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다투는 마음을 내려놓아라

11장은 뼈아픈 진실 하나를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다. 아무리 정교하게 사람을 관찰하고 아무리 공정하게 재질을 가늠해도, 그 사람이 실제로 세상에서 알아봐지고 쓰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 안다는 것과 그 앎이 세상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 사이에는 늘 벌어진 틈이 있었다.

그런데 유소는 마지막 장에 이르러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설령 어떤 사람이 스스로도 자신의 재질을 정확히 알고, 세상도 마침내 그것을 알아봐 주었다고 하자. 바로 그 순간, 가장 위험한 함정이 열린다. 자신이 뛰어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앎을 남과의 다툼에서 무기로 쓰고 싶어진다. 옳음을 옳음으로 증명하려 들고, 뛰어남을 뛰어남으로 과시하려 든다. 사람을 알아보는 법에 관한 이 책이 마지막 문에서 마주치는 것은 놀랍게도 더 정교한 감식안이 아니라, 그 감식안을 가진 사람 자신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편명은 석쟁(釋爭) — 다투는 마음을 풀어놓다, 내려놓다는 뜻이다.

뽐내지 않는 것이 크다

유소는 첫 문장부터 태도를 분명히 한다. 좋은 사람은 자기 공로를 자랑하지 않는 것(不伐)을 가장 큰 미덕으로 여기고, 뛰어난 사람은 스스로 잘났다고 내세우는 것(自矜)을 손해로 여긴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이것이 거꾸로 보인다. 공을 세웠으면 마땅히 그 값을 인정받아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유소가 역사에서 끌어오는 대비는 냉정하다. 순(舜)임금은 자기 친아들이 아닌 우(禹)에게 제위를 넘겼고, 탕왕(湯王)은 조금도 주저 없이 자신을 낮추었다. 두 사람 다 하늘이 낸 성인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으면서도 공을 세울수록 더 겸손해지는 쪽을 택했고, 그 결과 명성과 존경은 오히려 날로 두터워졌다. 반대로 진(晉)나라의 극지(隙至)는 남들 위에 서려다 갈수록 자기 입지를 깎아 먹었고, 왕숙(王叔)은 다투기를 즐기다가 결국 나라 밖으로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다툼의 길과 사양의 길은 이렇게 처음부터 갈라져 있다.

이 원리는 군자와 소인의 차이로 이어진다. 군자는 자기 행동의 표준을 함부로 넘지 않고, 안으로는 스스로를 다잡아 이루어내며 밖으로는 겸손과 삼감으로 처신한다. 반면 소인은 공이 있으면 뽐내고 능력을 자랑하며 남을 누르려 든다. 그런데 유소가 짚어내는 것은 소인의 태도가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훈계가 아니다. 그것이 실제로 손해라는 것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를 해치려 하고, 공을 세운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를 헐뜯으려 하며, 누군가 무너지면 사람들은 은근히 다행스러워한다 — 이것이 유소가 말하는 인지상정(人情)이다. 그러니 서로 앞서겠다고 고삐를 나란히 하고 달리는 자들은 결국 둘 다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지쳐 나가떨어지고, 그 자리는 뒤에서 여유 있게 따라오던 자가 차지한다. 토끼를 쫓던 개가 지쳐 쓰러지면 그 자리를 농부가 거두어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옛사람은 사양해서 얻었지만"

여기서 유소는 반론을 예상한 듯 한 걸음 더 들어간다. 남을 이기기를 좋아하는 사람(好勝之人)은 이런 논리에 결코 승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겸양의 가르침을 들어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되뇐다. '옛사람은 사양함으로써 얻었을지 몰라도, 지금 사람은 사양하면 잃는다.' 이 한 문장 안에 자기 정당화의 모든 회로가 담겨 있다. 남보다 앞서가는 것을 재빠르고 날카롭다 여기고, 남에게 뒤처지는 것을 정체되었다 여긴다. 뭇사람에게 스스로를 낮추는 것을 비굴하다 여기고, 차례를 건너뛰어 남 위에 오르는 것을 걸출하다 여긴다. 양보하는 것을 치욕으로, 윗사람을 올라타는 것을 고매함으로 뒤집어 읽는다. 그래서 진(晉)나라의 조천(趙穿)은 자기 원수를 안중에 두지 않았고, 체자(彘子)는 자기 군대를 함정에 몰아넣었다. 매사에 자기만 옳다고 여기며 밀어붙이는 마음은, 유소의 비유를 빌리면 살아 있는 짐승을 먹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아서, 끝내는 사람을 해쳐서라도 자기 화를 풀려는 데까지 나아간다.

