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Duggan (윌리엄 더건), Strategic Intuition: The Creative Spark in Human Achievement

감수자의 글

저자는 전략적 직관과 전문가 직관을 구분한다. 전문가 직관(blink)은 항상 빠르다. 그리고 익숙한 상황에서만 작동한다. 전략적 직관은 항상 느리다.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가 필요한 새로운 상황에서 작동한다. 그리고 전략적 직관은 '전략적 기획'과도 구분된다.

서문

이 책에서 일관적으로 반복되는 개념은 모든 영역에서 인간이 달성하는 탁월한 성과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공통적인 메커니즘이다. 분야에 따라 갖가지 이름으로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전략적 직관(strategic intuition)'이라고 부른다.

1장. 플래시 vs. 블링크: 전략적 직관 입문

이 새로운 분야를 '전략적 직관'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모호한 육감이나 본능적인 직감 같은 평범한 직관과 전혀 다르다. 섬광 같은 통찰력은 머릿속의 뿌연 안개를 뚫고 지나가는, 선명하고 반짝거리는 생각이다. 대단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직후에는 우쭐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지만, 생각 자체는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 생각이 우리를 자극하고, 마침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히 알게 된다.

또한 전략적 직관은 순간적인 판단과도 다르다. 순간적인 판단이란 엄밀히 말해 '전문가 직관(expert intuition)'으로서, 뭔가 익숙한 것을 인식할 때 점프하듯 순식간에 결론에 도달하는 빠른 속도의 생각을 말한다.

전문가 직관은 항상 빠르다. 그리고 익숙한 상황에서만 작동한다. 전략적 직관은 항상 느리다.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가 필요한 새로운 상황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차이는 결정적이다. 전문가 직관은 전략적 직관의 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능숙해질수록 비슷한 문제들을 더 빨리 해결할 수 있는 패턴을 인식하게 된다. 전문가 직관은 바로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새로운 상황에서는 우리의 뇌가 좋은 해답을 찾기 위해 새로운 연결을 만들기까지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골린다. 섬광 같은 통찰력은 한순간에만 일어나지만 그 순간이 찾아오기까지 몇 주일이 걸릴 수도 있다. 무작정 서두른다고 그것을 얻어낼 수는 없다. 한편 전문가 직관은 익숙한 것을 봤을 때 빠른 시간 안에 순간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략적 직관을 훈련하려면 새로운 상황을 인식하고 전문가 직관이 작동하지 않게 해야 한다. 새로운 점들이 독자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기존의 점들을 분리해야 한다.

유럽에서 시작된 전략 개념은 19세기 말에 군사 분야에서 비즈니스로 퍼지더니, 그 후에는 정부와 비영리단체로 전파되었고 20세기에는 일반적인 직업 분야로 널리 확산되었다. ... 그런데 군사 분야에서 전략 개념이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섬광 같은 통찰력이 적절하게 변환되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오늘날 전략의 핵심 개념은 섬광 같은 통찰력을 완전히 무시해버린다.

2장. 지상의 혁명: 과학적 발견의 섬광 같은 통찰력

"전략적 직관은 과학적 방법론에 위배되는가?" 과학적 방법론이 그토록 많은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아마 전략은 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방법일 뿐일 것이다. 전략적 직관을 전략에 적용하는 대신에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자면 "과학혁명의 구조"를 참조해야 한다. 토머스 쿤은 과학적인 발전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대개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은 하나의 개념집합이 다른 개념집합에 어떻게 자리를 내주었는지에 관한 정확하고 상세한 정보를 무시한다. 처음에 과학자들은 어떤 것을 믿었고, 나중에는 또 다른 것을 믿었다. 일반적인 과학자들은 물론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코페르니쿠스가 어떻게 한 개념에서 다른 개념으로 도약했는지 그 정확한 단계를 파악한 것이 쿤의 위대한 업적이다.

쿤이 설명하는 것은 과학적 방법론의 작용 방식이라고 알려진 기존으니 통념과 매우 다르다. 대신에 우리는 그것이 전략적 직관이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천문학자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던 세 가지 요소를 조합했다. 첫째, 기원전 230년경에 죽은 유명한 그리스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가 처음 주장했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둘째,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이래로 천문학자들이 수집해왔던 천체 관찰 데이터를 이용했다. 셋째, 당시 눈부시게 발전한 삼각함수를 적용했다. 그것은 기존의 요소들을 새롭게 조합한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아리스타르코스의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해 프톨레마이오스의 데이터에 발전된 삼각함수를 사용했다.

이런 점에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사소한 반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자신이 발명하지 않은 삼각함수를 처음으로 적용했고, 여기에 사용한 데이터조차도 자신이 수집하지 않은 것이었다.

쿤은 계속해서 설명하기를, 획기적인 발견은 그것이 온 과거와 그것이 시작되는 미래의 일부라고 말한다. 마치 길의 커브가 어느 한 방향의 끝이자 다른 방향의 시작인 것과 같은 원리다. 길이 구부러지는 지점에 서 있으면 그 길이 어디서 왔는지 돌아볼 수 있고, 그 다음에는 고개를 돌려 그것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지점에 서 있으면 커브 지점에서 끝나는 직선이나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다른 직선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오직 돌파구인 지점에서만 동시에 두 방향을 다 볼 수 있다. 미래는 과거에서 온다. 그러나 직선으로 오지는 않는다.

모든 혁명가들은 기존의 요소들을 새롭게 조합하여 특정한 시대에 꽃을 피웠다. 그러나 그들의 성과가 달성된 순간에는 그것이 별로 혁명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구부러진 길에 대한 쿤의 개념은 획기적인 발견을 비약적인 진보로 보는 일반적인 생각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후자의 경우에는 길에 갈라진 틈이 있어서 그 틈을 뛰어넘어야 한다. 쿤은 길의 틈이 아니라 커브에 대한 비유를 통해 우리가 시종일관 땅에 발을 딛고 서 있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비약적인 진보가 상상력의 도약을 통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쿤은 상상력 대신 우리가 과학 이외의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대안을 준다. 그는 길의 커브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즉 과거의 요소를 선택적으로 조합한 결과로 어떻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요소 자체는 새롭지 않다. 아리스타르코스에 프톨레마이오스를 더하고 거기에 삼각함수를 더한 결과가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이다.

우리는 코페르니쿠스가 이미 존재했던 요소들을 이용해서 점차적으로 성과를 달성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물리학 이론을 생각해내지는 않았다. 과학혁명의 끝 무렵에 있었던 뉴턴과 함께 새로운 이론이 생겨났다. 성과 달성 이후에 이론이 뒤따르는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순서는 진보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과 정 반대다.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에 따르면, 먼저 이론을 제시한 다음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해야 한다. 실험의 효과가 있으면 성과를 얻는다. 이 경우에는 이론 다음에 성과가 오는 순서다. 과학혁명이 발생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반대다.

