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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bertoMaturana의 저작.

Contents

  1. Knowing How We Know
  2. The Organization of Living Things
  3. History: Reproduction and Heredity
  4. The Life of Metacellulars
  5. The Natural Drift of Living Beings
  6. Behavioral Domains
  7. The Nervous System and Cognition
  8. Social Phenomena
  9. Linguistic Domains and Human Consciousness
  10. The Tree of Knowledge

이 책은 뭐에 대한 책일까?

우리가 어떻게 아는지를 아는 것. 살아있는 것들의 기관(조직). Heredity가 뭐지? Metacellular는 뭐지? 단세포에 대비되는 다세포인가? 왜냐면, unicellular라는 표현도 나오거든. 생물의 drift? 행동적 도메인? 신경 시스템과 인지. 사회적 현상. 언어 도메인과 인간 의식. 앎의 나무.

도통 모르겠네. 책 뒤 표지를 보면 힌트가 있을까?

"Knowing How We Know"가 이 책의 주제이다. 인지(cognition)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다.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세계는, 우리가 공존하는 행동을 통해 함께 창조한다는 것이다.

1. 앎을 알기(Knowing How We Know)

커다란 유혹

그는 예수를 끌어당겨 예수의 자유와 시선을 제약하고 있다. 그는 예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는 알아요. 저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어요!" 이 인물은 확실성의 유혹을 체현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확실한 세계, 논란의 여지없이 정확히 지각할 수 있는 세계 안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세계 안에서 사물이란 오로지 우리에게 보이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확실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문화권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적 방식이다.

이 책 전체는 확실성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버릇을 떨쳐버리도록 독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1. 오로지 독자들이 자신의 확신을 버릴 때에만 이 책에서 전달하려는 인식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독자 자신의 경험 속으로 힘차게 파고들 것이기 때문이다.
  2. 앞으로 인식현상과 그것에 바탕을 둔 행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알게 되겠듯이, 모든 인지적 경험은 자신의 생물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매우 개인적으로 존재하는 인식자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확실성의 경험이란 타인의 인지적 행위를 보지 못하는 개인적 현상이다. 이것은 일종의 고독이며, 오로지 우리가 타인과 함께 만들어내는 공동의 세계 안에서만 극복할 수 있다.

우리 눈의 놀라운 점

언뜻 확실하게 짜인 듯한 우리의 경험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얼마나 빨리 의심스러워지는지를 간단한 두 가지 상황을 통해 증명해보이겠다. 둘 다 일상적 시각경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첫째 상황. 맹점 실험.

사람들은 이 현상을 보통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검은 점의 상이 와닿는 망막부위는 시신경이 빠져나가는 곳이기 때문에 빛에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이 부위를 '맹점'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설명은 왜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의 시각에 늘 그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지 않은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주지 못한다. 맹점의 실험이 극적으로 보여주듯이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한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둘째 상황. 색 그림자 현상.

내가 오렌지를 집 안에서 뜰로 들고 나가도 오렌지는 똑같은 색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컨대 집 안의 형광등에서 나온 네온 빛은 주로 단파의 푸른빛으로 이루어진 반면, 햇빛은 주로 장파의 붉은빛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오렌지의 색이 우리에게 꽤 일정하게 보이는 일과 오렌지에서 반사된 빛의 성질은 단순하게 서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요점은 색채지각 현상을 설명하려면 먼저 우리가 바라보는 물체의 색이 그 물체를 떠나온 빛의 속성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색채지각이 신경계의 특정 흥분상태에 - 이것은 신경계의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지를 이해하는데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종류의 실험들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이것들은 우리의 경험이 우리의 구조와 뗄 수 없게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세계의 '공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야를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색깔'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색체공간을 체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한 세계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계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세계가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라는 문제는 우리의 생물학적-사회적 행위의 역사와 떼놓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뚜렷하고 당연해서 오히려 깨닫기가 매우 어렵다.

