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국 지음
프롤로그: 삶이 힘들 때 니체에게 묻고 싶은 10가지 질문
저는 니체가 생각하는 운명과 우리 자신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 인간들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는 ‘사랑의 투쟁’이라는 말로 묘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과 투쟁하고, 다른 사람들과 투쟁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강화시키고 고양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운명과 대결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다 강하고 깊은 존재로 고양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서 우리는 이 가혹한 운명을 오히려 아름다운 것으로 사랑할 수도 있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노인과 바다》에서의 노인처럼 자신의 운명에게 이렇게 소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 아, 나의 형제여, 나는 이제껏 너보다 아름답고, 강인하고, 고귀한 상대를 본 적이 없다. 자, 나를 죽여도 좋다. 누가 누구를 죽이든 이제 나는 상관없다.
근대는 사람들이 겪어야만 하는 운명의 부담을 가능한 한 줄여주려는 시대입니다. 자연마저도 과학과 기술을 통해서 인간을 위한 것으로 길들이고, 사회도 빈곤과 불평등을 줄여서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안락한 삶을 보장하려는 것이 근대의 경향입니다. 또한 근대는 사람들이 투쟁하지 않고 서로를 동정하고 도우면서 평온하게 사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라고 여깁니다.
니체는 이러한 근대적 경향에 대해서 온몸으로 저항한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안락과 길고 긴 연명이 아니라 자신이 고양되고 강화되었다는 느낌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가혹한 운명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은 그런 운명 앞에서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니체는 가혹한 운명과의 대결을 통해 소수의 인간은 보다 강하고 심원하며 아름다운 존재로 고양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니체 자신도 두통, 위통 등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험난한 운명의 삶을 살았지만, 그는 그런 질병을 통해 자신이 보다 심원해지고 보다 강해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니체의 사유도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핵심 사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험난한 운명에도 굴하지 않고 그것을 긍정하는 것을 넘어서 사랑했던 그리스 로마의 강건한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니체가 주창하는 정신을 예수나 부처가 설파하는 사랑과 자비의 정신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또한 헝가리의 철학자 루카치György Lukács와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니체가 주창하는 정신을 약한 자들에 대한 지배와 정복을 정당화하는 제국주의의 정신으로 해석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저는 니체가 주창하는 정신은 예수나 부처식의 사랑이나 자비의 정신도 아니고 제국주의적인 정신 역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약한 자들에 대한 사랑과 동정을 주창하는 근대인들이 망각하고 있는 강건한 정신으로, 고통과 험난한 운명을 자신의 고양과 강화를 위해 오히려 요청하는 패기에 찬 정신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한 초인超人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초인이란 고난을 견디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난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고난에게 얼마든지 다시da capo 찾아올 것을 촉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 / 편안함만을 바라는 사람에게 행복은 오지 않는다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사는 게 왜 고통인지에 대해 철저하게 파고들어간 철학자가 바로 쇼펜하우어입니다. 그는 인생의 본질을 다음과 같은 단 한마디의 말로 정리했습니다.
-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욕망들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우리는 결핍감으로 괴로워하지만, 정작 그것이 충족되더라도 만족감과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만족감이나 행복감은 욕망이 전제되지 않는 한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만족감이나 행복감은 욕망이 채워지는 과정에 불과하고, 따라서 그것들은 욕망이 채워지는 순간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아마 이런 것이 철학과 과학의 다른 점이자 과학이 줄 수 없는 철학의 묘미일 것입니다. 과학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를 알려줍니다. 예를 들자면 생물학이 유전자를 발견하기 전까지 우리는 유전자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이에 반해 철학은 우리가 이미 삶 속에서 체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고 있는 것을 확실하게 개념화해서 우리 눈앞에 보여줍니다. 따라서 철학적 진리를 담은 말을 접하게 되면 우리는 ‘그런 말은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는데 저 사람이 먼저 말해서 기회를 놓쳐버렸네’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삶의 가치는 아무도 평가할 수 없다
우리가 몰랐던 행복의 조건
우리가 힘이 증대되었다고 느끼려면 어떤 저항이 있어야 합니다. 그 저항을 극복하는 것에 의해서만 우리의 힘이 강해졌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항에는 가난, 전쟁터에서의 적, 또는 예술가가 자신의 앞에 두고 있는 소재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요. 인간은 이러한 것들과 싸우고 그것들을 극복하면서 자신의 힘이 증대되고 고양되었다고 느낍니다.