이것이 쿤의 전체적인 요점이었다. 그는 과학의 작동 방식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뒤집었다. 그의 책에 중점적으로 등장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왜 구체적인 과학의 업적은 그것으로부터 추출될 수 있는 다양한 개념, 법칙, 이론, 관점에 선행하는가?"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은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산소를 발견했다. 그리고 다른 무수한 과학적인 발견들도 마찬가지였다. 성과가 이런보다 선행한다.

이 단순한 순서의 역전은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배운 것과 매우 다른 과학적 방법론을 만들어낸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가설에서부터 시작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가설을 세운 다음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관찰했다. 우리는 가설을 거부하거나 수용했다. 가설을 거부하기로 하면 또 다른 가설을 가지고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실험적인 방법이다. 실험적인 방법은 과학적인 방법의 일부다. 그러나 그것이 제일 먼저 시도해야 할 맨 첫 단계는 아니다. 과학자들은 우서너 어떤 가설을 검증해야 할지 파악해야 한다. 보통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부분이다.

유럽에서 최초로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글을 썼던 학자인 로저 베이컨RogerBacon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아마도 중세시대 최초의 진정한 실험 과학자라고 할 수 있을 로버트 그로스테스트RobertGrosseteste 밑에서 공부했다. 베이컨은 대저작(1267)에 이렇게 썼다.

"우선 직접 실험을 한 사람을 믿어야 하고, 아니면 그런 사람들로부터 신빙성 있는 말을 들은 사람을 믿어야 한다. ... 경험이 두번째이고 이성이 세번째다."

과학적 방법론의 1단계는 다른 과학자들의 실험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2단계는 스스로 실험을 하는 것 혹은 베이컨의 말에 따르면 '경험'을 하는 것이다. 3단계는 이성이다. 실제 과학적 방법론에서 가설은 첫 번째가 아니라 세 번째에 온다. 가설은 이성의 산물이다.

과학적인 진보는 새로운 이론으로 건너뛰는 사고의 도약을 통해 발생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구체적인 성과들의 조합을 통해 일어난다. 그 후에 이론이 생겨나고 그 이론이 성과를 설명한다. 그것은 조합의 작용이지 상상력 때문이 아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이전의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재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전체로 만드는 것이다. 과거의 조각들이 합쳐져서 새로운 미래를 만든다. 그런데 그러한 재조합은 도대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쿤은 '섬광 같은 직관'을 작용 메커니즘으로 등장시킨다. 이것은 '심사숙고'나 '해석'과 다르다. 즉 도약은 그저 열심히 생각한다고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에 과학자들은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거나 "번갯불 같은 섬광"이 스쳤다거나 "잠을 자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가장 유명한 예는 뉴턴이다.

쿤이 섬광 같은 통찰력을 설명하는 데 있어 정확한 단어를 선택하고 있음에 유의하자. 그의 글에는 "머릿속의 파편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정렬"되었고 "조각들이 갑자기 새로운 방식으로 정렬되면서 합쳐"졌다는 표현이 나온다. 재조합은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쿤 자신의 의지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그는 완전히 다른 문제,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틀렸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중었다. 하지만 대신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옳은지에 대한 문제를 풀었다. 모든 조각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 결과들로부터 왔다. 쿤이 발명한 요소는 하나도 없었다. 그, 아니 독자적으로 작용하는 그의 두뇌가 단지 그 요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했을 뿐이다.

그가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동안 그는 연구하고 있던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쉬었다. 한순간 그는 정말로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럴때 비로소 그의 뇌가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자들은 자신이 무슨 문제를 풀게 될지 사전에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문제와 해답은 동시에 온다.

우리는 현재 우리 자신과 관련된 문제들에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에 따라 이론이나 방법 혹은 그 두 가지가 조합된 형태를 받아들인다. 그런 면에서 윌리엄 제임스가 말했듯이 과학은 '실용적'이다. 제임스는 '실용주의'(1907)라는 책을 써서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철학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했따. 그러나 그는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고 솔직히 시인한다.

제임스의 관점에서 이론은 현실 세계에서 뭔가 유익한 일을 하기 위해 '방'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이론이 어느 정도 실용적이어야 하고, 또 이론을 사용하는 사람이 항상 실용적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차피 섬광 같은 통찰력이 무슨 문제를 해결할지 모르니까 어떤 문제에 대해 열심히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의 뇌가 답을 찾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각을 이용할 수 있게 하려면 원래의 문제를 철저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문제들과 관련된 조각들에도 개방적이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 조각들이 결합되어 새로운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문제는 현재 고민하고 있는 문제와 꽤 비슷한 경우가 많다.

섬광 같은 통찰력이 과학자가 의도했던 것과 어느 정도 다른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은 인간이 정진하고 있는 다른 분야들에도 중대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위대한 업적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한 기존의 통념에 위배된다. 기존의 생각에 따르자면, 먼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다음에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식으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성취와 목표는 동시에 발생한다. 앞으로 우리는 다른 분야에서도 이와 똑같은 패턴을 발견할 것이다. 즉 섬광 같은 통찰력은 기존의 요소들을 가지고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조합을 만든다.

섬광 같은 통찰력을 통해 기존의 요소들을 조합하는 것이 전략적 직관의 본질이다. 그것은 과학적 방법론의 첫 번째 부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때 우리는 검증할 가치가 있는 가설을 생각해내기 위해 다른 과학자들의 작업을 연구한다. 과학에서 전략적 직관의 결과는 전략이다. 다시 말해, 목표를 향한 행동 방침이다. 그것은 새로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이다. 다른 분야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섬광 같은 통찰력은 우리가 추구할 목표와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행동 방침을 알려준다. 목표는 가설이다. 우리는 가설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직 실험만이, 즉 행동 방침만이 확실히 말해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전략적 직관은 전략적이다. 즉 섬광 같은 통찰력은 우리에게 전략을 준다. 무엇을 성취하든지 간에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방향을 안내해주는 것은 전략적 직관이다. 쿤 덕분에 우리는 전략적 직관이 과학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과학적 방법론에서 두 가지 중요한 단계를 구분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게 하는 전략적 직관과 그것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적 방법이다. 이 책에서는 첫 번째 단계가 다른 분야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좀 더 자세히 보여줄 것이다.

3장. 좌뇌와 우뇌: 신경과학의 지적 기억

그러나 과학적 성과에 대한 쿤의 설명을 보면, 섬광 같은 통찰력은 양쪽 뇌를 결합하는 듯 보인다. 창조적인 섬광이 합리적인 통찰력을 낳는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의 조각들은 쿤의 머릿 속에서 직관의 일격을 받아 논리적인 전체로서 합쳐졌다. 코페르니쿠스의 경우에는 아리스타르코스와 삼각함수와 프톨레마이오스의 데이터라는 합리적인 요소들이 검증할 만한 합리적인 가설로서 합쳐졌다. 요소들과 결과는 합리적이다. 조합의 수단은 직관적이다.

