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l +All:read ''Maverick: Story Behind the World's Most Unusual Workspace''. 음. 알라딘에서는 이게 원제로 되어 있는데, 아닌 것 같다. 본문에서 자꾸 '매버릭' 책에 대한 얘기가 언급된다. 2ed도 아닌데. 책 자체에는 ''The Seven-day Weekend: A Better Way to Work in the 21st Century''가 원제라고 되어 있다. [[최동석]] 선생이 번역 #<> = 01. 셈코의 일상 - 일주일 내내 주말처럼 즐기면서 일하는 회사 = * '왜'라고 물어라 * 통제를 포기하라 * 일하는 방식을 바꿔라 이 책에서 반복되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삶과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내고 있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통제 위주의 방식을 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것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는 자유시장과 민주자본주의의 핵심가치와 배치되지 안흔다. 손아귀에 쥐고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생각은 망상일 뿐 아니라 이제는 치명적인 비즈니스상의 실책이 되고 있다. 지배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통제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그에 따라 더더욱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래서 엔론이나 월드컴과 같은 사례가 생겨난다. 통제 메커니즘이 더욱 승하면 승할수록 비즈니스가 본래 겨냥한느 목표를 잃는 것이다. 즉, 구성원들에게 만족스러운 삶과 가치 있는 삶을 제공하고, 노력과 봉사에 대해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는 목표가 실종된다. 일주일 내내 주말처럼 즐기면서 일하는 방식은 통제 위주의 비즈니스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중심 목표로 회귀하고자 하는 셈코의 방식이다. == 셈코는 어떤 회사인가 == 나는 내 자신이 셈코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대신에 직원들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의 노력과 관심과 창의적 정신으로 셈코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게 한다. 셈코에는 공식적인 조직구조가 없다. 조직구성표가 셈코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즈니스 계획이나 기업전략도 없고, 2개년 계획 혹은 5개년 계획도 없다. 회사 설립목적을 적어놓은 글도 없으며, 장기 예산안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CEO가 확실하게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부사장도 없고 정보기술이나 그 운영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임원도 없다. 정해진 표준이나 관례도 없다. 인사관리 부서도 없다. 승진을 위한 커리어 경로 계획도, 직무기술서도, 고용계약서도 없다. 보고서나 경비내역서를 결제하는 사람도 없다. 근로자들을 감독하고 모니터하는 일도 거의 없다. 가장 중요한 점은 성공이 이익과 성장으로만 가늠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분명코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이런 간략한 설명만 들으면 다른 기업에는 절대로 적용할 수 없는 기묘한 경영 스타일의 기업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수많은 기업인들이 우리 회사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상파울루를 찾고 있다. 그들이 셈코에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는 데는 경기불황 속에서 이룬 높은 성장, 독특한 틈새시장 공략, 늘어만 가는 수익, 높은 의욕을 지닌 직원, 낮은 이직률, 다양한 제품, 훌륭한 서비스 등이 그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방문자들은 셈코의 연간 매출이 1994년에서 2003년 사이에 3,500만 달러에서 2억 1,200만 달러로 늘어난 연유에 대해, 그것도 최대주주인 내 자신이 회의에 참석하거나 의사결정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도 그런 결과를 얻은 이유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미리 주의를 주건대 우리의 기본 원칙 가운데 상당수는 가장 혁신적인 기업주나 경영관리자들조차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파격적인 것들이다. 우리의 기본 원칙은 종래의 비즈니스 관행에서 철저하게 벗어나는 데 있다. 우선 우리에게는 형식적인 조직구성이 없으며 직원들이 일거리나 프로젝트를 선택할 때 자신의 관심이나 직관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회사는 회사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우선 직원들 개인이 선택하여 도전할 수 있는 일,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권고한다. 또한 우리 회사는 직원들이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근무하도록 한다.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해낼 수 있도록 한다. 우리 회사의 기본 철학은 사내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지지하며 업무 현장에서 기존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대 의견을 발표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사내민주주의는 현실과 유리된 높은 이상이 아니라 좀더 나은, 그리고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업무방식이다. 우리의 생활 전반에 걸쳐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요구한다. 사람들은 각자 개인의 삶에서, 은행에서, 자녀들 학교에서, 가족구성원들 사이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성인으로 대접받는다. 그런데 왜 직장에서는 갑자기 미성년자 취급을 당하는 것일까? 왜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리더를 선택하는데 참여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스스로 자신들을 관리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왜 반대 의견을 내놓고 의문을 제기하고 공개적으로 정보를 나누지 못하는 것일까? ([[책/HardFacts/03. 일과 사생활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꼭 그래야 할까?]]가 생각난다.) == 통제를 포기하다 == 나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을까?'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예스'였다. 하지만 매우 단순한 원칙이 필요했다. 즉 셈코에 참된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통제를 포기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단순한 원칙이지만 실제로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었다. 지금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 회사의 성장률과 이익과 직원 수는 부차적인 사항일 뿐이다. 외부 사람들이 이런 사항들에 대해 몹시 알고 싶어 하는데, 그 이유는 오직 우리 회사의 사업 내용을 수량으로 환원하고자 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치에 불과한 것에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 회사가 개인 소유의 기업으로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수치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있다는 주식시장 애널리스트들에게 셈코를 재단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결속력을 해치고 남의 노래에 맞춰 강제로 춤을 춰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그 노래란 개장을 알리는 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가 폐장을 알리는 의사봉 소리와 함께 끝나는 월스트리트 왈츠를 말한다. 사람들의 관심에 간사하지만 간섭은 사양하고 싶다. 우리는 충분한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기업공개로 외부투자를 끌어들이지 않아도 매년 40% 가까운 성장을 기록해오고 있다. 시장 기준에서 보았을 때도 우리는 분명 성공적이다. 성장을 거듭했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있고 직원수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수치만으로 평가를 한다면, 그런 성공은 내게는 별 의미가 없다. 물론 돈을 버는 일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또 직장에서 일을 할 때, 매일매일 우리가 취하는 태도와 생각에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우리는 기본 원칙을 실행으로 옮긴 덕분에 엄청난 성장을 일구어냈다. 선친이 회사를 경영할 당시 연간 매출이 최고 400만 달러였지만 2003년에는 연간 매출이 2억 1,200만 달러로 늘어났다. 90명이었던 직원은 3,000명 가까이 늘어났다. 우리는 이전의 사업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은 채 제조업체에서 서비스 및 하이테크 업체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루었다. 셈코의 직원들은 회사를 위해 돈을 벌고 그 중에서 이익분배제도를 통해 상당 부분을 자신의 몫으로 가져간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회사를 직원들 누구나 일하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셈코의 이직률은 매우 낮다. 요즘 점차 주목을 끌고 있는 일과 삶의 균형 잡힌 조화라는 개념은 우리가 겨냥하는 바의 전부는 아니다. 사람들에게 스스로 탐색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 자신의 재능과 관심사를 발견하게 하고 자신의 꿈을 기업의 목표와 결합시키게 할 때도 일과 삶의 조화는 자연히 생겨난다. 직원들에게 도전의식을 고취시켜 이들이 활기차게 일할 수 있도록 하면 직원들의 노력은 자연스럽게 수익과 성장을 낳는다. 바로 그 점이 셈코의 경영 방식이 지니고 있는 의의다. == 연합체 == 셈코는 여러 사업체들의 연합으로 이들 사이에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만이 존재한다. 즉, 우리는 획일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를 묶어주는 공통의 끈과 공통의 주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거느라고 있는 기업 모두가 고급의 기술을 요하는 사업체이고, 높은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각자의 틈새시장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셈코의 10개 업체(11개, 아니 12개던가?)는 매우 다양하다. 사실, 이렇게 다양한 업체들이 한 우산 밑에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사이에 시너지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할 때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한다. 1. 복잡성을 요하는 사업인가, 즉 고급의 기술을 요하는 사업인가 살펴본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사업에 쉽사리 뛰어들지 못할 정도로 고급의 기술을 요하는 사업이 아니라면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2. 그 사업이 겨냥하는 시장에서 최고 몸값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최고급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 고객이 기꺼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상품을 생산해야 항상 높은 몸값을 유지할 수 있다. 3. 우리만의 고유한 틈새시장, 우리가 주요 업체가 될 수 있는 그런 틈새시장을 원한다. 세 번째 조건은 앞의 두 조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온다. 만일 우리가 그 사업을 그만두면 고객들이 낙담하여 불만의 소리를 높이는 그런 사업을 원한다. == 셈코의 방식 == 셈코의 비결은 무엇일까? 만일 우리에게 기본 전략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왜'라고 묻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항상, 매일매일, '왜'라고 묻는다. 그것도 매번 연속해서 세 번씩 왜라고 묻는다. 이런 태도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많은 질문을 던지는 일을 꺼려하게끔 길들여져 있다. 1. 질문을 자주하면 무례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2. 무지하거나 정보에 어둡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손해를 볼 수 있다. 3.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은 올바르지 않거나 불완전하다는 뜻이 된다. 4. 경영관리는 주로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직원에 의해 도전을 받는다. 그러나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사고의 '석회질화'로 생겨난 틀에 박힌 방식이나 단순한 해결책을 부정하는 일이다. 생각이 석회질화된다는 것은 사고방식이 굳어져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 상태를 말한다. 직원들은 자유롭게 의문을 제기하고 분석을 하고 연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회사는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태도가 긴 수명과 성장, 그리고 수익을 이루는 열쇠다. 또한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어린이와 같은 신선한 시각을 지닐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질문은 본질을 캐는 질문이 된다. 4살짜리 아이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해주면, 그 아이는 왜냐고 묻고 나는 이미 준비된 어른들의 답을 해준다. 그러면 아이는 두 번째로 왜냐고 묻는데 이 때가 되면 나는 다소 곤란함을 느낀다. 세 번째로 왜냐고 물을 때면 나는 대답 대신에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만다. 셈코의 회의에서는 이런 식으로 질문이 이어진다. 때로는 마치 외국 예술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같은 주제를 두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냐고 묻고 또 무든다. 하지만 어떤 것도 공식적인 문서로 작성해놓지 않는다. 우리 회사는 계획을 글로 써놓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들은 천둥벌거숭이처럼 계획을 좇는다. 종착지가 어디인지 모른 채 아무런 생각 없이 행동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 이렇듯 셈코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그런데 우리 회사를 찾는 사람들이 우리가 이룬 것과 같은 성공을 얻기 위해서는 통제와 조직구조를 직장민주주의로 대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많은 경우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돌아가 우리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왜 우리 회사를 찾은 사람들이 회사의 수익 면에서나 개인의 행복추구 면에서나 모두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회사운영방식을 따르려 하지 않는 것일까? 연속해서 세 번째로 '왜'라고 묻는데, 왜 조직과 조직의 리더들은 명령과 통제라는 경직된 형태에 집착하는 것일까? 내게 수익 때문이라는 답을 하지는 말라. 셈코는 많은 돈을 벌고 잇다. 그렇지만 우리 회사 사람들은 집요하게 '왜'라고 묻고 그 물음에 대해 숙고한다. 적당한 때가 되면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온다. (그리고 답과 더불어 더 많은 '왜'가 생겨난다.) = 02. 