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자의 글

저자는 전략적 직관과 전문가 직관을 구분한다. 전문가 직관(blink)은 항상 빠르다. 그리고 익숙한 상황에서만 작동한다. 전략적 직관은 항상 느리다.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가 필요한 새로운 상황에서 작동한다. 그리고 전략적 직관은 '전략적 기획'과도 구분된다.

서문

이 책에서 일관적으로 반복되는 개념은 모든 영역에서 인간이 달성하는 탁월한 성과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공통적인 메커니즘이다. 분야에 따라 갖가지 이름으로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전략적 직관(strategic intuition)'이라고 부른다.

1장. 플래시 vs. 블링크: 전략적 직관 입문

이 새로운 분야를 '번략적 직관'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모호한 육감이나 본능적인 직감 같은 평범한 직관과 전혀 다르다. 섬광 같은 통찰력은 머릿속의 뿌연 안개를 뚫고 지나가는, 선명하고 반짝거리는 생각이다. 대단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직후에는 우쭐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지만, 생각 자체는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 생각이 우리를 자극하고, 마침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전략적 직관은 순간적인 판단과도 다르다. 순간적인 판단이란 엄밀히 말해 '전문가 직관(expert intuition)'으로서, 뭔가 익숙한 것을 인식할 때 점프하듯 순식간에 결론에 도달하는 빠른 속도의 생각을 말한다.

전문가 직관은 항상 빠르다. 그리고 익숙한 상황에서만 작동한다. 전략적 직관은 항상 느리다.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가 필요한 새로운 상황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차이는 결정적이다. 전문가 직관은 전략적 직관의 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능숙해질수록 비슷한 문제들을 더 빨리 해결할 수 있는 패턴을 인식하게 된다. 전문가 직관은 바로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새로운 상황에서는 우리의 뇌가 좋은 해답을 찾기 위해 새로운 연결을 만들기까지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골린다. 섬광 같은 통찰력은 한순간에만 일어나지만 그 순간이 찾아오기까지 몇 주일이 걸릴 수도 있다. 무작정 서두른다고 그것을 얻어낼 수는 없다. 한편 전문가 직관은 익숙한 것을 봤을 때 빠른 시간 안에 순간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략적 직관을 훈련하려면 새로운 상황을 인식하고 전문가 직관이 작동하지 않게 해야 한다. 새로운 점들이 독자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기존의 점들을 분리해야 한다.

유럽에서 시작된 전략 개념은 19세기 말에 군사 분야에서 비즈니스로 퍼지더니, 그 후에는 정부와 비영리단체로 전파되었고 20세기에는 일반적인 직업 분야로 널리 확산되었다. ... 그런데 군사 분야에서 전략 개념이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섬광 같은 통찰력이 적절하게 변환되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오늘날 전략의 핵심 개념은 섬광 같은 통찰력을 완전히 무시해버린다.

2장. 지상의 혁명: 과학적 발견의 섬광 같은 통찰력

"전략적 직관은 과학적 방법론에 위배되는가?" 과학적 방법론이 그토록 많은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아마 전략은 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방법일 뿐일 것이다. 전략적 직관을 전략에 적용하는 대신에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자면 "과학혁명의 구조"를 참조해야 한다. 토머스 쿤은 과학적인 발전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대개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은 하나의 개념집합이 다른 개념집합에 어떻게 자리를 내주었는지에 관한 정확하고 상세한 정보를 무시한다. 처음에 과학자들은 어떤 것을 믿었고, 나중에는 또 다른 것을 믿었다. 일반적인 과학자들은 물론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코페르니쿠스가 어떻게 한 개념에서 다른 개념으로 도약했는지 그 정확한 단계를 파악한 것이 쿤의 위대한 업적이다.

쿤이 설명하는 것은 과학적 방법론의 작용 방식이라고 알려진 기존으니 통념과 매우 다르다. 대신에 우리는 그것이 전략적 직관이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천문학자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던 세 가지 요소를 조합했다. 첫째, 기원전 230년경에 죽은 유명한 그리스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가 처음 주장했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둘째,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이래로 천문학자들이 수집해왔던 천체 관찰 데이터를 이용했다. 셋째, 당시 눈부시게 발전한 삼각함수를 적용했다. 그것은 기존의 요소들을 새롭게 조합한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아리스타르코스의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해 프톨레마이오스의 데이터에 발전된 삼각함수를 사용했다.

이런 점에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사소한 반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자신이 발명하지 않은 삼각함수를 처음으로 적용했고, 여기에 사용한 데이터조차도 자신이 수집하지 않은 것이었다.

쿤은 계속해서 설명하기를, 획기적인 발견은 그것이 온 과거와 그것이 시작되는 미래의 일부라고 말한다. 마치 길의 커브가 어느 한 방향의 끝이자 다른 방향의 시작인 것과 같은 원리다. 길이 구부러지는 지점에 서 있으면 그 길이 어디서 왔는지 돌아볼 수 있고, 그 다음에는 고개를 돌려 그것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지점에 서 있으면 커브 지점에서 끝나는 직선이나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다른 직선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오직 돌파구인 지점에서만 동시에 두 방향을 다 볼 수 있다. 미래는 과거에서 온다. 그러나 직선으로 오지는 않는다.