결과적으로 1990년대 후반의 신경과학은 스페리의 모델을 뒤집었다. 2000년 에릭 칸델은 뇌의 작동 방식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연구해서 노벨상을 받았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더 이상 뇌의 어느 한쪽은 창의적이고 다른 쪽은 합리적이라고 믿지 않는다. 새로운 모델은 모든 종류의 사고 과정에서 직관과 분석을 결합한다. '순수한 분석'이나 '술수한 직관' 같은 것은 없다. 우리의 모든 생각은 어느 정도 섬광 같은 통찰력의 일종이다. 작은 것은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큰 것은 전략을 변화시킨다. 이 새로운 뇌 모델은 전략적 직관이 어떻게 논리적인 동시에 창의적일 수 있는지 설명한다.

스페리의 의심은 옳았다. 이것은 단지 좌와 우의 문제가 아니다. 위와 아래, 앞과 뒤, 깊은 곳과 얕은 곳, 회색 물질과 흰색 물질, 주름과 매끄러운 표면과도 관련이 있었다. 하나의 생각은 좌뇌, 우뇌 할 것 없이 뇌의 다양한 지점에서 활성화되는 듯 보였다. 오가와 이후에 과학자들은 얼마 안 있어 훨씬 상세한 뇌 지도를 개발했다. 좌-우 구별은 사라졌다. 뇌는 뚜렷한 패턴이 전혀 없는 커다란 모자이크와 같았다.

그러나 쿤이 말하듯이, 중요한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이전의 패러다임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MRI의 성과는 스페리의 업적을 무효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옳았다. 뇌의 각 영역들은 서로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단지 왼쪽과 오른쪽이 아니라 수십 개 혹은 수백 개, 어쩌면 수천 개의 다른 영역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뇌가 분리된 환자들에 대한 연구는 좌뇌와 우뇌가 서로 통신할 수 없을 때 뇌가 어떤 식으로 조정을 하는지 보여주었다. 그러나 뇌량이 손상되지 않은 정상적인 뇌의 MRI는 뇌의 양쪽이 활동하는 것을 보여준다. 복잡한 과제를 수행해야 할 경우, 분리된 뇌는 한쪽만 활동하지만 정상적인 뇌는 양쪽이 다 활동한다. 우뇌는 창의력, 상상력, 직관의 장소가 아니다. 뇌의 새로운 모자이크 모델은 다양한 과제를 수행해야 할 때 이러한 기능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장소들로 퍼져나가는지 보여준다. 논리적, 분석적, 합리적인 과제도 마찬가지다. 모자이크 모델은 기존의 좌-우 기능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뇌 전체에 퍼뜨린다.

모자이크 형태의 기억 모델은 뇌 지형도와 직관적 사고에 대한 스페리의 업적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을 매우 다른 관점으로 보여준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너무나 새로워서 아직 딱 맞는 이름을 갖지 못했다. 여기서는 지금까지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이름인 '지적 기억'을 사용할 것이다. 신경과학자 BarryGordon은 2003년에 같은 제목(Intelligent Memory: Improve the Memory that Makes You Smarter)으로 책을 썼다. (Edelman, Wider than the Sky: The Phenomenal Gift of Consciousness)

"지적 기억은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점들을 연결하는 것과 같다. 점들은 조각이나 아이디어이고, 그것들을 잇는 선은 연결이나 연상이다. 선은 더 큰 파편으로 합쳐지고 이러한 파편들이 모여 전체적인 생각을 형성할 수 있다. 이 전체적인 생각은 시각적인 이미지일 수도 있고, 지식의 조각이나 아이디어 혹은 어떤 문제의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개개의 조각들과 연결, 그리고 그것들을 조율하는 정신적인 처리 과정이 전체적으로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인지적인 사건인 것처럼 보인다. 어떤 아이디어나 개념이 갑자기 '휙' 스쳐 지나갈 때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섬광 같은 통찰력이 뇌의 정상적인 기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뭔가 갑자기 머릿속을 휙 스쳐 지나가는 그런 것 말이다.

지적 기억은 이성, 논리, 분석과 창의력, 직관, 상상력을 하나의 사고 작용으로 결합한다. 스페리는 분석과 직관이 "질적으로 다르고 상호 적대적이며 내재적인, 인지적 처리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마치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라는 것이다. 반대로 지적 기억은 그 두 가지가 동일한 생각의 구성요소들인 것처럼 합친다. 우리는 어느 한쪽을 많이 혹은 적게 가질 수는 있지만, 모든 생각은 두 가지를 다 필요로 한다. 모든 합리적인 사고에는 자동적인 저장, 검색, 결합 과정이 필요하다. 마지막 단계인 자동적인 결합이 바로 직관이다. 그것은 모든 종류의 사고에 작용한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사고방식이 아니다.

즉 기억에 저장된 기존의 요소들이 섬광 같은 통찰력으로 결합되면서 우리에게 실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준다. ... 지적 기억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그것은 직관이 분석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사고에서 창의적인 역할을 한다고 본다. 전략적 직관은 과거를 확고한 토대로 삼아 지적 기억을 미래에 투사하고, 그것이 제시하는 행동 방침을 따른다.

4장. M서장이 구한 목숨: 전문가 직관의 작용

GaryKlein은 전문가 직관의 경험적 연구 분야를 개척했다. 다시 말해, 그는 지적 기억이 어떤 식으로 과거의 경험 요소들을 가져와서 비슷한 상황에 활용하는지를 연구했다. 그것은 전략적 직관보다 조금 작은, 섬광 같은 통찰력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것은 뇌 안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뭔가를 여러 번 보거나 그와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 뇌는 관련된 기억을 재빨리 가져올 수 있다. 전문가 직관은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전략적 직관의 경우 뇌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요소들도 가져온다. 코페르니쿠스가 아리스타르코스를 활용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전문가 직관은 익숙한 상황에서 빠르게 작동한다. 전략적 직관은 새로운 상황에서 좀 더 천천히 작동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같다. 전문가 직관은 연구하기가 쉽다. 우리는 전문가가 그것을 언제 사용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략적 직관의 경우에는 섬광 같은 통찰력이 언제 어느때 들이닥칠지 모른다. 전문가 직관의 경우에는 전문가들이 작업에 돌입할 때마다 섬광 같은 통찰력이 발생한다. 클라인이 연구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M서장은 그런 것들(공식적인 지침서의 방법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옵션에 따라 행동했다. 그 다음 행동도. 그 다음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전체적인 과정이 계속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GaryKlein은 계속해서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관들을 더 많이 연구했다. 그리고 같은 것을 발견했다. "내가 틀렸다. 소방관들은, 특히 경력이 20년 이상씩 되는 노련한 사람일수록 대개 한 가지 옵션만을 고려했다. ... 이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나는 우연히 직관 현상을 발견했다." GaryKlein의 발견은 섬광 같은 통찰력으로 왔다. 그는 실제로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했다. 낡은 분석 모델(옵션 나열, 경중 따지기, 최선의 대안 선택)은 틀렸다. ... 후에 클라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연구 결과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 중 몇몇은 분명히 다른 사람들보다 수완이 뛰어나거나 전문성이 출중하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직관에 의존한다."