매우 부끄러운 일

거울에 반사된 순간이란 언제나 아주 특별한 순간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다른 방식으로는 볼 수 없는 자신의 일부를 깨닫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구조를 보여주는 맹점이 드러날 때와도 같다. 나아가 맹점 때문에 생긴 눈먼 상태가 그 틈이 메워짐으로써 사라질 때와도 같다. 반사 또는 성찰(reflection)이란 자기가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행위인 것이다. 이것은 눈먼 자신을 깨닫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인식과 확신도 마찬가지로 굳고 드세지만 결코 확실하지 않음을 깨닫는 유일한 순간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생물학적 특성과 활동에 관련된 과정들이 인식 활동의 기초를 이룬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바로 이 과정들을 사용해 인식활동을 연구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행위와 경험은 온갖 규칙적인 것들로 가득 찬 이 세계와 뗄 수 없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가 시도할 수 있고 또 독자들이 자신의 특별한 과제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존재와 행위와 인식이 언제나 함께 얽혀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내는 일이다. 우리는 일상의 태도를 떨쳐버려야 한다. 마치 확실성을 보장하는 도장이 우리에 경험에 찍혀있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우리의 경험이 어떤 절대적인 세계를 반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기를 그만두어야 한다.

독자들은 마치 '사실'이나 물체가 저기 바깥에 있어서 그것을 그냥 가져다 머리에 넣으면 되는 것처럼 인식현상을 보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늘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려는 모든 것의 근본이다.

어떤 물체가 '저기 바깥에' 있다는 경험은 인간의 구조에 의해 특수한 방식으로 형성된다. 이런 뜻에서 인간의 기술은 기술 활동을 통해서 생겨나는 '물체'의 가능조건이다.

이러한 순환성, 행위와 경험의 뒤얽힘, 한편으로 우리의 존재방식과 다른 한편으로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 사이의 불가분하나 관계, 이것들은 다시 말해 인식활동이 세계를 산출함을 뜻한다. 인식의 이런 속성이야말로 우리의 문제이자 출발점이며 탐구의 길잡이이다. 이 모든 것을 다음의 경구로 간추릴 수 있겠다.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행위와 경험의 순환성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책 전체에 걸쳐 이 경구를 늘 마음 속에 새겨두길 바란다. 말한 것은 모두 어느 누가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한 세계를 산출하는 성찰 자체는 언제나 어느 한 개인이 어느 한 장소에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두 경구를 등대삼아 우리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늘 둘러보아야 할 것이다.

인식활동이 세계를 산출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이것을 곤란한 방해물, 오류, 설명할 수 없는 잔여분 따위로, 다시 말해 제거해야할 어떤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관점에서 예컨대 색 그림자 현상은 '실제로' 아무 색깔도 없으므로 '착시'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견해는 정반대다. 세계를 산출하는 인식의 속성은 인식을 인식하기 위한 열쇠이지 제거해야 할 방해물이 아니다. 인식이 세계를 산출한다는 것은 인식하면서 존재하는 우리의 가장 깊은 뿌리와 뒤얽혀 있다. 우리의 경험이 얼마나 확실해 보이든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 뿌리는 인간 존재의 생물학적 바탕에까지 뻗어 있기 때문에, 이 산출작용은 우리의 행위와 존재 전 영역에 걸쳐 나타난다. 따라서 이것은 인간의 사회적 삶과 행위에서도, 예컨대 우리의 가치와 취향에서도 나타난다. 사회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과 그것들의 생물학적 뿌리 사이에 불연속이란 없다. 인식현상은 한 덩어리다. 그것은 모든 측면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설명

이제 우리의 목표가 뚜렷해졌다. 우리는 인식현상을 연구하고자 한다. 인식과정에 행위가 늘 함께 있다는 사실, 이런 의미에서 세계의 산출을 우리의 문제이자 출발점으로 삼아 인식현상의 뿌리를 파헤치고자 한다.

과학적 설명을 내놓을 때 반드시 충족해야 할 본질적인 네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설명할 현상(들)을 관찰자 공동체가 받아들일 만한 방식으로 기술하기
  2. 설명할 현상을 관찰자 공동체가 받아들일 만한 방식으로 생성할 수 있는 개념 체계를 내놓기 (설명가설)
  3. 이 개념체계를 내놓을 때 분명히 고려되지 않은 다른 현상들을 2에서 도출하기. 그리고 관찰자 공동체 안에서 그것들으이 관찰조건을 기술하기.
  4. 2에서 도출한 현상들을 관찰하기.

