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인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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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유소의 인물지를 한 호흡에 읽을 수 있도록 훨씬 짧게, 이야기 형식으로 다시 쓴 것이다. 원문의 열두 편을 빠짐없이 다루는 상세한 판은 유소의 인물지에 있다. 여기서는 아홉 가지 징후니 열두 가지 유형이니 하는 분류를 다 외우지 않아도 되게, 몇 개의 장면만으로 이 책이 하려는 말을 따라가 본다.
질문 하나로 끝나는 책
『논어』의 마지막 문장은 뜻밖에도 이렇게 끝난다.
不知言,無以知人也。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공자가 평생 쌓아 올린 이야기가 결국 "사람을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라는 질문 하나로 마무리된 셈이다. 그런데 정작 그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은 사람은 공자 자신이 아니라, 그로부터 700년쯤 뒤에 태어난 위(魏)나라의 관료 한 사람이었다.
이름은 유소(劉劭). 조조(曹操)의 참모 순욱(荀彧) 밑에서 일을 배웠고, 조조·조비·조예 세 대에 걸쳐 인사(人事)와 법제를 다루는 실무를 맡았다. 관리를 어떻게 평가할지, 형법을 어떻게 정비할지, 그런 일을 평생 했던 사람이다. 말하자면 그는 이론가가 아니라 현장에서 사람을 골라 써야 했던 실무자였다. 그가 남긴 『인물지(人物志)』 열두 편은 그 실무의 결정체다.
(참고로 이 책의 저자를 전한(前漢)의 유향劉向과 혼동하는 경우가 잦은데, 두 사람은 250년의 시차를 두고 산 전혀 다른 인물이다.)
몸이 먼저 말한다
유소는 사람의 속을 알아내는 일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몸에서 시작한다. 맹자는 일찍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存乎人者,莫良於眸子。眸子不能掩其惡。胸中正,則眸子瞭焉;胸中不正,則眸子眊焉。 사람 안에 있는 것 중에 눈동자보다 더 잘 드러내는 것이 없다. 눈동자는 그 악함을 가리지 못한다. 마음이 바르면 눈동자가 맑고,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눈동자가 흐리다.
유소는 이 통찰을 아홉 갈래로 정교하게 넓힌다 — 정신, 기운, 안색, 말씨, 몸가짐 같은 것들이 저마다 속마음의 어떤 결을 겉으로 새어 나오게 한다는 것이다. 이 아홉 겹의 그물을 모두 갖추고 흠 없이 균형 잡힌 사람, 유소는 그런 사람을 겸덕(兼德)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홉 가지 중 한둘이 유난히 튀어나오고, 그 튀어나온 것에 이끌려 성격 전체가 한쪽으로 기운다.
여기서 유소는 재미있는 비유를 하나 꺼낸다.
猶晉楚帶劍,遞相詭反也。 진(晉)나라 사람과 초(楚)나라 사람은 칼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찼다.
진나라 사람이 보기에 초나라 사람은 칼을 거꾸로 찼다. 초나라 사람이 보기에도 진나라 사람이 칼을 거꾸로 찼다. 누가 옳은가? 둘 다 옳다 — 그저 방향이 다를 뿐이다. 강직한 사람은 유순한 사람을 나약하다 여기고, 유순한 사람은 강직한 사람을 사납다 여긴다. 용감한 사람은 신중한 사람을 겁쟁이라 여기고, 신중한 사람은 용감한 사람을 무모하다 여긴다. 유소가 열두 가지로 나눈 성격 유형들은 결국 이 하나의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있다 — 사람은 자기와 다른 결을 가진 사람을 좀처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
자리를 찾아주는 일
사람을 읽어내는 눈을 갖췄다면, 다음 문제는 그 사람을 어디에 앉힐 것인가다. 유소는 조정에 필요한 인재를 열두 갈래로 나누면서, 그 갈래에 위아래를 두지 않았다. 풍속을 바로잡는 사람과 법을 세우는 사람과 계책을 짜는 사람은 서로 다른 종류의 그릇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의 축소판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중(管仲)은 법과 제도로 나라를 다스린 사람이었다. 장량(張良)은 계책으로 유방을 도와 천하를 얻게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윤(伊尹)과 강태공(姜太公)처럼 이 모든 자질을 겸비해 재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도 있었다. 유소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간단하다. 좋은 인사(人事)란 모두를 재상감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결에 맞는 자리를 찾아주는 일이라는 것.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하나 있다. 같은 유형의 재능이라도 다스릴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한 고을을 잘 다스리던 사람이 한 나라를 맡으면 허둥댄다. 큰 조직을 능수능란하게 굴리던 사람이 작은 팀 하나를 맡으면 오히려 헤맨다. 유소는 심지어 이렇게 말한다 — 큰 솥으로는 닭 한 마리도 삶기 어렵다고. 재능은 종류만이 아니라 크기도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든 재능에는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강직함은 원칙을 세우지만 사람을 몰아세운다. 너그러움은 사람을 품지만 원칙을 흐린다. 유소가 사람을 평가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장점을 칭찬하는 것만큼이나 그 장점이 반드시 데리고 다니는 그림자를 함께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보는 눈조차, 평가자 자신의 성격에 따라 다시 한번 기울어진다 — 앞서 말한 진나라와 초나라의 칼처럼.