더 나쁜 것은, 뛰어난 사람이 사나운 사람과 맞붙었을 때다. 뛰어난 이가 뛰어난 이를 만나면 서로 물러설 줄 알지만, 뛰어난 이가 사나운 이를 만나면 어쩔 수 없이 맞서 비난거리를 짜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옳고 그름은 뒤섞여 아무도 실상을 가려낼 수 없게 되고,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헐뜯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두 마리 호랑이가 맞붙으면 작은 쪽은 죽고 큰 쪽도 상하는 법이니, 애초에 둘 다 온전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남을 헐뜯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원한을 품고, 무언가에 의탁해 사단을 지어내며,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절반쯤은 믿어버린다. 내가 되받아치면 상대도 똑같이 되받아친다. 결국 화를 내며 다투는 자는 남의 입을 빌려 자기를 헐뜯게 하는 셈이고, 말싸움으로 맞받아치는 자는 남의 손을 빌려 자기를 때리게 하는 셈이다. 이보다 더 미혹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유소는 되묻는다.

화씨벽과 문경지교

이 모든 논리가 하나의 이야기로 응축되는 자리가 있다.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 이야기다.

발단은 구슬 하나였다. 조나라 혜문왕이 화씨벽(和氏璧)이라는 천하의 보물을 갖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강대국 진(秦)나라의 소왕(昭王)이 성 열다섯 개와 바꾸자고 제안해 왔다. 누가 봐도 함정이었다. 구슬만 내주고 성은 받지 못할 게 뻔했지만, 거절하면 진나라가 침공의 구실로 삼을 것 또한 뻔했다. 이 진퇴양난에 나선 사람이 당시 미관말직에 불과하던 인상여였다. 그는 구슬을 지니고 진나라로 들어가, 진왕이 성을 내줄 마음이 없다는 것을 간파하자 목숨을 걸고 기지를 발휘해 구슬을 무사히 조나라로 되돌려 보냈다. 완벽귀조(完璧歸趙) — 구슬을 온전히 하여 조나라로 돌려보냈다는 이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몇 해 뒤 민지(澠池)에서 열린 진왕과 조왕의 회담에서도 인상여는 다시 한 번 조왕이 수모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냈다. 이 공으로 그는 일약 상경(上卿)의 자리에 올라, 오랜 세월 전장을 누벼온 명장 염파보다 높은 지위에 서게 되었다.

염파는 이것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은 성을 공격하고 들판에서 싸운 큰 공이 있는데, 인상여는 그저 입과 혀만 놀렸을 뿐인데도 자기보다 윗자리에 앉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녔다. "인상여를 만나면 반드시 그를 욕보이고 말겠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인상여는 조회 때마다 병을 핑계로 염파와 마주치는 자리를 피했고, 길에서 염파의 수레가 멀리 보이기만 해도 자기 수레를 끌어 숨었다. 인상여를 따르던 사람들은 참다못해 그에게 따졌다. 당신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고. 진나라 왕 앞에서도 조금도 굽히지 않던 당신이 어째서 염파 장군 하나를 이토록 두려워하느냐고. 그때 인상여가 한 대답이 이 고사의 핵심이다. 그는 물었다. 강대한 진나라 왕도 두려워하지 않은 내가 어찌 염파 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다만 생각해 보라, 강한 진나라가 지금 감히 조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오직 염파와 나,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둘이 서로 싸운다면 그 형세는 함께 설 수 없게 될 것이다. 내가 이렇게 피하는 것은 나랏일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한을 뒤로 미루는 것일 뿐이다.

이 말이 염파의 귀에 들어갔다. 염파는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는 웃옷을 벗어 맨몸을 드러내고 가시나무 회초리를 등에 짊어진 채, 빈객을 통해 인상여의 집 대문까지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육단부형(肉袒負荊) — 살을 드러내고 가시나무를 짊어졌다는 이 장면에서, 인상여는 뛰쳐나와 그를 맞아 일으켜 세웠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 목이 잘려도 변치 않을 벗이 되기로 맹세했다. 문경지교(刎頸之交)다.

