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재질과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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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장에서 우리는 사람마다 논리를 세우는 방식이 다르고, 그래서 같은 진리를 놓고도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다가 부딪힌다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유소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람의 재질에는 '어떤 종류인가'라는 물음 말고도 '얼마나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전혀 다른 물음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한 부서에서는 누구보다 일을 잘하던 사람이 그 부서를 이끄는 자리에 올라가자 갑자기 버벅거리는 모습을 우리는 흔히 본다. 반대로 큰 조직을 능수능란하게 굴리던 사람이 작은 팀 하나를 맡기면 오히려 헤매기도 한다. 재능의 '결'은 그대로인데 왜 '자리'가 바뀌면 사람이 달라 보이는가. 유소는 이 물음에 하나의 통념부터 뒤엎는 것으로 답을 시작한다.
큰 솥으로는 닭을 삶을 수 없다는 통념
세간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큰일에는 능하지만 작은 일에는 서투른 사람이 있으니, 마치 황소를 통째로 삶을 수 있는 큰 솥으로는 닭 한 마리를 제대로 삶아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유소는 이 비유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人材有能大而不能小,猶函牛之鼎不可以烹雞。
그의 논리는 이렇다. '능력'이라는 말은 애초에 실제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를 보고 붙이는 이름이다. 이미 어떤 일을 해낼 능력이 확인된 사람에게, 그 사람이 다른 어떤 일은 못 한다고 미리 단정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큰일은 하는데 작은 일은 못 한다'고 말하는 그 현상은, 사실 능력의 한계가 아니라 성품의 결이 다른 데서 비롯된 착시일 뿐이다.
유소는 사람의 성품을 너그럽고 넉넉한 쪽(寬弘)과 급하고 서두르는 쪽(急切)으로 나눈다. 너그럽고 그릇이 넓은 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전체를 통괄하는 데 능하므로 자연히 군(郡)이나 제후국처럼 큰 단위를 다스리는 데 적합하다. 반면 성미가 급하고 꼼꼼한 사람은 위임보다 직접 처리를 선호하니, 사방 백 리 남짓한 현(縣) 하나를 맡아 스스로 손발을 놀리는 자리가 어울린다.
寬弘之人,宜爲郡國,使下得施其功而總成其事;急小之人,宜理百里,使事辦於己。
여기서 유소가 던지는 진짜 통찰은 이것이다. 군과 현은 다스리는 범위의 크기가 다를 뿐이지, 큰 군을 다스릴 눈 밝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작은 군쯤은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다. 즉 '유형이 다른 것'과 '그릇이 큰 것'은 다른 문제이며, 큰 그릇은 작은 그릇의 일을 포함할 수 있다. 문제는 능력의 유무가 아니라 마땅함(宜)의 문제라는 것이다. 유소는 심지어 공자가 젊은 시절 계씨 집안의 말단 벼슬을 마다하지 않고 지냈던 일을 들어,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라 해서 작은 소임을 못 해낼 이유가 없다고 못박는다. 그리고 다시 솥과 짐승의 비유로 돌아온다 — 큰 솥은 소도 삶고 닭도 삶을 수 있지만, 작은 냄비는 닭은 삶아도 송아지는 삶지 못한다. 그러니 솥에도 크고 작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성립해도, 큰 솥이 닭을 못 삶는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재능은 재질에서 나오지만, 재질마다 그릇이 다르다
이어서 유소는 사람이 발휘하는 능력을 여덟 가지 결로 나누어 보여준다. 스스로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능력, 법을 세워 사람을 다스리는 능력, 일의 흐름을 풀어 설명하는 능력, 다움과 가르침으로 남의 스승이 되는 능력, 일을 행하며 남을 독려하고 견책하는 능력, 잘잘못을 살펴 짚어내는 능력, 상황에 맞는 기발한 해법을 내는 능력, 위엄과 용맹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능력이 그것이다.
夫能出於材,材不同量;材能旣殊,任政亦異。
능력은 재질에서 흘러나오지만, 그 재질이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는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재질과 능력이 갈리면 맡겨야 할 정사(政事)도 저절로 갈린다. 유소는 이 여덟 가지 능력 각각을 3장에서 다룬 재질의 갈래, 조정에서 맡을 자리, 그리고 나라를 다스릴 때 펼치는 정치의 성격까지 하나로 꿰어 보여준다.