이제 독자들과 우리 지은이들은 기술하는 관찰자가 되었다. 그리고 관찰자인 우리는 인식을 설명할 현상으로 골랐다. 이제 인식현상에 대한 기술을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도 뚜렷해졌다. 곧 모든 인식활동이 저마다 한 세계를 산출하므로 우리의 출발점은 생물이 자신의 존재영역에서 벌이는 효과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과학적으로 타당한 설명을 내놓기 위한 우리의 출발점은 인식을 효과적인 행위로 이해하는 것이다. 곧 한 생물이 특정 환경에서 자신의 세계를 산출함으로써 그 환경에서 생존을 지속케 해주는 행위로 인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중에 우리가 인식현상에 대한 만족스런 설명을 내놓았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인지현상이 생물의 작업을 통해서 생겨남을 보일 수 있는 개념체계를 우리가 내놓으면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설명과정 자체가, 우리처럼 무엇을 기술하고 그것에 관해 성찰할 줄 아는 생물이 자신을 실현한 결과로, 다시 말해 존재영역(환경)에서 효과적으로 작업한 결과로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가 보이면 되는 것이다. 설명에 대한 이런 제안을 바탕으로 우리는 세상에 알려진 인식활동의 온갖 차원들이 어떻게 생성될 수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2. 생명체의 조직

우리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인식이 행위를 통해 세계를 산출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 인식의 이런 작업 방식을 가능케 하는 뿌리와 기제는 무엇인가?

이런 물음과 관련하여 우리의 개념적 전개의 첫 단계는 다음과 같다. 인식자의 행위인 인식은 인식자의 생물학적 본성, 곧 생명체의 조직에 뿌리내리고 있다. 우리의 견해에 따르면 그저 신경계의 여러 과정들을 연구하는 것으로는 인식의 생물학적 뿌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신경계의 이런 과정들이 생명체의 전체 과정 속에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구 역사에 대한 짧은 소개

생물의 조직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먼저 생물의 물질적 측면이 생물의 기본형태를 이해하는 데 어떤 단서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물질의 변천이 거쳐 온 주요 길목들을 짚어보면서 이런 과정을 통해 어떻게 생물이 출현하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별의 역사가 시작될 때 분자물질들은 근본적으로 동질적이었다. 그러나 행성들이 생겨난 뒤에 화학적 변화가 꾸준히 일어나 지각 표면과 대기에 꽤 다양한 분자물질들이 생겨났다.

이처럼 복잡하고도 꾸준하게 전개된 분자변화의 역사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탄소사슬로 이루어진 분자, 곧 유기분자들이 많아지고 다양해진 시점이다. 탄소원자는 홀로 또는 다른 원소들과 함께 성분, 크기, 분지형태, 원자배열 등이 다른 여러 화합물을 무한히 많이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유기분자의 형태학적, 화학적 다양성은 원칙적으로 무한하다.

유기분자의 이런 화학적, 형태학적 다양성 덕분에 비로소 생물이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이것 덕분에 비로소 생물이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이것 덕분에 비로소 생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다양한 분자반응이 가능하다. 이 점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원시지구 위를 거닐었다면 분자반응의 진정한 자양액인 파도가 세찬 바다와 대기에서 유기분자가 꾸준히 (생물의 관여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과정을 접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생물의 출현

원시지구의 바다 속에서 진행된 분자물질의 변화가 이 시점에 이르렀을 때, 아주 특별한 분자반응을 하는 체계가 생길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유기분자 영역 안에 다양성과 신축성이 생김에 따라, 자신을 이루는 분자들과 같은 부류의 분자들을 다시 생산하고 통합하는 분자반응들의 그물체가 생기게 되었다. 이 그물체는 자기를 실현하는 가운데 주위 공간에 대한 경계를 스스로 만든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생산하면서 자신의 경계도 결정하는 분자적 상호작용들의 그물이 바로 생물이다.

이제 우리는 생명체와 비생명체를 가르는 기준에 대해 우리는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 제안은 여러 속성들을 열거하는 전통적인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문제 자체를 매우 단순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관점을 바꾸기에 앞서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곧 생물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는 것은 이미 생물의 조직에 대해 흔히 자기도 모르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어떤 것이 살아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답하는 일은 결국 이 생각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이런 생각에 매이거나 속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우리의 제안을 살펴보기로 하자.

조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것이 어떤 것이기 위해 있어야만 하는 관계들이다. 이것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대답이다.

어느 물체를 가리키거나 구분하면서 그것의 조직을 암묵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인정하는 일은 구분행위가 우리의 근본적인 인지활동인 만큼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 이런 구분행위를 통해 온갖 부류가 생겨난다.

