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재질과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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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에서 유소는 사람의 재질을 열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그 각각이 조정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를 그려 보였다. 청절가는 풍속을 바로잡는 자리에, 법가는 법을 세우는 자리에, 술가는 계책을 짜는 자리에 앉힌다는 식이다. 그런데 자리를 정했다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조정 안에 앉은 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회의 탁자에 둘러앉아 하나의 안건을 놓고 입을 열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벌어진다. 법가는 법가대로, 술가는 술가대로 옳다고 믿는 근거가 다르고, 그 다른 근거는 좀처럼 서로에게 가닿지 않는다. 유소는 이 장에서 사람 보는 법의 시선을 관찰에서 논쟁으로 옮긴다. 사람은 무엇을 근거로 옳다 그르다를 가리는가, 왜 옳은 말을 하면서도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논쟁이 격해질 때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실수를 저지르는가 — 이 장은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단히 꼼꼼한 답변이다.
이치는 하나가 아니다
유소는 먼저 원칙 하나를 세운다. 무슨 일을 벌이든, 무슨 주장을 세우든, 그 전에 먼저 이치(理)를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방향을 잡아야 헤매지 않고, 일이 방향을 잡아야 실패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논의하기 시작하면 순조롭게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유소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짚는다. 이치 자체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마다 타고난 재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갈래가 많으니 서로 통하기 어렵고, 재질이 다르니 저마다 자기 실감(實感)을 앞세우게 된다. 통하기 어려운 이치에 저마다의 실감이 뒤섞이면, 논의는 진실을 가리는 자리가 아니라 진실을 잃어버리는 자리가 되어버린다.
夫建事立義,莫不須理而定。 무릇 일을 벌이고 뜻을 세우는 데는 이치에 의지해 정하지 않는 것이 없다. 蓋理多品而人材異也。 대개 이치에는 여러 갈래가 있고 사람의 재질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네 갈래의 이치 — 사리(四理)
여기서 유소는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구도를 꺼내 든다. 진리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것을 그는 넷으로 쪼갠다. 하늘과 땅이 움직이는 자연의 이치가 있고(도리), 법과 제도로 일을 바로잡는 정치의 이치가 있고(사리), 예와 가르침으로 마땅함을 가리는 가치판단의 이치가 있고(의리), 사람 마음이 움직이는 실상을 읽어내는 이치가 있다(정리). 넷 다 '이치'라는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잣대다. 자연의 순환을 논하는 잣대로 사람의 서운함을 잴 수 없고, 법조문을 따지는 잣대로 어버이에 대한 도리를 잴 수 없다.
갈래 |
원문 |
무엇을 다루는가 |
도리(道理) |
天地氣化,盈虛損益 |
하늘과 땅의 기운이 돌고 도는 것, 차면 기울고 줄면 차오르는 자연과 우주의 흐름 |
사리(事理) |
法制正事 |
법과 제도를 세워 세상일을 바로잡는 정치와 행정의 이치 |
의리(義理) |
禮敎宜適 |
예와 가르침으로 무엇이 마땅한지 가리는 가치판단의 이치 |
정리(情理) |
人情樞機 |
사람 마음속 실상, 좋아하고 싫어하며 바라고 꺼리는 감정의 움직임 |
道之理也:天地氣化,盈虛損益。 사之理也:法制正事。 義之理也:禮敎宜適。 情之理也:人情樞機。
넷을 나란히 놓고 보면 순서에도 뜻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리는 사람의 뜻이 미치지 않는 자연의 이치이고, 사리는 그 자연 위에서 사람이 만든 제도의 이치이며, 의리는 그 제도 위에서 무엇이 옳은가를 가리는 가치의 이치이고, 정리는 그 가치판단이 실제로 부딪히는 사람 마음의 이치다. 갈수록 사람에게 가까워지고, 갈수록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다루게 된다.
이치마다 다른 사람 — 사가(四家)
이치가 넷으로 나뉜다는 것은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사람은 이 네 갈래 가운데 유독 한 갈래에 밝은 채로 태어나거나 자란다. 유소는 이 네 유형의 밝은 사람을 각각 도리지가(道理之家)·사리지가(事理之家)·의리지가(義理之家)·정리지가(情理之家)라 부른다.