요소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순차적으로 합쳐졌다. 섬광 같은 통찰력이 찾아와 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는 지적 기억이 전략적 직관과 마찬가지로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적용되는 방식을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선 GaryKlein의 전문가 직관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적용되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전문가 직관의 범위를 넘어서는 분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쯤 되면 의사결정이 천천히 이루어지는 분야들에 대해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특히 많은 숫자들을 사용하는 고도로 분석적인 분야 말이다. 전문가 직관은 그런 분야들에도 적용될까? 이 방면으로 GaryKlein의 든든한 선배격인 사람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HerbertSimon이다. HerbertSimon은 완벽한 정보가 있는 상황에서 효용을 극대화하려고 하는 합리적인 '경제 인간'이라는 지배적인 이론에 대안을 제시했다. 실제 생활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웬만큼 좋은 행동 방침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HerbertSimon은 전문적인 체스 경기자들이 여러 가지 옵션을 고려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한꺼번에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였다. 그들은 가망성이 있어 보이는 첫 번째 옵션을 검토한다. 그것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결함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것을 포기한다. 혹은 그것이 만족스럽다면 그대로 실행한다. 만약 포기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다음으로 가망성이 있어 보이는 옵션을 검토한다. 게임을 마칠 때까지 그런 식으로 진행된다. 그들은 여러 가지 옵션을 서로 비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각각의 옵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들은 예전에 본 적이 있거나 직접 경기한 적이 있는 게임들에서 요소를 가져온다.

"익숙한 패턴의 인식은 전문가 기술의 특히 중요한 구성요소다. 그 결과 전문가들은 어림짐작의 상당 부분을 그들이 인식에 의해 발견하는 솔루션 혹은 부분적인 솔루션으로 대체할 수 있다. 게다가 인식에 의한 문제 해결은 대개 직관적, 판단적, 심지어 창의적 문제 해결이라고 하는 것들의 특징을 모두 가진다. ... 실험 데이터에 따르면 대가와 명인들은 선택의 방향을 정하기 위한 실마리를 인식함으로써 매우 선택적으로 탐색한다고 한다. 그들은 가능한 이동 시퀀스 공간에서 적절한 부분을 탐색하므로 높은 수준의 계산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

HerbertSimon에게 창의적인 문제 해결은 높은 수준의 계산 효율을 달성하는 것이라는 점에 유의하자. HerbertSimon, GaryKlein, 그리고 지적 기억의 과학은 창의적이고 직관적인 사고와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구분하지 않는다. 즉 의사결정 과정은 두 가지를 결합하고, 그 결과로서 찾아오는 섬광 같은 통찰력이 답을 보여준다.

전문가 직관은 유아기에 시작된다. 눈을 뜨고 팔을 움직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순간부터 우리의 뇌는 정보를 분해(파싱)하고 저장한다. 해마상 융기는 정보의 일부를 장기 기억으로 변환시킨다. 우리는 혼자 옷 입기, 이 닦기 등과 같은 일상적인 과제에서 전문성을 획득한다. 성인이 되어서 직업적인 과제에 대하여 전문성을 획득하는 방법도 이와 마찬가지다. 전문가 직관은 인간의 성과 달성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즉 우리가 어떤 세상에 태어났든지 간에 성공에 필요한 과제를 통달하는 방법은 모두 이런 식의 구조를 취한다.

클라인은 전문가들 사이에 이러한 패턴이 일반적임을 강조한다. 그들은 먼저 목표를 설정한 다음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활동을 계획하지 않는다. 대신에 행동과 목표는 함께 온다.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촉진하는 것은 언제 목표가 도달 가능한지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 ...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기 전에 그것의 해결 가능성을 판단하는 경험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 경험은 우리가 기회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기회가 인식되면 그것의 함축적인 의미를 알아내고 싶은 문제 해결자는 그 기회를 활용해 합리적인 목표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뤼벡 실험과 암스테르담 실험에서 피험자들은 먼저 상세한 정보를 받았고, 그 다음에는 휴식을 취한 뇌가 그 정보들을 조합했다. 그들의 뇌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답을 끄집어내지 않았다. 뇌의 선반에 놓인 실제 요소들을 창의적으로 조합할 때 깨달음이 온다. 그러한 요소들로는 수학 공식이나 데이터 등도 포함된다. 이러한 최근의 실험들은 지적 기억이 분석과 직관을 모두 포함하는 하나의 사고 작용이라는 사실을 더 많이 뒷받침한다. 피험자가 흡수한 정보에 대해 적극적인 생각을 한 것은 분석이다. 답을 구하기 위해 요소들을 자동적으로 조합한 것은 직관이다. 두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분석을 강제로 중단시킨 결과 직관이 언제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5장. 유럽을 정복한 코르시카인: 고전적인 군사 전략에서의 혜안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의 성공을 설명하면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추려낸다. 그는 독일어로 글을 썼다. 하지만 이 개념을 위해서는 "coup d' oeil'라는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여기서 '쿠(coup)'는 '쿠데타(coup d' état)'에 들어 있는 단어와 같다. 쿠데타가 나라를 치는 것이라면 '쿠 되이으'는 눈을 치는 것이다. 즉 한 눈에 알아차리는 힘, 혜안을 말한다. 현대적인 신경과학 지식으로 무장한 우리는 클라우제비츠의 혜안 개념이 지적 기억의 섬광 같은 통찰력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토머스 쿤은 그것을 과학적인 발전에 적용했고, 게리 클라인은 전문가의 활동에 적용했으며, 클라우제비츠는 전략에 적용했다.

툴롱에 있는 나폴레옹의 머릿속에서 이 네 가지 요소들이 합쳐졌다. 등고선 지도는 오를레앙과 마찬가지로 메인 요새 주변의 작은 요새인 레귀예트를 보여줬다. 절벽 위로 운반한 경량포는 보스턴과 요크타운에서처럼 아래 항구를 향해 조준하는 방법을 써서 영국군을 해군으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었다. 우리는 이 툴롱의 예에서 전략적 직관의 섬광 같은 통찰력이 전문가 직관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 머릿속에서 합쳐지는 요소들이 좀 더 먼 곳, 대개 전략가의 직접적인 경험이 아닌 외부에서 온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조각들이 합쳐질 때 섬광 같은 통찰력이 훨씬 더 커진다. 나폴레옹은 툴롱에서처럼 전투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머릿속의 선반에 놓인 과거의 전투에 대한 정보를 이용하여 툴롱 문제의 여러 측면을 해결하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합은 새로웠으나 그 조합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나폴레옹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과거를 어덯게 활용했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공적이 전해 내려오는 훌륭한 지도자들을 이끌어준 것은 바로 전쟁의 원칙이다. 알렉산더, 한니발, 카이사르, 구스타프 아돌프, 투렌, 사부아의 외젠, 프리드리히 대제 같은 이들의 여든 세 가지 전투 작전들의 역사를 모아놓으면 병법에 관한 완벽한 보고서가 완성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클라우제비츠가 혜안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혜안의 작동 방식에 대해 네 가지 단계로 설명한다. 그것은 역사적 사례, 냉철함, 섬광 같은 통찰력, 결단력이다. 툴롱 포위 공격에서 혜안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 4단계를 하나하나 검토해보자.