어떤 부류에 속한 물체들을 일단 가리키고 나면 그것의 조직을 보이기는 간단하다. 하지만 그 조직을 이루는 관계들을 정확하고도 명시적으로 기술하기란 복잡하고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왜냐하면 기술의 타당성을 받아들여야 할 사람들이 상이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생물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생물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음을 가정한 셈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을 '생물'이라는 부류로 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부류로서 정의하는 조직이 무엇인지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생물을 특징짓는 것은 자기 자신을 말 그대로 지속적으로 생성하는데 있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생물을 정의하는 조직을 자기생성조직이라 부르고자 한다. 이제 이 조직을 정의하는 관계들을 열거하겠는데, 세포 수준에서 이것을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먼저 세포라는 자기생성개체의 분자요소들이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그물 안에서 역동적으로 서로 얽혀있어야 한다. 이 그물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변화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이미 상세히 밝혀졌다. 생화학자들은 이런 화학반응을 일반화하여 세포의 물질대사라 부른다.

자율과 자기생성

3. 역사: 생식과 유전

생식의 과정

개체가 생기는 몇 가지 방식

세포의 생식

생식과 유전

4. '메타세포체'의 삶

구조접속

생활주기

변모의 속도

메타세포체의 조직

5. 생물의 자연표류

결정(determiniation)과 구조접속

개체발생과 선택

계통발생과 진화

자연표류

6. 행동의 영역

예측 가능성과 신경계

개구리와 늑대소녀

줄타기 곡예

행동과 신경계

7. 신경계와 인식

이 장에서는 신경계가 유기체의 상호작용 영역을 어떤 방식으로 넓히는지 살피고자 한다. 이미 보았듯이 행동은 신경계의 발명품이 아니다. 오히려 행동은 어떤 매질(medium) 안에서 관찰되는 모든 개체(einheit)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매질 안에서 개체는 섭동작용의 영역을 규정하고 또 섭동작용이 유발한 상태변화의 결과로서 자기 조직을 보존한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행동이 신경계를 가진 동물을 특징짓는 어떤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운동의 자연사

쇠귀나물이 물 밖에서 자랄 때는 위쪽 그림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수면이 높아져 물속에 잠기면 며칠도 안되어 구조변화를 거쳐 수생식물 형태로 바뀐다. 변화는 거꾸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때는 쇠귀나물의 여러 부분들이 갖가지 형태로 분화하는, 참으로 복잡한 구조변화가 일어난다. 이겋은 행동으로 기술할 수도 있을 예다. 왜냐하면 주위환경의 어떤 재귀적 섭동을 식물이 보정하면서 생긴 구조변화가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형태변화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이런 일은 식물이 발달하면서 생긴 변화라고 말하지 행동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왜 그런가?

쇠귀나물의 예를 아메바가 먹이를 잡아먹는 행동과 비교해보자. 그림 40에서 아메바는 위족을 내밀어 작은 원생동물을 잡아먹고 있다. 위족은 원형질이 늘어난 것 또는 손가락 모양으로 젖혀진 것인데, 세포막의 물리화학적 성질이 곳에 따라 변하는 일과 관계가 있다. 그 결과 원형질이 일정한 곳으로 흘러가면서 아메바를 이쪽저쪽으로 떠민다. 이것이 아메바의 운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쇠귀나물에서 일어난 일과 달리, 어느 누구도 이것을 행동으로 기술하기를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보기엔 이 두 경우 사이에 또렷한 연속성이 있다. 둘 다 행동의 양식들이다. 아메바에서는 운동을 볼 수 있지만 쇠귀나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는 행동이라 부르고 하나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 것이 얼마나 고지식한 것인지를 강조하고 싶다. 사람들은 아메바의 운동과 더 고등한 동물들의 매우 다양한 행동방식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모두 이런저런 형태의 운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쇠귀나물이 분화하면서 생기는 변화는 속도가 느려서 사람들에게 익숙한 운동과 꽤 거리가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형태의 변화로 본다.

사실 운동의 가능성은 신경계의 출현 및 변천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운동의 역사에서 매혹적인 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림 41은 자연적으로 생긴 개체들의 크기와 운동능력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이때 운동능력은 각 개체가 낼 수 있는 최고속도로 측정했다. 여기서 잘 볼 수 있듯이 '크고' '작은' 맨 끝 영역에 있는 은하계와 소립자는 초당 수천 킬로미터의 속도로 매우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생물을 구성하는 큰 분자를은 크기가 커짐에 따라 운동속도가 느려짐을 볼 수 있다. 이런 분자들은 끈적끈적한 주위환경을 이루는 다른 분자들 사이를 움직인다. 예컨대 사람에게 많은 단백질과 같은 분자들은 매우 크기 때문에 그것들의 자발적인 위치변화는 더 작은 분자들의 운동과 비교할 때 하찮은 것이다.