유형 |
바탕이 되는 성향 |
강점 |
도리지가(道理之家) |
차분하고 담박하며 생각이 그윽해 조급하지 않다 |
자연스러운 이치와 통하는 데 능하다 |
사리지가(事理之家) |
명민하고 상황 판단이 빨라 권모술수에도 밝다 |
번잡하고 급한 일을 신속하게 처리한다 |
의리지가(義理之家) |
온화하고 균형 잡혀 있다 |
예와 가르침을 논하고 득실을 가려낸다 |
정리지가(情理之家) |
눈치가 빠르고 감정의 결을 잘 짚어낸다 |
사람 속내를 미루어 헤아리고 그 변화를 따라간다 |
이 넷은 저마다 자기 갈래의 이치를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 그래서 같은 문제를 두고도 도리지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말하고, 사리지가는 제도와 절차를 말하고, 의리지가는 옳고 그름을 말하고, 정리지가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느낄지를 말한다. 넷 다 틀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 넷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벌어진다.
가상의 사례: 회의실에서
다음은 이해를 돕기 위해 지어낸 가상의 장면이다.
한 회사가 오래된 제품 라인을 접을지 말지를 두고 회의를 연다. 변호사 출신 임원은 계약과 책임 소재를 따진다. "지금 발을 빼면 협력사와의 계약 위반 소지가 있고, 나중에 소송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절차상 문제가 없는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개발팀장은 시스템과 일정을 이야기한다. "지금 손을 떼려면 3개월치 로드맵을 다시 짜야 하고, 그러면 다른 프로젝트 두 개가 밀립니다. 순서를 어떻게 짜느냐가 관건입니다." 인사팀장은 이 결정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걱정한다. "이 라인에서 5년을 일한 팀원들에게 갑자기 통보하면 사기가 크게 떨어질 겁니다.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실제 결과를 좌우합니다." 그리고 창업자는 애초에 이 사업을 왜 시작했는지, 지금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한다. "이 제품을 만들 때 우리가 세웠던 원칙이 있었습니다. 시장이 바뀌었다면 원칙에 비추어 다시 물어야 합니다."
넷 다 진지하고, 넷 다 회사를 위한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회의는 자꾸 헛돈다. 변호사는 인사팀장의 말을 "그건 감정 문제고 지금은 법률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며 넘기고, 개발팀장은 창업자의 말을 "원칙은 좋은데 지금 당장 일정부터 잡아야 한다"며 자른다. 각자 자기 갈래의 이치로 상대를 재려 하니, 상대의 말이 다 딴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유소라면 이 장면을 두고, 넷 모두가 자기 유파의 이치에서는 옳지만 상대의 유파를 이해하지 못해 회의를 공전시키고 있다고 진단했을 것이다.
아홉 가지 치우침 — 구편(九偏)
네 유파의 밝음이 저마다 다르다 보니, 그 밝음을 어그러뜨리는 치우친 성정도 여럿 나타난다. 유소는 이를 아홉 가지로 정리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아홉 유형 하나하나가 어떤 논의에서는 강점이 되고 다른 논의에서는 약점이 된다는 점이다. 즉 이 아홉은 결함의 목록이 아니라, 재질의 양면을 보여주는 목록이다.
유형 |
강한 자리 |
약한 자리 |
강략지인(剛略之人) — 굳세지만 대충대충 |
큰 골격을 논할 때 시야가 크고 원대하다 |
섬세한 이치를 다룰 때는 건성으로 지나친다 |
항려지인(抗厲之人) — 엄정해 굽힐 줄 모른다 |
원칙을 곧이곧대로 지킬 때 공정하다 |
변통이 필요할 때는 막히고 경직된다 |
견경지인(堅勁之人) — 고집스럽고 강경함 |
드러난 사실을 파고들 때 철저하다 |
큰 흐름을 건널 때는 단순한 견해를 고집한다 |
변급지인(辯給之人) — 말재주가 좋음 |
사람 일을 헤아릴 때 정밀하고 예리하다 |
큰 뜻 앞에서는 말만 거창하고 허술하다 |
부침지인(浮沈之人) — 붕 떠서 이랬다저랬다함 |
일의 순서를 세울 때 활달하고 박식하다 |
핵심을 세워야 할 때는 갈팡질팡한다 |
천해지인(淺解之人) — 이해가 얕음 |
남의 논리를 들을 땐 쉽게 감탄하고 잘 받아들인다 |
스스로 정밀히 따질 때는 근거를 대지 못한다 |
관서지인(寬恕之人) — 너그럽고 느긋함 |
어짊과 마땅함을 논할 때 넓고 우아하다 |
당장 처리해야 할 일 앞에서는 굼뜨다 |
온유지인(溫柔之人) — 따스하고 부드러움 |
도리를 음미할 때 순조롭고 화창하다 |
결단이 필요한 순간엔 우물쭈물한다 |
호기지인(好奇之人) — 새롭고 기이한 것을 좋아함 |
권모와 임기응변에서 탁월하고 거침없다 |
정도(正道)를 살필 때는 상궤를 벗어나 황당해진다 |
이 표를 보면 알 수 있듯, 유소는 어느 유형도 통째로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강략지인은 회의 초반 큰 그림을 그릴 때는 최적의 사람이지만, 계약서 세부 조항을 검토하는 자리에서는 위험한 사람이 된다. 반대로 견경지인은 세부 조항 검토에는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전략 방향을 새로 잡아야 하는 자리에서는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사람을 쓴다는 것은 결국 이 아홉 가지 치우침이 어느 국면에서 강점으로 바뀌는지를 아는 일이다.