지적 기억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고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수록 우리 뇌의 선반들에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온 예들이 저장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영화 속의 나폴레옹이 겨드랑이 밑에 끼고 있던 두꺼운 책은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전쟁사를 연구했는지 여실히 입증해준다. 전문가 직관은 우리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는 반면, 전략적 직관은 세계 모든 사람들의 경험을 활용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들만 저장되어 있는 선반을 뒤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멀고 넓은 역사 속의 예들을 탐색한다.

혜안의 두 번째 단계는 냉철함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또는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모든 기대와 이전의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야 한다. 툴롱의 장군은 이미 목표가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는 칼과 총검으로 큰 요새를 점령하려고 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임무는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포병대를 지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자기 머릿속에서 그런 목표를 지워버렸고, 그러자 완전히 다른 목표가 떠올랐다. 다시 말해, 툴롱에서 영국군을 몰아내려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냥 떠나게 하면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섬광 같은 통찰력이다. 자유로운 머릿속에서는 다양한 과거의 예들로부터 선택된 요소들이 새로운 조합으로 합쳐진다. 나폴레옹은 전쟁사를 열심히 연구한 덕택에 활용할 만한 요소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구체적인 경우에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요소들이 합쳐질지는 미리 알 수 없었다. 그가 툴롱의 지도를 보았을 때 가능한 결과는 세 가지가 있었다. 즉 장군의 계획이 좋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계획을 생각해내거나, 아니면 영국군을 툴롱에서 몰아낼 방법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 그의 자유로워진 머릿속에서 레귀예트 전략이 합쳐졌다.

혜안의 네 번째 단계는 결단력이다. 이것은 결심, 결의, 의지를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뿐 아니라 그것을 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섬광 같은 통찰력에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도 뒤따른다. 이 단계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후 처음으로 대면하게 될 것은 사람들의 비웃음이기 때문이다. 일을 추진하고 혜안이 작용하게 하려면 결단력이 필요하다.

클라우제비츠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혜안의 네 가지 단계는 지적 기억에 대한 현대적인 이해와도 딱 맞아떨어진다. 이 요소들은 지적 기억이 전략적 직관처럼 새로운 상황에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전문가 직관을 통해 비슷한 상황들에 대처하기 위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끌어내는 한편, 전략적 직관을 통해서는 다양한 상황들로부터 선택한 요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한다. 이 네 가지 요소들은 군사 전략 뿐 아니라 인간이 정진하고 있는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클라우제비츠에게는 경쟁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앙투안 조미니 남작이다. 먼저 군사학교에 전파되고 나중에 비즈니스를 비롯해 다른 부문으로 퍼져나간 것은 조미니의 전략 연구였다.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지만, 100년 전에는 조미니가 훨씬 더 유명했다.

클라우제비츠가 우리에게 전략적 직관을 알려주었다면, 조미니는 우리에게 전략적 기획을 알려준다. ... 이 세 가지 단계가 오늘날 기업 및 다양한 조직들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략적 기획 방법과 동일하다는 점을 알아차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조미니의 전략적 기획 3단계는 클라우제비츠의 전략적 직관 4단계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이론을 나폴레옹으로부터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둘 다 옳을 수도 있을까? 우리는 이 문제를 두 단어, 즉 '목표'와 '결정'의 대결로 요약할 수 있다. 조미니의 경우 목표 지점에서 적보다 전략이 강하면 승리할 수 있다. 클라우제비츠의 경우 결정적 지점에서 적보다 전력이 강하면 승리한다. 조미니의 전략적 기획에서는 목표 지점을 먼저 선택한 다음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략적 직관에서는 머릿속에서 전체적인 그림이 합쳐지고 나면 그 그림의 일부인 결정적 지점을 알게 된다. 먼저 목표 지점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는다.

툴롱의 경우, 장군에게는 목표 지점이 있었다. 그의 목표 지점은 도시의 요새였다. 그는 요새를 점령하기 위해 A부터 B까지 군대를 이동시킬 계획을 세웠다. 철저한 조미니의 관점이다. 반대로 나폴레옹의 전략적 직관은 그에게 결정적 지점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자리잡은 레귀예트라는 이름의 작은 요새였다.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듯이, 결정적 지점은 혜안의 일부로서 생긴다.

나폴레옹은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결정적 지점을 찾으면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군대를 이동시키곤 했다. 결정적 지점을 찾지 못하면 그저 계속 옮겨 다니기만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적이 그가 차지하려 할 것이라 생각하는 중요한 목표 지점을 여러 번 지나쳤다. 예를 들어 그는 툴롱 이후 이탈리아 작전에서 투린과 밀라노의 주요 도시들을 그냥 지나쳤다. 그곳에서 어떻게 이겨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워진 적들은 그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이상한 장소들에서 연속으로 여섯 번의 전투를 치렀는데 모두 승리했다.

나폴레옹은 회고록에서 자기 입으로 조미니의 목표 지점보다 클라우제비츠의 결정적 지점을 지지한다.

"전쟁의 기술은 군대가 수적으로 열등할 때, 항상 적보다 전력이 강한 지점에서 공격하거나 방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것이 전쟁의 천재성을 제대로 입증하는 직관적인 행동 방식이다."

나폴레옹은 어느 장소에서 싸우든지 간에 우월한 전력을 원했다. 그것이 그의 결정적 지점이었다. 그는 목표 지점을 계획하고 거기로 군대를 이동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장군들이 이해하기에는 조미니의 3단계설이 클라우제비츠의 4단계설보다 훨씬 더 쉬웠다. 특히 미국군은 조미니의 3단계설을 수용했다. ...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장군 조지 패튼만이 클라우제비츠의 결정적 지점을 수용하고 그것을 섭렵했다.

패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성공한 미국의 장군이었다. 그는 나폴레옹의 기병대처럼 탱크들을 사용했다. 패튼은 자신이 택한 방법을 언급하면서 장교는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모든 종류의 군사적인 가능성을 철저히 파악할 수 있으므로, 언제 무슨 일이 생기든지 간에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비슷한 예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아주 오래되고 심히 조잡한 형태라 할지라도 반드시 전쟁사를 읽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애쓰지 않아도 군사학의 가장 난해한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자연스러운 순서로 주제를 따라가면서 정신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패튼이 뇌의 선반에 역사적 사례를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재빨리 꺼내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 직관은 점차 전략적 직관으로 변해간다.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는 예들은 자기 경험만큼이나 익숙한 것이 되어간다.

현대에 와서도 A에서 B로 이동하는 조미니의 3단계설은 클라우제비츠의 혜안 4단계설보다 우세하다. 조미니의 전통을 따른 전략적 기획은 전 세계 기업과 기타 여러 종류의 조직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전략적 기획에 관한 수많은 교과서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조미니의 전통을 따르는 것들이다. 군사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철학과 이론 학습을 위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사용한다. 그러나 전략 실무를 위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조미니의 입문서를 따른다.

