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유형에 따른 직분
앞 두 장에서 유소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눈을 벼렸다. 몸속 다섯 기운이 겉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아홉 가지 자질이 서로 어떻게 얽혀 그 사람의 결을 만드는지 살폈다. 그런데 그렇게 공들여 사람을 읽어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관상가처럼 "이 사람은 됨됨이가 좋다"는 감탄으로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정은 실제로 그 사람에게 자리를 주어야 하고, 그 자리가 맞지 않으면 나라가 흔들린다. 그래서 유소는 3장에 이르러 질문을 하나 바꾼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서 "이 사람은 어디에 써야 하는가"로.
그의 답은 사람의 재질을 열두 갈래의 흐름, 곧 유업(流業)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열두 흐름에 위아래가 없다는 것이다. 재상 자리에 앉을 그릇과 창고를 관리할 그릇은 다른 종류의 그릇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의 축소판이 아니다. 유소는 이 장 내내 그 사실을 역사 속 인물들을 하나하나 불러 세워 증명해 보인다.
여덟 흐름의 뿌리: 다움과 법과 술책
유소는 먼저 세 가지 원재료를 놓는다. 다움(德), 법(法), 술책(術)이다. 이 셋 중 하나만 순수하게 타고난 사람이 있고, 셋을 모두 갖춘 사람이 있으며, 셋을 조금씩만 갖춘 사람이 있다. 이 다섯 가지 조합에서 여덟 개의 흐름이 갈라져 나온다.
청절가 — 몸가짐 자체가 기준이 되다
첫 번째 흐름은 청절가(淸節家)다. 원문은 이렇게 말한다.
若夫德行高妙,容止可法,是謂淸節之家,延陵、晏嬰是也。
다움과 행실이 높고 오묘해 그 몸가짐 자체가 남들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유소가 든 예는 오나라 공자 계찰, 곧 연릉계자다. 계찰은 아버지가, 이어 형들이 차례로 왕위를 물려주려 했지만 매번 마다했다. 왕이 될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자리를 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훗날 서(徐)나라를 지나다가 그 나라 임금이 자신의 칼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를 챘지만 사행 중이라 주지 못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임금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무덤 앞 나무에 그 칼을 걸어놓고 떠났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마음속으로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제나라의 안영도 마찬가지다. 세 명의 임금을 섬기면서 늘 검소하게 살았고, 공자는 그를 두고 "오래 사귀어도 상대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라 평했다. 청절가는 이런 사람이다 — 규정집이 없어도 스스로 선을 넘지 않는 사람.
법가 — 제도로 나라의 뼈대를 세우다
建法立制,彊國富人,是謂法家,管仲、商鞅是也。
법과 제도를 세워 나라를 강하게 하고 백성을 살찌우는 사람, 이것이 법가다. 관중은 젊어 시절 포숙아와 나눈 우정으로 더 유명하지만, 정작 그의 진가는 제나라 재상이 된 뒤에 드러난다. 그는 도성을 사농공상별로 구역을 나누고, 소금과 철을 국가가 관리하게 하고, 지방 행정 단위를 재편해 부국강병의 틀을 짰다. 그 결과 제환공은 아홉 차례나 제후들을 규합해 회맹을 이끌 수 있었다. 상앙은 더 극단적인 사례다. 진나라로 건너가 효공의 신임을 얻은 그는 신분과 혈연을 가리지 않는 법치를 밀어붙여 훗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기틀을 놓았다. 그러나 그 법이 너무 날카로워 수많은 원한을 샀고, 정작 그 법을 세운 자신이 효공이 죽자마자 거열형에 처해졌다. 법가는 이처럼 개인의 온정보다 제도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 나라는 강해지지만, 그 칼끝이 결국 자신을 향할 수도 있다.
술가 — 판을 읽고 계책으로 움직이다
思通道化,策謀奇妙,是謂術家,范蠡、張良是也。
생각이 두루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읽어내고, 그로부터 기이하고 오묘한 계책을 뽑아내는 사람이 술가다. 범려는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에 복수하는 계책을 짜고 끝내 성공시켰지만, 그 직후 미련 없이 벼슬을 버렸다. "구천은 함께 어려움은 나눌 수 있어도 함께 부귀를 누릴 상은 아니다"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이후 이름을 바꾸고 장사로 거부가 되었다가 다시 그 재산을 흩어 백성에게 나눠주는 삶을 반복했다고 전한다. 장량은 한나라 유방의 책사로, 홍문의 연회에서 위기에 처한 유방을 구해냈고 한신을 장수로 쓰라고 권한 것도 그였다. 그러나 천하를 얻은 뒤에는 스스로 속세를 벗어나 은거했다. 술가의 계책은 언제나 상황이 바뀌는 순간을 노린다는 점에서 법가와 다르다. 법가가 판을 새로 짜는 사람이라면, 술가는 이미 짜인 판을 읽고 그 틈을 파고드는 사람이다.