영(英)과 웅(雄), 두 개의 심장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아마 "영웅(英雄)"이라는 말을 풀어내는 대목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 말을 하나의 덩어리로 쓰지만, 유소는 칼로 가르듯 둘로 나눈다. 영(英)은 총명함, 통찰, 계책을 꿰뚫어 보는 머리다. 웅(雄)은 담력, 결단, 밀어붙이는 힘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자질이고, 한 사람 안에 어느 한쪽만 있을 수도, 둘 다 있을 수도 있다.
초한전쟁이 그 살아있는 증거다. 항우(項羽)는 힘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거록의 싸움에서 그는 밥솥을 깨고 배를 가라앉힌 뒤(파부침주破釜沈舟) 병사들에게 돌아갈 길을 없애버리고 싸우게 했다. 웅(雄)으로 치면 그를 넘어설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범증(范增)이라는 참모가 있었는데도 끝내 그의 계책을 믿지 못했고, 결국 진평(陳平)의 반간계에 속아 범증마저 떠나보냈다. 웅은 넘쳤으나 영이 모자랐던 것이다.
반대편에는 유방(劉邦)이 있었다. 그는 힘으로는 항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장량(張良)이 있었다. 유방은 장량의 말을 끝까지 믿었고, 한신(韓信)의 담력을 알아보고 그에게 병권을 맡길 줄 알았다. 유방 자신에게 웅이 크지 않았어도, 그는 영과 웅을 가진 사람들을 알아보고 곁에 둘 줄 알았다. 결국 해하(垓下)에서 사면초가에 몰린 것은 항우였다. 유소의 결론은 이렇다 — 영과 웅, 둘 중 하나만으로는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둘을 겸비하거나, 적어도 그 둘을 알아보고 곁에 둘 줄 알아야 한다.
여덟 개의 창, 일곱 개의 함정
이론을 다 갖췄다고 사람이 저절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유소는 실전 매뉴얼을 하나 남겨두었다. 사람을 여덟 개의 창(窓)으로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 그가 남의 것을 빼앗는지 양보하는지, 상황이 급변할 때 낯빛이 어떻게 변하는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공경하는지, 그의 단점이 무엇인지.
이 여덟 개의 창 가운데 가장 소박하면서도 매서운 것은 아마 사소한 거짓말을 지켜보는 일일 것이다. 옛날 미생고(微生高)라는 사람은 정직하다는 평판이 자자했다. 어느 날 이웃이 식초를 빌리러 왔는데, 마침 집에 식초가 없자 그는 그냥 없다고 하지 않고 다른 이웃집에서 몰래 식초를 빌려다가 마치 자기 것인 양 내주었다. 공자는 이 일을 두고 그를 정직하다 할 수 없다고 했다. 큰 거짓말은 누구나 경계하지만, 이런 작은 체면치레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유소가 보기에 사람의 진짜 결은 이런 사소한 순간에 새어 나온다.
그런데 이 여덟 개의 창으로 사람을 본다 해도, 보는 사람 자신이 자꾸 걸려 넘어지는 자리가 있다. 유소는 이를 일곱 가지로 정리했는데, 그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위(衛)나라의 미자하(彌子瑕)는 왕의 총애를 받을 때는 먹다 남은 복숭아를 왕에게 건넨 일마저 "나를 생각해 자기 입에 넣었던 것도 아끼지 않는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러나 총애가 식은 뒤에는 바로 그 일이 "감히 먹다 남은 것을 왕에게 먹였다"는 죄로 뒤바뀌었다. 행동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사랑과 미움이 그 행동의 의미를 통째로 뒤집어버린 것이다. 유소가 하고 싶었던 말은 간단하다 — 우리는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종종 그 사람에 대한 우리 자신의 감정을 보고 있을 뿐이라는 것.
