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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의 능력을 외면하는 시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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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구스티누스, 신의 섭리로 영혼을 가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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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의 힘을 인식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고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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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식의 근거를 마련한 르네 데카르트의 유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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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경영학은 인간을 무엇으로 보는가 == |
다시 쓰는 경영학 (최동석)
서장
경영학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 Your Highlight on page 7 | Location 99-112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1:34:16 PM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경영 환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경영자들뿐만 아니라 구성원들도 정신적으로 점차 고갈되어 가는 느낌을 갖는다. 육체적으로도 지쳐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조직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노동생산성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50~6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노동시간은 그들보다 대략 50% 정도 더 길다. 말하자면, 일은 많이 하는데 산출물이 신통치 않다는 얘기다.
이런 현실에서 경영자가 실행할 수 있는 전략은 대략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더 쥐어짜기’ 전략이다. 현실에 대해 눈을 질끈 감은 채, 더 열심히 일하도록 몰아붙이는 것이다. 이것이 대부분의 조직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마른행주도 짜면 물이 난다는 믿음으로 말이다. 그래서 학자들이나 실무자들은 마른행주 짜는 방법을 고안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때 주로 사용되는 수단이 당근과 채찍이다.
교묘한 두 번째 방법도 있다. ‘이중장부 쓰기’ 전략이다. 예를 들어 정직과 창의를 사훈으로 삼은 어떤 회사가 있다고 치자. 구성원들은 “정직하라” “창의적으로 생각하라”는 공식적인 훈시를 수없이 듣는다. 그러면서 경영자가 영업담당 임원과 경쟁업체가 뒷구멍에서 담합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눈감아주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탈법과 불법으로 영업하는 것을 눈감아주는 경우, 구성원들은 표방하는 가치와 행동하는 가치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이것이 전형적인 경영의 이중장부 쓰기 전략이다.
- Your Highlight on page 9 | Location 126-131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1:35:38 PM
그래서 그 대안으로 세 번째 방법은 ‘다시 시작하기’ 전략이다. 처음부터 그리고 근본부터 다시 검토하여 올바른 토대 위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계산기에 숫자를 잘못 입력해서 헷갈릴 때 리셋 버튼을 눌러 새로 시작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앞의 두 가지 전략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구성원들을 선발할 때도 역량에 맞는 인재를 선발하고 선발한 후에는 자율성을 부여한다. 더욱 학습하여 성장하도록 촉진하고, 잠재력을 맘껏 발휘하도록 자극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의 길을 일깨워 준다.
- Your Highlight on page 10 | Location 146-151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1:40:34 PM
오늘날 기업에서는 성과지표들을 스코어링scoring한다.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은 계량화되는 것도 있지만, 계량화되기 어려운 것들도 많다. 예를 들면, 경영자의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의식,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염려와 신뢰, 종업원들의 비전에 대한 높은 몰입과 탁월한 역량 수준, 상사와 부하 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질적 수준, 조직구성원 간의 협력 의지 등은 조직성과에 결정적인 변수들이지만 쉽게 계량화되지 않는다. 설사 계량화되었다 해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고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 Your Highlight on page 11 | Location 156-159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1:41:10 PM
사람들이 모인 세상에서, 더구나 공동의 목표를 가진 조직에서 서로 염려하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희망을 나누는 일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 영혼이 없는 뼈다귀 같은 매출액, 당기순이익, 시장점유율 등만 남는다. 여기에는 생명이 없다. 이런 뼈다귀들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조직의 변화에 대한 나의 경험
- Your Highlight on page 15 | Location 224-245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3:04:56 PM
이 모든 과정은 내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2013년 현재 나는 시스템이론가로서 그동안 했던 모든 노력이 거의 성공하지 못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구조와 시스템을 바꿨지만, 그 구조와 시스템의 취지대로 조직이 바뀌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아무리 세심한 배려를 한다 해도 조직의 구조와 시스템의 변화는 조직구성원들의 태도 변화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에 대한 관점의 근본적인 변화가 전제되지 않은 채 구조와 시스템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오히려 구성원들의 태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냉소적으로, 이기적으로, 때로는 파괴적으로 변한다.