니체는 바로 이렇게 힘이 증대되었다는 느낌이야말로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니체는 우리 인간에게는 자신의 힘을 고양시키고 강화하고 싶어 하는 충동이 있다고 보면서 그것을 ‘힘에의 의지’라고 불렀습니다. 니체는 우리가 진실로 바라는 것은 단순히 안락하게 오래도록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니체는 바로 이렇게 힘이 증대되었다는 느낌이야말로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니체는 우리 인간에게는 자신의 힘을 고양시키고 강화하고 싶어 하는 충동이 있다고 보면서 그것을 ‘힘에의 의지’라고 불렀습니다. 니체는 우리가 진실로 바라는 것은 단순히 안락하게 오래도록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힘에의 의지’가 쇠약해지고 지쳐 병들어 있을 때면 인간은 편안함과 만족을 찾게 되고 자신과 투쟁하지 않으면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택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현실에서 여러 곤경을 겪게 될 때 이 세계는 그들의 안락함을 방해하는,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세상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의지와 생명력이 약해진 것은 아닌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니체는 말합니다.
혹시 주위에서 기품이 느껴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아, 저 사람은 고귀한 인간이야’라는 느낌을 받은 사람은 있었나요? 그런 사람은 피곤하다고 아무데서나 드러눕는 인간이 아니라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꼿꼿한 자세를 잃지 않는 사람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연하고 당당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강한 긍지를 갖기에 외부의 상황에 쉽게 굴복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항상 그 상황의 주인으로 존재하면서 상황을 압도하는 자신의 힘을 느낍니다.
이렇게 기품 있고 고귀한 인간에게는 세계가 어떻게 보일까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것처럼 어둡고 우울하게 나타날까요? 니체는 ‘이러한 인간에게는 단연코 세계가 아름답게 보인다’라고 말하면서, ‘아름다움이란 우리 인간이 자신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세계에 나눠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니체의 이러한 사상은 공교롭게도 동양의 불교에서 말하는 것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불교의 한 학파인 유식학唯識學에서는 각 존재자들의 정신상태에 따라서 동일한 세계도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일수사견一水四見의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니체가 말하는 ‘말세인’과 ‘초인’은 동일한 인간이지만 서로 전적으로 다른 정신적 차원에 있기 때문에 세계 또한 서로 다르게 보게 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한 인간’은 고난과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않고, 그런 것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평정과 충일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질문: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 의미를 찾지 않을 때 의미 있는 삶이 된다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아이로
니체는 ‘인간의 정신은 낙타의 정신에서 사자의 정신으로, 그리고 사자의 정신에서 아이의 정신으로 발전해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낙타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아무런 불만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나아가는 동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낙타는 인내와 순종의 대명사라 할 수 있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낙타의 정신은 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절대적인 진리로 알면서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정신을 뜻합니다.
놀이에 빠진 어린아이처럼 살아라
세 번째 질문: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왜 하나도 없을까?" / 위험하게 사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네 번째 질문: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 / 고귀한 인간을 자신의 적을 필요로 한다
다섯 번째 질문: "신을 믿지 않으면 불행해지는 걸까?" / 당신을 위한 신은 어디에도 없다
여섯 번째 질문: "신념은 꼭 필요한 걸까?" / 신념은 삶을 짓누르는 짐이다
일곱 번째 질문: "왜 인생이 자꾸만 허무하게 느껴질까?" / 예술은 삶의 위대한 자극제다
여덟 번째 질문: "죽는다는 것은 두렵기만 한 일일까?" /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다
아홉 번째 질문: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 너만의 꽃을 피워라
열 번째 질문: "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 자신의 성격에 스타일을 부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