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 간 CEO: 나는 경영을 수도원에서 배웠다

AugustTurak, Business Secrets of the Trappist Monks

머리말

토머스 머튼을 비롯해 수많은 저자들이 회랑 벽 너머로 우리를 안내해 수도원의 기도를 엿들을 수 있게 해준 데 반해, 수도원 생활의 다른 반쪽인 ‘노동’에 대해 쓴 사람은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중세 ‘암흑시대’에 그리스 철학과 연극을 보존한 수도원에 서구 문명이 지고 있는 지적 부채에 대해 쓴 사람은 많아도, 수세기 동안 수도사들이 간직해 오며 번영의 원동력으로 활용한 지극히 성공적인 사업 방법에 대해 탐구한 이는 거의 없었다.

이 책은 그동안 간과되었던 수도원의 사업 비법들을 조명하고 그것을 세상과 공유함으로써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는 데 도움을 주려 한다.

맥주를 제조하는 성 식스투스 수도원의 벨기에 수도사들에 관한 「USA 투데이」의 한 기사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사업 성공 비결을 다음과 같이 세 문장으로 요약한다. “영리가 아니라 경건함을 이들 수도사들은 추구한다. 성 식스투스 수도사들은 품질에 신경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사업 규칙들을 모조리 무시한다. 어쩌면 이들의 성공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양과 분석의 중시가 사업에서 지배적인 경향이 된 것은 1백 년도 더 된 일이다. 1911년 프레더릭 테일러가 기념비적인 저서 『과학적 관리법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을 출간한 이후로 경제학자, 컨설턴트, 전문가, 경영대학원의 교수들은 사업을 과학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내내 예술의 영역에서 사업을 빼내 오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양적 접근법에서 나오는 이득은, 불행히도 사업의 좀 더 질적인 측면을 희생하고서 얻은 것이다. 사명, 목적, 가치, 원칙, 진실성, 윤리, 봉사, 인간 등 수도사들이라면 성공에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할 요소들 말이다. 수도사들은 이러한 사업의 질적 측면들에 통달해 있는데, 「USA 투데이」 기사의 필자는 수도원의 이 모든 노하우를 한 단어로 적절히 요약한다. 바로 경건함이다.

나는 이 책에서 수도원의 사업 모델을 지칭하는 데 줄곧 섬김과 자기비움이라는 표현을 쓸 것인데, 이 트라피스트 수도원 모델을 우리 속세의 사업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용하는 데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진정성이다. 이 진정성은 종종 사업의 ‘차세대 중심 원칙’으로 언급되지만, 수도사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은 이미 1천 년 넘게 진정성 있는 사업, 리더, 브랜드, 제품 들을 만들어 왔으니 말이다.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의 진정성은 수도원의 생활 및 사업 방식의 3가지 영역에서 나타나는데, 이 책에서 우리는 지극히 중요한 이 세 영역으로 몇 번이고 거듭해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 첫 번째는 사명이고, 두 번째는 개인의 탈바꿈, 세 번째는 공동체이다.

사명
사업에 대한 질적 접근이란, 경건히 수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고귀하고 중대한 사명을 명확히 천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성이 있으려면, 기업의 가장 사소한 활동까지 결정하는 의사결정이 정말로 이 사명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은 서랍 속에 고이 모셔 두었다가 연례회의가 다가올 때쯤 되거나 누군가가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볼 때에야 비로소 꺼내 드는 그런 사명 같은 것은 갖고 있지 않다. 대신 이들은 하루하루를 자신들의 사명에 따라 산다.
개인의 탈바꿈
진정성은 기술처럼 몸에 익힌 다음 우리의 목적을 위해 이리저리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상황에 따라 그 자리에서 발휘했다 거두었다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아니다. 진정성 있는 사업, 리더, 브랜드, 제품은 오로지 진정성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창조될 수 있는데, 바로 그래서 수도사들이 이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다. 「USA 투데이」 기사는 성 식스투스 수도원의 양조기술자인 요리스 수사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한다. “수도원에 들어온다고 저절로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자 같음은 진정성을 종교 용어로 바꾸어 부른 것에 다름 아니고, 수도원 생활은 보통 사람들을 받아들여 진정성 있는 개인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목표로 짜여 있다.
바로 이 세속의 세계에서 세속의 방식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는가가 이 책 내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공동체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사업 성공은 진정성 있는 공동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원활한 협동에 크게 힘입고 있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사명과 진정성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개개인의 의욕이 있다 해도, 공동체에 대한 수도사들의 변함없는 헌신이 없었다면 성과는 별 볼 일 없었을 것이다. 수도원의 사명을 중심으로 삼고 그 사명을 앞세워 살 수 있는 것은 항상 공동체의 성원들이 서로를 북돋워 주고 격려의 채찍질을 가하기 때문이며, 자신의 탈바꿈을 위해 힘겹게 몸부림 칠 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는 것도 이러한 공동체 성원들의 보살핌이다.

사명, 개인의 탈바꿈, 공동체에 대한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의 헌신은 각기 따로따로가 아니다. 이 세 요소는 선순환을 이루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사업계에서 흔히 ‘문화’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도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그 문화가 진정성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진정성 있는 사업 문화를 창조해 내고 유지하는 것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인데, 어떻게 그것을 해낼 수 있는가가 아마도 이 책에서 만나는 수도사들로부터 독자 여러분이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1. 멥킨 수도원의 경제 기적

그 뒤로 나는 계속 멥킨 수도원을 찾아갔고 가끔은 한 번에 몇 달씩 머물기도 했다. 수도원 손님 신분으로 나는 잿빛 수도복을 입고 트라피스트 수도사와 같은 생활을 잠시 동안 했다. 하지만 여기 온 주된 이유가 영적인 것이기는 해도, 사업가이자 기업가로서 나는 수도원 생활의 세속적 측면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멥킨과 세계 곳곳의 다른 수도원들은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여러 해 동안 나는 이 사실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또 던졌다.

멥킨의 25명 남짓 되는 나이 든 수도사들은 일부 시간만을 할애하여 그것도 대개는 침묵 속에서 일을 하는데, 어떻게 그토록 경이로운 사업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일까? 멥킨 수도원은 어떻게 맬러키 신부님과 같은 보통 사람이 그렇게 비범한 결과를 이루어 내도록 고무하는 것일까? 현대 기업들의 성공이 눈 깜짝할 사이에 거품처럼 스러지는 데 반해 수도원의 사업은 1,500년 넘게 번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수도원들은 과일 케이크나 맥주, 달걀, 버섯, 치즈처럼 가격 결정력이 지배적 브랜드들에 직결되어 있는 ‘나도 똑같이’ 상품들을 생산해 파는 것일까? 어째서 이런 평범한 제품들이 항상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 되는 것일까? 어떻게 수도사들은 높은 윤리적 기준을 견지하고 품질 관리에 전념하는 것만으로 자유시장에서 성공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의 기술을 어떻게 우리 속세의 기업, 비영리 단체, 가정, 심지어 우리 개인의 인생에 적용해 똑같은 폭발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해답은 수도사들이 놀랄 만한 비밀을 발견한 데 있는데, 그 비밀이란 바로 자기 이익을 잊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멥킨 수도원의 사업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수도사들이 사실상 전혀 사업에 몸담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대신 그들은 고귀하고 드넓은 사명에, 그리고 이 책에서 섬김과 자기비움이라고 부르게 될 경영 철학에 온전히 몸을 바친다. 수도사들에게 사업의 성공이란 단지 제대로 삶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따라오는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들이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의 사업 감각을 강조해 부각시킨다 해도, 수도사들의 진정한 성공 비결은 성 식스투스 수도원의 맥주 제조 기술자인 요리스 수사가 「월 스트리트 저널」에 한 다음과 같은 말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우리는 생활하기 위해서 팔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 수도사들은 어쩌다 한 번 생각이 나면 더 고귀한 목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이윤 제일주의의 인간들이 아니다. 이들은 자기를 비우고 신과 이웃을 섬기는 사명에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들로, 사업은 어쩌다 하게 된 것일 뿐이다. 수도사들에게 사업의 성공은 섬김과 자기비움의 삶을 살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따라오는 것일 뿐이다. 이와 같은 우선순위의 근본적 전환, 이 책에서는 과녁 너머를 겨누기라는 표현으로 계속 언급될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의 비결이 바로 중요한 열쇠이다.

아인 랜드Ayn Rand(1905~1982, 미국의 소설가, 작가, 철학자 - 옮긴이) 같은 사람들이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며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이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할 때, 그들의 주장은 완전히 그른 것은 아니지만 절반만 맞는다고 할 수 있다. 끝없이 ‘내 거, 내 거’를 외치는 모든 아이들은 처음에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하다가 성숙할수록 이타심 쪽으로 향해 간다. 인류가 걸어온 발걸음 ―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 또한 마찬가지로 왕들의 이기심에서 민주주의의 이타심으로의 이동이었다 할 수 있으며, 역사상의 경제 모델들도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것에서 모두가 승자가 되는 것으로 멈칫거리면서나마 움직여 가는 이러한 궤적을 보인다. 자본주의는 그에 앞선 경제 형태인 중상주의보다는 덜 이기적이며, 중상주의 역시 그 전의 봉건제에 비하면 커다란 진보였다.

현재 벌어지는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주범으로 흔히 탐욕과 이기심, 고삐 풀린 자유시장인 자본주의의 비윤리적 과잉성 등이 손꼽힌다. 사업가이자 기업인으로서 나는 우리의 자유시장 시스템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분석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탐욕과 이기심, 비윤리적 행동은 자유시장과 자본주의, ‘이윤’과 필연적으로 함께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라고 상정해 버린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역사상 가장 생산적인 경제 모델인 것으로 증명되면서, 위와 같이 생각하는 많은 이들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죽을 맛이긴 하지만 악마와 거래를 하는 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본주의는 우리와 한 지붕 밑에 사는 사납고 위험한 짐승 역할을 맡았다. 함께 살 수도 없고, 함께 살지 않을 수도 없는 짐승 말이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이 이기적인 짐승은 결코 길들여질 수 없으므로, 최근 우리가 처참한 결과를 경험했던 것처럼 이 짐승이 별안간 주인에게 달려드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항상 이놈을 제어해야만 한다.

불행히도, 자본주의를 이렇게 기술하면 우리는 고통스러운 이분법에 빠지고 만다. 고귀한 목표, 사람을 우선하는 것, 고객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 등은 어김없이 ‘이윤’과 ‘수지타산’에 대한 고려와 상충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언제나 수지타산 쪽인 듯하고, 고귀한 목표는 영원히 이타주의의 영역으로 추방되고 만다. 여기서 이 고귀한 목표들은 시들해지고, 이 목표에 대한 유일한 지지자들은 기업의 죄악을 대중에게 설파하면서 인간의 ‘더 나은 본성’에 헛되이 호소할 따름이다.

멥킨 수도원의 수도사들과 함께 생활하고 곁에서 나란히 일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나는 이들이 자본주의와 자기를 비운 섬김은 본질적으로 서로 상충한다거나 서로를 배제한다는 가정이 먹혀들지 않는, 오래되었으면서도 새로운 경제 모델을 삶으로 체현하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멥킨의 수도사들이나 워렌 버핏 같은 불가지론자들이나 모두 지고의 원칙에 광적으로 헌신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헌신 덕분에 성공을 거둔 것이다. 수도사들과 워렌 버핏,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판매원들이 발견한 얼핏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비밀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이기적 동기를 마음에 두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모델은 자본주의 체제나 빈곤층을 쥐어짜 얻는 ‘이윤’의 해체를 꿈꾸지 않는다. 섬김과 자기비움은 위에 나열한 모든 고통스러운 대립들을 초월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 자신보다 훨씬 더 거대해서 우리를 개인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이기적 인간에서 이타적 인간으로 탈바꿈시켜 줄 사명에 대한 갈망이 있는데, 바로 이 보편적 갈망에 다가감으로써 말이다.

자본주의를 해체하기보다는 뛰어넘으려면, 우리는 아린 랜드 같은 사람들의 잘못된 철학을 수정해야 한다. 이들은 인간 존재를, 그리고 그에 따라 자본주의를 오로지 자기 이익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정적 모델로 상정한다. 이 책 전체에서 내가 주장하려는 것은, 사실상 인간이란 우리 자신보다 거대한 무엇인가를 섬기는 데 자기를 버리고 ‘몸 바치고’ 싶어 하는 동적 ‘모델’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수도사들처럼 자기비움을 향한 이 욕구를 자유 기업 체제와 결합하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많은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는 경제 모델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훌륭한 판매원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제품, 자신이 받을 수수료를 ‘잊어버리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에 귀 기울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으면 삼을수록 판매 실적은 더 높아진다는 것을 안다. 수수료는 알아서 따라오게 되어 있다. 전체 기업이 자신을 비우고 고객을 모시는 데 억척스레 매달린다면, 마찬가지로 이익은 알아서 따라오게 되어 있다. 최고의 리더들은 다른 사람들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매달릴수록 그들 자신이 더 큰 성공을 거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미 우리에게는 앞으로 탈바꿈 조직이라고 부를, 영감을 주는 많은 모델들이 있는데, 미 해병대, 알코올중독자협회, 전 세계의 수도원들, 루이스 R. 모블리가 이끄는 IBM 경영인 학교 등 다양한 조직들이 여기에 속한다.

의도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탈바꿈의 경험을 제공하는 이들 조직 외에도 기업가 정신으로 운영되는 많은 소규모 회사들이 ‘우연히’ 사람들에게 탈바꿈의 경험을, 그러니까 관리자들이 사원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주로 의존하는 스톡옵션 정책이나 다른 동기 부여책들을 넘어서는 경험을 제공한 덕분에 성공에 큰 도움을 얻는다.