경영자의 정신적 토대의 변화, 즉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그 어떤 구조적ㆍ시스템적 변화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인간을 자원resource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조직의 구조가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은 자원 이상의 대접을 받을 수 없다. 매출이나 이익을 내는 수단으로 간주될 뿐이다. 심하게 말하면 앵벌이쯤으로 여긴다. 인간은 그저 노동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전락한다. 충전된 건전지를 편의점에서 사서 쓰다가 효력이 다 떨어지면 내버리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도 그런 운명이다. 조금 더 인정한다면, 인간은 그저 노동하는 노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 그 자체를 세상의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것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때, 즉 인간의 존재being를 실존existence으로 바라볼 때 조직의 구조와 시스템의 변화가 비로소 생산성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확신이 생겼다. 내가 이 놀라운 진실을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생산성을 강조하는 기업조직은 인간을 자원의 관점resource-based view이 아니라 실존의 관점existence-based view에서 바라보는 치유의 경영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진정으로 생산성을 강조하는 경영학이라면 당연히 구성원들의 마음을 치유하여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각종 철학적 질문과 개념들, 심리학적 이론과 처방들, 그리고 경영학적 관행과 제도를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결국 생산성이 높은 민주적 경영, 즉 경영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기업조직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각 부의 주제와 요약
- Your Highlight on page 19 | Location 279-298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3:10:43 PM
이런 과정은 경영학의 성립 초기에도 일어났다. 테일러는 청교도적인 엄격한 가정 훈육을 통해 자랐다. 그는 모든 것이 정리정돈 되어 있어야 했다. 심지어 야구장에서 친구들과 노는 시간에도 모든 것을 정확한 숫자로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이런 성격은 직장 생활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노동자들의 게으름을 바로잡아 생산성을 높일 방법을 고안했다. 불철주야 연구하여 생산성 향상의 과학적인 방법들을 발굴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남긴 책 『과학적 관리의 원칙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이다. 여기서 ‘과학적’이라는 말은 계량화된 숫자로 표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는 측정하여 숫자화 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모든 공정을 숫자로 통제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생산성을 높이는 길이라는 굳은 신념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방법과 이념은 미국 경영대학원 MBA 과정의 효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소련 공산당이 가혹한 노동자 통제를 하는 데도 활용되었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낸 과학적 관리법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았다. 그가 주장하는 생산성 숫자와 혁신 스토리는 많이 조작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육체노동자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자신의 신념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가차 없이 해고토록 했다. 관리자들이 계획한 것을 노동자들은 기계의 부속품처럼 실행해야 했다.
이처럼 모든 것을 숫자로 정리정돈하려고 했던 것은 유년 시절부터 무의식에 켜켜이 쌓여 왔던 항문기적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그는 철저한 이원론자였다. 겉으로는 노동자들 편에서 일한다고 했지만, 결국은 자본가 또는 경영자를 위한 위계질서를 확립하도록 도왔다. 테일러의 사상은 미국 경영학의 방향을 정립했고, 이것은 곧바로 이데올로기가 되어 그 후 진행된 경영학의 전개 과정은 테일러리즘의 틀을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 권력의 공고화에 기여했던 것처럼 테일러는 기업가와 자본가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이 오늘날까지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이중주가 이루어진 것이다.
01.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영혼의 능력을 외면하는 시대
- Your Highlight on page 35 | Location 526-528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5:27:39 PM
서양 정신사에서 철학자들은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크게 세 번 정도 바꾸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 당시에 인간을 무엇으로 볼 것인지에 관한 커다란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신의 섭리로 영혼을 가리다
- Your Highlight on page 39 | Location 588-595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5:30:58 PM
그러나 수도사였던 펠라기우스는 달랐다. 그는 해박한 도덕주의자로서 당시 로마 시민과 귀족들의 방탕한 생활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펠라기우스는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었다.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했고, 원죄 개념을 부인했다. 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삶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신의 은총이란 인간이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쯤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한 자기 완전성에의 자연적 능력을 선천적으로 부여받았다고 가르쳤다. 바르게 행동하고, 이웃과 진정한 마음으로 관계를 맺는 덕행을 쌓을 때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너무나 평범한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 Your Highlight on page 41 | Location 614-619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5:32:19 PM
한편 펠라기우스는 시민에게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쳤고, 부자들을 향하여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도록 기독교의 근본정신을 설교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대단히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제국의 위계질서와 마찬가지로 수도원과 교회도 위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재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선하기보다는 수도원에 기부하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수도사들과 성직자들은 부자들의 기증품과 영향력에 의지하고 있었다.
- Your Highlight on page 45 | Location 675-680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5:35:23 PM
중세 사람들에 비해 현대인들의 지식의 양은 더 많아졌다. 그러나 현대인이 고대와 중세를 살았던 사람들보다 도덕과 윤리의 측면에서 더 진보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아직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에서 많은 통찰을 얻고 있지 않은가? 지식은 축적되어 진보하지만, 지혜는 축적되지 않기 때문에 각자가 영혼의 도움을 받아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기술 문명이 더 발달했다고 해서 중세 사람들보다 우리의 정신세계가 더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11
- Your Highlight on page 45 | Location 684-686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5:36:05 PM
내가 이렇게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그가 경영학의 역사에서 테일러와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테일러는 과학적 관리기법을 도입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모든 행동을 계량화하여 기업경영을 온통 숫자로 물들게 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중세를 온통 신의 섭리로 물들게 한 것처럼 말이다.
이성의 힘을 인식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고민
- Your Highlight on page 46 | Location 706-709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5:41:14 PM
중세를 지배했던 이데올로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사상이었는데, 이 사상은 플라톤의 이원론적 철학체계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플라톤이 내세운 이데아의 세계를 기독교에서 신의 세계나 하늘나라로 이상화했던 것이다. 이 모든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최종적인 원인이 이 세계 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 세상 어딘가에, 즉 신이 계신 곳에 존재한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 Your Highlight on page 47 | Location 716-723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5:41:49 PM
그런데 사막에서 낙타나 탈 줄 알던 낙후된 이슬람 세계가 수준 높은 문명으로 발전하게 된 비밀을 기독교의 지식인들이 알게 되었다. 그 비밀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사상과 그 문헌들이었다. 이 사상은 전통적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이론과는 배치되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자 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들을 금서로 지정하고 절대로 읽지 못하도록 억압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강력한 신학적 도전에 직면했던 것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을 읽었고, 그의 사상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인 플라톤과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최종적인 원인은 그 세계 자체 내에 스스로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플라톤의 이원론을 거부하고 일원론을 주장했다.