일요일, 가족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라 = * 이메일에 답장하라 * 게으름을 피워라 *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라 현재,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으로 업무가 주말까지 침범해 들어오고 있다. 집에서도 일할 수 있고, 해변에서도 휴대전화를 받을 수 있으며, 어떤 장소에 있어도 이메일로 보내온 보고서를 읽을 수 있다. 주말이나 일요일 오후의 귀중한 시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이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숙히 침투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맞서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한 주일을 재정리해야 하며 주중과 주말에 대한 기존 생각을 버리고 회사에 바치는 시간, 개인적인 시간, 빈둥대는 시간(자유시간)으로 7일을 배분해야 한다. 그런 다음 시간을 좀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러시아워에 출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시간에 일할 수 있게 스케쥴을 다시 짜야 한다. 만일 이메일 답장을 하는 일로 일요일을 보냈다면 조용한 월요일에 자질구레한 일을 하면 된다. 다시 말해 일요일에 이메일 답장을 하는데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월요일 오후에 영화관을 찾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 일의 목적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그에 따라 직장환경과 근로시간을 새롭게 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의 목적이 한편으로는 공허한 물신숭배주의와 다른 한편으로는 맹목적인 이윤추구로 전락할 따름이다. 내가 근로시간을 새롭게 짜 좀더 많은 자유와 유연성을 확보하자는 의견을 낼 때마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회의주의자들의 있다. "잠깐만요. 출퇴근을 자기 마음대로 하게 하면 직원들 절반 정도는 아예 출근조차 하지 않을 것이고 일은 하나도 진척이 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이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면 반드시 일을 하고 싶어한다. 예컨대 사람들을 향해 하루하루가 모두 일요일이라고 선언하고 그들에게 노리개를 쥐어줘보라. 이렇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평화와 만족을 얻지 못한다. 도전이 없고 의미가 없고 목적이 없다면 숨 막히는 생활이 될 뿐이다. 생산적인 일을 할 때, 목적을 향해 내달릴 때, 가족을 부양할 때 사람들은 활력을 갖는다. 그렇다고 그러한 일을 계속하라고 요구할 필요는 없다. "자, 이제 내 자신을 위한 시간이 필요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 회의론자들의 틀렸음을 입증하다 == == 직원들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성숙한 성인이다 == == 열정과 환희 == = 03. 월요일, 재능의 샘에서 재능을 길어 올려라 = * 다른 업무를 시도해보라 * 어슬렁거리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보라 * 해먹에 누워 낮잠을 즐겨라 "맙소사, 월요일이야!"라고 한탄하는 소리가 입에서 터져 나오지 않는다면 일주일 내내 주말처럼 즐기면서 일하는 방식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하루아침에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결국에는 월요일 역시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환희 가득한 날로 바뀌게 된다. 그렇게 되려면 개인적 목표나 회사의 목표를 추구할 때 이른바 '재능의 샘'에서 재능을 길어 올릴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직관력, 관심, 능력 등을 지니고 있고, 이러한 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재능을 구성한다. 어떤 사람은 이를 일러 '소명'이라고도 한다. 이름이야 어떻든 재능의 샘은 당사자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깊고 더 넓다. 장기적으로 업무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러한 샘에서 최대한 물을 길어 올리는 것, 다시 말해 소명에 적극적으로 답하는 것이다. 결국, 돈 하나만 보고 일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낮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려고 직장에 나오지는 않는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기 위해 직장에 나오는 것도 아니며 따분하게 하루를 보내거나 상사에게 반항하기 위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 일을 하는 이유가 있다. 최소한 그 직업을 생계수단으로 택한 데는 약간이나마 그 분야에 대한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활용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받아들여야 할 첫 번째 원칙은 다음과 같다. 만일 직원이 제품이나 프로젝트에 대해 아무런 흥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 사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흥미를 지니지 못한 직원은 신속하게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해고를 하거나 사직하게 하거나, 아니면 흥미를 유발할 만한 다른 프로젝트로 옮기게 해야 한다. 재래의 경영방식을 고수하는 기업에서 업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직원들은 곧바로 무질서한 상태를 낳는다. 근로자들은 끔찍하리만치 하기 싫어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며, 그렇게 해서 나온 상품은 결코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 지금 내가 주장하려는 내용은 기존 통념과 배치된다. 즉, 회사가 앞서 나가려면 직원들이 회사의 이익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최우선하는 직원이라야 일에 대한 의욕을 지닐 수 있다. 셈코에서는 이런 태도르르 회사 차원에서 장려하고 있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직원들이 일을 하도록 압박하고 훈계하고 강제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수밖에 없다. 직원들에게 사가를 부르게 한다. 후원회를 구성한다. 직원들을 모아놓고 격려의 말을 한다하며 부산을 떨게 된다. 많은 시간과 돈이 근로의욕 고취를 위한 프로그램에 투여되는데, 사람들에게 왜 그리 많은 자기개발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일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근로의욕 고취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새로운 업무다. 직원들을 번갈아가며 다른 업무에 배치한다든지, 다른 사무실에서 일하게 한다든지, 프로젝트 미팅에 좀더 많이 참여하도록 요구한다든지, 또는 파트타임이나 판매대리인 형태로 고용하는 방법 등을 사용한다. 이러한 과정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게 한 힘의 원천은 바로 직원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회사가 목표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 믿음의 타당성은 그간의 경험이 보증해주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바와 직원들이 원하는 바가 합치될 때 두 배의 효과를 얻는다. 직원들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동시에 회사의 목표 역시 달성하게 된다. 그들도 성공하고 우리도 성공하는 성과를 가져온다. 내게는 혁신적인 생각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모든 직원들이 예외 없이 일에 대한 열정을 지니길 기대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열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여하한 것이든 시간이 지나면 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 인지상정임을 인정해야 한다.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원만을 원한다고 당당하게 외치는 기업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서 열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업무가 세분화되어 있을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런 곳은 구성원들이 극도로 고립되어 있는 조직이다. 그러한 환경 하에서 구성원들에게 열정을 불러일으키려는 노력은 모두에게 큰 절망감을 안겨준다. 모든 직원에게 열정을 가지라고 요구할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와 자기 자신을 평가하여 스스로에게 열정이 없다고 결론짓거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크게 부족하다고 판단할 경우,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고 말 위험성이 있다. 또 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던 직무도 지겨워져 버릴 수 있다. == 다른 일에도 관심을 갖되 스스로 결정하라 == 직원들의 업무만족도는 직원 개개인이 자신의 직무내용을 어느 정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크게 향상된다. 셈코에서는 직원들에게 해야 할 일을 지정해주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스스로 파악해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을 때 울타리를 넘어 여러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회사로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방식이나 새로운 개발사업 계획을 얻고 직원들로서는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정형화된 직무내용 규정이 없을 때 사람들은 월권행위라는 비난을 받지 않고 자유로이 인근업무 영역을 탐색해볼 수 있다. 셈코에는 여러 업무와 프로젝트 사이를 정기적으로 옮겨 다니는 다수의 보조 사원, 하위직 사원들이 있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어느 부서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옳은 대답이다. 이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규정해놓은 업무나 책임지고 실행해야 할 일을 정해놓지 않고 일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할지 스스로 결정할 자유가 이들에게 주어져 있다. 즉 자율관리를 하는 것이다. 또한 어디에서 일하고 언제 일하며 일한 대가는 얼마를 받을지에 대해서도 결정권을 갖는다. 이런 방식은 혼란을 야기할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종래의 직장환경이 지니는 한계를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기존 방식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 못하다. == 심심하면 이곳저곳을 다녀보라 == 불행히도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지루함을 감내하도록 길들여진다. 학교에서는 학교가 지루한 곳이라는 생각을 심어놓는다. 나는 어린 나이에 진로를 결정하도록 교육제도가 짜여져 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는 다양한 업무를 체험할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참된 재능을 무시한 채 단순히 지루함을 견디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간다. 이는 인간의 가능성을 허비하는 일이다. 따라서 만일 셈코에서 어슬렁거리는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직원들의 재능을 최대로 활용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에 의해 훈육된 습성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사람들이 회사 안을 어슬렁거리며 자신의 관심 영역을 찾아보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회사는 직원들과 함께 새로운 기회나 새로운 사업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직무순환은 아우로 같은 근로자들에게 다양한 도전의 기회를 준다. 또한 사람들이 직장을 바꿀 때 새로운 환경에서 일해야 하고 때로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 경계를 넘어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민주주의와 의사소통, 이노베이션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직무만족도의 또 다른 요소는 스트레스다. 균형을 전혀 이루지 못할 때 스트레스 수준은 최고가 된다. 종종 스트레스는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나타내준다. 만일 조직이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를 설정해놓고 그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직원들이 느낀느 스트레스 정도는 분명히 급상승할 것이다. 개인의 목표와 회사의 목표 사이에 조심스레 설정되어 있던 균형이 깨진다.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자신의 기대치 뿐만 아니라 회사의 기대치도 설정하는 경우라면 그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어진다. == 스트레스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 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을 반드시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다. 또 목표가 합치되도록 공통의 접점을 찾는다고 해서 주위 사람들을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으로 채워야 할 이유도 없다.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존경할 수는 있다. 셈코에는 점심을 함께 하고 싶지 않은 관리자들도 있고 개중에는 내가 몹시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스타일과 업무 성과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생산성을 보이는 스트레스 없는 직장환경은 근로자가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그런 곳이다. == 셈코의 프로그램들 == 셈코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을 실험해보고 있지만 지금도 매우 중요한 영역, 즉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통제권을 되돌려줄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연구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그런 방안 가운데 하나가 '업 앤 다운 페이(Up-and-Down Pay)'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 하에서 직원들은 융통성 있게 자신의 급여를 관리한다. 사람들의 삶에는 매우 상이한 양상을 띠는 특정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에 맞추어 급여 및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게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직원들은 회사의 현재 상황과 자신의 상황 사이에 균형을 꾀하고 그에 맞추어 급여를 조정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일을 적게 하는 대신에 그에 걸맞게 급여를 낮추려는 상황에 있다면 회사는 그런 요구에 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원하는 여성은 위원회에 자신의 업무 가운데 30%를 떠맡을 사람을 찾아달라는 요청을 한다. 위원회는 파트타임 업무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후보자들을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해두고 이를 활용하거나 3,000명 상근직원 가운데 자리를 바꾸려고 하거나 업무 분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이들의 협조를 구한다. 