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에 대한 책.
Contents
현대의 가상의 인물이 순자를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감.
내편 1. 순자 이야기: 인간과 하늘 사이에 선을 긋다
1장. 순자를 만나다
순자를 만나다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과 율곡栗谷 이이李珥란 대학자의 철학과 사상이 저하고 많이 흡사하다고 들었습니다. 또 그들의 철학 사상이 계속 이어지고 발전해 조선이란 나라를 이끌었다지요?
율곡의 유학 사상은, 간단히 말하자면, ‘현실에서의 인간’에 주목합니다. 감정과 욕망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인간이라 전제하지요. 현실의 인간을 일탈하기 쉬운 존재로 상정해, 외적 규범과 기준으로 어떻게 인간을 ‘다시’ 만들것인가를 고민해요.
사실, 선생님의 사상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율곡의 학문은 정통 주자학朱子學이라기보다는 ‘순자적 신유학新儒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율곡의 유학이 조선을 이끌었습니다.
현실주의자 순자
하늘은 그저 하늘일 뿐입니다. 인간 세상을 주재하고 우리들의 기도를 듣고 세상을 자신의 의지대로 만들어가는 그런 하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중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인간 스스로의 노력일 뿐입니다.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고 부지런히 생산하기만 하면 될 뿐이지요.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됩니다. 너무나 쉽고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무는 전국시대
영토 국가들이 등장해 자국 내 군권을 강화했고, 열강이 군웅할거하던 때가 전국시대 아니었습니까? 상호 투쟁에 의한 강대국의 약소국 합병 현상이 빈번했고, 강대국들끼리 치열하게 싸웠지요. 그런데 전국시대 말기가 되자 그러했던 상황이 서서히 끝나고, 통일 제국의 등장이 가시화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제가 활동했습니다.
이런 배경이 선생님의 사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일단은 저부터도 여러 사상을 종합했던 사람입니다. 맹자처럼 원리주의적으로 다른 사상가를 공격하기보다는 다른 사상의 장점을 제 나름대로 흡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유가 사상을 중심으로 다른 사상을 통합하며 저만의 사상을 만들었지요. 그렇게 만든 제 학문과 사상이 철저히 통일 제국, 더 정확히 말해 통일 제국을 다스릴 군주와 관료들을 위한 통치학이 되게끔 애를 썼습니다.
군주를 위하여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요, 선생님의 학문과 철학의 사상적 수요자는 통일 제국을 이끌 군주인가요?
통일 제국을 이끌 군주와 관료, 지식인입니다. 그중에서도 군주가 핵심 수요자입니다.
법으로 대변되는 공적 원리로만 나라를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던 한비자韓非子도 그렇고, 자연의 원리로 비유되거나 설명되는 도로 나라를 끌고 가자고 한 노자老子도 그렇고,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저작자들도 그러합니다. 적지 않은 이가 통일 제국을 염두에 두고 사상을 펼쳤습니다. 다들 저처럼 다분히 군주를 의식했지요. 그런데 한비자와 달리 저나 노자, 《여씨춘추》의 저작자들은 법과 법치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입니다. 법만으로는 통일 제국을 끌고 갈 수 없다고 본 것이지요.
법치는 법으로 인민의 힘을 유기적으로 조직하고, 국가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나라를 강성하게 하지요. 저는 그런 법의 효용성과 기능성 모두 인정합니다. 법치를 통해 힘을 극대화한 진나라가 천하 통일을 눈앞에 두었는데, 그런 현실도 모두 인정했습니다. 다만 ‘통일 이후에도 법으로 인민을 강제하고 끌고 가도 괜찮을까?’ 하는 회의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과연 통일 제국을 안정된 기초 위에서 유지할 수 있을까요? 법으로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걱정이 있었지요.