하지만 의도적인 탈바꿈 조직이 우연적 경우들과 구별되는 것은 바로 지속성 때문이다. 해병대와 알코올중독자협회, 수도원 전통이 이렇게나 오랜 기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조직들이 개인의 탈바꿈을 자신의 사명 가운데 하나로 삼을 뿐 아니라, 신병훈련소, 12단계 프로그램, 성 베네딕투스 계율, 모블리의 IBM 경영인 학교의 12주 경험 학습 프로그램과 같은 방법론들을 통해 이 과정들을 제도화하기 때문이다.

2.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직원 몰입도’는 비즈니스 전문가들을 바쁘게 만드는 유행어들 중 하나이다. 충분히 그럴 만도 한 것이, 더 깊이 몰입할수록 사람들은 더 생산적이 되며 조직 전체의 이익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직원 몰입도는 사실 예전에 ‘기업 충성도’라고 불리던 것이 새로운 유행어로 표현만 바뀐 것에 불과한데, 생산성 측면에서 보자면 불행하게도, 형태는 없지만 중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자산에 대한 직원들의 보유 수준이 점점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케넥사 고능률 연구소Kenexa High Performance Institute는 1985년 이래로 직원 몰입도에 관한 「워크트렌드Work Trends」 보고서를 펴내고 있는데, 이들이 조사를 위해 직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사항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가이다.

  1. 나는 이 직장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2. 전체적으로 보아, 나는 이 직장이 일터로서 매우 만족스럽다.
  3. 나는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 이 직장에 취직하라고 기꺼이 권할 수 있다.
  4. 다른 직장으로 옮겨 새로운 일을 찾아볼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산업 전사들은 직업에서 더 큰 무엇을 ― 훨씬 더 큰 무엇 ― 추구한다. 연봉 인상이나 승진 같은 통상적인 동기 부여책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앞장에서 보았듯이 멥킨 수도원과 세계 곳곳의 트라피스트 수도원들이 주목할 만한 경제적 성공을 거둔 것은 맬러키 신부님과 같은 사람들의 열성적인 ‘몰입’에 힘입은 바 크다. 나는 직원들의 마음이 회사에서 떠나는 이와 같은 움직임은 우리의 세속 조직에 수도원 모델을 적용함으로써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러자면 먼저 우리는 삶에서, 특히 그중에서도 우리가 하는 일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달러 보트(Dollar vote)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이야기에 대한 거의 채울 길 없는 인간의 욕구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탈바꿈의 기승전결이 없다면, 화려한 볼거리는 있을지 몰라도 이야기는 실종된다. 달러 보트에 따르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탈바꿈하는 것을 지켜보는 데 그토록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자기본위에서 자기비움으로의 본질적 탈바꿈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영웅의 여정

조지프 캠벨은 신화와 민담, 세계 각지의 종교 전통을 연구하는 데 한평생을 바쳤는데, 마침내 알아낸 것은 표면적으로는 많은 구별들이 존재하지만 영웅의 탈바꿈의 여정이라는 주제가 태엽장치처럼 반복된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한 번 달러 보트라는 개념을 적용해 보면, ‘영웅의 여정’에 기반을 둔 영화들에 우리가 열광한다는 사실은, 탈바꿈 또는 크리스천 신부님이 말하는 초월이 바로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자 우리의 삶에 고통스러울 정도로 결여된 것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멥킨 수도원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직원 몰입도와 고객 충성도를 우리의 세속 조직에서도 구현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탈바꿈에 대한 이러한 갈망을 충족시킬 기회를 제공해야만 한다.

조지프 캠벨은 ‘영웅의 여정’의 여러 단계들을 정리하는데, 다음은 그 주요한 단계들이다.

부름
‘부름’, 또는 수도사들이 소명이라 칭하는 것은 ‘영웅의 여정’ 가운데 요청을 받는 단계이다.
사업에서 ‘부름’은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이를테면 갑작스럽게 더 도전적인 새 자리를 제안받는 것에서부터 MBA를 취득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갈 기회가 생기는 것, 모든 장래의 기업가들을 끊임없이 부르는 저 신비로운 목소리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부름에 대한 저항
수도원 전통에서 두 번째 단계인 ‘부름에 대한 저항’은 분별이라고 불리며, 크리스천 신부님이 자신의 질문과 씨름했던 오랜 시간의 배태기가 바로 이 단계에 해당한다.
사업에서 ‘부름에 대한 저항’은 직업을 바꾸거나, 바라고 바라던 안식 기간을 얻거나, 새 회사를 설립하거나, 또는 하다못해 사장에게 봉급 인상을 요구하거나 하기 전에 우리가 자기탐구와 ‘적절한 검토’를 행할 때 일어난다. 사업 모델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는 회사는 실행에 들어가기 전에 치열한 ‘분별’ 기간을 거치게 마련이다.
사막
수도원 전통에서 ‘사막’은 형성이라 불리는 지적, 도덕적, 심리적, 영적 발전의 과정을 거쳐 한 사람의 수도사가 ‘만들어지는’ 단계이다.
사업에서 ‘사막’ 단계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도 못 잡은 채’ 새로운 일이나 완전히 새로운 기술에 능숙해지기 위해 애쓰는 분투의 시기이다. ‘사막’ 단계가 훨씬 더 힘겨워지는 것은, 골프 레슨을 받을 때처럼 흔히 여기에 퇴보의 단계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나아지기 전에 먼저 오히려 전보다 더 못해지는 것이다. ‘사막’ 단계에서 내가 왜 ‘철밥그릇’을 버리고 되도 않게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답시고 이 ‘끔찍한 지옥’에 뛰어들었을까 하며 몇 날 며칠을 잠 못 이루어 본 적이 없는 기업가가 있다면, 그런 사람은 대단한 별종이라 할 수 있다.
위대한 시험
이 단계에서 영웅은 ‘사막’ 단계에서 단련을 통해 얻은 자신의 능력을 이타적인 목적보다는 이기적 목적을 위해 사용하도록 유혹받는다. 수도원 전통에서 ‘위대한 시험’은 종종 ‘영혼의 어두운 밤’으로 언급된다. 영적 굴복에 앞서 찾아오는 심리적 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최근에 버니 매도프와 같은 한때의 금융계 슈퍼스타들이 줄줄이 감옥에 들어갔는데, 그것은 이들이 자신의 한계와 맞닥뜨리는 ‘위대한 시험’에 처해졌을 때 불법으로 획득한 권력과 명성의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사업에서 ‘위대한 시험’의 또 다른 예는 흔히 ‘벽에 부딪치다’라는 말로 묘사된다. 직장생활은 정체되고 ‘사막’ 단계에서 쌓은 ‘기술들’과 개인의 힘은 이제 하나도 쓸모가 없어 보인다. 사업에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대개 출세 지향적인 우리의 기업인 주인공들이 모든 사업은 결국 사람 사업이라는 사실을 배우지 못해서라는 것이 자명하다. 오직 자기만 생각하며 회사의 승진 사다리 상층부를 향해 달려가면서 이들은 너무도 많은 적들을 만들었고,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릴 줄도 몰라서, 결국 받기만 하고 주는 데는 인색해 언제나 ‘나, 나한테, 내 것’만 외쳐 대는 인간으로 찍히고 만다. 이들은 사무실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 되려 하지만, ‘팀을 위해 한몫을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조차 모른다. 이기적인 이유로 벽에 부딪치는 것은 미국이라는 기업에서는 워낙 일반적인 일이어서, 미국 최고의 명문 경영 대학원들은 수도사들을 대표하는 특성이자 그들의 성공에 결정적 요소이기도 한 ‘부드러운 인간 가치’는 무시하고 ‘냉정한 기술’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이유로 성공한 경영인들로부터 종종 호되게 비판받는다.
죽음과 거듭남
‘영웅의 여정’의 절정은 ‘죽음과 거듭남’이다. 자기 자신의 힘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 영웅은 이기심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손을 내밀어 다른 사람을 도우며, 말 그대로 또는 더 흔히는 은유적으로, 사랑의 형태로 다가오는 ‘은총’에 굴복한다.
수도원 전통에서 죽음과 거듭남은 성대서원을 통해 상징적으로 재연된다. 수련수사로서 몇 년간의 ‘사막’ 단계를 치른 수도사는 성대서원에서 최후의 서약을 한다. 이로써 수도사는 ‘이 세상에서 죽어’ 수도원 공동체의 진정한 일원으로 ‘거듭난다’.
영화에서처럼 사업에서도 ‘죽음과 거듭남’은 두렵고 고통스럽기 십상인 과정이다. 직장에서 벽에 부딪친 사람은 대개 과거에 엄청난 효력을 발휘했던 이기적 습관과 개인의 야망을 ‘놓아 버리기를’ 죽자고 거부한다. 자발성을 보이고, 실수를 인정하고, 다른 이들을 돕고,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은 워낙 부자연스럽고 겁나는 일이어서, 「사랑의 블랙홀」에서 빌 머레이가 연기한 인물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은 좀 더 구미에 맞는 대안을 찾을 뿐 똑같은 실수를 끝없이 반복한다. 하지만 역시 빌 머레이가 연기한 인물처럼, 이들은 ‘돌파구’를 경험할 수도 있다. 사랑하는 배우자나 친구 또는 멘토가 내미는 도움의 손길로 ― 아니면 단순히 상황들이 묘하게 얽힌 덕분에 ― 우리의 기업인 주인공들은 자신의 한계에 직면하면서 자신의 이기적인 실수들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될 수도 있다. 이들은 ‘죽었다가’ ‘거듭나고’, 그리하여 정체되었던 그의 직장생활은 대개 한 단계 도약을 이룬다.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한 귀환
영웅은 이제 마지막 단계, 즉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한 귀환’에 오를 준비가 되었다.
이것은 자신의 ‘예전 삶’과, 자기를 우선시했던 옛 삶의 태도에 대한 마치 수도사와도 같은 ‘포기’를 상징한다. 자기 옷을 포기한다는 것은 또한 몸 또는 ‘육신’을 단념한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이기심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수도원의 오랜 은유이기도 하다. 수도사는 자신의 외출복을 버리고 수도복을 입으면서 청빈 서약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탈바꿈한 사업가는 ― 또는 사업 ― 동료와 고객, 주주, 이해 당사자들에게 자기를 비운 섬김을 통해 수도원에서와 같은 환대를 베푼다. 역설적이게도, 회사의 승진 사다리를 오르는 것을 이제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탈바꿈한 기업인 주인공은 흔히 한꺼번에 세 계단을 오르게 된다.

탈바꿈의 세 유형

삶이란 곧 탈바꿈을 향한 갈망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도토리는 참나무가 되기를 갈망하며, 삶 그 자체는 삶에서 죽음으로 갔다가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탈바꿈의 여정이다.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의 유명한 인간 욕구 위계설은 인간의 동기에 관한 놀라운 성찰이지만, 그의 모델 또한 탈바꿈에 대한 갈망이라는 관점에서 기술될 수 있다.

모든 인간의 동기는 탈바꿈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되지만, 탈바꿈에는 3가지 다른 유형이 있다.

  1.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실 때, 그는 자신의 상태를 탈바꿈시킨다.
  2. 가난한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면, 그는 자신의 환경을 탈바꿈시킨다.
  3. 그리고 스크루지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크리스마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그는 존재의 탈바꿈을 경험한 것이다.

3가지 유형의 탈바꿈이 모두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가 한 유형의 탈바꿈을 다른 유형의 탈바꿈으로 대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생긴다. 건강 유지를 위해 먹던 음식을 ‘기분이 좋아지려고’ 먹을 때 우리는 실은 배를 넘치게 채우는 것으로 우리 영혼 속의 구멍을 메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휴게실에 놓인 ‘무료 콜라’는 동기유발을 위한 대단한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상태의 탈바꿈을 이끌어 낼 뿐이다. 스톡옵션 역시 멋지기는 하지만 환경의 탈바꿈만을 제공할 뿐이다. 수도원의 사업 성공을 우리의 세속 조직에서 재연하기 위해서는, 영웅적 인물 모두가 성취하고야 마는 존재의 탈바꿈을 이루어 낼 기회를 직원과 주주들에게, 심지어 고객들에게도 주어야 한다. 오늘날 사업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트렌드는 진정성 있는 리더십, 진정성 있는 브랜드에 대한 강조인데, 여기서 진정성이란 존재의 탈바꿈을 통해 개인적으로 또 집단적으로 이기심을 뛰어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본위의 종말

열정의 힘

급성장 중인 중소기업의 CEO인 고객 한 사람과 점심 식사를 하던 중 나는 별 뜻 없이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나와 함께 다녀 보면 이 사람 참 하는 일도 많구나 싶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딱 하나예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거죠. 사람들은 대부분 인재가 모자라다고 생각하죠. 천만에요. 평범한 사람이 자기가 진짜로 관심을 갖는 일을 만나 엄청난 일을 해낸 이야기는 수두룩해요. 모자라는 건 인재가 아니에요. 열정이죠.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한테 우리 일이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거예요. 사람들이 ‘어떻게’를 내놓을 수 있도록 나는 ‘왜’를 제시하는 거죠. 일단 열정에 불이 붙으면,” 그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부터는 일 좀 그만하고 제발 좀 쉬라고 사람들을 뜯어말리는 게 내 일이 되죠.”

