은 예측 가능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역으로 말해, 예측 가능한 시스템은 프래질을 초래한다. 만약 이탈을 원한다면, 당신은 미래에 발생 가능한 결과의 분포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결과가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당신은 안티프래질한 사람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실패가 남아 있는 사람에게 혜택이 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스트레스가 정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안티프래질하려면 실패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혜택보다 작아야 한다. 물론 여기서 실패는 모든 실패가 아니라 일부 실패를 의미한다. 시스템을 파괴하지 않는 한 실패는 더 큰 재앙을 예방한다. 공학자이자 공학사학자 헨리 페트로스키Henry Petroski는 명쾌한 지적을 했는데, 타이타닉호가 그처럼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대형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더 큰 선박을 건조했을 것이고, 이후 나타나는 재앙은 훨씬 더 비극적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죽은 사람들은 더 큰 이익을 위해서 희생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들이 더 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타이타닉호 이야기는 시스템의 이익과 개별적인 부분에서 발생하는 손실 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은 (붕괴 가능성은 낮더라도) 원자로의 문제점을 깨닫고 더 큰 재앙에 대비하도록 해준다(당시 스트레스 테스트는 형식적이었고 리스크 모델은 확실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어느 누구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경제위기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시스템은 안티프래질하고 작은 실패를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는 그렇지 않다. 경제 시스템은 프래질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비행기는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어느 한 비행기의 사고는 다른 비행기의 사고와 연관되지 않는다. 따라서 실패는 그 범위가 한정되고 인식이 가능하다. 반면, 세계 경제 시스템은 하나가 되어 움직이므로 실패는 확산되고 증폭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전체가 아닌 부분의 실패를 이야기하고 있다. 종말을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은 작은 실패 말이다. 이는 좋은 시스템과 나쁜 시스템을 구분할 수 있게 한다. 항공 산업과 같은 좋은 시스템은 실패가 미래의 실패 가능성을 낮추는 부의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작은 실패들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까지 나는 주변 환경은 항공 산업처럼 안티프래질할 수도 있고, ‘세계는 평평하다’는 말처럼 서로 연관성을 갖는 현대 경제처럼 프래질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모든 비행기 사고가 다음 사고의 발생 가능성을 줄이는 반면, 모든 금융위기는 다음 위기의 가능성을 높인다. 이상적인 사회경제 시스템을 구축할 때 전염성이 강한 두 번째 유형의 실패를 없애야 한다. 이제 대자연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해보자. 자연스러움은 오직 자연발생적인 실패에서 얻어진다.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다가 실패하면 작은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러면 다음에 다시 한번 들어 올릴 때에는 이런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이것이 바로 고통의 목적이다). 표범은 마치 자연의 교향곡처럼 우아하게 움직인다. 사슴을 나무 위로 끌어올릴 때에는 가르침을 받아서 미리 정해진 동작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테니스, 볼링, 사격처럼 인위적인 스포츠 경기를 할 때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동작을 할 때에는 훈련이 필요하지 않다. 어떤 사업은 실패를 좋아한다. 보험 회사들은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재앙에 가까운 리스크를 보장해주는 재보험에 가입한다. 재보험 회사들은 실현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타격을 주는 재난이 발생하고 나면 성장한다. 이런 재보험 회사들이 만일을 대비해 준비를 철저히 한 덕분에 재난이 발생한 후에도 계속 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면, 위험에 과잉반응하는 고객들을 상대로 엄청나게 높은 보험료를 부과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재보험 회사들은 재보험에 관한 공정 가격, 즉 적정 가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가격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고, 덕분에 오랫동안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실패를 작게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실패를 한 후 새로운 정보를 얻거나 그 이유를 찾기보다, 자기 반성을 하지 않고 실패를 활용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당혹스럽고 방어적인 자세만 취하는 사람을 패배자loser로 규정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자신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나 나쁜 상사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인다. 실패를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은 실패를 겪어보지 않았던 사람에 비해 믿음이 더 간다. 또 실패(똑같은 실패는 아니다)를 여러 번 겪어본 사람은 실패를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믿음이 간다. === 집단은 왜 개인을 싫어하는가 === 경제가 안티프래질해지고 진화하려면 모든 개별 기업은 필연적으로 프래질해야 한다. 진화에서는 발전을 이룩하고 적절하지 않은 개체의 재생산을 방지하기 위해, 경쟁에서 진 유기체(혹은 유전자)는 사라져야 한다. 따라서 강한 자의 안티프래질은 약한 자의 프래질과 희생을 요구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메이커를 사용해 카푸치노를 마실 때마다 우리는 실패한 커피 메이커 사업가의 프래질로부터 혜택을 받는다. 그가 실패한 덕분에 우리 식탁에는 우수한 제품이 놓이게 되는 것이다. 또 전통 사회를 생각해보라. 그곳에도 현대 사회와 비슷한 계층이 존재한다. 즉 개인, 직계가족, 확대가족, 부족,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 있다. 개미 집단에는 희생이 일반적인 양식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개별 기업가들은 전체 경제를 위한 희생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그들은 안티프래질이나 최소한 자신의 강건함을 추구하는 데 큰 관심을 갖는다. 그것이 집단, 즉 전체 경제의 이익과 반드시 양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문제는 집단의 이익이 개별 구성원들의 이익과 다르다는 데서 발생한다. 실제로 집단은 개별 구성원들에게 손해를 요구한다. 이런 무자비성이 발전을 위한 동력이라는 것이 상당히 유감스럽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모두를 즐겁게 하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가장 약한 자에게 미치는 손실을 줄이는 방법은 있다. 레스토랑 주인들은 자신은 파산하지 않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레스토랑이 파산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성업 중인 레스토랑들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리스크를 성급하게 수용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부르기도 하지만, 경제 전체로 봐서는 바람직한 것이다. 모두가 같은 리스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런 리스크가 작고 국지적인 상황에서는 말이다. ===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다른 사람을 죽인다 === 우리는 실제로 개인의 희생으로 발생하는 안티프래질을 시스템의 안티프래질이 아니라 개인의 안티프래질이라고 오인할 수 있다(호르메시스와 선택의 차이를 생각하라).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것은 미트리다티제이션 혹은 호르메시스를 의미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될 수 있다. 물론 미트리다티제이션이나 호르메시스 중 하나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내가 살아남았다. 하지만 약한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전체 집단은 평균적으로 더 강해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생존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때로 우리는 생존 시험에서 살아남은 집단이 원래의 집단보다 더 강해졌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시험이 그들로 하여금 더 강해지도록 만들었고 착각한다. 생존 시험은 떨어진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시험에 불과하다. 사실 우리가 본 것은 개인의 프래질을 바탕으로 집단이 안티프래질해진 것이 전부다. 이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살아남은 집단은 약한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원래의 집단보다 분명히 더 강하다. 그러나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시스템이 발전하려면 누군가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나는 진정한 이상주의자로서 내가 지금까지 생각한 내용들을 싫어한다해도, 희망은 있다고 본다. 영웅적 행동에 대한 존중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에게 사회가 주는 보상이다. 그리고 기업가 정신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웅적 행동으로써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심지어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전사한 군인을 존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사자만큼은 아니지만, 실패한 기업가도 같은 논리에 입각해 존경해야 한다(특히 일본에서 실패한 기업가들은 살아 있기는 하지만, 심정적으로 아주 힘들고 사회적으로도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더라면 성공한 요리사, 사이비 철학자, 시사 해설가, 컨설턴트, 로비스트, 경영학 교수가 될 수 없듯이, 생사 여부와 상관없이 용감하게 싸웠다면 실패한 군인이란 없고, 마찬가지 이유로 실패한 기업가, 실패한 과학자도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유감스럽다. = 04권 옵션의 특징, 기술, 안티프래질적 특성을 지닌 지능 = 이제 혁신, 옵션Option과 옵션의 특징Optionality을 설명하겠다. 어떻게 하면 헤아릴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그곳을 완전히 지배하고 정복할 것인가?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과거에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며, 성공했던 사람들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환상을 목적론적 오류라고 부르자. 합리적인 산책가는 여행가와 달리 일정을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네로의 여행에서 보았듯이,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장소에 동화될 수 있다. 때로는 장소가 주는 분위기에 이끌리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계획의 포로가 아니다. 여행가는 목적론적 오류에 빠져들 수 있다. 계획의 완벽함을 가정하고 자신을 수정 불가능한 프로그램에 가두어버린다. 