- Your Highlight on page 48 | Location 736-740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5:42:54 PM
이런 시대에 신의 은총을 개입시키지 않고 인간의 이성 작용으로도 사태의 진실을 인식할 수 있다는 주장은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굳이 이성을 희생할 필요가 없었다. 신의 계시와 인간의 이성은 세계를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이라고 믿었다. 이성에 의한 철학적 진리와 계시에 의한 신학적 진리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이성은 사물의 본질과 현상을 규명할 수 있지만, 성육신과 삼위일체, 최후의 심판과 원죄설 등은 계시에 의해서만 이해된다고 보았다.
- Your Highlight on page 50 | Location 765-770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5:44:07 PM
모든 것을 신의 은총으로 해석했던 시대에 이런 주장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아우구스티누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까지 약 800년간의 중세는 신앙이 이성을 압도해 왔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에는 신앙과 이성이 비등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성의 힘은 급속도로 팽창했다. 그 결과 세 가지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 첫 번째는 고대 그리스ㆍ로마 시대를 본받자는 운동인 르네상스(문예부흥)이고, 두 번째는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운동(종교개혁)이며 마지막이 과학 분야의 혁명적인 변화(과학혁명)이다.
인식의 근거를 마련한 르네 데카르트의 유산
- Your Highlight on page 54 | Location 815-826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7:46:21 PM
데카르트는 오감을 통한 경험적 인식보다는 수학과 같은 연역과 직관을 통해 명석판명明晳判明, clear distinct한 진리에 도달하는 사고가 정신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생각하는 개인의 정신이 이 세상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사상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까지 400년이 넘는 동안 인류의 정신사를 두 가지 측면에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정신과 육체를 완전히 구별하는 이원론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말은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온 이원론의 전통이 데카르트에게서 그대로 고착된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개인이 역사의 전면에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이 말의 핵심은 인식의 주체가 절대화되지 않으면 인식의 객체인 타자the others에 대한 정보의 확실성은 보장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개인의 존재가 절대화되기 시작했다. 중세 교회가 가르쳤던 신앙중심의 공동체적 이상과 가치는 점차 사라지고, 개인의 주체적 인식이 보편적 객관성을 얻어야만 진리가 된다. 이러한 진리 추구 방식이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성이 신앙을 완전히 압도하게 된 것이다.
- Your Highlight on page 55 | Location 838-845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7:46:38 PM
아우구스티누스의 흔적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거치면서 그의 신학적 이데올로기는 많이 희석되었다. 이렇게 중세가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인간에 대한 관점을 더 총체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후의 역사 또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성이 신앙을 압도해가는 사상적 흐름 속에서 인류가 경험한 핵폭탄과 같은 충격이 세 번이나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런 충격적 사건을 통해 이성은 스스로 과학적ㆍ분석적ㆍ실증적 사고로 발전해 나아갔다. 이제는 완전히 이성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계가 된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인류는 영혼의 능력이 충분히 발현될 기회를 상실했다. 위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약간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이제 어떤 충격적 사건들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 Your Highlight on page 56 | Location 853-864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7:46:51 PM
경험적ㆍ실증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과학주의 시대, 경험주의 시대, 분석주의 시대가 장엄한 막을 올렸다. 영국을 중심으로 경험주의 사상이 꽃을 피웠다. 오감을 통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아예 없는 것으로 치부하게 되었다. 인류는 이렇게 매우 위험한 시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분석적ㆍ합리적ㆍ경험주의적empirical 과학사상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칸트Immanuel Kant(1724~1804)였다. 칸트는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으로서 경험과학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분석적 경험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감각적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세계가 있으며 이것은 인간에게 고유한 순수 이성, 실천 이성, 판단력 등을 통해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이론체계를 세웠다. 칸트는 기독교적인 영혼개념, 즉 플라톤이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혼이나 신과 같은 관념은 인간의 인식체계를 넘어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을 경험 이전의 세계, 즉 초월적이고 선험적인 세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라고 보았다.12 이것은 칸트가
- Your Highlight on page 56 | Location 853-877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7:47:19 PM
이렇게 과학주의 시대, 경험주의 시대, 분석주의 시대가 장엄한 막을 올렸다. 영국을 중심으로 경험주의 사상이 꽃을 피웠다. 오감을 통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아예 없는 것으로 치부하게 되었다. 인류는 이렇게 매우 위험한 시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분석적ㆍ합리적ㆍ경험주의적empirical 과학사상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칸트Immanuel Kant(1724~1804)였다. 칸트는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으로서 경험과학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분석적 경험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감각적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세계가 있으며 이것은 인간에게 고유한 순수 이성, 실천 이성, 판단력 등을 통해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이론체계를 세웠다. 칸트는 기독교적인 영혼개념, 즉 플라톤이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혼이나 신과 같은 관념은 인간의 인식체계를 넘어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을 경험 이전의 세계, 즉 초월적이고 선험적인 세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라고 보았다.12 이것은 칸트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업적의 하나다. 