유소가 이 이야기에서 읽어낸 것은 인상여의 지혜나 담력이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정리한다. 인상여는 수레를 돌림으로써 오히려 염파를 이겼다. 정면으로 맞서 자신의 공로를 증명하려 들었다면 조나라는 두 기둥을 함께 잃었을 것이다. 물러섬으로써, 인상여는 염파를 이겼을 뿐 아니라 염파를 벗으로 만들었다. 훗날 후한(後漢)의 무신 구순(寇恂)이 가복(賈復)과의 다툼을 피해 술과 안주로 그를 맞이해 보냄으로써 오히려 더 높은 명성을 얻은 일도 유소는 같은 이치로 나란히 놓는다. 다투지 않음으로써 이기는 것 — 그것이 물러섬이 실은 나아감이라는 이 장의 첫 번째 증거다.

굽힘은 펴짐을 위한 것

유소는 이 역설에 원리의 이름을 붙인다. 물세지반(物勢之反) — 일의 형세에는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것, 이것이 군자가 말하는 도리라는 것이다. 용과 뱀이 겨울잠을 자는 것은 몸을 보존하기 위함이고,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다시 펴기 위함이다. 미물조차 이 이치를 알고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그래서 군자는 지금 굽히는 것이 훗날 펼쳐질 수 있음을 알기에 치욕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신(韓信)이 젊은 시절 저잣거리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어 지나간 일이 그런 예다. 진(晉)나라의 공자 중이(重耳)가 훗날 문공(文公)이 되어 초나라와 싸울 때, 예전에 초나라 성왕에게 약속했던 대로 군대를 구십 리 뒤로 물린 뒤 성복(城濮)에서 대승을 거둔 것도 마찬가지다. 물러남을 두려움으로 착각한 초나라 장수가 자만하며 밀어붙이다 크게 패한 것이다.

이 물러섬의 원리는 결국 원수를 벗으로 바꾸는 자리에까지 이른다. 인상여가 염파에게 자신을 낮춤으로써 두 사람이 문경지교를 맺은 것처럼, 굽힘을 아는 사람은 원한이 후손에게까지 이어지지 않게 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역사에 새긴다. 반면 사소한 다툼을 다스리지 못한 이들의 말로는 참혹하다. 진여(陳餘)는 오랜 벗 장이(張耳)와의 갈등을 풀지 못해 결국 몸이 찢기는 화를 당했고, 후한의 팽총(彭寵)은 주부(朱浮)와의 앙금을 삭이지 못해 온 집안이 멸문당하는 재앙을 불렀다. 두 여인이 뽕잎을 두고 다투다가 오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고, 계씨(季氏)와 후씨(郈氏) 집안의 닭싸움 하나가 노나라 전체를 뒤흔든 분란으로 번진 일도 있었다. 재앙은 언제나 실오라기처럼 작은 데서 시작된다. 그러니 군자는 아주 작은 혐의조차 능히 품어 안아 큰 쟁송으로 번지지 않게 하지만, 소인은 작은 분노 하나를 참지 못해 끝내 천하가 다 아는 패배와 치욕을 당한다.

추양(推讓), 물러섬이라는 무기

여기서 유소는 이 장에서 가장 대담한 문장 하나를 던진다. 군자가 정말로 이기고자 할 때 쓰는 것은 날카로운 칼이 아니라 추양(推讓) — 공은 남에게 미루고 자신은 물러서는 것 — 이며, 방패로 삼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수양이다. 가만히 있을 때는 입과 눈과 귀라는 세 개의 문을 닫아걸고, 일에 나설 때는 공손하고 고분고분한 길로만 나아간다. 그렇게 하면 이기더라도 다툰 흔적이 드러나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켜도 원망이 생겨나지 않는다. 낯빛에 뉘우침도 후회도 떠오르지 않으니, 애초에 다툼이 겉으로 드러날 일이 없다.

반대로 드러내놓고 다투는 자는 스스로를 뛰어나다 여기지만, 사람들 눈에는 험악하고 치우친 자로 비칠 뿐이다. 그에게 정말 험악한 구석이 없다면 애초에 헐뜯길 일이 없을 것이고, 정말 험악한 구석이 있다면 그런 사람과 무엇하러 쟁송을 벌이겠는가. 성난 물소를 우리에 가두고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짓이다. 『주역』은 이런 형국을 송괘(訟卦)에 빗대어 "위험한데도 어긋나게 가는 것이 쟁송이니, 쟁송이 있으면 반드시 무리가 일어난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유소는 노자의 말을 끌어와 이 장의 결론으로 삼는다.