그럴듯하지만 아닌 것 — 칠사(七似)
성정이 정밀하고 두루 통달하지 못한 사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짜 능력을 흉내 낸 가짜 논변을 펼치게 된다. 유소는 이를 일곱 가지 '사이비'로 정리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뜻에서 '사시이비(似是而非)'라 불렀다.
유행(流行)의 사이비 — 생각나는 대로 떠들 뿐인데, 마치 막힘없이 말 잘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박의(博意)의 사이비 — 아는 이치는 적으면서 늘어놓는 말끝만 많은데, 마치 폭넓게 사고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찬해(讚解)의 사이비 — 에둘러 말해 상대 뜻에 맞춰줄 뿐인데, 마치 진심으로 동의하고 이해한 사람처럼 보인다.
청단(聽斷)의 사이비 — 뒷전으로 물러나 다수가 편한 쪽을 따라갈 뿐인데, 마치 신중히 듣고 판단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유여(有餘)의 사이비 — 실은 아는 바가 없어 어려운 질문을 피할 뿐인데, 마치 여유가 넘쳐 대응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열복(悅服)의 사이비 — 남의 말을 듣자마자 기뻐할 뿐 속으로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는데, 마치 통달한 이를 사모해 진심으로 승복한 사람처럼 보인다.
불굴(不屈)의 사이비 — 논리가 궁색해지자 신묘해서 다 설명 못할 뿐이라 둘러대고 억지로 근거를 끌어다 붙이는데, 마치 끝내 논리에서 밀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유소는 이 일곱 가지야말로 많은 사람이 속아 넘어가는 지점이라고 못박는다. 맑은 거울처럼 꿰뚫어 보는 눈이 없다면 이 일곱 가지 사이비를 진짜 실력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凡此七似,衆人之所惑也。 무릇 이 일곱 가지 사이비는 많은 사람이 미혹되는 지점이다.
논변이 저지르는 세 가지 잘못 — 삼실(三失)
논변에는 이치가 앞서는 경우와 말재간이 앞서는 경우가 있다. 이치가 앞서면 옳고 그름을 가려 논의를 넓혀가지만, 말재간이 앞서면 바른 이치를 깨뜨리면서까지 특이한 논리를 좇다가 정작 이치를 잃어버린다. 유소는 이런 말재간 앞선 논변이 빠지기 쉬운 실패를 셋으로 짚는다.
- 첫째, 논지가 겹치거나 어긋나는 것을 뒤섞어 말하면, 각진 물건을 둥근 구멍에 넣으려는 것과 같아 상대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 둘째, 비유를 쓸 줄 모르면 백 마디를 해도 한 가지 뜻조차 밝히지 못한다.
- 셋째, 그렇게 뜻이 분명하지 않으면 결국 상대는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세 실패는 사슬처럼 이어진다. 뒤섞어 말하다 보니 비유가 서지 않고, 비유가 서지 않으니 뜻이 분명해지지 않고, 뜻이 분명하지 않으니 상대가 귀를 닫는다. 반대로 논변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가 잘 아는 자리를 딛고 말하고, 아무리 말해도 상대가 흔들리지 않으면 그 화제는 접어두고, 옆에서 듣는 사람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를 탓하지 않는다.
힐난이 부르는 여섯 가지 화 — 육구(六構)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자리, 곧 힐난(詰難)의 자리에서는 사람이 더욱 쉽게 무너진다. 유소는 논쟁이 격해질 때 오히려 새로운 분란을 낳는 여섯 가지 함정을 짚는다. '구(構)'는 본래 얽어 짓는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하지 않아도 될 화를 스스로 얽어서 만들어낸다는 뜻으로 쓰였다.