경험을 통한 인식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에 칸트는 (경험 이전에) 사물을 인식하는 형식category이 인간의 본성 속에 본래부터 주어져 있으며, 인간은 그 형식에 의해 세계를 통합적으로 인식한다고 보았다.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사물의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본래부터 주어져 있는 그물과 같은 인식의 형식을 사물(대상)에 능동적으로 조명(또는 투사)함으로써 그 형식에 걸려든 것만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칸트는 선험적 인식론의 지평을 열었다. 칸트의 이런 위대한 사유는 인간이 진리를 지향하고, 도덕적이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생명체로 거듭나게 하는 철학적 토대를 인류에게 선물했다. 진선미眞善美를 분별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 인간에게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인간에게 고유한 영혼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칸트가 내린 철학적 사유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목적 그 자체로서의 인간은 결코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에 관한 칸트의 철학적 사유를 이해한다면, 미국인들이 쓰고 있는 인적자원Human Resource이라는 용어가 얼마나 천박하고 위험한 의미를 내포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 Your Highlight on page 60 | Location 910-916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7:48:42 PM
인간은 결코 생물학적으로만 설명될 수 없으며, 인간의 본질은 정신이고, 그 정신의 핵심인 자기self는 관계를 통해서만 실현된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는 상태connectedness일 때 비로소 인간이라는 것이다.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인간은 절망할 수밖에 없으며, 이 절망이 바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이다. 핵심은 이렇다. 인간의 생물학적 본질은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지만, 그 물질적 본질을 넘어서는 정신 능력인 영혼을 다루려면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Your Highlight on page 60 | Location 908-916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7:48:51 PM
우리는 이 시기에 활동했던 위대한 철학자 한 명을 꼭 이해해야 한다. 그는 덴마크의 우울한 철학자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1813~1855)다. 키르케고르의 철학적 사유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인간은 결코 생물학적으로만 설명될 수 없으며, 인간의 본질은 정신이고, 그 정신의 핵심인 자기self는 관계를 통해서만 실현된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는 상태connectedness일 때 비로소 인간이라는 것이다.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인간은 절망할 수밖에 없으며, 이 절망이 바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이다. 핵심은 이렇다. 인간의 생물학적 본질은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지만, 그 물질적 본질을 넘어서는 정신 능력인 영혼을 다루려면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Your Highlight on page 62 | Location 939-948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7:50:27 PM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이성의 힘이 사유의 세계를 지배하게 되자, 인간 이성으로 해명할 수 없는 세계는 아예 없는 것으로 간주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렇게 이성의 힘은 무의식의 세계까지 지배력을 확장했다. 오늘날 학문 방법론은 거의 완벽하게 환원주의reductionism로 바뀌었다. 이것은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되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상태까지 분해하여 그 개체들을 분석함으로써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사고체계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문헌들을 보면, 대부분 사람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물들이다. 설득 심리학에서부터 괴짜 심리학까지, 청소년 심리학에서 노인 심리학까지, 안전한 심리학에서 위험한 심리학까지 죄다 “○○심리학”으로 나온다. 그래서 인류는 다시 인간의 심연을 향하여 이성의 날을 세우고 분석해 들어가고 있다. 오늘날 심리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인간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심리학의 연구 결과들은 대부분 분과학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인간을 통합적으로 조망하기에는 부족하다.
- Your Highlight on page 63 | Location 952-961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7:51:05 PM
이러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환원주의적 학문 활동에 정면으로 도전한 철학자는 사르트르Jean-Paul Sartre(1905~1980)였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비웃었다. 그는 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그리고 그 자리에 이성만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지를 성찰했다. 그는 어떤 특정한 것으로 만들어지거나 조종될 수 있는 수동적 인간상을 거부했다. 키르케고르가 상정했던 것처럼 인간은 주어진 상황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해야만 하는 불안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주체적으로 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져 있으며,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적극적이고 실존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무의식에 의해 조종당하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사르트르는 그 자신이 레지스탕스 운동을 조직했고, 사회 변혁을 위한 다양한 현실 참여 활동(앙가주망)에 매진했다.
- Your Highlight on page 64 | Location 981-992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7:52:05 PM
어떻게 된 일인지 신에 대한 믿음이나 인간의 이성이 발달할수록 인간 자신은 자원화되었다. 오늘날 인간을 자원resource으로 보는 관점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무엇을 위한 자원인가? 돈을 위한 자원이다. 천연덕스럽게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자원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스스로 쓰고 있는 인적자원Human Resource이라는 말은 이런 전통 속에서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용어다. 근본주의적 이념들, 논리로 포장되어 있는 파편화된 개념들, 분석적 틀에 의해 편협해진 이론들, 상업주의에 편승한 사상들이 오늘날 지성계를 감싸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영혼은 이러한 모든 신앙의 이데올로기와 과학적 분석의 틀을 넘어선다. 영혼의 능력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하고, 타인과 연결되어 있도록 하며, 사태의 진선미를 분별하여 행동하게 하는 가장 고도한 정신 능력이다. 인간에게 고유한 이 위대한 정신 능력이 그동안 어떻게 억압되어 왔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신앙이라는 도그마가, 이성이라는 논리가, 과학이라는 칼날이 영혼의 능력이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지 않았다. 오늘날 과학적ㆍ실증적 분석의 틀 안에 인간은 갇혀 있다.