반면, 산책가는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서 자신의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 가지 경고하고 싶은 것은 산책이 갖는 편의주의opportunism는 인생과 사업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생활이나 다른 사람이 관련된 문제에서는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편의주의의 반대는 충성이다. 그것은 숭고한 의미를 갖지만, 인간관계나 도덕적 의무처럼 옳은 곳에서 발휘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기를 원하는지, 어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혹은 더 나쁘게 내일 무엇을 원하게 될지 묻지 말라. IT 기업가였던 스티브 잡스의 장점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데 바탕을 둔 시장 연구와 포커스 그룹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의 상상력을 따랐다는 데 있다. 잡스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줄 때까지 사람들은 스스로 그것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동의 과정으로부터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옵션option이라고 한다. 4권에서는 이런 옵션과 옵션의 특징optionality을 다룬다. 옵션의 특징은 우리를 여러 장소로 안내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옵션이 당신을 안티프래질하게 해주고, 불확실성의 부정적인 측면으로부터 심각한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긍정적인 측면으로부터 혜택을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옵션은 어떤 대상에 영향을 끼쳐서 성장하게 만드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특정 유형의 사람들에게만 이러한 특징이 적용된다.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자산은 리스크를 수용하고 옵션의 특징을 활용하는 데 있는데, 이는 시행착오를 합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다. 미국인들은 실패를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일본인들은 실패를 수치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경제가 되었든 원자력 발전이 되었든 리스크를 숨기려고 한다. 4권에서는 이런 생각을 자연적인 결론으로 이끌어간다. 그리고 위대한 자산은 우리가 가장 신뢰하지 않는 것, 즉 리스크 수용 시스템에 내재된 안티프래질이라는 근거를 중세 건축에서부터 시작해 의학, 공학, 혁신 분야에 걸쳐 다양하게 제시할 것이다. == 12장 탈레스의 달콤한 포도 == 철학자 탈레스는 페니키아 혈통으로서 소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의 해안 도시 밀레투스에서 살았다. ... 철학자 탈레스는 아주 가난했다. 그는 교역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자신에게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사업을 하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철학을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싫었다. 마침내 탈레스는 대담하게도, 밀레투스와 키오스 주변의 모든 올리브 압착기를 저렴한 비용으로 언제든지 빌릴 수 있는 권리를 계약했다. 실제로 대풍년이 들어서 올리브 압착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탈레스는 압착기 주인에게 빌린 것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압착기를 빌려주었다. 탈레스는 이 거래로 큰돈을 벌어들이고 나서 다시 철학자로 되돌아왔다. 탈레스의 이야기는 많은 교훈을 주는데, 이런 교훈은 주로 비대칭성과 안티프래질한 보상 구조와 관련이 있다. 탈레스는 자신의 부족한 지식과 비대칭성에 숨어 있는 특징을 활용하려는 입장을 취했다. 이런 상승국면과 하강국면 간의 비대칭성은 그가 별자리를 보면서 너무 많은 정보를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말해준다. 간단히 말해서, 탈레스는 비대칭성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가장 순수한 형태의 명쾌한 비대칭성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구매자가 권한은 갖지만 의무는 갖지 않는 옵션이었다. 물론 상대방(즉 판매자)은 의무를 갖지만 권한은 갖지 않는다. 탈레스는 수요가 급증할 때 올리브 압착기를 사용할 권한을 가졌지만 의무는 갖지 않았다. 반면에 상대방은 의무는 가졌지만 권한을 갖지 않았다. 탈레스는 이런 권한에 대해 얼마 안 되는 가격을 지불했는데, 실현 가능한 엄청난 이익을 감안하면 얼마 안 되는 손실이었다. 이것이 기록상으로는 첫 번째 옵션이었다. 옵션은 안티프래질로 안내해준다. === 옵션과 비대칭성 === 10장에서 ‘안티프래질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하강국면보다 상승국면에 더 많이 있고, 비대칭성을 띠는 것과 무작위성을 좋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틀렸을 때 잃는 돈보다 옳았을 때 버는 돈이 더 많다면, 결국 무작위성으로부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그 반대도 성립한다). 옵션에 대해 너무 많은 돈을 지불했을 때만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나 탈레스의 경우 분명히 훌륭한 거래를 했다고 여겨지는데, 우리는 4권에서 자연이 주거나 기술 혁신이 주는 옵션에 대해서는 그 가격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옵션은 공짜이거나 최악의 경우라 하더라도 값이 싸다. 중요한 사실은, 유리하게 작용하는 비대칭성을 띠는 옵션을 싸게 구매할 때는 모든 정보를 자세히 알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이런 특징은 싸게 구매한다는 사실을 훨씬 뛰어넘어서, 우리가 우위를 지닐 때에는 상황의 흐름을 자세히 알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옵션의 특징에서 비롯되는 우위는 우리가 옳았을 때 더 많은 보상을 얻게 해주며, 따라서 너무 자주 옳아야 할 필요가 없게 해준다. 지금 내가 말하는 옵션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옵션과 다르지 않다.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하는 리조트 시설은 그렇지 않은 시설보다 고객의 취향을 만족시켜줄 행사를 제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우리는 선택의 범위가 넓은 리조트 시설에 관해 많은 정보나 지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탈레스의 이야기에는 또 다른 숨은 옵션이 있다. 재정적 독립을 현명하게 활용했을 때에는 옵션을 제공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므로 강건해질 수 있다. 자유는 최고의 옵션이다. 게다가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오지 않으면, 자신의 진정한 선호를 결코 알지 못한다. 인생의 무작위성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처음에 가졌던 소망과 달리 가난하게 산다. 그들은 가난이 자신의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안티프래질해지지 않고 기껏해야 강건해지려고 한다. 마치 옵션이라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일부는 그런 가식이 없다. 그들은 실제로 옵션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직접 그것을 만들어냈다. 이솝 우화에도 나오듯, 자신이 다다를 수 없는 포도는 맛이 시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나는 파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좋아한다. 파티에 가는 것은 옵션의 특징을 지닌다. 아마도 불확실성으로부터 잃는 것은 별로 없으면서 얻는 것이 많은 일을 찾는 사람에게 가장 권장할 만한 일일 것이다. 그다지 가깝지 않은 한 친구가 내가 근처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켄싱턴에서의 파티에 나를 초대했다. 하지만 ‘오고 싶으면 오라는 식’으로, 꼭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의무가 아니라 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꼭 얻으려고 애쓰지 않았기 때문에 비용이 들지 않는 옵션이었다. 그래서 약간의 하강국면을 가지면서, 아니 하강국면은 전혀 가지지 않으면서 커다란 상승국면을 가졌다. 이것이 바로 권한에 대해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공짜 옵션이다. 두 번째 예로, 당신이 뉴욕에 있는 어느 아파트에서 월세를 내고 산다고 하자. 당신은 원하는 기간 동안 그 아파트에 거주할 옵션을 갖고 있지만 거주해야 할 의무는 없다. 갑자기 몽골의 울란바토르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면, 미리 정해진 기간 전에 주인에게 통지하고 잘 지내라는 인사만 하면 된다. 반면, 주인은 당신에게 일정한 월세를 받고 그곳에 당신이 원하는 만큼 살게 해줄 의무가 있다. 주변 지역의 월세가 크게 오르고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끼더라도 당신은 계약 기간 동안만큼은 보호받는다. 반면, 월세가 떨어지면 당신은 다른 아파트로 옮겨서 월세 지출을 줄일 수 있고,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새 아파트를 사고 월 납부금을 낮출 수도 있다. 이제 비대칭성을 생각해보자. 당신은 낮은 월세로부터 혜택을 얻을 수 있지만, 높은 월세로부터는 피해를 입지 않는다. 왜 그럴까? 다시 말해서, 당신은 옵션을 갖지만 의무는 갖지 않는다. 한편으로 불확실성은 이런 권한의 가치를 높인다.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지거나 크게 올라가는 식으로 미래의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 당신의 옵션 가치는 더욱 커진다. 즉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수록 옵션의 가치도 높아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월세 계약은 권한에 따르는 비용이 없으므로 이미 숨어 있는 옵션embedded option이다. {{attachment:antifragile-202305291317.jpg}} 옵션의 한 가지 특징은 평균적인 결과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일정 수준을 넘어가는 하강국면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바람직한 결과만 생각하면 된다. 작가, 예술가, 철학자들은 열광적인 소수의 팬만 있으면 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 책을 구매하는 것과 반대의 상황이나 축구 경기에서 점수를 잃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처럼 책의 판매에 부의 영역negative domain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작가에게 옵션을 제공해준다. 책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치학이든 예술이든 당신의 사상이나 작품에 대해 100%가 인정하거나 가벼운 찬사를 보내는 것보다, 다수는 당신의 메시지를 싫어하지만 또 다른 소수는 매우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더 낫다(즉 안티프래질하다). 옵션은 결과가 분산되어 있는 것을 좋아하고 평균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해준다. 경제 성장은 아시아의 방식으로 평균을 올리는 데서가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려는 꼬리 부분의 극소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늘리는 데서 나온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상상력과 용기라는 보기 드문 자질을 지녔으며, 결국 세상은 이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 탈레스주의자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 === 나는 8장에서 블랙 스완을 설명하면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은 행위의 결과, 즉 보상에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보상은 비대칭성과 비선형성을 지닐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옳고 그름에 관심을 가졌다. 다시 말해서, 가공되지 않은 논리에 관심을 가졌다. 