이러한 유연성 덕분에 일시적 문제나 질병, 또는 가족 문제를 지닌 사람들은 경력상의 불이익을 염려하지 않고 문제해결에 전념하거나 마음을 새롭게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우리의 아이디어가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는 방식을 없애면서, 그리고 좋든 싫든 대다수 전문직종 종사자들이 다수의 직업을 가져야 하는 새로운 현실 때문에 이러한 아이디어를 내놓을 필요성이 있었다. 이는 우리의 새로운 퇴직 개념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여러 기준에서 보아도 셈코의 퇴직(Retire-a-Little) 프로그램은 매우 무모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사람들의 인생 주기를 고려한 제도다. 인간의 건강을 곡선으로 그려보면 체력은 20대와 30대에서 정점을 이룬다. 보통 60세 이후에 체력은 가장 급격하게 저하된다. 다른 그래프 위에 경제적 능력을 표시하면 보통 50세와 60세 사이에서 정점을 이룬다. 세 번째 그래프에 한가한 시간을 표시하면 70세 이후에 정점이 생긴다. 다시 말해 나이 많은 근로자의 경우, 건강 곡선이 내려가지만 시간과 돈 곡선은 올라간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젊은 근로자의 경우는 반대가 된다. 슬프게도 결론은 이렇다. 꿈을 실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능력을 갖고 있을 때는 꿈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돈과 여유시간이 없고, 도 시간과 돈을 지니고 있을 때는 체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곡선을 다시 그려 인생 주기와 경력 주기를 맞출 수 잇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젊은 날의 강점을 노년으로 옮기고, 또 반대로 노년의 강점을 젊은 날로 옮기도록 하는데 기업조직을 활용하는 것이 이 퇴직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이 프로그램 하에서는 원하는 만큼 회사로부터 퇴직 시간을 미리 얻어낸다. 예를 들어 일하는 시간의 10%는 일주일 가운데 한나절 오후가 해당되는데 회사는 월급에서 제하는 방식으로 직원에게 액면 가격보다 약간 낮게 이 시간을 판매한다. 이렇게 하면 예컨대 수요일 오후는 그 시간을 구매한 직원의 소유가 되고 퇴직 후로 미뤄놓았던 관심사, 즉 낚시나 뜨개질, 정원 손질, 공부 등을 할 수 있다. 봉급은 다소 줄지만 직원은 회사로부터 온전한 자유를 얻는다. 다시 말하지만 오직 필요한 것은 직원들에 대한 '믿음'이다. 즉, 직원들이 업무에 대해 무지한 신참자가 아니라 책임감을 지닌 성숙한 인간이라는 믿음만 지니면 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개인의 진정한 관심사를 드러내며 이는 다시 기업의 효율성을 더욱 높여준다. == 소명을 찾아라 == 재능을 천천히, 그리고 적정량만큼씩 길어 올릴 때 값진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이런 나의 지론은 스쿠버다이빙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스쿠버 탱크에 한 시간 가량 사용할 수 있는 산소가 있는데 최대한 많은 시간 동안 잠수하여 이곳저곳을 유영하며 멋진 수중풍경을 감상하고자 한다. 그런데 만에 하나 동굴 같은 곳에 갇힐 때를 대비해 탱크에 얼마간 여분의 공기를 남겨두는 것이 좋다. 따라서 45분 잠수를 계획하는 편이 현명하다. 하지만 그 시간의 절반이 지나지 않아 빈 통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세게, 그리고 너무 빨리 숨을 쉬었기 때문이다. 산소를 빨리 소비해 바다 속의 비경을 다 보지 못하고 만다. 땅 위에 있는 우리들에게도 평생 사용할 산소량이 주어져 있다. 산소를 너무 빨리 소비하여 하지 못한 일을 두고 애태울 수도 있고, 소비 속도를 적당하게 유지할 수도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일과 개인생활 사이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또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나면 이미 모든 기회는 지나가고 없다. 자동차 제조회사에서 30년을 근무하고 감사패를 받는 것은 그동안의 희생을 생각해보면 씁쓸함을 안겨줄 따름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을 자신의 소명과 합치되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인적자원관리 부서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비즈니스계에 HR이란 이름의 부서는 90년대 말에 등장했고, 관리자들 자신이 인사 문제를 다루기 꺼려했기 때문에 이후 여러 회사에서 우후죽순 생겨났다. 차츰 관리자들에게 신입사원 선발, 교육, 광고, 헤드헌터 고용, 경력관리, 직원평가 등을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행할 수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관리자가 당면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우리는 셈코가 그런 식으로 운영될 수 없으며, 관리자가 다루는 인사 문제가 어떤 것이든 간에 반드시 그 뿌리에서부터 해결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인적자원관리 부서에 클로비스와 그의 동료 플로어만을 남겨놓아 인사관리에 관하여 외부 세계를 향한 우리의 눈과 귀가 되게 했다. 두 사람은 이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가 되었고, 우리 회사의 관리자들에게 자문을 주고 있다. == 셈코의 인재충원방식 == 종래의 기업들은 직원을 고용할 때 업무수행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학력 및 경력을 요구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는지 우선해서 살펴본다. 셈코에서는 사람을 고용할 때 회사에서 일하려는 이유가 그 사람 자신의 인생 목표와 회사의 목표 사이에 '궁합'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인지 우선해서 살펴본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광고를 내고 있다. "우리 회사에는 자리가 없지만 일단 지원은 하십시오. 회사로 와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당신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는지 이야기해주십시오." 우리는 항상 사람들을 회사로 불러 모아 그들의 소명 및 재능을 우리 회사의 필요와 요구에 맞출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 대안을 모색한다. 이러한 방식은 셈코가 새로운 피를 필요로 했지만, 인건비를 올릴 처지는 못 되었던 시절에 시작되었다. 첫 번째 광고에서 회사에 자리가 없음을 분명히 했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하루 동안 회사를 둘러보게 하겠으며,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도에 대한 계획안을 받겠다는 제안을 했다. 예컨대 수임료나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라든지 하도급 계약체결방식이라든지 작업별 계약이라든지, 어떤 형태로든 원하는 방식을 제시하도록 했다. 이틀 동안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우리 공장과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이 가운데 35명으로부터 계획안을 받았고, 마침내 두 사람을 채용하게 되었다. == 열정의 격차 == 직원들에게서 '열정'을 찾으려는 기업이 있다. 직원들을 마치 만면에 웃음을 띠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가족처럼 생각하는 기업이 있다. 나는 이런 기업들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진실에 가까운 모습은 이렇다. 평범한 일을 찾는 사람들 대다수는 소명을 따라 그 일을 택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일자리가 필요할 따름이다. 자신과 자기 가족의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서. 그래서 참된 소명을 추구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과 상대하는 일은 시간낭비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도 발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재능의 샘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스스로 재능을 발견할 기회가 이들에게 필요할 뿐이다. 재능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은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커다란 가치를 가져다준다. '발견'이란 말은 균형과 환희, 열정과 소명, 만족과 성취처럼 힘을 발산하는 멋진 말이다. 그 대척점에 있는 말이 통제다. 통제는 안전과 질서라는 허상을 심어 놓는다. 통제란 간수에게나 적합한 말이다. 나는 간수가 아니다. 통제란 말이 상대방을 옭아맨다는 뜻이라면 나는 차라리 그 결과가 아무리 불확실하더라도 재능을 캐기 위해 재능의 샘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 것이다. 통제란 말은 사라져야 한다. "맙소사, 월요일이야!"라고 외치는 탄식의 소리도 없어져야 한다. 대신에 나는 이렇게 외칠 것이다. "감사합니다. 월요일입니다. 기쁨 가득한 날, 또 다른 발견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날이 왔군요!" = 04. 화요일,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라 = * 새로운 고객과 친분을 쌓아라 * 두서없이 이 일 저 일을 해보라 * 회사의 대차대조표를 검토하라 일주일 내내 주말처럼 즐기면서 일하는 방식에서는 화요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숙고하기에 이상적인 날이다. 그리고 그런 숙고를 거쳐 내놓은 답은 이렇다. 왜 일을 하는가 하면 인생이라는 항해를 보람 있고 가치 있는 항해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목표를 가지고 활기차게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다. 일이 개인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일은 그 사람의 소질과 맞아떨어져야 한다. 당연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이력서만을 보고 그 사람이 떠맡을 업무를 결정하는 방식으로는 일과 소질 사이의 합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로베르발만큼 자신의 일에 보람과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회사들은 직원들의 업무의욕을 높이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만일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다면, 그래서 그들이 이루고자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내어 그들의 생각을 펼칠 자유를 준다면 그런 힘든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불합리한 일이지만 관리자들은 여전히 직원들에게 깊은 관심과 활발한 활동을 수년 동안이나 계속 유지해주기를 기대하고 있고, 이런 기대가 전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업무의욕 상실이다. 사람들은 오전9시에서 오후5시까지 자리만 지킨다는 태도에서 벗어날 이유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불행히도 그런 태도란 직무기술서만을 글자 그대로 따를 뿐 그 이상의 일을 하려 들지 않는다는 자세를 의미하는데, 이런 직원들의 태도는 회사를 심각한 지경으로 몰아갈 정도로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 == 노사갈등 == 수십 년 동안 노동조합은 근로자들 사이에 연대의식을 키우고, 기업가들의 삐뚤어진 생각이 불러일으킨 집단적 분노를 건설적으로 승화시키고, 또 근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애써왔다. 기업가들의 삐뚤어진 생각은 HenryFord가 한 다음 말에서 단적으로 잘 드러난다. "일에 써먹을 두 손을 구할 때마다 왜 그 위에 머리까지 얹혀져 온단 말인가?" 불만 가운데 일정 부분은 가혹한 근로정책 때문에 생겨났다. 포드의 전 CEO인 자크 나세르는 5~10% 가량의 실적이 가장 낮은 근로자를 해고하는 정책을 실시했고 이는 직원들의 불만을 사기에 충분했다. 나세르의 기본적 생각은 경영대학에서 학점을 줄 때 종 모양의 곡선을 따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는 관리자와 직원 가운데 10%는 평균 이하이고, 이들은 마치 죽은 나무처럼 회사 전체를 위해 마땅히 잘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순전히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이미 직원에게 투자한 시간과 노력과 돈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낮은 성과를 내게 하는 원인을 정확히 집어내어 그 해결에 집중하는 방법이 훨씬 더 현명하다. 근로자를 새로 뽑아 맹목적으로 투자한 다음에 그 사람 역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해서 해고시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회사의 직원들은 적이 아니다. 그들은 소중한 자산이며 투자가치를 지닌 존재다. == 조화로운 환경 == 직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 때 그 책임이 회사에 있다는 사실을 기업들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회사가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지 않아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 회사의 잘못이다. 셈코에서는 모든 개개인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기 원하며 또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직원들이 성취감을 가질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회사의 몫이다. 우린느 직무순환, 상향평가, 자율관리 등 여러 프로그램과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이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재능의 샘에서 재능을 퍼올리게 하고, 잡초가 되어 제거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려는 의도에서 마련되었다. 물론 우리 가운데 잡초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다.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환경 역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질병을 옮기는 비둘기를 박멸하고자 했던 마우쩌둥의 사례와 비교해보자. 비둘기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뱀을 풀어놓는 방법이 사용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중국은 엄청나게 늘어난 뱀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쓸모없는 가지라고 해서 잘라내면 반드시 또 다른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공포 분위기에서 일하게 되는데, 이때 창의적 정신과 성실하게 일하려는 태도는 두려움으로 짓눌리게 된다. 또 조직은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다. 과정은 지식보다 우위에 있으며 실수는 과정을 낳는 강력한 촉매제다. 씨앗을 심는 것이 잡초를 솎아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 == 당신의 MVP는 누구인가 == 좁은 소견을 지닌 신입사원 선발 담당자들은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임원에 뒤지지 않을 만큼 셈코의 중요한 자산이라는 내 생각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결단코 나는 그런 사람도 우리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믿는다. 우리 회사 디지털 저울 공장의 CEO였던 고 로제리오 오톨리아가 청소담당 아주머니에게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아주머니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저울을 만들고 있지요"라고 대답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재능 있는 인재를 찾아낼 수 있다는 내 말 뜻이 바로 그것이다. 그 아주머니는 빗자루와 양동이와 손수레를 이용해 하는 일 이상으로 자신이 셈코에 공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정해진 일만 한정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저울공장의 존재 이유에 공감했다. 그녀가 내놓은 제안으로 셈코가 경비를 줄이게 되거나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었다. 