02. 경영학은 인간을 무엇으로 보는가
- Your Highlight on page 66 | Location 1002-1010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7:52:51 PM
경영이란 본질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인간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환원주의에 사로잡힌 경영자나 경영학자들은 기계론적 인간관에 근거하여 경영개념과 이론을 세운다. 이것이 미국 경영학의 특징이다. 그 출발점이 바로 테일러리즘이다. 테일러는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생각했다. 노동자의 근육을 기계 장치와 가장 잘 조화시킬 수 있도록 동작과 시간을 과학적으로 연구해서 훈련시켰다. 그 결과 생산성이 높아지긴 했다. 여기서 ‘과학적’이라는 말은 기업조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산 활동을 계량화하여 숫자로 경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관점은 뉴턴이 생각했던 것과 동일하다. 이 우주가 거대한 시계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기업조직 또한 복잡한 기계 장치로 보고 노동자들을 이 장치의 부속품으로 생각했다. 이런 믿음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 Your Highlight on page 68 | Location 1034-1043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7:55:02 PM
이러한 생각의 끝에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1929~2007)가 말하고 있는 선물의 개념이 있다. 선물에 담긴 의미는 결코 거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계 어디에도 동일한 가치의 물건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불가능한 교환』을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것은 불가능한 교환에서 출발한다. 세계의 불확실성은 세계가 어디에서도 자신의 등가물을 갖지 못하고, 그 어떤 것과도 교환되지 않기 때문이다. …… 세계의 등가물은 없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정의이거나 세계에 대해 정의할 수 없음이다.13 이 세계에는 동일한 의미를 갖는 등가물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마르크스Karl Marx와 프롬Erich Fromm이 그토록 강조했던 “인간을 인간으로서만, 사랑을 사랑으로서만, 신뢰를 신뢰로서만 교환하도록” 해야 한다.
- Your Highlight on page 69 | Location 1053-1062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7:55:57 PM
물론 기업경영에서 일부의 성과들은 자연스럽게 계량화된다. 매출과 이익은 억지로 계량화의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런 숫자들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보자. 세일즈맨 A는 연간 10억 원의 매출을 일으켰고, 세일즈맨 B는 5억 원어치를 팔았다. A는 B보다 두 배 더 잘했는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A는 전국에서 가장 잘사는 부자 동네에서 팔았고, B가 배정받은 판매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였다면 어떨까? 숫자는 그냥 숫자일 뿐 그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계량화된 숫자 자체가 객관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 숫자를 해석하는 사람의 정신적 메커니즘이 얼마나 객관성을 가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다. 매출과 같은 숫자도 해석 판단의 문제가 이토록 심각한데, 하물며 직원들의 일하는 태도와 역량, 직원들 간의 배려와 신뢰, 의사소통의 효율성과 조직풍토, 경영진의 리더십 등을 도대체 어떻게 계량화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한단 말인가?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간은 결코 기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 Your Highlight on page 70 | Location 1066-1072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7:56:42 PM
이러한 잘못된 인간관은 우리에게 심대한 폐해를 남겨 놓았다. 가치 판단의 유일한 기준은 이윤을 남기는 데 필요한 공학적 효율성과 생산성이 되었다. 그 기준을 채우기 위해 당근과 채찍에 의해 경쟁시키고 통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작용하는 이데올로기는 바로 철저한 경험주의, 실증주의 또는 실용주의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측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뢰와 우정, 사랑과 몰입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래서 측정하기 어려운 항목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재무제표에 이윤을 확대하는 항목들만 중시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이 자본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고, 기업조직은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통제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Your Highlight on page 72 | Location 1090-1094 | Added on Saturday, December 7, 2019 7:57:24 PM
우리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 돈을 번다. 돈은 삶의 풍요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단에 불과한 돈이 목적으로 전도됨으로써 삶의 풍요가 오히려 수단화되었다. 돈을 위해 삶의 풍요를 버려도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삶의 풍요를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돈의 이데올로기화 현상이다.
- Your Highlight on page 81 | Location 1230-1238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8:41:49 AM
경영학에서, 특히 미국 경영학에서 테일러만큼 중요한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는 미국 경영학의 아우구스티누스라 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를 나누어 해석함으로써(이것은 플라톤의 이원론을 신학적으로 재해석하여 받아들인 것이다), 서양의 중세가 현세의 신앙과 내세의 천국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소위 ‘암흑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테일러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구분하고, 실행과 계획을 철저히 구분하는 이원론자였고, 당근(성과급)과 채찍(처벌)으로 구성원들을 쥐어짜는 시스템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이러한 경영사상과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 서양 정신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심각할 정도로 이데올로기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기업조직에서 구성원들이 고유한 영혼의 능력이 발현하는 것을 저해했다.
- Your Highlight on page 82 | Location 1247-1249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8:42:15 AM
테일러는 친구들과 야구를 할 때도 과학적 접근 방식을 그대로 따를 것을 고집했다. 모든 것이 규격에 맞아떨어져야 했기 때문에 야구장의 크기와 베이스의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해야 된다고 우기곤 했다. 화창한 날 오전 대부분을 1인치의 오차도 없이 제대로 측정했는지를 확인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곤 했다.