나의 멘토이자 1950년대와 1960년대 IBM 경영인 학교의 대표 중 한 사람이었던 루이스 R. 모블리는 사명을 ‘기업의 정신’이라고 부르면서, 가치 있는 사명이 제대로 표명되면 평범한 사람들을 자극해 비범한, 심지어 폭발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했다. 그는 사명의 중요성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어서, 오늘날까지도 널리 퍼져 있는 관료형, 또는 ‘정책과 절차’ 주도형 패러다임을 대신할 ‘목표 지배형’, 또는 ‘목표 주도형’ 경영 모델을 창시했다.

1,500년 된 수도원 전통과 멥킨 수도원 수도사들의 비범한 사업적 성취를 보면 알 수 있듯, 사명은 성공의 필수 요소인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종교나 세속의 모든 조직이 갈망하는 지속 가능한 성공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1장에서 논의했던 것처럼 수도원의 사명이 수도사가 되려는 사람들과, 잠시 동안 수도사 같은 생활을 해보려고 수도원에 몰려드는 수천 명의 사람들 모두에게 주는 것은 바로 탈바꿈의 기회이다. 수도원 전통이 명맥을 잇고 있고 수도원의 사업이 번창하는 것은 ― 롤링 스톤스 콘서트와는 달리 ― 수도원의 사명이 영원한 탈바꿈의 경험, 즉 내가 섬김과 자기비움이라고 부르는 목적 지배형 경영 모델을 통해 우리를 우리 자신과 우리의 협소한 관심사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를 경험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행복감을 느끼며 더할 수 없이 생산적이 되는 것은 시간 감각이 사라지면서 몰아 상태에 빠질 때이다. 이것은 의식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일들이 자연스레 알아서 이루어지는 기막힌 상태여서, 던졌다 하면 골인이고 고객과 만났다 하면 판매에 성공한다. 자연스러움의 마법은 다시 한 번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자아라는 감옥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자기본위로부터 자기비움으로의 영원한 존재의 탈바꿈이다. 예술가들과 트라피스트 수도사, 선사禪師들이 묘사하려 하는 '애쓰지 않아도 만사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경지 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선하고, 순수하고, 없어서는 안 되어 우리가 ‘자신을 잊고서 빠져들’ 사명, 온 열정을 다 바쳐 자발적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우리 자신을 바칠 수 있는’ 그런 사명이다. 그리고 멥킨 수도원처럼 가치 있는 사명에 자기를 비우고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열성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조직이라면, 성공은 따놓은 당상이다.

섬김과 자기비움: 기업 사례 연구

이 중 원래 계획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탈바꿈을 향한 한 젊은이의 갈망을 건드려 그렇게 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섬김과 자기비움의 파급효과는 이처럼 잠재적으로 끝이 없다.

  1. 여기서 알 수 있는 수도원의 첫 번째 교훈은 언제나 과녁 너머를 겨누라는 것이다. 대학생들을 상대로 자원봉사를 하다 보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실제 사업’에 도움을 받게 된다. 옉스트의 경영인 두 사람은 옛 학생들이었고, 이 ‘행복한 사고’ 덕분에 나는 그 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2. 두 번째 교훈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수도사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앨런을 ‘재주껏 피해 가며 일하는 것’이나 에이미가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을 테지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옉스트 사는 최선을 다할 만한 가치가 있는 회사였고 그래서 나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3. 세 번째 교훈은 섬김과 자기비움은 몸에 배어 거의 자동적으로 나오는 제2의 천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왜 충동적으로 앨런에게 도움을 요청했는지 모르며, 인생의 절정에 이른 위대한 세일즈맨처럼 당시 나는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스스로도 놀랐다.
  4. 네 번째 비밀은 먼저 하라는 것이다. 앨런에게 내 자신을 낮춤으로써 나는 힘의 균형을 맞추어, 24살짜리 초짜에게 57살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그 덕분에 그 역시 자신의 약점을 내게 보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러한 신뢰의 제스처로 나는 그에게 다가갈 수 있었는데, 으르든 달래든 논리적으로 따져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코치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나는 먼저 그에게 그런 자격을 주어야 했다. 다른 이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먼저 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5. 다섯 번째 교훈은 ‘과정을 신뢰할’ 만큼의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앨런이 그런 식의 반응을 보이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아니, 그때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완전히 반대로 행동해야 옳았다. 사실 나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했던 셈이다. 당시 나는 옉스트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 만약 앨런이 나를 거부했다면 회사 안에 이런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그 몸값 비싼 소위 ‘전문가’라는 위인이 23살짜리 여자애한테 쩔쩔매면서 나한테 도와 달라 그러더라고.”
  6. 마지막으로, 섬김과 자기비움이라는 사명을 굳건히 지키면 금전이나 다른 형태의 보상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어느 시점에서인가, 멥킨 수도원 수도사들의 도움으로 나는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지켜볼 때 가장 짜릿함을 느끼는 사람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돈에 신경을 덜 쓰면 덜 쓸수록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4. 염소 로데오와 탈바꿈 조직

빌 게이츠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지는 극히 의심스럽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일찍부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적어도 한동안은 이 회사가 우리가 말하는 탈바꿈 조직이었다는 데 있다.

두 종류의 탈바꿈 조직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탈바꿈 조직에는 두 종류가 있다.

  1. 수도원, 알코올중독자협회, 미 해병대, 루이스 모블리가 이끌던 IBM 경영인 학교는 존재의 탈바꿈을 분명히 천명하고 이를 단체의 사명 가운데 하나로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의식적인 탈바꿈 조직이라 할 수 있다.
  2. 반면, 많은 신생 기업들은 의식적이지 않은 탈바꿈 조직이라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 초창기의 마이크로소프트 사처럼 ― 이를 경영 방침으로 분명히 천명하지도 않고 이해 당사자들이 이를 명확히 이해하지도 못한 채 우연히 탈바꿈의 기회를 제공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염소 로데오가 과연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사명 선언문이나 직원 편람에 나와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탈바꿈 조직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의 성공의 진정한 비결인 염소 로데오, 미친 듯한 기업 문화이다.

하지만 의식적이지 않은 탈바꿈 조직이 지닌 문제점은, 이 염소 로데오 정신이 기업이 성장하면서 희미해진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전면적 보너스 지급과 연봉 인상으로 대량 퇴사를 막아 보려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야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긴 해도, 돈만으로 퇴사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장에서 우리는 옉스트 사를 만나 보았다. 옉스트 사에는 구글에서 퇴사한 사람들이 한가득 있었는데, 돈 때문에 구글을 떠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그들은 더 적은 연봉을 받으며 더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들이 퇴사한 것은 구글이 재미없고 따분해졌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차이를 낳고 있다’는 열의에 찬 믿음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주었던 구글의 설립 취지가 이제는 자신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구글이 더 이상 염소 로데오를 경험할 기회를 주지 않아 떠난 셈이다.

의식적이지 않은 탈바꿈 조직의 성공담들은 대개 금세 끝나고 마는데, 이와는 반대로 의식적인 탈바꿈 조직들은 오랜 세월 동안 번영을 누리는 놀라운 힘을 보여 준다. 이런 조직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리더십을 지닌 인재들을 끌어오거나, 알코올중독자협회의 경우처럼 열성적인 사람들이 스스로를 이끌어 갈 방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사명의 힘 덕분이다.

의식적인 탈바꿈 조직

각각의 사명은 분명 다 다르지만, 모든 의식적인 탈바꿈 조직들은 공통적으로 다음 3가지 특성을 지닌다.

  1. 자기를 비우고 헌신할 가치가 있는 고귀하고 드넓은 사명을 지니고 있다.
  2. 개인을 탈바꿈시키는 것을 사명의 일부로 한다.
  3. 탈바꿈이 일어나도록 하는 방법론을 갖고 있다.

모든 의식적 탈바꿈 조직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이 3가지 결정적 요소들의 상호연관성은 특히 알코올중독자협회에 유익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알코올중독자협회의 사명은 사람들이 술을 끊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코올중독자협회와 관련된 많은 문헌들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알코올중독자협회의 사명은, 12단계 프로그램을 이용해 사람들을 더는 알코올이 필요 없는, 자기를 비운 개인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알코올중독자협회는 물리적으로는 술을 끊었지만 아직 탈바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을 가리켜 ‘술 안 마시는 술꾼’이라고 부른다. 술 안 마시는 술꾼은 흔히 쉽게 분노하고, 짜증을 잘 내고, 자기중심적이고, 우울해하는데, 알코올중독자협회는 이들을 재발의 위험성이 극히 높은 사람들로 간주한다. 알코올중독자협회의 경우, 목표는 탈바꿈이고 그것의 효과가 술을 끊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말하는 과녁 너머를 겨누기의 완벽한 사례이다. 알코올중독자협회의 입장에서 보면,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마음의 변화의 부산물일 뿐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늘 자신의 이익보다 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마음의 변화(또는 수도사들이 회심이라 부르는 것) 말이다. 알코올중독자협회는 먼저 자기비움의 왕국을 찾아 나설 용기를 내면 나머지는 알아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주는 사례이다.

완벽한 ‘여성용 영화’로 유명하긴 하지만, 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광팬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앤 해서웨이가 아버지에게 자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꿋꿋이 설명하려 애쓰는 부분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아버지다운 염려를 한다. 뉴욕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꿈을 실현시켜 줄 스탠퍼드 로스쿨 진학의 기회를 차버린 뒤, 왜 패션업계의 말단 비서로 있는 것인지 아버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콕 집어 상기시켜 주듯, 패션은 그녀가 관심도 없는 분야인데 말이다.

앤 해서웨이는 몇 번이고 자신이 배우고 있는 것, 더 정확히 말하자면, 되고 있는 것이 어떤 직업이나 단순한 기술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설득시키려 애쓰지만 소용이 없다. 이것을 약간 더 기술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앤 해서웨이와 그녀의 아버지의 대화가 자꾸 엇나가는 것은, 그녀가 과정에 대해 생각하는 데 반해 아버지는 내용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염소 로데오에 대해 말하는데, 아버지는 직무 분석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여느 훌륭한 수도사처럼, 앤 해서웨이는 은유적으로 말해 우선 천국을 찾아 나서면 다른 모든 것은 알아서 순리대로 이루어리라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전하려 애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탁월함은 선택이 아니라 습관이다.” 우리는 탁월함의 경지에 올라야 하는데,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인물이 ‘영웅의 여정’의 여러 단계들을 성공적으로 항해해 냈을 때 그녀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이다.

5. 사명

섬김과 자기비움에 바탕을 둔 의식적 탈바꿈 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제1단계는, 헌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고귀하고 드넓은 사명을 확실히 갖는 것이다.

트룰리언트 사의 대표이사 마크 셰퍼는 자신의 팀원들에게 사람이란 자기 사명의 ‘존재 이유why’를 믿으면 그 어떠한 ‘과업what’도 완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는 이러한 경영철학을 ‘이유의 힘Power of Why’이라 불렀다.

우리는 농구에서는 링 뒤편의 백보드를 겨냥해 슛을 던져야 하고, 골프에서는 홀 뒤쪽을 보고 공을 쳐야 하며, 양궁에서는 과녁 너머를 겨누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사업에서는 이윤을 겨냥해 달린다. 이윤은 사업의 목표가 아니다. 이윤은 그저 우리가 우리 사명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했는지 측정할 수 있는 척도일 뿐이다. 트룰리언트 사의 궁극적 목표는 이윤이 아니다. 심지어 고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금융기관’이 되는 것도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이 회사는 이러한 목표들을 넘어 고객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지향한다.

마케팅 실장 캐런 드살보는, 트룰리언트 사는 “우리 회원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다 보면, 고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금융기관이 되는 것은 그냥 ‘알아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고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금융기관이 되는 것과 이윤을 남기는 것은 그저 트룰리언트 사의 훨씬 더 원대한 사명의 부산물이자, 그 사명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지 가늠하는 지표일 뿐이라는 얘기이다.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는 기업이 그리도 드문 가장 큰 이유는, 트룰리언트 사와는 달리 기업들이 지향하는 사명이 너무 작은 데 있다.

모든 수도원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사명을 내세우는 것이다. 바로 하느님을 섬기는 것 말이다. 이러한 사명은 명확하게, 한 치의 모호함도 없이 표명되며, 수도원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것을 알고서 찾아온다. 이 사명에 함께하고자 하는 것이, 수도사 지망자들이 수도원에 들어오고 나 같은 불청객들이 수천 명씩 드나드는 이유이다. 이것은 우리의 기업 문화와 첨예하게 대비되는데, 오늘날의 기업 문화에서는 최고경영자들조차 사명에 따라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고사하고 기업의 사명 선언문을 외워 보라고만 해도 진땀을 줄줄 흘린다.

어떤 조직이든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이 사업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것이다. 그리고 사업과 연관된 사람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까지도 모두 이 질문의 답에 포함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이 질문을 던지고,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답을 찾아내야만 우리는 사업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의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자동차가 불티나게 팔릴 때 사업을 ‘자동차 안테나’로 정의하는 일 따위를 하지 않으려면 이런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변화의 정도가 점점 더 가속화되는 세계에서, 사명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컨설팅업을 하면서 고객들한테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얘기가 있다. 고결한 사명 선언문 같은 것은 다 ‘쓸데없는 허례’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특화된 제품으로 특화된 시장에 자리 잡는데, 고귀하고 드넓은 사명은 많은 이들에게 너무 말랑말랑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에, 고매하기만 하지 뭘 어쩌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비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만큼 고매하고 말랑말랑하고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사명도 또 없을 텐데, 수도원들은 이 고매한 사명을 온갖 특화된 제품들과 나날의 일과의 바탕으로 삼아, 투철한 목표의식으로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결과들을 빚어낸다. 그런가 하면, 미 해병대는 팔굽혀펴기 하나도 국가와 해병대와 해병 전우들에게 헌신한다는 고귀하고도 추상적인 이상을 위해 하도록 가르친다. 또한 트룰리언트 사는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의 인간 존재로 대하면서, 종종 금융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식으로 아무 사심 없이 회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전력함으로써 경쟁사들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기업들의 사명 선언문이 모호하고 뜬금없어 보이고 사람들 가슴에 불을 지피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지나치게 고매하거나 지나치게 추상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사명을 바탕으로 한 기업 운영의 책임이 있는 경영자들에게 거기에 필요한 헌신과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이 이루어지게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가장 먼저 조직이 왜 이 일들을 하고 있는지 알려 주는 것을 놓친다. 그래서 결국 사명이라는 장기적 가치가 실행이라는 단기적 급선무와 만나면, 언제나 편리한 쪽을 택하고 만다. 사명을 정의하고, 의사결정을 할 때 그 사명을 바탕으로 삼는 것은 연례 경영 연수회에서 할 일이 아니다. 트룰리언트 사 사람들이 증명하듯이, 그것은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모든 조직이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임원실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우편물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일이기도 하다.