셈코의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청소담당 직원들도 월례회의에 참석해 회사의 실적수치를 함께 분석한다는 사실을 참고한다면 나의 이야기가 억지라는 생각을 버리게 될 것이다. 월례회의에 참석해 총수입과 인건비에 대한 정보도 얻고 왜 우리 회사가 경쟁업체와 다른지, 왜 수익이 늘거나 주는지도 파악한다. 청소담당 아주머니의 태도와 직위고하를 막론한 직원들의 태도는 우리의 든든한 자산이다. 이 자산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성장과 수익을 약속해줄 것이다. == 이직률 == 낮은 이직률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직원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보게 한다. 만일 확신이 서지 않은 직원이 있으면 전혀 다른 영역의 업무에서 그 사람에게 적합한 자리를 찾는다. ...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순전히 이기적인 동기 때문이다. 적합한 자리, 열정을 기울일 수 있는 자리를 찾아주지 못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없다. 만일 자기 일에 싫증을 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 차례 대안을 찾아 실행에 옮겨보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고 해도, 반드시 적합한 곳을 찾아 옮겨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직원에게 소명이 있는지 파악해보려고 노력하는 기업은 극소수다. 셈코에서는 여러 프로그램을 두어 직원의 적성을 파악해내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셈코에 있는 직원들이 사업가처럼 행동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로스트 인 스페이스(Lost in Space)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인생의 여정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신입사원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신입사원들이 1년 도안 회사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함으로써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관심이 가는 곳이 새로 생기면 언제든지 옮겨간다. 한 사업팀이나 세 사업팀, 혹은 여섯 개의 사업팀에서 동시에 일하기도 한다. 1년 기한이 끝나면 함께 일한 팀 가운데 어떤 팀도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할 수 있다. 이렇게 제안을 받거나, 아니면 관심이 가는 쪽에 자신이 직접 지원을 한다. 러시아워 MBA라는 프로그램은 매주 월요일 오후 6시에 모임을 갖는다. 이 프로그램은 상파울루의 러시아워 시간에 차 안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에 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시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퇴근하며 두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에 사람들은 회사에서 러시아워가 끝날 때까지 강연이나 수업에 참석할 수 있다. 귀가 시에는 여전히 운전해서 퇴근해야 하지만 시간은 훨씬 단축되며 퇴근길에 강연에서 들은 내용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교육훈련을 통해 사람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는 없다. 대개 우리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교육훈련 매뉴얼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 사람들에게 앞으로 5년 동안 어디에서 일하고 싶으냐고 묻는 일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들이 느린 것음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를 원한다. 만일 진로를 정해 한곳으로 매진하는 경우에는 기꺼이 그에게 교육훈련을 지원할 터이지만 종래의 형식적 교육훈련 대신에 주위 동료에게 설명과 시범과 안내를 구하도록 한다. 어떤 조직에서든 정보는 요구에 따라 제공되는 정보여야 한다. (사람들이 자기 적성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부분은 뭔가 회사 철학이 약간 [[Range]]랑 비슷한 부분도 있는 것 같고.) 훌륭한 질문과 훌륭한 대답은 모든 이들에게 보탬을 준다. 문제가 있는 회사임을 나타내는 표징은 질문을 하지 않는 직원들이다. 질문을 귀찮아할 만큼 관심이 없는 직원이라면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을 것이다. 호기심이 무료함과 무관심의 해독제가 되므로 충분한 정보를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서는 관심과 참여 그리고 목적의식을 기대할 수 있다. 돈과는 상관이 없을지라도 그것은 매우 소중하고 유익한 결과라 할 수 있다. = 05. 수요일, 시장 규모에 적합한 규모를 찾아라 = * 이사회에 참석하라 * 뇌물을 주느니 차라리 계약을 포기하라 * 회사한테 거지 같다고 말하라 중요한 물음이란 다음과 같다. 성공은 무엇이며 돈이나 성장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왜 우리는 성공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수치로 성공을 잰다면 성공이 왜 재능과 소명의 자연스러운 환성이 되는가? == 치명적인 성장 == 성공이란 이해하기 쉬운 말인 것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파악하기 어려운 말이다. 비즈니스 맥락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성공을 성장, 수익, 제품에 대한 호의적 반응, 품질 등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이 정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나는 비즈니스가 끝없이 성장하면서도 암처럼 악성이 아닌 유기체, 즉 회사를 창조해낸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또 끝없는 성장이 항상 가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상록수가 가을에 선명한 노란 잎을 자랑하는 나무보다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맥도날드가 수백 년 동안 같은 규모를 유지하면서 대를 이어 운영하는 암스테르담의 파이브 플라이즈 레스토랑보다 더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예전에 나는 물리학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학기말에 교수는 딱 한 가지 질문만을 했다. 즉, 숲 속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냐는 질문이었다. 답은 '중간까지'다. 그 지점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숲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회사의 성장에 대해 숙고할 때마다 나는 그 질문을 떠올린다. 지금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 숲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인가? 영원한 성장이란 없다. 하지만 종래의 전통적 비즈니스맨들은 바로 영원한 성장을 열망하고 있다. 그러나 성장으로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 만일 성공이 성장을 의미한다면 성공한 옥스퍼드 대학교는 왜 워싱턴 DC에 또 다른 캠퍼스를 세우지 않는 것일까? 만일 성공한 교향악단에 120명의 단원이 있다면 600명으로 단원을 늘릴 때 더 좋은 악단이 될까? 기업이란 성장을 해야 하며 수익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는 상투적인 설명을 들을 때마다 나는 바로 그것이 석회질화된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나는 곧바로 왜냐고 묻고 싶어진다. 왜 더 높은 수익을 올려야 하는가? 더 많은 돈을 벌고 난 다음에 왜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다시 벌어야 하는가? 왜 시장의 자연적 확장을 넘어서는 성장이 필요한가? 왜 우리는 매 분기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지 못할 때는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월스트리트가 연금기금을 늘리고, 그래서 늘어나는 퇴직 인구에게 연금을 대주기 위해서일까? 벤처 투자에 너무 많은 자금을 잃어 이를 벌충하기 위해서인가? 급여가 높은 MBA를 너무 많이 고용해서 비용이 높아졌기 때문에 성장을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이유는 성장의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왜 성장이 경쟁우위를 가져다주는가? 석회질화된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전략적 배치나 글로벌 배치를 이야기한다. 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새로 고용하고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공장을 새로 세우고 이미 익숙하게 잘 해낼 수 있는 분야를 소홀히 하는 대신에 현재 하고 있는 분야에 완벽을 기하지 않는가? 글로벌 크로싱 같은 텔레콤 회사, 아서 앤더슨 같은 회계법인, K마트 같은 소매유통업체, 또 볼보나 로버 같은 자동차회사들이 매년 규모를 확대했다가 망하거나 경쟁업체로 팔려나가는 운명을 겪었다. 최소한으로 필요한 양을 넘어선 이익은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다. 어떤 경우든 조직이 고객 유지와 경쟁력 유지에 필수적인 운전자본과 약간의 성장을 위한 이익 규모를 초과하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지나친 이익은 불균형을 초래할 따름이다. 남아도는 이익으로 소유주나 CEO가 요트를 소유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열심히 일해 기업 소유주가 요트나 사게 할 이유가 무엇인지 직원들은 반문하게 된다. 그리고 이익을 다시 회사 자금으로 돌리자는 주장도 교도소에 비어있는 방이 많으니 더 많은 죄수를 만들어내자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혹은 오케스트라에 남아도는 바이올린이 있으니 바이올리니스트를 더 채용하자는 소리나 똑같다. 결국에는 균형이 깨지게 된다. 균형이 깨지면 그 자체로 문제가 생긴다. 적자는 심각한 문제지만 흑자 또한 해악을 줄 수 있다. 누군가가 남아도는 자금을 사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유지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공장을 짓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은데도 새로 본사 건물을 임대하기도 하고 혹은 궁합이 맞는 회사를 인수하기도 한다. 수 세기 동안 작은 크기를 유지하면서 한 우물만 파는 조직이 있을 수 있다. 볼로냐 대학이나 비엔나 필하모닉이나 동방 정교회나 네덜란드의 학교, 스칸디나비아의 제지회사들을 보라. 이들 조직은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 지속가능한 성장 == 성장을 옹호하는 또 다른 주장에서는 밀물에 배가 뜬다는 비유를 들며 회사 이익이 늘어날 때 모든 사람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논거를 댄다. 이 주장이 옳을까? 아니, 잘못된 주장이다. 일부 경영진을 제외하면 회사가 성장하는 동안에 직원들의 처지가 나아진다는 주장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대기업의 정책 가운데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채 실시되고 있는 것이 급료가 높은 직원을 값싼 노동력으로 대체하는 정책이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그 내용은 잔인할 정도로 단순하다. 텍사스의 공장이 비용이 좀더 저렴한 아일랜드로 옮겨가고 다시 인도로 옮겨갔다가 마침내는 베트남으로 옮겨간다. 개발도상국의 직원들은 훨씬 낮은 임금을 받는다. 미국에서는 22달러였던 시간당 평균임금이 동남아시아로 옮기고 나면 21센트로 떨어진다. 셈코에서는 성장 위주 대신에 시장상황에 맞는 적합한 규모를 찾는데 힘을 기울인다. 성장과 이익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는 프로세스에 집중하며 지속가능한 성장만을 추구한다. 문제의 다국적 기업(컨소시엄을 이끌었으며 고객에게 뇌물을 공여한)은 번듯하게 글로 써놓은 사훈과 기업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 반면에 우리는 아무것도 글로 써놓지 않았다. 다소 감상적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삶의 여정에서 예전에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던지, 그리고 얼마나 진실되게 생활했는지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장면과 기억이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그러한 주체는 개인일 수도 있고 기업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여정을 함께한 사람들과 공유하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지나온 길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간직할 필요가 있다.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다 해도 그런 기회(고객에게 뇌물을 주고 사업 기회를 가져오는)를 거부하는 것이 건전한 경영방식을 유지하고 주위로부터의 존경을 얻게 해준다고 믿는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쉽게 확보할 수 있고, 결국에는 성장과 수익 확대를 포함하여 더 나은 비즈니스를 일구어낼 수 있다.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독야청청하겠다는 소리가 아니다.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비즈니스에도 큰 보탬이 된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성장만을 하겠다는 사람에게는 인수와 합병의 방법이 있다. 수많은 법률가, 컨설턴트, 회계 감사관들이 인수와 합병 때문에 엄청난 부를 얻었다. 그들 귀에는 흔히 실사(due diligence)라고 불리는 '자산가치평가작업'처럼 감미롭게 들리는 말은 없다. 자산가치평가작업이란 한 기업의 혼과 영을 파헤치는 행위, 오래된 파일 캐비닛을 뒤지고 거짓과 리스크와 협상 대상자의 다른 수익 원천을 찾는 과정을 가리킨다. 둘을 하나로 묶으려는 이러한 광적인 시도는 어디로부터 연유하는 것일까? 성장에 관해서는 어떤 말을 하는가? 왜 두 기업이 한 기업으로 합칠 때 더 나은 기업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석회질화된 대답, 상투적인 대답에 따르면 중복은 줄어드는 대신에 영향력과 경쟁력은 커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논리를 따르면 셋이나 넷, 다섯이 합치면 더욱 좋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 아래라면 이상적인 산업에서는 각 비즈니스 분야별로 두세 개 회사 또는 두세 개 그룹이 있어야 한다. 그 이상은 곤란하다. 그 정도만 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꾸릴 수 있고, 지렛대식 투자를 실시할 수 있으며, 기술적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CEO가 합병을 선언하는 자리에서 내놓는 이런 장밋빛 꿈이 현실화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왜 이렇게 합병을 계속해 8대 기업이 4대 기업으로 줄어야만 하는가? 넷도 둘로 줄어야만 이사회에 행복이 도래한다는 말인가? 너무도 터무니없다. 기업은 성장과 축소라는 주기를 반복한다. 나는 이를 '기업 요요 다이어트'라고 부른다. 계속 팽창하는 기업은 비만한 기업으로 변한다. 비만해지고 나면 이제는 성장이 가능해질 때까지 어쩔 수 없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다시 주기가 새로 시작될 때까지 리엔지니어링(90일에 새 몸을 얻는다!)을 실시하고 합병과 인수(웨이트 트레이닝과 근육을 키우는 행위)를 해나간다. 이리하여 다시 체중을 줄여야 하는 상황(단 6주에 20파운드를 감량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당혹감과 극도의 피로감과 무기력감을 느끼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누구나 그런 반복이 건강에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기업이 확장을 하지만 키는 크지 않거나 새로운 시장을 찾아내지 못할 때 더욱 좋지 않다. 하지만 많은 기업인들은 성장이 없다면 그 역시 해롭다고 믿는다. == 포춘니트 500 == 만일 성장이 성공의 척도가 아니라고 한다면 기업이 잘하고 있는지 혹은 잘못하고 있는지 판별하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주주와 직원, 고객, 공급업체, 또 지역사회에 의견을 물어 회사의 장점과 단점을 입체적 그림으로 표시해내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셈코에는 그런 점수표가 있다. 