- Your Highlight on page 82 | Location 1256-1272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8:43:35 AM
테일러의 이런 상황을 조사한 모르간Gareth Morgan은 다음과 같이 썼다. 테일러의 삶은 무의식적인 근심과 집착이 실제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테일러가 창시한 과학적 관리론 전체가 곧 그의 불안하고 신경과민적인 성격의 내면적 갈등 과정이 만들어낸 산물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놀이건 혹은 나중에 그가 창시한 과학적 관리시스템이건 간에, 세상을 정리하고 통제하려고 했던 그의 시도는 바로 자기 자신을 정리하고 통제하려던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보면, 테일러의 경우는 항문기-강박적인 타입의 성격the anal-compulsive type of personality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예라 하겠다. …… 성인의 성격적 특성은 유년기의 경험, 특히 아이가 자신의 성적인 충동을 외부의 통제와 제약요소들이 미치는 힘과 조화시키고 타협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19 항문기의 강박적 타입이란 문자 그대로 무의식적 표상에 의해 모든 것이 타이트하게 조여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적 특성을 말한다. 항문은 평소에는 항상 조여져 있는 상태여야 한다. 만약 조여 있지 않으면 배설물이 흘러나와 문제가 생긴다. 그렇지만 이따금 풀어주어 정상적인 배설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항문이 조여 있는 상태는 무의식적 작용이므로 의식할 수 없다. 성격 발달이 이런 특성을 갖는 항문기에 고착되어 있을 경우, 사물이나 현상이 질서정연하게 조여 있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 매우 불편해진다. 그래서 질서 잡기와 조임을 강박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이런 성격은 일하는 동안 내내 사람들과 대립과 갈등을 만들어냈다. 그의 아내 루이즈는 테일러와의 결혼 생활 동안 수많은 병으로 고생했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기적적으로 완쾌되었다.20
- Your Highlight on page 89 | Location 1354-1357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8:48:23 AM
과학적 관리의 핵심은 측정하여 숫자로 통제하는 것이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숫자였다. 테일러는 경영의 모든 것을 수치화하지 못하면 관리할 수 없다고 믿었다. 테일러는 일일이 숫자로 지시하는 경영방식을 좋아했다. 노동자에게 보일러를 청소하라고 시킬 때는 그냥 걸레만 주지 않았다. 청소하는 방법이 자세히 적힌 종이를 함께 주었다.
- Your Highlight on page 90 | Location 1379-1388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8:58:00 AM
약 1600년 전, 그것도 전혀 다른 대륙에 살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이원론과 원죄론이 서양 세계를 신앙의 도그마에 빠져들게 했다. 그리고 성서와 세계에 대한 해석 권한도 교황청이 독점함으로써 인간에게 고유한 영혼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신앙과 천국이었다. 테일러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엄격히 구분했고, 육체노동이 정신노동에 복종해야 하는 규율을 확립했다.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권한이 사제들에게만 허용되었듯이, 숫자를 만들어서 경영에 활용하는 것은 정신노동자인 관리자들에게만 허용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인간의 현세적 삶이 내세를 지향하도록 만든 것처럼, 테일러는 노동자들의 삶을 성과급에 연연해 하는 기계의 부속품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 테일러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라기보다는 합리화와 생산성이었다. 오늘날 경영학이 인간에 대한 관심보다는 성과급과 생산성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 Your Highlight on page 91 | Location 1388-1394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8:58:22 AM
숫자에 대한 강박 관념은 그의 말년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는 잔디가 자라는 것을 관찰하며 여생을 보냈는데, 완벽한 잔디를 만들기 위해 800회 이상 실험을 했다. 그는 1제곱센티미터에 심어진 잔디 잎을 늘 계산했다. 생애 마지막 한두 해 동안 테일러는 잔디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만약 모르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잔디에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그의 관심은 ‘잔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잔디가 자라는 공정’에 집중되어 있었다. 절대 꺼질 줄 모르는 테일러의 숫자에 대한 강박 관념은 ‘인간’이 아니라 ‘노동 행위의 합리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 Your Highlight on page 92 | Location 1399-1409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8:58:50 AM
테일러리즘은 포드자동차에서 꽃을 피웠다. 포드Henry Ford(1863~1947)는 공장을 이동식 조립 라인으로 만들어서 과학적 관리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포드는 1914년 1월 5일, 수익 중 1,000만 달러를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는 데 쓰겠다는 파격적인 발표를 했다. 당시 주급 11달러에 불과하던 노동자의 임금을 하루 5달러, 주급 30달러로 올렸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 전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특히 언론에서 이것을 대서특필했다. 대부분의 언론이 “아낌없이 주는 관대한 행위”라고 칭찬했지만, 유독 《월스트리트 저널》이 “산업계에서 시도된 가장 어리석은 행위”라고 혹평했다. 포드사의 생산성 향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나중에 밝혀졌는데, 이동식 조립라인을 통해 절감된 경비는 노동자들에게 하루 20달러, 주당 120달러를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 중에서 약 1,120만 달러가 주주들에게 지급된 셈이었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자, 포드는 매우 큰 폭의 임금을 다시 삭감해 버렸다. 포드는 결코 박애주의자가 아니었다.