또 옳고 그름이 교차하는 경우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적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로 축에 표시된 미래의 수확량 혹은 올리브 압착기의 임대료처럼 사건에 대한 지식과 세로 축에 표시된 사건으로부터의 이익 실현을 서로 같은 대상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래프에서 명백하게 알 수 있듯이, 비대칭성 때문에 이 두 가지는 서로 같은 대상이 될 수 없다. 14장에서 뚱보 토니가 다시 한 번 강조하겠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대상이다. 당신이 옵션을 가지고 있으면 지능, 지식, 통찰력, 기술 등 뇌세포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움직임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다. 당신의 선택이 항상 옳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을 때 자신에게 해롭지 않도록 하고, 바람직한 결과가 발생했을 때에는 이를 인식할 줄 아는 지혜만 있으면 된다. 프랑스의 위대한 생물학자 프랑수아 자코브François Jacob는 자연에 존재하는 옵션의 개념 또는 옵션과 같은 특징을 과학에 도입했는데, 이런 옵션은 프랑스어로 브리콜라주bricolage에서 일어날 법한 시행착오 덕분에 나타난다. 브리콜라주는 버려질 만한 재활용품을 가지고 시행착오를 거쳐 미술품을 만들어내는 창작 활동을 말한다. 자코브는 자연은 태내에서도 선택하는 방법을 안다고 주장했다. 모든 배아의 절반 정도는 자연 유산으로 이어지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청사진에 따라 완전한 태아를 만들어가는 것보다 더 쉽다. 자연은 자신의 기준을 충족하는 것을 보존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처럼 일찍 포기한다. 자연은 옵션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활용한다. 자연은 옵션의 효과를 인간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한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보다도 확실히 더 잘 이해한다. 자연이 하는 모든 일은 옵션을 활용하는 것이다. 자연은 옵션이 지능을 어떻게 대체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제 손실은 작지만 커다란 이익을 주는 시행착오를 ‘팅커링tinkering’이라고 부르자. 볼록성은 이런 정의 비대칭성positive asymmetry을 의미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18장에서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attachment:antifragile 2023-05-29 132851.jpg}} 그림 7에 나오는 그래프는 실리콘 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잘 보여준다. 스티브 잡스는 “항상 갈구하라, 우직한 바보가 되라.”고 했다. 이는 ‘일에 미쳐라. 그러나 상계Upper Bound를 판단하고 정할 때에는 합리성을 유지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어떤 시행착오라도 바람직한 결과를 확인하고 이를 활용할 능력이 있는 한 그것은 옵션의 표현으로 간주된다. 옵션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표시할 수 있다. 옵션 = 비대칭성 + 합리성 여기서 합리성은 이익을 얻기 위해 좋은 것을 유지하고 나쁜 것은 버린다는 의미다. 앞에서 말했지만, 자연은 좋은 태아를 얻기 위해 나쁜 태아를 버린다. 안티프래질과 프래질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래질한 것은 옵션이 없다. 그러나 안티프래질한 것은 가장 좋은 옵션을 가지고 있다. 자연의 가장 놀라운 특성은 진화와 연관된 시험 과정에서 옵션을 활용하여 스스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합리성이다. 자연은 다른 무엇인가를 하기를 두려워하는 연구자와 달리 옵션, 즉 비대칭성을 확인한다. 따라서 자연은 단계적으로 발전한다. 경로 의존성에서 설명했듯이, 생물학적 시스템은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에 도달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합리성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이전보다 더 나은 것을 거부하지 않는 데에 있다. 인간과 지식인들은 옵션에 무지하다는 사실이 불현듯 스친다. 다음 꼭지에서 살펴보겠지만, 옵션은 훤히 보이는 곳에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해보자. 10장에서는 세네카를 통해 상승국면이 하강국면보다 더 많이 나타난다는 비대칭성을 살펴보았다. 이번 장에서는 이런 논점을 더욱 정교하게 표현하고, 사람들이 원하면 상승국면을 수용하고 하강국면을 수용하지 않을 수 있는 옵션의 형태로 비대칭성을 설명했다. 따라서 옵션은 안티프래질을 달성하기 위한 무기다. 4권에서는 옵션이 지식을 대체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실제로 나는 지식이 모호하고 무익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우리가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지식이 아니라, 주로 탈레스에 의해 그리고 자연에 의해 잘 사용되는 옵션에서 나온다는 대담한 추론을 한다. 이런 추론의 의미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육이 부의 결과가 아니라 부가 교육의 결과라고 생각하거나 지적인 행위와 발견이 지적인 아이디어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 놀라운 일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 13장 새에게 날아가는 법을 가르치다 == 우리에게는 상상력이 얼마나 부족했던가? 그 동안 바퀴가 달린 카트 위에 여행용 가방을 얹어 놓고 다니면서 어느 누구도 가방에 직접 작은 바퀴를 달 생각은 하지 못했다. 미래를 전망하지 않고 과거를 돌이켜보면 기술은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보통 머리 손질을 하지 않고 사는 똑똑한 지성들은 괴텔Gödel, 리만의 추측Riemann’s Conjecture, 쿼크 입자quark 등을 논의하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간다. 그들은 여행 가방을 끌면서 공항 터미널을 빠져나가는 동안, 그 좋은 머리를 가지고 하찮은 수송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자 집단은 단순한 문제를 해결한 사람보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그 똑똑한 지성들이 하찮은 문제 해결에 자신의 두뇌를 넘칠 정도로 활용했더라도 아마 그들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인간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방법에 관해서 말해준다. 인간은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래에 무엇이 중요한지 잘 모른다. 결국 무작위성을 활용하여 발견한 것을 하나하나 배운다. 이것이 바로 안티프래질이 필요한 이유다. 같은 이야기가 증기기관에도 적용된다. 그리스인들은 원시적 형태의 증기기관을 만들어냈는데, 물론 오락용이었다. 헤론Hero of Alexandria이 증기의 힘으로 회전하는 아이올리스의 공aeolipyle을 발명했지만, 이런 발명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나서야 널리 알려졌다. 위대한 천재들이 앞서 간 사람들의 업적을 발견했듯이, 실제로 혁신은 이론적으로 먼저 앞서 있던 조상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발견과 실행의 과정에는 은밀하게 작용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통 진화라고 부른다. 진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우연한 변화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람은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사물이 갖는 옵션의 특징을 인식하는 몇 안 되는 현인들을 제외하고는 상상력이 부족하다. 안티프래질을 두 차례 투여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무작위성이 필요하다. 이런 무작위성은 발견과 실행이라는 두 단계에서 역할을 수행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의 역할은, 비록 발견의 과정에서 우연의 역할이 과소평가되기는 하지만, 크게 놀랍지는 않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에서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나는 평생이 걸렸다. 실행은 반드시 발견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실행은 행운과 우연을 요구한다. 의약품의 역사를 보면, 치료제의 발견이 이상한 순서로 흐트러져 있으며 이런 발견이 있고 나서 한참 뒤에야 실행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실행과 발견이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말이다. 실행은 발견보다 훨씬 더 어렵다. 시장에 무엇인가를 내놓는 것만 보더라도 우리는 수많은 반대자, 행정가, 공허한 정장 차림의 관리자, 형식주의자, 산더미 같은 서류들과 씨름해야 하고 때로는 좌절감을 느껴야 한다. 다시 말해, 옵션이 관여되는 일이지만 이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바로 당신이 손에 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일이다. 도자기 컵을 보면서 프래질을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자명하지만 실제로는 깨닫기가 어렵다), 여행용 가방의 사례는 나를 놀리듯이 괴롭혔다. 발견이 간단하고 자명할수록 복잡한 수단을 가지고 그것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실행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 지금 우리를 바라보면서 비웃고 있는 하찮을 정도로 간단한 발견은 수없이 많다. 합리성에 관한 설명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 이전에 가졌던 것보다 더 낫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점을 알았다. 다시 말하면, 옵션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옵션의 행사는 이전보다 더 나은 가치가 있는 대안을 받아들여 이익을 취한다는 의미로, 바로 여기서 합리성이 요구된다). 그리고 기술의 역사에서 볼 때, 안티프래질에 의해 갖게 된 옵션 활용 능력은 확실하지 않다. 발견된 것들은 우리를 오랫동안 쳐다본다. 우리는 바퀴와 바퀴를 사용하는 것 간의 격차를 보았다. 의학 연구자들은 이런 지연을 ‘중개 격차translational gap’라고 한다. 이 말은 콘토포우로스 이온니디스Contopoulos-Ioannidis의 연구진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으며, 발견에서 첫 번째 실행까지의 시차를 의미한다. 또 이런 시차는 지나친 잡음과 학문적 이해관계 때문에 나타나며, 현대에 와서는 더욱 길어지고 있다. 시행착오는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옵션의 특징 때문에 시행착오는 실제로 무작위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의 합리성을 요구한다. 따라서 바람직한 결과를 인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완전히 무작위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합리성을 지녀야 한다. 예를 들어, 시행착오를 거쳐 거실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찾을 때에는 같은 장소를 두 번 확인하지 않는 합리성을 발휘할 수 있다. 여러 장소를 뒤지면서 찾고 실패하는 과정을 거쳐 추가적인 정보, 즉 어디에는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새로운 정보는 이전의 정보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갖는다. 매번 시도할수록 찾으려는 무엇인가에 가깝게 다가가면서, 그것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실패했던 시도를 통해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점진적으로 알아간다. 오랜 세월 동안 심해에 침몰되어 있던 난파선을 끌어올리는 인양 전문가 그레그 스템Greg Stemm이 개발한 절차가 시행착오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스템의 방법은 이러했다. 그는 난파선이 있을 만한 위치를 광범위하게 분석한다. 이때 얻는 데이터는 구역별로 확률을 표시한 지도에 종합해 나타낸다. 확률이 더 낮은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먼저 탐사했던 지역에는 난파선이 분명히 없다는 확신을 하면서 그 다음 탐사 지역을 정한다. 무작위적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집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탐사는 성과를 낼 확률이 순차적으로 높아진다. 