이 점수표로 진척 상황을 비교하고 문제를 사전에 예상하며 업무의 선후경중을 조정한다. 결국, 목표는 총수익에 기반을 둔 평가 대신에 더욱 복잡하고 실태를 좀더 자세히 드러내는 평가방식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견해를 종합하여 성공을 평가함으로써 새로운 기업 목록, 그러니까 지속가능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부터 찬사도 받고 있는 기업들의 목록을 새로이 작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업 목록을 포춘니트 500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우리는 성공을 정의하는 도구로 바로미터를 만들어내고 있다. 수치와 사람을 결합하고 고객과 공급업체, 정부기관과 NGO를 포함시킴으로써 '성공'이란 단어를 다각도로 평가할 수 있는 방식을 얻어내고자 한다. 만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이들 모든 주체도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기업활동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면 완벽한 성공을 이뤘다고 하겠다. 그렇게 되면 셈코는 포춘니트 500의 당당한 일원이 된다. 개인의 성공이나 행복을 판별하는데 어떤 척도를 사용해야 할까? ... 연단에서 그들을 살펴보면서 흥미롭게 생각되는 점이 있었다. 남들이 출근하기 싫어하는 월요일 아침에 그들이 왜 사무실로 나가는지 궁금했다. 나는 그들에게 왜 비즈니스를 하는지 이유를 말해달라고 했다. 대답은 멋대가리 없이 간결했지만 강력한 힘을 지닌 답이었다. 즉, 돈을 벌기 위해서란 답이었다. 점잖은 사람들이 곧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란 표현으로 거친 답변을 다소 누그러뜨렸다. 다시 나는 그들이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대다수가 자수성가한 사람들인 그들은 1천만 달러, 1억 달러, 심지어는 10억 달러가 목표였다고 말했다. ... 리츠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이미 목표를 훨씬 초과달성한 상태였다. 목표를 달성하고서도 왜 사무실로 향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 나와 과정을 함께 밟던 사람들 가운데 1/3이 이미 상당한 부를 이루었는데, 그 중에서 88% 이상이 예전 사업 외에 또 다른 새로운 사업을 인수해 경영하고 있었다.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이 사업을 하는 이유는 재능의 샘에서 재능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였다. 재능을 발휘함으로써 스스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목적과 정체성을 얻기 위해서이며, 지위라는 장식물로 자존심을 만족시키고 자신의 삶이 가치있다는 느낌을 얻기 위해서다. 결코 돈 때문이 아니다. ... 이는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유자금, 총수입, 이익, 이 모두가 다 좋기는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소중하다고 말할 수 없다. 만일 엔론이 흑자를 계속 유지했다면 그 정도까지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이익을 두고 그것이 정당한 이익이니 부도덕한 이익이니 판단하는 근거는 어떻게 이익을 올리고, 또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새로운 척도가 없다면 지속가능성이 없고, 큰 해악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있음에도 종래의 척도, 즉 이익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주말처럼 즐기면서 일하는 방식을 실시하는 곳에서는, 재능의 샘에서 재능을 길어 올리고 소명을 발견하고 성공의 참된 의미가 정립됨으로써, 사람들은 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조직과 사람들에게는 다른 평가방법이 필요하다. 새로운 평가방법은 개인에게는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기업에게는 지속가능성과 개인적 만족감이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이익을 충족시켜 준다는 사실을 알게 해줄 것이다. 수익성과 조우하는 곳으로 옮아갈 힘을 가져다준다. 그러게 되면 그 기업은 포춘니트 500의 일원이 될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 06. 목요일, 셈코의 생존 메뉴 = * 고객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라 * 기밀정보를 공유하라 * 어떤 조치도 취하지 말라 상관에게 보급품이 남아도니 병사를 더 보충해야 한다고 말하는 장군을 상상해보라. 셈코에서도 이익은 매우 중요하다. 장군이 보급품 확보에 열심이듯 우리는 이익 확보에 열성을 기울인다. 만일 보급품이 떨어지면 휘하의 병사들은 죽게 된다. 만일 기업이 돈을 벌지 못하면 기업 역시 죽음을 맞고 만다. 그러나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하기 위해 기업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많은 병사에게 식량을 대주기 위해 군대를 만든 것은 아니다. 식량은 병사에게 전투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러나 단순히 탄약을 장전하는 존재 이상이 되려면 신병훈련소를 거치고 적을 향해 돌격하는 데는 더 높은 목적과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일반 근로자나 백만장자와 마찬가지로 군인들도 더 높은 소명에 응답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 이익과 목적이 만나는 곳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다수 기업에서는 이 둘이 서로 충돌을 빚는다. 참되고 유기체적인 가치는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와야 한다. 통제를 없앨 때 이런 가치는 돌 위에 이끼가 생겨나듯 자라난다. 이러한 가치는 누가 무엇을 결정하고 또 누가 회사의 업무방식을 결정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정도로 체질화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바에 따라 조직이나 사업을 이끌어가려면 공식적 정책, 절차상의 제약, 일시적 성공만을 겨냥한 목표 등과 같은 장애요소들을 걷어내야 한다. 즉, 통제를 포기하고 직원들이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근로자들을 신뢰하고 권한과 정보를 공유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도록 격려하고 참다운 민주주의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관리자, 임원, 주주, 소유자들이 수용하기에 이런 것만큼 더 어려운 일은 없다. 살벌한 전쟁터의 분위기가 반영된 군대의 사명이나 신조보다 덜하기는 하지만 기업의 사명 및 신조 역시 근로자들을 한 방향으로만 향하게 하려는 얄팍한 시도일 뿐이다. 사명과 신조는 직원들에게 왜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일터로 나와야 하는지 명령조로 기술한다. "자, 이것이 당신의 목표다. 이 목표는 회사의 목적과 완벽하게 부합되어야 한다." 더욱 냉소적으로 이야기하면 병사에게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신병들의 머리에서 주체적인 생각을 모두 끄집어내어 항공모함이나 B-52 폭격기에 실어 넣으려는 의도와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병사들은 자신이 진정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지 회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회사의 경우에는 직원들이 회사로 출근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이익, 성장, 품질이 보장된다. 회사가 결정해놓은 사명에 의해 세계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야가 형성되고 제한된다면 절대 그런 바람직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회사 직원들에게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숙고할 시간이 치열한 전장에 있는 병사보다 훨신 더 많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비즈니스 이론가들 사이에 기업을 군대와 동일시하는 것이 한창 유행한 적이 있다. 그래서 마케팅 대공세, 측면 공격, 손자병법,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술 전략 등과 같은 군사 패러다임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 지정학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면서 군사 패러다임을 내세우던 이론가들이 이제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잘 운영되는 기업을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변화를 환영한다. 오케스트라는 직관력과 예술에 대한 사랑을 지닌 개인들을 하나로 묶어낸다. 이들 연주가는 힘을 합해 아름다움을 창조해낸다. 협동과 참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기업은 근로자들이 연주가와 마찬가지로 성장과 만족을 얻는 방법을 모색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관심과 재능을 발휘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은 회사, 명문화된 사명과 계획이 없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주저한다. 그러나 셈코에서는 명문화된 사명도 없고 신조도 없다. 단 우리에게는 생존 매뉴얼이 있는데 여기에는 셈코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맞추라고 말한다. 왜 셈코가 존재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 답변은 인간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과 다르지 않다. 즉, 확실히 알지는 못하나 함게 일하고 살아가며, 만족감을 느끼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 동료들에 의한 통제 == 우리 회사는 규정이 아니라 직관적 가치를 따르기 때문에 신뢰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일부 비즈니스 행태는 신뢰가 뿌리내리기 어렵게 한다. 사람들에게 신뢰한다고 말하면서 감사를 실시한다면 불안감을 심어놓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어느 정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고, 또 결백이 증명되기까지는 유죄로 간주하는 일종의 나폴레옹 법전의 적용 대상자임을 간파한다. 동료들에 의한 통제가 보고와 감사만큼 효과적이라는 점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만일 사람들이 감시나 공식적 조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 자신의 행동과 주위의 활동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만약 회계 처리에 부정이 있다면 신뢰에 금이 갈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또 단속하는 부서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주변에 절도나 횡령이 있는지도 살피게 된다. 셈코에서는 루머나 험담, 정치공작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셈코의 환경에서는 그런 행위가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셈코에서는 불신이라는 세균이 다른 곳에서처럼 활발히 증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절대적 신뢰가 부작용을 낳을 때도 있다. 군대식 통제를 없앨 때 감수해야 할 위험부담이다. == 쌍방 모두를 패배자로 만드는 일 == 내부감사를 없애는 기업은 거의 없다. 하지만 감사는 신뢰의 갈라진 틈을 찾기 위해 만든 것이다. 대다수 대기업은 발표한 사업 결과가 독립 주체에 의해 검증받았다는 사실을 주주에게 확인해주기 위해 외부감사기관으로 하여금 장부를 검사하게 하고 여러 절차를 살펴보게 한다. 하지만 주요 활동은 사람들 모두가 규정을 따르고 있는지 점검하도록 짜여져 있다. 또한 감사는 획일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감사는 통제를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는 쌍방 모두를 패배자로 만드는 일이다. 획일성을 얻기 위해 점검을 한다면 결국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셈이다. 사람들이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라면 바로 그것이 불신이다. 셈코에는 어떤 개인이나 어떤 집단도 공유하는 공통분모나 철학을 내세우고 있지 않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은 셈코에는 없다. "우리의 공통분모는 정직, 신뢰, 성실입니다." 그렇다면 셈코의 본질은 어디에서 생겨나고 있는가? 그것은 근로자들에게 회사의 모든 영역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또 자유롭게 옮길 수 있게 하여 자신에게 적합한 분야를 찾아낼 수 있게 하는 회사,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다른 곳을 쳐다볼 필요가 없는 그런 회사, 바로 이런 점으로부터 셈코의 본질적 요소가 생겨나고 있다. 이제 나는 그 사람에게 올해 21살의 신입사원 옆 자리에 앉기를 요청한다. 왜냐하면 그 젊은 친구가 그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둘 모두 서로에게서 배우고, 나 또한 배운다. 이렇게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배움을 얻는데, 이는 합병이나 리엔지니어링이나 조직 개편 등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이고 최소한의 공통분모다. '최소한'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아무리 작은 공통분모라 할지라도 우리 모두 그 이유로 여기 함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자기 나름의 계획과 포부를 가지기도 하지만 공통분모는 우리 모두를 회사라는 울타리 안으로 모이게 한다. 따라서 지금 회사는 어떤 일을 해도 나에게는 변치 않고 지속될 씨앗을 갖고 있다. 조직 개편이나 제품 신구교대를 거치고 시간이 지나더라도 굳건하게 남아 있을 무언가가 내게는 있다. 그것은 사명이나 신조도 아니며 내가 산 위에 올라서서 널리 외쳤던 가치도 아니다. 그것은 여러 해 동안 함께 일하며 사람들의 머릿속에 스며든 깨달음 내지는 철학이다. 이렇게 자연적으로 생겨나 함께 공유되는 문화는 회사 사람들을 하나로 결속시킨다. 그리고 이 문화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가 없다면 진정성, 자유로운 이견의 표현, 존중, 개방된 의사소통이 모두 불가능하다. 이러한 특성들이 때때로 괴로움을 주기도 하지만 본디 건설적인 것임을 믿어야 한다.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회사를 신뢰할 때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진정성이 결여된 회사는 결국에는 우수한 직원을 잃고 만다. 어떤 직원은 회사를 그만두고 어떤 직원들은 무기력에 빠진다. 남은 사람들도 의욕을 상실하여 곧 의욕고취 세미나에나 참석해야 할 대상자가 된다. 하지만 회사가 직원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 한, 회사는 직원들로부터 진정성을 기대할 수 없다. 회사는 고객에게 약속하는 믿음과 긍지를 직원들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만일 거짓이 있음을 직원들이 알 경우 회사와의 일체감은 줄어든다. 곧 그들은 봉급만을 위해 일하는 상태, 누구에게도 이런 자신의 처지를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종종 나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 "회사의 시스템을 어떻게 관리하는가?"라고. 내 답변은 이렇다. "내가 관리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스스로 작동되게 놓아둘 따름이다." 만일 우리 회사의 누군가가 10%의 리베이트를 주는 것이 유일하게 경쟁력을 갖는 방법이라고 결정한다면 셈코의 시스템은 그런 생각이 구체화되기 전에 뿌리를 잘라 버린다. 셈코에서는 항상 그래왔다. 누가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서 회의를 소집할지는 알 수 없다. 또 누가 그 생각을 좌절시킬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일어나 우리가 그런 식으로 비즈니스를 하느냐고 물을 것임은 확실하다. 논의는 만장일치의 거부로 마무리될 것이라 확신한다. 가방에 돈다발을 넣어 바이어에게 건네주는 일은 절대로 없다. 진정성은 우리들의 최소한의 공통분모 가운데 하나다. 내 입장에서 가장 좋은 점은 회사의 소유주가 그러한 논의에 참여조차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진정성은 나 없이도 충분히 확보될 수 있다. 