《여씨춘추》에 법을 대신할 어떤 명확한 통치 원리가 제시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대안이 보이지 않아요. 다만 보령 학생이 말한 것처럼 회의한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하는 노자의 텍스트 《노자老子》가 제가 활동하고 활약했던 시점에 묶여 편집된 것으로 아는데, 노자도 분명히 진나라의 법과 법치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법으로 통일 제국을 다스려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지요. 그래서 지나치게 인위적이거나 강하지 않은 정치, 인민에 대한 최소한의 간섭을 말한 것이지요. 인민을 가혹하게 대해선 안 된다고 하며 수탈과 혹사를 금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순자의 문제의식
공자의 학문이 끊어질 것 같다, 사라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선생님의 텍스트를 읽을 때 느껴졌습니다. 그 위기감 뒤에는 묵가, 법가, 도가를 비롯한 다양한 사상적 경쟁자가 있었고요.
바로 맞췄습니다. 공자 님의 학문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현실성과 효용성 면에서의 약점 탓에 군주들에게 늘 외면받았지요. 또 당대 많은 사상적 호적수에게 이래저래 치였습니다. 맹자가 살았던 시대에는 그가 주적으로 선포한 묵자와 양주楊朱의 무리만이 힘을 떨치고 있었다지만, 제가 살았던 시대에는 전방위적으로 공자 님 사상이 압박을 받았습니다.
사실 공자 님 사상에서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부분은 분명 아쉬운 점입니다. 약점이었어요. 전 그 약점을 보완해야 했습니다. 다른 사상가들과 경쟁해서 이겨내야만 했지요. 참 힘들었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현실 정치 상황에서 공자 님의 이상을 실현해야 했습니다.
어떻게든 현실을 살펴 현실성이 있는 학문을 모색했지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자 님께서 말한 덕치라는 이상에 합치되는 방향이어야 했습니다. 참 어려웠지요. 공자 님 사상도 계승해야지, 타 학파들과 경쟁해 이겨야지, 통일 제국의 등장이라는 현실도 살펴 공자 님의 학문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해야지……. 그러다 보니 더 절박했습니다. 특히 공자 님 사상을 현실성이 있는 학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컸습니다. 현실적인 유학 말입니다.
후한 때 지식인 제갈량諸葛亮이 남긴 《계자서誡子書》가 떠오르네요. 짧은 글입니다. 어린 아들에게 준 글이에요.
- 무릇 군자가 되기 위해선 고요함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절제와 검소함으로 덕을 쌓아야 하는 법이다. 담박하지 않으면 자신의 뜻을 밝게 할 수 없으며,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하지 않다면 원대한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배움에 충실하지 못하면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없고, 뜻이 견고하지 못하면 배움을 완성할 수 없다. 뜻이 흔들리고 산만하고 게으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쉬이 흥분하며 서두르는 마음으로는 바른 성정을 키울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 해를 보내지만 뜻마저 제대로 가누지 못해 그저 세월만 흘려 보내다가 마치 마른 나뭇잎처럼 땅에 뒹굴고 만다. 결국 세상에 제대로 서지 못해 기울어가는 초라한 세계에서 슬픔에 잠겨 살 뿐이다. 그때는 후회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제갈량의 이 말은 담박명지淡泊明志, 영정치원寧靜致遠이란 사자성어 둘로 압축할 수 있어요.
담박명지, 담박해야 명지할 수 있다. 즉 삿된 것에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해야 하며 마음이 항상 그렇게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해야 밝은 목표, 제대로 된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영정치원은, 영정, 평안하고 고요해야 한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잔잔해 모든 사물을 비추어낼 수 있는 물결처럼. 우리 마음이 그래야 치원, 멀리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학문의 끝에 도달해 많은 성취를 이루고 인식의 지평을 끝없이 넓혀 천하의 많은 사람을 자신의 가슴에 품을 수 있답니다.