- Your Highlight on page 92 | Location 1409-1418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8:59:38 AM
테일러의 성과급과 생산성이라는 복음이 휩쓸고 있던 시절인 1930년대 후반, 기업경영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나드Chester Barnard(1886~1961)인데 우리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대학에서 직업적인 학자로 연구한 적이 없다. 사기업에 입사해서 사장까지 지냈고, 공기업과 비영리단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경영자로서 인간에 관한 깊은 통찰력이 있었고, 미국의 경영학사에서 아마도 가장 탁월한 경영학자로 기억될 만큼 위대한 인물이다. 요즘 경영구루management guru라고 불리는 피터스Tom Peters(1942~)와 같은 부류의 경영이론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부류의 이론가들은 대부분 인간과 조직에 관한 심오한 지식이나 통찰력이 부족하다. 다행스럽게도 바나드는 자신의 사상을 1938년에 『경영자의 역할The Functions of Executive』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 Your Highlight on page 93 | Location 1424-1428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8:59:59 AM
바나드는 기업경영에서 스톱워치로 잰 숫자들로는 구성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나온 숫자들을 인간의 감정적 에너지에 조화를 시켜서 조직의 효율성과 구성원들 간의 협력을 끌어내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오늘날까지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효율성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협력 의지에 관한 문제다. 그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한 후, 그의 사상이 나중에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살펴보자.
- Your Highlight on page 94 | Location 1429-1439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9:13:48 AM
경영자는 조직의 공동목적을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조직의 목적과 개인의 동기를 일치시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조직이 공동의 목적을 성취함으로써 구성원의 개인적 욕구가 충족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효과성effectiveness과 효율성efficiency의 개념적 분리가 나타난다.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효과성은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는 정도를 의미하고, 효율성은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구성원의 동기가 충족되거나 만족하는 정도를 말한다. 그러니까 효과성이 높아도 효율성은 낮을 수 있고, 효과성이 낮아도 효율성은 높을 수 있다. 나아가 바나드는 효율성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판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충성심과 신뢰, 팀워크, 조직 목적에 대한 헌신과 같은 추상적 개념들, 즉 구성원의 태도 변화와 같은 요소들은 공학적으로 다루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했다. 바나드가 효율성이란 구성원의 만족감을 나타낸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은 그 후의 연구자들에 의해 한결같이 공학적 의미로 변질되었다.
- Your Highlight on page 95 | Location 1446-1459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9:20:28 AM
이렇게 인간이 숫자에 치명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았던 사이먼Herbert Simon(1916~2001)은 효율성이라는 용어를 숫자로 대치시켜 버렸다. 바나드의 『경영자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지만, 측정할 수 없는 것보다는 숫자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사이먼은 1945년에 『관리행동론Administrative Behavior』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여기서 효율성efficiency이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대안 중에서 최대의 이익을 조직에게 가져다 주는 대안을 선택하게 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러고 나서 주관적 가치가 제거된 소위 ‘무자비한 효율성’ruthless efficiency을 계산하여 관리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경제적이고도 합리적인 효율성 개념을 다양한 분야에 적용함으로써 나중에는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았다. 계량화되는 효율성이론이 노벨상까지 타게 되자, 그 후의 경영학과 경제학에서는 소위 효율성 공학efficiency engineering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효율성 공학에는 모든 것이 측정 가능해야 하며, 계산할 수 있는 숫자로 표현되어야 한다. 만약 측정할 수 없는 대상이 있다면 측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형시켜야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소리 아닌가?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 이것은 테일러의 신앙이었다. 사이먼을 통해 숫자에 대한 믿음이 미국 사회에 다시 부활한 것이다.
- Your Highlight on page 96 | Location 1460-1464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9:20:48 AM
협력 의지의 문제 어떤 사태가 숫자로 표현되는 순간 구성원들 간의 협력 의지는 사라진다. 서로 비교하고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숫자의 위험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직구성원들이 숫자에 매몰될 때, 조직의 목적에 공헌하기 위한 협력 의지는 파괴되고 이기적 탐욕이 드러난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숫자에 의해 발생하는 탐욕은 반드시 지배와 착취의 관계를 강요한다. 숫자는 결코 중립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
- Your Highlight on page 96 | Location 1460-1464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9:20:57 AM
어떤 사태가 숫자로 표현되는 순간 구성원들 간의 협력 의지는 사라진다. 서로 비교하고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숫자의 위험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직구성원들이 숫자에 매몰될 때, 조직의 목적에 공헌하기 위한 협력 의지는 파괴되고 이기적 탐욕이 드러난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숫자에 의해 발생하는 탐욕은 반드시 지배와 착취의 관계를 강요한다. 숫자는 결코 중립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
- Your Highlight on page 98 | Location 1492-1513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9:27:58 AM
결론은 이렇다. 경영(학)은 인간을 숫자로 본다. 인간이 만든 합리적ㆍ계량적ㆍ과학적 모델은 세상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천재들이라 할지라도 서로 협력하지 않고는 높은 성과를 낼 수 없다. 숫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협력 의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지성과 감성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이 세계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과학적 연구가 진전되면 인간이 만든 합리적 모델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신념이 사라지지 않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세계는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합리화ㆍ계량화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있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결코 합리화되지 않는 영역에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바나드가 제시한 것처럼 계량화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가려서 조직에 영혼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위대한 경영학자 바나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엇이 개인의 궁극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고, 조직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하는 인식은 개인의 내부가 아닌 외부 환경에서 생겨야 한다. 이 인식은 사회적ㆍ윤리적ㆍ종교적 가치다. 이 가치가 널리 보급되기 위해서는 지성intelligence과 영감inspiration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성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이 지성은 공식적인 교육보다 협력의 경험에서 생기는 것이다. 영감은 조직에 통일감을 주고 공동의 이상ideals을 창조하기 위해 필요하다. 구성원들이 이 이상을 지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마음으로부터 수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늘날 여러 사건을 제대로 관찰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동의 이상에 대한 신념이 구성원들의 협동을 이끌어내는 데 필수 불가결한 것이고,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것이다.33 이미 1930년대에 조직을 오늘날과 같은 성과급의 ‘경쟁체계’가 아닌 ‘협동체계’로 파악했던 바나드의 혜안이 놀랍지 않은가! 하지만 그의 후학들은 인간의 협력 의지도 숫자로 전환시켰다. 인간의 사고력과 의지, 그리고 그에 따른 행위들을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여 자본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돈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리하여 인간의 행위가 인적자원으로 전환된 것이다.