물론 이미 탐사했던 지역에 지갑이 없다는 확신을 가질 때 그렇다. 나는 6장에서 무작위적인 땅 파기가 다른 탐사법보다 더 우월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처럼 옵션의 특징을 활용한 탐사 방법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무작위적이지는 않다. 이 방법은 옵션을 활용해 무작위성을 잘 길들여 더 나은 성과를 얻도록 해준다. 시행착오를 일반화하는 논점에서 사소한 부분인 착오를 이해했지만, 12장에서 옵션의 특징이라고 했던 비대칭성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 중에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있었다. 그는 시스템의 개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파괴할 필요가 있다고 했고, 이를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불렀다. 17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가 이 개념을 발전시킨 반면, 이 개념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니체였다. 그러나 슘페터의 저작을 보면 그가 불확실성과 불투명성의 관점에서 생각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디시어 속담에 ‘학생들이 똑똑하면 교사가 칭찬을 받는다.’는 말이 있다. 기여에 관한 이런 잘못된 환상은 주로 ‘확증의 오류confirmation fallacy’에서 비롯된다. 역사는 승자가 되었든 패자가 되었든 간에 그것을 기록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슬픈 사실과 함께 두 번째 오류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확증의 오류다. 이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확증적인 사실(즉 얻어낸 사실)을 전달해줄 수 있지만,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실패했는가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전달해주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에이즈 치료제나 여타 치료제 개발처럼 유도된 연구는 연구비로부터 무엇을 얻었는지 말해주지만, 무엇을 실패했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무작위적인 결과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얻었다는 인상을 준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대안적 프로세스의 가능성 혹은 이런 프로세스의 역할에 대해 무지하다. 무작위적인 팅커링(안티프래질) → 발견적 학습(기술) → 실행과 견습 → 무작위적인 팅커링(안티프래질) → 발견적 학습(기술) 실행과 견습 비슷하게는 다음 연결고리도 생각해볼 수 있다. 실행 → 학문적 이론 → 학문적 이론 → 학문적 이론 → 학문적 이론…… (물론 일부 예외나 우연적인 유출도 있다. 그러나 이런 예외는 드물지만 지나칠 정도로 과장되고 일반화되고 있다). === 부수 현상 === 우리는 부수 현상을 문화적 담론의 형식으로 파헤쳐볼 수 있으며, 사건의 순서를 관찰하고 어떤 사건이 다른 사건에 항상 선행하는지를 의식적으로 확인하는 방식으로도 파헤쳐볼 수 있다. 후자가 바로 지금은 고인이 된 노벨 경제학상(스웨덴은행Sveriges Riksbank이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을 기리기 위해 많은 프래질리스타에게 주는 상이다) 수상자 클라이브 그랜저Clive Granger가 제안했던 세련된 방법이다. 사실 그랜저 교수 자신도 상당히 세련된 신사였다. 사건의 순서를 관찰하는 이 방법은 과학철학자들이 인과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과학적으로 엄격하고도 유일한 테크닉으로서 ‘그랜저 코즈Granger cause’라고도 불린다. 부수적인 상황에서는 A와 B를 동시에 관찰하게 된다. 그러나 A와 B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 발생했는지 살펴보려면, 시간 차원time dimension을 도입하여 분석을 세련되게 만들고, 증거를 분석해서 A가 정말 B의 원인이 되는지 확인하면 된다. 게다가 그랜저는 단지 A와 B의 수준이 아니라 A와 B의 변화를 분석하려는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졌다. 나는 그랜저의 방법이 A가 B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게 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된 인과관계를 밝히는 데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고 ‘B가 A의 원인이라는 진술은 잘못되었다.’ 혹은 ‘사건의 순서 측면에서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14장 두 가지가 서로 같은 대상이 아닐 때 == 세네카와 오비디우스가 정교함은 필요의 산물이고, 어려움에서 성공이 비롯된다는 의미로 말했던 문장을 기억해보자. 사실 중세에는 에라스무스가 말했던 ‘필요는 발견의 어머니necessitas magistra’를 비롯해 이런 인용 어구와 비슷한 표현들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가장 적합하게는 퍼블릴리어스 사이러스가 말했던 ‘가난은 소중한 경험이다.’라는 표현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구와 여기에 담긴 생각은 에우리피데스Euripides, 가짜 테오크티투스Pseudo-Theoctitus, 플라우투스Plautus, 아풀레우스Apuleus, 제노비오Zenobius, 유베날리스Juvenal와 같은 여러 고전 작가의 글에도 많이 나온다. 물론 이런 내용이 오늘날에는 ‘외상후 성장’으로 불린다. 나는 고대 사람들의 지혜가 지금 아부다비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정확하게 반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어난 레반트 지역의 아미운Amioun 마을 사람들은 전쟁으로 인한 약탈로 그곳을 떠나 전 세계로 흩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25년이 지나자 그곳은 놀랄 만큼 회복되어 부자 마을이 되었다. 내가 살던 집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되었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큰 건물이 들어섰다. 아버지는 엄청나게 늘어난 마을 저택의 졸부들을 가리키면서 한탄하셨다. 그리고는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도 여기에 있었더라면, 아마 저런 놈팡이가 되었을 거야. 우리 아미운 사람들은 흔들려야 잘한다.” 바로 안티프래질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 생목의 오류 === 융 부문을 다루는 책 중에서 보기 드물게 진실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으로 『나는 백만 달러를 잃고 무엇을 배웠나What I Learned Losing a Million Dollars』가 있는데, 이 책에서 주인공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전해준다. 그는 생목green lumber을 취급해 크게 성공한 조 시겔Joe Siegel이라는 트레이더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조 시겔이 생목을 초록색 칠을 한 목재로 생각했다는 말을 전한다(여기서 그린green은 건조하기 전, 갓 베어낸 목재의 상태를 의미한다). 조 시겔은 바로 이런 생목을 거래하는 일을 했던 것이다! 한편으로 주인공은 제품 가격의 변동과 파산의 원인에 관해 지적으로 담대한 이론과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여기서 성공한 목재 전문가가 ‘그린’처럼 중요한 사항의 의미를 몰랐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목재에 관해서는 비전문가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우리가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목재 주문의 흐름을 예측하고 보고하는 것은 비전문가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목재의 구체적인 생김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문답식 시험을 부과하지 않는다. 그들은 화술과 상관없는 잣대로 평가된다. 뛰어난 언변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진화는 화술이 아니라, 실적에 의존한다. 진화는 ‘파랑’이라는 색을 나타내는 단어를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제부터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다루기도, 설명하기도 쉽지 않은 다른 무엇인가를 꼭 필요한 지식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상황을 ‘생목의 오류’라고 부르자. 나는 경제학자에게 비쳐지는 가격과 현실은 서로 같은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렇게 배웠다. 하나는 다른 것의 기능을 할 수 있지만, 그 기능은 너무 복잡해 수학적으로 나타낼 수 없다. 이런 관계는 곳곳에서 옵션의 특징을 가지며, 문장으로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체득한 그 무엇인가를 의미한다. 당시 토니가 했던 말의 핵심은 이러했다. ‘쿠웨이트 전쟁과 석유는 서로 같은 대상이 아니다.’ 이 말은 우리가 통합Conflation(두 개 이상의 대상이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할 때 서로 같은 대상으로 인식해버리는 현상 - 옮긴이)의 개념을 이해하는 기반이 된다. 토니는 대단한 상승국면을 맞이했고, 그에게는 그게 다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정확하게 예측했지만 유가 하락으로 큰 손해를 보았다. 그들은 전쟁과 석유를 서로 같은 대상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석유 비축량은 엄청나게 늘어서 재고가 넘쳤다. 다시 말하지만, 전쟁 시나리오와 석유는 같은 대상이 아니다. 모두가 멋있는 분석을 내놓았지만 석유 가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이후 유가 하락으로 완패를 당하고 로스쿨로 갔다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렸다. 여기서 언변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과 함께 또 다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마음속으로 복잡한 계산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놓친다. 현실 세계의 사람들은 이런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놓치게 되면, 대형 사고로 연결된다. 그들은 연구자들과 달리 복잡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경쟁한다. 따라서 단순한 것이 더 낫다는 원칙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많이 연구할수록, 명백하고 기본적인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 행동은 대상을 가장 단순한 모델로 옮겨 놓는다. === 통합 ===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같은 대상이 아니다. 이제 통합의 의미를 일반화시켜보자. ‘같은 대상이 아니다.’라는 교훈은 상당히 보편적이다. 당신이 옵션을 가지고 있거나 안티프래질하거나 커다란 상승국면과 작은 하강국면을 지닌 기회를 확인할 수 있다면, 당신의 행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당신에게 기대했던 행동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지게 된다. 무엇인가(여기서는 인식, 아이디어, 이론)가 있고, 이런 무엇인가의 작용(여기서는 가격, 현실, 현실적인 것)이 있다. 이때 통합의 문제는 이런 무엇인가의 작용은 다른 특징을 갖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나타난다. 무엇인가와 무엇인가의 작용 간의 비대칭성이 커질수록 둘 사이의 차이도 더욱 커진다. 결국 이들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된다. 이 이야기는 사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늘 그렇듯이 과학(사회과학이 아닌 똑똑한 과학)에서는 이런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통합의 문제를 피해간 사람이 바로 위대한 수학자 짐 시몬스Jim Simons였다. 그는 시장 간의 거래를 성사시켜주는 대단한 장치를 만들어 큰돈을 벌었다. 이 장치는 준블루칼라들의 매매 기법을 그대로 복제한 것으로서, 지구상 그 누구보다도 통계적으로 신뢰할 만하다. 그는 경제학자나 금융맨을 결코 고용하지 않고, 어떤 대상의 내부 논리를 이론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파악하기 위해서 패턴 인식을 수행할 수학자와 물리학자만 고용한다. 