우리는 1992년에 앨런 바이어센이 클라우제비츠에 관혀여 쓴 논문인 "클라우제비츠, 비선형성, 그리고 전쟁의 예측 불가능성"을 참조할 수 있다. 클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전쟁의 결과는 전쟁 중 일어나는 일들에 달려 있다. 또한 그것은 장군의 혜안에 달려 있다. 우리는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없다. 전략적 직관은 대단히 비선형적인 분야다. 쿤이 과학에서 선형적인 발전 개념을 뒤집었듯이,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서 선형적 전략 개념을 전복시켰다. 그리고 두 사람 다 모든 우여곡절을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은 섬광 같은 통찰력이라고 보았다.

6장. 전투의 달인 부처: 초심을 얻는 길

6년 후 그는 스승을 찾아다니기를 포기했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보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그는 가야 마을 밖의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오랜 시간 명상을 하고 있었다. 힌두교에서 말하는 악의 신인 마라(Mara)가 세속적인 쾌락으로 그를 유혹하고 공포로 겁주어 없애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싯다르타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그것은 섬광처럼 찾아왔다. 그는 돌연 자신의 머릿속에서 인간의 고통에 대한 해답을 보았다. 그것이 바로 불교의 사성제(四聖諦)다. 오랫동안 그는 그대로 앉아서 자신이 본 것과, 그것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깊이 생각했다. 그런 다음 일어나 그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부처의 사성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생은 고통이다. 둘째, 욕망이 고통을 일으킨다. 셋째, 욕망을 없애는 것은 가능하다. 넷째, 욕망을 없애는 길은 팔정도(八正道)다. 팔정도는 바른 견해(정견:正見), 바른 의사(정사유:正思惟), 바른 말(정어:正語), 바른 행동(정업:正業), 바른 생활(정명:正命), 바른 노력(정정진:正精進), 바른 의식(정념:正念), 바른 명상(정정:正定)을 말한다. 사성제는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주위 세계에서 작용하는 힘을 따르는 것으로, 생각과 행동의 개인적인 수련에 해당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는' 대신에 '세계의 흐름과 함께 가는' 것이다. 깨달음은 힌두교 스승들이 가르쳤던 마법의 주문이나 요가 자세, 혹은 특별한 식단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답은 싯다르타의 마음 안에 있었다.

그러나 부처의 깨달음은 전략적 직관의 작용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예라는 사실 말고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의 깨달음 자체가 전략적 직관의 작동 방식에 관해서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사성제는 클라우제비츠의 혜안 중에서 세 번째 요소, 즉 냉철함의 정신적 수련에 해당한다.

부처는 자신의 가르침을 '다르마(Dharma)'라고 불렀다. 그것은 사성제를 이해했을 때 우리가 걷는 길이다. ... 도는 다르마의 길이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따르는 특정한 옳은 길(전략)을 뜻하기도 하고, 언제나 옳은 길을 따르는 일반적인 수련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특정 순간에 다르마, 즉 도를 따를 뿐 아니라 평생에 걸쳐서 그렇게 한다.

무엇보다 도는 충돌을 피한다. 불교의 영적 측면을 생각하면 이것은 이해하기 쉽다. 사성제는 욕망을 정복한다. 그리고 욕망이 없으면 우리는 맞서 싸울 것이 없어진다.

도는 특정한 종류의 충돌을 피한다. 즉 카르마 대 다르마의 충돌을 피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카르마에 맞는 다르마를 찾아야 한다. 카르마는 우주가 제시하는, 우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일련의 상황들을 말한다. 한편 다르마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 나는 먼저 무엇이 나의 통제 범위 안에 있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분별해야 한다. 그런 다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가장 부합하는 생각과 행동을 찾는다. 그것이 바로 나의 길, 나의 도다. 내가 가장 많이 욕망하는 것을 택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다르마는 욕망이 아니라 카르마를 따른다.

나폴레옹은 회고롞에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슬쩍 보여준다.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의 주인이었던 적이 없다. 나는 항상 상황의 지배를 받았다.

위대한 사람일수록 덜 가져야 한다. 위대한 사람은 사건과 상황에 따라 좌우된다.

내게는 뚜렷한 생각이 거의 없었다. 나는 상황을 통제하려고 고집스럽게 애쓰는 대신, 상황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내 행동의 주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방침에 일치하도록 사건을 바꾸려고 시도할 만큼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예기치 못한 사건에 맞게 내 방침을 바꾸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에게 불리하게 배열된 힘들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내는 명수였다.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전투만을 찾아다녔던 그는 실제로 싸운 것보다 그냥 지나친 전투가 더 많았다. 그는 자신의 카르마를 평가했고 적합한 다르마를 발견했다.

우리는 '손자병법'에서도 도에 대하여 비슷한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질서 정연하게 깃발을 세우고 전진하는 적과 싸우지 마라. 전투 대형을 완벽하게 정렬한 적과도 싸우지 마라. 그렇게 해야 변화하는 상황적 요인을 통제할 수 있다.

전쟁 전문가들은 특히 기회와 형편에 따라 좌우된다.

군대는 물에 비유된다. 흐르는 물은 높은 곳을 피하고 낮은 땅으로 흘러가듯이, 군대도 적의 강점을 피하고 약점을 친다."

우리의 다르마는 카르마의 바위 주변을 물처럼 흐른다. 이것이 동양 무술의 정수다. 무술을 배우는 이는 동작이 자신의 두 번째 천성이 될 정도까지 연습을 반복한다. 그런 다음에는 마음을 비우고 상황이 동작을 이끌도록 내버려둔다. 즉 일련의 섬광 같은 통찰력이 찾아와서 길을 보여준다.

부처의 사성제는 모든 상황에서 다르마를 찾기 위한 정신적인 훈련이고, 그 결과가 냉철함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략가는 냉철함에 통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냉철함은 단순히 연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역사적 사례들과는 다르다. 냉철함은 끊임없는 연습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우리는 모든 순간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깨달음을 기대할 수 있다.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냉철함을 얻는 데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특정한 기교에 숙달되는 것이다. 자만에 빠지기는 너무나 쉽다. 크게 보면 그러한 자만은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진격과 비슷한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작게는 너무 빨리 결론으로 건너뛰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일은 전략적 직관이 필요한 상황에서 전문가 직관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는 상황이 익숙해 보인다고 생각할 테지만, 차이를 만드는 요소를 놓칠 수 있다. 전문성은 가짜로 숙달된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런 것 대신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상황에서 초심을 잃지 않도록 선(禪)의 수련을 하는 것이다.