왜냐하면 셈코에서는 최소의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쓸 수 있는 사훈이니 목표니 하는 것들을 쓰지 않아도 된다. 공유 가치는 세월의 경과와 함께 자연적으로 생겨나 그 구체적 모습을 취해나간다. 그러다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그 가치에 따라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정보는 힘이다 == 통제를 포기한다는 것은 정보의 독점적 권리를 포기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특권적 정보는 어떤 조직에서든 위험스러운 권력의 원천이다. 한 사람만이 독점하는 정보는 엄청나게 중요한 정보일 경우가 많고, 그 때문에 그 사람은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된다. 정보 독점과 그에 따르는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서 정보는 반드시 공유되어야 한다. 널리 공유할 경우, 민감한 정보를 경쟁업체가 용이하게 빼낼 수 있다는 주장은 내 견해로는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막아야 할 만큼 큰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개방성, 진실, 그리고 공개는 셈코에서도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나는 개개인의 연봉과 관련된 이메일을 여러 사람들에게 동시에 보낸 적이 있다. 셈코에서는 연봉에 관한 정보를 널리 게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내 메일을 받고 기분 나빠했다. == 고객과의 문화적 충돌 == 열린 의사소통과 진실은 직원들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고객이 셈코의 비즈니스 방식에 적응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많은 고객들은 셈코가 민주주의, 이견의 존중, 유연성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는 점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한 자유를 혼란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객들이 우리와 거래할 때 우리의 철학을 채택해주기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업무 원칙을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고, 그 결과 예상하지 못했던 문화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셈코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고객에게 설명회를 하면서 제품 결함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 몹시 당황해한다. 실망스럽게도 그 때문에 고객과의 거래가 성사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경우 고객들이 내 솔직함에 크게 당황은 하지만, 곧 그 다음부터 내가 하는 말은 의심하지 않고 모두 믿게 된다. == 평민회의 == 셈코에서 우리는 진실을 확보하고 활용하는데 단순한 방법을 채택한다. 즉,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를 전적으로 믿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정보를 접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말로만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메일이나 민주적 회합에서 우리의 이러한 자세를 적극적으로 천명한다. 또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습득한 정보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학습할 것을 권유한다. 이런 방식이 시작된 것은 20년 전 셈코에서 일련의 경영관리 회합을 거치면서부터였다. 클로비스 보히키안과 몇몇 최고관리자들과 더불어 나는 경영관리 회합을 주도했다. 사람들은 이런 우리들을 두고 기사단이라고 불렀다. 매주 각 사업체의 CEO들이 모였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석이 가능했다. 또 한달에 한번씩 이사들도 모임을 가졌다. 이 월례회의는 이사들에게 권력을 집중케 하는 효과가 있었으며, 또 종종 회사의 계획을 결정짓는 중요한 자리가 되기도 했다. 당시 다섯 명의 CEO들은 각기 자신의 관리자들과 월례모임을 가졌으며 이 모임은 '왕자의 신료'로 불렸다. 매주 모임이 열렸는데 여기에는 모든 직원들이 참석할 수 있었으며 '평민회의'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물론, 분기별로 주주들이 참석하는 이사회를 열었고, 한 달에 한 번씩 각 사업체의 모든 직원들을 위한 공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의 의도는 셈코의 실적 수치를 검토하고, 그에 대해 논박을 가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공장 근로자, 기계 기사, 사무원, 청소부 등 모두가 공개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가 갖는 이점은 며칠이면 정보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신속하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이렇게 전해지는 정보는 올바른 정보다. 소문이나 조작된 보고서나 메모와는 다르다. 또 거꾸로 근로자들의 관심사나 의견이 곧바로 전달된다. 1980년대 중반 그리고 1990년대 초에 경제위기가 브라질을 뒤흔들어 놓았다. 선진국에서는 그런 불행한 위기를 경험한 기업은 거의 없다. 하지만 셈코의 양방향 의사소통제도는 다른 깅버과 많은 차이점을 나타냈다. 우리는 이사들의 관심사를 평민회의에서 직원들과 함께 나누었다. 그들은 모든 성과 수치와 예측 내용을 눈으로 보았다. 또 그들은 우리가 노심초사하는 내용을 직접 들었다. 많은 경우, 다방면으로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와 같은 어두운 상황에서는 정리해고를 피하기란 어려웠다. 여러 아이디어가 아래로부터 올라왔다. 우리는 새로운 생각들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제안을 하기도 하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고, 새로이 압력을 가하기도 하고, 또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검토해보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외부 사람들에게는 지루하기만 한 과정으로 비춰지며 위기가 공포와 장기적 고통을 생산해내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직원들이 책임감을 지니고 있고 또 충분한 이해력을 가진 성숙한 성인들임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애초에 경영진이 제시한 것보다 더 현명하고 더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또한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행방식도 제시해주었다.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수치를 살펴보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고통을 함께 나누기 시작하자 신뢰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정리해고와 비용절감에 대한 분노는 경영진이나 회사 자체가 아니라 경제상황으로 향하게 되었따. 우리가 아무리 성장을 하고 아무리 경영을 잘해도 때로 예상치 못하게 경쟁업체에 계약을 빼앗기기도 하고 갑작스런 경제위기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복에 효율적으로 적응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한 것이다. 장부를 공개하면 직원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는 곧 깨달았다. 복잡한 회계절차는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직한 우리 공장 근로자들에게 이렇게 골치 아픈 서류는 문제의 본질을 흐릴 따름이다. 그들의 불평은 정당했다. 장부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우리는 어떤 기업이고 간에 진짜 중요한 수치는 단지 예닐곱 가지 정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 20여 년간 내가 접한 기업들의 경우는 모두 예외없이 그랬다.) 일단 새롭고 단순한 회계방식을 만들어낸 다음 그것의 신뢰성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 과연 누가 근로자들을 위해 이 새로운 프로세스의 적합성을 입증할 수 있을까? 노동조합이면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현재 브라질 노동부 장관을 지내고 있는 경제학자 월터 바렐리를 만났다. 바렐리와 그의 직원들은 사업가가 사회주의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근로자에게도 회사 장부를 공개하려 한다는 말에 놀라는 눈치가 역력했다. 근로자들은 새로운 회계 정보에서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의 급여와 가계 계획에 대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의사소통이 개방되어 있으면 직원들은 회계장부를 이해하고 그에 대해 면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셈코도 그 덕분에 더 높은 이익을 올릴 기회를 얻는다. 일상적 행위에서 자연스레 생겨나는 문화가 기업 정책을 대체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규정을 종이 위에 써넣는 대신에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바에 바탕을 두고 문화를 서서히 발전시켜 나간다. 하지만 발전은 매우 큰 고통을 안겨줄 때도 있다. ==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 반대 의견 개진과 민주주의는 서로 떼어낼 수 없는 관계다. 또한 반대 의견 개진과 민주주의는 훌륭한 경영기법이기도 하다. 전통적 경영관리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격론을 거쳐 내려진 결정은 그 이행이 훨씬 더 쉽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충분한 설명을 거치고 또 여러 대안과 반대 의견, 불확실성 등을 철저히 검토한 연후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덕에 직원들은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표명할 수 있고, 사업 기획이나 아이디어는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검토를 거치게 된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면 반대 의견을 용인해야 함은 물론이고, 거기에 그치지 말고 반대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해변을 거니는 것과는 달리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닐 때가 있다. = 06. 금요일, 셈코의 경영원칙 = * 낯선 사람과 별난 사람, 부적합자와 어울려라 * 새 사장을 고용하라 * 공장을 폐쇄하라 == 짠맛, 단맛, 신맛, 매운맛이 모두 어우러진 회사 == == 체스 경기 == == 물과 기름을 섞다 == 여러 동류집단이 섞이면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모하는 문화가 생겨난다. 차이와 개성에 대한 존중 그리고 민주주의적 이상은 새로운 종류의 조직을 낳는다. 이러한 조직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고 스스로 일을 추진하며 또 스스로 자신을 규율한다. 다양성과 각 집단의 개성 그리고 다른 견해를 존중하자고 이야기하기는 쉽다. 그러나 민주적 방식에 따라 조직을 이끌려는 사람들은 그 과정이 좌절감이 들 정도로 느리고 또 번거롭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 월드컵과 셈코 == == 철의 여인은 사양합니다 == = 08. 토요일, 일주일 내내 주말처럼 즐기면서 일하는 회사 = * 따분한 회의를 박차고 나가라 * 상사에게 낙제점수를 매겨라 * 이사회에 참여하라 == 독창적인 급여체계 == 여러 해가 지나면서 우리의 유연성은 급여로까지 확대되었다. 우리 회사 보수에는 총 11가지 종류가 있다. 고정급, 보너스, 이익배분제도, 수수료, 판매 로열티, 이익 로열티, 매상 총수익에 대한 수수료, 스톡옵션, 주식공모 혹은 판매 등이 포함된다. 주식공모방식에서는 사업체가 기업공개를 하거나 매각되었을 때 주식을 현금화한다. 그리고 경영관리자는 그해의 목표치와 목표치를 달성했을 때 받게 될 금액을 스스로 정한다. 셈코의 이니셔티브 가운데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직원들 스스로 자신의 급여를 정하게 하는 방식이다. 아는 체 하는 사람들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이 분명코 터무니없이 급여를 높게 잡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직원들에게 업무시간을 일주일 내내 주말처럼 즐기면서 일하는 방식에 맞춰 스스로 정하도록 할 때도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같은 주장을 들었다. 사람들이 최대한 늦게 출근하거나 아예 출근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동일한 원리를 급여를 스스로 정하는 방식에도 적용할 수 있다. 급여의 적정성을 결정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내 생각으로는 다섯 가지 결정 항목이 있다고 본다. 세 가지는 회사가 잘 알고 있고, 두 가지는 직원이 알고 있다. 그리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려면 누군가가 이 다섯 가지 항목을 모두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1. 회사는 다른 곳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만한 급여를 받고 있는지 알고 있다. 2. 회사는 회사 내에 직원들이 현재 얼마를 받고 있는지 알고 있고 비교를 통해 직원들의 가치를 잴 수 있다. 3. 회사는 상품, 서비스, 혹은 현재 시장상황을 고려해 평균임금 이상으로 해야 할지 아니면 이하로 해야 할지 알고 있다. 4. 이와 달리 직원들은 회사가 알지 못하는 두 가지를 알고 있다. 자신의 직무에 대한 만족도 그리고 일과 개인생활 사이의 균형을 고려하여 현재 경력으로 받기를 원하는 급여가 그 첫번째로, 5. 배우자와 이웃, 동창 등이 현재 받고 있는 급여가 두 번째다. 우리는 직원들에게 앞의 세 항목을 공개함으로써 직원들 스스로 합당한 급여를 결정하게 하고 있다. 시장조사 결과를 직원들에게 배포하여 경쟁업체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받고 있는지 파악하게 하고, 회사 내의 모든 사람들(나 본인에서 건물 관리인에 이르는 모든 사람들)의 급여까지 알려주고 있으며 회사의 수익 전망도 공개하고 있다. 지나치게 높은 급여를 요구하는 사람은 동료들로부터 배척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지나친 급여를 요구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또한 급여는 자기 부서의 예산안에서 꾸려나가도록 장려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총수입 보고, 예산안 검토, 이익 배분을 비롯해 투명한 실적 수치가 셈코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만일 근로자가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경우라면 적절한 급여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알게 된다. 우리 직원 가운데 상당수는 급여의 일부를 이익배분제도에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급여를 모두 수령할 때보다 더 높은 보수를 얻고 있다. 프란시스코 알베스 페레이라는 셈포 프로세스의 기게조립 기술자는 몇 차례 급여인상액의 2/3를 투자했다. 그가 소속된 사업팀이 목표를 달성하자 프란시스코는 석 달치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받았다. 그런데 만일 자신의 사업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을 냈다면 투자한 금액 모두를 잃을 수도 있었다. 이는 연봉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따라서 프란시스코는 자신의 사업팀이 실적을 올리는 데 적극적으로 역할을 한다. 다른 많은 직원들처럼 그는 사업팀의 실적 수치를 나보다 더 환하게 알고 있다. 물어보면 그 자리에서 생산비용을 말해줄 수 있을 정도다. 또 공장에서 어떤 설비를 조립할지 직접 결정하기도 한다. == 리더십과 자율관리 == 8시까지 자전거를 타면서 이메일 답장을 보내고 해야 할 일을 적어놓고 나면 이제 그날 일과 준비를 마친다. 그런데 이때부터 내 특유의 기묘한 리더십이 발휘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이라 해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셈코의 직원들이 증언해줄 것이다. 나는 설명을 한다든지 자세한 지시를 내린다든지 하는 일에 영 소질이 없다. 