바로 이 영역에서 자기생성체계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2장에서 보았듯이 큰 유기분자들이 많이 있음으로써 생긴다. 그 뒤로도 더 큰 개체들이 생겨나다가 그림 41의 곡선이 갑자기 꺾이는데, 이곳은 편모나 위족과 같은 구조물들이 생기는 변천의 시점이다. 이런 구조물들에 힘입어 운동능력은 눈여겨볼만하게 커진다. 왜냐하면 이제 점성의 힘보다 훨씬 더 센 힘이 작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다세포생물들이 생겨나고 몇몇은 세포분화를 계속하여 더욱 극적으로 운동능력을 발달시킨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운동이 생물의 모든 형태에 걸쳐 빠짐없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자연표류를 거쳐 생겨난 식물들이 그 결정적인 예다. 식물에게는 존재의 한 방식인 운동이 본질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식물이 광합성을 하여 자기를 보존하는 일이 다음과 같은 조건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곧 식물은 좁은 공간 안에서 땅으로부터 물기와 자양분을 꾸준히 공급받고 또 공기 속에서 기체와 빛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은 자리를 빨리 옮기지 않고도 적응력을 보존할 수 있다.

자연표류를 통해 운동능력을 지니게 된 생물들에서야 비로소 신경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세포생물의 감각운동적 조정

원생동물을 잡아먹고 있는 아메바를 다시 잠깐 살펴보자. 이때 무슨 일이 잇달아 일어나는가? 아마도 다음과 같이 간추릴 수 있을 것이다. 원생동물이 가까이 있으면, 아메바 막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물질들이 주위 환경에 모이게 된다. 이 물질들이 원형질의 굳기에 변화를 유발하여 위족이 밖으로 젖혀진다. 위족 때문에 아메바가 움직여 위치에 변화가 생기고, 그럼으로써 주위 환경에서 아메바 막과 상호작용하는 분자들의 수가 달라진다. 이 순환이 되풀이되는데, 이때 아메바가 자리를 옮기는 일은 막의 변화와 원형질변화 사이에 내적 상관관계가 보존된 결과다. 다시 말해 섭동을 받는 곳(감각부위)와 운동을 산출하는 곳(운동부위) 사이에 재귀적인 또는 불변적인 상관관계가 형성되고, 그럼으로써 아메바 안에 있는 몇몇 서로 맞물린 관계들이 그대로 유지된다.

작은 설탕 알갱이 한 개가 구석에 놓여 있는 환경에 세균을 넣으면 세균이 흔들거라는 운동을 재빨리 멈추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세균은 편모의 회전방향을 바꿔 설탕 농도가 가장 큰 곳으로 농도차를 따라 움직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세균의 막에는 설탕과 특정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도록 특수화된 분자들이 있어서 세균 가까이에 농도차가 있으면 내부변화가 일어나 편모의 회전방향이 바뀐다. 이때도 매순간 세포의 감각부위와 운동부위 사이에 안정된 상관관계가 산출되며, 그럼으로써 특정 물질의 농도가 더 큰 곳으로 이동하는 행동이 생긴다. 추화성(chemotaxis)으로 알려진 이것은 단세포 수준에서 볼 수 있는 행동의 한 예로서 그것의 분자적 과정이 꽤 자세히 밝혀져 있다.

이런 세균들과 달리 앞서 말한 쇠귀나물이나 그 밖의 식물들에게는 이동을 위한 운동부위가 없다.

다세포생물의 감각운동적 상관관계

이제까지 몇 가지 예를 통해 단세포생물의 운동, 곧 자리를 옮기는 행동이 감각부위와 운동부위 사이의 특별한 상관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이 상관관계란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과정, 곧 세포라는 개체에게 고유한 물질대사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짐을 보았다. 그러면 메타세포적 유기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뉴런의 구조

중간뉴런들의 그물체

신경계의 작업적 폐쇄성

신축성

타고난 행동과 배운 행동

인식과 신경계

8. 사회적 현상

3차 등급의 접속

사회적 곤충

사회적 척추동물

사회적 현상과 의사소통

문화적인 것

9. 언어적 영역과 인간의 의식

의미론적 기술

인간 언어의 자연사

실험을 통해 들여다본 정신

정신과 의식

10. 앎의 나무

안다는 것과 알고 있는 사람

앎을 알면 얽매인다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후기

옮긴이의 말

현대 자기조직 개념의 발전

자기생성 개념에 담긴 의미


책/앎의 나무 (last edited 2025-04-13 14:39:50 by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