그는 경제학자들이 하는 말을 듣지도 않고, 그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읽지도 않는다. 위대한 경제학자 아리엘 루빈스타인Ariel Rubinstein은 생목의 오류를 인식한 사람이다. 사실 어떤 대상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는 데에는 대단한 지능과 정직함이 요구된다. 루빈스타인은 사고 실험으로 구성된 게임 이론의 대가로서, 전 세계의 카페에서 생각하고 글을 쓰는 탁월한 전문가다. 그는 이론이 현실 세계에 곧바로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경제학은 우화와도 같다. 우화 작가는 생각을 자극하고 실행에 간접적인 영감을 주는 사람이지, 실행을 독려하거나 결정하지는 않는다. 이론은 실행과 별개로 존재한다. 또한 학교에 있는 경제학자들을 끌고 와서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 앉히지 말아야 한다.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며, 경제학자들이 정책을 조언하는 자리에 있어서도 안 된다. 때로는 경제이론이 이치에 맞을 때가 있더라도 그 이론을 하향식으로 적용할 수는 없고, 유기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시행착오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리카도Ricardo 이후로 경제학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특화의 개념을 정책 담당자가 잘못 적용하면, 경제를 실패에 취약하도록 만들어서 국가를 붕괴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완충장치와 여분을 확보하면서 진화적인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접근한다면 효과가 있다. 말과 행동 사이의 차이(중요한 것이지만 쉽게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주로 옵션과 놓쳐버린 옵션에 있다. 여기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안티프래질한 보상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옵션을 배우려고 학교에 가지는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옵션에 까막눈이 되려면 학교로 가라. ===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 그리스 신화에는 타이탄 족 형제들이 나오는데 바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와 에피메테우스Epimetheus다. 프로메테우스는 ‘먼저 생각하는 자’를 의미하고 에피메테우스는 ‘나중에 생각하는 자’를 의미한다. 나중에 생각하는 에피메테우스는 사후적 이야기 구성 방식으로 이론을 과거의 사건에 맞추는 회고적 오류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다. 인간에게 불을 선사한 프로메테우스는 문명의 진보를 상징한다. 반면, 에피메테우스는 회고적 사고, 진부함, 지능의 결여를 상징한다. 돌이킬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받은 이가 바로 에피메테우스였다. 옵션은 프로메테우스와 관련 있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화술은 에피메테우스와 관련 있다. 전자는 돌이킬 수 있고 심각하지 않은 실패를 상징하지만, 후자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심각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상징한다. 당신은 편의주의opportunism와 옵션을 가지고 미래에 개입할 수 있다. 지금까지 4권에서는 옵션의 힘을 커다란 이익과 약간의 손실이라는 비대칭성에서 비롯되는 장점을 지니고서, 무엇인가를 편의주의적으로 행하는 선택적인 행동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옵션은 불확실성을 길들이고, 미래를 이해하지 않고서도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반면, 화술에 의존하는 것은 정확하게 그 반대다. 안타깝게도 불확실성에 의해 길들여지고 좌절하게 만든다. 단순히 과거에 비추어 미래를 바라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실행과 이론의 차이를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논점을 이해하기 어렵다. 요기 베라가 말했듯이, ‘이론적으로는 이론과 실행 간의 차이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식인들이 프래질과 관련되며, 팅커링과는 상반되는 방법을 심어준다는 주장을 살펴보았다. 또 옵션을 안티프래질의 표현으로 보았다. 우리는 지식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하나는 정규 교육에서 얻는 지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시행착오, 하강국면이 별로 없는 리스크 수용, 바벨 스타일의 탈지식화된 형태의 리스크 수용(혹은 자기만의 길을 가는 지식인)에 내재된 안티프래질의 특징을 갖춘 뚱보 토니 스타일의 지식이었다. 불투명한 세상에서는 두 번째 것만이 유용한 지식이다. 목적론과 옵션의 차이 ||'''화술에 근거한 지식'''||'''안티프래질, 옵션에서 나오는 팅커링, 시행착오'''||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변화에 프래질하거나 칠면조처럼 과거에 바탕을 두고 현재를 잘못 인식한다)||불확실성을 길들인다 (미지의 세계에 안티프래질하다)|| ||과거를 바라본다. 지나치게 과거에 맞추려고 한다.||미래를 바라본다.|| ||에피메테우스||프로메테우스|| ||목적론적 행위||편의주의적 행위|| ||여행가 스타일||산책가 스타일|| ||프래질, 어설픈 합리주의||강건한 합리주의|| ||심리적으로 편안하다.||심리적으로 불편하지만 흥분과 도전을 추구한다.|| ||오목성을 갖는다 (알려진 이익, 알려지지 않은 손실)||볼록성을 갖는다 (알려진 손실, 엄청난 이익)|| ||칠면조 문제에 빠져든다 (증거의 부재를 부재의 증거로 오인한다)||속아 넘어가는 사람. 칠면조 문제로부터 이익을 취한다.|| ||부수 현상과 생목의 오류에 빠져든다.||생목의 오류에서 빠져나온다.|| ||실험 과학과 물리학을 제외한 학계만의 메커니즘||실행의 주요 메커니즘|| ||화술은 책을 통해 얻은 지식에 바탕을 둔다.||화술은 도구다.|| ||이야기에 빠져든다||이야기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화술은 동기 부여에 불과하다.|| ||좁은 범위, 폐쇄적인 행동 공간||넓은 범위, 열린 행동 공간|| ||대상이 갖는 논리를 이해해야 한다.||이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더 나은 옵션을 행사하기 위해 두 가지 결과를 비교할 때 합리성을 유지해야 한다.|| ||철학자의 돌로부터 혜택을 얻지 못한다.||철학자의 돌에 의존한다.|| == 15장 패자가 쓰는 역사 == 우리는 몇 가지 공리에 기반을 둔 기하학을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Elements』과 같은 교과서를 통해 배운다. 그리고 이런 기하학 덕분에 오늘날 기하학적으로 아름다운 주택, 성당과 같은 빌딩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나는 고대 사람들이 팅커링과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유클리드 기하학적 방법 및 그 밖의 수학적 방법을 이미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수고스럽게 일부러 기하학과 수학을 가지고 골치를 썩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야기는 바퀴 이야기와 비슷하다. 또 증기기관을 처음 만든 사람들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2000년 전의 그리스인들이었다. 이런 예들은 이론이 아닌 실행을 통해 처음 탄생된 것들이다. 우리 주변의 건축물들을 살펴보자. 피라미드에서 유럽의 아름다운 성당에 이르기까지 이런 건축물들은 기하학적으로 정교하다. 따라서 우리는 피라미드와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수학이 이런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피라미드의 경우, 유클리드를 비롯한 그리스 수학자들이 등장하고 난 후 수학이 발전했을 때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앞서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다. 건축가들(혹은 우리가 장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경험에 바탕을 둔 방법 혹은 도구에 의존하지, 수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중세 과학사를 연구하는 기 보쥬앙Guy Beaujouan에 따르면, 13세기 이전 유럽 전역에서 나눗셈을 제대로 할 줄 아는 건축가가 겨우 5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수학적 정리도 없었고, 따라서 이에 대한 혐오감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 건축가들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방정식을 모르고도 건축 재료의 저항을 따져볼 줄 알았다. 그들이 건축한 건물들은 지금도 무너지지 않고 여전히 서 있다. 장인이 견습생에게 전하는 노하우 혹은 도제 방식으로만 전수되는 노하우가 있다. 학위는 선택 과정에서 필요하거나 높은 지위를 갖게 해주거나, 여기저기서 도움이 되긴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정규 지식을 갖춘 사람이 지나칠 정도로 많기 때문에 이런 지식의 역할은 과대평가될 것이다. 중국이 하향식 관료국가(이전의 이집트처럼 소비에트-하버드식 중앙집권 관리들이 지배하는 국가)가 되면서, 중국인들은 브리콜라주, 즉 시행착오를 거친 창작 활동에 대한 열망을 잃어버렸다. 이 문제에 관해 니덤의 전기 작가인 사이먼 윈체스터Simon Winchester가 중국학자 마크 엘빈Mark Elvin의 설명을 인용하는데, 엘빈은 중국에 ‘팅커링을 추구하는 유럽식 마니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인들은 방적기를 제작하기 위한 모든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다. 이것은 옵션의 활용을 방해하는 지식의 또 다른 사례가 된다. 그들은 대학 졸업장이 없는 스티브 잡스처럼 적극적인 기질을 가지고 이런 기술들을 당연한 귀결로 이끌어줄 만한 인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다음 꼭지에서 살펴보겠지만, 산업혁명을 일으켰던 사람들은 바로 잡스처럼 거리낌 없는 행동가들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산업혁명은 ‘기술을 직접 만드는 기술자’ 혹은 킬리가 말하는 ‘과학 애호가hobby science’에게서 나왔다. 무엇보다도 산업혁명을 구현했다고 일컬어지는 작품이 바로 증기기관이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헤론이 그 청사진을 훨씬 전에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론의 이론은 거의 2000년 동안 어느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따라서 실행과 재발견이 헤론의 청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원인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킬리는 증기기관이 기존의 기술에서 나왔고, 교육을 받지 않고 외골수로 사는 사람들이 눈앞에 놓인 기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적인 상식과 직관을 응용해 만든 것이며, 그 해결 방안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결실을 가져다 주었다는 아주 설득력 넘치는 주장을 펼쳤다. 호기심 위주의 블루 스카이Blue Sky 연구를 생각해보라. 이때 연구비는 프로젝트 단위가 아니라 인력 단위로 배분되어 연구원들에게 나누어 지급된다. 사회학자 스티브 샤핀Steve Shapin은 실리콘 밸리의 벤처 투자자들을 관찰하고는, 그들이 아이디어가 아니라 기업가를 보고 후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투자 결정은 주로 알려진 기업가인가 혹은 누가 벤처 투자자들의 전문 용어를 사용해 무슨 말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결국 말이 아니라 기수를 보고 베팅을 하는 셈이다. 왜 그럴까? 혁신은 표류하는 성격이 있으며, 정해 놓은 절차에 갇히지 않고 눈앞에 나타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산책가의 기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샤핀은 벤처 투자에서 중요한 결정은 비즈니스 플랜이 없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따라서 분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를 대체하거나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나도 실리콘 밸리에서 투자를 목적으로 벤처 투자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확실히 샤핀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다. 결국 돈은 팅커링을 하는 사람에게 가야 한다. 