제갈량의 글의 보면, 우선 학문에 대한 신심 거의 종교적 열정마저 느껴져요. 마음 수양에 대한 관점, 안정됨과 고요함에 대한 강조, 이런 내용은 마음을 맑은 물과 거울처럼 만들라고 강조하신 선생님의 말씀과 겹쳐 보여요. 이것 말고도 학문에 대해 지녀야 할 신실한 자세, 맑고 고요한 마음과 거기에 항상 기울여야 하는 노력에 대한 강조, 길을 가는 것에 비유한 학문 성취의 방법과 인간의 완성 등 한 대 유학자라 그런지 제갈량에게서 선생님의 모습이 진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한나라가 무너지면서 순자적 유학에 반성이 일었습니다. 사회경제적으로 큰 변화가 생겨 토지를 소유한 지주이기도 한 사대부들을 위한 유학을 모색하다 보니 맹자가 각광받았어요. 그 이후 도교와 불교의 도전에 직면해 응전의 차원에서 유학이 진화한 성리학이라는 사상이 만들어졌습니다. 한 대 이후에 선생님의 색채가 강한 유학은 한국에서는 몰라도 중국에서는 다시 주류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2장. 순자의 나라
북방 조나라의 유자
조나라는 지정학적 조건이 좋지 못했습니다. 동쪽으로는 제나라라는 강국과 대치 중이었고, 서쪽으로는 진秦나라에 위협받는 처지였으며, 동북쪽으로는 연燕나라와 마주했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남쪽은 같은 진晉나라의 후신으로 조나라와 더불어 삼진三晉이라고 불린 한나라, 위나라와 접해 있었지요. 그들도 만만치 않은 호적수였습니다. 게다가 북쪽의 흉노匈奴와도 가까웠으며 동호東胡라는 이민족 국가에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런 환경이 저를 현실적으로 사고하게 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당시 초라한 위상의 공자 님 사상을 계승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태어나 자란 조국의 환경 문제도 제게 영향을 미쳤지요. 현실적으로 사유하게 하고 안이한 이상론을 배격하게 한 것이지요. ... 그래서 제가 ‘생존의 유학’, ‘살아남는 유학’의 길을 모색했나 봅니다.
제 사상의 종사宗師 공자 님께서 태어난 곳은 노나라입니다. 동방 노나라는 지형이 사방으로 트였습니다. 자연히 인민에게 유동성이 있었지요. 위衛, 송, 제 등 노나라의 인민은 주변의 다른 나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선택권이 있었어요. 모국이 폭정을 행하고 인민을 못살게 굴면, 그들은 다른 나라를 선택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나라에서는 백성을 강압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온정적으로 대하고 달래고 타이르는 통치학이 생기지요. 공자 님 사상은 그런 동방의 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 이렇게 여겼습니다. 공맹의 관념적인 사상으로는 문화와 관습이 제각각인 여러 지역과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고. 단순히 어진 마음과 어진 정치, 위정자의 덕과 솔선수범만으로는 무리라고. 그러다 보니 명확하고 외재적이며 활자화할 수 있는 규범인 예를 생각했지요. 특히 제가 생각하는 예란 법까지 포괄해서 담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2의 조국 제나라
전 철저히 욕망을 긍정합니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서 무질서와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욕망 자체를 줄이거나 욕망 추구를 금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떻게든 인간의 욕망은긍정되어야 하고 충족되어야 합니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은 이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면서도 보장할 수 있어야 위정자지요.
3장. 인간와 하늘 사이에 선을 긋다
4장. 학문과 수신, 그리고 스승
내편 2. 순자 철학 읽기: 순자의 철학과 사상
5장. 천인지분에서 성위지분으로
6장. 성악설을 논하다
7장. 백지설을 논하다
8장. 예란 무엇인가
9. 법이란 무엇인가
10. 군자란 누구인가
11장. 군주 그리고 후왕이라는 이상
내편 3. 순자 읽기: 순자의 네 모습
12장. 위대한 스승 순자
13장. 역사가 순자
14장. 시장주의자 순자
15장. 사회학자 순자
외편 1. 순자, 맹자, 율곡: 공자의 계승자와 순자의 계승자
16장. 순자, 맹자를 겨냥하다
17장. 순자와 율곡
외편 2. 위대한 종합자: 철학을 집대성하다
18장. 순자와 제자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