국체 — 세 가지를 두루 갖춘 재상감
兼有三材,三材皆備,其德足以厲風俗,其法足以正天下,其術足以謀廟勝,是謂國體,伊尹、呂望是也。
다움과 법과 술책, 이 세 가지를 모두 온전히 갖춘 사람이 국체(國體)다. 그 다움은 세상의 풍속을 바로잡을 만하고, 그 법은 천하를 다스릴 만하며, 그 계책은 조정에서 나라의 큰 그림을 그릴 만하다. 유소가 예로 든 이윤은 원래 노비 신분으로 은나라에 흘러들어 왔지만 탕왕의 눈에 띄어 등용되었고, 하나라를 멸하고 은나라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워 재상이 되었다. 여망, 곧 강태공은 위수 강가에서 낚시로 세월을 보내다 문왕을 만났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문왕과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운 뒤 제나라에 봉해졌다. 이 둘은 청절가처럼 몸가짐이 반듯하고, 법가처럼 제도를 세울 줄 알고, 술가처럼 때를 읽고 계책을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유소가 굳이 이들을 따로 묶어 국체라 부른 이유는 분명하다 — 재상 자리는 어느 한 가지 재주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기능 — 세 가지를 조금씩 갖춰 실무에 강하다
兼有三材,三材皆微,其德足以率一國,其法足以正鄕邑,其術足以權事宜,是謂器能,子產、西門豹是也。
국체와 똑같이 다움・법・술 세 가지를 다 갖고 있지만, 그 그릇이 국체만큼 크지는 않은 사람을 유소는 기능(器能)이라 불렀다. 그 다움은 제후국 하나를 이끌 만하고, 그 법은 한 고을을 바로잡을 만하며, 그 계책은 눈앞의 일을 임기응변으로 처리할 만하다. 정나라의 자산이 그 예다. 그는 진나라와 초나라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 정나라를 외교로 지켜냈고, 중국 최초로 성문법을 만들어 귀족 중심의 인습 정치를 흔들었다. 위나라의 서문표는 업 땅의 수령으로 부임해 강물에 젊은 여자를 제물로 바치던 무당의 폐습을 없애고, 백성을 동원해 수로 열두 개를 뚫어 농사를 살렸다. 국체와 기능의 차이는 능력의 종류가 아니라 그릇의 크기다. 나라 하나를 설계할 사람과, 고을 하나를 알뜰하게 꾸릴 사람은 둘 다 필요하지만 같은 사람이 아니다.
세 뿌리에서 갈라진 곁가지들
지금까지의 다섯 흐름 — 청절가, 법가, 술가, 국체, 기능 — 은 모두 다움・법・술이라는 세 뿌리에서 나왔다. 그런데 사람이 늘 뿌리 그대로 순수하게 자라는 것은 아니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어도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결이 거칠어지면 전혀 다른 얼굴의 흐름이 된다. 유소는 이런 곁가지를 셋 더 짚는다.
장부 — 옳고 그름을 가리는 데는 능하나
淸節之流不能弘恕,好尙譏訶,分別是非,是謂臧否,子夏之徒是也。
청절가의 곁가지가 장부(臧否)다. 맑음을 기준으로 세상을 재다 보니 남을 너그럽게 품는 일에는 서툴고, 대신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따지고 비평하는 데 열을 올린다. 공자의 제자 자하가 그 예다. 자하는 예의 형식을 중시하는 학풍으로 이름났고, 스승이 죽은 뒤에는 위나라에서 제자를 가르쳤다. 그러나 공자는 일찍이 그에게 "너는 군자다운 유자가 되어야지, 소인 같은 유자가 되지는 말라"고 당부한 바 있다. 원칙은 분명하지만 그 원칙을 잣대 삼아 남을 재단하는 데 치우치기 쉽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기량 — 큰 그림은 없지만 손끝이 야무지다
法家之流不能創思圖遠,而能受一官之任,錯意施巧,是謂伎倆,張敞、趙廣漢是也。
법가의 곁가지는 기량(伎倆)이다. 법과 제도라는 것 자체가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도구다 보니, 이 곁가지는 원대한 구상을 세우는 데는 약하지만 맡은 관직 하나만큼은 야무지게 해낸다. 한나라의 경조윤 장창은 정치를 잘한 관리로 이름났는데, 동시에 아내를 위해 손수 눈썹을 그려준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 일로 탄핵 시비가 일자 황제가 까닭을 묻자, 그는 "규방 안의 일이라면 눈썹 그리는 것보다 더한 일도 있습니다"라고 답해 황제를 오히려 말문 막히게 했다. 조광한 역시 경조윤을 지내며 하루 만에 도둑 수백 명을 잡아들일 만큼 실무에 밝았다. 기량은 이런 사람이다 — 판을 새로 짜지는 못해도, 주어진 판 안에서는 누구보다 정교하게 움직인다.