모든 혁명가들은 기존의 요소들을 새롭게 조합하여 특정한 시대에 꽃을 피웠다. 그러나 그들의 성과가 달성된 순간에는 그것이 별로 혁명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구부러진 길에 대한 쿤의 개념은 획기적인 발견을 비약적인 진보로 보는 일반적인 생각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후자의 경우에는 길에 갈라진 틈이 있어서 그 틈을 뛰어넘어야 한다. 쿤은 길의 틈이 아니라 커브에 대한 비유를 통해 우리가 시종일관 땅에 발을 딛고 서 있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비약적인 진보가 상상력의 도약을 통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쿤은 상상력 대신 우리가 과학 이외의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대안을 준다. 그는 길의 커브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즉 과거의 요소를 선택적으로 조합한 결과로 어떻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요소 자체는 새롭지 않다. 아리스타르코스에 프톨레마이오스를 더하고 거기에 삼각함수를 더한 결과가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이다.

우리는 코페르니쿠스가 이미 존재했던 요소들을 이용해서 점차적으로 성과를 달성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물리학 이론을 생각해내지는 않았다. 과학혁명의 끝 무렵에 있었던 뉴턴과 함께 새로운 이론이 생겨났다. 성과 달성 이후에 이론이 뒤따르는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순서는 진보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과 정 반대다.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에 따르면, 먼저 이론을 제시한 다음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해야 한다. 실험의 효과가 있으면 성과를 얻는다. 이 경우에는 이론 다음에 성과가 오는 순서다. 과학혁명이 발생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반대다.

이것이 쿤의 전체적인 요점이었다. 그는 과학의 작동 방식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뒤집었다. 그의 책에 중점적으로 등장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왜 구체적인 과학의 업적은 그것으로부터 추출될 수 있는 다양한 개념, 법칙, 이론, 관점에 선행하는가?"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은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산소를 발견했다. 그리고 다른 무수한 과학적인 발견들도 마찬가지였다. 성과가 이런보다 선행한다.

이 단순한 순서의 역전은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과 매우 다른 과학적 방법론을 만들어낸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가설에서부터 시작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가설을 세운 다음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관찰했다. 우리는 가설을 거부하거나 수용했다. 가설을 거부하기로 하면 또 다른 가설을 가지고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실험적인 방법이다. 실험적인 방법은 과학적인 방법의 일부다. 그러나 그것이 제일 먼저 시도해야 할 맨 첫 단계는 아니다. 과학자들은 우서너 어떤 가설을 검증해야 할지 파악해야 한다. 보통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부분이다.

유럽에서 최초로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글을 썼던 학자인 로저 베이컨RogerBacon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아마도 중세시대 최초의 진정한 실험 과학자라고 할 수 있을 로버트 그로스테스트RobertGrosseteste 밑에서 공부했다. 베이컨은 대저작(1267)에 이렇게 썼다.

"우선 직접 실험을 한 사람을 믿어야 하고, 아니면 그런 사람들로부터 신빙성 있는 말을 들은 사람을 믿어야 한다. ... 경험이 두번째이고 이성이 세번째다."

과학적 방법론의 1단계는 다른 과학자들의 실험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2단계는 스스로 실험을 하는 것 혹은 베이컨의 말에 따르면 '경험'을 하는 것이다. 3단계는 이성이다. 실제 과학적 방법론에서 가설은 첫 번째가 아니라 세 번째에 온다. 가설은 이성의 산물이다.

과학적인 진보는 새로운 이론으로 건너뛰는 사고의 도약을 통해 발생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구체적인 성과들의 조합을 통해 일어난다. 그 후에 이론이 생겨나고 그 이론이 성과를 설명한다. 그것은 조합의 작용이지 상상력 때문이 아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이전의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재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전체로 만드는 것이다. 과거의 조각들이 합쳐져서 새로운 미래를 만든다. 그런데 그러한 재조합은 도대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쿤은 '섬광 같은 직관'을 작용 메커니즘으로 등장시킨다. 이것은 '심사숙고'나 '해석'과 다르다. 즉 도약은 그저 열심히 생각한다고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에 과학자들은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거나 "번갯불 같은 섬광"이 스쳤다거나 "잠을 자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가장 유명한 예는 뉴턴이다.

쿤이 섬광 같은 통찰력을 설명하는 데 있어 정확한 단어를 선택하고 있음에 유의하자. 그의 글에는 "머릿속의 파편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정렬"되었고 "조각들이 갑자기 새로운 방식으로 정렬되면서 합쳐"졌다는 표현이 나온다. 재조합은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쿤 자신의 의지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ㄷ내에 가깝다. 그는 완전히 다른 문제,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틀렸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주잉었다. 하지만 대신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옳은지에 대한 문제를 풀었다. 모든 조각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 결과들로부터 왔다. 쿤이 발명한 요소는 하나도 없었다. 그, 아니 독자적으로 작용하는 그의 두뇌가 단지 그 요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했을 뿐이다.

그가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동안 그는 연구하고 있던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쉬었다. 한순간 그는 정말로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럴때 비로소 그의 뇌가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자들은 자신이 무슨 문제를 풀게 될지 사전에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문제와 해답은 동시에 온다.

우리는 현재 우리 자신과 관련된 문제들에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에 따라 이론이나 방법 혹은 그 두 가지가 조합된 형태를 받아들인다. 그런 면에서 윌리엄 제임스가 말했듯이 과학은 '실용적'이다. 제임스는 '실용주의'(1907)라는 책을 써서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철학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했따. 그러나 그는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고 솔직히 시인한다.


See Also: 책/통찰, 평범에서 비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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