세포막으로서의 사명

프랜시스 신부님은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전체적인 사명, 또는 카리즘charism(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사 또는 은총으로 받은 능력 - 옮긴이)을 충실히 지키면서 새로운 사명을 만들어 내는 데 착수했다.

그의 신선한 접근방식을 설명하는 데는 세포막이라는 개념만 한 것이 없다. 세포막은 생명 없는 벽이 아니다. 그것은 해로운 물질은 걸러 내면서도 주변 환경에 에너지와 영양소를 공유하는 유기 구조물이다.

경영 수련회에 참석한 한 무리의 고립된 경영인들로부터 나오는 정적인 하향식 사명은 이제 시장 환경과 늘 에너지를 함께 공유하는 상향식 세포막으로 대체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상향식이라는 말조차 사원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의미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제는 주로 인터넷의 영향으로 회사들이 고객, 판매자, 금융업계와, 그리고 기업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담장 너머의 세상 모든 부분과 지속적으로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세포막에 점점 더 의지하게 되었다.

루이스 R. 모블리는 관리자가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람이라면, 경영자는 실행할 가치가 있는 사명들을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이 1956년의 IBM에 맞는 이야기였다면 오늘날에는 천 배는 더 맞고 더 중요하다. ‘정보화 시대’의 효율적인 리더십에는 내부 요소에 초점을 맞추는 데서 세계 전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일종의 가치 이동이 필요한데, 프랜시스 신부님이 미래를 내다보며 멥킨 수도원을 위해 한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일을 훨씬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세포막을 사명의 모델로 삼기 위해서는 직원들과의 관계 또한 재조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시대에는 개인 생활과 직장 생활이 뚜렷이 구분되었고, ‘전문성’이란 이 엄격한 구분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는 사정이 그렇지 않다. 함께 생활하고 함께 일하는 수도사들처럼 부부들도 양쪽 모두 일을 하며, 회사에서 개인 생활을 하고 또 집으로 회사 일을 가져오기도 한다. 일은 돈을 벌기 위해 하고 의미는 교회에 가서만 찾는 것은 이제 옛날이야기이다. 지금은 모두가 의미 있는 일을 원하는 시대이다. 개인 생활과 직장 생활을 나누던 벽은 이미 세포막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경향은 심지어 우리가 사업을 운영하는 데 이용하는 재무 보고서에도 반영되어 있다. 재무 보고는 대차대조표에서 시작되었는데, 이 대차대조표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아직 변화가 드물던 때 생겨난 것이다. 대차대조표는 정적 모델이며, 1년에 한 번 찍는 사업의 스냅 사진 같은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증가하면서 연간 대차대조표는 정확도가 떨어지게 되었고, 그래서 나온 것이 분기별 손익계산서였다. 그러나 결국 분기별 손익계산서도 유효성이 사라져, 보다 정확히 사업을 계산할 수 있는 지속적 방법으로 일일 현금수지 계산서가 등장했다.

오늘날에는 기술의 혜택으로 과거의 ‘무기물적’ 스냅사진이, 사업을 실시간으로 지속적으로 모니터할 수 있는 ‘유기적’ 영화로 대체되었다. 이와 같은 실시간 보고로 창출되는 투명성은, 세포막의 동적·유기적 모델이 사업과 주변 환경을 분리하는 담장의 정적 모델을 어떻게 대체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예이다.

실시간의 개인적 성장

이렇게 우리의 조그만 공동체가 커지면서 여행이 너무 어려워지고 나를 찾는 전화도 뚝 끊기자, 나는 기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물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돈 때문이거나 기업가가 되고 싶은 공공연한 욕망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회사 창업을 하나의 시범 프로젝트로 간주하고, 이를 통해 내가 옹호하는 모든 원칙들을 실행에 옮겨 볼 심산이었다. 기업 활동은 내 원칙들과 내가 나의 선사나 루이스 R. 모블리 같은 사람들, 그리고 카펫 설치로부터 배운 모든 것을 시험해 볼 냉혹한 시험대였다. 나는 섬김과 자기비움의 원칙을 토대로 설립된 회사가 정말로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일 텐데, 고귀한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 멥킨 수도원과 같은 진정성 있는 모든 공동체들이 기반하고 있는 그런 강철 같은 헌신으로 서로 뭉치기로 마음먹는다면 어떤 일을 이루어 낼 수 있는지,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우리의 공동체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내 동생 톰까지 해서 인원이 6명에 불과했다. 우리는 내 파트너 중 한 사람이 “우리는 똑똑한 친구들이니까 무엇을 해야 할지 찾아낼 거야”라고 표현한 것 이상의 사업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점이 없지 않았을지 몰라도, 어떤 회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선명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의 첫 신문사를 샀을 때 시민 케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삶의 지침이 될 원칙들을 선포했다.

  1. 첫 번째 원칙은 영적인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이가 특정한 종교나 신념 체계를 믿기를 바란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인적 성장, 정직, 진실성, 자기를 비우고 사람을 가장 우선하는 것 등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또한 우리 회사는 ‘영성 친화적’이어서, 직원들이 쑥스러워하거나 창피해할 필요 없이 차 한잔하면서 동료들과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가를 내 피정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2. 우리의 두 번째 원칙은 기대치를 높이자는 것이다. 영적 가치에 기초한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기준을 낮추고 실패쯤은 이 세속적인 세상에서 영적인 사업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대가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을 뜻하지 않았다. 아니,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고귀한 목적을 위해 사업을 한다면, 우리의 목표는 순전히 돈을 위해 사업을 하는 이들의 목표보다 더 높아야만 했다.
  3. 우리의 세 번째 원칙은 연민이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해고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이가 기준을 넘을 수 있도록 ― 기준을 낮추는 일 없이 ―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 돕겠다는 말이었다. 사람에 따라 능력의 차이야 있지만, 모두가 자기 역할은 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4. 네 번째 원칙은 세 번째 원칙에서 따라 나왔다. 우리는 우리 회사가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각 부분의 합보다 더 큰 전체가 되기를 바랐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는, 그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개인들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5. 다섯 번째 원칙은 책임을 공식화하는 관리 시스템을 통해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모호함, 하나 마나 한 소리, 곤경을 면하기 위해 갖다 붙이는 노골적인 횡설수설과 가차 없는 전쟁을 벌이기로 했다. 우리는 “해보겠습니다”가 아니라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목표 설정 문화를 원했다.
  6. 여섯 번째 원칙은 열린 의사소통이다. 업무 면에서 이것은 대개는 남들 모르게 덮어 버리는 ‘곤란한’ 사업상의 연락들을 모두 공개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소통의 선들을 열어 두기 위해서는 모든 이에게 실수를 허용해야만 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이것은 우리 직원들이 회사 밖 문제들로 업무에 지장을 받거나 그냥 마음이 무거울 때, 늘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7. 일곱 번째 원칙은 정직이다. 즉 숨은 의도나, 이기적 동기를 감추고 그럴듯한 모습으로 꾸며 낸 사업 같은 것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더 많은 돈, 더 큰 사무실, 더 높은 자리를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것은, 명목상으로는 영업사원들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실제로는 음흉하게도 발표자에게 더 큰 파이 조각이 돌아가도록 계획된 3시간짜리 프레젠테이션을 끝까지 앉아서 듣고 있는 일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일곱 번째 원칙은 그저 허튼짓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8. 우리의 여덟 번째 원칙은 ‘누구나 다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말다툼이나 정치적 내분을 일으키기는 쉽다. 하지만 타협과 갈등 해소는 어렵다. 처음부터 우리는 만일 개인이나 부서끼리 스스로 의견 차이를 해소하지 못할 경우, 결국 어떤 결과가 나오든 양측 모두 불이익을 당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9. 우리의 마지막 원칙은 ‘배수진’ 정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최상의 성과는 흔히 영감과 필사적인 심정의 미묘한 균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처음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자기 배들을 불태워 버린 코르테스(아스텍 왕국을 점령한 16세기 에스파냐인 - 옮긴이)처럼 일종의 절박감을 회사 안에 조성하고 싶었다. 그래서 파트너 중 한 사람과 나는 비교적 형편이 괜찮았지만, 우리는 매달 사무실 임대료와 전화요금을 낼 만큼의 자본만을 투자했다. 그 금액은 고작해야 2천 달러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만에 하나라도 다음 달 치 비용을 낼 만큼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계속 자금을 투입해 회사를 유지하느니 차라리 회사 문을 닫아 버리기로 했다.

6. 자기비움과 공동체

자기를 비우고 공동체에 헌신하는 것은 멥킨 수도원의 사업 성공의 결정적 요소이다. 사업이 삐걱거리는 원인 중 흔하디흔한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죽도록 염려하면서 누구라도 자기 자리를 위협할 것 같은 사람이 있으면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지켜보는 것이다. 이런 내부 알력이 멥킨 수도원에는 존재하지 않는데, 이는 곧 모두가 오로지 고객과 이해 당사자들을 섬기는 데만 전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수도사들은 충족시켜야 할 개인적 욕구도 없는 영혼 없는 로봇 같은 사람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멥킨의 문화는 이러한 개인적 목표를 성취하는 가장 빠른 길은 공동체 전체와 그 사명에 헌신하는 것임을 언제나 증명한다는 것을 뜻할 따름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최근 기사는 이러한 현상을 멋지게 묘사하고 있다.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는 빙 돌아서 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면 할수록 더 빨리 우리의 개인적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영업 담당 간부로 여러 해 동안 일하면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인간 동기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바쳤다. 전통적인 동기 유발책들 도― 인정, 보상, 목표 할당 등 ― 다 써보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는데, 그러다 결국 나는 우연히 답을 발견했다. 최대의 성과는 공동의 사명을 위해 일하는 공동체 동료들로부터 압력을 받을 때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해병들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면 결코 하지 않을 일들도 동료들과 조직을 위해서라면 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우리는 그렇게도 바라던 결과를 얻었다. 나는 개개인을 관리하는 것을 그만두고 문화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집중했고, 그러자 수익은 알아서 저절로 올라갔다. 꼭 멥킨 수도원처럼 말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아이디어가 직관과 크게 어긋난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공동체의 목표가 개인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도원의 사업 성공은, 실은 개인의 목표가 공동체에 헌신하는 것이라는 반직관적인 개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3장에서 나는 우리 모두는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편안한 삶을 바라는 것 같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잠깐만이라도 수도사처럼 명상에 잠겨 보면, 이내 직관과는 어긋나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정말로 가장 행복하고 가장 만족을 느끼는 것은 우리보다 거대한 어떤 것을 위해 몸 바칠 때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서 우리는 몸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공동체임을 발견하게 된다.

직장에서나 개인적으로나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생의 많은 시간을 바친 사람으로서 내가 특히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사람들 대부분이 마음만큼은 선한 좋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공동체는 오직 개인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관념이 워낙 직관과 합치하고, 명백하고, 상식에 맞는 것 같아 보여서 우리가 깨닫지도 못한 채 공동체를 이용해 먹기 때문이다.

내 옛 선사께서 하신 것을 본받아, 내가 학생들에게 토를 달지 말고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한 것은 다음 두 가지였다.

  1. 우리 모두 지금보다는 약간 덜 멍청해질 수 있다.
  2. 자기이해는 모든 지식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이다.

루이스 모블리는 언젠가 내게 IBM 경영인 학교에서 자신의 목표는 “우와, 이런 식으로는 생각을 못 해 봤는데!”라는 반응이 나오게 하는 ‘아하! 경험aha! moment’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케니가 바로 그런 경험을 한 것 같았다. 그는 회계 담당자 자리를 맡기로 했고, 어떤 정책을 취할지 명확히 정하고 나자 이 문제는 두 번 다시 거론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내가 케니보다 더 낫거나 더 똑똑하다는 뜻으로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케니가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며, 지금까지도 나와는 가장 친한 친구 사이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심지어 가장 훌륭한 사람들 사이에도 공동체는 개인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성향이 얼마나 깊이 뿌리 박혀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좋은 의도를 지닌 좋은 사람들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동체 지향적인 사람이 되려면 존재의 탈바꿈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자면 다른 관점과 세계관, 다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곧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것만큼이나 훌륭한 추종자가 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려는 노력으로 온갖 고생을 하며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게릭 신부님처럼, 우리 공동체 회원들은 어렵게나마 개인들에게 연민을 보냈듯이, 옆에서 항상 북돋워 주는 사람들 속에서 공동체에도 연민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리더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개인에게 무감각하다는 인상을 주는 일 없이 태도와 관점의 그러한 탈바꿈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끊임없이 서로를 북돋우면서 우리 회사는 선의를 지닌 개인들의 집합소에서 진정성 있는 공동체로 점점 탈바꿈해 갔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공동체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직원 쪽에서는 생각도 않은 급여 인상이나 깜짝 보너스 등으로 개인들에게 친절을 베풀기가 더 쉬워졌다.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는 빙 둘러서 가는 것이다.