재능 |
바탕이 되는 재질 |
조정에서의 자리 |
나라를 다스릴 때의 정치 |
자임지능(自任之能) |
청절지재(淸節之材) |
총재(冢宰) |
교직지정(矯直之政) — 굽은 것을 바로잡음 |
입법지능(立法之能) |
법가지재(法家之材) |
사구(司寇) |
공정지정(公正之政) — 사사로움 없는 법 집행 |
계책지능(計策之能) |
술가지재(術家之材) |
삼고(三孤) |
변화지정(變化之政) — 상황 변화에 대처 |
인사지능(人事之能) |
지의지재(智意之材) |
총재 보좌 |
해합지정(諧合之政) — 두루 화합시킴 |
행사지능(行事之能) |
견양지재(譴讓之材) |
사구 보좌 |
독책지정(督責之政) — 감독하고 견책함 |
권기지능(權奇之能) |
기량지재(伎倆之材) |
사공(司空) |
예사지정(藝事之政) — 다양한 기예를 씀 |
사찰지능(伺察之能) |
장부지재(臧否之材) |
사씨(師氏) 보좌 |
각삭지정(刻削之政) — 엄격히 깎아냄 |
위맹지능(威猛之能) |
호걸지재(豪傑之材) |
장수(將帥) |
엄려지정(嚴厲之政) — 엄격히 독려함 |
이 표를 보면 3장에서 사람을 열두 갈래로 나누었던 유업론(流業論)이 왜 필요했는지 거꾸로 드러난다. 유형을 알아야 그 유형이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의 크기와 정치의 성격까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형론과 그릇론은 한 몸이다.
한 가지 맛과 다섯 가지 맛
그런데 이 여덟 가지 능력은 모두 '치우친 재질'(偏材)의 산물이라는 데 함정이 있다. 유소는 이를 맛에 빗댄다. 엿은 달다는 것으로 자기를 증명하고, 술은 쓰다는 것으로 자기를 증명한다. 치우친 재질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한 가지 좋은 맛을 갖고 있을 뿐이다. 활을 다루는 장인은 활을 만드는 데는 힘이 남아돌지만, 그에게 옹기 굽는 일까지 겸하게 하면 그릇 하나 제대로 못 빚는다.
한 관직의 임무는 자신의 한 가지 맛으로 다섯 가지 맛 가운데 하나를 감당하는 일이다. 소금을 맡은 사람이 짠맛을, 식초를 맡은 사람이 신맛을 책임지면 다섯 가지 맛이 저마다 갖추어진다. 그러나 나라 전체를 다스리는 정치는 다르다. 그것은 물처럼 '아무 맛도 없는 것'(無味)으로 다섯 가지 맛을 두루 조화시키는 일이다. 임금이 특정한 맛에 치우치지 않고 담백함을 지녀야, 비로소 온갖 재질을 가진 신하들이 저마다 자기 쓰임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나라마다 풍속이 다르고 백성 가운데도 다스리기 쉬운 이와 어려운 이가 있으니, 같은 정치라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얻음과 잃음이 갈린다. 유소는 여덟 가지 정치 스타일을 하나씩 짚으며, 각각이 잘 들어맞는 상황과 잘못 쓰였을 때 벌어지는 부작용을 나란히 제시한다.
정치의 성격 |
적합한 상황 |
잘못 쓰였을 때 |
왕화지정(王化之政) |
큰 나라를 통틀어 다스릴 때 |
작은 나라에 쓰면 실상과 동떨어져(迂闊) 그물이 성겨 큰 간사함도 빠져나간다 |
변호지정(辨護之政) |
번잡한 일들을 정리할 때 |
간결해야 할 일에 쓰면 오히려 백성을 더 다그쳐 불편하게 만든다 |
책술지정(策術之政) |
어려운 상황이나 환난을 풀 때 |
평상시에 쓰면 백성만 번거롭고 불안하게 한다 |
교항지정(矯抗之政) |
사치와 지나침을 바로잡을 때 |
낡은 폐단까지 이 방식으로 다스리면 백성이 손발 둘 곳을 잃는다 |
해화지정(諧和之政) |
새로 세워진 나라를 다독일 때 |
오래된 나라를 이 방식으로 다스리면 예의 실상을 잃고 공허해진다 |
공각지정(公刻之政) |
간사함을 날카롭게 규찰할 때 |
덜 중요한 영역까지 밀어붙이면 백성이 법을 두려워해 흩어지거나 등을 돌린다 |
위맹지정(威猛之政) |
어지러움과 반란을 토벌할 때 |
선량한 백성에게까지 쓰면 폭정이 된다 |
기량지정(伎倆之政) |
백성을 부유하게 할 때 |
가난한 이들에게 쓰면 농사를 버리게 해 오히려 곤궁해진다 |
이 표야말로 이 장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다. 그릇의 크기는 단지 '얼마나 넓은 지역을 관장하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이 나라를 새로 세운 때인지 오래된 폐단을 손봐야 할 때인지, 백성이 순박한지 다스리기 힘든지 — 이런 시의(時宜)까지 포함해서 '그릇'이라고 불러야 한다. 큰 그릇을 가진 사람도 맞지 않는 상황에 놓이면 실패하고, 작은 그릇을 가진 사람도 꼭 맞는 자리에서는 누구보다 빛난다.