夫惟不爭,故天下莫能與之爭。
무릇 오직 다투지 않기에, 천하에 그 누구도 그와 더불어 다툴 수가 없다.
(『노자』 「도덕경」 22장)

이 때문에 군자는 애초에 다투는 길로는 걷지 않는다는 것이 유소의 결론이다.

세 등급, 그리고 마지막 역설

책의 맨 끝에서 유소는 인물지 전체를 관통해 온 그 익숙한 방법 — 등급을 나누어 사람을 가늠하는 방법 — 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꺼낸다. 다만 이번에 등급을 가르는 기준은 재능이나 지혜가 아니라 겸양의 깊이다.

유소는 같은 틀을 두 번 더 되풀이한다. 어리석으면서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하등, 뛰어나다며 남 위에 서려는 것이 중등, 뛰어나면서도 능히 사양할 줄 아는 것이 상등이다. 자신에게는 너그럽고 남에게는 각박한 것이 하등, 자신과 남 모두에게 각박한 것이 중등,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러운 것이 상등이다. 노나라의 맹지반(孟之反)은 전투에서 후퇴하며 맨 뒤에서 적을 막고도, 성문에 이르러서는 "내가 용감해서 뒤에 남은 게 아니라 말이 굼떠서였다"며 자기 공을 감추었고, 공자는 그를 참된 용사라 칭송했다. 제나라의 관중(管仲)은 주나라 양왕이 내리려는 큰 상을 거듭 사양하다가 도리어 더 큰 예우를 받았다. 유소는 묻는다. 이것이 무슨 잔꾀로 얻어낸 결과이겠는가. 순수한 덕을 가진 사람이 자연스럽게 그런 자리에 이르렀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 사람을 알아보는 이 책 전체가 향해 온 자리가 하나의 역설로 응축된다.

不伐者伐之也,不爭者此爭之也;讓敵者勝之也,下衆者上之也。
자랑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자랑하는 것이요, 다투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다투는 것이다. 상대에게 사양하는 자가 결국 이기게 되고, 뭇사람에게 자신을 낮추는 자가 결국 그들 위에 서게 된다.

낮춤이 결국 오름이 되고, 물러섬이 결국 이김이 된다는 이 문장 앞에서, 재질을 촘촘히 나누고 겉모습에서 속을 읽어내던 그 모든 정교한 기술은 문득 사소해 보인다.

결어: 아홉 징후에서 다투지 않음까지

이 책은 사람의 표정과 몸짓에서 속마음을 읽어내는 아홉 가지 징후(九徵)로 시작했다. 사람마다 다른 열두 가지 성격의 치우침을 가려내고(體別), 그 재질에 맞는 열두 자리를 매겼으며(流業), 같은 진실도 사람마다 다르게 논증하는 이유를 캐물었고(材理), 고을을 다스릴 그릇과 천하를 다스릴 그릇을 나누었다(材能). 모든 재질에는 양날이 있음을 인정했고(利害), 우리가 왜 자신과 닮은 사람만 알아보는지 반성했으며(接識), 지혜와 담력이 만나는 자리에서 영웅을 찾아냈다(英雄). 사람을 살피는 여덟 개의 창을 열었고(八觀), 평가하는 사람 스스로가 빠지기 쉬운 일곱 가지 함정을 짚어냈으며(七繆), 마지막으로 그렇게 알아본 인재가 왜 세상에서 놓쳐지는지를 인정했다(效難).

이 모든 여정은 결국 한 사람을 더 정확하게, 더 촘촘하게, 더 날카롭게 판별하기 위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그 기술의 정점에 선 사람이 마지막으로 손에 쥐는 것은 더 날카로운 판별의 칼이 아니라, 그 칼을 칼집에 넣어두는 법이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이 옳다는 것과 남이 그르다는 것을 더 정확히 증명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증명이 다툼으로 이어지는 순간, 그가 평생 갈고닦은 감식안은 오히려 자신을 해치는 칼끝이 되어 돌아온다. 인물지가 열두 편에 걸쳐 완성한 것은 그러니까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그 앎을 손에 쥐고도 다투지 않는 법이었던 셈이다. 아는 것과 다투지 않는 것, 이 둘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능력이 아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안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부터 낮출 줄 아는 데서 완성된다 — 인물지가 처음부터 향해 온 자리는 어쩌면 처음부터 여기, 다투는 마음을 내려놓는 이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원 편명: 석쟁 제12(釋爭第十二) — 참고: 이한우, 『이한우의 인물지』(21세기북스, 2023)

개요로 돌아가기 | 이전: 11장. 알아보는 효험의 어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