초심은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는 냉철함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것은 기교에 숙달되지 못한 미숙함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숙달을 초월하는 단계다. 우리는 전장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마음에서 비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카르마가 깔린 전장으로 생각을 옮기게 된다. 전장에서는 실제 전투가 일어나는 순간까지 어떤 힘이 작용할지 완전히 알 수가 없다.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인생은 전쟁터이며 모종의 행동을 위한 장이기 때문에 우리는 초심을 영구적인 정신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전략적 직관은 외적 영감을 내적으로 수련하는 것이다. 우리 뇌는 외부에서 들어온 요소들을 결합한다. 혜안이 결합하는 역사적 사례들은 외부 세계로부터 온다. 부처가 땅을 만졌듯이, 우리는 그런 외부 세계와 연결된다. 그것은 우리의 혜안을 현실 속에 안착시킨다. 우리는 역사적 사례가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와 서로 합쳐진 다음 세계로 향하는 새로운 행동으로 흘러나가게 한다. 그러면 그 새로운 행동은 즉시 카르마의 일부가 되고, 우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그 카르마를 고려하여 다음 순간의 다르마를 선택한다. 우리가 도를 따를 때는 카르마와 다르마가 충돌하지 않는다. 하나가 다른 것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그러한 과정이 반복된다.

초심을 얻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마음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우는 것이다. 부처는 이 문제를 사성제의 맨 앞에 놓았다. 즉 그는 모든 불행이 좌절된 욕망에서 온다고 말했다. 분노, 질투, 후회, 공포, 경멸, 비애, 실망, 근심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과거에 가질 수 없었거나, 현재 또는 앞으로도 가질 수 없는 뭔가를 원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이제 조미니와 클라우제비츠로 다시 돌아가보자. 조미니는 원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한다. 클라우제비츠는 과거에서 가져온 예들이 가치 있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합쳐지는 결정적인 지점을 기다리라고 말한다. 조미니는 흐름을 통제하라고 하고, 클라우제비츠는 흐름과 함께 가라고 한다. 동양철학은 그 흐름이 무엇이고, 그 흐름을 따르기 위해 어떻게 마음을 훈련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가르쳐준다.

목표에 도달하려면 목표를 포기하라. 욕망을 충족하려면 욕망하기를 중지하라. 미래에 가장 실현 가능한 목표에 도달하려면 마음을 열고 가장 쓸 만한 과거의 예들이 서로 합쳐질 때까지 기다려라. 땅을 어루만지면 해답이 찾아온다.

Effectuation이 생각난다.

7장. 빌 게이츠와 구글의 창업자들: 비즈니스의 전략적 혁신

PC 혁명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같은 일류 기업은 물론이고 애플이나 IBM 같은 2인자들의 입장에서도 전략적 혁신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경우였다. 이 장에서는 그러한 기업의 기더들이 전략적 혁신의 핵심인 성공적인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해냈는지 질문할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해답은 전략적 직관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확실히 전략적 직관은 전략적 혁신에 대해서 포터와는 상당히 다른 관점을 취한다. 그러나 우리는 저명한 경제학자 다니엘 카네만과 요제프 슘페터의 도움을 받아 두 가지를 화해시키는 방법으로 결론을 맺을 것이다. 두 사람의 연구는 전략적 사고에서 분석과 직관의 적절한 역할을 가려내는 데 도움이 된다. 결국 기업은 포터가 말하는 분석적 방법과 전략적 직관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 그 두 가지가 각각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는지를 혼동하지 않고 확실히 이해한다면 말이다.

알테어 계약은 전략적 직관의 작용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게이츠와 알렌은 그들이 발명하지 않은 네 가지 기존 요소들을 조합했다. 그 네 가지는 알테어, 8080 칩, 베이직, PDP-8이다. 그들의 냉철함은 이 새로운 조합이 섬광 같은 통찰력의 형태로 찾아오게 만들었다. 섬광 같은 통찰력은 그들의 목표를 바꾸게 했고, 그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마이크로컴퓨터를 위한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1분 전만 해도 게이츠는 시애틀로 날아가 연휴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알렌은 하니웰에 다니느라 보스턴에 계속 머물 예정이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들은 새로운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열정적인 6주 동안 그들의 결단력이 그들을 지탱하며 계약을 따내게 했고, 결국 수십 년 동안 그 일이 반복되었다.

알테어 이후 게이츠는 비전을 품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앞으로 어디에나 컴퓨터가 있게 되리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컴퓨팅 파워가 저렴해지고 훌륭한 새 소프트웨어가 그것을 활용하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저렴한 컴퓨팅 파워의 미래를 확신하고,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했다."

전략적 직관이 게이츠에게 이러한 비전을 주었다. 알테어 이전의 그에게는 비전이 없었다. 조미니의 관점에서는 비전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 방침이 온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의 관점에서는 섬광 같은 통찰력이 먼저 온 다음에 비전이 온다. 이것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전략적 혁신이 작용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비전을 준다.

알테어 당시 게이츠는 컴퓨터가 데이터 프로세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메인프레임 자체가 언제나 대부분의 작업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따. ... 알테어 이전에 향후 컴퓨터의 용도에 대한 게이츠의 관점은 하니웰 간부들이나 MITS의 로버츠보다 더 진보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직 알테어를 처음 본 순간에만 마이크로컴퓨터를 위한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즉 기존의 요소들을 결합해서 실제로 그런 회사를 차릴 수 있는 기회를 보았을 때 비로소 그런 생각을 떠올렸던 것이다.

정말로 남달랐던 것, 세계와 그들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은 것은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바로 게이츠와 알렌이 알테어를 보았을 때였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그것은 하버드의 PDP-8 컴퓨터를 이용해 알테어의 8080 칩을 위한 베이직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조미니 식으로 하면, 그들의 새로운 비전은 세계 최초의 대중화된 미니컴퓨터인 PDP-8처럼 알테어를 세계 최초의 대중화된 마이크로컴퓨터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알테어 소프트웨어를 위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었고, 행동 방침은 PDP-8과 베이직을 알맞게 변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이미 해보았던 일이다. 전략적 직관이 이미 작동한 후에는 조미니의 기획이 완벽하게 잘 돌아간다. 기획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다음에만 가능하다. 섬광 같은 통찰력이 A와 B를 보여주고 그 두 가지를 연결할 길을 보여준 다음에 A에서 B로 갈 수 있다는 것은 말하나 마나다.

전략적 혁신에는 그 전환점마다 전략적 직관이 등장한다. 여기서 전환점이란 전략가의 머릿속에 성공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를 말한다. 알테어 이전의 게이츠와 알렌은 다른 많은 사람들과 똑같은 분석을 했다. 알테어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새로운 분석을 실시해서 여러 컴퓨터에 똑같은 소프트웨어를 적용하려고 시도했다. 그들의 새로운 분석은 낡은 분석을 통해 발생하지 않았다. 그것은 쿤이 과학혁명에 대해 설명했듯이, 섬광 같은 통찰력의 형태로 일어났다.

전략적 직관은 PC 혁명 기간 동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비지칼크는 세 가지 기존의 요소들, 즉 마우스, 전투기의 계기반, 계산기로부터 왔다. 이메일은 기존의 사내 메시지 통신 관행과 기존의 인터넷 프로토콜을 결합한 것이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아니면 안 된다는 그런 태도야말로 전략적 직관의 정반대다. 대신에 우리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만약 결합할 요소들을 내부에서만 찾는다면 탐색의 결과는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외부로 탐색의 폭을 넓힐수록 활용할 수 있는 요소를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브린과 페이지는 알타비스타와 학술논문의 인용법, 데이터마이닝, 오버추어를 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연달아 일어난 섬광 같은 통찰력에 힘입어 4년에 걸쳐 그 요소들을 결합했다.