당신이 신뢰하는 적극적인 팅커러tinkerer는 옵션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 의약 분야의 사례 === 연구로부터 얻는 보상은 극단의 왕국이 주는 보상과도 같다. 이런 보상은 통계적으로 거듭제곱 분포power-law distribution를 따른다. 즉 옵션의 특징에 의해 상승국면은 거의 무제한적으로 높은 값을 제공하고 하강국면은 제한적인 값을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연구로부터 얻는 보상은 시행 횟수에 대해 선형이지만, 시행과 관련된 전체 연구비에 대해서는 비선형이다. 그림 7에서 보았듯이, 승자는 제한이 없는 엄청난 보상을 갖기 때문에 블라인드 펀딩blind funding (투자하는 종목을 미리 정해두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으고 나서 시장 상황에 따라 적당한 투자처를 물색해 투자하는 선모집 후투자 방식의 펀딩 - 옮긴이)이 바람직한 접근방식이다. 이는 이른바 n분의 1의 원칙을 따라 시행 횟수를 가능한 만큼 늘려서 옵션을 n개로 만들고, 모든 옵션에 같은 금액을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5 왜 시행 횟수를 원하는 이상으로 늘리고, 각 시행마다 투자 금액을 낮추려고 하는가? 극단의 왕국에서는 무엇인가를 놓치는 것보다 약간의 금액을 가지고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느 벤처 투자자가 나에게 말했듯이, ‘보상이 너무 커서 당신은 모든 것에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론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모커 교수의 용어에 의하면 ‘인식론적 기반’)이 많아지면서, 새로 개발된 의약품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이는 뚱보 토니 혹은 생목 전문가가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는 내용이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아주 좋은 기회와 다른 영역에서 주는 단서까지 모두 놓쳤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마치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보상, 혹은 지난 20년 동안의 연구비 증액에도 불구하고 의학 치료법의 발전 속도가 저하되는 현상처럼 말이다. 결국 복잡한 영역에서 지식 혹은 지식이라고 불리는 것은 연구를 방해한다. 이제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자. 당신이 음식 재료의 화학적 조성을 연구한다고 해서 더 나은 요리사나 더 나은 감식가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두 가지 모두 당신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목적론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은 요리를 보잘것없는 일로 여긴다). 아베로에스의 목적론과 합리주의를 비판했던 중세 아랍의 위대한 회의주의 철학자 알가젤Algazel(알 가잘리Al- Ghazali로도 불린다)은 핀에 비유한 설명을 내놓았다(지금은 애덤 스미스의 비유로 잘못 전해지고 있다). 중앙 계획을 담당하는 기관이 없는 상태에서 한 사람이 아닌 25명이 서로 협력해 핀을 만든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 핀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협력은 보이지 않는 손의 안내를 받아서 이루어진다. 회의적인 신앙주의자, 즉 종교적 믿음을 가진 회의주의자 알가젤의 눈에 지식은 인간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 손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애덤 스미스가 이런 지식을 시장의 법칙으로 불렀고, 근대의 이론가들이 여기에 자기조직화를 부여했지만 말이다. ... 어느 누구도 전체적인 과정을 알고 있지 못하다.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 작가 매트 리들리는 자신의 생물학 지식을 바탕으로 더욱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놓는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협력을 하고, 사업을 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너그럽게 용서해주고, 가정을 이루는 데에 있다. 협력은 엄청난 상승국면을 지닌다.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1 + 1이 2보다 크게 나오고 1 + 1 + 1이 3보다 훨씬 더 크게 나오는 슈퍼가법함수superadditive function이다. 이는 보상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비선형 함수인데, 19장에서 철학자의 돌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이런 보상이 나오는지 자세히 살펴보겠다. 매트 리들리의 주장은 블랙 스완 효과의 예측 불가능성을 설명하고 있다. 당신은 협력을 예상하고 이를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예상할 수 없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협력을 촉진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서 번영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또 당신은 중앙에서 혁신을 일으킬 수 없다. 러시아에서 이런 혁신을 시험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기업들은 전략계획에 나오는 아이디어를 좋아한다. 기업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계획이 유용하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증거는 있다. 예를 들어, 경영학자 윌리엄 스타벅William Starbuck은 전략계획이 유용하지 않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주로 전략계획이 편의주의적 요소를 제거해 기업이 옵션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주장이었다. 테일러주의Taylorism에서부터 생산성 이야기 등 경영학에 나오는, 경험적 검증을 거친 거의 모든 이론은 의사과학적 요소를 드러낸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제이론과 마찬가지로, 증거와 공존해야 하는 세계에 존재한다. 철학을 전공하고 경영 컨설턴트의 길을 걷고 있는 매튜 스튜어트Matthew Stewart는 자신의 저서 『위험한 경영학The Management Myth』에서 재미는 있지만 비위를 거스를 만한 내부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런 이야기는 은행업자의 이기적인 접근방식과 비슷했다. 또한 에릭 아브라함슨Eric Abrahamson과 데이비드 프리드먼David Freedman은 『완벽한 혼란A Perfect Mess』에서 깔끔하고도 분명한 목적론적 접근의 맹점을 파헤친다. 결국 전략계획이란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업은 표류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이 합리적이고도 편의주의적으로 표류하는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코카콜라 Coca-Cola는 처음에 제약회사로 시작했고, 멋진 보석을 판매하는 티파니앤코Tiffany&Co는 문구점으로 시작했다. 앞의 두 사례는 어쩌면 비슷한 데가 있었다. 그러나 다음 경우들을 살펴보자. 레이시온Raytheon은 처음에 미사일 유도 시스템을 만들다가 냉장고 제조업체가 되었다(설립자 중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버니바 부시Vannevar Bush였는데 그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던, 과학의 목적론적 선형 모델을 생각해낸 사람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노키아Nokia는 좋지 않은 사례다. 한때 휴대폰 시장의 선두를 달렸던 노키아는 처음에 제지업체로 시작했다. 그리고 운동화를 만든 적도 있었다. 지금은 테프론Teflon 코팅 프라이팬, 코리안Corian 주방용 조리대, 내구성이 뛰어난 패브릭 케블라Kevlar로 유명한 뒤퐁DuPont은 처음에 폭발물 제조회사로 시작했다. 화장품 회사 에이본Avon은 처음에 책을 방문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가장 이상한 경우는 오나이다 실버스미스Oneida Silversmiths다. 이 단체는 처음에 공동체 생활을 하는 컬트였다가 규제 때문에 주식회사의 모양을 갖추어야 했다. === 칠면조 문제의 역 === 이제 내가 말하는 것, 즉 통계적 진술에 대한 인식론의 이면을 파헤쳐보자. 지금부터는 미지의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떻게 한편으로는 좋은 소식을 품을 수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 나쁜 소식을 품을 수 있는지 이야기하겠다. 그리고 극단의 왕국에서 이런 상황은 훨씬 더 두드러진다. 반복해서 말하지만(지식인들은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에 반복해서 말할 필요가 있다),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핵심 사항을 암시한다. ‘안티프래질한 사람에게 좋은 소식은 과거의 데이터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프래질한 사람에게 나쁜 소식은 쉽게 눈에 띠지 않는다.’ 노트북을 가지고 멕시코에 가서 무작위적으로 만나는 사람을 대상으로 멕시코의 평균적인 부를 측정하려고 한다. 하지만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과 같은 엄청난 부자를 만나지 않으면 부족한 정보를 얻게 된다. 나는 1억 명이 넘는 멕시코 인구 중에서 하위 계층에 속하는 7000~9000만 명의 부를 모두 합친 것보다 슬림이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5000만 명의 표본을 취할 때 슬림처럼 아주 드문 사람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그 표본은 전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전체 부를 과소 추정하게 만든다. 그림 6과 7은 시행착오를 통한 보상을 보여주었다. 이런 팅커링은 작은 손실을 자주 발생시키지만, 가끔은 굉장히 의미 있는 사건을 일으킨다. 또한 밖에서 보면, 이런 팅커링이 단점이 아닌 장점을 숨긴다는 재미있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안티프래질한 경우(정의 블랙 스완 영역에서 팅커링처럼 정의 비대칭성을 갖는 경우), 표본은 장기 평균을 과소 추정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단점이 아닌 장점을 숨기게 된다. 앞에서 우리의 목표는 ‘칠면조가 되지 말자.’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칠면조 문제가 내재된 장기 표본을 맞이했을 때 불리한 사건을 과소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 간단히 말해, 보기 드문 사건은 드물게 발생하기 때문에 과거의 표본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처럼 보기 드문 사건은 대부분 나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는 실제보다 훨씬 더 나은 장밋빛 환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반대 이미지에 직면한다. 정의 비대칭성 즉 안티프래질한 경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바람직한 상황이다. 따라서 ‘경험적 증거’는 바람직한 상황을 놓쳐서 전체 이익을 과소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 전형적인 칠면조 문제에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프래질한 경우(칠면조 문제처럼 부의 비대칭성을 갖는 경우), 표본은 장기 평균을 과소 추정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단점을 숨기고 장점을 과시하게 된다. 그 결과는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러나 일반적인 방법은 이런 비대칭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고 기존의 통계적 방법에만 얽매이는 대부분의 통계학자들은 사회과학을 이론화하거나,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과정에서 칠면조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번 장에서 지금까지 다룬 원칙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 첫째, 옵션의 특징을 찾아라. 그리고 옵션의 특징에 따라 대상의 순서를 매겨라. * 둘째, 상한이 없는 보상을 선호하라. * 셋째, 사업계획을 보고 투자하지 말고 사람을 보고 투자하라. 그래서 직업을 예닐곱 번 혹은 그 이상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을 찾아라. 이는 벤처 기업가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이 정한 투자 방법이다. 