- Your Highlight on page 108 | Location 1654-1656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11:41:18 AM
드러커는 테일러리즘이 추구했던 합리화 또는 계량화가 가져다주는 생산성은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 보았다. 그래서 근로자 개개인에게 자율적으로 목표를 세워서 일하게 한다면 더 높은 동기를 부여하게 될 것이므로 오히려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 Your Highlight on page 112 | Location 1718-1725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11:48:57 AM
키르케고르는 이 단락에서 인간, 정신, 자기, 관계라는 네 단어를 조합하여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다. 인간 정신의 근원은 자기self이며 자기는 관계를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은 관계 맺어진 존재이며, 관계라는 독립된 제3의 영역이 자기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의해 인간의 실존적 상황이 결정된다는 것이다.39 그래서 인간의 실존이 뭐 어쨌다는 건가? 구성원들 간에 서로 관계가 맺어져 있을 때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관계가 파괴되었을 때, 인간은 절망한다. 이 절망이 곧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이다. 인간이 생물학적인 존재가 아닌, 영혼과 정신을 갖춘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타인과의 ‘연결되어 있음’connectedness의 상태를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다.
- Your Highlight on page 116 | Location 1776-1790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11:52:37 AM
이제 실존의 개념에 대해 좀 더 깊이 논의해보자. 여기 볼펜이 있다. 이 볼펜의 본질은 무엇인가? 변하지 않는 본질은 아마도 전자나 쿼크 알갱이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은? 역시 전자나 쿼크 알갱이 아니겠는가? 극단적인 요소 환원주의로 밀어붙이자면 볼펜과 인간의 본질은 같다고 말해야 한다. 본질주의로 설명한다면 인간은 작은 알갱이들이 특수하게 뭉쳐 있는 육체 덩어리일 뿐이다. 본질주의로만 인간을 설명하면 이런 엉터리 결론에 도달한다. 이 지점에서 실존적 사유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물과 인간의 근본적 차이를 실존주의적 접근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볼펜의 본질이 아닌 존재 목적을 물어보자. 볼펜의 존재 목적은 글씨를 쓰는 데 있다. 만약 망가져서 더 글씨가 써지지 않는다면 그 볼펜의 존재는 어떻게 될까? 그러면 우리는 그 볼펜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별로 비싸지도 않기 때문에 다른 것을 사서 쓰면 된다. 어떤 사람은 다 쓴 볼펜 여러 개를 모아서 아이들 장난감으로 쓸 수도 있다. 몽당연필을 끼워 쓰는 도구로 이용할 수도 있다. 그 볼펜은 더는 볼펜이 아니지만, 주인이 그 볼펜을 사용할 용도에 따라 무한한 변용이 가능하게 된다. 그 볼펜의 존재는 본래의 존재 목적이 있건 없건, 실존하는 (즉 실제로 존재하는) 주인의 의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볼펜은 주인의 부르심(또는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주인이 볼펜에 부여하는 의미, 가치, 목적에 따라 볼펜의 기능과 존재 이유가 달라진다. 요컨대,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은 실존하는 인간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Your Highlight on page 119 | Location 1825-1831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11:56:47 AM
예수가 사역하던 당시 유대인 고급 관료와 지식인들은 곤경에 처한 동족을 모른 체하고 지나갔지만, 그들이 천하게 여기던 사마리아 사람은 오히려 그 유대인을 데려다 극진히 간호했다는 이야기다. 유대인이든 누구든 인간의 본질적 속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이처럼 인간에게 변하지 않는 본질적 속성에 대한 죽은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의 살아있는 실천을 감행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바로 영혼의 능력이며, 이렇게 영혼의 능력이 발현되는 구체적 경험을 ‘실존적 체험’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Jean-Paul Sartre(1905~1980)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 Your Highlight on page 130 | Location 1985-1988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3:14:29 PM
사람들이 때때로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상대방이 해주기를 바란다. 많은 경영자는 부하가 자신의 아바타avatar이기를 원한다. 이런 소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를 나타낸다. 인간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 Your Highlight on page 138 | Location 2114-2118 | Added on Sunday, December 8, 2019 4:07:31 PM
나에게 마음과 영혼에 대한 희미한 생각들을 잘 정리하도록 도와준 책이 샤노어Karen Shanor가 편집한 『마음을 과학한다』이다. 그 책 내용 중에서도 특히 신경외과 의사인 스탠퍼드대학교의 프리브람Karl Pribram(1919~)과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1917~1992)이 뇌의 인지구조를 홀로그램모델hologram model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도움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