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알아보는 효험의 어려움

관찰법을 다 익혀도 남는 질문

앞 장에서 우리는 사람을 볼 때 흔히 빠지는 일곱 가지 함정을 하나하나 짚었다. 겉모습에 속지 말 것, 첫인상에 붙잡히지 말 것, 자기와 비슷한 사람만 편애하지 말 것. 이 모든 걸 조심스럽게 피해 가면서, 마침내 어떤 사람의 그릇을 정확히 읽어냈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제 다 된 것일까.

유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물러선다. 사람 보는 눈이 아무리 밝아도, 그 눈으로 알아낸 것이 실제로 증명되고 세상에 알려지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의 제목은 효난(效難) — 알아보는 일의 효험, 즉 그 앎이 결실을 맺는 일의 어려움이다. 유소는 이 어려움을 둘로 나눈다. 하나는 애초에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일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설사 제대로 알아보았다 해도 그 사람을 알맞게 써서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일이 또 어렵다는 것이다. 안다고 다가 아니고, 안 뒤에도 갈 길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왜 사람을 안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가

사람이라는 대상은 본래 정밀하고 미묘하다. 지혜는 손에 잡히는 형체가 없고, 남다른 자질일수록 세상의 보통 잣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더더욱 알아보기 어렵다. 유소는 이것을 안다는 일 자체가 성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에게조차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명철함의 극치인데, 저 요임금조차 그것을 어렵게 여겼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는 『서경』 우서 고요모 편에서 우왕이 남긴 말을 끌어온 것으로, 정치의 요체를 묻는 자리에서 "사람을 아는 것"과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을 나란히 놓고, 그중 사람을 아는 일이 더 어렵다고 짚은 대목이다.

그러니 평범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필 때 필요한 방법을 모두 갖추기란 애초에 무리다. 유소는 세상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여덟 가지 관법을 열거한다.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사람, 몸가짐과 동작으로 판단하는 사람, 일의 시작과 끝을 헤아려 판단하는 사람, 미래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고 판단하는 사람, 속마음의 미세한 결을 미루어 헤아리는 사람, 지난 허물을 의심의 눈으로 보는 사람, 하는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 실제로 해낸 일을 꼼꼼히 따지는 사람. 문제는 이 여덟 가지가 저마다 따로 놀 뿐, 하나로 꿰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람은 대개 자기에게 익숙한 방법 하나만 붙들고 나머지는 버린다. 자기와 같은 것은 알아보고 자기와 다른 것은 놓쳐 버리니, 얻는 것은 적고 잃는 것은 많을 수밖에 없다.

유소는 이 어긋남을 짐승의 울음소리에 빗댄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고양이라 부르고 참새 울음소리를 듣고 참새라 부르는 식으로, 겉으로 드러난 한 조각만 듣고 이름을 붙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나라의 예를 든다. 유자의 옷을 입은 사람은 거리에 넘쳐나지만, 그 옷만 보고 모두를 유자라 부른다면 정작 진짜 유자는 그 가운데 단 한 사람뿐인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옷은 신분을 흉내 낼 수 있어도 학문의 깊이까지 흉내 내지는 못한다.

이 대목에서 공자와 재여의 일화가 떠오른다. 『논어』 공야장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제자 재여가 낮잠을 자자 공자는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은 손질할 수 없다"며 꾸짖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고백한다. "예전에 나는 사람을 볼 때 그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믿었는데, 이제는 말을 들은 뒤에 다시 그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다. 재여로 인해 이렇게 바뀌었다." 공자만큼 사람 보는 눈이 밝은 이도 말과 행실이 어긋나는 것을 직접 겪고서야 관법을 고쳤다. 하물며 평범한 사람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얕은 재주가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나면 사람들은 그것을 남다르다 여기고, 반대로 깊은 밝음을 안으로 감춘 채 조용히 있으면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여긴다. 미묘한 이치를 잘 분별하면 옛 전설의 밝은 눈 이루(離婁)에 견주고, 경전 구절을 이리저리 늘어놓으면 이치에 통달했다 여기고, 옳고 그름을 거침없이 따지면 인물 평가에 능하다 여기고, 시국을 논하면 나라를 떠받칠 재목이라 여긴다.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인상만으로 그 사람의 전부를 판정해 버리는 것이다.