지의 — 상황을 뒤집는 재주, 그러나 원칙은 아니다
術家之流不能創制垂則,而能遭變用權,權智有餘,公正不足,是謂智意,陳平、韓安國是也。
술가의 곁가지는 지의(智意)다. 새로운 법도를 세우지는 못하지만, 상황이 급변할 때 권도를 써서 국면을 뒤집는 데는 남다르다. 다만 그 재주가 공정함과는 거리가 있다. 진평이 대표적이다. 그는 원래 항우 밑에 있다가 유방에게로 옮겨간 인물로, 항우의 책사 범증을 내쫓기게 만든 이간계, 그리고 훗날 여씨 일족의 난을 평정하고 문제를 옹립한 계책 등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그 계책들은 늘 정공법이 아니라 뒤에서 판을 흔드는 방식이었다. 한안국 역시 지략이 뛰어나 오초칠국의 난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지만, 재물에 대한 욕심이 상당했다는 평이 따라다닌다. 원문의 표현대로 "권도에 능한 자는 반드시 바른 도리에서는 모자란다."
이상 여덟 흐름 — 청절가, 법가, 술가, 국체, 기능, 장부, 기량, 지의 — 은 크든 작든 다움・법・술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눈과 귀가 서로 다른 기관이지만 결국 사람이 세상을 알아차리는 데 함께 쓰이듯, 이 여덟 흐름도 생김새는 다르지만 모두 조정의 일을 나눠 맡을 수 있는 재목이라는 것이 유소의 결론이다.
뿌리를 달리하는 네 가지 흐름
그런데 유소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움・법・술이라는 틀 바깥에 서 있는 네 가지 흐름을 더 든다.
문장 — 글로 시대를 증언하다
能屬文著述,是謂文章,司馬遷、班固是也。
글을 지어 일을 기록하고 후대에 전하는 사람이 문장(文章)이다.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사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도중에 흉노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벗 이릉을 변호하다 궁형이라는 치욕을 당했다. 그럼에도 붓을 놓지 않고 끝내 『사기』를 완성했다. 반고는 아버지 반표의 뜻을 이어 『한서』 편찬에 매달렸는데, 한때 사사로이 역사를 고쳐 쓴다는 모함으로 옥에 갇히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정치의 중심에 있던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남긴 글은 이후 수천 년 동안 그 시대를 증언하는 유일한 창이 되었다.
유학 — 성인의 말을 이어 전하다
能傳聖人之業,而不能幹事施政,是謂儒學,毛公、貫公是也。
성인의 학문을 후대에 전할 수는 있지만, 정작 관직에 나가 정사를 처리하는 일에는 능하지 않은 사람이 유학(儒學)이다. 모형과 모장, 이 두 사람을 흔히 모공(毛公)이라 함께 부르는데 이들이 전한 『시경』 해석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모시』다. 관공 역시 『춘추좌씨전』을 익혀 아들에게 전수했다. 이들의 자리는 조정이 아니라 강학 자리였다. 나라를 이끄는 것과 나라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사실을 유소는 이 흐름을 통해 짚고 있다.
구변 — 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다
辯不入道,而應對資給,是謂口辯,樂毅、曹丘生是也。
논변이 성인의 도리에까지 이르지는 못해도, 응대하는 말솜씨만큼은 누구보다 빠른 사람이 구변(口辯)이다. 초나라 출신 조구생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당대에 "황금 백 냥을 얻는 것이 계포의 승낙 한 마디를 얻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돌 만큼 신망이 두텁던 계포에게, 조구생은 굳이 소개장을 얻어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저도 초나라 사람입니다. 제가 돌아다니며 족하의 이름을 천하에 퍼뜨린다면 그 때문에 더 귀히 여김을 받지 않겠습니까?" 계포는 처음엔 불쾌해했지만 이 말에 마음을 열었고, 이후 조구생이 그의 명성을 사방에 알리고 다녔다. 연나라 장수 악의도 구변의 예로 꼽히는데, 다섯 나라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각국을 설득해 연합을 이끌어낸 수완이 그 근거로 보인다.