PC 혁명은 전략적 직관과 함께 시작하여 전략적 직관과 함께 끝났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예기치 못한 섬광 같은 통찰력의 형태로 찾아온 역사적 사례들을 조합하면서 시작되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1975년부터 2004년까지의 기간이 얼마나 엄청난 도약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30년 동안 컴퓨터 업계는 물론이고 세계를 뒤바꿔놓은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쿤의 과학적 혁명과 마찬가지로 길에 새로운 커브가 나타날 때마다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전략가들이 새로운 조합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요소들을 가져왔음을 발견하게 된다. 혁명적인 변화는 진화와 마찬가지다. 단지 속도가 더 빠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비즈니스 혁신이 요구하는 사고방식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낡은 아이디어로부터 온다. 필요한 것은 영구적인 혁명이 아니라 영구적인 진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더 나은 조합을 찾는다. 때때로 새로운 전략이 빠르고 엄청난 효과를 나타낼 수도 있고, 그것이 혁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좀 더 느리고 작은 효과를 나타내고 점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방법은 언제나 같다.

크린질리의 영화는 '위대한 예술가들은 훔친다(Great Artists Steal)'라는 제목이었다. 이것은 194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영국 시인 T.S 엘리엇을 잘못 인용한 것이다. 원래 엘리엇이 말한 것은 "미성숙한 시인들은 모방하고 성숙한 시인들은 훔친다"라는 구절이었다. 시인인 엘리엇은 단어를 매우 신중하게 선택했다. 잡스는 제록스를 모방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면 그는 큰 컴퓨터를 만들어서 1.6만 달러에 팔았을 것이다. 대신에 그는 자신이 본 어떤 요소들을 '훔쳐서' 다른 것들과 결합했다. 그것은 전면적인 모방이 아니라 선택적인 도용이었다. 엘리엇은 전략적 직관의 핵심을 차지하는 중요한 차이점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대기업의 전략적 혁신은 초창기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처럼 전체 산업에 대담한 신기원을 이룩하는 것보다 거스너의 재배열 같은 형태를 취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것은 더 큰 세계를 위한 혁신이 아니라 회사를 위한 혁신이다. 그러나 작용은 똑같다. 각각의 경우에 우리는 우리가 직면한 카르마를 위해 작동하는 다르마를 발견한다. 거스너는 IBM을 위해 옳은 길을 발견했다. 그것은 게이츠나 구글의 공동 창업자들이 발견한 길과 같은 길은 아니었다. 그러나 길을 발견하는 방법은 같았다. 과거의 요소들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조합으로 합쳐졌고, 그 조합이 그들에게 길을 보여주었다.

PC 혁명과 관련하여 살펴본 네 가지 사례(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IBM)는 전략적 직관이 중요한 전략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오늘날 사업 전략 분야에서 지배적인 개념으로 관심을 돌리면 우리는 전혀 다른 방법을 발견한다. 전략적 분석이 지배한다. 전략적 직관은 없다. 전략적 분석과 전략적 직관은 현대의 비즈니스 전략이라는 퍼즐에서 가장 큰 두 개의 조각이다. 지금부터는 그 두 가지를 어떻게 맞추는지 살펴볼 것이다.

전략적 분석에 대해 주로 참고한 문헌은 마이클 포터의 '경쟁 전략'이다.

그리고 조미니처럼 포터도 클라우제비츠를 필요로 한다. 조미니를 연구하다 보면, 군사 전략은 단지 목표를 선택하거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군대를 진격시키는 문제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포터를 연구하다 보면, 비즈니스 전략은 단지 업계와 경쟁사 및 자사의 현재 전략을 분석하는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조미니와 포터는 각자의 분야에서 기본 매뉴얼을 마련하기 위해 대나히 많은 수고를 했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 세계를 위한 전략에 관해서는 클라우제비츠가 단연 독보적인 존재다.

그리고 조미니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전략적 직관의 전과 후에 분석을 실시한다면 전략적 혁신에 대한 포터의 연구와 화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이츠가 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알테어 이전의 분석은 컴퓨터가 점점 더 작아지고 새로운 인텔 칩이 그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보여주었다. 알테어 이후의 분석은 소프트웨어가 모든 소형 컴퓨터들에 쓸모 있는 새로운 산업이 될 것임을 보여주었다. 게이츠는 분석을 통해 전략을 얻지 않았다. 즉, 그가 대규모 소형 컴퓨터 시장에서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를 독점하기 위해 베이직과 알테어를 결합할 수 있었던 것은 분석 덕분이 아니었다. 전략 자체는 전략적 직관에서 왔다.

PC 혁명과 관련하여 다룬 사례들에서, 우리의 전략가들은 지속적으로 상황을 분석했고 그 다음에는 섬광 같은 통찰력이 찾아와 역사적 사례들을 결합해 미래의 행동 방침을 보여주었다. 그런 후에 그들은 새로운 분석의 관점에서 그 방침을 평가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업계의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분석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남달랐던 것은 역사 속에서 정확한 예들을 가져다가 머릿속에서 결합했다는 점과 그들의 머릿속을 스칠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결단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분석-직관-분석의 순서는 포터의 방법과 전략적 직관을 화해시킨다. 그러나 포터는 경제학자다.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은 직관에 대해 애매한 관점을 취해왔다. 이는 분석과 직관을 대비시키는 낡은 좌뇌-우뇌 모델과 일치하는 입장이다. 경제학적 분석과 전략적 직관 사이의 틈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이 대비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의 새로운 연구는 직관으로 인한 경제학적 오류를 지적함으로써 그 틈을 더 벌리는 듯 보인다.

다니엘 카네만은 행동경제학 분야의 주요 인물이다. ㅏ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탄 그는 불확실성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판단 및 의사결정과 관련하여 심리학 연구의 통찰력을 경제학에 통합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물론 전략적 혁신은 불확실성의 지배를 받는 의사결정에 해당한다.

그의 주제는 주로 "직관, 즉 심사숙고 없이 빠른 속도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과 선호"에 대한 것이다.

직관이 대단히 경제적이고 일반적으로 효과가 있는 간편추론법에 의해 작동한다는 점에 주목하자. 따라서 직관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략적 직관이 아니다. 카네만의 연구는 좌뇌-우뇌 이론이 득세하던 시절의 것이기 때문이다. 카네만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두 가지 일반적인 이니지 기능 방식, 즉 "판단과 의사결정이 자동으로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직관 모드와 좀 더 의도적이고 느리게 이루어지는 통제된 모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칸델은 2000년 신경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그러한 차이를 반박한 바 있다. 즉 그는 PC 혁명을 촉발한 섬광 같은 통찰력처럼 지적 기억이 분석과 직관을 단일한 사고 작용으로 결합한다고 주장했다.

카네만의 연구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의 간편추론법 오류가 전문성의 오류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See Also: 책/통찰, 평범에서 비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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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전략적 직관 (last edited 2023-04-03 03:18:48 by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