우리 직원들이 더 높은 성과를 올린 것은 우리가 개인을 관리하려는 유혹을 성공적으로 뿌리쳤기 때문이다. 그 대신 우리는 하나의 문화, 공동의 사명을 위해 일하는 공동체 팀의 동료들의 압력에 의해서만 생겨날 수 있는 문화를 건설하는 데 전력했다. 그러자 수입은 알아서 따라왔다. 꼭 멥킨 수도원처럼 말이다.

사업의 과학을 나만큼 신봉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섬김과 자기비움에 헌신한다고 해서, 조그만 이점이라도 찾아내기 위해 시장 조사서와 재무 보고서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작업을 피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내가 섬김과 자기비움에 헌신하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고 쓸 수 있는 기술은 다 시도해 보아야 할 도덕적 의무가 내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로렌스 수사를 사람을 싫어하는 외톨이형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자신의 전부인 사람일 따름이었다. 성모 마리아 멥킨 수도원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침례교회에 거의 포위당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이 이웃들과 멋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거기에는 로렌스 수사의 용감무쌍한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로렌스 수사에게서 우리는 공동체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매우 탄력적으로 정의하여 그 경계가 멥킨 수도원의 회랑 벽 넘어 훨씬 먼 곳까지, 심지어 수도원 사업의 고객들도 넘어서까지 확장된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최고의 그리고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것을 포괄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7. 탁월함을 위한 탁월함

희생의 힘

희생에 동반되는 괴로움에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모든 불편함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하여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 의식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희생은 우리가 그 순간에 의식 없이 매몰되는 것에서 벗어나 ‘큰 그림’을 숙고하도록 해준다.

올바른 종류의 희생은, 말하자면 일부러 신발에 넣어 둔 돌이나 손가락에 묶은 끈처럼 우리가 어떤 삶을 원하는가를 돌이켜 보게 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영웅의 여정’이 요구하는 희생의 고통은, 그날그날의 사소한 볼일들에 아무 의식 없이 휩쓸려 가다가 결국 립 밴 윙클(미국 작가 W. 어빙의 동명의 단편소설의 주인공. 정체 모를 사람들의 술을 훔쳐 마셨다가 잠이 들어 20년 후에 깨어나게 된다 - 옮긴이)처럼 이 일 저 일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인생을 잠자듯 허비해 버리고 마는 인간의 성향에 대한 해독제라 할 수 있다. 철학자 니체는 “졸린 자들에게 복이 있나니, 이제 곧 잠들 것이다”라고 비아냥거렸는데, 세계 모든 곳의 종교 전통이 영성을 잠에서 깨어나는 과정으로 묘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개는 불편함만이 반쯤 잠든 상태에서 우리를 흔들어 깨워 의식과 자각, 또는 수도사들이 말하는 마음챙김으로 이끌어 줄 수 있다.

수도원에서 요구하는 청빈과 순결, 복종의 서약은 인정사정없고 가학적이고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기독교의 신이 인간의 육신이 ‘굴욕당하는’ 모습에 즐거워하는 것 같던 시절에 나온 낡은 유물로 조롱받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금욕의 관행이 세계의 위대한 종교 전통들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보면, 사정은 꼭 그렇지는 않은 것이 분명하다. 적절히 실천되는 금욕주의는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의 ‘죄’를 속죄받기 위한 일종의 자기학대가 아니다. 그것은 영웅적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늘 의식하도록, 의도적으로 껄끄러움의 원천을 만들어 놓는 하나의 방법이다.

목표나 사명을 위해 우리 자신을 희생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 목표와 사명에 대해 한층 더 열성적이 된다. 그것이 여기서 나타나는 순수 효과이다. 의사가 되려는 대학 신입생이 있다고 해보자. 만만치 않은 수업들로 수강 일정이 빡빡해서, 이 학생은 기숙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티를 마치 수도사처럼 금욕적으로 단념한다. 파티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의 목표를 곱씹으며 유혹을 떨쳐 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희생의 결실은 이 학생이 공부에 한층 더 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들을 위해서만 희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직관과는 달리, 우리는 어떤 것을 위해 희생함으로써 그것에 관심을 갖게 될 수 있다. 희생이란 할 수도 있었을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처럼 귀중한 투자를 보호하는 데 전념하게 된다. 더 많이 희생할수록 우리는 더 많이 신경을 쓰고, 더 많이 신경을 쓰면 더 열정적으로 의욕이 생기고, 더 의욕적이 되면 목표를 성취할 가능성도 더 커진다.

이 “1페니를 빚지면 1파운드를 빚지게 된다” 공식은 왜 벤처 자본가들이 그들 자신이 투자하기 전에 신진 기업가들이 이미 많은 재정적 ‘승부의 책임’을 안고 있기를 바라는지 설명해 준다. 실제로, 더 많이 투자할수록 더 많은 투자를 받게 되며, 도중에 포기하고 투자금을 포기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패를 쥐고 있을 때와 내놓을 때를 알아야 한다는 포커의 오래된 난제와도 같은 이 문제에 간단한 해답은 없다. 하지만 ‘탁월함을 위한 탁월함’이라는 수도원 전통은 몇 가지 참고할 만한 지침을 제공해 준다.

  1. 첫 번째 교훈은 충분히 원대한 사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당신의 사명이 화이트 위젯을 만드는 것이라면, 이제는 하던 일을 모두 접고 블랙 위젯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몹시 힘들 것이다. 반면에, 수도사들이나 트룰리언트 연방신용조합처럼 고객을 기쁘게 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면 사업을 재조정하는 것은 훨씬 쉬운 일이 된다. 만약 당신의 사명이 탁월함에 가치를 두는 개인이나 기업이 되는 것이라면, 매몰 비용을 포기하면서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수업 과정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탁월함을 위해 아무리 많은 것을 희생했다 해도, 지금까지 한 투자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걱정은 결코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성공적인 탈바꿈의 비결은 바로 멥킨 수도원의 사명에 달걀 자체에 관한 내용은 없다는 데 있다. 탁월함을 향한 수도사들의 열정은 제품이나 심지어 사업 모델에도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수도원의 사명은 특정한 사업보다는 사업을 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사업의 과녁 너머를 겨눈 덕분에 어려운 사업상의 결정을 내렸음에도 수도사들은 훨씬 충격을 덜 받을 수 있었다.
  2. 투지와 자기학대 사이의 불가피한 긴장을 다루는 데 필요한 두 번째 요건은 분별이라는 수도원의 미덕이다. 수도사들은 매일 몇 시간을 명상을 하며 보내는데, 앞에서 우리가 언급했듯이 이 명상의 많은 부분은 진리와 마치 진리처럼 보이는 것을 분별하는 데 바쳐진다. 이번에도 역시 과녁 너머를 겨누기이다. 개인의, 그리고 조직의 사명에서 중요한 것이 더 나은 결정을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면, 사명에는 아무리 마음을 쏟아도 모자라다.
  3. 초연함이 더 나은 기회를 내팽개치고 매몰 비용 투자에 매달리려고 하는 것을 막아 줄 수도원의 세 번째 미덕이다. 초연함이 열성적 헌신의 반대말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초연함의 반대말은 동일시이다. 월 스트리트에 도는 다음과 같은 경고는 감정적 동일시에 내재하는 위험을 훌륭히 포착하고 있다. “주식과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라.”

수도사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특정한 주식, 제품, 서비스보다는 원칙, 가치, 미덕에 초점을 맞출수록 특정한 주식, 제품, 서비스에 대해 올바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트룰리언트 사는 고객 서비스 문화를 구축하는 데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그 결과 트룰리언트 사는 오로지 이윤에만 초점을 맞추는 회사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에 훨씬 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그리고 트룰리언트 사의 투자가 포기해야 하는 매몰 비용이 된다는 것은 거의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수도사들이나 트룰리언트 사의 엄청난 사업상의 결정들은 올바른 가치에 기초한 문화의 부산물이다.

다 함께 희생에 참여하는 정신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앞에서 우리가 이야기한 직원 몰입도와 기업 충성도의 하락을 극복하는 데도 지극히 중요하다. 이러한 정신을 확립할 수 있는지 여부는, 몸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명을 표방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을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를 바라는 인간 내면의 욕구, 우리가 탈바꿈을 향한 욕망이라고 불렀던 영웅적 충동을 자극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런 맥락에서는 희생은 흔히 고통스러움이나 힘겨움이라는 함의를 뛰어넘는다. 체육관에 다니는 것은 처음에는 고통스러운 희생이 따를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십중팔구 재미있어지게 마련이다.

멥킨 사업의 매 단계에서 품질은 다른 무엇보다 중시되며, 기도하는 마음은 제품뿐만 아니라 음식 준비, 빨래 세탁, 다음번에 체류할 피정객들을 위한 방문객 숙소의 청소와 정리, 그 모든 것에 깔려 있다.

그런데 품질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면 작업 라인의 누구라도 달걀 컨베이어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는 해도, 핵심은 품질이 아니었다. 멥킨이 광적일 정도로 품질에 신경을 쓰는 것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의 부산물일 뿐이다. 탁월함을 위한 탁월함은 수도사들의 의욕을 북돋우고 수도원의 사업을 이끄는 진정한 원동력이다. 대충 얼버무리거나 ‘이 정도면 충분하지 뭐’ 하는 태도로 후퇴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면 언제나 나는 왜 하필이면 멥킨을 찾아가는가를 상기하며 ‘그런 안일한 마음을 제물로 바친다’. 어쨌거나, 일할 때 빈둥거릴 생각이었다면 굳이 기도를 드리려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희생을 치러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수도사들이 보여 주는 탁월함을 위한 탁월함이라는 태도는 훨씬 더 깊은 무엇인가로부터 생겨난다. 우리는 흔히 일과 개인적 삶, 그리고 영적 삶을 구분한다. 우리는 그 사이에 ‘만리장성’을 세우고는, 위선이나 다를 바 없는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수도사들에게는 이러한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이 긴밀히 연결된 삶을 살아, 직업 생활과 개인의 삶, 조직의 삶, 영적 삶이 모두 하나이다. 수도사에게 제시간에 맞춰 일하러 가는 것은 단순히 업무 규칙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의지력을 기르고, 조직적으로는 효율성을 높이고, 영적으로는 공동체 형제들과 고객들에게 그가 하느님께 기도드려 청하고 다른 이들이 그에게 베풀어 주기도 하는 연민을 보내는 훈련이다.

수도사들의 성공의 비밀은 그들이 개인 생활과 직업 생활 사이에 신비로운 ‘건강한 균형’을 용케 확립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 비밀은 바로 그들의 개인, 조직, 사업상의 생활이 모두 그들이 품은 단 하나의 고귀하고 드넓은 사명, 즉 자신이 될 수 있는 최선의 인간이 되겠다는 사명에 속한 부분집합일 뿐이라는 데 있다. 조지프 수사처럼 수도사들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바치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 자신도 훌륭한 직원이었지만, 그는 이 친구들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열성적으로 일에 뛰어드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해마다 졸업을 앞둔 수많은 ‘자기이해 심포지엄’ 학생들이 마치 최초로 엄청난 발견을 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들뜬 목소리로 똑같은 말을 했다. “이럴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행사를 직접 해보니까 단순히 참여할 때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얻게 되더라고요.” 조지프 수사나 잭 웰치처럼 그들은 탁월함이란 그 자체가 보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이러한 마법과도 같은 이해에 도달한 것은 다음과 같은 공자의 말을 실제 세계에서 시도해 볼 만큼 충분한 믿음을 갖고 나서였다. “나는 들은 것은 잊어버린다. 눈으로 보아야 기억을 하고, 직접 해보아야 이해가 간다.”

기업 사례 연구

루이스 R. 모블리는 위대한 리더와 위대한 조직은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가치관으로 남들과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탁월함을 위한 탁월함과 같은 가치를 몸에 배게 하는 것은 교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모블리의 가장 중요한 발견 가운데 하나는 가치관은 경험을 통해서만 변한다는 것인데, IBM 경영인 학교가 교단과 교과서를 없애고 순전히 경험을 위주로 한 커리큘럼을 채택한 것은 그래서이다. 하지만 이 학교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모블리는 가치관을 바꾸는 최선의 길은 실제로 일을 하면서 현장 경험의 변화를 체험하는 것이라고 늘 믿었다.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이다. 그렇다면 탁월함을 위한 탁월함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세속 조직에 심을 것인가? 1980년대 후반에 나는 바로 이러한 문제에 직면했다.

“간단해요, 오기.” 그가 말했다.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나를 올려다보며 그가 말했다. “자기가 가진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게 어떤 건지 일단 맛보고 나면, 절대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거든요.”

나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어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일주일 동안 펼쳐진 그 시합은 탈바꿈을 위한 변곡점이었다. 어느 누구도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특별한 인센티브는 더 이상 없었음에도 판매 실적은 두 배, 세 배, 네 배로 뛰었다. 그러는 사이 탁월함의 정신이 점점 다른 부서에까지 퍼져, 마침내 모든 직원이 나란히 전력 질주를 하게 되었다. 모두가 10배는 더 열심히 일하면서 천 배는 더 재미있어했다. 매주 나는 직원 중 한 사람에게 업무를 맡기고는 비행기를 타고 롤리로 가서 모임을 주관하고 일요일에 돌아왔다. 이런 관리 업무를 맡았다고 추가 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직원들은 서로 이 일을 하겠다고 아우성이었고, 내가 없는 동안에도 판매 또한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부회장님.” 그는 아주 약간 혀가 꼬인 목소리로 말했다. “9개월 만에 영업 실적이 5배가 뛰었습니다. 비결이 뭡니까?”