효웅 — 담력과 무용으로 전장을 압도하다
膽力絕眾,才略過人,是謂驍雄,白起、韓信是也。
담력이 보통 사람을 훌쩍 뛰어넘고 재주와 계략 또한 남들을 압도하는 사람이 효웅(驍雄), 곧 웅걸(雄傑)이다. 진나라 장수 백기는 이궐 전투에서 한나라와 위나라 연합군을 격파하고, 장평 전투에서는 조나라의 항복한 군사 사십만 명을 하룻밤 사이에 생매장했다는 기록으로 천하를 떨게 했다. 한신은 처음엔 항우 밑에서 인정받지 못하다가 유방에게 몸을 의탁했고, 소하의 추천으로 대장군에 올라 위·대·연·제를 차례로 격파하며 초한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그러나 두 사람 다 그 무공이 절정에 이른 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백기는 재상 범저와의 불화 끝에 자결을 강요받았고, 한신은 모반의 혐의를 쓰고 여후에게 유인되어 살해당했다. 담력과 무용은 전장에서는 빛나지만, 그 빛이 너무 강하면 평시의 권력 구도 안에서는 오히려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두 사람의 삶이 보여준다.
군주는 열두 흐름 중 하나가 아니다
여덟 흐름에 이 네 흐름을 더하면 모두 열두 가지다. 그런데 유소는 곧바로 중요한 선을 하나 긋는다. 이 열두 흐름은 어디까지나 "남의 신하 노릇을 하는 자"가 갖는 재능이지, 군주가 갖춰야 할 다움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주의 다움이란 무엇인가. 유소는 이를 "귀 밝고 눈 밝으면서도 마음은 담백한 것(聰明平淡)"이라고 정의한다. 군주는 스스로 일을 떠맡는 사람이 아니라, 열두 흐름의 인재를 두루 알아보고 각자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주는 사람이다. 눈으로 직접 일을 보러 다니지 않고 귀로 직접 시시콜콜한 보고를 들으러 다니지 않아도, 신하 각자가 자기 관할을 제대로 떠맡게 되면 조정에는 저절로 인재가 몰려들고, 군주는 팔짱을 낀 채로도 나라가 다스려진다 — 이것이 유소가 말하는 무위이치(無爲而理)다.
그래서 유소는 열두 흐름 각각을 실제 관직에 대응시킨다.
흐름 |
어울리는 임무 |
비고 |
청절가 |
사씨(師氏) |
후계자와 자제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자리 |
법가 |
사구(司寇) |
형벌과 법률로 간사함과 난폭함을 막는 자리 |
술가 |
삼고(三孤) |
조정에서 계책을 내어 삼공을 보좌하는 자리 |
국체 |
삼공(三公) |
삼공의 자리에 앉아 나라의 큰 도리를 논하는 자리 |
기능 |
총재(冢宰) |
백관을 총괄하는 자리 |
장부 |
사씨 보좌 |
옳고 그름을 가려 사씨를 돕는 자리 |
지의 |
총재 보좌 |
상황에 맞게 일을 조절해 총재를 돕는 자리 |
기량 |
사공(司空) |
토목과 기술을 담당하는 자리 |
유학 |
백성을 편안케 하는 일 |
다움으로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자리 |
문장 |
국사(國史) |
후대에 남길 기록을 맡는 자리 |
구변 |
행인(行人) |
외교 사절을 응대하는 자리 |
효웅 |
장수(將帥) |
군사를 통솔하고 반란을 평정하는 자리 |
군주의 도리가 이렇게 자리를 잡으면, 신하들은 저마다 정해진 역할을 얻어 흔들리지 않고, 그로써 태평이 이뤄진다고 유소는 말한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분명히 짚는다. 군주가 담백함을 잃고 자기 취향에 맞는 재주 하나만을 편애해 쓰기 시작하면, 그 한 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이 권력을 독차지하게 되고, 나머지 열한 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저마다 있어야 할 자리를 잃는다. 나라 하나를 다스릴 그릇을 창고지기 자리에 앉히는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창고지기의 재주만 편애해 나라의 모든 자리를 그 재주로 채우려 드는 것도 똑같이 위험하다는 뜻이다.
이 원리는 조정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예컨대 어느 회사의 대표가 있다고 해보자 — 물론 이는 가상의 사례다. 이 대표가 실무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 자기와 닮은 사람만 중용한다면, 회사는 눈앞의 일은 잘 처리하지만 큰 그림을 그릴 사람도, 원칙을 지켜낼 사람도, 밖으로 나가 협상할 사람도 자리를 잃게 된다. 유소가 열두 흐름을 이렇게 촘촘히 나눈 이유는 결국 하나였을 것이다 — 사람을 쓰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자기 취향이 아니라 상대의 결을 보아야 한다는 것.
원 편명: 유업 제3(流業第三) — 참고: 이한우, 『이한우의 인물지』(21세기북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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