함정 |
무엇이 잘못되었나 |
사구(辭構) |
근본을 짚지 않고 지엽만 따지다 보니 말을 억지로 짜맞추게 된다 |
기구(氣構) |
상대의 예리한 기세를 꺾으려다 오히려 그 기세만 부추긴다 |
원구(怨構) |
상대를 굴복시키는 데만 몰두하다 자존심을 건드려 원망을 산다 |
분구(忿構) |
상대가 빨리 못 알아듣는다고 무시하듯 대해 분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
망구(妄構) |
상대를 함부로 몰아붙이다 구실 없는 억지 공방만 오가게 된다 |
노구(怒構) |
상대에게 대뜸 "이해를 못 한다"고 말해 노여움을 사게 된다 |
이 여섯을 관통하는 하나의 통찰이 있다. 사람은 무언가에 골똘히 몰두해 있을 때 정말로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쟁하는 두 사람은 흔히 상대의 말을 막고 자기 말만 들어달라고 다투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말이 안 통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본디 자기가 이해받지 못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하게 되어 있어서, 이 여섯 함정은 한 번 빠지면 상대를 더 완강하게 만들 뿐이다. 다만 유소는 이 여섯 함정조차 완전히 헛되지는 않다고 덧붙인다. 시끄러운 논란을 거치더라도 결국 이치가 정해지고 일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아무 논박도 없이 각자 할 말만 하고 끝내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두루 통하는 사람 — 팔능(八能)과 통재(通材)
여기까지 유소는 치우침과 실패의 목록을 촘촘히 늘어놓았다. 그런데 이 장의 마지막은 이상적인 인물상으로 향한다. 논쟁에서 상대를 정말로 설득하려면 여덟 가지 능력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 |
풀이 |
그런 재질을 가진 사람의 이름 |
총능청서(聰能聽序) |
말 속에 담긴 뜻의 순서를 놓치지 않고 알아듣는다 |
명물지재(名物之材) |
사능조단(思能造端) |
말의 실마리를 붙잡아 논리를 세울 줄 안다 |
구가지재(構架之材) |
명능견기(明能見機) |
말 속에 스치는 기미를 알아챈다 |
달식지재(達識之材) |
사능변의(辭能辯意) |
자기 뜻을 명료하게 변론할 수 있다 |
섬급지재(贍給之材) |
첩능섭실(捷能攝失) |
자기 실수를 재빨리 추스를 줄 안다 |
권첩지재(權捷之材) |
수능대공(守能待攻) |
지킬 자리에서는 상대의 공격을 잘 받아낸다 |
지론지재(持論之材) |
공능탈수(攻能奪守) |
공격할 자리에서는 상대의 논거를 무너뜨린다 |
추철지재(推徹之材) |
탈능이여(奪能易予) |
상대를 꺾은 뒤에는 그 논지를 존중하며 마무리할 줄 안다 |
무설지재(貿說之材) |
여덟 가운데 하나만 가진 사람은 그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데 그친다. 하지만 여덟을 모두 갖춘 사람이 있으니, 유소는 이를 통재(通材) — 두루 통하는 재주 — 라 부른다. 통재지인은 흥미롭게도 앞서 나온 아홉 가지 치우침이나 일곱 가지 사이비와는 정반대의 태도를 지닌다.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과는 마음으로 통하고, 그렇지 않은 대중과 말할 때는 상대의 낯빛을 살펴 그 성향에 맞추어준다. 온갖 이치를 환히 꿰고 있으면서도 남 위에 서려 하지 않고, 말재간이 넉넉하면서도 남보다 앞서려 하지 않는다. 할 말을 다 하고 나면 이치가 통한 순간 거기서 멈추고, 남의 잘못을 보아도 몰아세우지 않으며, 남이 품은 생각을 끄집어내 주고 남이 잘하는 것을 부추겨준다. 이기기 어려운 상대를 마침내 이겼다 해도 우쭐대지 않는다. 무조건 이래야 한다는 것도, 저래야 한다는 것도 없이 그저 이치에 이르기를 바랄 뿐이다.
유소가 이 장 마지막에 그려낸 통재지인의 초상은 결국 이 장 전체의 결론이기도 하다. 이치가 넷으로 갈리고, 사람이 아홉 가지로 치우치고, 사이비가 일곱 가지나 되고, 힐난이 여섯 가지 화를 부르는 세상에서, 그 모든 갈래를 넘어서는 길은 재주를 하나 더 얹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이기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데 있다. 회의실의 변호사와 개발자와 인사담당자가 서로 다른 이치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이 장이 다음 장으로 넘겨주는 물음이다 — 그렇다면 사람마다 다른 이 재질은 실제로 얼마나 큰 그릇을 감당할 수 있는가.
원 편명: 재리 제4(材理第四) — 참고: 이한우, 『이한우의 인물지』(21세기북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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