그의 현재 상태뿐 아니라 공학도로서의 사고방식도 감안해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저 사람들이 그러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제품도 그대로고, 가격도 그대로고, 광고도 그대로고, 사람도 그대로예요. 이건 뭐, 수수료까지 그대로라고요. 저 사람들이 전에는 그러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물론 전에도 그러고 싶어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그러고 싶어 하죠.”

그가 취했다고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정말로 나는 그가 기대하는 대로 25자 내외로 그 이유를 설명할 재간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기술이었지만, 내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삶의 방식이 전부였다. ‘비결’은 바로 수도사들처럼 나 역시 지극히 사소한 많은 것들을 통해서 탈바꿈을 향한 인간의 보편적 열망을 자극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사실상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나는 그저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날 때를 기다리며 늘 거기 있을 수 있도록 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마지막 사분기 결과는, 내가 통제권을 기꺼이 넘겨준 덕분에, 또는 수도사들이 말하는 대로 ‘그대로 놔두고 하느님께 맡긴’ 덕분에 나온 것이었다.

스콧 윌크스의 말이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탁월함을 위한 탁월함이 어떤 것인지 일단 알게 되면, 우리는 절대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게 되는 것이다. 리더십이 할 일은,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탈바꿈의 경험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확립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보기를 보이는 것 역시 리더십이 할 일이라는 사실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내 친구가 말한 대로, 염소 로데오가 최우선이다.

탁월함을 위한 탁월함과 같은 가치를 몸에 배게 하는 것은 과학인 동시에 예술이지만, 데이터 방송사의 사례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상징적 동물이다.
큰 영향을 미친 저작 『정신과 상징Psyche and Symbol』에서 칼 융이 지적했듯이,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이 좀 더 심층적인 무엇인가의 상징이다. 심지어 말조차도 상징이다. 내가 데이터 방송사에서 한 일은 거의 대부분이 상징적인 것이었다. 총잡이 시합에 건 상금마저도 강한 상징성을 띠고 있었다.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이 의미 깊은 상징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목소리와 다리를 맞바꾸지 마라.
내 아버지께서는 부모들이 어린 자식에게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목소리와 다리를 맞바꾸는 것이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나는 지각하지 말라고 직원들에게 그저 말만 한 것이 아니라, 2시간 일찍 회사에 나오면서 직접 모범을 보였다. 절대로 잔소리하지 말라. 행동하라.
주도권을 잡아라.
인식은 현실이며, 신속히 행동하는 것만큼 변화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없다. 내 상사이자 멘토인 짐 콜린스가 내게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오기, 새 직장을 얻거나, 누구를 고용하거나, 누군가를 해고하거나, 가구를 재배치하거나 등등을 할 때는, 제발 일을 빨리 처리하게나!”
집중, 집중, 집중하라.
혹시 내가 수만 가지 일을 동시에 했던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집중했다. 바로 탁월함의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판매 실적조차도 내가 문화를 얼마나 잘 바꾸고 있는지 살피는 척도로 참조할 때 말고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돈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직원들은 자신들의 집단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수료를 포기하는 것 같은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몰아붙이고, 몰아붙이고, 몰아붙여라.
나는 데이터 방송사에서 점진적으로 수많은 것들을 바꾸었지만, 철저하게 몰아붙일 수 있는 시간이 없을 경우에는 변화를 도입하지 않았다. 행동상의 변화가 몸에 배어 자동적으로 나와서 가끔 가다 한 번만 점검해도 될 정도에 이를 때까지 나는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사소한 일 하나까지 그냥 넘어가지 않음으로써, 나는 탁월함은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위험을 감수하라.
내가 개최한 빠른 총잡이 시합이나 직원들이 영업을 주관하도록 한 결정은 위험천만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스콧 월크스나 제이 홀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영웅의 여정’은 위험한 사업이며, 위험이 없다면 진보도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위험 없는 모험이라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유리 상자를 깨뜨려라.
모든 개인과 부서, 회사는 결국에 가서는 스스로를 유리 상자에 가둔다. 어떤 것이 가능한지 미리 한정 짓는 상자 말이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4분 안에 1.6킬로미터를 주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로저 베니스터가 이 벽을 깨뜨리자, 몇 달 안에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이었다.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변화를 갈망하는 개인이나 부서를 찾아내어 이 유리 상자가 깨질 때까지 그들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라.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따를 것이다. 데이터 방송사에서 딱 한 번 개최했던 시합은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하도록 계획된 것이었다. 상자를 박살 내면서 스콧 윌크스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고, 이 가슴 덜컹한 충격은 문화를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모든 것을 단번에 바꾸지 마라.
작은 것에 집중하여 곧바로 승리를 거두고, 그것을 효율적인 본보기로 삼은 다음 비로소 시작하라. 데이터 방송사에서 내가 추진한 변화들은 모두 처음에는 잠정적인 것이었다. 첫 한 주 남짓 동안 집중적으로 시행해 보고, 혹시 계획할 때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오는지 살펴보았다. 내게 필요한 반응들이 모두 나오면, 필요한 경우 변화 전략을 수정한 다음 비로소 ‘가동 준비’에 들어갔다.
배려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깊은 배려가 없다면 이 모든 방법들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나를 권위를 앞세우는 꼰대로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내가 데이터 방송사의 모든 사람을 깊이 배려하자, 그들도 같은 식으로 나를 대해 주었다. 데이터 방송사를 떠나게 되었을 때, 직원 중 한 사람이 잠깐 보기를 청했다. “오기, 당신은 제가 만나 본 사람 중에 제일 성가신 분이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왜 그렇게 저한테 신경을 많이 써주셨죠?”
사명이 최우선이다.
데이터 방송사에서 돈은 나름의 역할을 했지만, 대부분은 더 큰 어떤 것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의 역할이었다. 사명과 이 사명이 표방하는 탈바꿈을 위한 기회 말이다. 내가 제이 홀에게 끌렸던 것은 그가 대단한 세일즈맨이거나 리더여서가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수수료를 기꺼이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따르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사명과 전체의 이익을 자신의 이기적 욕망보다 우선시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했다. 내가 그를 장래의 파트너이자 평생 친구로 삼은 것은 그의 섬김과 자기비움의 태도 때문이었다.

8. 윤리적 기준들, 또는 왜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가

우리는 흔히 비윤리적 행위가 나쁜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한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좋은 사람들이 걱정과 불안 때문에 나쁜 일을 해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멥킨의 수도사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비윤리적 행위를 하게 하기 십상인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식의 사고방식을 초월하는 전통에 뿌리 내리고 있다. 종교적 도덕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밖에도 수도사들의 수행의 다른 세 가지 측면이 우리 모두가 따라 배울 수 있는 사업에 대한 윤리적 태도의 밑바탕이 된다.

  1. 첫 번째는 길게 바라보는 태도이다. 분기별 이윤에 집착하는 우리와 달리 수도사들은 장기적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시간을 초월한 태도는 중요한 일을 위해서라면 욕구 충족을 언제까지라도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을 불러온다. 여기서도 윤리적 행위는 길게 보면 결국 보상을 받게 되는 어떤 것이다. 윤리적인 면을 무시하고 손쉬운 길을 택했다가 사업이나 명성, 심지어 생명까지 해치게 되는 것은, 우리가 편의와 즉각적 만족을 애호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2. 지고한 윤리적 기준을 준수하는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의 두 번째 비결은 초연함이다. 초연함을 우리는 흔히 열정과 헌신에 반대되는 차가움이나 냉정함으로 이해하곤 한다. 그러나 초연함의 반대말은 열정적인 헌신이 아니라, 동일시이다. 우리는 자신의 직장이나 직함을 스스로와 지나치게 동일시할 경우, 그중 어느 것이라도 위협을 받게 되면 마치 목숨이 달린 일인 양 격렬히 반응하게 될 수 있다.
  3. 세 번째 비결은, 이번에도 다시 과녁 너머를 겨누기이다. 앞장들에서 나는 조직과 개인의 사명을 창조하는 데 이 개념을 적용했는데, 윤리적 결정을 내릴 때 역시 이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분기별 소득에 우리가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과녁 너머를 겨누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부정적 결과의 좋은 예이다. 워렌 버핏은 주주들에게 보내는 연례 서신에서 항상 이런 종류의 단기적 사고를 통렬히 비판한다. 해마다 그는 주주들에게 버크셔 해서웨이는 ― 수도사들이 그렇듯이 ― 장기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의 장기적 사고가 지극히 윤리적인 행위만 하는 것으로 유명한 자신의 명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나는 버크셔 해서웨이 같은 기업의 장기적 재정 건전성보다도 더 중요한 과녁이 있다고 주장한다. 성공하고 싶다면 윤리적이 되어야 한다. 윤리적이 되고 싶다면, 초연해져야 한다. 초연함은 당신 자신과 당신의 개인적 관심사보다 거대한 어떤 것에 스스로를 뿌리 내림으로써 길러진다.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건 은유적으로 받아들이건 간에, 우선 천국을 찾아 나서면 나머지 모든 것은 알아서 이루어진다. 사업까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9. 믿음

언젠가 멥킨의 수도원장인 프랜시스 신부님에게 신부님과 수사 형제들은 그렇게 적은 자원을 가지고 어떻게 그토록 많은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신부님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저 절차를 신뢰할 뿐입니다. 이건 1,500년이나 된 전통입니다. 그 절차를 신뢰할 뿐이지요.”

멥킨의 성공은 믿음faith에 힘입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꼭 우리가 흔히 일련의 신학적 신앙들과 연결시키는 그런 종류의 믿음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믿음성 있는/충실한faithful이라는 단어에 함축되어 있는 그런 종류의 믿음이다. 이를테면 성모 마리아의 처녀 수태와 같은 종교적 명제에 대한 믿음은 정적 모델이지만, 멥킨 수도원의 사업 성공에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동적 모델 ― 행동하는 믿음 ― 이다. 수도사들의 성공은 옆에서 지켜보는 일반인들이나 심지어 때로는 수도사들 자신에게도 완전히 이성적으로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방식으로 믿음성 있게 행동한 데 따른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와 같은 성공을 누리고 싶다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생계가 위태로워져 새로운 미지의 길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던 멥킨의 수도사들을 이끌어 준 것은, 바로 원칙과 수도원 전통의 미덕들에 대한 이들의 믿음이었다. 초연함과 다른 이들을 섬기는 마음 덕분에 달걀 사업을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었다면, ‘올바른 일’을 할 용기만 있다면 어떻게든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이라는 확신에 힘을 준 것은 바로 믿음이었다.

오늘날처럼 시장이 급격히 변화하고 갈수록 더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에서,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부족할 때가 많은 것이 바로 이러한 미덕들이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기업들이 성공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쇄신’해야만 하는데, 기업의 역사에는 코닥처럼 한때 대단했던 기업들이 시장이 급속히 진화하는데도 자신의 ‘효자 사업’을 포기하거나 재조정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넘쳐 난다.

사업이나 우리의 개인적 삶에서, 인생이 던지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변화를 시도하지 못하는 것은 흔히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들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보다 거대한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수께서는 먼저 천국을 찾으면 다른 모든 일은 알아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멥킨의 수도사들을 움직이는 원동력도 이런 종류의 믿음이다. 수도사들은 섬김과 자기비움의 ‘삶을 살면’ 어떻게든 살길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역경과 알 수 없는 미래를 견디지 못해 내가 RGI 사를 그만둘 생각을 그대로 관철시켰더라면, RGI 사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결말로 끝을 맺었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는 ‘영웅의 여정’에 쉽게 대응될 수 있다.

회사를 창업하려는 우리의 욕구는 ‘부름’에 해당하고, 처음에 회사를 세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던 것은 ‘부름에 대한 저항’에 해당한다. 오랜 역경과 맞서 싸우며 지속성 있는 기업을 건설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던 2년 동안 우리가 겪은 고통은 ‘사막’에 해당했다. ‘위대한 시험’은 우리가 막 한숨 돌리기 시작할 때 갑자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던 그 순간에 찾아왔다. 하마터면 우리가 회사를 스스로 끝장낼 뻔했던 것과, 희망이 안 보여도 회사를 꾸려가기로 결정한 것이 예상치 못한 마술과도 같은 결과로 이어진 것은 ‘죽음과 거듭남’에 꼭 맞아떨어진다. RGI 사의 사업 모델이 어떻게 원 트리 사의 인수로 인해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었는지 또한 ‘죽음과 거듭남’으로 멋들어지게 설명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와 관계를 구축하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고객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증대시키고, 회사를 매각하고, 여기서 생긴 수익을 모든 이가 공유하게 한 것은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한 귀환’에 해당한다.