알아봐도 늦는다
여기서 유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소 쓸쓸한 이야기를 꺼낸다. 제대로 보는 법을 다 갖췄다 해도, 그 사람이 실제로 세상에 알려지고 쓰이는 일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초(楚)나라 사람 변화(卞和)는 산속에서 옥돌 원석을 발견해 왕에게 바쳤다. 그런데 감정사가 그것을 그냥 돌이라 판정하는 바람에, 변화는 왕을 속였다는 죄로 한쪽 발을 잘렸다. 다음 왕에게 다시 바쳤다가 나머지 한쪽 발마저 잘렸다. 세 번째 왕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돌을 깎아보게 했고, 그 안에서 천하에 둘도 없는 옥, 화씨벽(和氏璧)이 나왔다. 진짜 보물이 진짜 보물로 인정받기까지 두 다리를 잃고 두 세대를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유소는 이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 사람을 볼 줄 아는 눈과, 그 사람을 실제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힘은 다른 문제라고.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그리고 그를 알아볼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안목이 없으면, 그저 묻힌다. 이것이 이 책에서 가장 인간적인 대목이다. 완벽한 방법론을 다 세워놓고도, 유소는 마지막에 운(運)과 때(時)라는, 방법론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앞에서 겸허해진다.
마지막 반전: 다투지 마라
그런데 이 책은 가장 뜻밖의 곳에서 끝난다. 사람을 정교하게 판별하는 법을 다 가르친 뒤, 마지막 편의 제목은 석쟁(釋爭) — 다투는 마음을 풀어놓으라는 것이다.
전국시대 조(趙)나라에 인상여(藺相如)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가 화씨벽을 온전히 지켜 돌아온 공(제 몸을 던져 옥을 지킨 완벽귀조完璧歸趙의 고사)과, 진나라 왕과의 회담에서 조나라의 체면을 지킨 공으로 크게 출세해, 무장으로 이름 높던 염파(廉頗) 장군보다 윗자리에 올랐다. 염파는 분개했다. "나는 성을 치고 들판에서 싸운 공이 있는데, 인상여는 그저 입만 놀려서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그를 만나면 반드시 욕을 보이겠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인상여는 염파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조회에 나갈 때도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그와 마주치지 않았고, 길에서 그의 수레를 보면 먼저 몸을 숨겼다. 그의 부하들은 부끄러워하며 왜 이렇게 비굴하게 구느냐고 따져 물었다. 인상여는 이렇게 답했다. "진나라 왕도 두려워하지 않은 내가 염파 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다만 생각해보라. 강한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함부로 치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 장군, 두 사람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이 다투면 그 중 하나는 쓰러질 것이고, 그러면 진나라가 노리는 것은 바로 그 틈이다. 내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한을 뒤로 미루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말이 염파의 귀에 들어갔다. 염파는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등에 진 채 인상여의 집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두 사람은 그날로 목을 내주어도 변치 않을 벗,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다.
유소는 이 이야기를 빌려와 말한다 — 자기를 낮추고 남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추양推讓)이야말로 가장 날카로운 무기라고. 노자도 일찍이 같은 말을 했다.
夫唯不爭,故天下莫能與之爭。 오직 다투지 않기 때문에, 천하가 그와 더불어 다툴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공로가 없으면서 스스로 뽐내는 것이 가장 낮은 등급이고, 공로가 있어 그것을 자랑하는 것이 중간 등급이며, 공로가 커도 자랑하지 않는 것(不伐)이 가장 높은 등급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이켜보면 이상한 책이다. 사람의 몸에서 아홉 가지 징후를 읽어내고, 성격을 열두 가지로 쪼개고, 재능을 다시 열두 갈래로 나누고, 관찰의 여덟 창과 오류의 일곱 함정까지 촘촘히 세워놓은 책이, 정작 마지막에는 그 모든 정교한 눈을 가진 사람에게 "그러니 남과 다투지 마라"고 말하며 끝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이야말로 정확한 결론이다.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아무리 밝아져도, 그 눈으로 얻은 우월감을 무기로 휘두르는 순간 그 눈은 다시 흐려진다. 자기 자신조차 편향된 하나의 성격 유형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사람만이, 끝내 남을 있는 그대로 보는 자리에 설 수 있다. 공자가 『논어』 마지막 문장에서 던진 질문 —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 에 유소가 700년 뒤에 내놓은 답은, 결국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 위에 서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 곁에 겸손히 서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더 상세한 판(원문의 열두 편을 모두 다룬 완역 해설형)은 유소의 인물지에서 볼 수 있다. 참고: 이한우, 『이한우의 인물지』(21세기북스, 2023).