사람을 보고 투자하면 사업계획이 보여주는 뛰어난 화술에 면역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강건해질 수 있다. * 넷째, 어떤 사업전략을 펼치든 그것이 바벨 전략인지 확인하라. === 협잡꾼, 학자, 쇼맨 === == 16장 무질서가 주는 교훈 == 개인 생활과 교육을 대상으로 목적론과 무질서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 생태학적 영역과 루딕 영역 === 세상에는 두 가지 영역이 있다. 하나는 게임처럼 명시적인 규정을 미리 정해놓은 루딕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실생활처럼 규정도 변화의 원인도 모르는 생태학적 영역이다. 나는 어느 한쪽 영역에 적용되는 기술을 다른 영역에 적용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학교에서 배우는, 실생활이나 길거리 싸움과 같은 생태학적 영역과 무관한 지식에 대해서 회의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체스 선수가 다른 영역에서도 추리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증거는 없다. 심지어 블라인드 체스blind chess(눈을 가리게 한 다음, 기보를 듣고 말하는 형식으로 두는 체스 게임 - 옮긴이)를 두는 선수도 체스와 무관한 대상을 일반인들보다 더 잘 기억하지 못한다. 게임은 영역 특수성을 갖는다. 삶을 위한 훈련을 제공해주지도 않고, 게임 이외의 영역에 적용했을 때에는 심각한 오류를 저지르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교훈을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실, 즉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주로 학교에서만 머물게 된다는 불편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게다가 학교는 의원성 질환처럼 결코 거론되지는 않지만 탐지할 수 있는 손실을 준다. 내전 시기에 태어난 나는 틀에 박힌 교육을 신뢰하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목적은 없지만 합리적인 산책가처럼 학교보다는 사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도서관 안팎에 존재하는 무작위성으로부터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라면, 멍청이가 되지 않고 지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올바른 형태의 엄격함을 지니려면 틀에 박히거나 감추어진 삶, 알람시계와 미리 정해진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공허한 정장 차림의 CEO들의 삶이 아니라 무작위성, 혼란, 모험, 불확실성, 자기 발견, 충격에 가까운 사건으로 가득 찬 삶이 필요하다. 후자는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도록 해준다. 이에 반해 CEO들은 여가를 보낼 때도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4시부터 5시 사이에 밀어넣은 여가 시간이 약속들 사이에 끼어 있다. 우리 삶에 내재된 가변성과 무작위성의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쥐어짜내는 것이 근대의 임무처럼 보인다. 그러나 5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아이러니하게도 우연의 여신이 마치 최후통첩이라도 하듯이, 세상은 훨씬 더 예측하기 힘든 곳으로 변해버렸다. 독학을 추구하는 자들만이 자유롭다. 그리고 그들은 학교 문제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상품화를 추구하지 않고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을 제거한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 틀에 박힌 생활에 무작위성을 부여해보라(어쩌면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세네카는 문제점과 차이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는 인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학교를 위해서 공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끔찍하게도 이 말은 순수성을 잃고서 미국 대학교의 입맛에 맞도록 변형되어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공부한다.”라는 표어를 낳았다. === 안티프래질한 교육(바벨 교육) === 교육의 효과에 관한 나의 생각을 바로잡고, 표준화된 교육에 대해서 상당히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만들어준 것이 있다. 나는 학위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순수하게 독학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을 채용할 때 그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애매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당신도 지원자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능력을 보고 뽑을 수 있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어슬렁거리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들에게는 분명하게 정의된 일을 주어야 한다. 나는 교과 과정을 따르지 않는 지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생각을 집중했다. 그는 독학을 추구하는 사람 혹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만이 자신이 가진 지식의 전부인 사람을 레바논식 표현으로 ‘집어삼키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과 대비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약간의 변화가 성적에서 커다란 차이를 일으키는 공식적인 학위 프로그램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은 체계가 잡힌 곳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욱 지적일 수 있다. 실제로 학교는 체계가 잡히지 않는 곳에서의 능력을 무시하면서 체계가 잡힌 곳에서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을 선호하는 선택 편향을 갖는다. 비록 나는 아직 운동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운동에 관한 지식은 다음과 같다. 고가의 최신 운동기구를 사용해 힘을 키우는 사람들은 무게가 아주 많이 나가는 웨이트를 들어 올릴 수 있고 멋진 근육을 과시할 수 있지만, 큰 돌을 들어 올리지는 못한다. 또 그들은 길거리 싸움에서는 체계가 잡히지 않은 환경에서 단련된 사람에게 엄청나게 두들겨 맞는다. 그들의 힘은 특정 영역에서만 나타나고, 그 영역은 매우 체계적으로 구성된 루딕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그들의 힘은 지나치게 전문화된 운동선수처럼 기형적인 몰골에 따른 결과다. 나는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보다는 몇 안 되는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선택받은 학생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들은 자신이 공부했던 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는 자신감을 잃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학위를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의미에서 독학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시험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양만 공부했기 때문에 바벨 전략을 추구하는 독학자다. 때로는 우연히 목표를 초과달성하기도 했지만, 목표에 미달해 어려움을 겪은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었다. 처음에는 인문학을 읽었고 나중에는 수학과 과학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은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역사를 읽고 있다. 말하자면 체육관의 운동기구를 다루지는 않는 셈이다. 나는 (스스로 선택한 분야가 무엇이 되었든 간에) 호기심에서 비롯해 책을 읽어서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충동을 배움의 주요 동기로 활용하면서 사람들이 나중에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e Disorder, ADHD)라고 진단한 병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이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계획된 것이 아닌 우연한 것이어야 한다. 나는 어떤 책에 싫증이 나면, 그 책을 포기하지 않고 그냥 다른 책으로 넘어갔다(보통 사람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한정된 내용에만 몰두하다가 싫증이 나면, 그냥 포기하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낙담을 하고 수업을 빼먹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특정 주제의 책에 싫증이 났지 책 읽기 자체에 싫증이 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읽은 양은 다른 방식에 비해 더 많아질 수 있었다. 그리고 합리성을 띠지만 목적론과는 무관한 시행착오에 바탕을 둔 연구에서처럼, 우연히 진주를 캐낼 수도 있다. 이는 정확하게 옵션, 시행착오와도 같고, 한 가지에만 전념하지 않고 필요한 경우 두 갈래로 갈라지기는 하지만 자유와 편의주의를 폭넓게 허용한다. 시행착오는 자유를 의미한다. 와튼스쿨 시절, 확률과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에 관련된 직업을 갖기로 마음을 정하면서, 확률과 무작위성에 대한 강박관념이 내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또한 교수들이 설명하지 못하고 무시해버리는 통계이론의 약점을 깨달았다. 하지만 교수들이 무시해버리는 것이 바로 핵심이었다. 나는 어딘가에 속임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주 드문 사건을 측정하는 방법인 식스 시그마(시그마 σ는 원래 정규분포에서 표준편차를 나타내며, 식스 시그마는 100만 개 중 3.4개의 불량률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 옮긴이) 계산은 심하게 잘못되었고, 이런 계산을 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러나 내 생각을 분명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웠고, 복잡한 수학으로 맹렬하게 질주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내 앞에서 펼쳐지는 확률 이론의 한계를 보았다. 수정처럼 맑아 보였지만, 핵심을 나타내는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제목에 ‘확률probability’ 혹은 ‘확률적stochastic’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거의 모두 구매했다(당시에는 인터넷 주문 시스템이 없었다). 그리고 2년 동안 다른 책은 전혀 읽지 않았고, 신문도 읽지 않았다. 자기 전에도 읽었고, 막히거나 싫증이 나면 그 다음 책을 읽었다. 그 다음에는 다시 비슷한 책을 주문했다. 당시 나는 크기가 작은 확률 문제에 깊이 빠져 있었다. 이는 계획된 연구가 아니라 우연한 연구였다. 이런 노력은 나에게 최선의 투자가 되었다. 결국 리스크는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되었다. 5년 뒤에 나는 평생이 보장될 만큼 돈을 벌었고, 확률이 작은 사건에 관한 다양한 측면을 연구하고 있다. 이미 만들어진 도구를 가지고 이런 주제를 연구했더라면, 지금 나는 아마 불확실성이란 카지노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종류의 어떤 것으로 생각하도록 세뇌되었을 것이다. 멍청이가 아닌 사람이 수학을 응용하는 방법이란 이런 것이다. 먼저 문제를 파악한다. 그리고 수학적 정리와 인위적인 예제를 통해 진공 상태에서 공부하고는 현실을 이런 예제처럼 보이도록 변화시키기보다는, 마치 언어를 습득하듯이 문제 해결에 적합한 수학을 찾는다. 1980년대 어느 날, 나는 엄청나게 성공한 투자가와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는 과장법을 쓰기는 했지만 깊은 감동을 주는 말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알아둘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전문 분야에서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것은 반드시 원론적인 내용을 벗어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을 읽어야 할 것인지 정할 때에는 자신이 정해 놓은 방향을 따라야 하고, 바로 여기에 중요한 것이 있다. 