하지만 ‘영웅의 여정’을 떠나려면 무엇보다 믿음이 있어야 하며, 이 믿음은 공동체에 의존한다. 우리가 여전히 ‘사막’ 한가운데에서 헤매고 있던 어느 날, 내 동생 톰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톰은 돈 한푼 받지 않고 RGI 사를 위해 일하느라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했다. 말 그대로 끼니를 해결할 돈도 제대로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내가 동생의 얼굴에서 본 것은, 친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의 고통이었다. 나는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해서 얼마간의 돈을 겨우 동생에게 쥐여 줄 수 있었는데, 하지만 나중에 톰은 훨씬 더 큰 선물로 그것을 되갚아 주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을 때, 회사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을 다잡는 데 특히 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이러한 톰의 본보기였던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서 주말 내내 나 자신과 씨름하는 동안 내 마음속에 자꾸만 떠올랐던 것은 충직하고 청빈한 수도사 역할을 하는 동생 톰의 모습이었다. 회사를 계속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믿음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 준 톰의 본보기와 다른 파트너들의 믿음 덕분이었다. 나 혼자서는 결코 그런 결심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10. 신뢰의 힘

경영자라면 누구나 성공하는 데 필요한 사람들의 99퍼센트는 자기에게 보고를 올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만간 깨닫게 된다. 모든 최고경영자의 성공은 그에게 직간접적으로 보고를 올리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유급 직원들보다는, 판매자, 주주, 이사, 단속 기관 담당자, 정치가, 전략적 파트너, 재계, 미디어, 고객들에 달려 있다. 나는 MTV에서 아주 괜찮은 영업 실적을 올렸지만, 그 성공은 내 부하 직원들이나 나의 재능 덕분이라기보다는, 법률, 재정, 마케팅, 조사, 기술 부문에서 도움과 지원을 베풀어 준 사람들에게 크게 힘입은 것이었다. 진정한 리더십은 설득을 기반으로 하며, 설득은 신뢰에 의존한다. 나의 멘토이자 IBM 경영인 학교의 대표였던 루이스 R. 모블리는 사업은 자신이 ‘약속과 이행’이라고 부르는 신뢰 절차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중요하기 그지없는 기업의 손익계산서profit-and-loss statement(P&L)에 현금이나 실제 돈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손익계산서는 주로 미수금 계정과 외상 매입 계정으로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돈을 주겠다는 약속과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미래의 어느 시점에 돈을 지불하겠다는 약속들일 뿐인 셈이다. 이러한 약속들의 기저를 이루는 신뢰가 사라진다면, 상업 거래는 서서히 중단되고 말 것이다.

인생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필요한 힘을 축적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영웅의 여정’을 거쳐 다른 사람들이 ― 특히 극히 중요한 일이 걸려 있을 때 ― 왠지 저 사람은 신뢰가 간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믿음직한 사람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지도, 모든 것에 무관심하지도 않다. 사심이 없고 초연할 따름이다. 사심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당신은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크리스천 신부님이나 프랜시스 신부님은 믿음직한 성품을 타고난 것도 아니고 하룻밤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다. 이들은 ‘영웅의 여정’을 떠나 개인적 탈바꿈을 이루는 데 자신의 삶을 바침으로써 내가 인생을 의탁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 나는 스카이다이빙 사고 이후의 2년을 내 자신의 ‘영웅의 여정’에서 찾아온 ‘위대한 시험’으로 생각한다. 휴가 예언했던 지옥은 정말로 내 앞에서 뜨거운 불길을 내뿜었지만, 내 곁에는 늘 크리스천 신부님과 프랜시스 신부님, 그리고 멥킨의 수도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역시 휴가 예언했던 대로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오로지 감사함뿐이다. 순수한 감사함 말이다.

몇 주가 걸리기는 했지만, 다른 부서들은 내가 약속을 이행하면서 반대급부로 요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는, 하나씩 하나씩 우리를 찾아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자기네도 이러저러한 것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조금씩 조금씩 서로 간에 신뢰가 구축되자, 나는 무력감에서 벗어나 내 목표를 이루고도 남을 힘을 갖게 된 기분이 들었다. 4개월 뒤, 영업 실적이 껑충 뛰어 회사가 이윤을 올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모두 서로 어울리며 지냈다. 영업부에서는 처음으로 여러 부서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는 파티를 열었는데, 용감한 사람들이 자기 부서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방 한구석에서 과감히 뛰쳐나와 무인지대를 지나서 예전의 적들과 비로소 한데 섞인 것은 한 시간은 좋이 지나 맥주 한 통이 다 비었을 무렵이었다. 한 시간 뒤, 두 통째 맥주의 도움으로 우리는 모두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일이 이렇게 풀리리라는 것을 내가 미리 알았을까? 그렇지 않다. 나 역시 걱정이 되어 죽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프랜시스 신부님이 말했듯이, 절차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이 경험으로 나는 훗날 내가 ‘기업 정치인Corporate Statesman’이라고 이름 붙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 ‘기업 정치인’이란 전체의 이익을 자신의 개인적 이익보다 앞세우고, 다른 이들이 자신의 지도를 따를 것이라고 확신하는 공정하고 정직한 중개인을 말한다.

신뢰는 리더나 조직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인데, 얼마나 큰 신뢰를 얻을 수 있는가는 자신을 얼마나 비울 수 있는가에 정비례한다. 내가 동료들과 싸워 이기려 했다면 그들은 곧바로 그것을 간파했을 것이고 그러면 결과는 참담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내가 나 자신의 이익을 묻어 두고 진심으로 회사의 사명과 다른 이들의 이익을 앞세울 수 있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었다.

사례 연구와 멥킨에서의 내 경험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어떻게 신뢰를 얻고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몇 가지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우리는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거나, 다른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할 생각만 한다. 하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유유상종이라고, 당신 스스로가 다른 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당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당신 주위에 모여들 것이다.
약속을 지킬 것.
어떤 사람이 신뢰할 만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려 주는 가장 확실한 표식은 그가 자기 약속을 지키는가 여부이다. 작은 약속, 심지어 하찮은 약속도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큰일을 맡겨도 좋은지를, 설령 의식적으로 알고 그러는 것은 아니더라도, 당신이 작은 일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고 미루어 판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루이스 모블리는 제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몹시 불신했다. 그것 때문에 계약이 깨지는 일은 없다 해도, 습관적으로 늦는 사람들은 모블리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것.
자기는 갖고 있지 못하면서 남들에게 미덕이 있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인간의 불행한 약점이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의지력이나 자기제어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이러한 미덕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실제로 일이 닥쳤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의지력 역시 여느 근육과 같다는 것을 기억하라. 지금은 의지력이 보잘것없다 해도, 시간을 지키는 것 같은 일부터 매일 꾸준히 연습하면 점점 더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약속은 적게 하고 이행은 확실히 할 것.
반드시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해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존경했으면 하는 마음에 우리는 잔뜩 약속을 해놓고 허덕이는데, 사랑과 존경을 잃는 가장 빠른 방법이 바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가 한 약속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모두 적어 두는 습관을 들여라. 이렇게 하면 약속 잡는 것을 관리하고, 이미 한 약속들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 평가할 수 있다.
기꺼이 약속할 것.
믿을 수 없기로 유명한 사람들이 잘 쓰는 술책 중 하나가 선뜻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약속을 아예 하지 않으면 약속 지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을 것 같지만 이는 틀린 생각이다. 사람들은 이내 이 책략을 간파하며, 당신이 믿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우유부단하기까지 하다는 평판은 그보다도 더 빨리 퍼진다.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 또한 하나의 결정임을 명심하라.
자신의 개인 브랜드를 보호할 것.
흔히들 브랜드라 하면 세탁용 세제 같은 것에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개인 브랜드를 갖고 있다. 훌륭한 브랜드 관리자처럼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들여라. “이 결정이 내 개인 브랜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당신이 하거나 하지 않은 모든 일이 당신의 브랜드에 영향을 미치며, 결국 당신이 얻는 평판이 당신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된다.
모호함을 근절할 것.
모호함만큼 신뢰를 급속히 잠식하는 것도 없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두려고 “해보겠습니다” 같은 애매한 말을 한다. ‘네가 그랬느니 안 그랬느니’ 하며 사업에서 수없이 마찰이 일어나는 것은, 관련된 사람 모두가 곤경에 빠지지 않기 위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런 다툼을 중지시킬 때면, 진범은 십중팔구 관련 당사자들이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언제까지 하기로 약속했는지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해 두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약속 이행을 제도화할 것.
RGI 사 시절에 우리는 약속 이행을 제도화했다. 중요한 업무에는 반드시 증거 문서들을 남기도록 했는데, 여기에는 관련된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약속을 했으며, 그 약속이 이행되었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 등이 명확히 담겨 있어야 했다. 내 파트너들과 나는 이 절차를 철저하게 관리했는데, 이렇게 미리 약간만 더 노력을 들여 증거 문서를 만들어 놓으면 결국 시간도 절약되고 나중에 사실 여부를 놓고 감정이 상할 일도 없었다.
절대로 사람들이 물어보게 하지 말 것.
만약 사람들이 당신 뒤를 쫓아다니며 약속한 것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추궁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당신은 이미 신뢰성을 반은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당신 직원 중 한 사람이 검토 중이라는 연봉 인상 문제가 소식이 없어 참다 못해 당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면, 결국 당신은 연봉은 연봉대로 더 많이 올려 주고도 좋은 소리는 못 듣기가 십상이다. 해야 할 일을 미리 예상하고 남이 묻기 전에 이행하는 것만큼 신뢰를 형성하는 데 좋은 것도 없다. 독촉이 들어오기 전에 빚을 갚으면 신뢰 면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오고가는 돈은 똑같을지 몰라도 신뢰도는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소통하고, 소통하고, 소통할 것.
누구나 약속을 못 지킬 수도 있지만, 미리 연락해 약속을 지키기 어려울지 모르겠다고 양해를 구하지 않는 것은 용서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당황스럽거나 약속을 못 지킨 것을 인정하기 두려워 연락을 피할 때가 많은데, 그러면 상대방은 당신이 약속을 지킬 의사가 없으며, 자기네가 약속을 잊어버리고 은근슬쩍 넘어가기를 바라는 것으로 간주하게 될 따름이다. 상대방에게 진행 상태에 대한 보고서를 알아서 먼저 보내는 습관을 들여라.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 중이라면 상대방은 괜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상대방도 대안을 마련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과녁 너머를 겨눌 것.
삶 전반에서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람이 사업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멥킨의 수도사들은 ‘기업 윤리’라고 불리는 협소한 영역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내 과속 딱지의 경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업에서 이 수도사들이 신뢰받는 것은 그들의 삶 자체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도사들에게 신뢰는 사업 전략이나 전술이 아니다. 고귀한 목표를 위해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얻는 부산물일 따름이다. 거꾸로 말해서, 만약 당신이 신뢰를 오로지 당신 자신을 위한 실용적 가치 때문에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신뢰를 얻지 못하기가 십상이다.

11. 자기 이해와 진정성

나는 모든 종교 전통을 하나로 엮는 ‘심층 구조’를 평생 동안 탐색했는데, 모든 전통에서 자기이해는 영혼의 길의 본질적 측면으로 간주된다. 나의 수호성인인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강박적일 정도로 흥미를 보여, 종종 심리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델피 신전에 신탁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입구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문구와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너 자신을 알라. 그러면 신들과 하늘의 일도 알게 되리라.” 바로 그 델피의 신탁이 소크라테스를 인간 중에 가장 현명한 자라 칭했는데, 왜냐하면 오직 그만이 자신이 실은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달을 정도로 자기 자신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한편 소크라테스는 자기이해를 크게 중시하면서,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위대한 기독교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나는 하느님께서 나를 보시는 바로 그 눈으로 하느님을 본다”라고 말했다. 또한 힌두교나 불교 같은 동양의 전통 종교는 진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이런 예를 들자면 끝도 없는데, 내가 이끌었던 대학생들이 자기네 학생 조직에 ‘자기이해 심포지엄’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처럼 자기이해에 대한 요구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토머스 머튼은 자기이해에 대해 수많은 글을 썼고, 수도원 규율에 명시된 명상과 거룩한 독서, 자기반성도 대개 바로 이 자기이해에 이르기 위한 것들이다.

좀 더 부연 설명을 해보자. ‘영웅의 여정’은 곧 자기이해를 향한 여정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여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 하나를 꼽자면 그것은 환멸이 될 것이다. 말로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리 대부분은 우리의 모든 ‘환상’이 사라지면 ― 하늘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직행했을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 우리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만약 우리 안의 괴물들과 한 번이라도 마주한 적이 있다면, 우리가 겪는 문제들의 원인으로 발견하는 것이 …… 혹시 …… 그 괴물들이 아닐까 두려워한다. 더 두려운 것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종교 전통의 성자와 현자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영웅의 여정’ 가운데 ‘죽음과 거듭남’이다. 조지프 캠벨은 여러 지역의 문화를 넘나들며 ‘영웅의 여정’을 탐구하다가 이 모티프가 끝없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영웅이 늘 그러하듯, 무자비한 용과 맞닥뜨리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과 맞닥뜨리는 것의 은유일 뿐이다.

1955년에 IBM의 전설적인 최고경영자 톰 왓슨 주니어는 나의 멘토인 루이스 R. 모블리와 그의 동료들에게 IBM 경영인 학교를 창설할 자금으로 백지수표를 건네며 전권을 위임했다. 모블리는 IBM의 첫 관리자 및 중간 관리인 훈련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시행한 데 이어 곧바로 경영인 양성 프로그램을 자신 있게 출범시켰다.