예컨대 짤막한 이메일을 직원에게 보내 지금이 적절한 시점이라는 판단이 드니 아무개 회사에 누군가를 찾아내어 특정한 서비스를 판매하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내 판단이 틀린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직원들은 내 충고가 담긴 이메일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회사에서 내 역할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생각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하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회사에 공헌하는 방식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나는 촉매제다. 그리고 촉매제는 근무시간을 엄격히 지킬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내 마음은 쉬지 않고 조용히 일을 한다.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같다. 비디오에 나오는 기계들을 보면 새로운 제품에 대한 구상이 떠올라 급하게 종이에 그 내용을 적어놓기도 한다. 물론 현실성 없고 명확하지 못한 생각을 할 때도 적지 않다. 이런 내 모습이 리더십과는 거리가 먼 듯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이 맞다. 성공적인 리더십이란 독재가 아니다. 성공적인 리더십은 스스로 실행으로 옮길 능력을 지니지 못한 조직과 개인의 혈류 속에 근본적인 아이디어와 프로세스를 불어넣어 준다. 리더는 시기가 무르익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풍성하게 피어날 수 있도록 한다. 독재자가 물러날 때는 독재도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가 떠날 때는 건강하고 자율적이고 활기 있고 순수한 조직을 남겨놓는다. 자유분방한 우리 스타일에 비추어보았을 때 셈코의 리더들과 그들의 방식을 면밀하게 평가하는 프로그램이 Seen from Below라는 이름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사실에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6개월마다 근로자들은 익명으로 설문지를 작성하는데, 여기에는 예컨대 상사가 다른 관리자들을 대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부하직원을 대하고 있는지 묻는다. 총 36개 질문이 있으며 근로자는 1점에서 100점까지의 점수로 답한다. 설문지 내용을 전혀 바꾸지 않고 매번 그대로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상대적 점수에만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70점이라고 해도 그 관리자가 항상 받아오던 점수가 그렇다면 양호한 점수로 본다. 하지만 예전에는 항상 90점을 받던 관리자라면 같은 70점이라고 해도 우려가 되는 상황으로 판단한다. 점수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이 설문조사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는데 지난 6년 동안 매년 2~3점씩 평균점수가 높아져 왔다. 관리자는 자신의 점수를 관리해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부하직원에게 불만이 있을 때 이를 파악하는 것이 그들 자신을 위해서 긴요하다고 믿는다. 만일 직무수행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해고될 위험이나 전출될 위험을 안게 된다. 셈코 밖에 있는 사람들은 설사 무능해도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관리자를 근로자들이 선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근로자들이 정치력은 높지만 실무 능력은 떨어지는 상사를 선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셈코의 역사가 증명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존경하지 않는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 우리 회사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살림살이가 회사의 실적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인간성은 좋지만 능력은 없는 관리자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 주제넘은 행동은 금물 == == 카리스마라는 괴물 == 리더, 특히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는 직원들과 일반인들의 눈에 회사와 동의어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경영서적의 온갖 허튼 선전을 그대로 믿어 자신을 회사와 동일시하는 리더도 상당한 해악을 끼칠 수 있다. 이런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리더는 마땅히 회사의 일상 업무와 거리를 두어야 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줄여나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셈코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던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회사가 질식의 위험에 처하리라는 증거가 나왔기 때문이다. 셈코의 위대한 성공은 내 부재에 일정 부분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나만큼 회의를 많이 취소한 사람은 없다. 또 프로젝트 참여를 나만큼 회피했던 사람도 없다. ... 내가 참가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제회의 진행에 차질이 빚어진다고는 믿지 않는다. 또 내가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거래에 어려움이 초래된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성공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공은 모든 동료와 직원들이 지지하는 집단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비즈니스에서 구원자나 아버지상을 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무리를 이루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리 아이아코카나 잭 웰치, 루 거스너 등과 같은 리더 뒤에 열을 지어 모이려고 한다. 하지만 리더가 영웅이 될 때 두 가지 일이 발생한다. 첫째로 직원들은 윗사람에게 의존하기 시작하고, 둘째로 CEO는 자신을 비범한 인물로 그리는 회사 사보를 믿기 시작한다. 그는 직원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비전과 열정이 내뿜는 빛을 좇아 그의 명령을 자동적으로 신속하게 수행하는 하인쯤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그는 일주일간 회사에서 벗어나 휴양지에 가서는 새로운 사업 계획을 세우고 회사로 돌아와 모든 이들에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지시한다. 여기에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새로운 계획이 직원들의 관심이나 재능, 기술과 궁합이 맞지 않아도 어쨌든 그들은 시키는 대로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열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되면 치명적인 두 개의 결함이 생겨난다. 계획에도 하자의 가능성이 있는데다가 계획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마지못한 자세로 일을 하게 된다. 나는 이사회 안건의 중요도는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바로 위와 같은 사정이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 이해하고 있는 문제에 관해서만 이의를 제기할 능력이 있다. 예컨대 1.5억 달러 투자 안건은 이사회에서 보통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경영진은 까다로운 질문이 지나치게 많이 제기되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 또 이사들도 그러한 거대 프로젝트에 대해 질문하기를 꺼려한다. 따라서 이사회에서 1.5억 달러 투자여부를 결정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3시간짜리 마라톤 회의감으로는 주차공간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이사들 모두 잘 알고 있고 또 깊은 관심을 기울일 만한 문제로 기꺼이 목소리를 높이며 싸울 태세가 되어 있는 사안이다. == 셈코의 이사회 == 우리는 이사회가 회사의 일상 업무로부터 유리되지 않게 하는 실질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일부 다른 회사에서는 이사회란 지나치게 치장한 옷차림에 지나치게 심각한 표정을 한 지긋한 나이의 남자들이 화려하게 꾸며진 회의실에서 자신들과 비슷한 무리들을 만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로마 시대의 용어를 빌리자면 그들은 스스로를 인민의 호민관이라 여기고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주의 호민관이라고 하겠다. 셈코에서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혼재되어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임원 세 사람이 상임이사 자리를 맡고 있다. 그리고 두 자리는 관리자가 돌아가며 교대로 맡고 있고, 나머지 두 자리는 근로자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데, 이 두 자리는 선착순에 따라 자리가 돌아간다. 신청을 가장 먼저 한 사람이 다음번 이사회에 참석할 권한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사환이나 비서가 "죄송합니다만 이사회 참석이 늦겠으니 이만 실례해야겠다"라고 말하며 일자리를 떠나는 경우를 셈코에서는 볼 수 있다. 우리는 의제에 대한 정보를 주고 미리 준비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투표권을 주어 자신들이 대표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표를 행사하도록 하고 있다. == 상황 리더십 == 회사 임원, 컨설턴트, 그리고 교수들은 한결같이 리더십이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각 환경이 갖는 특수성에 맞게 상이한 리더들이 생겨난다는 소리다. 따라서 고정된 만능의 리더십 모델은 유효하지 않다. 워크숍에서 내가 특히 좋아했던 실습이 있었는데, 대여섯 명의 지원자를 단상 위로 불러 올려놓고 리더십과 관련된 상황극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원자들에게 이제부터 당신들은 히말라야에 추락한 비행기의 생존 승객이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한 사람을 기장으로 지목한 다음, 사람들에게 앞으로 20분 동안 해야 할 일을 해보라고 주문한다. 그러면 곧 이들 사이에서 리더가 생겨나는데 내가 지목한 기장이 리더가 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기장 대신에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사람들을 두세 명씩 팀을 만들어, 한 팀은 마실 물을 찾게 하고, 다른 팀은 무전기를 고치게 하거나 지나가는 비행기에 신호를 보내게 하고, 세번째 팀에게는 부상당한 사람들을 돌보게 한다. 얼마 후에 내가 끼어들어 다른 상황을 연출하게 한다. 생존 승객이었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어느 대규모 화학공장이 그날 오후에 폐기물을 강에 방류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환경보호단체 구성원으로 변신한다. 곧 누군가가 리더의 역할을 떠맡고 나서는데, 그 사람이 생존 승객을 이끌던 사람과 일치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 이 실습은 리더십이 상황에 의존한다는 내 믿음을 더욱 강화해주었다. 상황이 바뀌면 리더도 바뀌어야 한다. 역량, 직관력, 개성이 오늘은 완벽하더라도 내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되기도 한다. 또한 이 실습은 '리더십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좋든 나쁘든 현대 조직은 기름칠이 잘된 기계라기보다는 추락한 비행기나 화학물질 유출에 피해를 입고 있는 집단에 더욱 가깝다. 지금은 위기관리 시대다.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계획이나 정책을 매끄럽게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부상자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오염된 환경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정 시점이 되면 자율관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기주의와 생존본능이 끼어든다. 조직은 그 구성원들이 경험에서 얻은 각자의 역량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로 응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때부터 리더십은 촉매제의 역할, 교통을 정리하는 역할, 분쟁을 해결하는 역할을 제외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더욱이 내 견해로는 주제넘게 간섭하는 리더십은 개인의 재능과 이익 추구의 자유로운 상호작용을 방해함으로써 역효과를 낳는다. 상황 리더십이라는 개념이 상명하달식의 리더십과 결합하면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변질된다. 한 사람, 혹은 한 줌의 경영관리자만으로 복잡다단한 글로벌 마켓에 가장 훌륭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 없는 생각이다. ... 진정한 상황 리더십, 즉 유연하고 효과적이고 항상 진화하는 리더십은 자율관리에서만 생겨난다. 그리고 이는 상황 리더십에는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특징이 있는데, 바로 그것은 항상 통제를 포기한다는 점이다. == 기숙학교로 다시 돌아가길 원합니까? == 상황 리더십과 더불어 '조직 수평화'가 캐치프레이즈로 인기를 얻고 있다. 나도 조직 수평화에 찬동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직함에 걸맞게 통제권을 행사할 자격이 있다고 느낄 때 위계질서 조직은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직함에 따르는 특권을 없앴다. 우리는 개인의 이익 추구와 재능에 의한 질서를 선호하며 권력과 통제를 상징하는 것들에는 반대한다. 셈코에서는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무엇을 통제하고 누구를 지배하는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 09. 셈코의 여느 하루, 우리가 가는 곳이 길이다 = * 기대하지 않았던 배움을 얻어라 * 의사결정 나무에 올라라. 하지만 거기에 눌러앉지는 마라 *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일만 계획하라 본래 가려던 방향에서 빗나간 적은 없었던가? 물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엘리스가 체셔 고양이에게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라고 묻자 체셔 고양이는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다르지"라고 대답한다. "어느 곳이든 좋아. 그곳까지 가는 길이라면 말이지." "그렇다면 아무 길이나 가려무나." 내 인생에서 어느 곳에 당도하든지 바로 그곳이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다. 조직의 내부에서도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볼 때 기대하지 않았던 배움을 얻는다. 그냥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앞서 말했듯이 대다수 비즈니스 리더들은 어슬렁거리는 일을 고통스럽다고까지는 못해도 어려운 것으로 여기지만 결국에는 상당한 보상을 얻게 된다. 여러 곳을 어슬렁대지 않고 한 길만을 간다면 내 선택지는 제한을 받게 된다. 익히 알고 있는 것만 고집한다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지 못하게 된다. == 리스크를 줄이자 == 직관은 일주일 내내 주말처럼 즐기면서 일하는 방식을 즐기며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리도록 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훌륭한 연료다. 왼쪽으로 갈 것인가 오른쪽으로 갈 것인가, 멈출 것인가 계속 나아갈 것인가, 빨리 움직일 것인가 느긋하게 행동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은 이성과 경험의 도움을 받아 해결한다. 하지만 직관은 이러한 분명한 특성과는 다른 독립된 지식이다. 따라서 직관은 행위와 인식에 더 확장된 의미를 불어넣는다. 모든 현상은 분명한 표면적 의미와 목적을 지니고 잇지만 또 숨겨진 의미와 목표가 여러 개의 층을 이루고 있다. 직관력을 갖춘 사람은 이러한 숨겨진 내용을 파악해낸다. 