나는 학교에서 가르쳐준 것은 잊어버렸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읽으려고 했던 것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 17장 뚱보 토니, 소크라테스와 맞짱 뜨다 == 이번 장에서는 화술에 의존해 쉽게 배우는 지식과 팅커링에 의존해 찾아야 할 불투명한 지식 간의 차이를 알아본다(앞에 나오는 표 4는 화술에 근거한 지식과 그렇지 않은 지식을 구분하고 있다). 우리는 사물은 항상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원인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다. 인생에서 실제로 가장 심각한 오류는 난해한 주장을 우둔한 주장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니체가 생각해낸 오류다). 어떤 면에서 이런 오류는 보지 않은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 칠면조 문제와 많이 닮았다. 또한 증거의 부재를 부재의 증거로 착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 에우티프론 === 플라톤의 대화편 중 하나인 <에우티프론>에서 소크라테스가 사형 선고를 받게 될 법원 청사 밖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서 저작의 명칭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종교 전문가이자 예언가이기도 한 에우티프론Euthyphro이 등장해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 뚱보 토니, 소크라테스와 맞짱을 뜬다 === === 정의된 지식이 으뜸일까 === ‘나한테 난해한 주장이라고 해서 반드시 우둔한 주장은 아니다.’는 진술은 어쩌면 니체가 살던 세기에서 가장 강력한 진술인지 모른다. 그리고 서문에서 나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엉터리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프래질리스타로 정의하면서 이 비슷한 진술을 사용했다. 니체는 주로 이해 증진에 목표를 둔 소크라테스식 진리를 몹시 싫어했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악행인 줄 알면서 고의로 저지르지는 않는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니체는 바로 이런 주장, 즉 지식이 만병통치약이고 오류는 악이며, 따라서 과학은 낙관주의적 활동이라는 주장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과학적 낙관주의에서 비롯되는 움직임, 즉 이성적 추론과 지식을 통해 유토피아를 실현하려는 움직임은 니체를 자극했다.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몰두했던 중요한 문제를 내가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니체는 두 가지 힘을 보았다. 하나는 아폴로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디오니소스의 힘이다. 아폴로의 힘은 이성과 극기를 바탕으로 질서, 균형, 합리성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다. 디오니소스의 힘은 우리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이해하기 힘들고 본능적이고 길들여지지 않은 힘이다. 고대 그리스 문화는 소크라테스가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Euripides에게 영향을 미쳐서 아폴로의 힘에 손을 들어주고 디오니소스의 힘을 붕괴시켜 합리주의가 지나칠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하게 되기 전까지 이들 두 가지 힘 간의 균형을 표현했다. 이처럼 합리주의가 큰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은 호르몬을 주입해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작용을 붕괴시키는 것과 똑같다. 디오니소스가 없는 아폴로는 중국인이 말하는 것처럼 음이 없는 양과 같다. 사상가로서 니체의 위력은 나를 계속 놀라게 만들었다. 그는 안티프래질을 생각해냈다. 많은 사람들이 창조적 파괴의 개념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창안한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이처럼 통찰력 있는 깊은 개념이 경제학에서 나온 것에 대해 놀라워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2) 이 개념의 학문적인 원천을 카를 마르크스에게서 찾으려고 하지만, 사실은 니체가 디오니소스를 언급하면서 이 말을 처음 만들었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에 대해서 ‘창조적으로 파괴적creatively destructive’ 그리고 ‘파괴적으로 창조적destructively creative’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결국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안티프래질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나는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두 번 읽었는데, 처음에는 아주 어렸을 때 읽었다. 무작위성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두 번째로 읽었는데, 니체가 자신의 글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했지만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중요한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것은 디오니소스가 없이는 지식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옵션을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는 선택할 수 있는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확률적 팅커링의 원천이 될 수 있고, 아폴로의 힘이 선택 과정에서 합리성의 한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2장에서 만난 적이 있는 카토는 소크라테스를 매우 싫어했다. 그는 토니와 통하는 데가 많이 있지만, 토니에 비해 시민 의식, 의무감, 전통에 대한 존중, 도덕성 측면에서 수준이 훨씬 더 높다. 그는 그리스에서 온 것들도 매우 싫어했는데, 이는 그가 철학자와 의사를 싫어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혐오감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게 될 것이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상당한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면서 자유와 관습을 중시하고 압제를 혐오했다.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크Plutarch는 그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관습을 파괴하고 시민들에게 법과 질서에 반대하도록 유혹하면서 자신이 국가의 참주가 되려고 했던, 말만 앞서는 사람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고대 사람들이 어설픈 합리주의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설픈 합리주의는 사고 능력을 향상시키기는커녕 떨어뜨렸고, 궁극적으로는 프래질을 초래했다. 고대 사람들은 불완전한 반쪽짜리 지식은 항상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확실히 비트겐슈타인은 근대의 안티프래질 사상가 중에서 으뜸이었다. 그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뛰어난 통찰력을 지녔다. 그리고 모든 사상가 중에서 생목의 오류를 가장 잘 이해했다. 생각을 문자로 표현할 때 언어가 가진 능력을 의심했으므로 어쩌면 그가 생목의 오류를 제일 먼저 말한 사람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은 성인이었다. 그는 철학을 위해 자신의 인생, 우정, 재산, 명예 등 모든 것을 희생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도 안티프래질의 범주 혹은 합리주의에 반하는 범주에 있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는 20세기 철학자이자 경제학자로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반대했던 사람이다. 그 이유는 가격 시스템은 거래를 통해서 사회 속에 심어진 지식을 들추어내는데, 사회계획가social planner가 이런 지식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사회계획가를 대체할 만한 옵션의 특징을 놓쳤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는 지성을 믿었지만 퍼져 있는 혹은 집단적인 지성을 믿었다. 그러나 지성을 대체할 만한 옵션을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다. === 속아 넘어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 이번 장의 대화에 철학자의 돌을 도입해보자. 소크라테스는 지식에 종사하고 있다. 토니는 지식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토니에게는 인생의 차이가 참과 거짓에 있지 않다. 오히려 속아 넘어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있다. 토니에게 비쳐지는 사물은 항상 더 간단하다. 세네카의 생각과 탈레스의 내기에서 보았듯이, 실생활에서는 지식보다 노출이 더 중요하다. 의사결정의 효과가 논리를 대체한다. 교과서가 주는 지식은 보상의 숨은 비대칭성을 못 보게 한다. 바로 평균의 개념이 그렇다. 끔찍하게도, 지성사intellectual history에서는 세상의 구조를 연구하거나 참과 거짓을 이해하는 대신 당신의 행위로부터 얻는 보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에 주목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보상, 즉 행위로부터 얻는 혜택이나 손실이 얼마나 큰가에 있다. 철학자들은 참과 거짓을 이야기한다. 실생활에서 사람들은 보상, 노출, 결과(리스크와 보상) 즉 프래질과 안티프래질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때로 철학자, 사상가, 연구자들은 참과 리스크 혹은 참과 보상을 서로 같은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참과 거짓(따라서 우리가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의 결정에서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라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참과 거짓에서 나오는 보상이다. 그리고 이런 보상은 거의 항상 비대칭적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결과는 다른 결과에 비해 보상이 훨씬 더 커서 정의 비대칭성 혹은 부의 비대칭성, 즉 안티프래질 혹은 프래질의 특징을 갖는다. 탑승객은 무기 소지 여부를 확인해야 기내에 입장할 수 있다. 그러면 탑승객들이 테러리스트라고 믿는가? 참과 거짓으로 대답해보라. 그들이 테러리스트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즉 테러리스트일 확률이 아주 작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테러에 프래질하기 때문에 그들의 무기 소지 여부를 확인한다. 여기서 비대칭성이 작용한다. 우리는 참(즉 그들이 테러리스트다)일 때의 보상이나 결과에 관심을 갖는데, 이때 보상은 엄청나게 크고 무기 소지 여부를 확인하는 데 드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매우 작다. 이제 지난 1주일 동안 내렸던 모든 결정을 종이에 적는다면, 혹은 평생 동안 내렸던 결정을 모두 적을 수 있다면, 이런 결정의 대부분이 비대칭적인 보상을 갖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즉 한쪽의 보상이 다른 쪽보다 더 크다. 우리는 주로 확률이 아니라 프래질을 생각하면서 결정한다. 혹은 달리 표현하면, 주로 참과 거짓이 아니라 프래질을 생각하면서 결정한다. === 4권의 결론 === 4권의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실행하는 것이 믿는 것보다 훨씬 더 현명하고 타당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내가 여기서 실행했던 작업은 지식이나 지성을 요구하지 않고 선택의 합리성만을 요구하는 옵션의 간단한 수학적 특징을 사용해, 새에게 날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데서 나타나는 부수 현상과 선형 모델의 문제점을 들추어낸 것에 불과하다. 5권과 6권에서는 프래질한 것이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생각을 다룰 것이다. 5권은 프래질을 더욱 기술적으로 탐지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철학자의 돌의 배후에 있는 기술적인 문제를 다룰 것이다. 6권은 시간이 건설자라기보다 파괴자로서 (건물이든 사상이든 간에) 프래질한 대상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할 것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