가상의 사례: 에이스 실무자가 팀장이 되었을 때
다음은 이 원리를 오늘의 조직에 옮겨 그려본 가상의 이야기다.
한 소프트웨어 회사에 누구보다 코드를 빨리, 정확하게 짜는 개발자가 있었다고 하자. 막히는 버그는 반드시 그의 손을 거쳐야 풀렸고, 급한 배포 전날엔 항상 그가 밤을 새워 문제를 틀어막았다. 회사는 당연하다는 듯 그를 팀장으로 승진시켰다.
그런데 팀장이 된 뒤로 오히려 팀 전체의 속도가 느려졌다. 그는 여전히 누구보다 코드를 잘 짰지만, 문제는 그가 '자기 손으로 직접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는 데 있었다. 후배가 짠 코드에 사사건건 개입해 자기 방식으로 고쳤고, 회의에서 결정할 일도 혼자 붙들고 밤새 답을 찾은 뒤 아침에 통보했다. 유소의 말을 빌리면 그는 전형적인 급소지인(急小之人) — 일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야 마음이 놓이는 그릇이었다. 그런 그릇에게는 백 리 현(縣) 하나, 즉 실무 하나를 정면으로 맡기는 자리가 어울리지, 여러 사람의 역량을 조율해 총괄하는 자리는 애초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반대의 이야기도 가능하다. 여러 지점을 능숙하게 총괄하던 관홍지인(寬弘之人) 스타일의 임원이 있다고 하자. 그는 큰 그림을 그리고 사람을 믿고 맡기는 데는 탁월했지만, 어느 날 부실 하나를 직접 살려내라는 임무를 맡고는 오히려 디테일을 놓쳐 일을 그르쳤다. 그물이 성글어 큰 간사함도 빠져나간다던 유소의 표현 그대로다. 두 사람 다 무능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릇의 결이 자리와 어긋났을 뿐이다.
임금의 능력은 신하의 능력과 다르다
이 장의 마지막 통찰은 조직의 꼭대기, 즉 임금과 신하의 능력이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라는 데 있다. 신하는 스스로 일을 떠맡는 것을 능력으로 삼지만 임금은 사람을 쓰는 것(用人)을 능력으로 삼는다. 신하는 말을 잘하는 것을 능력으로 삼지만 임금은 잘 들어주는 것(能聽)을 능력으로 삼는다. 신하는 일을 잘 해내는 것을 능력으로 삼지만 임금은 공과에 맞게 상벌을 내리는 것을 능력으로 삼는다.
말과 행동을 모두 갖춘 사람, 즉 말도 잘하고 일도 잘 해내는 사람을 유소는 국체지인(國體之人)이라 부르며 여러 재질 가운데서도 가장 빼어난 인재(雋才)로 꼽는다. 그러나 임금의 자리는 국체지인의 연장선이 아니라 아예 다른 층위에 있다. 임금이 평담무위(平淡無爲)함으로써 비로소 온갖 재질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전문성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임금이 욕심을 내어 신하가 할 일을 직접 대신하려 든다면, 여러 유능한 이들은 자기 재주를 잃고 조직 전체의 공적은 무너지고 만다.
결국 이 장이 하는 말은 하나로 모인다. 재능에는 유형만이 아니라 그릇의 크기가 있고, 그 그릇은 다스리는 범위의 크고 작음뿐 아니라 시대와 상황의 결에도 맞아야 한다. 덕(德)과 재능(才)이 아무리 뛰어나도 자리와 어긋나면 부작용을 낳는다. 사람을 볼 때 '얼마나 뛰어난가'만큼이나 '어디에 놓일 그릇인가'를 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유소는 다음 장에서, 이렇게 서로 다른 재능들이 뒤섞일 때 무엇이 서로에게 이롭고 무엇이 해가 되는지를 파고든다.
원 편명: 재능 제5(材能第五) — 참고: 이한우, 『이한우의 인물지』(21세기북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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