직관이라는 말 자체가 매우 애매하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자신이 짜놓은 의미의 그물망에 걸려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직관이 낳는 결과는 현실 속에서 실재하며 또 언젠가는 인간 두뇌 연구자들에 의해 직관의 본성이 명확히 밝혀지리라고 본다. 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높은 직관력을 가질까? 그들은 직관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허락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사람의 사고력을 빌리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회사를 위해서 자신의 사고력을 발휘하려 들지 않으며 결국에는 그 사람의 직관력은 곧바로 고갈되고 만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에게 수치나 장부만 가지고 일하도록 강요한다면 그는 직관력을 배양하지 못한다. 그는 사물의 분명한 의미에만 집착할 뿐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의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상상의 도약이나 획기적인 통찰력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직관력은 쇠퇴하고 만다. 사람들이 직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 이유는 객관적 수치에만 매달리는 경영은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거나, 아니면 직관력이 지니는 도구로서의 잠재력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블리드 밸브가 새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직관에 귀를 기울일 만큼 충분한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다. 만약 직관에 귀를 기울였다면 곧바로 전화기를 들고 정유회사 회장에게 "여기 수리가 긴급하게 필요합니다"라고 했을 터이다. 또 어느 누구도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훈련받지 못했다. 자기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직장을 잃지는 않을까, 이런 두려움 때문에 모든 밸브를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그런 조치를 취할 경우 이틀 동안 원유 채취를 할 수 없는데 그 양이 수백만 배럴에 이른다. 직관을 발휘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면 매뉴얼에 나와 있는 지시사항만을 따를 뿐 그 이상의 것을 배우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직관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또 직장에서 직관 활용이 환영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조직을 위해 이를 사용할 뿐 아니라 이로써 자신의 개인적 목표를 달성하는데도 도움을 얻는다. == 직관 == 어떤 사람이 의사결정은 최고결정권자에 의해 내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지나치게 교만한 사람이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사람이다. 권력과 지위가 절대 무류를 보증하지도 않거니와 반드시 최선의 선택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달리할 권리를 부여한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의 직관이 한 사람의 권한에 우선한다. 유권자가 후보나 어떤 제안에 퇴짜를 놓을 때 그것이 심각한 실수를 범하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집단적 판단과 직관이 한 사람의 지배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비즈니스라는 상황에서 한 사람의 지배를 때로는 숭요해야 할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토머스 에디슨의 조수들 때문에 발명품 가운데 상당수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터이고, 어쩌면 GE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다. 하지만 좋지 않은 아이디어가 조수들에 의해 애초에 폐기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누가 알겠는가("토머스, 거봐요, 거봐. 우리가 뭐랬어요?"). 그래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현실성 있는 아이디어에 집중적으로 투여되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또는 발명품이 성공적으로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집단적 도움과 지원이 필요했는지 어찌 알겠는가. 따라서 오늘날의 비즈니스에는 민주주의 원칙을 따르는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 집단적 노력에 의해 성공적 제품이 확보되는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추진시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로비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설득에 적극적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그 아이디어를 일단 후순위로 밀어놓는다. 만일 아무도 그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안은 사라질 따름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최선의 방식임이 판명될 것이다. == 괴짜들이야말로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 때때로, 새 아이디어가 상당히 쓸모가 있다고 믿지만 아무도 이를 알아주지 않을 때 나는 별스러운 괴짜들을 불러들인다. 때때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기려면 상궤에서 벗어난 사람들과 그들의 별스러운 성정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엉뚱하고 무모한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감수해야 할 위험이 있는데, 바로 현실과 유리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비범한 무언가를 창조해내려면 얼마간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건전한 상식을 지닌 우리 직원들과 벗어난 괴짜들과 어울리게 하는 방도를 여전히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 직관 활용을 극단으로까지 밀고 나갈 수 있고, 또 그래야만 안전하고 익숙한 길 대신에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 탁월함을 얻으려면 직관이 지시하는 길을 따라 미지의 세계로 향해야 한다. == 의사결정 나무에는 돈이 열리지 않는다 == 의사결정 나무(decision tree)는 재무분석가들이 널리 사용하는 분석도구인데 큰 혼란을 줄 소지가 많다. 왜냐하면 예전에 물리학 교수가 내게 가르쳐주었듯이 의사결정 나무로 이루어진 숲 속에 중간까지밖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는 스스로 헤치고 나와야 하며 반대편으로 완전히 빠져나올 때까지는 지금 밖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정보는 직관을 지지해준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경영현황과 객관적 수치를 조립라인 근로자부터 최고 임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한다. 기업들은 미래의 실적을 예측하기 위해 그런 정보를 원하지만 정확한 사실 관계나 수치는 의사결정의 적합성을 높이는데 쓰여야지 전적으로 거기에 근거해서는 곤란하다. 정보에 대한 판단이나 논의 내용을 추가할 때 정보는 입체적이 된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중요한 사안에 대해 저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고, 더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추고 있으며, 이런 자신들의 지식에 자신감을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바, 육감에 따라 행동하고 판단한다. 수치에 기초한 의사결정만큼 빈번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직관은 실수와 판단착오를 낳기도 한다. 셈코에서도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실수를 한다. 삶은 실수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시대의 경영구호, "실수는 병가지상사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못난 짓이다"와 같은 말에 동조하지 않는다. 즉,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실수를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수가 우리에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가르쳐준다는 생각은 그릇된 것이다. 잘 알고 있듯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중요한 발견이 실수나 뜻밖의 사건에 의해 이루어졌다. 콜럼버스는 서인도제도를 아시아로 잘못 알았고, 알렉산더 플레밍은 곰팡이에 오염된 실험 샘플을 내버리려다가 곰팡이가 세균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행운은 성공의 필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성공이 완전히 행운 때문이라며 성공한 사람을 매도한다면 이는 온당하지 못하다. 노력이 있어야 행운도 따른다. 행운을 잡을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행운이 찾아왔을 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로또 당첨은 행운이 아니다. 우연한 사건일 뿐이다. 얻어낸 결과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이 바로 행운이다. 직관, 행운, 실수, 우연한 발견, 바로 이 네 가지 핵심적 비즈니스 개념을 모든 관리자들은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통제를 확보하기 위해 이들 네 가지 요소 주위에 장애물을 쌓아 올린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어깨에 힘을 빼고 천천히 숨을 쉰 다음 직관, 행운, 실수, 우연한 발견 등이 일어나게 놓아두라." 이는 콜럼버스, 아리스토텔레스, 뉴턴, 플레밍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훌륭함에서 위대함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따라야 할 참된 방법이다. 애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 이후에 미국을 어떻게 이끌 것이냐는 질문에 미시시피강에서 배를 조종하듯 하겠다고 말했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일만 계획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결국에는 목적지에 닿게 마련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아무 길이나 가려무나"라고 말한 체셔 고양이는 전적으로 옳다. 이사회를 마치고 나갈 때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확실한 방향감각을 얻으려는 사람은 고양이의 이 말에 크게 짜증을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기술적으로 문제가 전혀 없는 전략이다. 고양이는 우리가 자기 운명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또 갑론을박이 오가는 회의에 참석해 머리가 빠지도록 아이디어를 자내고 예산안 수치에 핏대를 세우는 일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이런 고양이의 방식은 무모한 방식, '아무려면 어때'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실은 이 방식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직관적 판단, 행운, 실수, 우연한 발견 등에 기초한 정교한 계획에 이성과 경험을 덧붙인다. "아무 길이나 가려무나"라고 말할 때 수동적 방식을 주장한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매우 적극성과 과감함을 요구하는 주장이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공을 일구어낼 능력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식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얽매고 있는 족쇄에서 벗어나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또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진짜 수동적인 방식은 변수들을 통제하여 목적을 쉽게 이루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통제가 불가능한 변수들이 바로 꿈을 현실로 이루게 하는 요소들이다. 만일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낸다면 노동과 삶의 균형을 이루고 또 지속가능한 성장도 얻을 수 있다. ([[책/전략적 직관]]에서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있는듯. [[노자]]적인 부분도 보이는 것 같고.) == 안전 메커니즘 == 변화는 오직 초미의 관심사가 아닌 사안일 때만 성공한다. 사람들을 끊임없이, 그리고 인위적으로 변화하도록 종용하는 기업은 기린 옆에 서서 "목을 늘려라, 목을 늘려!"라고 외치는 진화론자와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위험을 받아들이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예컨대 피스톤이나 카뷰레터에 대한 지식은 모두 버리고 전기자동차에 힘을 쏟게 할 수 있을까? 통제를 민주주의로 바꾸고, 직원들이 스스로 관리자를 선정하게 하며, 또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창조적 정신과 자신감을 배양하는 첫 단계에는 자유로운 내부 이동이 포함되어야 한다. 사람들을 한 업무에서 다른 업무로, 한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또 한 사업팀에서 다른 사업팀으로 옮겨가게 한다. 이렇게도 섞어보고 저렇게도 섞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봉건적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그 주위에 견고한 요새를 지어놓으려는 사람들의 성향을 차단할 수 있다. 봉건적 시스템은 집단 구성원들에게 안전을 보장해주고 외부로부터 오는 변화와 위험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불안정과 변화야말로 셈코가 추구하는 것들이다. 또 진정한 변화를 일구어내려면 더 이상 장래성이 없는 부분은 기꺼이 털어낼 수 있어야 한다. 미래가 없는 사업팀은 매각하거나 정리해야 하는 등 환골탈태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환골탈태를 시도할 때마다 직원들 사이에 자기보호본능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서로 맺고 있던 관계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현실에 직면하기를 거부하면서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자신을 보호하려 든다. 새로운 기술을 수용할 경우 자신의 기반이 파괴될 때 이들은 그 기술을 멀리한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우리에게는 또 다른 위험이 있다. 지금 일하고 있는 방식에 지나치게 안주할 때 생겨나는 위험이다. == 결론 == 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셈코에서 네가 옹호하는 내용의 본질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지혜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재능의 샘, 적절한 시스템이 주어졌을 때 생겨나는 지혜, 자유가 있을 때 샘솟아 나오는 지혜, 사람에 따라 들쑥날쑥하지만 민주주의를 실천할 때 생겨나는 지혜, 그런 것들을 활용하자는 생각이다. '왜'라는 물음표를 던짐으로써 너는 그런 지헤를 얻어낸다." 글로벌 기업은 민주주의를 시행하지 않는다. 누구는 주식회사제도가 민주적이라고 주장할런지 모른다. 주주는 주주총회에서 주식수에 따라 한 표씩 행사할 권한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주주총회에 참석해보면 곧바로 알 수 있다. 경영진이 회사를 장악해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사회에서는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힘 있는 투자자는 힘없는 투자자들 위에 독재자처럼 군림한다. ---- CategoryBook CategoryManag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