이름과 실상은 다르다

유소는 이렇게 잘라 말한다. 이름과 실상이 어긋나면 그 사람을 써도 효험이 없다. 남쪽 하늘의 기(箕) 별자리는 곡식 까부르는 키를 닮았어도 실제로 곡식을 까부를 수 없고, 북쪽의 두(斗) 별자리는 술 뜨는 국자를 닮았어도 실제로 술을 뜰 수 없다는 『시경』 소아 대동 편의 비유를 빌려 온다. 이름만 그럴듯한 사람은 막상 일을 맡기면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속에 진짜 알맹이를 품고 있으면서도 이름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처음에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지만, 실제로 일을 맡겨 보면 뜻밖의 성과를 낸다. 효험이 서고 나서야 비로소 이름이 뒤따라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 버리는 것이야말로 누구나 저지르기 쉬운 흔한 오류다. 얕은 지혜는 금방 바닥을 드러내고 깊은 지혜는 좀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사람을 살피는 이는 늘 처음 대하는 순간에 실상을 놓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유소는 반드시 그 사람이 실제로 움직이는 모습을 기다린 뒤에야 판단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는 사마천의 『사기』에 전하는 이극(李克)의 말을 끌어온다. 위나라 문후가 재상감을 묻자 이극이 답한 다섯 가지 살핌이다 — 평소 거처할 때는 그가 무엇을 편안히 여기는지를 보고, 높은 자리에 오르면 누구를 천거하는지를 보고, 부유해지면 무엇을 베푸는지를 보고, 궁지에 몰리면 무엇을 하는지를 보고, 가난해지면 무엇을 취하는지를 본다. 다섯 가지 다른 처지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겹쳐 보아야 비로소 그 사람의 바탕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故居視其所安, 達視其所擧, 富視其所與, 窮視其所爲, 貧視其所取.
평소에는 그가 편안히 여기는 바를 보고, 현달해서는 그가 천거하는 바를 보고,
부유해서는 그가 베푸는 바를 보고, 궁할 때는 그가 하는 바를 보고,
가난할 때는 그가 취하는 바를 본다.

그런데 바탕(質)을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임기응변하는 지략까지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지략이란 상황이 바뀔 때 통하는 것이라, 한 번 정해 놓은 잣대로 늘 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하 사람을 다 만나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뜻과 취향을 바꾸며 세상에 맞춰 자신을 바꾼다. 유소는 후한 광무제가 방맹(龐萌)에게 속고, 조조가 동탁에게 속았던 일을 예로 든다. 방맹은 광무제의 깊은 신임을 받다가 끝내 등을 돌리고 반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어떤 사람은 상황이 닥치기도 전에 욕심을 드러내고, 어떤 사람은 상황이 닥치고서야 마음을 바꾼다 — 처음에는 광무제에게 마음을 다하다가 끝내 경시제(更始帝) 쪽으로 돌아선 이일(李軼)이 그런 경우다. 또 어떤 사람은 곤궁할 때는 애써 바르게 행하다가 뜻을 이루고 나면 욕심을 따라 방종해진다. 왕망(王莽)이 그렇다. 처음엔 벼슬 없는 선비처럼 몸을 낮추고 검소했지만, 끝내는 더할 나위 없는 사치를 부렸다. 사람의 속내는 처지가 바뀔 때마다 함께 바뀌니, 그 변화를 끝까지 지켜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것을 단정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바탕과 지략, 그 양쪽의 핵심을 다 붙잡아야 비로소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첫 번째 어려움, 앎 자체의 어려움이다.

안다고 해도 쓰이지 못하는 어려움

두 번째 어려움은 더 쓸쓸하다. 어렵사리 참된 인재를 알아보았다 해도, 그 사람이 실제로 세상에 쓰여 효험을 드러내기까지는 또 다른 관문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최상의 인재는 애초에 알아보기부터 어렵다. 그런데 어떤 이는 알아보았다 해도 아직 어리고 미천한 처지에 있을 때 미처 자라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 버리고, 어떤 이는 발탁되기 직전에 먼저 죽어 버린다. 어떤 이는 노래를 잘 부르지만 화답하는 사람이 적어 아무리 불러도 찬사를 받지 못한다.

위나라 재상 공숙좌(公叔痤)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는 병상에서 위혜왕에게 자신의 가신이던 젊은 공손앙(훗날의 상앙商鞅)을 천거하며, 나라의 모든 일을 그에게 맡기라고 청했다. 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공숙좌는 왕이 물러가자 은밀히 이렇게 덧붙였다고 전한다. "왕께서 그를 쓰지 않으실 거라면 반드시 죽여서 국경을 넘지 못하게 하십시오." 왕은 그러겠다고 했다. 훗날 공숙좌는 상앙을 불러 미안하다며 사정을 전했지만, 상앙은 태연히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왕께서 재상의 말을 들어 저를 쓰지 않으실 거라면, 어찌 재상의 말을 들어 저를 죽이겠습니까." 그러고는 위나라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공숙좌가 죽은 뒤, 상앙은 인재를 구한다는 진나라로 건너가 그곳에서 변법을 성사시켜 진을 최강국으로 밀어 올렸다. 위혜왕은 자기 나라의 재상이 죽음을 무릅쓰고 천거한 인재를 눈앞에서 놓치고, 훗날 그 인재가 이끄는 진나라 군대에 시달리게 된다.

진나라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한다. 목공 시절의 신하 금식(禽息)은 어질고 능력 있는 백리해(百里奚)를 목공에게 거듭 천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금식은 목공의 수레를 가로막고 "제가 나라에 아무 쓸모가 없었으니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라 말하고는 스스로 문지방에 머리를 찧어 목숨을 끊었다. 그 죽음에 마음이 움직인 목공은 마침내 백리해를 재상으로 삼았고, 백리해는 진나라를 패자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한 사람의 목숨과 맞바꾸고서야 비로소 열린 등용의 길이었다.