제너럴 일렉트릭 사와 뒤퐁 사와의 협력 아래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지금도 대입수능시험SATs을 시행하는 회사인 교육평가원Educational Testing Service(ETS)에 의뢰해 위대한 리더들의 위대함의 바탕이 된 기술들을 알아내도록 한 것이었다. 모블리와 제너럴 일렉트릭 사와 뒤퐁 사의 그의 동료들은 이러한 지적 기술들이 일단 파악되면, 경영인을 배출하는 것은 단순히 ‘훈련시켜 시험을 통과하게 하는’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육평가원은 검증된 리더들을 꼼꼼히 선정해 광범위한 테스트를 실시하며 이들이 지닌 공통적인 기술이 있는지 찾았다. 조사 결과는 믿을 수 없고 적잖이 심란한 것이었다. 모블리는 그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떤 정규분포 그래프를 그리든, 성공적인 리더들은 최극단에 자리했다.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서로 아무 공통점이 없다는 것뿐인 듯싶었다. 교육평가원은 이런 결과에 불만스러워하며 우리에게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모블리는 실패했다며 손 놓고 있을 사람이 아니어서, 결국 해답을 찾아냈다. 관리자나 중간 관리인과는 달리, 위대한 경영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은 기술과 지식이 아니라 가치와 태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블리는 위대한 리더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가치들을 많이 알아냈다. 예를 들어 위대한 리더들은 불확실한 상황을 거뜬히 견뎌 내며,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인재들을 주변에 둔다는 것을 그는 발견했다. 그들은 도전을 갈망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며, 깊이 생각하고,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결국 모블리의 목록은 상당히 광범위해졌지만, 위대한 리더들이 공유하는 모든 가치들은 수도사들이 소중히 여기는 한 단어로 집약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진정성이었다. 위대한 리더들은 진정성 있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진정성은 자기이해의 부산물이라는 것을 모블리는 깨달았다. 윌리엄 수사의 고백이 내게 그토록 깊은 충격을 주었던 것은 그 말에 담긴 진정성 때문이었고, 그 뒤로 20분 동안 나는 윌리엄 수사를 따라 그가 겪었던 지옥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었다.

앞장에서 나는 위대한 리더들은 끊임없이 ‘이 사업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물으면서 전제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습성은 조직의 사명과 목표를 발전시키고 개선하지만, 그것은 결국 집단에서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형태로 제기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영원한 질문의 하나일 따름이다. 모블리는 학생들이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대표하는지 알지 못하면, 조직 차원에서 다른 이들에게 이런 중대한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모블리는 내게 ‘조직 발전Organizational Development(OD)’이라는 과목을 소개해 주었는데, 나는 이 ‘조직 발전’이라는 학문 또한 자기이해에 크게 의지한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조직 발전’은 결국 조직 차원의 심리 치료법이었다. 여기서 조력자나 코치는 사람들이 자신의 무시무시한 ‘괴물들’에 맞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이 괴물들은 기능장애 행동을 야기하고 이는 곧 조직의 기능장애의 원인이 된다. 바로 앞장에서 논의했듯이, 상호 간의 신뢰는 어떠한 조직에서든 가장 중요한 자산인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당신부터 자기 자신을 신뢰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일단 리더십 가치의 목록을 완성하자 모블리는 훨씬 더 어려운 또 하나의 문제와 부딪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사람들에게 가치들을 주입하고 태도를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다시 말해, 어떻게 진정성을 가르칠 것인가가 문제였다. 이러한 과제는 그가 관리자나 중간 관리인과는 달리 경영인들은 또 다른 특성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더욱 난감한 것이 되었다. 그 특성이란, 경영인은 근본적으로 훈련시켜서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모블리는 가치와 태도는 전형적인 훈련 기술들로는 가르칠 수 없을 뿐 아니라, 억지로 태도를 바꾸게 하려 했다가는 도리어 지금의 태도에 더 고집스레 매달리게 만드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블리는 결국 진정성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계적인 학습 과정보다는 ‘의식의 혁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IBM 경영인 학교는 일련의 여러 기술들을 전수하기보다는 개인의 진정성을 배양해야만 했다. 모블리는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은 수도사들이라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 부를 어떤 것의 ― 우리가 ‘영웅의 여정’이라 부르는 것 ― 부수 이익 또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서만 얻을 수 있다는 과감한 결론을 내렸다.

실패할 위험이 다분했지만,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사람들을 만들어 내려면 우선 모블리 자신부터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는 강의와 책을 버리고, 대신 게임과 시뮬레이션,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을 목표로 한 경험적 연습을 교육 방법으로 택했다. 모블리에 따르면, 진정성의 바탕이 되는 자기이해는 말이나 추상적 개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지적인 자기성찰이나 ‘자기몰입’은 물론 가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다. 자기이해에 이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실제 삶의 상황들에서 우리 자신과 조우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우로 점증적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조우들은 오히려 ‘즉각적’ 통찰을 특징으로 하는데, 수도사들은 그것을 ‘현현’, ‘계시’, ‘깨달음’ 등으로 부른다. 따라서 모블리가 시행한 연습은 ‘아하!’ 하고 번뜩 자기 자신을 깨닫는 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연습들의 대부분은, 말하자면 짐 수사의 거울을 IBM의 경영인들 코앞에 갖다 대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과 자신 안의 ‘괴물들’을 대면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모블리가 IBM 경영인들을 위해 고안한 연습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사례 연구였다. 빌은 20년 동안 성실하고 일도 잘하는 IBM 직원이었는데, 최근에 실적이 갑자기 뚝 떨어지더니 옆에서 아무리 도와줘도 도무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IBM은 빌을 그대로 붙잡아 두어야 할까, 아니면 내보내야 할까?

모블리의 경영인 학교에서는 그런 실험들이 끝없이 이어졌는데, 여기서 실험의 목표가 ‘올바른’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빌을 그대로 둘지, 내보낼지, 명예퇴직을 시킬지, 다른 부서로 보낼지 등을 위시해 다른 많은 대안들이 여전히 논의가 되었고 각각의 주장은 저마다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이 실험의 목표는 시인 T.S. 엘리엇이 자신의 작품 『4개의 사중주』에서 말한 ‘오랜 시간에 걸친 동기의 정화’에 가까웠다. 이 동기의 정화는 “거의 모든 것을 바쳐 완전한 단순함의 상태로” 이끈다고 T.S. 엘리엇은 말하는데, 진정성을 얻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동기의 정화이다. 주관자가 우월한 입장에서 제시하는 하나의 ‘정답’에 이르게 하기보다는, 모블리는 주로 무의식에 남아 있는 모든 동기들을 표면에 드러나게 해, 흔히 우리가 왜곡된 결정을 내리는 원인이 되는 숨겨진 편견과 의도들을 인식할 수 있게 하고자 했다.

모블리의 접근법은 자신감,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 인간 지향, 개인적 책임의식, 자기비판, 연민, 개방성, 그리고 위대한 리더들이 공유하는 그 밖의 다른 모든 가치와 성격적 특성들은 그저 자기이해에서 비롯되는 진정성과 진실함의 부산물일 ― 심지어 의도치 않은 결과 ― 따름이라는 관념을 바탕으로 했다.

모블리는 자신의 학생들을 미리 결정된 어떠한 틀에도 억지로 끼워 맞출 생각이 없었다. 그가 말했듯이 “IBM 경영인 학교의 사명은 개인의 성장에 이상적인 환경을 조성해, 참가자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한 모블리는 ― 모든 종교 전통에서 그러하듯 ― 우리가 ‘악’이라고 여기는 것은 그저 무지와 두려움의 부산물일 뿐이라고 낙관했다. 진정한 자신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 말이다.

결과를 평가하자면, 자기이해와 개인의 진정성이 사업에 득이 될 것이라는 모블리의 판단은 옳았다. 그는 1956년부터 1966년까지 IBM 경영인 학교의 핵심 인물이었고, 그가 가르친 학생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IBM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매일 종교 의례처럼 하루를 돌아보면서 다른 사람과 어떻게 지냈는지, 실제 삶의 시나리오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돌이켜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친구들과 동료들, 가족에게 전방위적인 논평을 부탁하면 이들은 유용한 거울이 되어 주어, 너무 가까워서 스스로는 보지 못했던 자신의 성격 특성들을 드러내 보여 줄 것이다.

직장에서나 개인 생활에서 안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안일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새로운 도전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자기 자신을 깨닫도록 하라. 새로운 도전들로 생겨나는 어려운 상황은 성격을 형성할 뿐 아니라, 드러내 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자기이해 심포지엄’이나 알코올중독자협회처럼 진정성을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공동체를 찾아보거나 결성하라.

자기이해는 사업상의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필수적이다. 수도사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자기 자신의 진정성을 얻었기에, 조직이 던지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그토록 훌륭하게 대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에 순수한 목표를 설정할 수 있고, 그 덕분에 수도원의 사업은 진정성 있다는 평판을 얻는다. 조직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노골적인 거짓말이나 의식적인 기만이 아니다. 진짜 피해는 자기기만에서 온다. 여러분이나 나 같은 선의를 지닌 사람들이 무의식적인 두려움이나 숨은 의도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는 경우는 흔하디흔한데, 이 숨은 의도는 워낙 교묘히 감추어져 있어서 우리 자신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12. 참된 삶을 산다는 것

크리스천 신부님은 언젠가 내게 ‘영적으로 어떤 것이라도 성취하고’ 싶다면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작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철학자에 대한 그분의 취향이야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해도, 만약 수도사들로부터 ‘무엇이라도 얻어 내고’ 싶다면 그들의 삶을 이끄는 가치와 원칙들을 철저히 파고들어야만 한다. 이 책이나 이와 비슷한 책 1천 권을 읽는다 해도 참된 삶을 사는 데 온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로지 참된 삶을 사는 느리고 긴 과정을 통해서만 영혼의 살아 있는 물이 돌처럼 단단한 우리의 머릿속에 스며들고 그러다 마침내 우리의 가슴을 적실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그런 존재가 되기 전에는 결코 진정으로 섬김과 자기비움을 배울 수 없다.

참된 삶을 살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헌신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 모두가 수도사가 될 필요는 없지만, 헌신하는 사람은 수도사가 될 결심을 하고 수도원에 들어가는 사람과도 같다. 그는 ‘영웅의 여정’을 향한 부름을 듣고, 그 부름에 대한 저항을 이겨 내며, ‘옛 삶’을 버리고 자기초월을 향한 낯설기 그지없는 길을 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고귀한 목적에 헌신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면, 머레이의 감명 깊은 선언문에 몇 마디 보탤 것이 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머레이는 헌신이 마치 어느 특정한 시점에 한번 결정을 내리면 그것으로 끝인 정적인 모델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헌신은 사실 동적인 모델이다. 헌신은 한 번의 결정으로 시작될 수도 있지만, 헌신하는 것과 헌신적이 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수도원에 들어오려면 헌신이 필요하지만, 여러 해가 지나 최종 서원을 할 때에야 비로소 수도사는 헌신적이 된다. 헌신은 행동을 이끌어 내고, 행동은 의욕으로 이어지며, 의욕은 다시 끝없이 깊어지는 헌신으로 이어져,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이제는 헌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헌신적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자. 부부가 서로에게 더 헌신적이 되는 것은 결혼 서약을 한 다음일까, 아니면 20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결혼생활을 한 뒤일까? 또 우리가 몸매를 유지하는 데 더 열심이 되는 것은 체육관 회원권을 끊은 그날일까, 아니면 몇 해 동안 성실히 체육관을 다닌 다음일까? ‘영웅의 여정’과 마찬가지로 헌신은 역동적인 과정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고 더욱 완벽해지는 끝없는 피드백 회로 같은 것이다. 헌신은 한없이 위로 소용돌이쳐 올라가는 선순환을 이루며 스스로 증대된다.

불행히도 우리 인간들은 피드백 회로가 야기하는 뒤죽박죽은 무시하고 직선적이고 단계적인 접근법에 대한 생각에 붙들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영웅의 여정’조차 직선적이고 단계적인 방식으로 평탄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사업에서는 돌아와 다른 이들을 돕고 있는데 결혼 생활은 ‘사막’에서 헤매고 있고, 그러는 동안 골프 스윙 때문에 위대한 시험을 치르고 있을 수도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수도사들이 그러하듯 언제나 마음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측면을 ‘영웅의 여정’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올바른 판단을 흐리는 온갖 잡음과 왜곡들 속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을 파악해 내는 데 도움이 된다. 참된 삶을 산다는 것은, 언제나 깨어 있고 ‘영웅의 여정’과 섬김과 자기비움을 지표로 하루하루의 일상을 꾸려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젠가 일이 너무 벅차게 느껴질 때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이것이 정말 나쁘기만 한 일일까, 아니면 그저 지금 ‘사막’ 단계를 건너는 중인 것일까?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은 직장을 바꿔야 한다는 신호인가, 아니면 수도사들처럼 ‘형성’되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일 뿐인가?

하지만 참된 삶을 사는 것의 중심부에 헌신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중요하기 이를 데 없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앞장에서 나는 ‘자기계발self-help’과 그것의 신화에 종사하는 산업은 대개는 시간 낭비라고 주장했다. 우리 가운데 ‘혼자서 해나갈 수 있는’ 지구력을 가진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물질적인 것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끊임없이 울려 나오는 북소리에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 북소리에 발맞추어 행진하고 싶은 유혹에 저항할 길이 거의 없다. 프랜시스 신부님이 말하듯, ‘영웅의 여정’에는 본질적으로 반문화적인 어떤 것이 있으며, 수도사들이 ‘정주’서약을 할 정도로 공동체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그래서이다. 마찬가지로, 알코올중독자협회의 성공은 협회 모임을 넘어서까지 지속되는 상호 부조라는 반문화적 지원 구조를 제공한 데 힘입은 것이다.

만일 섬김과 자기비움의 마법을 우리의 세속 조직에 도입하고 싶다면, 업무 현장의 일상적 경험부터 바꾸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멥킨처럼 강력한 기업의 사명과, 그 사명을 매일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일종의 상향식 문화가 필요하다. 또한 우리 자신의 형성의 과정을 창조해야 한다. 문화를 바꾸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우리 식의 수련수사 지도 수도사가 있어야 하며, 진정성 있는 공동체에서 생겨나는 동료들의 압력이라는 화살을 얻어 탁월함을 겨누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믿음과 지속해 나갈 수 있는 헌신, 다른 이가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자기이해, 그리고 모든 일이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신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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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수도원에 간 CEO (last edited 2022-03-07 14:50:45 by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