옥돌을 안고 울었다는 변화(卞和)의 이야기도 있다. 그는 초나라 산속에서 옥의 원석을 발견해 여왕(厲王)에게 바쳤지만, 감정인이 그저 평범한 돌이라 판정하자 발뒤꿈치를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 여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다시 바쳤으나 결과는 같았고, 이번엔 남은 다리마저 잘렸다. 무왕에 이어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는 그 옥돌을 끌어안은 채 궁궐 문 앞에서 사흘 밤낮을 울었다. 문왕이 까닭을 묻고 마침내 옥돌을 갈고 다듬게 하니, 그 안에서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드러났다. 문왕은 그 옥을 변화의 이름을 따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 불렀다. 진짜 보석과 진짜 인재는 이렇게 두 다리를 잃고 나서야, 혹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시대와 맞지 않아 신임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나라 문제의 황후 두태후(竇后)가 황로학을 좋아하던 시절에는 유가 학자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조정에 나아갈 길이 막혀 있었다. 신분이 낮아 능력이 드러날 자리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어렵사리 자리를 얻어도 주변의 견제에 눌려 뜻을 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무(何武)가 공손록(公孫祿)을 천거했지만, 공손록은 외척인 왕씨(王氏) 세력에 배척당해 결국 힘을 쓰지 못했다.

유소는 이 대목에서 냉정한 확률을 제시한다.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는 것부터가 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설사 알아주는 이를 만났다 해도, 그 사람이 실제로 인재를 등용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경우는 백에 하나가 될까 말까 하다. 그런 자리에 있다 해도, 그 지위와 권세를 실제로 써서 인재를 천거해 내는 경우는 다시 열에 하나가 될까 말까 하다. 눈은 밝지만 주변의 방해가 두려워 천거를 꺼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거하기를 좋아하면서도 정작 누가 참된 인재인지 가려낼 눈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알아봄과 알아보지 못함이 뒤섞여 어지러워진 세상에서, 참으로 사람을 알아보는 이는 자신에게 그 인재를 세상에 내보일 자리가 없음을 근심하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사람 보는 눈이 모자람을 탄식한다. 이것이 두 번째 어려움, 알아도 쓰이지 못하는 어려움이다.

뒤늦게, 혹은 끝내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

역사는 이런 이야기로 가득하다. 순욱(荀彧)이 조조에게 곽가(郭嘉)를 천거하기까지, 관중(管仲)이 죽음 직전의 감옥에서 포숙(鮑叔)의 손에 구해지기까지,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름 없는 재사들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스러졌을 시간까지. 상앙과 공숙좌, 백리해와 금식, 변화와 화씨지벽 — 이 이야기들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그나마 운 좋게 뒤늦게라도 알려졌기 때문이다. 금식처럼 목숨을 걸고 천거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거나, 변화처럼 두 다리를 잃고 나서야 인정받았거나, 상앙처럼 자신을 천거한 나라가 아니라 그 나라와 싸우는 이웃 나라에서 뜻을 편 경우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정작 아무도 그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묻힌 무수한 백리해들, 무수한 변화들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이런 일이 옛일만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다 — 이것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지어낸 사례다. 한 소프트웨어 회사의 말단 개발자가 몇 해 동안 회사의 낡은 시스템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그의 직급으로는 아무도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결국 회사를 떠났고, 몇 해 뒤 그 회사는 그가 경고했던 바로 그 구조적 결함 때문에 큰 장애를 겪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예전 그 개발자의 보고서를 다시 꺼내 읽었다. 이런 이야기는 어느 조직에나 한둘쯤 있을 법하다 — 다만 그 사람이 화씨(和氏)처럼 다시 돌아와 옥을 다듬어 보일 기회를 얻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앎과 씀과 때, 세 가지가 겹치는 자리

이렇게 놓고 보면 효난이라는 제목이 왜 이 자리에 놓였는지 이해가 간다. 9장과 10장에서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관찰하고 어떤 함정을 피할 것인지를 배웠다. 그러나 그 모든 기술을 완벽하게 갖춘다 해도, 사람의 재능이 실제로 증명되는 데는 앎(知)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앎을 가진 사람이 마침 그럴 만한 자리에 있어야 하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마침 그럴 만한 권세와 용기를 갖추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일생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 맞아떨어져야 한다. 유소가 만에 하나, 백에 하나, 열에 하나라는 숫자를 겹쳐 놓은 것은 과장이 아니라, 그 우연의 겹침이 얼마나 희박한지를 냉정하게 보여 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장은 다소 쓸쓸한 여운을 남긴다. 사람 보는 법을 아무리 익혀도, 결국 어떤 사람이 세상에 알려지느냐 묻히느냐는 그 사람의 그릇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때를 만나야 하고,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 알아주는 사람이 힘을 가져야 한다. 그 셋이 겹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인재도 변화(卞和)처럼 옥돌을 끌어안고 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이 끝내 알아주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원망하며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태도가 있는가. 유소는 다음 장에서 바로 이 질문에 답한다.


원 편명: 효난 제11(效難第十一) — 참고: 이한우, 『이한우의 인물지』(21세기북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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